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제 2 장

4

 

한영국은 승용차등받이에 머리를 제끼고 눈을 감았다. 좀 낡기는 했지만 속력이 좋은 구식《도요다》는 잘 달려주었다. 어느새 서울거리를 벗어나 판문점에 잇닿은 탄탄한 도로를 살같이 달리였다. 혼자 자작운전을 해가면 편리할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위풍을 보이자면 견습기자쯤 하나 달고다니는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기분이 썩 좋은것은 아니였다. 별치 않은것으로 스치였던 편집국장과의 방금전의 대화가 계속 여운을 끌며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취재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막 나서려는데 바짝 여위여 신경질형으로 보이는 편집국장이 마주오다 말고 손을 들어 그를 잠간 제지시켰다.

《취재가오?》

《예. 어제 말한 일산고아원에···》

한영국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데 저쪽에서는 약간 긴장을 띠고 다가왔다.

《일산에 가는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각엔 대기하고있는게 어떨가 해서···》

《대기라뇨? 그건 갑자기 무슨 일로?》

감각이 대단히 예민한 한영국이지만 좀 얼떨떨해진다. 그는 담배곽을 꺼내 상대방에게 권하고나서 라이타를 켰다.

《일산 인도주의도 좋지만 그보다 더 큰 인도주의가 나타났거든.》

《더 큰 인도주의?》

《그렇소. 우리가 수재가 나고 리재민이 생겼다니 미국과 일본에서 구제금을 보내준다누만. 당국에서는 이걸 가지고 한바탕 떠들라는거요. 두나라 관계의 친선과 협조정신의 훌륭한 발현이라고 말이요.》

《아니, 구제금이 도대체 얼마나 되게 그러는가요?》

그 물음에는 어쩐지 대답하기 거북한듯 편집국장도 열적게 웃는다. 일본에서 의연금으로 10만딸라, 미국에서 2만 5천딸라라고 한다.

한영국은 픽 웃었다.

《생색을 내는군요. 이른바 〈경제대국〉이라는 나라들에서 그까짓 부스럭돈이나 던져주는걸 그렇게 떠들어야 하는가요?》

《아, 적십자구제금이라는게 워낙 그런거지. 문제는 그 돈의 크기나 물자의 량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져있는 〈친선〉과 〈협조〉의 상징이 중요한거지. 당국에서 노리는건 바로 그거란말이요.》

《알만합니다. 그까짓거나 몇페지 쓰는건 내 일산에 갔다와서도 넉넉하니 념려마십시오.》

《그럴가?》

《글쎄 국장님이 요구하신다면 언제든지 써드릴테니 념려마십시오.》

이러고는 훌쩍 떠나왔는데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가로수며 강냉이밭, 콩밭들에 턱이 뾰족한 편집국장의 얼굴이 떠올라 어른거리였다.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어 환각을 쫓아버리였다. 그러나 왜그런지 기분이 좋지 않고 머리가 핑 도는것 같았다.

한영국은 염낭을 들추어 담배를 붙여물고 차를 몰기에 여념이 없는 신임기자 윤상만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봐, 윤군!》 윤상만이 고개를 픽 돌려 응대를 하자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문필가라는건 말이지, 언제나 두가지 재능을 놓고 시험을 치는 수험자와 같다고 생각해두어야 돼. 하나는 문제를 포착하는 재능이고 다른 하나는 붙잡은걸 원고지에 옮겨놓는 재능이 있어야 한단말이네. 이렇게 놓고볼 때 윤군! 생각되는바가 없나? 내 왜 요즈음 제일 관심거리인 서울시 리재민문제를 외면하고 파주로 가고있는지.》

맞은쪽에서 대형화물자동차 한대가 나타나 길을 비키노라고 인차 대답을 못하고있던 윤상만이 빙긋이 웃으며 후사경을 보고있었다.

