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훌렁 벗어진 이마가 푸릿푸릿해질만큼 분노하여 방안을 거닐던 전두환은 너렁청한 방가운데 놓여진 커피색사무탁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주단우에 두다리를 벌려디디고선 그는 숨을 몰아쉬며 사무탁우의 자료철을 쏘아보고있다. 거기에는 방금전에 정보실에서 가져온 북의 조선중앙통신사보도를 실은 자료가 놓여있었다.

구호물자를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장소로 전부 보내겠다는것이다. 결국 이것은 9월중 일괄인도를 북에서 실행하겠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였다. 일본방문을 마치고 엊그제 돌아온 그는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대단히 좋았었다.

사실 그가 이번에 단행한 일본방문으로 말하면 그 시초부터 말썽이 많았다. 암암리에 준비해오던 그의 일본방문계획이 발표되자 야당계인사들과 청년학생들은 물론 심지어 일부 여당인사들까지도 《굴욕외교》요, 《민생에 대한 무관심》이요 뭐요 하고 일대 소동을 피웠으며 각계각층 사람들이 매일처럼 시위에 떨쳐나와 끓어번지였다. 게다가 이번 수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떠들어대면서 먹을것을 내라, 구제대책을 세우라고 걸고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론이 물끓듯 하고 백성들이 떠들어대도 아메리카합중국의 뒤받침이 있는 한 걱정할것이 없다는 든든한 배심을 가지고 그는 계획대로 일본방문을 실행했다. 이번 일본방문으로 말하면 그자신의 의사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의 의사이기전에 미국의 의사였으며 일본의 의사였다. 그는 이번에 어떻게 하나 미국이 바라고 일본이 바라는대로 일본과의 《국교》관계를 제 궤도에 올려세움으로써 자기의 몸값을 높이는 동시에 일본의 덕을 입어 변변치 못한 자기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려 했다. 그러므로 일본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은근히 제 몸값을 높여보이느라 번들번들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넘기며 이렇게 말하군 했다.

《천황페하 히로히도는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하였어. 한국의 전두환대통령을 만나게 되여 매우 반갑다고말이요.》

그리고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히로히도가 선사한것이라는 담배를 한대씩 권하였다.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는 완전히 풀렸어. 이웃이나 린방의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완전히 혈연관계로 되였다고 말할수 있거든.》

전두환은 자기 도취에 빠져 자화자찬하며 마치 범잡은 포수처럼 으시대고 돌아쳤다.

그런데 오늘아침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줄이야!… 북의 적십자회성명이 진짜라면 인천과 북평, 판문점의 분계선을 넘어 구호물자들이 당장 밀려들어온다는것인데 어쨌으면 좋을지 막막하였다.

워싱톤의 립장은 명백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북의 구호물자를 《한국》땅에 들여놔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것인가?)

하고 그는 머리를 짜다가 서기에게 장차관들을 급히 모이게 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전두환의 부름을 받은 장차관급인물들이 응접실에 모인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서기에게서 련락을 받자 전두환은 전실을 거쳐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은 《대통령》사무실과는 달리 그닥 넓지도 않고 또 지나칠만큼 화려하거나 사치하지도 않았다. 이 방에서는 자주 밀담이 벌어지군 하였는데 방한가운데 광택이 요란한 밤색탁자가 놓이고 그 둘레에는 고급융단으로 거죽을 씌운 안락의자가 위엄있게 자리를 차지하였다. 때문에 이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누구나 잠시 어리벙벙해지군 하였다. 명암효과를 잘 고려해서 오른쪽벽 한가운데는 태종 춘추공의 초상이 걸려있었다. 고풍의 조선화필체에다가 채색을 잘하였기때문에 미술적품위도 상당한 정도로 높았다. 그런가 하면 그 맞은쪽에는 전혀 뜻을 가려볼수 없는 추상파미술작품이 걸렸는데 얼핏 보기에는 돌로 쌓은 성벽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이끼가 한벌 내돋은 기와장같기도 하였다. 어쨌든 여기에는 먼 옛날것과 최현대의것이 아무런 조화의 고려가 없이 한데 모여있는것이다.

한쪽벽에 세워놓은 자그마한 진렬장에는 이 방주인의 취미와 의도가 잘 나타나고 그 효과가 뚜렷한 기념품이 몇점 놓여있었다. 맨 처음것은 보기에도 스산한 두개골이였다. 뼈는 대체로 우유빛이였는데 어떤데는 오래된 상아처럼 누릿누릿하였다. 이것은 어느 고고학적출토품이거나 어떤 골상을 연구하기 위한것이 아니고 윁남파병때 전두환의 수하에 있던 참모장의 두개골로서 그는 전두환을 반대하는 반변을 일으키려다가 적발되여 처단되였다는것이다. 그것이 징벌받은 《변절자》의 모습이라는데 대해 전두환자신은 별로 구구한 설명을 가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무엇을 시사해주고있는지 명백했다.

