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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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성글어졌던 비가 저녁녘에는 또 한축 무더기로 쏟아져내렸다. 대줄기같은 비발은 뽀얗게 안개를 일구면서 대지를 두들겨댔다.

정원에 늘어선 나무들의 무성한 가지밑에도 비줄기는 거침없이 쏟아져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창밖에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허담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그 다음은 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허담은 당중앙위원회 비서이다.

《이미 보고되였지만 현재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전례없이 고조되고있습니다. 특히 전두환의 일본행각과 관련해서 전체 인민이 불만을 폭발시키고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학생들의 투쟁기세가 대단히 높습니다.》

계속해서 허담은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남조선청년학생들이 투쟁을 잘합니다.》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세자료묶음을 앞으로 밀어놓으며 뒤를 이으시였다. 《남조선인민들이 이번 전두환의 일본방문을 〈굴욕외교〉로 〈구걸행각〉으로 보는것은 정확합니다···》

전화종이 울렸다.

집무탁앞에 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중히 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예감하신대로 수령님의 음성이 귀전에서 울리였다.

《정일이 전화받습니다.》

《어떻소? 이번 비가 무슨 일을 칠 잡도리같은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말씀에서 무거운 근심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서둘러 말씀올리시였다.

《적도우에 생겨난 저기압의 영향에서 쉬이 빠질것 같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조선반도전체가 물주머니에 든 형편입니다.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없지만 이 상태가 하루이틀 더 계속되면 일부 주민지대들과 농경지들이 침수될 위험이 있을것 같습니다.》

《나도 알아보는중인데 양덕, 맹산 아근에도 비가 많이 온다니 평양도 쉬이 걷히지 않을것 같소.》

《여러개의 갑문이 건설되였기때문에 비가 더 내려도 평양은 별문제없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해방지대책은 철저히 세우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벌써 피해를 입고있습니다. 저녁 6시 현재 락동강상류와 북한강류역에 큰물이 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기가 허술한데요. 이런 비엔 못견디오. 사람들이 많이 사는덴데···》

수령님께서는 말끝을 흐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가슴이 저리여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항상 느껴오시는것이지만 겨레와 인민을 생각하시는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변함이 없으시였다.

맏이는 맏이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또 막내는 막내대로 심려가 미쳐가시는것이였다.

이렇게 큰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찰 때에는 북과 남의 3천리강토 전역에 널려사는 인민을 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령님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며 다시금 말씀을 이으시였다.

《대책들을 더 연구하겠습니다.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의 동무들이 모두 현지에 내려갔습니다. 지방당들에서도 동원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한순간이나마 마음속 아프심을 잊으시라고 굳이 말씀을 올리시였다.

《알겠소. 그럼 수고들하라구.》

수령님께서는 한결 근심을 덜으신듯 밝은 음성으로 말씀을 마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든채 그대로 서계시였다.

아까부터 그이께 사업보고를 올리고있던 당중앙위원회 비서 허담은 느닷없이 심장을 찌르는 자책감에 몸둘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그는 수화기에서 울리는 수령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으나 김정일동지께서 무엇때문에 자리에 앉지 못하시는지는 충분히 알수 있었다. 허담은 점도록 그대로 서계시는 김정일동지께 무엇인가 기쁜 소식을 알리고싶었다. 하지만 그가 보고드릴것들은 모두 시급히 가르치심을 받아야 할 문제들뿐이였다.

《계속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심정을 아신듯 수화기를 놓고 자리에 앉으시였다.

창밖에서 울리는 비소리가 또다시 허담의 가슴을 야릇하게 자극했다.

《미국에 있는 교포 최성덕이 조국을 방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최성덕이···?!》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등받이에서 잔등을 떼며 나직이 입속말로 외우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에 적들속에 끼여돌다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서서히 사라져버린 인물이였다.

《최성덕이가 오겠다 한단말이지요? 여기··· 북으로···》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소리가 한결 더 세차진 창밖을 내다보며 다시금 되뇌이시였다.

《오는 추석에 자기 부친의 성묘를 하는것이 그의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 부친의 묘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룡성구역에 있습니다.》

《부친의 성묘라···》

그이께서는 최성덕에 대해서 이미부터 잘 알고계시였다.

