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6

 

제 1 장

6

 

양기섭이와 헤여진 한영국은 취재차를 가지고 망원동 한복판으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다. 그는 빳빳이 일어난 머리를 올리쓸고 나서 조향륜을 힘있게 돌리였다.

세종회관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왁작 끓고있었다. 차창을 열고 내다보니 《전두환의 일본방문을 반대한다》는 프랑카드를 들고 《정부》청사쪽으로 몰켜가고있었다. 그는 차를 돌려서 진고개쪽으로 나갔다. 여기도 역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데 수재민들이였다. 감탕물에서 건져낸 옷가지들과 가구들이 거리와 골목에 꽉 차있다. 근 한세기전에 왜놈들이 알사탕을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곳이다. 여기서 만든 알사탕을 물고 리조조정의 고관들과 지어 왕님마저도 기분이 좋아서 진고개 알사탕자랑을 하는사이에 지금 탕수가 져서 온갖 짬사리나 틈바구니마다에 속속들이 스며든 감탕처럼 왜놈의 독소가 이 땅에 침투되였던것이다.

그는 드디여 망원동에 접어들었다. 물이 깊어 차가 더 갈수 없었다.

그는 걸어서 학교마당에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리재민들이 발들여놓을 틈이 없이 널려있었다. 벽돌장을 주어다가 쟁개비를 걸고 연기를 일구면서 무엇인가를 끓이는 아낙네들, 옷가지를 줄에 널어 말리는 사람들, 무엇때문인지 아귀다툼을 하는 사람들··· 교실 칸칸마다에도 벽이 밀려날만치 사람들이 꽉 찼다.

취재대상을 골라잡기 위해 사위를 둘러보며 나가던 한영국은 눈을 크게 뜨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쪽에 황홀할만치 아름다운 녀인이 나타난것이다. 여겨보니 달린옷에 양복웃도리를 대강 걸치고 산발한 머리를 등허리에 아무렇게나 풀어놓은것이 이미부터 풋낯이나 있던 쉐라톤호텔 접대원 박인옥이였다.

박인옥은 망원동 포목상인 박만호의 외동딸로서 안기부 리병찬의 애인인데 한영국은 오래전부터 처녀의 운명을 점쳐놓고 지켜보는중이였다.

남달리 권력의식이 강한 리병찬이 재력으로 보나 사회적지위로 보아 비교도 되지 않는 박인옥이를 사랑의 대상으로 선정한것이 아무래도 잘 믿어지지 않는것이였다. 하긴 인옥에게는 재력이나 사회적지위 못지 않게 뭇사내들의 마음을 유혹할수 있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미모라는 위력한 재산이 있었다. 하지만 꽃도 절기가 지나면 시들고만다.

리병찬이 그 미모에 반하여 처녀를 일시적인 《애완용》으로 삼아가지고 실컷 롱락하다가 제 할짓을 다 하고는 헌신짝처럼 줴버릴지 그 누가 알랴.

가까이 다가가니 인옥은 가벼이 머리숙여 인사를 하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한영국은 그의 신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직감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처녀는 구슬알같은 눈물을 량볼로 방울방울 떨구면서 《선생님!···》 하고 외마디소리를 간신히 내뱉고는 북받쳐오르는 오열을 참느라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였다. 그러다가 한영국이 재차 물어서야 자기네 부녀가 명줄을 걸고있던 포목상점이 이번 무더기비에 몽땅 떠내려가고 집마저 물에 잠겨 한지에 나앉게 되였는데 엎친데덮치는격으로 얼마전부터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가 아예 몸져 누웠다는것이였다.

《리병찬씨에게는 알렸는가요?》

처녀는 머리를 살래살래 가로 흔들었다.

《그럴 경황이 없었어요. 너무도 급작스레···》

《그럼 리병찬씨는 댁에서 당한 재난을 모르셔요?》

《네.》

(어쩜 그럴수 있을가?)

한영국은 리병찬에 대한 그 어떤 의분심을 느꼈다.

(망원동일대가 온통 물에 잠겼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가정에도 무슨 변고가 나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워서라도 벌써전에 와봤어야 했을게 아닌가?)

한영국은 리병찬의 처사가 섭섭하게 여겨졌다.