두번째 진렬품으로는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휴대용 확성기이다. 이것은 1980년 광주폭동때 시체가 널린 시청 앞광장에서 주어온것이라고 한다.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면 이 《두가지 기념품》을 보게 되고 또 보고나면 한동안 생각하게 되군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그런것에 신경을 쓸 경황이 없었다. 방에 들어선 전두환의 기상이 너무나도 험악했기때문이다.

그 서슬에 기다리고있던 방안사람들은 일제히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몇초동안 침묵이 흘렀다. 여느때같으면 전두환이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너그럽게 웃으며 앉으라고 할것이였으나 이번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안은 벌써 극동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여보, 통일원장관!》

전두환은 얼굴이 길고 머리카락이 성긴 장신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통일원장관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9월중 일괄인도를 요구하면 꼼짝못하고 손을 든다던 북이 어떻게 돼서 구호물자를 9월중에 몽땅 다 실어보낸다는 성명을 내게 됐소. 응?》

통일원장관은 아무런 대답도 못하였다. 그럴수록 전두환은 얼굴이 푸르러져 펄펄 뛰였다.

《왜 말이 없소? 당신네들을 믿고서야 어떻게 일하는가말이요? 전탕 허튼 소리만 하고. 여보, 공보부장관!》

키가 작고 몸이 다부진 사나이가 흠칫 놀란다. 전두환은 그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맨 가슴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겨보며 따지고 들었다.

《북에서는 수송능력이 딸려 단꺼번에 그 많은 구호물자를 운반할수 없을거라고 한것이 당신네가 아닌가? 당신네들이 제공하는 자료치고 어디 씨알머리 배긴것이 하나나 있는가말이요!》

역시 침묵이였다. 군대에 있을적부터 이런 기합에 적응되여 이제는 면역이라도 생겼는지 돌부처처럼 꿈쩍도 않는 그들의 검질긴 성미들이 이제와서는 더욱 밉살스럽고 화를 돋구게 했다.

전두환의 눈길은 배가 불쑥 나온 송일선에게로 옮겨갔다.

《안전기획부장!》 목소리가 갈리였다. 《당신은 이렇게 될수 있다는걸 알았는가, 몰랐는가?》

한음계 툭 떨어졌다. 기력이 모자라 그랬는지 아니면 그들사이에는 혹독하게 대할수 없는 특이한 관계가 있어 그런지는 모르나 한풀 맥이 빠졌다. 그는 송일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한참동안이나 화풀이를 하였다.

이윽해서 그는 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집어들었지만 불을 달 생각도 못하였다. 무엇보다 골치거리는 북에서 날린 성명을 누를만 한 대안이 서지 않는것이다. 그는 이마를 붙잡고있다가 일곱명이나 되는 장차관들을 하나하나 여겨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수재요, 천재요 하는 고지능자들만 선발했다는것이 고작 이꼴이란말인가.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를 걸만한것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공기가 온 방안을 내리눌렀다. 그 순간 전두환의 눈앞에는 미국대사 워커의 얼굴이 언뜩 스치고 지나갔다. 이마가 팽팽하고 리지적으로 생긴 전형적인 백인의 얼굴이다. 언제나 미소를 띄고있는 눈과 입가장자리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가지의 색채를 느끼게 하는것이다. 부드러운것 같으면서 오싹한데가 있고 안도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어제밤에 있은 일이다. 일본에 갔다온것을 의례적절차에 의해서 통보하는것은 이미 지나갔고 공식보도도 되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것은 외교가 아니고 내교인것이다. 조용히 마주앉아 대일본전략을 의논하기 위해 전두환은 교외에 있는 별장으로 나갔다.

관계자들에게는 피곤을 풀어야겠다고 해놓고 누구도 모르게 소나무가 우거진 외진데로 찾아갔다.

마당에서 거닐고있는데 《포드》 한대가 나타났다. 워커는 차에서 내리는참 허리가 늘씬한 몸을 좌우로 휘저으면서 맞받아오더니 팔을 벌려 포옹하였다.

이것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한번도 있어본적없는 이례적인 인사방식이였다.

이때 전두환은 코마루가 찡하였다. 별로 특이한것은 아닌데 감격을 자아내게 했던것이다. 이렇게 시작하여 처음에는 송림속을 거닐면서 한시간이상, 다음에는 주탁에 마주앉아 밀담을 하였으며 나중에는 서글픈 신세로 종지부를 찍기는 했지만 맥아더원수가 대일정치를 잘했다는데 대해서도 한참이나 발라맞추었다. 그것은 일본의 천황제를 보존하게 한것인데 그것이 《천재적예견》으로 될수 있겠는지 아니면 《암매한 바투 보기》가 되겠는지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일본이 《복수주의》로 나아가서 반미기치를 들지 않은것만은 사실이다.

워커는 또 워커대로 전두환을 추어올렸다.

금후 미국은 태평양지대 특히 아시아를 다음세기의 중심으로 보고있는데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며 따라서 《한국》이 영원한 미국의 《동맹자》로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것은 어떤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되는가 하는것이 기본인데 그것은 전두환씨가 천부의 적임자라고 지껄였다.