최성덕은 1930년대후반기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했는데 그의 부친 최영호는 《상해림시정부》와 관련된 인물로서 화전에서 《화성의숙》을 주관하였으며 후대교육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최성덕은 부친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중국 장개석 《국민당》군대에 복무하면서 해방될무렵에는 대좌급으로까지 승진하였었다.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온 그는 군부안에 자기의 지반을 닦아나갔다. 그 과정에 미군의 신임을 받게 된 최성덕은 미국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다가 1950년 6. 25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급급히 돌아왔다. 그는 한때 리승만의 총애를 받으며 《반공》의 최선두에 서서 괴뢰군 사단장과 군단장직을 력임하였으며 정전담판때에는 미국측대표단의 유일한 괴뢰대표로 선발되였다. 전후에는 군복을 벗고 남조선괴뢰정부의 장관급으로도 있었고 어느 나라 대사로도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의 남조선 최고위당국자였던 박정희와 사이가 나빠져 미국으로 망명해간 다음 지금껏 거기에 눌러있는것이다.

현재 그는 워싱톤에서 민족주의색채가 농후한 자그마한 출판물을 하나 발행하는 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이 지내고있다.

이러한 최성덕이 조국방문을 요청했다는것은 간단히 스쳐버릴 일이 아니였다.

《방문목적에 대하여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그이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다시한번 물으시였다.

《다른 용무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허담은 선자리에서 정중히 대답을 올렸다.

《그의 방문목적에 대한 해당기관의 립장은 어떻습니까?》

《그의 과거가 너무 적대적이였기때문에 결심하기 어려워합니다.》

《동무자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허담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처져내린 안경을 밀어올리며 말씀드리였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뜻밖의 일이여서 저도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만합니다. 최성덕이 단순히 성묘나 하자고 방문요청을 했을수는 없습니다. 그도 여기 우리한테로 찾아올 때가 되였습니다. 한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그가 평양에 와보게 해달라고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우리에 대하여 리해하기 시작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 속심은 어떻든 표면상으로는 선친의 묘나 찾아보겠다고 한다는데 그걸 막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막아서도 안됩니다.

이런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적대시해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말년에 뒤늦게나마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의로운쪽을 택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근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의 나이도 적지 않습니다. 70객이면 인생말년입니다. 나는 그를 받아들이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허담은 후두둑 뛰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의식하며 자세를 바로 잡고 힘주어 대답을 올리였다.

이즈음 최성덕의 문제로 하여 두루 생각도 많았고 심정도 복잡했던 허담이다. 그도 리성적으로는 최성덕의 방문요청을 수락하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감성은 그것을 좀체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적들중에서도 거물급의 적이였다. 따라서 동족의 살륙에 앞장섰던 그를 도저히 용서해주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김정일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이 시각 자신의 편견에 대한 깨달음이 너무도 쉬이 이루어지는것이 이상스러울 정도였다. 거대한 바다를 마주하고 그 품에 흘러드는 푸른 강줄기들을 보는듯싶었다.

그는 애써 진정을 하며 나직이 말씀을 올리였다.

《저는 요즘 와서 자기 사업을 매우 심각하게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당의 전략적방침은 명확히 제기되여있지만 우리 일군들이 일을 쓰게 못해 진척이 잘 되지 않습니다. 7. 4북남공동성명을 채택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으나 우리의 공명정대한 그 어느 방안 하나 실현시킨것이 없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지꿎게 분렬주의로선을 고집하면서 자기 립장을 변경시키지 않음으로써 현재로서는 대화의 가능성마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해서나 그들을 설득시켜내야 하겠는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비서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뜨거운 정이 흐르는 나직한 음성으로 저으기 흥분한 허담을 제지시키시였다.

《물론 비서동무가 자기 사업을 비판적으로 보자는것은 리해됩니다. 우리가 7. 4공동성명을 발표한후에도 여러번 현실적인 방안들을 제기했고 또 그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동무랑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어느 하나도 남조선당국자들과 호상리해에 도달한것이 없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된것은 전적으로 분렬주의자들의 완고한 옹고집탓입니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과의 관계가 풀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조국통일위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다고 보거나 전도가 암담하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사람들의 통일열망이 날을 따라 커가고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진심, 우리의 성실한 노력이 훌륭한 결실을 맺을것입니다.》

확신에 넘치신 그이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허담은 숙연히 머리를 숙이였다.

《알겠습니다.》

허담은 그 짧은 대답속에 자신의 변함없을 신념과 결의를 다 담지 못한것 같아 한순간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물러나갔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