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7

 

제 2 장

7

 

리병찬은 기분이 들떴다. 오늘은 전《대통령》이 한턱 내서 융숭할것이 예견되는 연회가 있다. 조용한데를 고르다보니 세종호텔뒤고방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는 자작 승용차를 몰고 일찌감치 사무실에서 떠났다. 잠시라도 시간이 생기면 곧 만나고싶은 인옥을 보고가기 위해서였다. 속도를 한껏 죽여서 란장판이 된 수해지구를 솔솔 빠져 인옥이네 집앞에 차를 세웠다. 인옥이는 앓는 아버지의 간호도 하고 겸해 집거두매도 하기 위해 벌써 1주일째나 호텔에 나가지 못하고있었다. 대강 기둥을 받치고 일궈세운 집은 아직 초벽이 마르지 않았다. 심술궂은 날씨는 사흘이 멀다하게 비를 뿌려서 수해복구에 큰 지장을 주고있다.

한때는 기세가 등등하던 박만호네 집이였다. 포목상을 전문한 박만호의 가게와 살림본채 그리고 창고까지 겸한 약 500평의 건물이였는데 그것이 며칠사이에 이렇게 왜소한 단칸살림으로 줄어들고말았다.

원래 그의 기세가 기울어들기는 약 3년전부터였다. 포목상이라고 하지만 박만호는 전통적인 면직이나 견직을 위주로 했지 시체의 화학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소비자들은 류행이라는 바람을 타고 《대용직물》에 쏠리였지만 박만호는 완강하게 자기 립장을 지키였다. 류행이란 사랑과 같은것이여서 인차 싫증을 느끼고 다시 면과 견으로 돌아올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물이란 괴물은 모든것을 부정하며 쭉 밀어버렸다. 물이 밀려들자 박만호는 초인간적힘을 발휘하였다. 매장에 벌려놨던것은 어쩔수 없었으나 창고의것은 요행 구해낼수 있었다. 박만호는 조카벌되는 박천종에게 창고를 지키게 하고는 그만 페염이 와서 덜컥 병석에 눕게 되였다.

리병찬은 자기 직책으로 보거나 박만호의 가산으로 봐서는 인옥이를 마땅한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인옥이의 뛰여난 미모를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물로 여겼다. 재산은 앞으로 불굴수 있지만 인옥이는 지금 놓치면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그럴만치 인옥이는 아름답고 매력있는 녀자였다.

《어머!》

등뒤에서 인옥이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여기 왜 이러고 서있어요?》

고개를 돌리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옥이가 반겨 웃고있었다. 날씬한 허리와 불룩한 젖가슴 그리고 하체의 곡선미를 잘 살려주는 최신류행의 달린옷은 목이 상큼하게 드러나도록 추어올린 머리치장과 잘 어울리였다. 흰 팔목, 포동포동한 턱, 그중에서도 시선을 끄는것은 물기가 도는 도드라진 입술과 약간 부석부석한것 같으면서도 기다란 살눈섭을 가지고있는 눈이였다. 그 눈은 지금처럼 놀라는 기색을 보일 때면 한층 더 매력을 가지는것이다.

《그저 지나가다가···》

리병찬은 걸탐스런 눈으로 처녀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아래도리를 쭉 훑어보았다. 인옥이는 손에 들었던 가방을 다른 손으로 옮겨잡더니 리병찬이 팔을 붙잡았다.

《어서 들어가요.》

《아니 그럴 시간이 없소.》

《어쩌문.》

앵두알같은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왜 그러느냐고 눈으로 묻고있다.

《급히 가던길에 아버님 병이 어떤가 해서 들렸소.》

《그래두.》

처녀는 어린애들처럼 몸을 흔들며 조르고있다.

《항생제를 계속 놓는가?》

《벌써 열흘이 넘었는데 그냥 그 모양이죠뭐.》

《실망할건 없소. 이제 낫겠지. 년세가 있으니 약효가 굼뚤거란말이요.》

《진단은 페염이라지만 단순히 그런것 같지만도 않어요. 밤이나 낮이나 해주이야기니까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여요.》

《왜 안그렇겠소. 나서자란 고향인데. 혹시 인옥이가 할망구가 되면 그보다 더할지도 모를거야.》

할 소리를 다하고나서 리병찬은 새침해지는 인옥이의 코등을 튕겨주며 웃었다.

《자! 그럼 안녕!》

인옥이는 가슴을 붙잡고 발을 구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옥이의 홍시같은 얼굴과 끝없이 선량한 그 눈에서는 순결한 빛이 반짝이였다.

그때였다. 방문이 드르르 열리더니 박만호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자네 왔는가? 그런데 왜 안들어오나?》

한마디 간신히 내뱉고는 잇대서 온 내장을 흔들어놓을만 한 기침을 하였다. 리병찬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딱한 낯을 짓고있는데 박만호는 마루로 기여나오며 손짓을 한다.

