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잠에서 깨여난 안창후는 탁상등의 불을 켰다. 4시 30분, 반시간이나 이르게 눈뜬 셈이다. 늦게 누우나 일찍 누우나 영낙없이 5시면 눈을 뜨게 되는것이 그의 습관이였다.

그는 모포를 밀어제끼고 훌쩍 일어나 팔을 쫙쫙 벌려 근육을 늘궈놓고 복도를 통해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신문통에는 역시 새날의 신문이 꽂혀있었다.

신문을 뽑아들고 서재로 들어간 안창후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나서 안락의자에 앉아 1면을 훑어보았다.

신문 웃머리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에서 하신 연설을 세계 여러 나라 신문, 통신, 방송이 널리 보도한 소식이 실려있고 그옆에는 편집상 의도가 알려지는 사설이 두드러진 글발로 나있었다. 사설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제6기 9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을 계속 힘있게 밀고나갈데 대하여 강조되고있었다. 그리고 1면 하단에는 전두환괴뢰역도의 일분방문을 반대하는 77명의 남조선 반《정부》인사들이 성명을 발표한 소식과 일부 인사들이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 소식, 서울시내 20개 대학교와 대학 학생들이 성명을 발표한 소식들이 대서특필로 편집되여있었다.

전두환괴뢰역도의 일본방문과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 9월 1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가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그것이 사대매국적인 행각으로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평화통일의 앞길에 보다 엄중한 난관을 조성하려는 용서 못할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범죄행위라고 신랄하게 규탄한바 있었다.

남조선에서도 지금 전두환괴뢰역도의 일본방문을 두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대학생들속에서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있는 모양이였다.

안창후가 2면, 3면의 순으로 시선을 날리며 제목을 훑는데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것이 남조선에서 일어난 수재상황에 대한 보도기사였다. 그는 담배를 붙여물고 긴 연기를 내불면서 기사본문을 더듬어내려갔다.

《남조선에서 무더기비에 의한 피해 막심》이란 표제하에 여러지역이 완전침수되고 7만 8천여명의 리재민들이 발생한 사실과 남조선전역에서 200여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는 사실, 4만 8천 490여정보의 농경지가 류실매몰되고 1만 2천여체의 건물이 파괴된 사실, 그리고 도처에서 산사태가 나서 참경을 빚어냈다는 사연들이 상세히 보도되였다.

안창후는 바위돌에 가슴을 꽈악 짓눌리운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는 탕수가 져서 밀리는 거리, 무너지는 벽체, 아우성치는 사람들··· 모든 감각기관을 일시에 마비시켜버릴만큼 자극강도가 센 끔찍스러운 광경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그는 숨이 가빠지면서 몹시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물병의 물을 고뿌에 기울여 한모금 넘겼다. 그리고나니 압박감도 좀 풀리고 어지럼증도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듯 했다. 몇순이 지나서 그가 또다시 쏘파에 몸을 잠그고앉아 신문장을 펼쳐들었을 때 전화종이 울렸다.

그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손을 뻗쳐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교환수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안녕하십니까? 적십자회중앙위원회 상임부위원장동지댁입니까?》

《그렇소. 나 안창후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부위원장동지를 찾으십니다.》

교환수처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학교아이들의 글읽기마냥 정확하고 다정하게 울려오자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성급히 옷걸개에서 옷을 벗기였다. 상의를 입고 단추를 채우는데 수화기에서는 약간 거쉰듯 하면서도 우렁우렁한 그이의 독특한 음성이 들리였다.

《부위원장동뭅니까?》

《그렇습니다. 안창후 전화받습니다.》

《새벽잠을 깨운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방금 일어나 신문을 보던중입니다.》

《신문을 보고있었습니까? 그러니 벌써 일과가 시작된 셈이구만. 다행입니다. 오늘 신문에서 남조선수해소식을 읽었습니까?》

《네! 방금···》

《그렇다면 알겠지만 지금 남조선에서는 큰물피해가 상당히 커지고있습니다. 서울 한강변의 저지대가 거의 다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적십자회에서 무슨 구호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남녘의 인민들이 당하는 재난때문에 간밤에도 또 이 새벽에도 안정하지 못하십니다.》

안창후는 저으기 죄송스러움을 느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저희들이 토론해보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맘놓으시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적십자회에서 잘 의논해서 대책안을 세워보시오. 동무도 아다싶이 적십자회는 만민의 사랑과 기대를 안고있는 인도주의단체입니다. 인간 그자체를 귀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리념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적십자회를 통해서 일본에 있던 동포들이 많이 돌아오도록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우리는 인도주의적사업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리산가족을 찾거나 고향방문을 하는것도 그 통로를 리용할수 있을것입니다. 우선 긴급한것은 남녘동포들을 도와주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그러고도 한참이나 남조선수해와 관련해서 말씀을 주시고는 전화를 끊으시였다.

