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4

 

제 9 장

4

 

7월 4일 보통강기슭의 유원지에서는 미국청년들만이 모인 야회가 있었다.

이 야회에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 외국기자들이 초대되였다. 미국독립절을 경축하는 야회였다. 악기류와 음식은 조선측에서 보장하였다.

이 사실은 미국과 서방의 일련의 신문들에 폭넓은 《관대성》과 《아량》으로 소개되였다.

야회시작은 이상할 정도의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흘렀다. 그러나 몇잔의 술이 오가자 떠들썩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나라와 이 나라에 대한 미국정부의 적대시정책을 놓고 격렬한 론쟁을 벌렸던것이다. 귀국하는 즉시 미국청년대표단의 명의로 정부와 국회에 《항의각서》를 제출하기로 락착을 본 그들은 아메리카토착민들의 구전민요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노래도 부르며 춤도 추었다. 한 청년은 먼곳에서 낚시질을 하는 로인에게 찾아가 조선전쟁때 침략자로 왔던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두고 심심히 사죄를 하며 춤판에 이끌려고 애썼다. 미국말을 모르는 로인은 술취한 청년의 잔등을 두드려주며 《이봐, 아메리칸스끼, 몹시 취했네그려. 예서 조금 올라가면 약수매대가 있어. 그걸 마시면 쑥 풀리네.》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 청년은 로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신바람이 나서 춤을 추며 돌아왔다.

《여보게들, 용서를 받았네.》

이 모든 광경을 우울히 지켜보는 밤색머리청년이 있었다. 두팔을 엇갈아끼고 버드나무에 잔등을 기댄 그 청년은 전자풍금과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야성적인 쟈즈곡에 잔뜩 기분이 잡친듯 눈살을 찌프리고있었다.

그는 폴리오였다. 폴리오는 엊저녁 림향옥이라는 처녀의 집에 갔다가 그 집 주인공들의 과거사를 열심히 파고들던 프랑스기자 하쎈의 《포로》신세가 되였던것이다. 류진영이 그에 대해 소개하는 바람에 하쎈은 먹이를 본 히에나처럼 달라붙어 하루동안만 취재에 응해달라는것이였다. 하쎈이라는 더벅머리는 재경이와 향옥에게까지 《하루동안》만 하며 사정했다. 향옥은 예술공연때문에 그 손탁에서 벗어났으나 재경은 순순히 응했다. 폴리오는 진영이까지 권고하는데다가 《군사지식》에 해박한 재경이가 응하는바람에 뿌리치지 못했다. 류진영은 개막날 다음부터 자기대신이라고 하며 재경이를 그의 안내 겸 동무로 붙여주었었다. 영어의 토막말도 꽤 번지고 벙어리 손짓으로 의사표시를 멋지게 하는 재경이와는 인차 마음이 통하게 되였다.

그런데 폴리오와 단둘이 있을 때면 《아메리칸》과 이스라엘복고주의자들을 단주먹에 때려눕힐듯 하던 재경은 하쎈의 《요술》에 걸려들었는지 미국청년들의 야회에 가보자는 청까지 순순히 받아물었고 미국청년대표단 단장과는 무슨 정이 통했는지 아직까지 붙어앉아 별의별 손짓을 다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있었다. 어제낮에 있은 반제련대성집회에서 미국청년대표단쪽에 손짓까지 하며 세계도처에서 벌리는 미제의 만행과 이스라엘복고주의자들의 책동을 규탄했던 (그 일로 하여 폴리오는 십년묵은 체증이 떨어진것만치나 속이 시원했다.) 폴리오로서는 여간만 불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차를 타고왔으니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그가 강우에서 뽀트를 타고있는 처녀총각들쪽에 시선을 주고있을 때 재경이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쳤다.