《이보게, 아이 숨차. 자네는 딱실한걸 알겠구만. 그래 이제 〈북한〉의 쌀이 넘어온다는것이 사실인가? 북에서는 주겠대, 남에서는 받겠대, 그러니 올데갈데없을거란말야.》

박만호는 어깨에 걸쳤던 뜨개덧옷을 여미면서 사위감을 측은하게 바라보고있다.

《아버님! 그런 걱정까지 안해도 됩니다. 아버님은 그저 몸조리나 잘하십시오. 주사를 맞는다니까 곧 나아지실겁니다.》

《걱정을 하자고 해서 하는가. 물란리에 숱한 사람들이 한지에 나앉았고 이 박만호도 쫄딱 망했는데 당국에서 대책이 없을건 뻔하구.》

《아버지!》 금시 불이 달린것 같이 메마른 인옥의 목소리가 부엌문앞에서 울리였다. 《구호미요 통일이요 그런 말 제발 하지 마시라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참.》

《왜 넌 역증이냐, 내 말이 반공법에라도 걸리느냐. 난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고 들은 소리밖에 안한다.》

《아유 참.》

인옥이는 손에 들었던 가방을 땅에 떨구며 얼굴을 싸쥔다.

《아버님! 북의 쌀은 바라지도 마십시오. 정작 우리가 받겠다니까 보내줄것이 없다나요.》

리병찬이 낯색을 달리하며 설명하였다.

《그럼 빈말이였단말인가?》

《선전이였지요.》

재빨리 인옥이가 끼여들었다.

《내가 반상회에 갔다와서 말씀드렸는데두.》

처녀는 너무 안타까와 머리를 흔들기까지 한다. 애인이 못견디게 그립지만 아버지가 끼우면 이런 비극이 자주 연출되기때문에 겁을 먹는 인옥이였다.

리병찬은 전형적인 《한국》의 현대형 관리였다. 그는 당국의 시책을 무조건 옹호하는데 습관되여있었고 그 점에서 철저하기때문에 출세전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있으며 본인 또한 자신을 그렇게 믿고있었다. 언젠가는 리병찬이 《인옥씨, 아버지의 세뇌에 관심을 가져야겠소.》 하고 조용히, 그러나 아프게 꼬집었던적이 있다. 그때부터 인옥이는 기회가 생길적마다 아버지에게 통일이요 고향 해주요 하는 말을 삼가하라고 했었다. 더구나 요즘 사처에서 번지고있는 《북한》의 구호물자에 대해서는 제발 일언반구하지 말고 함구무언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인옥이다. 북과 관련되는 그런말들이 《반공법》에 저촉되는것은 두말할것 없고 자기와 리병찬과의 관계에까지 큰 영향이 미칠수 있다고 거듭거듭 일깨워줬는데도 아버지는 병찬씨를 보자마자 하지 말라던 소리를 하고말았다. 로망이라면 차라리 집안에서 변을 보는쪽이 낫지 이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더 지체할수 없어 리병찬은 차에 올랐다. 문을 닫는 순간 인옥이의 울음소리가 날아왔다. 하지만 리병찬은 급히 차를 몰았다.

세종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올 사람은 다 오고 주탁에 앉을 리병찬의 최고상급인 부장 송일선과 적십자사대표로 나갔던 리영덕 등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연회장에는 한 50명이나 되는 출판보도계인사들이 모여있었다. 리병찬은 자연스럽게 한영국의 옆에 끼워섰다.

《한선생! 이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미소를 짓고 하는 리병찬의 말에 한영국은 안경을 밀어올리며 《웬걸, 나야 뭘 한일이 있나.》 하고 가볍게 사양을 한다. 이전에도 보면 이런 외교적투가 재미없었다. 진정과 성의로 대할 때는 반말투였지만 이렇게 존대를 쓸 때에는 언제나 갑속에 깊숙이 몸을 사리고 촉수만 내둘렀던것이다.

《겸손하십니다. 이번은 전적으로 〈동아〉의 이니샤티브에 의해 우리가 의도한대로 된걸요. 〈동아〉라고 하는것은 곧 한선생의 대명사지요.》

《옹색하게 만들지 마시오.》

그때 복도로 통하는 나들문이 열리더니 배가 한아름이나 되는 송일선과 안경쟁이 리영덕이 들어오고 뒤이어 네댓명이 따라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주탁앞에 이르자 리영덕은 안경을 번뜩이며 손을 들어 연회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속하였다.

《격식을 차릴것 없습니다. 한잔씩 듭시다. 이 좌석은 전두환〈대통령〉이 이번에 수고가 많았다고 해서 차린것이니 그리 알고 들면 되겠습니다.》

음악이 울리였다. 전속악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문내지 않기 위해 록음테프를 돌리였다. 옛날 민요도 있었고 현대음악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전에 불길이 번져나가듯이 《남한》을 휩쓸었던 《노란샤쯔 입은 사나이》가 나왔을 때 모두 어깨와 궁둥이를 휘두르며 춤을 추었다. 취기가 한창 피여오를 때 록음을 잠간 끄게 하더니 송일선이 앉은 자리에서 말을 떼였다.