안창후는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거룩한 사랑의 메아리가 가슴을 뭉클하게 차고넘친듯싶었다.

그는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급히 복도를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전화통을 당겼다. 고윤학부총리댁을 찾으니 부인의 말이 부총리가 간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무실에 걸었지만 거기도 없었다.

안창후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붙이였다. 담배끝에서 피여오르는 실날같은 푸른 연기가 뱅글뱅글 타래를 지어 탁상등이 놓인 문가로 흘러가고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보살핌속에서 그가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책에서 사업한지도 어언 13년이 되여온다. 그런데도 드물지 않게 지금과 같은 불의의 정황에 부닥치군 한다. 리재민과 같이 적십자인도상문제와 관련되는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안창후네쪽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먼저 관심하고 생각해야 할것이 아닌가? 소급해보면 이전에 도당에서 사업할 때나 그보다 앞서 군대내 정치일군으로 있었던 때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어째서 종종 이와 같은 피동적인 립장에 서게 되는가? 그이께서는 늘 사색하지 않는 일군이나 감각하지 않는 두뇌는 사실상 《죽은》일군, 《죽은》두뇌라고 하시였다.

손가락이 뜨거워 흠칫해보니 빨지 않은 담배 한가치가 거의다 타들어갔다.

창밖은 벌써 훤해져있었다.

피우지도 못한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던져놓고 자리를 일려는데 현관에서 초인종소리가 났다. 첫새벽에 찾아든것은 안창후가 즐겨 《누님》대접을 하는 환갑이 다 된 녀성사회활동가 윤숙경이였다.

《누님이 웬일로 새벽왕림을 다 하셨소?》

《난 뭐 새벽에 찾아들면 안될 집인가···》

그러며 윤숙경은 안창후가 스위치를 넣은 선풍기앞의 쏘파에 앉았다.

그는 60년대중엽까지 서울에 있다가 카나다를 거쳐 몇해전부터 평양에 와서 지내고있었다. 귀국후 한동안은 몸을 추세우기 위해 정양생활을 하다가 작년부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에서 일을 보고있었다.

숙경은 앉자바람으로 시체류행의 녀성용멜가방 쟈크를 끄르더니 가방안에서 접은 신문장을 꺼냈다. 안창후도 봤던 오늘호신문이다.

《남조선수재에 대한 오늘신문 보도기사를 봤나?》

《네, 봤습니다.》

《서울바닥이 온통 물천지라는데, 그가운데서도 마포구물란리가 제일 끔찍스럽다질 않겠나!··· 우리 그애가, 수길이가 무사할가?》

금테안경속의 숙경의 두눈이 불안에 떨었다.

《마포구일대의 수재가 제일 엄청난건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마포구일대 사람들이 다야 잘못됐겠습니까? 거기가 통채로 몽땅 떠내려간것도 아닐거구요.》

《거기에 제 살붙이를 두고있지 않는 사람이야 그렇게 배포유한 소리를 할수 있겠지. 우리의 아픈 맘을 얼마나 가늠해냈겠다구···》 안경테밑으로 볼을 타고 주르르 두개의 눈물방울이 굴러내렸다.

안창후는 일순 당황하여 숙경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량어깨를 잡았다.

《누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십시오. 원, 수길이가 지금껏 마포구에 살고있는지조차도 모르는데··· 그런 억측과 지나친 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히면 건강을 해칩니다.》

안창후는 은근히 걱정스러워 윤숙경을 달래였다.

《가만 있으라구.》

윤숙경은 가슴을 움켜잡은채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저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윤숙경은 차츰 안정이 되였다. 그를 불안스레 지켜보던 안창후는 안도의 숨을 후ㅡ 내쉬였다.

다소 흥분하게 되면 인차 심장발작을 일으켜 심상찮은 증세가 나타나군 하는 윤숙경이였다.

그의 심장질환은 때이른 젊은 시절에 당한 충격적인 사태에서부터 비롯된것이다.