한영국이와 리병찬의 교제관계는 우연하게 맺어졌다. 리병찬은 학교시절부터 수재라고 이름나 있었는데 응용력과 추리력이 뛰여나 학급에서는 항상 수석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학생운동, 이를테면 반정부반체제운동 같은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체 청년들에게 류행으로 되였던 시위행진같은데마저도 끼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추리력을 키운다면서 정탐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였고 얼마후에는 손수 그것을 써서 출판물에 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 《동아일보》에 출입하게 되였는데 어느날 리병찬이 《붉은 거미줄》이라는 《김종태사건》을 추리하는 글을 써가지고 이름이 있다는 기자 한영국을 찾아갔었다.

한영국은 호의를 가지고 직접 손을 대서 한 20여매 정도의 글을 일요판에 내도록 해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리병찬은 한영국을 《은인》이요 《선생》이요 하고 늘 찾아다니군 하였다.

안기부에 들어간후에도 리병찬은 전날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있었다.

그랬던 그가 기른 개 발뒤축 문다고 이마적엔 한영국의 행적에서 그 무슨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맡은 개처럼 그의 동태를 흘끔흘끔 살피며 돌아가고있는것이였다.

인옥은 한영국을 자기 아버지 있는데로 데리고갔다.

아버지 박만호는 교실 한쪽구석을 차지하고 누워있었는데 눈도 뜨지 못하고 끙끙 앓음소리를 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해주로 가자. 해주!··· 해주!···해주!》

분명 헛소리가 틀림없는데 그 한마디에 처녀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린다.

《선생님, 별다르게 생각지 마세요. 헛소리예요. 고향이 해주다보니···》

처녀는 웬일인지 아버지의 헛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일가봐 겁나하고있었다.

《그렇구만, 나도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었소.》

《병찬씨가 그러던가요?》

한영국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제발 신문에는 내지 마세요. 가산은 다 떠내려가고 집안이 망하고보니 이젠 고향밖에 그리운것이 없다면서 저러지 않아요.》

인옥은 울먹이며 아버지의 입에 죽물을 떠넣었다.

아버지는 무의식중에 입안으로 흘러든 죽물을 받아넘긴 다음 또 무어라고 중얼중얼한다.

그 오른쪽에 부러진 다리를 부둥키고 끙끙 앓음소리를 치는 중년사나이가 있고 그 안쪽에는 이불을 온몸에 휘감은 산모가 누워있다. 바닥에 습기가 있기때문에 두툼히 깔고 온통 모포에 옷가지로 사위를 막아 바람가림을 하였다.

한영국은 처녀를 안심시킨 다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몇장 찍었다.

《여보! 기자선생, 사진만 찍지 말고 의료당국의 수수방관부터 때리시오. 이건 한심하단말이요.》

중년사나이는 눈에 피가 져서 웨쳐대고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또 담가에 들려온 환자때문에 자리를 좁히라고 야단이다.

한영국은 11칸으로 된 학교 교실을 다 돌아보며 필림에 그 광경을 수록하였다.

어떤것은 원경이지만 산모와 박만호 그리고 그밖의 한둘은 국부를 찍었기때문에 편집국의 까다로운 요구에도 얼마든지 응할수 있을것이였다. 작별하기 위해 다시 인옥이에게 찾아갔는데 그때에도 그의 아버지는 《해주! 해주!》 하고 헛소리를 치고있었다.

한영국은 이미부터 잘 알고있던 심기정로인네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바지가랭이를 대수간 접어올리고 절벅절벅 물탕을 밟으며 좁은 골목을 지나 자전거방을 찾아갔다.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조차 가릴수 없었다.

도로와 집터를 분간할수 없을 만치 모든것이 다 혼탕이 되였다. 건물벽체, 전주대, 기둥들이 물아래켠 한쪽으로 쏠리였다. 어떤것들은 간신히 서있다가도 우지직소리를 내며 당장에 쓰러지군 하였다. 얽히고 덮치고 엇갈린 그속에서 사람들이 가장집물들을 꺼내느라고 아우성이다. 물에 젖은 옷가지들, 보따리들, 그밖의 가지각색 물건들을 안기도 하고 둘러메기도 하고 또는 질질 끌어내기도 하면서 야단법석이다.

한영국은 카메라를 가슴우까지 올리달아메고 디뚝디뚝하는 발을 간신히 옮겨디디며 자전거방근처로 접근해나갔다. 기왕 발을 들여놓은바에는 《현미경적고찰》을 하려는것이다.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지 않고는 직심이 풀릴것 같지 않았다.