《그만 가자고 하네.》

말보다도 그의 눈짓으로 알수 있었다. 하쎈이 배웅하듯 일어선 미국청년들한테 손을 저어보이며 그들쪽으로 걸어왔다. 폴리오에게 안됐다는 말을 하며 차에 오른 그는 재경을 돌아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송은 저 사람들이 밉지 않습니까?》

프랑스어통역이 아니라 영어통역을 대동한 하쎈은 영어로 물었다. 폴리오는 마침 자기가 재경에게 묻고싶었던 질문이라 주의깊이 재경이를 보았다. 재경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저 사람들은 거의가 다 진보적청년들입니다.》

《저들은 자기들을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당신네 생각과는 다르오.》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우리 청년들처럼 되기를 바래 노력할따름입니다.》

《오, 배포가 대단하오.》

《기자선생, 세계의 제국주의자와 온갖 악을 쓸어버릴 결심을 품은 우리들이 그만한 배포와 아량도 없겠습니까.》

《이를테면 당신은 온 세계의 자주화위업을 말하자는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거대한 고층건물도 한삽의 세멘트로 시작되는데 지금은 기초가 아니라 산악이 일어서고있습니다.》

《당신은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속에서 자본주의에로의 방향전환을 한것은 모르겠지요?》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개별적인 배들이 등대와 타수를 잃을 때 갈팡질팡할수 있겠지만 파선된 배의 선원들도 등대를 보면 살아날 힘과 용기를 얻는법이 아닙니까.

세계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추켜드신 주체의 등대를 따라 반드시 정의와 진리의 승리봉에 도달할것입니다.》

《당신은 주체사상연구가인가요?》

《네, 우리 청년들은 다 그렇답니다.》

하쎈은 두손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불구상태의 처녀에게 청혼하게 된 동기와 남녀사랑의 륜리관을 물었다.

폴리오는 그에 대한 재경의 대답에는 별로 흥심이 나지 않았다. 전날 미국에서 산다던 로인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정도 알고있은데다가 남녀사랑의 이야기는 그의 옛상처를 아프게 하는 매운재처럼 느껴졌기때문이였다.

하지만 향옥이라는 처녀의 표상이 안해의 모습을 떠올리여 마음이 쓸쓸해졌다.

이로부터 3일후 폴리오는 또다시 저세상에 간 안해를 애모쁘게 그려보게 되였다. 그는 류진영의 호의로 조선민족구락부에서 열리는 《통일의 밤》야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외국인이란 오직 그뿐이였다. 그는 송재경의 서툰 영어와 이따금 류진영이 와서 하는 말을 듣고 세계각지에서 온 《해외교포》들이 모인 이 야회의 의미를 알게 되였다.

폴리오는 《통일렬차 달린다》는 음악과 함께 모두가 허리를 붙안고 긴 렬차를 만들어 장내를 휘돌 때 눈물을 삼켰다. 그 역시 재경이의 팔에 휘감겨 렬차의 한 차량이 되여 장내를 휘돌았다.

다음날저녁에도 폴리오는 조선민족구락부로 오게 되였다. 조선청년학생대표단의 정식 《초청손님》이 된것이였다. 1층 오른쪽의 널직한 방에 안내된 그는 수십명되는 청년들의 따뜻한 포옹과 인사속에 한동안 어리둥절해졌다.

벽을 따라 빙―둘러 원탁식으로 마주붙여 차린 연회탁이 순수 자기를 축하하기 위한것임을 안 그는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였다. 두시간남짓 진행된 상봉연회에서는 그의 고향과 동료들에 대한 물음도 있었고 미리 준비한듯싶은 조선청년들의 노래와 춤들도 있었다. 폴리오는 여러 사람의 손에 끌려 함께 노래도 불렀고 모국의 노래를 요청하는통에 자기가 즐겨하던 민요를 성의껏 불렀다.

밤이 깊어 그가 차에 올랐을 때 어데론가 잠시 사라졌던 진영이가 차에 올랐다. 몹시 흥분한 기색이였다. 운전사더러 차의 속도를 최대로 하라고 했다. 무엇때문인가고, 밤을 같이 새려고 하는가고 묻는 물음에 진영은 가보면 안다고 하였다.

