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제 3 장

4

 

정미공장에서 떠난 승용차는 잠간사이에 송신립체다리를 지나 동평양에 들어섰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때문에 강한 전조등불빛도 물안개가 뽀얗게 서린 널다란 대통로를 잘 밝혀내지 못하였다. 차창에는 물이 흐르고 바퀴에서는 천필을 째는것과 같은 아츠러운 소리가 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못 상쾌한 기분으로 가로등이 서있는 보도쪽을 내다보고계시였다.

번개가 번쩍할 때마다 길바닥이며 고층건물의 한쪽벽이며 무궤도전차며 모두 순간적인 푸른 은빛조명을 받아 창백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앞서보다 더 캄캄한 암흑속에 잦아든다. 그이를 모신 승용차가 선교네거리에서 방직공장쪽으로 굽어들었을 때였다.

《잠간 차를 세우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을 유심히 내다보시였다. 《저기 정류소 아래쪽 가로등주밑에서 비를 맞고있는것이 어린애들이 아닙니까?》

희미한 가로등불빛아래 꽃양산 하나가 금방 바람에 날아날것처럼 하들하들 떨고있는데 우산밑에는 예닐곱살 돼보이는 어린애들이 애처롭게 서있었다.

《어린애들입니다.》

《밤이 깊었는데 무슨 애들이 비맞으며 나와있는지 좀 가보시오. 뻐스를 타자고 나온 아이들같지도 않은데.》

운전수가 얼른 우산을 받쳐들고 급히 달려갔다가 잠시후 되돌아왔다.

《직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찾아나온 애들입니다. 하나는 일곱살짜리 처녀애이고 하나는 다섯살짜리 사내애입니다.》

《어머니 직장이 어디게?》

《방직공장이라고 합니다.》

《여기로 데려오시오. 저러다간 바람에 날아나거나 물에 빠질수 있습니다.》

뒤차를 타고 바싹 붙어오던 고윤학이와 안창후가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이들이 직장에 나간 어머니를 찾아나왔다는데 저기서 비를 맞고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집에 데려다주겠습니다.》

《어머니가 방직공장에 다닌다는데 그리로 가는 길에 우리가 데려다줍시다. 아마 집에 다른 어른들이 없어서 어린애들끼리 있기가 싫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운전수는 비옷에다 두 아이를 한꺼번에 싸안고 돌아왔다. 그이께서는 차문을 열고 손수 한아이씩 받아 안아들이시였다.

《이런, 온통 물자루가 됐구나. 안되겠소. 빨리 열풍을 돌리시오. 애들이 와들와들 떨고있소.》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애들의 머리와 가슴을 훔쳐주면서 물으신다.

《너 이름이 뭐지?》

들창코에 얼굴이 둥글넙적한 사내애가 새파랗게 언 입술을 벌려 벌씬 웃는다. 그의 손에 어머니에게 가져간다는 접이식꽃우산이 하나 들려있었다.

《양경남입니다. 유치원 낮은반에 다닙니다.》

《양경남이, 참 똑똑하구나. 누나 이름은 뭐지?》

그이께서는 처녀애의 젖은 머리를 쓸어주며 오목오목하게 생긴 얼굴을 익혀보시였다.

《양경숙입니다.》

《양경숙이, 몇학년이냐?》

《인민학교 1학년입니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여 아버지는 적십자병원 의사인데 병원에서 못들어오신다고 저녁때 알려왔고 어머니는 방직공장에 다니는데 비가 많이 오니 우산이 없어 못오는가 하여 이렇게 오누이가 떠났다는것이였다. 기특한 애들이였다.

차는 방직공장의 정문앞에 멈춰섰다.

차안에 불이 켜졌다. 그제야 우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차비를 하던 경숙이는 깜짝 놀랐다. 아까는 미처 알아뵙지 못했던 친절하신 그분이 다름아닌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이시라는것을 불이 켜진 다음에야 비로소 알아본것이다. 눈이 휘둥그래서 그이를 보고 또 보고있던 경숙은 어쩐지 꿈만 같아 무랍없이 그이께 물었다.

《지도자선생님 옳으시지요?!》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며 경숙이의 두볼을 싸쥐고 애무해주시였다.

《경숙인 눈도 밝구나. 이젠 언볼도 따스해졌으니 됐다.》

눈이 올롱해서 곁에서 지켜보고있던 경남이가 불쑥 《응, 나두알아. 우리 지도자선생님이야.》 하고 그이의 목을 덥석 그러안았다.

《허허, 이녀석! 팔뚝심이 괜찮군.》

그이께서는 경남이를 안으신채 차에서 내리시였다.

《자, 이제는 운전수아저씨하구 같이 엄마한테로 가봐라.》

운전수의 손에 잡힌 어린 경숙이 오누이가 자꾸만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며 구내길 저쪽으로 멀어져간 다음 지배인과 당비서가 드바삐 달려나왔다.

그들은 각각 자기 소개를 하고나서 사무실로 안내하려고 하였다.