한 50m를 극복하는데 30분이나 시간이 걸렸다. 양철에 뼁끼칠을 해서 《속성자전거수리》라고 쓴 간판이 저쯤 바라보이였다. 벽체와 기둥은 넘어져 물에 잠기고 엉성하게 물우에 내밀린 널판자 한쪽이 삐뚜름이 걸려있었다. 두릿두릿 살피였지만 그집 식솔이 눈에 띄지 않았다. 처음에는 길을 헛갈렸는가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며 간판이 달린 대밑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어디선가 가슴이 섬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신음소리같기도 하고 물살에 밀리여 무엇이 맞비벼대는 소리같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 종잡을수 없는 음향은 간판이 달린쪽에서 울리는것이 분명하였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찡 울린다. 순간 한영국은 《심기정아버님!》 하고 소리쳐 불러보았다. 두번 세번 소리쳤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가재를 다 걷어가지고 어디로 피난이라도 간것 같았다. 기대에 어긋난 그는 실망한 기색을 짓고 한참동안 자전거방간판을 쳐다보고있는데 그 간판뒤에서 무엇인가 느릿느릿 움직이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여겨보니 그것은 사람이였다.

음울한 빛을 내뿜는 눈이 보이였고 그밑에 잘 알리지 않을만치 움직이는 입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이 바로 자기가 찾고있는 심기정로인이였다. 때마침 검은 구름사이로 피빛으로 물든 저녁해가 희미한 빛을 내리던졌다. 그통에 감탕투성이가 된 심기정로인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났다. 로인은 이쪽을 알아보았는지 지붕우에서 앉은채로 손짓을 하고있었다.

《아버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한영국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한영국입니다. 한영국이라구요. 한강다리의 둘째입니다.》

세네번 거듭해서야 로인은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지만 로인은 무엇을 부둥켜안고있을뿐 움직이지 않았다.

한영국은 땅에 드리운 추녀끝을 밟고 급하게 경사를 이룬 지붕에 엉기엉기 기여올라갔다. 발밑에서는 무엇이 금방 무너지는것처럼 우직우직 소리가 났다. 네발걸음을 해서 올라가니 심기정로인은 무릎앞에 로친네를 눕혀놓고 무어라고 중얼중얼 말을 하고있었다.

《로친! 정신차려 듣소. 다리밑에 같이 살던 둘째가 왔소.》

로인의 갈린 음성은 물비린내가 떠도는 바람을 타고 자취없이 흩어졌다. 아무런 반응이 없게 되자 로인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한영국은 로인앞에 다가가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언제 이렇게 됐습니까. 많이 다쳤습니까?》

물으나마나 그앞에는 넝마뭉테기처럼 볼꼴없이 되여버린 이 집 안로인이 낯을 이그러뜨리고 누워있었다.

《로친, 눈을 떠서 보우, 누가 왔나.》

로인은 앙상한 가슴을 흔들어준다.

《팔자두 기박하지. 이럴바엔 차라리 덜컥 숨이 넘어가면 서로 편안하련만···》

처참한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한영국이 이 집 사정을 대개는 알고있었다. 한해에 한번이나 두번정도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립거나 옛추억이 절절하면 그는 이 집을 우정 찾아오군 했었다. 거지신세가 되여 한강다리밑에 나란히 거적때기집을 지어놓고 의좋게 살았다. 두집 신세는 어슷비슷하였지만 그래도 심기정이네는 세대주가 있고 아들도 하나 더 있었다. 지금은 맏이가 윁남파병때 군속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둘째는 《국군》에 나갔다가 다리병신이 되여 자전거수리를 하게 되였으며 막내도 이제는 장골이 되여 딴집살림을 하고있다.

한영국이 담배를 권하고나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전쟁에 의한 재난도 겪은 그였지만 이것은 이루 형용키 어려운 참상이였다. 아득히 바라보이는 한강기슭이 몽땅 쭉 밀리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슴을 찢어내는것은 원래 보잘것없던 저소득빈민층의 허줄한 집들이 무참하게 파괴된것이다. 대개는 형체를 가려볼수 없을 정도로 물에 밀리고 얼마간 남은것들은 모두 땅에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나는것으로 보아 이제야 시신을 건져냈거나 아니면 근근히 이어나가던 생명이 끊긴것일수도 있다.