호실에 들어섰을 때 두명의 중년간부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라는것을 안 폴리오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엉거주춤히 굳어져있었다. 앞상우에는 커다란 지함이 놓여있었다. 그와 따뜻이 인사를 나눈 일군이 정중한 자세로 푸른 표지의 증서를 쥐여주며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 때 그는 너무나도 상상밖의 영광과 행복에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박한 선물이지만 여기에는 자신께서와 우리 나라 청년들이 폴리오를 생각하는 진정이 깃들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군으로부터 또하나의 명세표를 받아쥔 폴리오는 뿌잇하게 흐려드는 망막을 통해 수십곡의 조선명곡과 세계명곡, 빠라과이 민요들이 적혀있는것을 알아보았다.

목이 꽉 메여오르며 울음이 터져나올것 같았다. 어떻게 인사말을 했는지 모른다.

《음악을 한번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그 일군이 소탈한 웃음을 짓고 하는 말에 그는 애써 웃음을 짓고 서둘렀다.

진영이의 도움으로 지함을 헤치고··· 드디여 씨디원판이 돌아가자 그가 무척 즐겨하는 꽃시계덩굴(꽃이름)민요가 흘러나왔다.

《가사발음이 정확합니까?···》

그 일군이 물었을 때야 폴리오는 꽃시계덩굴에 대한 민요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국에서 듣던것과 다르고 가사발음도 색다른것을 알았다.

《더 명랑하게 들립니다.》

《그 노래곡목들은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몸소 선정해주시고 우리의 예술인들을 준비시켜 음악수록을 하게 하신것입니다. 우리 예술인들이 며칠사이에 동무네 노래를 익혀 부르다나니 서툰것도 있을것입니다.》

《저때문에!···》

폴리오는 숨이 꺽 막혔다.

진영이가 그의 손목을 꽉 틀어잡으며 격한 소리로 웨쳤다.

《폴리오, 잊지 말라. 넌 죽어서는 안돼. 이건 네가 죽지 말고 일떠서··· 참된 인생과 행복을 찾으라는거야.》

폴리오는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록음기를 그러안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가 몸부림치듯하며 오열의 눈물을 쏟고있을 때 조선민족구락부의 한 응접실에는 조창혁과 레할이 마주앉아있었다. 레할은 통역도 없이 누구도 모르게 조창혁을 찾아왔다.

그는 조창혁이 불러온 애젊은 마쟈르어통역을 보자 약간 불안스러운 눈길로 뭐라 말했다.

통역은 난처한 표정으로 창혁을 보았다.

《이제부터 말할 내용은 극비로 되니만치··· 제가 통역을 해도 무방한가고 묻습니다.》

《일없다고 하오.》

창혁의 말에 레할은 입술을 사려물고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먼저 내가 하게 될 말을 당 최고수뇌부에 보고해줄것을 부탁합니다.》

《들읍시다.》

창혁은 은연중에 긴장되였다.

레할은 이번에 대표단단장으로가 아니라 부단장으로 왔다. 단장은 56년도 사변때 부모와 함께 추방되였던 사람으로서 류진영이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청년이였다.

창혁이 수첩을 펼쳐놓자 레할은 미타히 보다가 말을 떼였다.

《나는 까다르 야노쉬동지의 동의밑에 우리 나라의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의 희망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조동지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야노쉬는 지금 건강상 휴식으로 자택에 들어가있지만 실제상 연금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반혁명의 대두와 싸우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린 조선동지들의 조언을 중시하자고 합니다.

앞으로 설 정부와 다시 꾸려질 당의 정치정강과 로선은 조선로동당의 정책과 로선을 지침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창혁은 언젠가 부디뻬슈뜨에 갔을 때의 일을 더듬어보았다.

왜서인지 가슴이 쓰려들었다.

《조창혁동지, 보고드려줄수 있겠습니까?》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창혁동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혁은 그가 더없이 측은했다. 뿌리가 썩은 나무가 거목으로 될수 있는가.

그는 무겁게 말을 이었다.