《성동격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것이 적중하지 않다면 끓어오르는 거품을 쥐여짜보면 아무것도 남는것이 없다는 말은 어떻겠습니까?》

후사경에 비친 윤상만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나이로 보나 권위로 보나 아득하게 쳐다보이는 한영국이와 동격이 되여보는것이 그렇게도 좋은 모양이다. 제딴으로도 기지가 있고 고급한 지성인들간에 오가는 언어들에 잘 어울린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윤군의 말이 옳아. 하지만 선배앞에서 그런 투로 표현하는건 좋지 않거든. 순박성이란 미덕의 하나인데 진작부터 내던지면 안돼. 알겠나. 그건 그렇구. 명심해 들으라구. 우리가 축구경기장에 가앉았다고 생각해보세. 자꾸 꼴을 먹는쪽에 대고 아무리 응원을 해봤대야 소용없단말이네. 응원의 힘으로 패자를 승자로 만들기란 불가능하거든. 알겠나. 무슨 말인지. 이런 때는 특종기사감이 왈시왈비하는 그런 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례컨대 지금 우리가 가고있는 일산과 같은데 있다고 보아야 하네. 고아를 보육한다, 얼마나 인도적인가. 안그래?》

윤상만은 굽인돌이를 멋있게 미끄러져나가면서 연방 고개를 끄덕여보이였다.

《그런 시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아첨은 악덕의 일종이야.》

《그런것만도 아니지요. 로씨야의 문호 똘스또이는 아첨은 인간관계라는 축에 윤활유를 치는것과 같은것이라고 했습니다.》

승용차는 구파방리를 지나 고양방향으로 달리고있었다. 북으로 북으로 가고있는것이다. 한영국은 가슴이 공연히 설레였다. 판문점쪽으로 뻗은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언제나 가슴이 울렁거리군 한다. 북을 생각하면 인차 형의 생각이 떠오른다. 의용군에 나간 사람의 갈길은 두가닥외는 없다고 하였다. 하나는 저승, 하나는 북조선이라고 한다. 저승에 갔다고는 믿고싶지 않았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북에 갔다는것으로 된다. 그러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것인가? 벌써 50이 넘었을것이다.

명상은 구름처럼 피여오른다. 키가 껑충하고 목이 기름한 형이 웃고있다. 입귀에 덧이가 보이고 코는 들창코인데 이마가 넓고 머리숱이 성글다. 한영국의 주먹에는 땀이 질퍽하였다. 땀에 젖은 시계줄은 턱없이 매끄러워 줌안에서 왔다갔다 한다.

은시계줄, 이것은 전쟁이 터지기 반년전에 한영국이 국회의원네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얻어본것이다. 처음에는 무용지물이였는데 옆집에 사는 땜쟁이할아버지가 《이것은 은이다. 너희네 세식구가 석달은 살아갈수 있는 밑천이다.》 한 때로부터 귀물로 되였다. 그렇게 되자 형은 자기가 보관한다고 했던것인데 의용군으로 나가면서 한강다리목에서 넘겨준것이다.

《이걸 네가 간수해라. 꼭 온다는 약속이다.》

형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귀에서 울리는것 같다. 《으흠!》 하고 신음소리 비슷한것을 흘리면서 한영국은 고개를 돌리였다.

《한선생! 멀미가 나는거 아닙니까?》

《괜찮아.》

《겨우 80㎞정도 나가는데 길이 나빠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영국은 다시 눈을 감았다. 가슴이 찢기는것 같은 아픔을 불러오는 추억이고 명상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리운것이다.

윤상만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고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안기부에 리병찬이라는 사람 있잖습니까. 그 사람이 한선생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것 같습니다. 저번날 만났는데 자기에게는 한선생이 큰 은인이라나요.》

계속 뒤를 이어대건만 한영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자 윤상만은 맥이 빠지고말았다.

한영국은 우정 랭담해지려고 하였다. 리병찬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진절머리가 나는것이다.

안기부 요원인 리병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뒤를 밟고있다. 《한선생의 필력을 우리는 귀중히 여기는거지요.》라든가 《언론계에서 한선생을 누가 당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 한선생의 글은 우리가 내리는 〈보도지침〉만 못지 않은 효과가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추어올린다. 그런데 한영국을 못살게 괴롭히는것은 이따금씩 리병찬이 《부모형제가 전혀 없다거나 행처를 알수 없다면 그것도 하나의 고민거리겠습니다.》라고 하는것이다. 그자는 분명히 한영국을 의심하고있었다. 정체불명이라고 찍어놓고 야금야금 기여든다. 벌써 10여년전이지만 박정희때 전체 국민의 신원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면서 막대한 자금을 투하하고 숱한 사람을 채용해서 몇해동안 줄곧 족보를 캐고 신원을 들추었다. 그때는 그때대로 넘어갔었다. 한데 지금에 와서는 붉던 희던 명백치 않은것, 그자체가 문제시된다면서 기회가 있을적마다 속뽑이를 해오고있다.

