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제 1 장

2

 

허담이 물러간후에도 또 한차례의 폭우가 쏟아져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무원 고윤학부총리를 부르라고 이르신 다음 단편적으로 받아들인 일기상태에 대한 몇가지 자료를 다시 뒤적이면서 간간히 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재난은 항상 밤에 오기를 좋아하는것인지? 지난 60년대 평양수해때에도 밤에 조수가 올리미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큰물이 밀려내려왔기때문에 피해가 컸었다. 도당위원회들에서 아직은 별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마음을 놓을수는 없는 일이였다.

고윤학이 나타났다. 정황에 민감하고 무슨 일에서나 빈틈이 없는 고윤학은 평상시와 같은 제낀옷이 아니라 간편한 잠바차림이였는데 배가 불룩한 커다란 봉투를 들었다. 그는 인사를 마치고나자 봉투에서 지도와 서류들을 꺼냈다. 먼저 펼쳐놓는것이 평양시부근 지도였다.

고윤학은 펼쳐놓은 지도우에서 먼저 평양시주변의 지명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며 비내린 상태와 강물의 수위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상원과 승호방면, 북창과 순천방면, 양덕, 장림, 은산 방면 등의 형편을 차례로 설명하고 그다음에는 미림, 봉화 등 여러 갑문들의 현재 수위에 대해서도 보고하였다.

이런 식으로 금천, 평산을 낀 례성강류역일대며 개천, 희천을 낀 청천강류역일대, 함남지구의 성천강, 허천강, 부전강 등 전국의 강하천수위상태를 낱낱이 보고하였다.

고윤학의 보고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사태가 밀릴수 있는 경사지대 특히 주민이 밀집돼있는 희천지구, 창도, 회양 지구, 요덕, 수동 지구 그리고 개마고원과 백무고원 지대들의 상태가 또한 상세히 보고되였다.

전국의 실태를 손금처럼 료해장악하고 조리있게 보고하고있는 고윤학의 실무성에 놀라지 않을수 없을 정도이다.

《알만합니다. 그런데 각도에 시급히 대책을 세울 지도일군들은 파견했습니까? 중요 공장 기업소와 각 저수지와 강하천을 돌보고 수해방지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다시 지시를 주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이제 곧 갑문에 나가봅시다. 아무래도 현지에 직접 나가서 실황을 우리 눈으로 확인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대동강의 수위가 너무 급격히 높아지는것 같습니다.》

《네, 현재 갑문은 한시간에 40㎝씩 불어나는데 그 상태로 계속 불어나면 5시간후에는 넘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문을 열지 못할 리유는 뭡니까?》

《현재 수문을 열면 서해갑문 갑실벽체콩크리트공사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는껏 참다가 보자고 한것이 이제는…》

《알만합니다. 현지에 같이 나가보고 대책을 의논합시다.》

《제가 혼자 가서 정확한것을 료해하고 다시 보고를…》

《아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떠납시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급히 현관으로 나와 차에 오르시였다. 고윤학이도 옆에 앉았다. 비발은 고속으로 달리고있는 승용차 창유리를 때리고 안개처럼 부서져 뒤로 휙휙 날아나버린다. 거리는 어디에나 물이 철철 흘러넘치고있었다.

어떤곳에서는 하수도구멍으로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여 승용차며 뻐스, 전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고인물이 사처로 휘뿌려지군 하였으나 사람들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우산을 받쳐들고 인도를 메우며 끊임없이 흘러가고 흘러오고있었다.

비물에 한껏 씻기운 청신한 가로수들은 가지를 흔들며 꿋꿋이 서있었고 길섶에 총총히 올려붙은 고층아빠트들은 그 위용을 떨치며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문득 어느 한 아빠트의 창문가에서 여라문살 나보이는 어린애 하나가 베란다에 나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좋아라고 깔깔 웃고있었다. 그애 어머니인듯 한 녀인이 뒤따라나와 뭐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언뜻 눈앞을 스치였다.

승용차는 동쪽으로 머리를 돌려 언제에 들어섰다.

언제입구에는 갑문관리국 책임일군들이 나와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려 바다처럼 펼쳐진 갑문저수지의 수면을 바라보시였다. 물안개가 뽀얗게 껴서 맞은켠 기슭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여기서 일단 붙잡아두지 않는다면 이 엄청난 물이 제멋대로 갈개면서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한계선에 이른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손을 짚은채 몇분간 서계시다가 가까이에 있는 갑문관리국장에게 물으시였다.

《국장동무는 갑문이 이제 얼마동안 더 지탱할수 있다고 봅니까?》

그이께서는 마치 수심표식눈금에서 대답을 찾기라도 하려는것처럼 그쪽에 시선을 보내고계시였다.

갑문관리국장은 한걸음 다가서며 《정확히 말씀드리면 현재 상태로는 4시간 40분동안 지탱할 여유가 있습니다.》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사태를 너무 각박하게 만든것이 자기의 잘못이기라도 하듯이.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발이 내리지르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 란간에 바투 나서서 아득히 펼쳐진 수면을 바라보시였다.