《내가 알고있는 우리 당의 사상과 립장은 〈혁명은 수출할수도 수입할수도 없다〉는것입니다. 이 사상은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것입니다.

자기 나라 혁명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다 해서 우리 당에서 세계혁명과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외면한다는것은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나라가 축전주최국으로 커다란 부담을 떠안은것도 본질상 세계혁명을 위한 투신이 아니겠습니까.

잘못된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귀국의 혁명은 몇몇 반동들의 제압에 있는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선 혁명의 첫 발자국을 떼실 때 총대와 함께 사상을 앞세웠습니다. 한사람 두사람 묶어세우시여 전체 인민대중을 불러일으키시는데로 지향하셨지요.

이렇게 볼 때 문제는 사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인민대중을 각성시키고 일떠세우는 사업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레할동지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말한바 있지만 귀국의 청년들과 인민들속에서 서방의 부패한 사상과 생활양식을 뿌리뽑지 못하는 한 그런 상태에서의 혁명이란 혹독하게 말해 3일천하로 끝날것입니다.

지나치다면 용서해주시오.

나는 레할동지가 말하기 어려운 용건을 말했기때문에 나역시 숨김없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견해를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귀국의 형편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생각하고싶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당과 청년단체 일군들이 원칙적립장을 견지하면서 청년대중과 인민들을 각성시킨다면 다 바로잡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창혁은 자기의 이 락관적희망이 1년도 못되여 무너지리라는것을 몰랐다. 그러나 3년후 서유럽나라의 한 대사로 임명되여가는 길에서 만난 레할로부터 조선사회주의를 모색하며 활동하는 강력한 력량이 생겨 새형의 당재건에 착수하게 되였음을 알게 되고 그들이 늘 평양의 봉화를 잊지 않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크나큰 감격과 긍지에 휩싸였다.

축전마감을 앞둔 주최국의 날 창혁은 하쎈도 만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았던 하쎈은 머지않아 행성은 하나의 주의와 사상으로 일색화될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자주화의 세계! 자주화의 세계지요. 왜냐하면 자주란 모든 인간들의 공통된 본성이기때문입니다. 21세기, 모름지기 한세기후에는 망각과 무지의 잡초를 헤친 자주화의 꽃이 온 행성을 휘황히 뒤덮을것입니다. 그것은 말그대로 주체사상의 화원일테지요.》

창혁은 언젠가 그가 선언했다던것처럼 《주체사상의 신봉자》가 또 한명 생겼음을 깊은 감동속에 깨닫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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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켐프는 《용암의 흐름》을 지켜보고있었다. 《인떼르 샤트》(텔레비죤 중계위성)에서 보내오는 평양시가에서의 홰불행진장면이였다.

끝없이 흘러가는 그 불의 흐름은 켐프로 하여금 청춘시절의 어느 하루저녁을 그려보게 하였다.

쓰딸린그라드격전에서 쏘련군대의 승리가 보도된 날이였다.

플로리다주의 그의 고향도시에서는 이날을 명절로 맞았다. 손에 꽃불을 든 사람들이 시가를 휩쓸었고 시장의 지시에 따라 몇발의 축포까지 날아올랐다. 켐프도 기쁨에 젖어있었다. 그와 함께 로대에 나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꽃불을 저어보이던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켐프야, 너도 기쁘냐?》

《네. 그들의 덕으로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을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대답에 한때 공화당상원의원이였던 할아버지는 이가 쏘는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은 옳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 나치즘은 광견병이지만 볼쉐비즘은 흑사병과 같은것이다. 미친개병은 그 개를 때려잡으면 되지만 흑사병은 그렇지 않다. 그 병은 우리의 이 3층가옥과 세습으로 물려받은 온갖 동산, 부동산과 은행구좌를 다 없애버리고 너와 나를 빈민가의 거지들과 함께 밭을 갈던가 아마포대를 나르게 할것이다.》

켐프는 그때의 할아버지처럼 얼굴살을 찌프렸다. 《용암의 흐름》이라고 소개하던 방송원의 말소리가 다시 울렸다.

