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제 1 장

3

 

김정일동지께서는 철산봉마루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러시고는 아득히 펼쳐진 산발들을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백두산에 뿌리를 둔 함경산줄기는 줄곧 그 장엄한 기상을 늦추지 않고 동쪽하늘가로 느물느물 물결쳐나갔다. 그러다가 두만강이 무산령을 안고돌무렵에는 한결 기세를 죽이며 이곳 북관지방에서 흔히 볼수 있는 유하면서도 줄기차고 도도한 산세를 이루었다.

이 지방에서는 어느 한 봉우리도 독특한것은 눈에 띄지 않고 그저 기슭을 향해 밀려드는 물결마냥 단조로움을 볼수 있을뿐이였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은근히 자기의 존엄을 나타내고있는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가라지봉이다. 약대등처럼 휘여 넘어간 가라지봉마루는 서쪽의 대로은산이나 남쪽의 검덕산에서나 할것없이 어디서나 모두 잘 보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라지봉하면 먼저 그 밑에 잇달린 철산봉을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철산봉은 말그대로 쇠돌로 만들어진 이 나라 보배덩어리이다. 벌써 한세기전부터 사람들이 끓어번지였으며 특히 해방후에는 나라의 경제명맥이 여기에 달려있다고 할만치 그 의의가 커졌다. 그러나 이 철산봉은 오늘도 역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맞이하고있었다. 숱한 사람들이 여기를 향해 올라오기도 하고 또 돌아내려가기도 하였다.

그이께서는 웃옷앞섶을 헤치고 바람이 거슬러오르는 동남쪽언덕으로 나서시였다. 이마에 드리웠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리였다.

그이께서 무산광산을 현지에서 지도하게 되신것은 우리 나라 경제발전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철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기 위해서였다. 철생산을 늘이자면 무엇보다먼저 철광석을 충분히 대주어야 하겠는데 무산광산 광석채굴량이 응당한 수준에서 보장되지 못하고있는데다 돌파구를 열어야 할 당사자인 이곳 일군들이 종전보다 1.5배로 늘어난 증산계획앞에서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있었다. 고윤학부총리를 비롯한 정무원의 책임일군들이 직접 내려가 며칠동안 현지일군들과 만나 진지하게 토의해보았으나 신통한 예비안은 찾지 못하고있었다. 광산일군들은 채굴량을 1. 5배로 높이자면 착정기를 비롯하여 대형화물자동차, 굴착기 등 중요설비들을 더 많이 보내줘야 한다는 주장이였고 우의 일군들은 아래 일군들이 요구한다고 하여 무턱대고 설비를 대줄수 없는 형편이여서 우만 쳐다보지 말고 어떻게 하든 예비를 탐구하여 자체의 힘으로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있었다. 량자간에는 자기나름의 타당성과 정당성이 있었다.

고윤학부총리로부터 이런 실태를 보고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철산봉에 올라 이곳 일군들과 담화도 하고 현장을 일일이 돌아보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요구대로 투자를 늘입시다. 그래서 성능이 높은 착정기도 더 많이 넣어주고 대형화물차도 굴착기도 보내줍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다 해결된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문제는 생산의 주인들인 이곳 일군들과 로동계급 매 사람들이 당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늘 강조하는것이지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사람과의 사업을 잘 해서 그들의 창조적열의를 최대한으로 발양시키는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여전히 사상론을 주장합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마치고 흰구름이 걸려있는 가라지봉쪽에 시선을 보내시였다.

둘러섰던 일행이 모두 고개를 떨구고 침묵을 지키였다. 이윽해서 그이께서는 말씀을 다시 시작하시였다.

《당에서는 항상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에 의거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 로동자, 기술자들의 심장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참 여기 어느 채광기사가 지향성발파법을 연구하고있다고 했는데 어떻습니까? 지향성발파법을 연구하는 기사를 만나보았습니까?》

《몇번 만나보았습니다. 한영도라는 채광기사인데 3년동안에 여섯번이나 실패하자 이제는 아예 주저앉고말았습니다. 가망이 없는것을 가지고 더이상 국가에 손실을 줄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렇다?》

《기술이 부족하기때문에 실패하는것을 량심상 계속 반복할수 없다고 합니다. 기술자치고는 좀 특이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턱대고 해보겠다는것이 상례인데 그 동무는 딴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한결 밝은 안색으로 혼자소리처럼 말씀하시였다.