《내 사담을 한마디 할테니 들어보시오.》

몸집이 굵은데 비해서는 너무나 가느다란 음성이여서 녀성중음쯤으로 오해될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잔을 들었다놓았다 하는 군손질을 섞여가며 말을 계속하였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공화제정치체제에서는 3권분립을 가장 리상적으로 본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립법, 행정, 사법에다가 〈여론〉이라는것을 하나 더 첨부해서 4권을 적용하고있습니다. 때문에 출판보도계에 복무하는 제씨들의 활동을 우리가 얼마나 중시하고있는가를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가 합니다. 그것은 또한 말로 하기보다 이번 북측과 대결한 적십자사의 활동을 놓고 제씨들이 붓을 달린 흔적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잇댄 그는 한쪽옆에 놓았던 소다수를 마시고 계속하였다.

《북에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성명하였을 때 우리의 일부 보도계에서 립장이 명백치 못했습니다. 대체로 객관적사실을 전한데 불과했던것입니다. 고작해야 〈문화방송〉이나 〈경향〉에서 한것처럼, 〈정치선전이 개입되지 않기를〉하는 정도였던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중앙일보〉는 〈기꺼이 받아들이되 선심속의 흉계 조심〉이나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뭉쳐 이를 경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적십자사접촉에서 우리는 피동에서 주동으로 완전히 넘어서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정치선전〉이기때문에 안받겠다고 했다면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우리는 국민의 고통도, 동포애도, 적십자정신도 모르는 옹졸하고 무지막지한 정치깡패라는 내외여론의 규탄을 면치 못할것입니다. 우리는 주패장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전과 달리 적들의 가짜 호의를 받아들이겠다고 아량을 보이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는 오묘한 전술을 적용했습니다. 〈받겠다, 그러되 9월중으로 일괄인도하라. 인천 한곳으로〉 이거야말로 〈당기면서 밀치는〉 묘수가 아닐수 없습니다. 사실상 그 막대한 량을 단시일내에 단꺼번에 북에서 남으로 그것도 인천 한곳으로 옮겨온다는것은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지요. 우리의 콤퓨터는 〈불가능〉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되여 역경이 순경으로 뒤집혔던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말해야 할것은 북측에서 먼저 퇴장한것으로 만든 〈연극〉도 좋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기만책이다, 이렇게 비난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성은 국민학교 학생에게나 맞춤한것이지 성인들에게는 거치장스러운 짐으로 된다는것을 구태여 구구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다싶이 무릇 기만이란 현대생활의 기본생존수단이며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견지에서 나는 이번에 우리의 공동위업에 적잖은 기여를 해주신 〈동아일보〉사의 한영국씨에게 특별히 경의를 표하고싶습니다. 한영국씨는 로련한 기자의 수완을 이번에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제씨들이 지면에서 보았겠지만 북측퇴장장면의 사진과 보도기사는 만점짜리입니다.》

이때 리병찬이 한영국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나 한영국은 목석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날조였다. 사실대로 써낸 보도기사를 편집국장이 제 마음대로 가필해서 냈던것이다.

한영국은 온몸에 불이 달린것 같아 그자리에 서있을수 없었다.

《다음으로 또 하나 언급하고싶은것은 〈중앙일보〉에서 까밝힌 수자에 대한 기지있는 분석입니다. 〈주겠다는 쌀 5만석, 세멘트 10만t은 보잘것없는것〉, 자! 어떻습니까? 장황한 설명없이 간명하게, 멋들어지게 둘러메치지 않았습니까?

보도진에서는 모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4권중의 하나인 여론은 바로 이렇게 복무해야 합니다. 자, 그런 의미로 한잔씩 듭시다. 이제는 북에서 주겠다는것이 거짓이였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집중포화를 쏩시다. 자, 다시한번 명중을 위해서 듭시다.》

송일선은 비대한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더니 오른쪽에서부터 차례로 잔을 찧었다.

리병찬은 방금전까지 보았던 한영국의 그림자가 자기곁에서 사라진것을 좀 뒤늦게 알아채고 저으기 당황해졌다. 연회장을 구석구석 다 둘러보았지만 온데간데 없다. 그러고보면 생각되는바가 있었다. 좀전에 송일선의 발언이 있자 그는 기분이 나빠서 《악당한테 따귀를 맞는것보다 바보한테 칭찬을 받는것이 더 기분나쁘다는 말이 옳아.》 라고 했던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리병찬은 한영국을 추격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차를 광화문쪽으로 몰았다.

《두고보자. 이자식, 틀림없이 이놈의 뒤는 구리단말이야. 신분을 속이고있는 붉은 너구리일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