윤숙경은 전라도 광주태생이였다. 광주읍거리에서 십리가량 떨어진 감나무골마을에서 살다가 열여섯살때 지주집에 진 빚값으로 경성방직공장에 직공으로 팔려갔다. 그해 겨울에 태평양전쟁이 터졌다. 전쟁통에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지만 그는 광주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그대로 서울에 눌러앉아 로동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과정에 마포국민학교 교원과 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다정다감하고 살틀하면서도 또한 의젓한 사람이였다. 비좁은 단칸방이고 마당에서 풍로로 밥을 지어야 하는 살림이였지만 젊은 부부는 깨가 쏟아지게 지냈다. 그런데 갑작스런 태풍이 불어닥치였다.

경찰들이 나타나 남편을 어데 숨겼는가 대라고 하였다. 놈들은 그를 땅바닥에 둘러메치고 목을 즈리밟았다. 후에 알고보니 남편은 룡산철도공장 로동자들속에서 로동조합을 조직하고 쟁의를 일으킬 준비를 하다가 발각되였던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남편은 지리산유격대에 들어갔다. 남편이 없는 사이에 윤숙경은 해산을 하였는데 그것이 지금 걱정하고있는 아들 수길이였다.

1949년 봄이였다. 하루는 키가 큰 사람이 나타나서 사진 한장을 내놓으며 알만한가고 물었다.

그가 서슴없이 자기 남편이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지리산에서 왔다면서 마음을 굳게 가지라고 하였다.

《우리 중대장동지는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되였습니다.》

적에게 체포된 남편은 밤나무밑에서 교수형을 당했다는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 윤숙경은 까무라치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심장에 이상이 생겨났다. 남편을 잃은 이듬해에 전쟁이 터졌다.

윤숙경은 어린 수길이를 등에 업고 인민군대를 도와나섰다. 녀성들을 휘동해서 주먹밥도 해주고 길가에 물동이를 들고나가서 땀흘리며 지나가는 용사들에게 물을 공급하기도 했다. 초가을에 접어들며 정세는 급변했다. 미군이 다시 서울에 들어왔다.

윤숙경은 할 일이 없게 되였다. 그는 아이를 업은채로 한강기슭을 오르내리면서 널판자나 양철을 주어다가 한강다리밑에 판자집을 만들고 배추시래기랑 주어다 끓이군 하였다.

어느날 이른새벽, 윤숙경은 물을 길으려고 동이를 들고나섰다가 이상한 신음소리를 들었다. 조심조심 다가가보니 젊은 청년이 쓰러져있었다. 허줄한 로동복차림인데 바지가랭이에는 피가 흠뻑 배여있고 옆에는 짝지팽이가 놓여있었다. 입에서는 간신히 《물, 물》 하는 소리가 새나왔다. 윤숙경은 무작정 그 청년을 들쳐업고 자기네 판자집으로 옮겨갔다. 우선 물을 먹인후 상처를 보기 위해 겉옷을 벗기다가 깜짝 놀랐다. 속에서 인민군대 군복이 나타난것이다.

그가 바로 오늘날의 안창후였다. 안창후는 넙적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는데 거기서는 피고름이 흘렀다. 윤숙경은 끓인 물에 소금을 타가지고 상처를 매일 몇차례씩 씻어내였다. 옷도 빨아말리였다. 갖은 정성스러운 간호끝에 안창후는 마침내 상처를 아물쿠게 되였다.

드디여 서로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을 때 안창후는 《누님!》 하고 녀인을 부둥켜안았다. 달빛이 은은한 쑥대밭에서 헤여졌다. 그때 비로소 안창후는 자기가 평남도 안주태생이라는것과 김일성종합대학 3학년에 다니다가 인민군대에 입대했다는것, 그리고 서울과 인천의 중간계선에서 싸우다 부상당했다는 사연들을 죄다 말했다. 그것은 실로 한남매간만 못지 않은 가까운 사람들간의 아쉽고도 눈물겨운 떨어짐이였다.

전쟁이 멎자 윤숙경은 다시 방직공장에 취직하였다. 숙경은 그전날 남편의 친구되는 사람의 방조로 《김일성저작독서회》에 참가하였다. 50년대를 넘기고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각처에 독서회가 나오게 되였다. 서울에만도 로동자들이 집중된 공장기업소에 10여개소 나오고 그것이 차츰 새끼를 쳐서 수원, 원주, 광주, 대구, 전주 등에도 뻗치였다. 여기서 윤숙경은 주로 서울지하에서 인쇄된 도서들을 지방의 독서회조직들에 날라가는 임무를 맡았다. 그것이 몇번 거듭되는 과정에 불미한 정황이 생기였다. 인천철제공장에서 독서회조직이 하나 드러났다. 뒤따라 원주에서도 또 탄로되였다. 밀정들은 그전날 지리산유격대 중대장의 안해인 윤숙경의 뒤를 밟게 되였다. 미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숙경은 자주 변장을 하였다. 로파로 가장하는것이 그중 안전하다고 생각한 그는 비상한 각오를 품고 생이발을 다 뽑아 호물때기로 변장하였다.