《그 기사동무를 만나보아야겠습니다.》

그이께서 한영도를 만나신것은 이날 오후 렬차안에서 있은 협의회때였다. 협의회에는 중앙에서 동행한 책임일군들과 이곳 지배인과 책임비서 그리고 혁신자들과 기술자들이 참가하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철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데 대한 당의 의도를 알린 다음 이것을 해결하자면 투자를 늘여 설비들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는것과 함께 자체의 예비를 더욱 최대한으로 찾아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지향성발파를 연구하고있다는 동무가 왔습니까?》

김정일동지의 음성은 고요한 방안공기를 은은하게 울려놓았다.

《어느 동뭅니까? 한 무엇이라고 했던것 같은데.》

그이께서 좌중을 쭉 훑는데 기사장옆에 앉았던 체구가 장대한 사나이가 사업수첩을 들고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채광기사 한영도입니다…》 뒤에 무엇인가 더 첨부하려는것 같은데 종시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심각해진 얼굴과 송구스러워하는 몸가짐으로 미루어보아 그 어떤 자책감에 잠겨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동무가 연구하고있다는 지향성발파법에 대해서 설명해보시오.》

그이께서는 앉아서 천천히 설명하라고 몇번이나 권고하시였는데도 한영도는 그냥 선채로 입술만 짓씹는것이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에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실패로 끝났습니다. 때문에…》

목이 꽉 잠겨 끝내 말끝을 맺지 못한다. 그와 함께 손에 받쳐든 수첩이 후두두 떨리는것을 볼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분위기가 굳어지는것을 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이 울리게 웃음을 터치시였다.

《기사동무! 그러지 마시오. 기술문제야 단번에 되는것도 있지만 여러번 실패를 거듭하다가 되기가 보통인데 그렇게 위축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알고있기에는 기사동무의 의도는 대단히 좋은것입니다. 발파를 지향성있게 조직해서 박토는 박토대로 따로 옮겨가고 광석은 광석대로 필요한 자리에 무져놓게 된다면 얼마나 능률적이겠습니까. 사실상 우리가 지금 협의하고있는 문제도 그것이 해결되면 기본적으로 해결되게 됩니다. 이야기를 해보시오.》

그이께서는 매우 침울한 기분에 잠긴 한영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였다. 얼핏 보기에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전혀 감정변화가 없는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5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가져다준 주글주글한 눈시울을 강하게 떠밀어올리고있는 눈동자는 한껏 자책감에 사로잡혀있는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있었다. 얼굴색은 차츰 더 흐려져서 비감을 띠고있는데 그 까닭은 리해되지 않았다.

《말해보시오. 기사동무! 동무는 그것을 벌써 3년가까이 시험해보았다는데 3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이윽해서 한영도는 《네!》 하고 짓씹던 입술을 풀어놓으며 이미부터 들고있던 수첩장을 번지기 시작하였다. 그때 책갈피에서 자그마한 쪽지 하나가 떨어져내리였다. 흰나비같이 공중에서 판끗판끗 두세번 뒤채더니 앞상모서리를 스치며 한영도의 발끝에 내려앉았다. 그것을 띄여보게 된 한영도는 무척 당황해하면서 주단우에 떨어진것을 집어 책갈피에 다시 끼워넣는것이였다. 례사롭고 단순한 하나의 동작인데도 그이께서는 이때 번개치듯 머리를 스치는 한가닥 예감을 붙잡으시였다. 지나치게 당황해하고 동작이 어색하였으며 얼굴에는 진한 비감마저 휙 스치였던것이다.

그런데도 한영도자신은 그것을 우정 가리워보려고 《지향성발파라는것은…》 하고 인차 말을 떼기는 하였지만 입이 얼어드는것을 어쩌지 못하고있다.

