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2

 

제 9 장

2

 

7월 1일, 시가의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로 차고넘쳤다. 모란봉에는 축전개막행사입장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드문히 가랑비를 날리는 하늘은 흐렸으나 모두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대동강에는 꽃배들이 떠흐르고 하늘에는 대형풍선들이 둥둥 떠있었다.

점심녘이 지나자 광복거리 숙소와 호텔들에 들어있던 축전대표들이 거리로 떨쳐나섰다. 울긋불긋한 민족의상차림을 한 180여개 단체대표들이 5월1일경기장을 향해 넘치는 강물처럼 흘러갔다. 얼룩얼룩한 도포같은 차림이 있는가 하면 짧은 바지에 치마같은 남자양복도 있었다.

매개 민족의 력사와 풍속이 비껴진 의상들이였다. 한결같이 웃기도 하고 괜히 눈을 찡긋하며 친구연하기도 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변을 휘살피기도 하는 그들은 수십리연도에 꽉 들어찬 이 도시주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친절한 미소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대표라는 긍지를 더 깊이 새겨안으며 근엄하고 정중한 표정을 띄우기도 하였다.

개개의 인간을 물방울로 볼 때 일단 강물속에 뛰여들면 그 흐름에 따라가듯이 이들모두는 전날 5차아이피씨에서 다시금 강조된 반제구호를 따라부르며 혹자는 기쁨에 젖기도 하고 혹자는 자기가 무엇때문에 이 구호를 부를가, 이 구호에 대한것으로 본국에 가서 추궁을 받지 않겠는가도 생각했다.

자기 대표단의 옷색갈과는 달리 언젠가 모스크바에서 조선사로청일군들을 만나기 위해 선택했던 흰 양복에 진자색넥타이를 매고 시위대렬속에 섞여 걷는 아이레스도 이것을 생각했다.

아이레스가 속한 대표단이 5월1일경기장에 이르렀을 때 비발이 즘즘해지며 하늘이 활짝 들리고 락조에 타는 해가 나타났다.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순간 아이레스의 머리에는 언젠가 이 나라 공화국창건기념일행사때 억수로 내리던 폭우가 행사시간이 되자 불시에 멎고 해가 비쳤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 사실을 들려주던 조선사로청일군은 이 비슷한 실례들이 너무 많아 항간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신통력에서 생겨난 일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혹시 그런 신통력이 실지 있는것이 아닐가? 아이레스는 이 시각 김정일동지의 지시에 따라 인민군비행대들이 남포, 은률상공에서 비구름잡이를 하고있는것은 알수 없었다. 5월1일경기장은 입장행사를 할 축전대표단들의 좌석을 제외하고는 립추의 여지가 없이 빼곡이 차고넘쳤다. 15만군중의 숨결과 말소리들이 웅웅하는 소음을 이루어 경기장안을 휩쓸었다. 그런데 문득 그 소음이 잦아들어버렸다.

이제껏 군중의 열띤 모습에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으려는듯 눈길을 내리깔고있던 악대지휘자가 고개를 건듯 쳐들고 지휘봉을 반쯤 쳐들었다. 촬영기와 사진기를 메고 든 기자들이 일시에 주석단쪽으로 돌아섰다.

《나오신다.》

흥분에 짓눌리운 목소리들이 파도처럼 줄달음쳐 울리다가 폭풍같은 만세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여러 나라 당, 정부 수반들과 함께 주석단에 나오셨던것이다.

두분께서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저어 인사를 보내시자 《만세》의 함성은 귀가 멜듯 한 굉음으로 변하였다. 축전손님들과 외국의 취재기자들은 길길이 뛰기도 하고 눈물을 머금는 이 나라 사람들의 열광한 모습에 함께 환호성을 울리며 놀래기도 하고 얼이 빠진듯 휘살피며 박수를 치다가 그 어떤 흡인력의 작용인듯 경모와 우러름과 도취와 자아망각의 흐름속에 끌려들었다.