이윽해서 그이께서는 언제우를 멀리까지 천천히 걸어나갔다가 돌아오시였다.

《고윤학동무!》

그이의 두눈에서 단호한 결심을 알리는 빛발이 번뜩이였다.

《주저할것없이 수문을 엽시다. 서해갑문공사가 아무리 귀중하다 해도 평양시민들의 안전과 바꿀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인민군대를 믿습니다. 그러니 서해갑문공사는 걱정 말고 수문을 여시오.》

이윽해서 수문들이 열리고 요란한 물소리가 언제를 울리며 지진파처럼 멀리까지 퍼져갔다. 검푸른 물줄기는 용을 쓰며 수문을 빠져나가서는 뽀얗게 안개가 서린 넓은 벌판에 잦아들고만다. 갑문이 생기기전까지는 사나운 짐승처럼 제 성미대로 갈개치면서 온갖 재난을 만들어내던것이 이제는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제갈길을 가고있다.

자못 장쾌한 장면을 한참동안이나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미소를 짓고 고윤학을 바라보시였다.

《이 물이 남포앞까지 가자면 얼마나 시간이 걸립니까?》

《두시간은 걸립니다.》

《그러면 그때쯤해서 전화로 알아봅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서해갑문언제는 끄떡없을것입니다. 우리 인민군대는 당의 결정을 어긴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근방 어디에 또 걱정되는데가 없습니까?》

《순안을 지나서 저수지가 좀 걱정됩니다.》

《가봅시다.》

다른 때는 30분이면 넉넉하던 길을 한시간 실히 걸려서야 저수지에 도착할수 있었다. 현장에는 어느새 평남도당 책임일군들과 근방에 주둔하고있는 군부대 지휘관들이 나와서 근처의 농장원들, 군인들과 함께 까맣게 달려들어 제방을 높이는 한편 수로로 빠지는 물이 넘어나지 않도록 수로보강공사를 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를 맞으며 한시간가까이 이 작업현장에 머물러계시다가 귀로에 오르시였다.

온몸이 화락하니 젖었다. 그러나 기분은 상쾌하시였다. 아무리 큰물이 진대도 평양시는 완전히 피해에서 면할수 있게 되였다. 각도에서도 저수지와 강하천 언제는 끄떡없이 견딜것이라고 하였다. 해방돼서 이날까지 수십년 특히는 60년대이후에 자연개조에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떨쳐나선 전체 인민의 노력이 이토록 큰힘을 발휘하고있는것이다.

그이께서는 흐뭇한 감정에 잠겨 손수건으로 비방울에 젖은 머리를 훔치고 빗질을 하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가 저수지를 떠나 단층문화주택들이 오붓이 들어앉은 마을앞을 지나가고있을 때였다. 어둑시근한 마을앞길에 두대의 승용차가 나란히 서있고 그 둘레에 숱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있었다.

앞가슴에 붉은꽃을 단 고운 옷차림의 남녀 한쌍이 방금 차에서 내려 뭇사람들의 옹위속에 마을로 들어가고있는것이였다.

《결혼식을 하는게 아니요?》

《그런것 같습니다.》

《차를 세우시오. 조금 기다려줍시다.》

차가 멎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정겨이 바라보시였다.

《참 좋은 일이요.》

그이께서는 문득 혼자말씀처럼 외우시였다. 고윤학이도 신랑신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우리 일을 더 잘합시다. 폭우가 쏟아지는 때에도 근심걱정없이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힘이 솟습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기쁨을 이런 때에 맛볼수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히 웃으면서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승용차는 곧 다시 떠났다. 차창밖에 장막처럼 드리운 비발너머로 마을들이 언뜻언뜻 지나갔다.

《고윤학동무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결혼식도 하고 아이들이 웃고… 비는 내려도 즐거운 밤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게 시름없는 밤만도 아닐것입니다. 방금 서울을 비롯한 남녘땅 여러 지역이 큰물피해를 입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 부모형제들을 둔 사람들은 이밤에 잠을 못이룰것입니다. 난 방금 결혼식을 하는 동무들을 보면서 무산광산의 한 기사를 생각했습니다. 그 동무의 아들도 올가을엔 잔치를 한다는데 하루하루 그날이 다가올수록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생각이 자꾸 날것입니다. 그 동무가 이밤에 잠을 이룰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비가 이렇게 옵니까. 무슨 비가…》

그이의 음성이 비소리와 뒤섞이며 나직이 울리였다. 고윤학은 심장이 저려들어 의자 한귀퉁이를 움켜잡았다. 간밤을 새우시고 또 이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실것이다.

(무정한 하늘!)

고윤학은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떨구었다가 곧 쳐들었다.

《지난달에 한영도기사는 1만t발파에서 좋은 실험지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래지 않아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동무가 지향성발파시험에서 실패하고 주저앉은것을 보았을 때는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그것 참 좋은 소식입니다.》

승용차는 량옆에 과수밭과 논벌을 끼고 곧게 뻗어간 큰길을 따라 사뭇 기세좋게 달리고있었다.

그이의 눈앞에는 지난 5월 무산광산에 가셨을 때 한영도기사를 만나던 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살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