《가만!》 하고 그이께서 손을 들어 말을 제지시킨 다음 물으시였다.

《이자 그게 뭡니까? 내 보기에는 사진같은데…》

《사진입니다.》 말꼬리가 부르르 떨었다.

《사진이란말이지요. 무슨 사진인데 동무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집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좀 보여줄수 없겠습니까?》

《보여드릴만 한것이 못됩니다. 그저 저의…》

그러면서도 손을 내드신 그이앞으로 몇걸음 다가서더니 책갈피에 끼웠던 사진을 정중히 올리였다. 그것은 엊저녁 아들애가 며느리가 될 처녀에게 그의 집 사진첩을 보이느라고 꺼냈을 때 떨어졌던것을 책갈피에 끼워넣었던것인데 공교롭게도 이런 장소에서 흘리게 되여 한영도는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던것이다.

사진을 받아드시였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눈을 들어 한영도를 쳐다보시는것이였다. 자기 개인의 독사진이거나 아니면 어떤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일것이라고 짐작하셨던것인데 이것은 너무나 왕청같은것이였다.

《그런데 이건 누굽니까?》

흰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녀인은 40이 되나마나한데 딸이라고 보기엔 너무 나이들었고 안해라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 퇴색된것으로 보아 사진은 퍽 오래된것 같았다.

《저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그이께서는 반사적으로 받아외우면서 등받이에 기대였던 웃몸을 들어일구시였다.

《아니 어머니라니?》 의혹에 질린 그이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안으면서 한영도는 나직이, 그러나 명확하게 다시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동무보다 훨씬 나이가 젊어보입니다.》

《제가 열여덟살때 찍은것입니다.》

《그렇단말이지.

그이께서는 한껏 의문에 질렸던 낯으로 손바닥에 놓인 사진을 다시 내려다보시였다. 바른가리마를 내고 곱게 빗어넘긴 머리, 쌍까풀지고 억실억실한 눈 그리고 조선녀인들에게서 흔히 볼수있는 도두룩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입모습, 그런것들이 한데 어울려 부드럽고 내성적이며 순박한 성격을 잘 부각하고있다. 이때 사진우에 또하나의 녀인의 얼굴이 뚜렷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영화화면에서 보는것처럼 2중로출된 또하나의 겹놓인 얼굴은 그이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간직된 자신의 어머님의 모습이였다. 몸에 전류가 흐르는것 같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만치 충격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어머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왜 그런지 그이의 음성은 축축히 젖어있었다.

《서울에 있었습니다.》

《서울에?》

《그렇습니다.》

《언제 헤여졌습니까?》

《전쟁때니까 벌써 30년이 넘었…》

《그러면 동무는 의용군출신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짤막하게, 그러면서도 다급하게 묻고 대답하던 대화는 급격하게 치달아오르다가 순간에 낭떠러지를 만나 툭 떨어지고마는것이였다.

《그랬댔군!》

방안에 침묵이 깃들었다. 그이께서는 손바닥에 놓였던 사진을 조심스럽게 탁자우에 올려놓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차창쪽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창밖에서는 렬차들의 차갈이작업이 진행되고있었고 역전 한길로는 화물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그리고 건늠길 안쪽에는 작업복차림의 어떤 청년이 이쪽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하지만 응접실안에는 이 모든것을 압도하고도 남을 충격파때문인지 누구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기계동음이나 인적을 느끼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서 헤여져 30여년, 어머니와 아들…》

김정일동지께서는 혼자소리를 두세번 되뇌이시였다. 그러시다가 고개를 돌리여 한영도에게 재촉하시였다.

《그건 그렇고 지향성발파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보시오.》

《별것이 없습니다. 기술적타산이 다 맞아떨어진것은 아니였지만 저는 어떻게 하나 쇠돌을 더 많이 캐려고 초조하게…》

나직이 그러면서 구슬픈 음조를 띠고있는 한영도의 대답은 방안을 울리였다.

