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2

 

제 2 장

2

 

장방형으로 된 집무탁 정면에 김정일동지께서 앉으시고 맞은켠에 허담비서와 고윤학부총리 그리고 적십자의 중앙위원회 안창후부위원장과 그밖에 몇명의 책임일군들이 나란히 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다 아는것처럼 이번에 남조선에서는 큰물피해를 받아 수많은 리재민이 생겨났습니다. 우리와 한피줄을 나눈 남녘의 겨레들이 당하고있는 재난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에서는 매우 시기적절한 동포애적이며 인도주의적인 발기를 하였습니다. 적십자회에서는 오늘 비상회의를 열고 남조선수재민들에게 쌀과 직물같이 긴요한 구호물자들을 보낼데 대한 협의를 하고 초보적인 안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훌륭한 발기가 제대로 실현되게 하려면 어떤 방조가 소용되겠는지 그걸 토론하자고 동무들을 좀 와달라고 했습니다. 먼저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비상회의에서 세운 안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을 끊으며 안창후에게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안창후는 먼저 이번 수해때문에 수십여만의 리재민이 나고 수만여채의 살림집이 파괴 류실되였으며 6만 4 370여정보의 농경지가 매몰됨으로써 무려 771억 2천 8백여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피해가 빚어진데 대하여 간단히 렬거하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미 당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크다는것도 문제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20만에 달하는 리재민들에 대하여 남조선당국자들이 아무러한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고있는것이 더 큰 문제로 되고있습니다.

전두환괴뢰도당은 재난을 당한 리재민들을 돌봐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일본을 방문할 차비만 서두르고있습니다. 초상나고 변고가 생긴 집을 돌볼 대신 남의 집에 가서 짝짜꿍을 하며 놀아댈 궁리만 하니 남조선인민들이 분노를 터뜨리고있습니다. 남조선수재민들은 누구도 돌봐줄 사람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가 구제해주지 않는다면 겨우 목숨을 건진 수십만의 리재민들이 살아나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적십자회 긴급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습니다. 우리가 보내주기로 내정한 구호물자는 쌀 1만석과 직물 1만m입니다. 만족스러운 량은 못돼도 적지 않는 수자입니다.

이에 대해서 한결같이 찬성하면서도 저희들이 우려하는것은 전례로 보아 우리 동포애적인 제기가 이번에는 실현될수 있겠는지 확신할수 없는것입니다.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남조선인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무려 28차에 걸쳐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해 결정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남조선당국자들의 방해를 받아 한번도 실현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긴장한 낯빛을 짓고있는 안창후를 자리에 앉히신 다음 좌중을 둘러보며 물으시였다.

《어떻습니까?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결심은 대체로 짐작이 가는데 토론들을 해봅시다. 중요하고 의의있는 발기가 첫걸음부터 암초에 걸린것 같습니다. 그 발기가 빛을 낼수 있도록 방도를 찾아봅시다. 허담동무부터 의견을 말해보시오.》

허담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인차 말이 나가지 않아 단정히 채워진 제낀옷단추를 만지면서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그는 나직이 말을 떼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저도 좀 생각해보았는데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가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받아가면 저들의 체제에 당장 어떤 영향이라도 미칠가봐 두려워하면서 계속 반대해나오는 조건에서 이번에 또 한번의 공회전을 거듭하지 않도록 되려면 종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대안이 세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부총리동무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윤학을 향해 물으시였다. 고윤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적십자회의 제기를 실현시킬수 있는 새로운 방책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 정무원에서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낼수 있는 통로만 열린다면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해서 해당한 물자를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윤학이 앉기바쁘게 옆자리에 있던 안창후가 다시 일어났다.

《제가 몇마디 좀더 보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석쉼하면서도 잰 말씨부터가 그의 성급한 기질을 잘 나타내고있었다.