《다 왔습니다.》 윤상만이 차를 세우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승용차는 한길가에 나앉은 유리창이 번들거리는 사무실마당에 멎었다.

한영국은 쓴입을 다시며 차창을 내다보는것이였다.

《윤군! 물어보게, 여기가 홀트고아원이 옳은가고.》

윤상만은 차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곧 되돌아나왔다. 그를 뒤따라 한 40살가량의 중년사나이가 비대한 몸을 뚱기적거리며 승용차에까지 다가오더니

《제가 여기 홀트고아원의 원장입니다. 여기는 사무실이고 아이들이 있는데는 잠간 더 가야 합니다. 〈동아일보〉라고 하셨지요. 부탁합니다. 저희들은 별로 한것이 없습니다만 그저 성의뿐이지요.》

이렇게 허두를 떼더니 원장은 능숙한 말솜씨로 설명을 사작하였다.

일행은 걸어서 고아들이 있는데로 가기로 하였다. 한영국은 윤상만에게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죄다 적으라고 하고 이른바 취재를 시작하였다.

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이 일산고아원은 순수 고아원이 아니라 미국의 모모한 인사들과 밀접한 련관이 있었다. 일산고아원의 창시자는 해리 홀트라는 미국인이다. 오리엔테주출신인 그는 부유한 목재상이며 농장주이다. 1955년에 남조선을 방문했던 홀트는 고아 8명을 데려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남조선에서 버림을 받는 고아를 구제해야 할 하느님의 계시에 접했다고 하면서 1961년에 여기다 땅을 사고 고아원을 꾸렸다고 한다.

일행은 민틋한 언덕을 끼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들어선데로 올라갔다. 와야- 하고 아이들이 쏟아져나왔다. 잠시동안에 몇십명의 아이들이 한영국이들을 에워싸고 떠들어대였다. 《아버지, 아버지!》 하기도 하고 또 《아저씨!》 라고도 하면서 아이들이 한영국의 허리에 달린 카메라를 만지거나 옷자락을 잡아당기였다. 때가 왔다는듯이 윤상만은 재빨리 카메라로 거리조절을 하고있었고 여기 원장은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한 서너살짜리 단발머리 계집애를 닁큼 들어 한영국에게 안겨주며 웃음을 지었다. 때마침 구름에 가리워졌던 저녁해가 얼굴을 내밀면서 쨋쨋한 빛을 뿌리는바람에 한영국의 무도수안경앞에서 강한 반사광을 내뿜었다. 순간 그는 안았던 아이를 떨어뜨릴번 하였다. 그는 아이를 안은것이 아니라 어떤 징그러운것을 안은것처럼 낯을 찡그리면서 몸을 떨었다. 자기의 품에는 눈동자가 노랗고 머리칼이 하얀것이 안겨있는데 시각에 미쳐오는것만으로는 그것이 아이인지 로파인지도 가려낼수 없는 흉물스러운것이였다.

《우리 여기는 태반이 이런 아이지요.》

예리한 감각을 가진 원장은 당황해난 한영국을 보자 약간 어색한 눈치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떳떳하게 말하는것이였다.

《어찌겠습니까. 자꾸 만들어지는걸. 참말 인간의 감정이란 별스러운가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입을 딱 벌릴 정도로 흉측스럽게 느껴졌지만 자꾸 보니 차츰 정이 듭니다. 개중에는 외탁을 해서 그런지 혼혈아라는것을 거의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구 어떤 박사선생님은 일대혼혈에서는 매우 우량한 잡종이 나온다고도 합니다.》

원장은 담배를 권하면서 될수록 《동아일보》의 환심을 사서 좋게 선전을 당하거나 그렇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그 어떤 말썽을 사고싶지는 않다는 눈치를 보이고있다.