《알겠소. 알겠소!》

그이께서는 갈린 음성으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시였다. 눈굽이 뜨끔해진 그이께서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순간 뜨거운것이 목안에 뿌듯이 차올랐다.

차창을 향하신채 뒤로 돌려잡으신 두손은 안정을 잃고 서로 맞주물래기를 하고있다. 그것을 쳐다보면서 누구보다도 놀라운 안색을 짓게 된것은 얼굴이 기름한 고윤학이였다. 고윤학은 김정일동지의 움직임을 줄곧 지켜보면서 때로는 놀라움을, 때로는 의혹을 나타내기도 하더니 얼굴이 창백해보일만치 긴장해지고 말았다. 고윤학이 못지 않게 긴장해진것은 허담이였다. 허담은 금속테안경을 연방 밀어올리면서 말없이 선채로 있는 한영도와 그가 내놓은 사진 한장을 번갈아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겨들었다. 창가에 서신채로 그이께서는 사색에 잠기시였다.

사진에 찍힌 젊은 녀인, 이제는 로년기를 바라보고있는 그 아들, 그들사이에 가로질린 군사분계선, 그들의 머리우에 드리운 30여년세월, 그 하나하나의 세부는 모두 예리한 비수가 되여 가슴을 사정없이 저며내는것이다. 평범한 한 기사가 수행하고있는 기술혁신과 창의고안의 밑바닥에는 이렇듯 대하와 같은 조국통일념원이 깔려있는것이다.

이윽해서 그이께서는 찢기는것 같은 가슴을 붙잡은채 자리로 돌아오시였다. 그러나 자리에는 앉지 않고 고윤학에게 손짓을 하시였다.

《고윤학동무도 한영도기사의 이 사연을 알고있었습니까?》 이때 그이의 눈에서는 강한 빛을 내뿜었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 무슨 자료나 기술공정에 대한 설명보다도 그것을 먼저 말했을것입니다. 의용군출신의 한 전사, 헤여진지 30년이 넘는 어머님을 생각하고있다! 나는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 많은 사연을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용군전사는 지금 가슴에 무엇을 안고있는가, 그 가슴속에서 무엇이 끓고있는가를 알수 있단말입니다. 저 한영도기사가 매일매일의 생활을 놓고 서울에서 헤여졌다는 어머님과 대화를 하고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저 동무는 어머님을 만나기 위해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가고있다고 생각했을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동무자신이 말해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대목에서 일단 말씀을 중단하고 한영도에게 손짓을 하며 자리에 앉으시였다.

이렇게 되자 한영도는 수첩을 향해 숙이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방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저의 속마음을 낱낱이 펼쳐놓으시였습니다. 다만 저는 내가 하고있는 보잘것없는 하나하나의 일들이 조국통일에 이바지되기를 바랐을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욕망일뿐이지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한영도는 더이상 말을 못하고 자리에 앉더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채 어깨를 들먹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한영도에게 말씀을 건네시였다. 한껏 오열에 떠있는 그의 심정을 위로도 하면서 세세히 물으시였다.

한영도는 스스럼없이 자기의 과거와 가족형편에 대해서 죄다 말씀올리였다. 지어 협의회에 참가하기직전에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울음을 터치였다는것과 생일날을 모르고 지낸것마저 말씀드리였다.

다시 방안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옷앞자락에 손을 밀어놓더니 비스듬히 옆으로 몸을 기울여 피빛이 된 한영도의 얼굴모습을 여겨보시였다. 그의 얼굴에는 침통한 빛이 어리였고 눈섭언저리는 경련이 일어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혈육이 헤여져 30년이 넘도록 만나지도 못하고 생사여부도 알길이 없는것이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방안이 울릴만치 크게 첫마디를 떼시였다.