(그 무슨 인력이, 그 어떤 충격이 저처럼 사람들을 열광케 하고 눈물까지 머금게 하는가!)

조창혁의 덕분에 주석단가까이 자리를 잡은 하쎈은 줄곧되는 의문속에 환호하는 군중과 두분의 위인을 우러러보았다.

(근엄하며 부드러운 모습이시다.)

그는 첫 인상을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평양종소리가 울리였다. 지심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듯 장중하고 은은한 종소리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 전에 축전가의 밝고 명랑한 선률이 울리며 축전가장물대렬이 늘어서고 뒤이어 각 나라 축전대표단들이 입장하였다. 각이한 민족의상차림으로 춤판을 벌리며 들어서는 그들은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와 웃음속에 맞아들여졌다.

그러면서 그는 평양방문목적의 기본으로 된 김정일동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표정 하나, 동작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허나 하쎈의 경험많은 눈은 그이의 안색과 표정에서 어떤 고성능촬영기로도 찾아낼수 없는 커다란 사랑과 아픔이 섞인 복잡한 심뇌와 사색을 읽었다. 그이께서 남조선대표들의 축전참가를 위해 멀리 3국에까지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신것을 잘 아는 하쎈이였다.

부ㅡ웅! 먼 선조의 잠든 령혼들까지 깨워일으킬듯 한 뿔나팔소리가 울렸다. 강성대국 고구려의 장군복을 떨쳐입은 300명의 뿔나팔수들이 축전개막을 알리는 신호나팔을 부는것이였다. 은은하면서도 장중한 뿔나팔소리가 멎자 깊은 서정을 담은 노래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객석은 쥐죽은듯한 정적에 잠겼다.

흰 옷차림의 두 남녀청년을 태운 무개승용차가 경기장구내로 들어섰다. 두 남녀청년의 손에는 축전봉화를 지필 점화봉이 높이 쳐들려있었다. 주석단에 이르러 인사를 올린 그들은 차와 함께 구내를 한바퀴 돌고 봉화대밑에 이르렀다.

승강식발판에 오른 그들은 장내의 시선을 한몸에 모으며 허공중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띠처럼 드리운 점화선가까이 이르자 승강식발판이 멈춰졌다. 두사람의 손에 잡힌 스텡점화봉이 점화선에 닿다. 번쩍! 눈부신 불꽃이 일자 점화선은 령롱한 빛을 발산하는 구슬띠로 변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봉화를 지켜보았다. 순간 《아!》하는 심장이 멎는듯 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별찌같은것을 날리며 타오르던 점화선의 불이 죽었던것이다. 정녕 죽었는가. 순간 봉화대에서 거센 불길이 솟구쳐올랐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만마리의 비둘기가 봉화의 소식을 알리려는듯 하늘높이 치솟아 날았다.

20만 군중의 눈길이 봉화를 지켜보았고 텔레비죤이 불빛을 포착하였다.

봉화여! 너는 무엇으로 타며 무엇을 말하려느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축하연설이 그 대답의 첫 머리말로 되였다.

수령님의 육성이 울리자 장내는 물뿌린듯 한 정적속에 잠겼다. 수령님께서는 세계의 자주화와 평화, 친선에 대하여, 착취와 압박이 없고 행복한 세계의 건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연설은 도중도중 터져나오는 우뢰같은 박수로 하여 자주 중단되였다.

격정을 못이겨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손을 휘젓는 외국청년들도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세찬 격정속에 계셨다.

그이께서는 별처럼 빛나는 수십만의 눈동자들을 보시며 지금 세계가 수령님의 육성에 귀기울이고있음을 생각하셨다.

커다란 진폭과 무게를 지니신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육성에 담겨진 사상과 진리는 이 시각 행성의 곳곳에 전파로 날아가며 벗들에게는 힘과 용기를, 적들에게는 공포와 전률을 불러일으킬것이다.

