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5

 

제 3 장

5

 

그이튿날 오전 열시경, 김정일동지께서 전화로 고윤학을 찾으시였다.

《고윤학이 전화받습니다.》

《지금 뭘하고있습니까?》

《좀전에 황해남도에서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기에 그 내막을 료해하고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상하다는것입니까?》

《도량정창고에서 어제밤에 두명의 무장간첩을 체포했다고 합니다. 한놈은 23살, 다른 한놈은 25살, 안기부에서 훈련받고 사흘전에 서울에서 파견됐다는데 받은 임무는 량곡창고들을 불지르고 우리에 대한 악선전거리로 될 류언비어를 퍼뜨리는것이랍니다.》

《옅은수의 장난질까지 하는걸 보니 저쪽에서 꽤 바빠맞은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구호물자를 보내는 문제를 가지고 다시 모여 토론하자고 찾았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행동방향을 결정하여야 하겠습니다.》

30분후, 어제 모였던 성원들이 다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 모여앉았다.

먼저 김정일동지께서 발언하시였다.

《어제 하다만 토의를 계속합시다. 구호물자인도인수문제를 어떤 방향에서 내밀고나가는것이 좋겠는지 밤사이에 생각해낸 방안이 있으면 내놓고 의논해봅시다. 난관을 타개할 헌신적이고 진취적인 대책안이 세워져야 합니다. 부총리동무가 밤사이에 생각해둔게 없습니까?》

고윤학부총리는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고있기나 했듯이 서슴없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였다.

《다들 아시다싶이 어제 저는 두가지안을 제기했댔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 우리 인민의 뜨거운 마음과 접해보고나서 처음 자신이 제기한 두가지안이 우리 인민의 심정, 우리 인민의 의지에 부합되지 않는 소극적이고도 근시안적인것이였음을 스스로 자인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어제밤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정미공장과 방직공장을 돌아보고와서 비록 남측이 우리를 궁지에 빠뜨려넣고 골탕을 먹이기 위해 9월중 일괄인도인수를 요구했지만 우리는 9월중 일괄인도를 능히 보장할수 있을뿐만아니라 궁지에 빠질 념려도 없으며 골탕먹지도 않으리라는것을 확신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이 자진하여 궐기한 이상 쌀도 천도 세멘트도 문제없으며 구호물자수송문제로 해서 인민경제계획수행에 영향을 미칠것도 없겠다는 자신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남측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리라고 인정하며 무리하게 요구한 9월중 일괄인도를 결행하자는 생각입니다.》

고윤학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맺고 자리에 앉았다. 충격적인 혁신안이였다. 다들 놀랍다는듯 고윤학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자기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법이라고는 거의나 없기때문에 《표정없는 일군》으로 유명해진 허담조차 손수건으로 닦고있던 안경을 얼른 걸고 고윤학부총리의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경의의 눈길로 넘겨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에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부총리동무가 진취적인 새 안을 내놨는데 다른 동무들의 의견도 들어봅시다. 모두가 생각이 있었을테니까.》

고윤학을 넘겨다보고있던 허담이 안경을 번뜩이며 성큼 일어났다.

《저는 부총리동무의 제기를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지금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우리의 구호물자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대단히 크고 높습니다. 그들은 전에 볼수 없었던 기세로 구호물자를 빨리 받아다 나눠달라고 요구하고있습니다. 일부 지방의 리재민들은 면이나 구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북에서 주겠다는 구호물자를 왜 받겠다고 해놓고는 받아오지 않을 꿍꿍이를 하는가, 오그랑수를 쓰지 말고 받아오라고 항의를 들이대고있습니다. 이것은 구호물자를 빨리 보내고저 하는 우리 북쪽사람들과 빨리 받고싶어하는 이남민중들의 심정이 일치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만큼 남측 당국의 무리한 요구에 관계없이 구호물자를 하루라도 더 빨리 보내주는것은 북과 남의 전체 인민의 간절한 념원에 부합되는 옳은 처사라고 봅니다.》

허담이 자리에 앉자마자 철도부장이 일어났다.