《한기사동무가 제기한 지향성발파실험을 계속합시다.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아들의 노력이 왜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분단된 조국, 갈라진 우리 인민의 고통과 눈물이 헤아릴수 없을만치 크고 많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 인민의 그 마음속에 힘이 깃들어있습니다. 성공합니다. 꼭 됩니다.》

그이께서는 자리를 뜨시여 처음부터 줄곧 근엄한 자세를 유지하고 서있는 고윤학이앞으로 옮겨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 근로자들은 모두 조국통일의 념원을 안고 아글타글 일하고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들의 열의를 옳게 조직동원하기만 하면 적어도 생산을 지금의 2배는 늘일수 있을것입니다. 예비는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 아닙니까. 동무 생각엔 어떻습니까?》

이제나저제나 하고 자기가 발언할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있던 고윤학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첩을 훑어보고나서 말을 떼였다.

《더 할말이 없습니다. 여기 와서 일주일이 넘는동안 한영도기사를 두번이나 만나 담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사동무한테 그런 사정이 있다는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심각한 교훈을 찾고있습니다. 지향성발파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적으로 도와주겠습니다. 그런데 이곳 기술부의 의견을 들어보면 김책공업대학의 어느 한 연구사의 방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 기사동무의 요구는 그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기사동무, 그것이 사실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예!》

한영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외에 또 무엇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끝까지 도와줍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고윤학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나서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저와 마찬가지로 여기 기업소지도일군들도 이제는 생산의 예비를 어데서 찾아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에서 요구하는 과제를 어김없이 수행하도록 짜고들겠습니다.》

고윤학은 기쁨이 어린 얼굴로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그이께서는 예지에 빛나는 시선으로 감회에 젖어든 고윤학의 얼굴을 잠간 스쳐보더니 주단이 깔린 복도 한끝까지 걸어나갔다가 다시 돌아서시였다.

《좋습니다. 우리의 의도가 동무들에게 리해되였다니 대단히 기쁩니다. 생활은 언제나 거세찬데 종종 우리는 그 한복판에 들어서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맴돌고있단말입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그이의 음조, 패기가 넘쳐흐르는 몸가짐, 그리고 이따금씩 쭉 좌우를 훑어볼 때 번개불처럼 번뜩이는 시선, 그것들 모두가 그이께서 표현하려는 의사와 잘 조화를 이루어 때로는 긴장하게 또 때로는 통쾌한 웃음으로 번져가게 하는것이였다. 일행가운데서도 가장 큰 놀라움을 보이며 흘러내린 근시경을 연방 밀어올리면서 황홀한 시선으로 쳐다보고있는것은 50고개를 넘긴지 오랜 리지적인 허담이였다. 그는 이미 함북지구에서 그이를 수행하면서 어느 한때 마음을 늦춘적이 없었다. 한데 경제문제위주로 보아지던 이번 로정에서 더구나 도저히 예상할수도 없었던 철광산에서 조국통일문제로 돌변하여 자신의 문제로 육박해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것이다.

《허담동무! 의도를 알만합니까?》

그이께서는 방대한 해석과 력설이 필요한 내용을 함축해서 단 한마디로 다짐을 주시는것이였다.

예리하면서도 그만 못지 않게 자애롭고 너그러운 빛이 흐르는 그 시선을 타고 가슴이 쿵 울릴만치 강한 충격을 일으켰다.

《뜻을 알겠습니다.》

허담이 정중히 대답을 올리였다.

《알았다면 좋습니다. 지배인동무!》 하고 그이께서는 이번에는 고윤학이 맞은켠에 앉은 지배인앞으로 자리를 옮기시였다. 지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그의 어깨를 눌러앉히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문제는 채취공업을 비롯한 선행공정들이 앞장서나가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싶은것은 사람과의 사업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늘 한영도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을 안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얼굴은 붉어지고 힘있게 다그어진 손은 자주 허공을 내리그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때 언뜻 창밖으로 시선을 주시게 되였는데 아까 띄여보았던 청년이 아직도 그대로 서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시였다.

《지배인동무!》 하고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키며 물으시였다.

《저기 철길옆에 서있는 청년이 누굽니까? 아까부터 이쪽을 자꾸 지켜보고있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습니다.》

《한기사동무의 아들입니다.》

《그렇소?!》

《예, 제대군인인데 중량화물차운전수입니다. 저 동문 지금 자기 아버지때문에 와있는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저 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던참이였습니다.》

지배인은 철길옆 전주대앞에서 이쪽을 흘끔흘끔 돌아보는 한남준의 모습을 내다보며 벙끗 웃었다.