《사무실에는 가서 뭘하겠습니까. 곧장 직포직장으로 갑시다. 동무네도 남조선에 보낼 천을 짜고있다는데 수고하는 로동자동무들이나 잠간 만나보고 가겠습니다.》

직포직장은 얼마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무연하게 펼쳐진 직장안에는 직포기가 꽉 들어차있었다.

맨먼저 만난것이 매미날개같은 머리수건을 쓰고 사뿐사뿐 기대앞을 걸어오고있는 처녀였다. 어깨만 겨우 가리워놓은 흰 앞치마는 포동포동한 그 팔과 홍감처럼 익은 동그란 얼굴륜곽을 잘 드러내놓았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돋았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순간 처녀는 너무나 놀라와 눈을 크게 뜨면서 두손을 가슴으로 가져간다. 몇초후에야 처녀는 몇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수고들 합니다. 일이 잘됩니까?》

처녀는 고개를 숙인채 다시한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지배인동무!》

그이께서는 땀이 한벌 내밴 처녀의 귀밑머리를 여겨보며 물으시였다.

《실내 온도가 지내 높지 않습니까. 몇도입니까?》

《이만하면 높은 축이 아닙니다. 섭씨 20도에 습도가 60정도 됩니다. 이 동무가 기대를 더 보느라고 바삐 뛰는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남조선에 보낼 구호물자를 언제까지 다 짤수 있습니까?》

《방금전에 지시를 받았습니다. 기일을 절반이상 단축해서 25일전으로 끝내도록 짜보라고 합니다.》

《사정에 의해서 좀 다그치는것 같은데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로력조직만 잘해주면 문제없습니다.

지금 로동자들의 열의는 대단합니다. 남조선형제들이 재난을 입고있는데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는가고 하면서 교대작업에 관계없이 모두 작업장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내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이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짓고 고윤학을 돌아보시였다.

《현실은 바로 이렇습니다. 정미공장도 그렇고 여기도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디에 가보나 우리 인민은 한마음입니다. 아마 세멘트공장에 가봐도 이 공장사람들과 같은 심정으로 일손들을 다그치고있을것입니다. 품질검사를 어데서 하는지 거기 가봅시다.》

지배인은 복도 하나 건너에 있는 천정이 아득히 들린 광실로 안내하였다. 그곳은 조용하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천퉁구리들사이에 두간두간 검사원들이 앉아서 콘베아에 실려 물결처럼 흘러나가는 천필을 검사하고있었다. 직포공들보다 좀 더 나이든 녀성들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검사원녀성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시였다. 키가 자그마하고 몸이 뚱뚱한 녀인이 묻지 않은 말을 하였다.

《우리는 지금 남조선형제들에게 보낼 옷감, 이불감에 티 하나 흠집 하나 없이 하려고 두번세번 검사하고있습니다.》

녀인은 이렇게 말해놓고 제딴에 좀 어색했던지 저절로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였다.

그 녀인의 말대로 아닌게 아니라 이미 포장되였던것을 다시 헤쳐서 재차 검사를 하고 그것을 옮겨서 지함포장을 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러가지 천들을 일일이 빛갈이며 문양을 세심히 살펴보기도 하시고 또 그 용도와 길이 같은것을 가늠해보기도 하시였다. 그러시다가 노란색 바탕에 큼직큼직한 푸른 잎사귀와 흰 목란꽃송이들이 찍힌 날염직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 천도 남조선에 보낼 구호물자로 생산한것입니까?》

그이의 손끝에서는 생화같이 싱싱하고 선명해보이는 호함진 목란꽃송이가 춤을 추고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문양이 아주 좋습니다. 조선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목란꽃문양을 잘 찍었습니다. 이런 날염직으로는 새각시 이불감을 해도 좋고 벽장보나 간막이 가림보로 써도 좋겠습니다. 이 공장 동무들이 잘 생각했습니다. 리재민구호물자라고 해서 아무 천이나 살을 가릴 정도의것이면 되겠거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동포형제자매들에게 보내는것인만큼 좋은것으로 마련해보내줘야 합니다. 수해를 당한 리재민들가운데는 당장 시집장가가야 할 처녀총각도 있을거고 결혼하자바람으로 재난당한 신혼부부도 있을거란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천을 받게 되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녀성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그렇다고 수긍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실수없이 검사를 잘하여 흠할데 없는 천들을 구호물자로 보내도록 하라는 재삼되는 당부와 함께 인사말씀을 남기고 옆칸으로 향하시였다. 거기는 기본작업장이 아니여서 조용하였다. 몇몇 녀성들이 검사를 마친 천퉁구리들을 한창 옮겨쌓고있었다.

어느결에 그이께서 그 칸으로 들어오시는것을 봤던지 경숙이와 경남이가

《지도자선생님!》

《지도자선생님!》

하고 저마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마주 달려왔다.

