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7

 

제 1 장

7

 

책상에 마주앉은 한영국은 담배를 붙여물었다. 얼결에 하루를 보냈는데 여느때 몇달을 산것처럼 복잡하고 머리가 뗑하였다. 담배연기는 저기압에 눌려 맥이 빠진듯 서서히 감돌고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른 때는 한건의 기사를 잠간사이에 제껴놓고도 배심이 든든하던 그였지만 오늘따라 불안을 누를수가 없다. 어데서 오는 불만인지 알수 없었다. 랭수를 한고뿌 들이킨 그는 턱을 문지르며 만년필을 뽑아들었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원고지 머리배기에 큼직큼직하게 써내려갔다.

《나는 오는데 너는 왜 가느냐?》

담배를 또 한대 붙여문 그는 그것을 벅벅 그어버렸다. 너무 피복이 두터워 의미를 알아볼것 같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단도직입이 더 효과적일수 있다.

《망원동의 아우성-수재민들은 당국의 시급한 구제대책을 요구》

그것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장황하고 설명적이여서 씹을 맛이 없었다. 그는 원고지를 뚝 뜯어 와락와락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놓고 앞서 썼던 그 제목을 다시 적었다.

《나는 오는데 너는 왜 가느냐?》

옛날 어느 한 시인이 금강산 신계사골안으로 들어가면서 옥계수를 보고 시정에 겨워 노래한것인데 얼마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는 1인칭을 재난에 비겨 의인화한것임을 능히 직감할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면 재난은 오는데 전두환《대통령》은 왜 일본으로 가느냐? 라는 속대사를 읽을수 있을것이다. 이것은 1석2조의 소득이 될수도 있다.

그는 붓을 달리였다.

《적도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12호가 중국 남쪽바다를 스치고 한반도를 횡단하면서 8월 28일부터 시작하여 어제까지 많은 비가 내렸다고 서울관상대가 발표하였다. 어제 하루만 해도 서울서 600㎜(년평균강수량의 절반이상)···》

이렇게 꼭지를 떼놓고 서울시안의 피해를 낱낱이 밝히였는데

《피해가 가장 심한 망원동은 그우에 위치한 류수지의 동이 터져 갑작스러운 물란리에 말려들었다. 그곳 주민들속에 떠돌아가는 말을 듣고 확인한데 의하면 취수구공사의 불량으로 야기된것이기때문에 명백히 이것은 수재이기에 앞서 인재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렇게 한 10장정도 써나가다가 마지막 결구에 가서 전두환《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슬쩍 건드렸다.

언제나 신경을 곤두 세우고있는 편집국장은 대뜸 기사의 주제가 분렬되였다고 펄펄 뛰였다.

한영국은 분렬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각에 《한국》에서 가장 첨예한 두개의 사건을 기발하게 의도적으로 결합시킨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편집국장이 계속 자기 주장을 고집하자 한영국은 그러면 원고를 철회하겠다고 들이대였다. 그렇게 되자 편성지의 공백을 메꿀수 없었던 편집국장은 서로 양보해서 후자를 극력 축소하자고 해서 타협이 성립되였다.

원고를 넘기고보니 밤 9시가 넘었다. 어쨌든 하루일이 끝나고 돌발적인 사건의 첫고비를 요행 넘기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후련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야 하였다. 이번 큰물에 떠내려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거리에 나서니 휘지근한 바람이 습기를 한껏 안고있는 골목에 천천히 흘렀다. 뻐스줄에 가보니 줄이 끝없이 뻗어있다. 그래 하는수 없이 한시간 실히 걸리는데를 밤풍경도 볼겸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붐비는 사람들 틈을 빠져 지하도를 건느고 국제극장 앞거리로 나왔다.

명상에 잠겨 걷던 그는 학교 교실 한쪽구석에 시신처럼 누워있던 인옥의 아버지 박만호의 얼굴을 상기하게 되였다. 주글주글한 입술을 터치고 《해주! 해주!》 하고있었다. 장면이 휘딱 바뀌여 그앞에는 반백이 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가며 《물, 물!》 하고 웨치던 녀인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 순간이였다. 그 녀인의 모습이 자기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였다. 그의 시야에는 생시처럼 뚜렷이 어머니의 모습이 부각되였다. 단정히 갈라붙인 머리, 쌍까풀진 눈, 약간 도드라진 입술이 그의 넋을 어린 시절로 끌어올리였다.

전쟁때, 그러니까 한영국이 14살때의 일이다.

인차 돌아온다던 형은 열흘 보름이 되여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고 하는데 거리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인민군대가 몰리고 다시 미군이 들어온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가 남쪽과 서쪽에서 밤낮 포소리가 쿵쿵 나더니 또다시 피난가야 한다고 온 거리가 끓어번지였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알수도 없고 상관할바가 아닌데 오직 한영국에게 있어서 관심거리는 하루 한끼 먹는것이 문제이고 형이 나타나지 않는것이 큰 근심거리였다. 겸해서 그에게 고통으로 된것은 어머니가 절대로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것이였다. 아들을 방에 밀어넣고 바깥으로 쇠를 잠근 어머니는 어데 갔다오는지 해질녘에야 나타나군 하였는데 등에 진 마대에는 무우나 배추가 들어있었고 혹간씩 벼이삭이나 콩꼬투리가 섞인 때도 있었다. 아들이 무사하다는것을 확인한 녀인은 밤이 깊도록 그것으로 먹을것을 만들었다. 다음날도 또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시가전이 벌어졌다. 서울시민들이 인천쪽에 방어진을 쌓고 청년들은 총으로 맞불질을 하였다.