한영도는 민망스러움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채 얼굴이 벌개서 옹색하게 서있었다.

지배인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저 동무가 처녀를 하나 사귀였는데 오늘저녁 약혼식을 하게 되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문득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 아버지의 지향성발파시험을 한번 더 하게 해달라는것입니다. 그게 부결되면 자기는 약혼식이구 뭐구 다 집어치우고말겠다는겁니다.》

《허허허. 그래 지배인동무는 뭐라고 했습니까?》

《뭐랄게 있습니까. 그건 동무의 아버지 결심에 달린거지 우리가 억지로 막은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 동무는 자기 아버지는 소심해서 다시 해보겠다고 제기하지 못한다면서 지배인의 권한으로 내리먹여달라는겁니다.》

우람한 몸집을 흔들며 지배인이 웃는것을 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도 웃음을 참지 못하시였다.

《그러니 자칫했더라면 저 동무의 오늘 약혼식이 파탄될번 하지 않았소. 청춘남녀의 사랑에까지 금이 갈번 하였습니다. 하하하.》

그이께서는 천만다행이라는듯 두팔을 벌리면서 한영도를 쳐다보시였다.

한영도는 대답을 못한채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였다.

협의회가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디 신랑감을 만나보자면서 아들을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한영도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들을 데리고왔다. 앞에 나서기를 망설이고있는것을 고윤학이 등을 떠밀어 내세워주었다. 청년은 군대식으로 땅을 구르며 몇걸음 다가오더니 발뒤꿈치에서 소리가 나게 차렷자세를 취하면서 《운수련대 3소대 6번차운전사 한남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인사를 올립니다.》 하더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그앞으로 걸어나가 어깨를 붙잡으시였다.

《끌날같은 아들이라더니 정말 믿음이 갑니다. 잘 생겼습니다. 그래 며느리감은 어데 있습니까?》

지배인이 대답하였다.

《선광기사입니다. 우리가 마광장을 돌아볼 때 안내를 하던 그 처녀기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아까 만나보았던 례절바른 처녀의 단아한 모습을 상기하시였다. 대번에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큼 환하게 생겼다고 할수는 없지만 교양에 의하여 탁마되고 지성에 의하여 정제된듯 한 인상을 주는 현대풍의 정숙한 처녀였다.

제대군인 운전사총각과 처녀 선광기사간의 약혼식, 그것은 바람 사납고 무시로 흰구름이 넘나드는 여기 철산봉에서 피여나고있는 또 한쌍의 아름다운 꽃이였으며 마땅히 보살펴주고 지켜줘야 할 새 세대 주인들의 귀중한 첫사랑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냥 마음이 훈훈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남준에게로 다시 돌아서시였다.

《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지향성발파시험을 다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약혼식을 안하겠다고 고집을 쓸 필요는 없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였다. 반죽이 좋은 한남준이도 목이 꽉 메여 말을 번지지 못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고맙습니다.》

그는 조용히 어깨를 떨었다.

그이께서는 한남준의 광산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신 다음 다시한번 그를 고무해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한 미소를 짓고 이곳 일군들의 손을 한사람한사람 잡아주시고나서 한영도의 어깨를 다정하게 잡으시였다.

《지향성발파를 꼭 성공시킵시다. 그 길이 조국통일을 이룩하고 어머니를 만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신심을 가집시다. 그리고 오늘 아들의 약혼식을 한다는데 축하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고맙습니다.…》

한영도가 그이의 손을 부둥켜잡고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드디여 작별의 시각이 다가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홈에 내려와 그들을 바래주신 다음에도 인차 렬차에 오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부총리동무!》 하고 고윤학을 부르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훌쩍 떠나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고윤학동무가 여기 남아서 지배인동무의 의견도 더 들어보고 풀어줄건 풀어주며 한영도동무의 아들 약혼식에도 참가해서 축하해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 동무는 의용군출신이니 밭은 친척도 없겠는데 우리가 친척을 대신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중하게 울리는 고윤학의 음성도 갈려있었다.