《아니 이거!》

널판자우에 누웠던 녀인이 벌떡 일어나면서 눈을 희번득거린다. 한영국은 인사를 할 작정으로 허리를 굽히며 두손을 뻗치였다.

그 순간이였다. 물그러미 쳐다보고있던 녀인이 갈퀴같은 손을 내들더니 째지는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물! 물 ! 다 떠내려간다. 떠내려간다!》

녀인의 온몸이 사시나무떨듯 하였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것을 이미 짐작이라도 하고있었던것처럼 심기정로인은 재빨리 가슴과 어깨를 내리눌렀다.

정신착란을 일으킨 녀인은 안깐힘을 써서 빠져나오더니 벌떡 일어났다.

《물, 물!》

처량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간다. 한발만 더 내짚으면 물인데 간신히 붙잡았다.

《글쎄, 이걸 어찌는가, 힘두 장사니까 당해낼수도 없구.》

심기정로인은 로친네의 허리를 그러안고 이미 앉았던 자리로 간신히 끌어왔다.

《물만 보면 이렇게 정신이 휘딱 돌군 한다이께. 맏이가 끌려갈 때 인천부두에서 하루종일 울었능기라. 3년안에 돌아온다 해서 가보니까 재가루가 돼서 왔는기여. 그때부터 이 로친은 반정신이 나갔댔는데 이번 일을 당하고보니 아예 페인이 되고말았소.》

《아!》

한영국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녀인의 가슴을 여며주며 가련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물을 씌운것처럼 주름이 한벌 덮이였다. 잠든것처럼 감겨진 눈굽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진한 송진같은것이 솟아오르고있다. 갈비뼈가 내비친 가슴은 삶을 호소하며 급히 오르내리고있다. 로인은 물주전자를 기울여 반쯤 벌려진 입새에 물을 흘려주고있다.

《차라리 죽일라면 온 식솔을 다 한날한시에 죽이든지, 팔자도 얄궂지!》

솔등걸같은 손으로 로친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만지며 혼자소리를 하고있다. 한영국은 무엇이라고 위안의 말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그래 자네네는 이 물란리에 별일 없는가?》

심기정로인은 답답한 가슴을 헤치며 그제서야 이편을 쳐다보며 묻는다.

《네! 우리는 요행 아빠트다보니 별일 없습니다.》

《천만다행일세.》

목에서 끓는 가래를 뱉노라고 한참동안이나 기침을 톺아올리더니 질적해진 눈을 들어 이쪽을 쳐다보고있다.

《그래 어떻게 이곳에 나왔나? 참 자넨 거 무슨 글을 쓴다고 했지.》

《네! 신문글을 씁니다.》

《임잔 잘되였어. 우리 둘째아이녀석은 다리병신이 돼서 자전거수리나 하다보니 근근히 살아가긴 했는데 물란리로 이 모양이니께 이제는 밥을 빌어먹을수밖에 ···》

불이 꺼진줄도 모르고 뻐금뻐금 빨다가 담배를 휘익 집어던지더니 함석장을 하나 치고 고함을 지른다.

《창억이 왔느냐?》

잠시후 첨벙첨벙 물소리가 나더니 대답이 들리였다.

《어머니, 좀 어때요?》

《어떨거나 있는가, 지금은 맥이 빠져 누웠다. 니 그거 놔두고 올라올랑이.》

《이거 하루만 더 놔두면 녹이 쓸어 못쓰게 되여요.》

《그건 건져 뭘해. 망할라면 깨깨 망하라고 내버려둬라. 그래 쌀은 준대?》

《누구도 아는 사람 없어요. 동사무소에서는 제가 먹을 쌀 제가 구하는거지 동에는 왜 찾아오는가구 소리치는걸요.》

《알만하다.》

대화가 끝난 다음에도 지붕밑에서는 쇠붙이들을 드다루는 소리가 얼마동안 나더니 얼룩얼룩한 잠바를 입고 험상스러워보이는 중년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뻐덩다리를 가까스로 들어옮기며 지붕우로 기여올라왔다.