《···지금 180여개 나라와 기구단체를 대표하는 이 청년들이 웨치는 구호는 〈미제는 조선에서 물러가라!〉〈지배주의와 인종주의, 온갖 착취와 억압을 반대한다!〉〈반제련대성 만세!〉입니다···.》

켐프는 탁에 놓인 원격조종기로 그 화면을 꺼버리고 투구경기가 한창인 오른쪽 텔레비죤화면에 시선을 돌렸다. 평양축전화면을 볼 때마다 기분전환을 위한 《진정제》로 켜놓군한 흥행시사프로였다.

씨애틀시와 필라델피아시의 경기는 지금 한창 백열전을 이루고있었다. 그러나 갈범처럼 날뛰는 선수들의 모습도 켐프의 기분을 전환시켜주지 못했다. 그는 《인떼르 샤트》의 화면은 꺼버렸지만 록화기는 부지런히 그 홰불행진장면을 수록하고있다는 생각을 하며 침울한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는 이미 《평양축전》에 대한 모든 사업이 실패로 끝났다는것을 깨닫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단 한개의 《성과》만이라도 포착하기 위해 축전행사의 매 장면들을 빠짐없이 보았다. 실패건 뭐건 사업을 빈틈없이 총화짓기 위해서라도 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투구선수들이 사라지고 씨엔엔방송국의 두 남녀론평원이 나타나자 켐프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의 쇠약해진 의지를 비웃게 되였던것이다.

팍쓰기대옆에 무둑히 쌓인 통신자료들을 가져다 펼쳐보던 그는 전날저녁 너무 기분이 잡쳐 본것, 안본것 마구 뒤섞어놓았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새롭게 정신을 도사려 그 자료들을 처음부터 죄다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랭글리 숲속(미중앙정보국이 자리잡은곳)에서 보내온 자료들까지 포함되여있는것이였다.

《미국 워싱톤〈워싱톤 포스트〉지사 앞

황홀함과 화려함으로 특징지어지는 축전개막행사 며칠후에 북조선청년들의 홰불행진이 있었다. 이 홰불행진은 반제련대성, 자주, 친선, 단결을 위한 청년들의 의지를 시위하는것으로 되고있으나 실제상 북조선 령도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하며 김일성주석의 유일한 후계자이신 김정일지도자께 충성을 맹세하는 행사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홰불행진에는 1만명이 훨씬 넘는 세계 5대륙대표 거의 전원이 참가하였다.··· 홰불행진은 장중하면서도 씩씩한것으로 지구위성에서 보면 용암의 흐름처럼 보였을것이다···》

《영국 런던 로이터통신사 앞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반제〉와 친조선적감정의 축소판이라고 볼수 있다. 모든 정치행사장과 연단들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지어는 영국의 아일랜드 정책까지 비판하며 신식민주의책동들을 규탄하였다.

평양에 오기전까지 이 나라에 대하여 반감을 품고있던 서방세계의 청년들도 180°의 태도변화를 보이고있다.··· 현재 평양에는 1 000여명 가까운 외국기자들과 촬영가들이 전례없는 축전의 내용과 양상을 놓고 격찬의 보도를 아끼지 않고있다···.》

《극비, 제임스 켐프 귀하

오늘 괌도를 떠나 조선남해를 기동중이던 7함대소속 구축함에서 약간한 소요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직장교의 불찰로 북조선의 실상을 새롭게 알게 되였다고 하면서 북조선을 목표로 한 작전연습준비는 중지돼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그 주동분자들은 제대시키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켐프는 눈섭을 이지러뜨렸다. 내용도 불쾌했거니와 일반통신자료들속에 비밀전문까지 섞여있기때문이였다. 서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초인종단추를 누르려던 그는 전문웃머리에 자기의 수표가 적혀져있는것을 보고 억이 막혔다. 그러고보니 3일전에 이 내용을 보았던것이 기억되였다. 이제는 건망증까지 심해졌다는 서글픔이 왔다.