그런데 며칠후 약혼식에 참가했던 고윤학이 돌아와서 그이께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해드렸다.

약혼식은 순희라고 부르는 선광기사처녀의 집에서 진행되였다. 순희네 집에서는 일대 경사가 났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축하를 받은데다 또 그이께서 친히 보내주신 선물을 안고 온 고윤학부총리와 지배인까지 참석하고보니 약혼식장은 말그대로 환희와 격동에 넘쳐 설레였다.

마을사람들도 모두 달려와서 제일처럼 기뻐하며 그들의 약혼을 축하해주었다.

고윤학이 먼저 차에 싣고온 지함을 열게 하여 당과류와 술을 내놓았다. 그리고 옷감이 든 화려한 곽을 두개 꺼내놓았다.

방안이 정숙해지자 고윤학은 근엄한 음성으로 말을 떼였다.

《오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의용군출신 한영도동무네 아들 약혼식이 있다는것을 아시고 축하해주라는 말씀이 계시였습니다. 특히 이런 기쁜 날을 보지 못하는 남에 있는 할머님을 대신해서 인사를 전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이것은 신랑신부에게 보내는 옷감입니다. 받으시오.》

고윤학의 말이 끝나자 한남준이와 박순희가 선물을 받았다. 방안이 꽉 차게 사람들이 비좁게 들어섰는데도 숨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너무나 근엄하고 감격스러워 미처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것 같았다.

지배인이 술병을 테서 잔들에 부었다.

고윤학이 잔을 들어올리였다.

《다같이 축배를 듭시다.》

모두가 잔을 들어올리였다. 한영도는 잔을 든채 입술을 짓씹으면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세웠다. 감격이 북받치는대로 한다면 엉엉 소리내여 울것 같았다. 너무나 뜻밖의 놀라운 일에 부닥쳐 자신이 어떻게 처신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해하는것이였다.

고윤학은 한영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지성인다운 리지나 영민성을 전혀 느낄수 없는 모습이였다. 광산마을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억세고 담대한것만이 온몸에서 풍기고있을뿐이다. 다만 눈에 띄는것은 얼굴에 고랑을 깊이 파놓은 년륜의 흔적과 무엇이나 스쳐버리지 않으려는 빛나는 시선이였다.

《어서 드시오. 오늘은 모두 즐겁게 보냅시다. 그렇게 하는것이 기사동무를 축하해주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을 받드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영도는 빚어앉힌것처럼 잠시 움직이지 못하다가 술을 쭉 들이켰다. 그런 다음 잔을 든채로 이슬이 고인 눈을 들어 고윤학을 의미있게 쳐다보며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부총리동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이 은정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서 오늘의 이 영광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전 오늘 사둔집에 오면서 어머님의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사진속에서나마 맏손자가 어떤 영광을 받아안고 장가를 들게 되는가를 보이자고말입니다.》

한영도는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으며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들가방에 넣어가지고왔던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놓았다. 새로 확대하여 액틀까지 곱게 해넣긴 했어도 누르스레 퇴색한것은 여전하였다.

《저는 최근에 지향성발파시험이 실패하고보니 어머니의 생신날마저 잊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저의 이 심정을 헤아려주시고…》

한영도는 또다시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알겠습니다. 우리 앞으로 일을 더 잘하는것으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이 은정에 보답합시다. 나는 한기사동무나 아들, 며느리인 남준이나 순희동무들이 모두 그렇게 살리라고 믿습니다. 자, 어서 잔을 냅시다.》

이날 고윤학은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젊은이들을 축하해주었다.

그후 고윤학이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언제든 틈이 생기면 행복한 부부를 찾아보자고 생각하시였다.

…차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있었다. 이제 또 그이께서 어데로 가실지는 고윤학이도 알길이 없었다. 승용차는 어느덧 련못동입구를 지나 전우동네거리 한복판에 들어서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