이때 전두환은 술잔을 새것으로 갈아대고 술을 붓게 한 다음 《축배》가 아니라 《감사배》를 들자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다음 전두환은 오늘 현재 골치거리인 북에서 보내오는 구호물자에 대해서 말을 건네였다.

그렇게 되자 워커는 구호물자를 받겠다 하라고 추동할 때와는 달리 아닌보살하고 그건 《대통령》이 적당히 처리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결국 미국은 이 책임에서 슬며시 벗어나겠다는 속심이였다. 전두환은 워커의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였으나 울며 겨자먹기로 불평 한마디 못한채 묵묵히 침묵을 지킬수밖에 없었다.

한참만에야 전두환은 조심조심 내심을 드러내였다.

《기왕 이렇게 된것이니 이제라도 무슨 구실을 붙여서 거절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것 같습니다.》

워커는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전두환은 담배를 붙여물고 다시 일어나 주단우로 거닐면서 잠간 사색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북에서 하겠다는 자기네 방식이란건 도대체 어떤것인가?》

누구에게라 없이 무턱대고 물었기때문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통일원장관, 당신이 말해보우.》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였던 통일원장관이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건 북에서 김정일지도자가 제기한 구호인데 어데가나 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라고 써붙이고 그걸 전국민이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뿐입니다.》

《여보 여보! 당신은 지금 무슨 소릴 하고있소? 당장에 구호물자를 자기 식대로 보내온다고 하지 않소.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오? 다른 때는 그렇게 머리가 잘 돌고 말도 잘하던 위인들이 왜 이렇게 되고말았는가.》

당장 무슨 요정을 낼것처럼 노려보던 전두환은 머리를 흔들며 손짓을 하였다.

이때 그의 머리속에 무엇인가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입가에는 남들이 소름이 끼칠만큼 잔인한 웃음이 싸늘하게 비껴갔다.

《좋소. 이젠 다른 방법이 없소. 북에서 구호물자를 싣고 당장 나오겠다고 한 이상 이젠 딴 방법이 더 있을수 없소. 회담에 끌어내올수도 없고 온 세상이 보겠는데 구호물자를 실은 배를 폭격할수도 없소. 그러니 방도는 오직 하나밖에 없소. 물자인도인수장에 나가 품질에 트집을 걸어 거절해치우는것이요. 리재민들자신이 그 품질에 의혹을 가지게 해서 북의 구호물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게 만드는거요. 내 결심은 이런데 당신네 생각은 어떻소?》

《그것 참 명안이십니다.》

하고 한 장관이 약삭바르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발라맞추려들었다. 전두환은 까닭모를 역스러움을 느끼며 례의 그 장관을 경멸의 눈길로 쏘아보았다.

《궁여지책이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잡도리를 단단히 하오. 알겠는가?》

이러고도 전두환은 피진 눈으로 수하장관들을 둘러보며 몇마디 더 훈시를 준 다음 모두들 돌아가라고 하였다.

모두 자리를 떴다. 그때 전두환은 맨 마감으로 나가는 송일선을 불러세웠다.

《안전기획부장은 남소.》

방안이 조용해지자 전두환은 송일선이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말한 그 일을 당신이 직접 책임지고 작전하오. 통일원이요 뭐요 잔뜩 있지만 어느것 하나 믿을게 못되오. 이건 대통령의 공식명령인 동시에 또한 내 개인적인, 사적인 부탁이기도 하오. 이 말의 뜻을 알겠소?》

《알겠습니다.》

다른 장관들과는 달리 자기를 친근하게 대해주는 전두환의 류다른 호의에 송일선은 감격하여 꼿꼿이 선채 높은 경의심을 품고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그럼 믿겠소.》

하고 전두환이도 고개를 한번 끄덕여보이고는 다시금 송일선을 향해 말을 걸었다.

《참, 워싱톤에 있다는 최성덕이말이요. 그자의 동향이 아주 나빠지고있다는데 어떻게 됐소?》

《대책을 세우고있습니다. 그쪽 대사관에도 말했고 또 얼마전에는 일본에 있는 줄을 통해 낚시를 던졌습니다. 늦어도 금년안으로 본인을 여기에 도착시키겠습니다.》

《도착시킬 필요까지는 없소. 그런 늙다리를 끌어다 뭘하겠소. 오늘에 와서 그 늙다리는 극상해서 식객일뿐이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북으로 넘어갈가봐 그러는거요. 때도 때니만치 그가 북으로 넘어가는 날에는 문제가 시끄럽게 되오. 그러니 어물거리지 말고 빨리 결속을 짓소. 정 말듣지 않으면 슬쩍 없애치우고마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제일 좋기는 이왕 그가 북에 가게 된 기회에 거기 가서 죽게 만든다면 일거량득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하는것이 좋기는 한데 가능하겠소?》

《가능합니다.》

《그럼 좋소.》

송일선은 전두환의 앞에 빳빳이 서서 절도있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