제 4 장 4

 

제 4 장

4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다는 소식은 공화국북반부 전체 인민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환희를 불러일으켰지만 윤숙경의 경우는 더욱 류다른 감회에 잠겨들게 하였다.

오늘아침 우리의 적십자회중앙위원회에서는 물자들을 싣고 남으로 떠난다는 장쾌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윤숙경은 환성이라도 지르고싶은 흥분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는 하루일을 어떻게 마쳤는지 알수 없었다. 뻐스정류소에 나오니 정류소에 모인 사람들속에서도 그 소식을 두고 떠들고있었다.

락조가 비낀 저녁거리는 흥성거렸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시내 근로자들이 퇴근길에 올라 물결처럼 흘러가고 각종 승용차들과 뻐스와 전차들이 끊임없이 오가고있었다. 날마다 례사롭게 보아온 이 거리였지만 윤숙경에게는 이날따라 거리의 풍경이 더욱 화려하고 흥겹게 보이였으며 오가는 사람들모두가 가까운 이웃처럼 친근하고 살틀하게 느껴지는것이였다. 이제는 그럴 나이도 아니건만 그는 자기의 마음이 왜 이렇게도 뒤설레이는지 스스로도 가늠키 어려웠다. 그는 마치 십대소녀시절처럼 무한정 기쁘고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곧 전화를 걸어 안창후를 찾았다.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 성명이 나갔으니 틀림은 없겠지만 그 내막을 좀더 상세히 알고싶었다. 수화기에서는 안창후대신 그의 안해 옥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이구만, 내 숙경이야, 애아버지는 들어왔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요즘은 노상 일이 바쁘다나니 밤늦어서야 들어오군 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 난 그저 궁금해서. 애들은 다 잘 있겠지?》

《예, 누이. 그러지 말고 집에 좀 들려요. 그렇지 않아도 애들이 요즘 왜 고모가 안오느냐고 하는데···》

《나도 괜히 바쁜 흉내를 내보느라구 짬을 얻지 못해서 그래. 내 불원간 한번 들릴게. 그런데 애아범이 구호물자인도사업때문에 무슨 기동을 할 눈치는 없던가?》

《웬걸요. 다른 말은 없지만 깨끗한 나들이옷을 준비해달라는걸 봐선 어딘가 중한 걸음을 하게 된 눈치예요. 어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어버이수령님께 남조선에 내보낼 구호물자전시품들을 보여드렸는데 늦게 집에 들어와서 저녁삼아 밤참삼아 몇숟갈 뜨는둥마는둥하고는 다시 적십자회에 나갔어요. 그리고는 지금껏 안들어오셨어요.》

《알겠어. 요즘에야 동생이상 바쁠 사람도 드물겠지.》

얼마후 그는 전화를 끊고 창가로 다가갔다. 밖은 이미 저물어서 밤하늘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였는데 그 어둠밑으로 보통강변의 야경이 펼쳐져있었다. 밤거리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설레였다.

그 광경을 홀린듯이 지켜보고있던 윤숙경은 문득 구호물자를 가지고 남으로 가는 사람은 얼마나 복받은 사람들인가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부러워졌다. 뜻대로 할수 있다면 자기도 그 성원들속에 끼여 같이 가서 아들도 찾아보며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라도 해주고싶고 상처입은 마음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도 날씨는 맑았다. 그가 청사에 도착하니 국장이 뜻밖에도 허담비서가 그를 찾는다고 전하였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국장은 《행사겠지요. 해외에서 또 누가 오는가 봅디다.》 하고 례사롭게 대꾸하였다.

그런 행사는 가끔 제기되는 일이여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례사로운 일로 여겨지고있었다. 윤숙경이도 해외에서 오는 손님을 맞아 안내원으로 사업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당중앙위원회 허담비서가 직접 찾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마 거물급인물이 오는 모양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는 해외, 특히 미주에 있는 교포들로서 조국을 방문할수 있는 사회계나 실업계, 출판계나 예술계 인사들을 자기 나름으로 더듬어보았으나 좀체로 짐작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남조선을 떠나 십수년간 카나다에서 망명생활을 한적 있는 그는 카나다나 미국에 있는 교포들속에서 한다 하는 동포인사들을 대체로 풋낯정도라도 알거나 아니면 보지는 못했어도 이름만이라도 알고있었다.

그는 부랴부랴 차비를 하고 허담이 부른다는 처소로 찾아갔다. 허담은 그를 반갑게 맞아들여 응접실 쏘파에 앉히였다. 소음하나 들려오지 않는 아늑한 방이였다.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진 백설같은 창가림이 반쯤 걷혀진 창밖으로는 매츨한 수삼나무와 전나무들이 드문드문 박혀선 아담한 정원의 한귀퉁이가 빠금히 내다보이였다.

《내 윤동무를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가지 어려운 과업을 주자고 그럽니다.》 하고 허담은 여느때없이 심중한 기색으로 그앞에 마주앉았다.