《저도 어제밤에 각 지구철도총국장들과 전화협의회를 소집하고 구호물자운반문제를 놓고 의논해보았는데 남조선에 보낼 모든 화물을 서해쪽으로만 뽑아야 한다는 조건에 제약받지 않으면 철도수송을 문제없이 보장할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대로 남포쪽으로도 뽑고 원산쪽으로도 뽑고 개성쪽으로도 뽑게 되면 인민경제계획수행에 지장받지 않고서도 능히 이달안으로 구호물자 전량을 수송할수 있습니다. 먼거리자동차수송까지 배합하면 훨씬 더 여유있게 됩니다.》

《그러니 철도에서는 남포-인천 한통로만 채택되는 경우에는 9월중 수송보장이 어렵다는거겠습니다?》

《억지로 강행하면 될수도 있겠지만 그 후과가 재미없다는것입니다.》

《우리 인민경제에 무리한 억지공사야 할 필요 있습니까. 무리가 없게 세 통로로 뽑을 판이지.》

《세 통로면 땅짚고 헤염치기지요. 장담하고 해내겠습니다.》

《다들 아주 건설적이구만. 당사자인 적십자회에서는 생각이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밝고 명랑한 안색으로 안창후를 건너다보시였다.

안창후는 탈탈 마른 입술을 감빨고나서 말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처음에 내놓은 우리의 안대로 인도인수하도록 설복시키든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남측의 부당한 처사를 국제사회계와 언론계에 폭로하고 세계의 량심에 호소하자는 생각을 갖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 역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부총리동지랑 함께 구호물자를 준비하고있는 현지를 돌아보는 과정에 생각이 달라졌을뿐아니라 방금 여러 동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더 대담하고 통이 크게 어른스럽게 처사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물자도 수송도 이달안으로 능히 보장할수 있는 조건에서 저는 이번 접촉에서 우리가 아량을 발휘하여 9월중 일괄인도를 해주겠다는 명백한 대답을 주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측은 그 어떤 구실도 만들어낼 건덕지가 없는만큼 우리의 구호물자에 대한 인수를 거절할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판문점실무자접촉에 나갈 때 9월중 일괄인도를 보장하겠다는 안을 가지고갈 작정입니다.》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제기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을 다시한번 둘러보시였다.

방안에 더 이상 론의할 여지없이 걸린 문제가 풀리였다는 안도의 기분이 물결치고있었다.

드디여 그이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제가 좀 말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껏 음성을 낮추시였다. 그러나 마디마디 무게가 느껴지게 말씀하시였다.

《오늘아침에 중앙통신에서 입수한 자료인데 유럽의 어느 한 출판물에서는 우리의 구호물자와 관련하여 이렇게 론평하였습니다. 북조선이 제의한 구호물자의 액수는 적십자사의 120년간력사에 전례없던 기록으로 된다. 아직까지 최고는 1983년 인도수해때 스웨리예가 보낸 75만딸라였다. 이번 북조선의 제기는 놀랍게도 1 800만딸라이고 남조선화페로서 145억 6천여원이다. 이것은 순수 수자적대비만을 기준삼아 한 객관적평가입니다.》

그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함뿍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방금 읽으신 통신쪽지를 내려놓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발휘하고있는것이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있는 동포를 위하고싶은 동포애적감정, 육친적사랑의 감정에 의해 행동하고있습니다. 그 누가 뭐라든, 별별 시시한자들이 우리에 대해서 그 무슨 악담을 다 퍼부으며 헐뜯는다 해도 우리의 이 숭고한 형제적감정, 동포애적감정은 바뀌여질수도 없고 변할수도 없습니다. 남조선형제자매들을 생각하는 우리의 동포애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으며 또 남녘의 동포들은 구원의 손길을 일각이 새롭게 바라며 기다리고있습니다.

동포들끼리, 형제들끼리 정을 주고받자는것인데 그것이면 다지 그 무슨 구애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남조선당국자들이 어떻게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기일을 정하고 하는데 구애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남녘동포들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면 됩니다.

안창후동무는 래일 판문점에 다시 나가겠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창후는 그 말씀에 흠칫 놀랐다.