《그건 그렇다치고. 기왕 생겨난것이니 할수 없지요. 난 내가 하는 이 일에 긍지를 가지고있습니다. 적십자정신이라고 할가, 이것은 인도주의에 의한것입니다. 네! 그렇지요. 그래서 어느 나라나 자선사업이 있는것이고 따라서 자선가나 자선단체도 생겨나지요. 우리 〈한국〉에서 혼혈종이 많이 나오는 지대는 여기처럼 군사분계선이 있는데하구 저 남해바다가랍니다.》

《리해할만합니다.》하고 한영국은 방금 안았다가 내려놓은 아이의 강냉이수염같은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미군부대에서 만들어지는 혼혈아를 그러모으기 쉬운곳이니까요. 여기 아이들이 총 몇명이나 됩니까?》

《현재는 600명정도입니다. 그중 혼혈아는 한 70%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72%입니다. 한창 많을 때는 한 천명정도 되였습니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두세명씩 받아올 때가 있었거던요.》

《그러니 굴뚝없는 산업이 불경기를 만난 셈인가요?》

《반면에 마산근방에는 부쩍 불었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러니 절대량에는 변동이 없는거루 되겠습니다?》

맨먼저 보게 된곳은 식당 주방이였다. 배추와 무우를 가려놓고 다듬고있었다. 다음은 식당칸이였는데 기다란 방에 식탁과 의자들을 놓았다. 원장은 될수록 아이들을 동방식이 아니라 미국식생활에 익숙되도록 만든다고 하였다.

《저분이 바로.》 원장은 손을 들어 정면벽에 걸린 초상화를 가리키면서 미소를 지었다.

《앞서 설명해드린 홀트선생입니다. 생김새부터가 매우 인자합니다. 저렇게 생긴 분들한테서는 큰 자비도 어렵잖게 나타나군 하지요. 홀트선생은 년로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유언대로··· 네 ! 저쪽으로 가십시다. 묘지가 있습니다.》

원장은 음영효과가 좋지 못해서 뿌옇게 보이는 텁석부리로인을 극구찬양하면서 묘지가 있다는데로 가고있었다.

마당 한켠 소나무밑에 묘비가 세워져있었다. 둘레에는 꽃밭을 만들었다. 피였다 스러진 백일홍가지가 몇대 꼿꼿이 서있고 그옆에는 코스모스가 무성하였다. 바람이 그닥 없는것 같은데도 가냘픈 꽃가지는 흔들리였다.

한영국은 사진을 한장 찍고 유희장을 돌아보았다. 마당에 그네와 미끄럼대가 있었는데 아이들의 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모자라 대개는 봉당에 앉아 흙장난을 하며 놀고들있었다. 3살짜리미만은 대체로 방안에 있었다. 방 하나에 한 30명씩 들어있었고 두칸에 보양원이 한명씩 차례진다고 하였다. 일단 소개가 끝나자 원장은 홀트선생의 묘앞에서 사진이나 한장씩 찍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원장은 자신의 카메라를 썼다.

《국수나 한그릇 같이 합시다. 여기 일산에서는 국수가 유명합니다.》 하고 원장은 한영국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말하였다. 《우리가 기자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싶은것은 미국에는 홀트선생과 같은 자선가가 있는가 하면 또 직접 고아들을 데려다 자기 자식처럼 기르는 사람도 있다는것입니다. 얼마전에는 오헤이어에 있는 마조리 크리버라는 35살난 처녀가, 그 녀성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합니다. 우리한테서 아이를 하나 데려가겠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마 이달안으로 올것 같습니다. 참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제낳은 자식도 귀찮은 세월인데 말이죠.》

가만두면 끝이 없을것 같아 한영국은 《그거 참 쉽지 않은 일인데요.》 하고 롱담비슷한조로 저편의 말을 중단시키였다.

《예수 크리스토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처녀군요.》

한영국은 원장과 헤여져 얼마간 거리를 빠져나가다가 갑자기 차를 세우게 하고 선술집에 들어가 술을 한병 마시고 나왔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이 고비를 넘겨낼수 없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미국놈들탓이다. 미국놈! 우리 어머니를 깔아죽인 악귀같은 놈들!