수길이와도 헤여지게 된것이 그무렵이였다. 아들애를 믿을만 한 이웃집에 맡기고 위험에 처한 조직성원들을 구원하기 위해 떠났던 그가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밀정놈들이 이미 그 이웃집과 함께 수길이를 어디론가 데려간 뒤였다.

그는 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수소문해보았으나 알길이 묘연하였다.

그러다가 몇달이 지나서야 그 《이웃집》을 우연히 만났다. 놈들에게서 당한 모진 악형때문에 거의 반주검이 된 그 《이웃집》주인은 눈물이 글썽해서 수길이는 놈들이 어디론가 끌어가고 자기들만 나왔노라고 말하였다. 수길이의 행처를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태후에 마포구 망원동어구에서 거지가 되여 사람들에게 동냥손을 내미는 수길이를 보았다는 소문이 숙경의 귀에 날아들었다. 숙경은 몇달동안이나 망원동을 비롯한 마포구일대를 매일처럼 헤바라다니며 수길이를 찾았으나 끝끝내 헛걸음을 치고말았다.

서울은 더이상 지내고싶은 고장이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수길이가 동냥하더라는 마포구 망원동어구를 돌아보고는 슬픔과 저주속에 영영 서울을 떠나 카나다로 건너갔다.

카나다에서 15년세월을 지내던 그는 1982년 봄에 그곳 교포들의 대표로 뽑히여 어버이수령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70돐에 즈음하여 정성품을 가지고 그리웠던 평양을 방문하게 되였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윤숙경은 안주태생에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인 안창후라는 사람을 찾아봐달라는 부탁을 하였는데 친절한 안내원은 그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다.

사흘후에 지방출장을 갔다 돌아온 안창후가 그앞에 나타났다.

32년만의 눈물겨운 기쁨의 만남이였다!

안창후는 타국에서 외로이 사는 《누님》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 훌륭한 사회주의 자기 조국을 둬두고 무엇때문에 늘그막에 서러운 타국살이를 하겠느냐면서 끝끝내 그를 붙잡아 눌러앉히고말았던것이다.

무성한 백양나무숲에 에워싸인 아름다운 보통강반의 4층아빠트에서 윤숙경은 불우했던 젊은 시절에는 꿈꿔보지조차 못했던 안락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혼자서 쓰고사는 드넓은 세칸짜리집, 불땔 걱정이 없는 중앙난방, 집세를 못물어 쫓겨날 근심을 안해도 되는 안정된 살림, 도대체 세금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사는 세금없는 세상, 앓아도 치료비걱정을 안해도 되는 무상치료제의 별천지, 지난날 가난했고 천대받았을수록 더더욱 떠받들리우며 활개치며 사는 정의로운 사회··· 여기에서 윤숙경은 일생 처음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숨쉬며 시름없는 삶을 맛보고있는것이다.

이 꿈같은 세상에 오직 하나 부족되는것은 대자연이 그의 유일무이한 창조물로 선사해준 사랑하는 아들이 곁에 없다는 바로 그것이였다.

그때문에 윤숙경은 때때로 잠결에도 베개를 눈물로 적시군 했으며 오랍동생처럼 믿고지내는 안창후앞에서 변덕스러운 노여움을 나타내기도 하는것이다.···

《누님,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으시오.》

안창후는 손수건으로 윤숙경의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며 사정하듯 말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이 당하고있는 수재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시려고 좀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여기 저한테로 친히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그···그래서?!》

윤숙경은 대뜸 흐느낌을 멈추었다.

《우리 적십자회에서 무슨 구제대책을 세워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는 말씀이였습니다. 제 그래서 적십자회사무실로 나가려던 참입니다. 만일 이번에 구제대책이 강구되고 그것이 실현되기만 하면 누님네가 살던 마포구일대의 수재민들도 덕볼수 있을겁니다. 수길이도 물론이구요.》

《그 얘기 왜 인제야 하나.》

윤숙경은 멜가방을 들고 황황히 일어나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어서 나가야지, 괜히 지체말구. 함께 나가자구.》

윤숙경은 순식간에 젊음과 활기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