아, 수령님께서 계심으로써 이 세계는 얼마나 크나큰 행운속에 있는가.

우렁찬 함성과 환호성이 다시 터져올랐다. 수령님의 연설이 끝나 박수와 만세로 환호하는 객석은 폭풍치는 바다마냥 설레였다. 그이께서는 흥분한 관중과 대표들속에서 자신께서 알고있거나 비록 만나지는 못했어도 가슴속에 따뜻이 자리잡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불히 보시는듯싶으셨다. 그러자 수령님과 자신께서 주석단에 나오실 때 래빈석에서 얼핏 보셨던 주성익과 그와 함께 손을 맞잡고 흔들던 구척장신의 로인을 상기하셨다.

빌려입은듯 품이 후렁한 미색양복, 손을 쳐들어 흔들 때 팔소매가 처져내리며 드러나던 앙상한 팔이 확대되며 떠오르셨다.

니꼴라이 봐제브, 쏘련군 퇴역장령은 지금 무엇을 생각할가.

래빈을 대표한 짐바브웨대통령의 축하연설에 이어 여러 대표들의 연설이 끝나자 개막공연무대가 펼쳐졌다.

7만명의 대공연 《축전의 노래》가 막을 연것이다. 수만명의 무희들이 엇바꿔나오며 다양한 률동과 조형미로 신비와 황홀의 춤바다를 만들었다. 천변만화의 배경대는 글발과 그림속에 력사와 미래를 밝히고 선과 진리와 미의 세계를 그려보였다. 감탄과 환호와 숨죽이는 정적이 교차되는 속에 무아경의 시간이 흘렀다.

고대 《오리엔트》(동방. 태양이 솟는 곳이라는 뜻)문명을 낳은 땅의 사람들도, 현대문명의 발상지라 자랑하는 서유럽땅의 사람들도, 저 멀리 남아메리카주와 오세안주의 사람들도 모두가 처음보는 예술화의 극치에 자기를 잊고말았다.

여기에는 아프리카의 쟝글과 적도의 사막에서 식민주의자들과 싸움을 벌리던 항전투사도 있었고 《개편》의 실체에 환멸을 느껴 번민하는 쎄르게이도, 래일의 자기 운명을 생각하는 폴리오며 런니도 있었고 자기의 《특수임무》마저 잊은 로찌도 있었다.

《어이쿠!》

《저런!》

《앉아서 보오.》

《이 문둥아, 내 눈을 막지 마.》

동행들의 환성과 신음같은 울부짖음속에서 정신우는 부잇해진 눈에 기운을 모으려 애썼다. 주석단에 나오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존안을 뵙게 되면서부터 그의 심장은 잦은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경기장안을 휩쓴 거센 감격의 열파에 실려 자기가 한오리 검불처럼 둥 떠가는듯 한 환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평양에 와 며칠 지내는 사이에 그는 전지전능하고 무한대한 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잡초와 쑥대만이 설렁이던 팔골과 안골, 토성랑의 번화가는 뉴욕의 만하탄거리와 빠리의 샹젤리제를 비웃게 하였고 민족의 후진성을 숙명으로 본 그의 어리석음을 깨끗이 가셔버렸다.

누이동생집에서 지낸 낮과 밤, 거리거리를 돌며 느낀 감상은 어릴적에 읽은 《유토피아》보다 더한 현실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했다. 어찌하여 평양에 다녀온 사람마다가 《민족의 태양》, 《민족의 향도성》을 그처럼 격찬하는가를 깨닫게 된것이다.

《정형! 일어나오. 뭘 생각는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때려서야 그는 장내가 다 일떠서는것을 알았다. 개막행사가 끝난것이다.

온 객석의 관중이 주석단을 향해 만세의 환호성을 울리고 꽃물결을 이룬 공연자들이 주석단쪽으로 내달려왔다.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환호하는 열파에 답례의 인사로 손을 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