한영국은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앞을 내다보았다. 길가에는 인천가는 마포구등성이에서처럼 전주대가 서있었다. 그때 어린 한영국은 싸늘하게 식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울었었다. 시신이 되여 꽛꽛해진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마대에 올려놓고 줄줄 끌고오면서는 엄마를 부르지 않고 다르게 고함을 쳤다.《미국놈의 새끼들아, 너희들이 우리 엄마 깔아죽였지. 뒈져라, 썩어져라, 개같은놈들!》 별의별 욕을 다 퍼부었다.

이때부터 한영국은 미국놈을 보기만 해도 눈에서 불이 일었지만 울며겨자먹기로 겉으로는 점잖게 대해주며 때로는 본의아닌 롱담까지 내던지군 하였다.

한영국은 오던 때처럼 또 등받이에 머리를 제끼고 눈을 감았다. 온몸이 나른하고 머리가 뗑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혈색이 좋고 볼이 처진 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저 교질성성격의 소유자인 원장이 어느 음침한 날밤 아이들을 무더기로 팔아넘길수도 있다. 그리하여 미국의 어느 한 억만장자령감의 로쇠를 막기 위한 《보약》으로서 아이들의 생신한 혈액이 그쪽으로 옮겨갈수도 있을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어느 한 고명한 박사의 실험실에서 아이들의 육체가 심장, 페장, 신장 등으로 세밀히 분해되여 다른 인체에 이식되거나 같은 포유류와의 생리적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를 살펴보는 대상으로 되여 백쥐나 백토끼보다 원가가 낮은 헐값으로 흥정될수도 있을것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일산고아원이라는 하나의 생동한 현실에는 두개의 세계가 살아서 꿈틀거리고있다. 하나는 그곳 원장이 떳떳한 낯으로 공개적으로 선언하고있는 적십자정신이라고 표방하는 《아름답고》, 《선》하며 만민의 동정을 살수 있는 외피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한영국자신이 꿰뚫어보고있는 인간으로서 잔인하고 민족으로서 치욕스럽고 인류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썩고 또 썩은 내부세계이다.

이마가 넓고 기름한 한영국의 얼굴에는 고뇌의 빛이 력력하였다.

(어차피 이것은 조선사람이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하고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미국군대가 전패국에서나 할수 있는 만행, 아니 설혹 전패했다 하더라도 전범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비전투원녀성들을 유린하여 거기서 생겨난 혼혈아, 그 혼혈아의 무리, 이것을 어떻게 할것인가, 이것이 바로 오늘 이 땅의 현실이다. 집권자들이 말하고있는것처럼 70년대부터 시작해서 80년대에는 고도도약을 하고있다는 이 땅의 초상은 이런것이다. 고아원에는 5살미만의 아이들만 남아있다. 그 우의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것을 해명하는것이 수해로 인해 의식주의 수단을 잃은 리재민문제만 못하단말인가. 이 처절하고 비통한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신문은 민중의 여론에 호소해야 할것이다. 그러자면 《일산고아원》이라는 평범한 표제를 달고 《어린것이 깃들곳은 어디》라는 부제로 암시를 주며 기사본문에는 피부색과 눈동자, 머리카락을 묘사할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를 통과시켜낼수 있는가?)

그는 자신에게 반문하였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외피세계를 그려 그자체를 찬양한다면 무사할테지만 기사가운데서 단 한마디라도 미국이 이 땅에 주둔해있길래 그런것이 빚어지는 사회적비극··· 운운한다면 그것은 활자화되지 못한채 필자는 교도소밥을 먹게 될것이다.

한영국은 진절머리를 흔들고나서 담배를 붙이였다. 가슴이 답답해서 기껏 연기를 빨았다가 후유 내불었다. 연기는 창유리를 벗어나자마자 어데론가 자취없이 날아나버렸다. 그와 함께 여태껏 눈을 감은채 잔뜩 쌓아올리였던 환상의 무지가 홀연 사라져버리였다. 머리가 싸늘해진 그는 혼혈아, 그것도 무시해버릴것은 못되지만 그래도 한민족이 두동강으로 갈라진것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뚱이 하나가 두토막이 난것이다. 그렇게 된지 40여년, 누구때문에, 어째서··· 누구때문에, 어째서···

그러다가 그는 담배연기에 개켜서 기침을 터뜨렸다. 입을 싸쥐고 허리를 비트는데 얼굴은 순간에 피빛이 되였다.