인민군대는 마포구 썩 앞에서 싸운다고 하였다. 온 거리가 흉흉히 끓고있는데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한영국은 뙤창을 뜯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데로 가야 어머니를 만날지 알수 없었다.

그는 한강다리밑근처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허둥지둥 거리를 헤매는데 마포구어구 네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데가 있었다. 인천쪽에서는 미군트럭이 줄을 지어 들어오고있다. 한영국이 무작정 달려가는데 길가에 마대 하나가 던져져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 순간 한영국은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마대는 어머니가 늘 지고 다니던것이였다.

나는듯이 달려간 그는 마대를 부둥켜안으면서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애처로운 고함소리가 전란에 흔들리는 거리에 울리였건만 어데서도 대답하는데가 없었다.

《엄마! 엄마!》

한영국은 울음을 터치며 사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마대 있는데서 한 20m 떨어진 전주밑에 한 녀인이 쓰러져있었다.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그것은 한영국의 어머니였다. 미군자동차가 아래도리를 깔고 지나갔다.

《엄마!》

돌덩이처럼 어머니 가슴우에 떨어진 한영국은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다. 얼굴을 쓸어보고 가슴을 만져보았다. 가슴은 따스하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였다. 그런데 아래도리는 짓이겨져서 형체를 가질수 없게 되였다.

《엄마야! 엄마야!》

한영국은 이미 오래전에 표정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얼굴을 쓸어만지면서 숨이 막히게 울었다.

어린 가슴에도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야, 이 미국놈들아, 우리 엄마 살려내라. 우리 엄마 살려내라.》

무턱대고 그는 저주를 퍼부으며 주먹으로 땅을 두드리였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사위를 둘러보았지만 지나가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영국은 어머니를 업어보려고 하였지만 업어낼수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마대를 펴고 그우에 눕힌 다음 끌었다. 그 이튿날 근처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손달구지에 어머니의 시신을 눕히고 인천쪽으로 나갔다. 서대문구 길어름 북가좌동언덕에 묘를 지어 안장하였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회상에서 깨여난 한영국은 길가에 쪼그리고앉았다.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아 걸음을 내짚을수 없었다.

얼마간 있다가 그는 근처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 술을 한고뿌 사서 마시였다. 얼근해진 그는 다시 길가로 나와 택시를 불러 타고가다가 북가좌동에서 내렸다.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거리복판이나 다름없는데 아직 묘지는 그대로 있었다. 물에 밀려 없어지지 않았나 했는데 요행 묘는 그대로 있었다. 폭우가 심했는데 용케 견디여내였다.

묘옆에 듬성듬성 돋아난 풀포기를 깔고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술기운이 몸에 번지자 꿈인지 생시인지 가릴수 없게 되였다. 다만 뚜렷한것은 언제나 촉촉히 젖은 눈으로 쳐다보군 하던 어머니의 모습뿐이였다. 두손으로 머리를 싸쥔 그는 무덤을 향해 중얼거리였다.

《어머니, 불효자식 영국이 왔습니다. 혹시 이번 큰물에 묘가 상하지나 않았나 걱정이 돼서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고 목이 꺽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아직 물방울이 맺힌 잔디풀을 어루쓸면서 산사람앞에서처럼 넉두리를 하였다. 하얀 손이 풀대를 움켜쥐였을 때 그는 어머니의 가슴을 쓸어만지며 울던 때를 다시 상기하였다.

그러나 무심한 풀대는 사람의 넋을 받아들일수 없어 그랬는지 한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꼿꼿한 초리를 하늘로 쳐들었다.

《어머니!》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봉분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처량하게 또 불러보았다.

《난 별일없이 지내고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형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사흘이면 온다던 형은 서른네해가 되였는데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살아있고 못오는지, 벌써 저세상사람이 되였는지 알수 없지요.···어머니, 왜 한해에 한두번 찾아오는것마저 늘 한밤중에만 오는가구요? 그리고 왜 처나 아이들은 데리고 오지 않는가구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 욕된 사연을 어찌 말로 다할수 있겠습니까.》

산더미처럼 많고많은 사연을 어찌 다 말할수 있겠는가. 불우한 운명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지는데 그것을 그 누구에게 말할수도 없고 말해서는 안되는 꼬이고꼬인 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설명해낼수 있단말인가.

그는 숨을 꺽꺽 들이그으며 울다가 가슴을 눌러대고 몸부림을 쳤다. 방금 쓸어만지며 어머니의 가슴을 련상해본 그 풀대들이 짓이겨졌다. 그는 머리를 봉분우에 굴리며 풀을 북북 쥐여뜯었다. 눈앞은 뽀얗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였다. 그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반백이 되고 그거나마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칼이 흔들리였다.

《어머니, 용서해주십시오. 인간이 아닌 이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어머니! 제가 왜 이런 한밤중에만 찾아와 우는지 아십니까? 30년이상이나 행여나 때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앞은 그냥 캄캄합니다. 밝은 대낮에 머리를 쳐들고 찾아올 날이 내다보이지 않기때문이야요. 누가 언제, 어떻게 이 기막힌 신세를 건져주겠는지 막막하고 답답해 눈물만 쏟아집니다. 어머니! 어쨌거나 오늘까지는 다행입니다. 봉분이 좀 패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건 천만다행입니다.》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흐득흐득 느껴우는 그의 어깨가 차츰 더 높이 들먹이였다. 이윽해서 머리를 쳐든 한영국은 흙을 줌으로 움켜다가 고랑이 패인 봉분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무심한 날짐승 한마리가 흐릿한 밤하늘에 떠서 궁상스럽게 끽끽 소리를 지르며 날아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