《저 역시 허담비서동지가 제기한 의견에 동감입니다. 적십자사업을 10여년간 해오는동안 저는 이러한 문제가 어떻게 귀결점에 이르게 되겠는가를 잘 알게 되였습니다. 다 아는것이지만 8. 15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이 전기불을 보지 못하고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정을 고려하여 남조선에 우리의 전기를 보내주자고 친히 발기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측에서 남조선에 전기를 보내주겠다는 제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38선으로 갈라진 우리 조국에서 맨 첫번째로 제기한 우리의 동포애적조치였습니다. 남측은 우리의 전기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제2차로 황해남도에 있는 우리 저수지물을 38선이남으로 넘겨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조국강토는 갈라졌지만 그것때문에 남조선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불행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물도 남측에서는 농민들이 받지 못하게 가로 막아나섰습니다. 그후 1956년 7월과 1957년 8월에 련이어 일어난 큰물피해때, 특히 1959년 9월의 풍수해로 80여만의 리재민이 생겼을 때도 우리가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하였는데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1957년 5월 절량민들에게 10만석의 쌀을 무상으로 보낼데 대한 제의, 1958년 8월 남조선 실업자, 류랑고아들을 위해 쌀, 천, 수산물, 신발을 보낼데 대한 제의 그리고 1955년과 1956년 두차례에 걸쳐 남조선청년학생들을 우리가 받아 국가부담으로 교육할데 대한 제의, 이런 식으로 무려 28차에 걸친 제의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당하였습니다. 이 모든것이 매번 거절당했을뿐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걸고 악선전까지 했습니다. 〈정치선전〉이라느니 〈가짜인도주의〉라느니 하면서 우리를 악랄하게 헐뜯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러한 과거를 미루어 보아 이번에도 또 같은 결과가 빚어지게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은 특별한 방도가 없어 또 한차례 공회전할 셈치고라도 결정을 채택해보자고 하였습니다. 남조선의 력대집권자들인 리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은 판에 찍은것처럼 모두 인민이 당하고있는 고통과 불행을 안중에 전혀 두지 않는 반인민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비인도적인 가장 잔인한 통치배들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천천히 걸어서 창문쪽 가까이까지 가셨다가 다시 돌아서서 안창후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직이 물으시였다.

《그러니 부위원장동무는 스물아홉번째로 또 공회전을 하더라도 다시금 우리의 성의를 표해보자 그것입니까?》

《결국은 그렇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창밖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수삼나무밑에 나지막하게 세운 정원등에서는 형광불빛이 은은하게 비치였다. 저 멀리 거리 한끝에서는 용접광이 벙끗벙끗 하늘에 푸른 섬광을 날리고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캄캄한 어둠을 더 강조하고있을뿐이였다.

그이의 눈앞에는 언뜻 목이 기름하고 검은테안경을 낀 무산의 한기사가 나타났다. 30여년세월이 흘러 귀밑머리가 희여지도록 언제한번 몸에서 떼여놓은적 없다는 퇴색한 어머니의 사진··· 바른 가리마를 타서 매끈히 머리를 빗어넘긴 순박한 녀인의 모습.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짐을 지으신채 한동안이 지나도록 창밖에 시선을 보내신채 생각에 잠기시였다.

안창후는 숨을 죽이고 그이의 일거일동을 지키고있었다. 그이께서 무엇을 생각하고계시는지 전혀 예측할수 없었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가에서 돌아서시였다.

《스물아홉번째도 공회전하는셈치고 제기해본다는 식의 견해에 나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음성은 높지 않았으나 단호하고도 견결하신 어조였다.

일순간 집무실안에는 침묵이 서렸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종전보다 오히려 나직한 목소리로 뒤를 이으시였다.