《감기라도 온것이 아닙니까?》

민감한 윤상만이 후사경을 보면서 말하였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

한영국의 처량한 대답에 윤상만은 기지있게 받아넘기였다.

《아무리 시대를 따른다 어쩐다 하지만 우리 민족안에 백인이나 흑인이 생긴다는건 좀 받아들이기 힘든데요. 감정이말이죠.》

혼자소리처럼 대수간 흘리는것이였지만 정통을 짚는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안기부에 찔러넣게 될 낚시의 미끼인지 알수 없었다. 그래 한영국은 그러루해두자고, 본대로 인식하고 인식한대로 느끼고 사고하면 된다고 애매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길로 한영국은 본사로 돌아왔다. 본사에 들어서니 사람들속에서는 이상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처음은 무슨 영문인줄 모르고 일산고아원에 갔던 일을 보고하려고 편집국장실에 들어가니 그가 기다렸던듯 반갑게 맞아주며 밑도끝도 없이 이렇게 물었다.

《북의 보도를 들었소?》

《북의 보도라니요?》

《북의 적십자회에서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겠다고 성명했다는거요.》

《그래요!》

한영국은 별로 놀라운 기색도 없이 심드렁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는 약간 흥분한듯 한 편집국장의 갱핏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별로 새 소식은 아니군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년례행사처럼 벌어지는것이 아닙니까. 한쪽에선 주겠다, 한쪽에선 안받겠다. 그러니 결과는 뻔하거든요.》

《하긴 그렇긴 해. 그래도 어쨌든 신문에는 새소식이거든. 그리고 그 량이 전례없는 약차한것이요.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 미국이나 일본에서 주겠다는것과는 대비도 안돼!》

《그림에 떡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렁이였군요. 참 천진들하십니다. 자, 그럼.》

하고 그는 일산고아원에 갔던 일을 대충 이야기하고는 곧 자기방으로 돌아왔다.

한영국은 원고지를 당겨놓고 탁상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에 어둠을 밀어제끼고 책상두리가 환해졌다.

잠시후 원고지우에는 활달한 필체로 《자선의 손길이 뜨거운 일산고아원》이라고 씌여졌다.

11시가 넘어서 당번에게 원고를 넘긴 한영국은 몽롱해진 의식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책상우의 전화기에서 자지러진 종소리가 울리였다. 이 밤중에 웬 전화일가 하여 그는 약간 짜증난 얼굴로 전화기를 돌아보며 받을가 말가 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를 호기심과 끌림에 이끌려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는데 뜻밖에도 저쪽에서는 그 얄미운 리병찬의 꾸민듯한 싹싹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리였다.

한영국은 저도 몰래 이마살을 찌프렸다.

《아, 아직 일을 보셨군요. 난 혹시나 해서···》

《무슨 일이요?》

한영국은 그 간사한 겉치레의 인사보다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전화를 걸었는지 용무를 알고싶어 짧게 한마디 물었다.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닐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래일 저녁에 시간을 좀 낼수 없겠습니까?》

《이쪽의 의사를 물어볼게 있소? 당신네가 필요하다면 내는거지.》

《아, 고명한 선생님도 그런 롱담을 하시는가요. 그럼 3. 1빌딩에서 저녁 여덟시, 약속합니다.》

《그런데 용무는 뭐요?》

《뭐 별다른건 없습니다. 오시면 압니다. 안녕!》

리병찬은 깍듯이 인사까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영국은 어쩐지 가슴이 무죽해지는 깨름한 생각이 들면서 리병찬이 자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던, 아까 윤상만이 하던 말이 되살아올랐다. 그러나 심신이 지쳐버린 그는 오늘 저녁만은 모든것을 잊고 어서빨리 꿈속에 들고싶어 머리를 설레설레 휘젓고는 곧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