윤숙경은 오늘따라 별로 갑자르며 말머리를 떼기 어려워하는 허담의 얼굴을 피끗 쳐다보았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오늘 미국에서 해외교포 한사람이 조국방문차로 오는데 그의 안내를 숙경동무가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총국의 제기가 있어 그럽니다.》

《그게 뭐 새삼스러운 일입니까. 늘 하는 일인데···》 하고 윤숙경은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허담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키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내 말을 잘 새겨들으십시오. 그 사람이 누군줄 압니까? 최성덕입니다!》

《네?! 그 사람이 어떻게?!》

윤숙경은 온몸의 피가 일시에 머리우로 왈칵 몰려오르는것 같은 흥분을 느끼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숨이 꺽 막히는것 같은 충격이 일었다.

《그래 조국에선 그 사람의 입국을 승인하였는가요?》

《승인했습니다.》

《무슨 일로 오겠다는건가요?》

《아버지묘소를 찾아보기 위해 오겠다는겁니다.》

《아니, 아니예요!》

윤숙경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푸른 불꽃이 일었다.

《난 모르겠어요. 제가 무슨 면목으로 성스러운 우리 조국땅에 발을 들여놓겠다는거예요! 그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한둘인줄 알아요. 그의 손엔 동족의 피가 묻어있단말예요. 해외교포들속에서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는 어디가나 늘 따돌림받고 외토리였지요. 전 못해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사람의 안내만은 못합니다!》

《숙경동무,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전 흥분하는게 아닙니다. 비서동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걸 모르십니까?》

《알기때문에 이렇게 불러 의논하는게 아니요?》

《못합니다. 저에게 더이상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 이야기만 나와도 난 눈에서 불이 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중에는 저의 남편도 있습니다···》

윤숙경은 갑자기 고개를 떨구며 눈을 꾹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솟아올라 상우에 떨어졌으나 그는 아무것도 의식 못한채 까딱않고 굳어져있었다. 그의 눈앞으로는 흙속에 들어가도 잊혀지지 않을 원한서린 수십년전의 일들이 피뜩피뜩 스쳐지나갔다. 룡산철도공장 로동자들속에서 로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을 일으킬 준비를 하다가 발각되자 지리산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남편··· 그 이듬해 봄에 있은 지리산 《토벌》때에 무참히 희생된 남편의 시체, 놈들은 그 시체에서 목을 잘라 머리는 산중턱 나무가지에 매달아놓았으며 몸뚱이는 사지를 찢어 갈가리 헤쳐버리였다. 물론 이것이 최성덕이 직접 지휘한 부대가 저지른 만행이 아니라해도 당시 군부의 주요지위에 있던 그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수 없다.

그다음은 아들과의 생리별··· 그러고보면 그의 불행의 시초는 최성덕이와 같은 인간들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안내를 해?

윤숙경은 도대체 리성적인 사고를 할수 없었다. 허담도 그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는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숙경동무의 립장이 정 그렇다면 나도 더 할 말은 없습니다.》하고 그는 윤숙경이 퍼그나 안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무겁게 말머리를 뗐다.

《최성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안내에 붙이는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그가 과거에 우리들한테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현재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우리와 손잡기를 바란다면 멀리하고 따돌릴 필요는 없다는겁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변함없는 립장이며 태도입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와 손을 잡자는 의향이라도 보인게 있는가요?》

《아니,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남조선의 군사파쑈통치자들과 결별하고 망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공화국북반부에 있는 자기 선친의 묘소를 찾아보겠다고 하는것을 막을 필요야 없잖습니까. 나도 그 사람의 경력이 하도 복잡하기때문에 좀 께름한 생각이 없지 않아서 처음은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했댔습니다. 그러다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결심을 내리게 되였지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요?》

《그렇습니다. 그이께서는 그 사람이 비록 과거는 어떠하든 우리를 찾아 문을 두드리는데 그걸 못들어오게 할것까지는 없다면서 그의 방문요청을 들어주자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아들이 선친의 묘를 찾아보자는것인데 우리는 그가 자식된 도리를 아무 지장없이 수행할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자고 하시였습니다. 옹졸하게 생각하고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윤숙경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허담도 그에게 생각할 틈을 주려는듯 잠자코 있었다. 입술을 짓씹으며 앞상모서리를 한동안 뚫어지게 지켜보고앉았던 윤숙경은 긴숨을 내쉬며 눈덕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까딱 움직이지 않은채 놀랄만큼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당의 의도가 그렇다면 안내에 나서겠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숙경동무가 꼭 이렇게 나올줄 알았습니다. 숙경동무의 경우 그를 용납하기 어려우리란걸 알고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외생활도 해보고 남조선생활도 잘 아는 숙경동무가 그의 편의를 돌봐주는것이 적합할것 같아 불렀던것인데 리해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럼 가서 그를 맞을 차비를 하시오. 오늘 베이징발 평양행 비행기편으로 그 사람이 평양에 도착합니다.》

《알겠습니다.》

윤숙경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