《오, 너희들이 여기 와있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무턱대고 한다리씩 와서 붙잡는 두 어린것한테 사로잡혀 걸음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래 엄마를 만났느냐?》

《네, 만났어요. 우리 엄마 저기 있어요.》

연회색바탕에 진달래꽃모양의 수수한 달린옷을 입은 30대중년기의 젊고 건강해보이는 녀성이 류달리 영채도는 당황한 눈길로 이쪽을 보고있다가 깊숙이 머리숙여 인사를 보내왔다.

살짝 군턱이 질만큼 살이 오르고 수더분한 인상을 주는 녀인이였다.

어느새 엄마앞으로 뽀르르 달려간 경남이가 제어미 옷자락을 잡아쥐고 흔들어대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다.

《엄마, 맞았지? 지도자선생님이 우릴 실어다준게 맞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경숙이의 고사리같은 손을 잡고 그들 모자에게로 다가가시였다.

녀인은 가까이 오신 그이앞에 다시금 다소곳이 머리숙여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죄하듯 조용히 말씀드렸다.

《철없는 어린것들때문에 페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철없다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집 아이들이 참 똑똑하고 기특합니다. 일곱살, 다섯살짜리 애들인데 엄마가 늦도록 비때문에 못오는가 해서 우산을 가지고 마중하러 나오다니 저 철부지들 나이에 어디 흔히 보는 일입니까. 애들을 참 잘 두었습니다.》

그이의 우선우선한 치하의 말씀에 녀인은 황송스러움과 치솟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한채 눈굽이 척척히 젖어들었다.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구호물자를 마련하는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집에 어린 아이들을 두고있는 가정부인들은 공장일군들이 잘 설복해서 무조건 제시간에 퇴근시켜보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본인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공장당비서가 올리는 말씀이였다.

《물론 그럴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에 빠진 남조선수재민들을 돌보는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꽃봉오리이며 우리의 미래인 어린것들을 돌보는것 역시 그만 못지 않게 대단히 중요하다는것을 일깨워주어 들여보내야 합니다. 모성들의 도움까지 안받아도 공장에서 맡은 일은 능히 해제낄수 있을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끝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경숙이와 경남이를 직장에서 내보내고서야 자리를 뜨시였다.

다음으로 가신데는 포장하는곳이였다. 거기에는 지함과 천퉁구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한쪽에서는 종이로 천을 싸고 그우에 또 비닐로 방수포장을 한 다음 함에 차곡차곡 넣고있었다.

《지함에 적십자표식은 어째서 했습니까?》

그이께서는 지배인에게 물으시였다.

《네! 그건···》

지함을 붙잡고있던 지배인은 약간 당황해나서 잠시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있다가 뒤를 이었다.

《적십자회중앙위원회에서 내놓은 견본대로 한것입니다.》

《적십자회에서?》

그이의 시선은 안창후에게 옮겨지시였다.

그러자 안창후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을 올리였다.

《적십자인도주의정신에서 보내는것인만큼 아무래도 보내는쪽도 받는쪽도 적십자단체라는것을 명백히 하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적십자표식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구태여 그렇게 밝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아무 표식도 없이 백판으로 보내는것보다는 미관상 얼마간 나을수 있을지 모르지만···》

《뜻을 알겠습니다.》

《내 생각에는 아무것도 없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선전으로 느껴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포애가 깃든 현품을 보내면 되는거지 그 어떤 선전적목적을 추구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깊은 생각을 못하였습니다. 다시 고쳐하겠습니다.》

《고려해보는게 좋겠습니다. 우리가 보내자는 구호물자는 적십자인도주의정신에 비길수 없이 강한 동포애로부터 출발한것이니 만일 그 무슨 표식을 한다면 동포애를 상징하는것을 붙여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표식이 없어도 남녘동포들은 우리의 마음을 알고도 남습니다. 말도 모르고 글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철부지 갓난애들도 사랑은 깨닫습니다. 사랑은 심장으로 깨닫는 법입니다.》

고윤학이도 안창후도 공장간부들도 포장공들도 모두가 심장으로 그 말씀보다 더 깊은 그이의 속마음을 감수하였다.

공장을 떠나실 때 정문앞에서 경숙이네를 만나시였다. 그들을 태워다가 선교네거리에 내려놓으시였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과 어머니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길가에 비켜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이께서는 창문을 내다보며 손을 들어 답례를 하시였다. 차가 저쯤 멀어지자 어머니의 손에 끌려 아이들이 골목길로 걸어들어갔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저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가고있다. 집에 가면 따뜻하고 안온한 잠자리가 있을것이다. 그런데 서울바닥에는 부모를 잃고 한지에 나앉은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은 갈데가 없어 어느 집 추녀밑에서 떨고있을것이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뻐근해오는것을 애써 누르고 전조등이 내쏘고있는 앞을 내다보시였다. 널다란 대통로우에 웃으며 손을 흔들던 아이들, 뒤이어 젖은 옷을 걸치고 떨고있을 아이들의 초라한 모습이 엇바뀌여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