《어? 이거 영국형이 아니요?》

《그래 나요. 창억이 고생하누만.》

《못사는 살림에 몽땅 망했지요. 형넨 일없소?》

《일없소.》

《〈정부〉도 있고 〈대통령〉도 있다는게 취수구공사 하나 똑바로 못해 수문이 터져 이모양이라지 않소.》

《그게 사실인가?》

《모두들 그러는걸요.》

그때 뒤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여보! 거기 심창억이라고 있소?》

부르는투가 건방지기때문에 일제히 돌아다볼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심창억이 있는가말이요.》

《당신은 누구요?》

한영국이 일어서며 쓰겁게 되물었다.

《우린 경찰서에서 나왔소.》

《아! 그렇소.》

심창억은 짚이는데가 있었던지 방금 올라왔던 그쪽으로 역시 굴신을 잘하지 못하는 그 다리를 억지로 옮겨놓으며 내려갔다. 심기정로인과 한영국은 귀를 강구고 밑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다.

《네가 심창억이 옳은가?》

《예!》

《그래 네가 이자 동사무소 앞마당에서 수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당국에서 다 받아내야 한다고 선동했는가?》

《아니요. 난 수문공사를 날림식으로 했기때문에 취수구가 터졌다고 했소. 그러니 손해배상이야 공사청부업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건 그렇고, 당국에서 쌀배급을 줘야 한다고 말했는가?》

《그건 내가 말했소.》

《건방진자식!》

귀뺨을 치는 소리가 났다. 한영국이 놀라 일어서는데 웬 낯선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리였다.

《여보 순경나리, 내 말 좀 듣소.》

《넌 뭐냐?》

한영국은 벽체짬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사나이가 창억이를 보호하기 위해 순경앞에 막아서있다.

그 사나이는 허리에 손을 짚고 연방 큰소리를 치고있다.

《당신네는 우리 수재민을 동정하는가 아니면 반국가적 어떤 무리들로 보는가? 공사를 날림식으로 했기때문에 수문이 터진것만은 사실이 아니요? 또 당국에서 쌀배급을 줘야겠다는것이 뭣이 잘못인가?》

《이자식, 오! 너로구나. 아하.》

키가 꺽뚜룩한 순경은 알만하다는투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짓을 하고있다.

《너 또 교도소맛을 보고싶은가 응? 지금 수해지구에 갑호계엄령이 내린걸 알고있을테지. 치안에 방해하는놈은 가차없다.》

한영국은 서둘러서 지붕에서 내려갔다.

《가만. 나 저 〈동아일보〉 기잔데요.》

그는 증명서를 꺼내주면서 물었다.

《수재에 대한 여론을 듣자고 하는데 좀 응해줄수 있겠습니까? 경찰서에서 보는 수해실태는···》

《응 기자?! 지금은 시간이 없어, 정 취재하고싶거든 마포경찰서로 오라.》

분위기가 난처하게 되자 두명의 정복순경은 또다시 뭐라고 지껄이며 그땐 정말 재미없다고 엄포를 놓더니 뒤골목으로 빳빳이 사라졌다.

한영국은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뒤모습을 찍었다. 이때 아까 창억이를 막아섰던 로동복차림의 젊은이가 한영국이쪽으로 돌아섰다.

《기자선생, 부탁입니다. 현장에 가보고 조사해서 그대로 신문에 내시오. 청부업자들이 공사비를 다 쓱싹하고 대강 해치웠소. 내가 이 공사를 잘 아오.》

《그게 사실이요?》

《아무렴 거짓말하겠소.》

젊은이는 투박스러운 말을 던지고 물속에서 농짝을 건져내기 위해 감탕판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떤 청년인가 물으니 심기정로인이 알려주었다.

길건너편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청년인데 로동운동에 가담해서 벌써 두번이나 교도소고생을 치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름은 문정현이라고 하는데 역시 운동권에 있는 청년답게 말도 잘하고 경우가 밝다고 하였다.

한영국은 문정현청년을 따라갔다. 그리고 취수구공사를 날림식으로 한 청부업자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청년은 흔연히 응해주었다.

얼마후 한영국이 골목을 돌아섰을 때 심기정로인이 함석장을 두드리며 넉두리하는 소리를 들었다.

《망해라! 싹 망해라! 하늘이라도 무너져라!》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것처럼 녀인의 고함소리가 또 들리였다.

《물! 물, 다 떠내려간다. 물!》

한영국이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지붕우를 올려다보고있는데 검은 형체가 팔을 들어올리고 허둥지둥 걸어나가고있다.

한영국은 취수구현장과 그 공사를 담당했던 청부업자를 만나고 날이 어두워서야 신문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