그 어느 자료 하나 반가운것이 없어 더 볼 필요가 없다고 덮어버리려던 그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눈을 흡떴다.

취임식전의 레간대통령을 찾아와 묘한 질문을 한것으로 켐프네의 주목을 끌었던 하쎈이라는 기자였기때문이였다. 중앙정보국 문서고에 사진과 경력까지 자상히 밝혀있는 하쎈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수립을 위하여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을 행사》할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그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겠는가고 물었다. 그때 레간으로서는 기지있는 답변을 하였다.

《우린 지역분쟁을 경기장안에서의 란투극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께서는 힘의 전략을 계속 추구하시겠다는 뜻이겠지요. 경기장의 〈란투극〉은 경찰의 개입없이는 해결을 못 볼테니까요.》

하쎈은 이 말로써 민족해방투쟁을 탄압하려는 레간의 결심을 비웃었던것이다.

켐프는 하쎈의 맑스머리를 증오에 차 되그려보며 글줄을 더듬어나갔다.

《프랑스 빠리 〈유마니떼〉신문사 앞

6월 27일에 평양에 도착한 나는 그동안 평양시와 서해갑문, 개성의 판문점과 콩크리트장벽을 돌아보았고 지방의 공장과 협동농장들을 일부 보게 되였다. 이 과정에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발전도상의 나라가 아니라 발전된 국가이며 이 나라의 유일한 비극은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그 분렬책동이라는것을 현실로써 알게 된것이다···

나는 축전시작부터 오늘까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화폭과 사상과 정견, 민족과 인종을 떠나 하나의 호흡, 하나의 흐름속에 친목과 우애를 두터이하는 모습들을 보며 수천년동안의 인류가 그려본 리상향의 현존을 보았다···

이번 기간에 나에게서 가장 큰 영광으로, 행운으로 된것은 이 나라 주석이신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탈당한 옛 프랑스공산당원은 복당을 전제로〈동지〉라는 말을 쓴다)의 접견을 받게 된것이다.

20세기 정치계의 거장이시며 사회주의 원로수령이신 김일성주석께서는 고매한 인품과 숭고한 덕성, 해박한 지식과 강철의 의지로 출중하신 위인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위대성을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으로 분석하시면서 인간믿음, 인간사랑이 자신의 철학이고 행동의 좌우명이라고 하셨다. 세계와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일시적인 후퇴와 좌절이 생길수 있지만 조만간 력사는 자주화의 궤도에서 승리적전진을 이룩할것이라고 하시며 그 미래를 환히 내다보신다고 하셨다. 나역시 그 미래를 보고있다.

조선은 세계의 밝은 미래이기때문이다.

나에게서 평양은 슈만의 꿈과 쇼팡의 환상곡에 그려진 몽상과 신비의 락원이였고 슈벨트의 폭풍과 모짤트의 정열에 차넘치는 힘과 순결의 도시였다.

개막행사때의 음악과 무대에 펼쳐진 아름다운 화폭은 내가 보고 느낀 이 나라의 예술적축도였다. 비틀려지고 깨여진 선률과 광적인 몸부림밖에 없는 〈현대예술〉의 어지러움을 가셔내고 아름다움과 고상함에로 이끄는 음악과 무용에서, 거창한 예술화폭의 정교한 안삼불에서 인간의 리성과 감정의 조화된 극치를 보았고 보통인간의 지능과 연출로서는 꿈도 꿀수 없는 구상력과 조직력을 보았다.

이 행사와 축전준비전반을 조직지도하신분은 이 나라의 영명한 지도자이신 김정일동지이시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이를 높이 받들어 〈친애하는 지도자〉,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라고 우러러 모시고있다···

프로메테우스(그리스신화에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올림프스산의 신)는 불로써 인간을 진화시켰다면 평양의 축전봉화는 세계의 량심과 리성을 정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드는 빛발로 되였다.

이 봉화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추켜드신 주체의 홰불을 상징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그 주체의 홰불로 오늘의 세계앞에 빛을 뿌려주신것이다.