(래일의 접촉에 나갈 필요가 없다니? 래일 접촉에 나가지 않게 되면 구호물자를 보내는 사업은 결국 흐지부지되고말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마음속에 갈마든것이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신 그이께서는 어리둥절해하는 안창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안창후동무는 남측이 제기한 9월중 일괄인도요구를 우리가 들어주겠다고 하면 남측에서 더는 빠져나가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해도 남측을 설복시켜낼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구실을 얼마든지 만들어낼것입니다. 상대가 그나마 그 무슨 도의심비슷한것도 가지고있고 리치에 맞게 처신할줄도 아는 위인들이라면 사리있는 말이 통하겠지만 우리것이라면 무턱대고 반대하는 상대측에 무슨 진심이 통하고 론리가 통하겠습니까. 이제 회담장에 다시 나가면 아무 소득없는 공연한 말씨름이나 하다말게 될것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조이였다. 의혹, 불안, 우려 등 온갖 착잡한 감정들이 갈마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곧바로 보이는 창문가 한점을 응시한채 뒤를 이으시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의 상황에서 구호물자인도사업을 이제는 우리 방식대로 해야 하겠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구호물자를 보내는 사업에서 우리는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고 누구의 눈치를 볼것도 없습니다. 남측에서 받겠다고 세상에 공포한 이상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품종을 우리가 정한 량만큼 우리가 계획한 날자와 지점에 가져가자는것입니다. 구구하게 회담이요, 접촉이요 할것없이 구호물자를 싣고 판문점으로, 동해의 북평으로, 서해의 인천항으로 간다는것을 온 세상에 대고 선포합시다. 그리고 선포한 그대로 결행합시다. 이런 도의적진공을 남측에서는 아마 무슨 수로도 막지 못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간명하게 결속을 짓고 자리에 앉더니 차잔을 들어 목을 추기시였다.

《그렇게 하는게 어떻습니까?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으면 기탄없이 말하시오.》

《성명을 내고 그대로 하는데 절대찬성입니다.》 허담이 그렇게 말한데 이어 이구동성으로 다들 기꺼이 찬성하였다.

《반대의견이 없다면 그렇게 합시다. 성명작성의 실무적문제는 적십자회에서 구체적으로 토의하여 처리하는게 좋겠습니다. 량곡, 직물, 의약품은 판문점을 거쳐 륙로로 넘겨주고 세멘트는 인천과 북평항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성명을 내고 그대로 내밉시다. 우리는 어떤 술책에 매달릴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심을 그대로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동포애의 감정밖에 다른것이 없다는것을 사실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자, 그럼 모임을 이만합시다. 나도 만수대예술단동무들에게 혁명가극을 봐주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되여서 오래 앉아 지체할 경황이 없습니다.》

모임참가자들이 자리를 뜨게 되였다.

격정에 사무친 안창후는 그이의 손을 붙잡고 놓지를 못하였다. 그만이 아니였다. 허담도 고윤학이도 그이앞에서 쉬이 물러나게 되지를 않았다.

오늘아침부터 시민들속에서는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모셔진 김정숙어머님의 동상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모레는 어머님께서 별세하신지 서른다섯돐이 되는 날인것이다. 그들자신도 어머님의 동상을 찾아가 경건한 추모의 인사를 올리기 위하여 화환을 정성들여 마련해놓은채 이리로 왔었다. 지금쯤 대성산혁명렬사릉으로 오르는 계단들은 어머님의 령전을 찾아드는 수천수만명의 조객들로 장엄한 행렬을 이루어놓았으리라. 하지만 누구보다 맨 먼저 어머님의 령전을 찾으셔야 할 김정일동지께서는 모레가 무슨 날인지를 잊기나 하신듯 남녘의 동포들에게 준 약속을 어길가 보아 아침 첫시간부터 거기에 마음을 쓰고 또 이제는 만수대예술단에 준 약속을 두고 마음을 쓰신다.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보다 동지와 사업과 혁명을 더 생각하고 위하는것은 대대로 물려받아오시는 천성인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