《실현되면 좋고 실현되지 못하면 어쩔수 없다는 식의 견해에 동의할수 없는것은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의 구호물자가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가닿게 해야 하겠기때문입니다. 우리는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제기해서 안되는것이야 할수 없잖는가 하는 식의 무책임한 립장에서 출발해서도 안되며 미리부터 남조선당국자들에 의해서 역시 공회전을 거듭하게 될것이라고 우려부터 앞세우는 비관주의적립장에서 출발해서도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비관에서 얻어질것은 포기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안되겠는데 그만두자, 저것도 안되겠는데 그만두자 하는 식으로 한가지 두가지 버리기 시작하면 뭣이 남겠습니까? 동포에 대한 방조나 사랑도 포기하고 조국통일에 대한 희망이나 노력도 포기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빚어지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호물자를 보내는 사업은 단순히 남녘의 동포리재민들을 구제하는데 그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국과 우리 민족의 운명문제와 직결되는 지극히 중대한 사업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공회전이 수백차 거듭된다 해도 우리는 비관적으로 생각지 말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또 더 해야 합니다. 지성이면 돌에도 꽃을 피운다지 않습니까. 우리가 온갖 지성을 다해 지꿎게 짜고들어 노력하면 북과 남을 갈라놓고있는 장벽도 허물리는 때가 올것입니다.

동무들은 스물아홉번째의 우리의 동포애적제기를 실현시키자면 그 무슨 특별한 수를 착안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이면 다지 무슨 수가 필요된단말입니까? 진정에는 수라는것이 없는 법입니다. 사랑을 주고받는데도 그 무슨 술책이 필요된다는것을 나는 도무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오직 동포를 생각하는 우리의 진정한 마음, 같은 겨레를 도와주고싶은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그대로 다시한번 표해보자는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잇대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도 가슴속에서 사품치고있는 격정을 더 쏟지 못해서 그랬던지 때로는 허담을 향해서, 때로는 고윤학이와 안창후를 향해서 열렬하게 내심을 토로하시는것이였다.

《나는 조국이 분렬되였다는것을 생활로 느낄 때마다 몇가지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윤학이쪽에 불길이 이글거리는것 같은 시선을 보내시였다.

《60년대중엽까지 과학원 원장으로 일하다가 사망한 강영창동무가 있잖습니까.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가 그 유가족을 방문하던 때의 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때가 아마 한창 무더운 여름이였던것 같습니다. 함북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느라 평양을 떠나가계시던 수령님께서는 강영창동무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저녁식사도중에 들으시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수령님께서는 몇술 뜨지도 못한 저녁상을 물린후 그 이튿날까지 옹근 하루동안 식사도 못하시고 주무시지도 못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소나무숲속을 거닐으면서 그날밤을 꼬박 새우시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후 우리는 강영창동무네 가정을 방문하게 되였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고나서 우리는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강영창동무가 생전에 가장 좋아한것이 무엇이며 늘 잊지 않고 바란것이 무엇인가 말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부인은 오래 생각지도 않고 즉석에서 제일 좋아한것은 담배이고 늘 생각한것은 남에 두고온 큰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옷장문을 열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여기에 가득찬 옷감이 전부 우리 큰아들것입니다. 식구들이 옷을 해입을 때마다 애아버지는 큰아들것도 한감씩 끊어넣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때고 이 옷감을 펼쳐놓고 말하게 될 때가 꼭 올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이제는 농짝이 차고넘칩니다. 내가 작은아이를 업고 북으로 올 때 큰아이는 앓고있었습니다. 그래 후날 데려오자 하고 떠난것인데 이제는···〉 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고말았습니다. 이때 수령님께서는 수건으로 눈굽을 훔치시며 〈아! 그런데 영창동무는 그날을 못보고 갔구만···〉하고 고개를 돌리시였습니다. 조선사람치고 이런 사연이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안창후동무가 생명의 은인으로 섬기는 윤숙경녀사도 그렇고 고윤학동무가 잘 아는 무산광산의 한영도기사도 그렇고 다 그와 같은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있습니다.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싶은것이 우리 인민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강영창원장이 생전에 큰아들을 생각해서 마련해둔 옷감들을 그 아들에게 보내주는 심정으로, 윤숙경동무가 아들을 생각하고 한영도기사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심정으로 나는 좀 더 많은 구호물자를 보내주자는것을 제기하고싶습니다.

쌀과 직물을 적십자회에서 내안한것보다 다섯배나 열배쯤 더 보내줬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밖에 세멘트와 의약품도 보내줘야 한다고 봅니다. 동무들의 생각은 어떤지?》

더 큰 사랑을 키워내는 협의회는 계속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