그분께서는 위대한 주석의 모습그대로이시고 주석의 인품과 슬기를 그대로 체현하고계신다.

그분은 젊으시다. 푸르고푸르른 젊음은 무성한 수림을 일떠세울것이다.

〈청년들을 사랑하라, 청년들을 믿으라, 청춘 만세!〉이것이 봉화의 웨침이다.

나는 끝으로 다시한번 웨친다.

〈평양 만세!〉

〈인간자주화 만세!〉》

켐프는 종이장을 와락 구겨버렸다.

탁우의 위스키를 부어 단숨에 마셔버리고난 그는 높아지는 맥박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 무슨 공교로운 일인가. 뜻밖에 울리는 씨엔엔 방송원의 목소리에 그는 소스라치듯 놀라 눈을 떴다. 화면에는 김일성주석의 영상이 비쳐있었다.

《··· 이번 축전기간에 김일성주석께서는 여러 나라 당, 국가수반들과 세계청년학생일군들을 접견하시고 꾸바를 비롯한 사회주의나라들과 친조선적인 쁠럭불가담국가 민족구락부들을 돌아보시며 세계청년들의 앞길을 고무하는 담화를 하시였다고 합니다···》

켐프는 심장이 졸아드는듯 했다. 덜레스도 아이젠하워도 저 위인앞에서 지고말았다는 처량한 생각으로 얼굴빛이 컴컴하게 흐려지였다.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만약 지금 덜레스가 살아있다면··· 《혁명의 4세, 5세때에 망할것이다.》라고 한 말은 어느정도 옳았다. 하지만 그 로인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지도자가 계시고 그분들의 위대한 사상을 기치로 든 인민들은 필승불패라는것을 못내다보았다.

(비통할지어다.)

화면이 바뀌여지며 축전첫날에 보았던 개막행사무대가 나타났다.

(천치같은것들!)

축전봉화로부터 화려한 바닥무대로 옮겨가는 화면을 보며 켐프는 악에 받쳐 씨엔엔을 저주하였다. 봉화를 지피는 시각, 점화선이 타들다가 문득 꺼질 때 환성을 올리던 일이, 그 다음 원자탄폭발처럼 눈부신 불길이 솟구쳐오르는것을 보며 심장이 멎는듯하던 일이 돌이켜졌던것이다.

《··· 이 황홀한 화폭은 〈예술의 영재〉로 칭송되시는 이 나라 수령의 후계자이신 김정일지도자께서 창조하신것입니다···.》

화면에는 김일성주석의 초상화를 모셨듯이 김정일지도자의 영상을 전면으로 모시였다.

《젠장!》

켐프는 씨엔엔녀석들을 쏴갈기고싶은 욕망에 씨근거렸다. 하지만 초상화의 모습에서 시선을 뗄수 없었다.

너무나 비범하고 영특하신 모습이였다.

(우린··· 늙었어.)

켐프는 불현듯 자기 나이를 생각했다. 이젠 기력도 쇠진해가고있다. 축전소개화면들이 사라지자 그는 맹금처럼 눈을 희번뜩이며 방금 구겨버렸던 종이장을 찾아 정히 펴놓았다.

폭탄소리 한방 울리지 않고 티각태각의 싸움질 한번 없는 축전이였다는것을 생각하며 그는 이 종이장이 새로 올라앉은 부쉬대통령이나 중앙정보국의 적수들앞에서 자기 체면을 유지할수 있게끔 해주리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모름지기 이 글 전문을 레간대통령과 하쎈과의 인터뷰와 함께 그들에게 보낸다면 전임대통령의 위신을 고려해서라도 이 모든 실패는 어쩔수 없는 《필연》이라는것으로 해석될것이였다.

(무엇때문에 내가 골을 앓아야만 하는가. 이건 나나 레간대통령의 그 어떤 실책도 아닌데야···)

켐프는 콤퓨터기억가입기에 그 종이장을 밀어넣고 이젠 자기도 케씨장관처럼 은퇴할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생각에 잠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