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5

 

제 8 장

5

 

폴리오에게서는 주검과 같은 음침한 랭기가 풍겼다. 이따금 웃을 때도 눈 깊숙이 드리운 그늘은 지워지지 않았다. 까뭇한 얼굴과 마구 헝클어진 밤빛고수머리에서도 인생의 비탈길을 걷는듯싶은 사람의 비애와 고독이 느껴졌다. 움푹 패인 볼에 새겨진 ㄱ자형의 상처자국은 련민을 불러일으켰다.

어제 오전 비행장에서 잠간 폴리오를 만났던 진영은 오늘저녁에야 그와 마주앉게 되였다. 대표단영접때문에 바빴던것이였다.

청년호텔의 다른 방들에서는 떠들썩한 노래와 음악이 울렸건만 폴리오의 방만은 무덤처럼 조용하였다. 축전대표가 아니라 사로청의 개인손님자격으로 온 폴리오는 그 어느 대표단과도 섭쓸리려 하지 않았다. 폴리오의 방에 들어섰을 때 진영은 몹시 놀랐다. 창가림은 전부 내려져있었고 불도 켜지 않고있었다. 텔레비죤앞에 웅크리고앉은 폴리오는 자는듯마는듯 한 자세로 있었다.

《시내구경을 좀 했소?》

상두대앞에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으며 진영이가 묻자 폴리오는 심드렁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은 그가 자기의 뒤늦은 방문에 노염을 탄다고 생각했다.

《안됐소. 인차 찾아온다고 하면서도··· 이제 곧 안내통역을 붙여줄테니 가까이 지내며 실컷 구경도 하고 얘기도 하라구.》

《아, 아니 그런게 아니요. 난 이젠 더 볼 기분이 나지 않소.》

《그건 무슨 소리요.》

폴리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랴.

서른넷, 폴리오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것은 끝난셈이다.

피투성이 시체로 딩굴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꾸바탐방기자의 모험적인 비데오촬영으로 세상에 공개된 화면이다. 2월사변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속에는 폴리오의 동료들이 많다. 살아남은 동료들은 종적없이 사라졌다. 3국을 거쳐 오가던 통신도 끊어졌다. 왈드의 주선밑에 찾아갔던 무장그루빠는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마쟈르의 집에 돌아오니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지난날의 집주인이라고 하며 매달 수십포린트의 돈을 거둬갔다.

무엇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무엇때문에?

밤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꿈결에 나타나며 으깨여진 상처자국을 보여주군 했다.

(부르시는구나. 그래, 가야지.)

《등에》의 주인공을 구감으로 삼던 폴리오의 의지는 흔들렸다. 세계민청에 있을 때 진영이로부터 들은 리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부다뻬슈뜨주재 조선대사관일군이 가져다준 조선입국 려권을 받았을 때 가슴치는 고마움과 함께 사형수가 마지막술잔을 마시고 취기에 잠길 때와 같은 흥분을 느꼈다. 평양비행장에 내려서부터 따뜻한 환대와 친절한 미소를 받으며 그는 이 모든것이 한순간의 아름다운 꿈으로 끝나리라는 아픔속에 있었다.

평양시가를 돌아보며 이처럼 될수 없는 자기 조국과 고향을 생각했다.

떼지어 밀려다니는 거지들, 《새로운 류행》에 따라 승용차가 호화마차에 올라 노예사회의 옛전경을 펼치듯 돈과 과자를 길바닥에 쥐여뿌리며 너털웃음을 치는 독재자의 사환군들··· 그 누가, 무슨 힘이 그 더러운 세상을 정화시킬수 있겠는가.

(리상?!··· 사람은 리상만으로 살수 없지 않는가. 차라리 보지 않는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여 폴리오는 창가림마저 죄다 내리우고 무아상태의 망각을 청했던것이다.

《한잔 하지 않겠소?》

폴리오는 랭장고에 가 대동강소주 한병과 두개의 고뿌를 가지고와 상두대우에 놓고 앉았다.

《언제부터 술을 배웠나?》

진영은 놀랐다.

그전의 폴리오는 가문의 래력이라고 하며 술이란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폴리오는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도 배웠소. 나에게서 변함없는 친구란 류와 이 술뿐이요.》

폴리오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고뿌의 술을 단숨에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손잔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진영의 어깨를 툭 쳤다.

《마시오. 이 술은 나를 위해 만든것 같소. 독하지도 않고 묘하지도 않고 은근하면서도 상쾌하오.》

《술군이 다 됐군.》

진영은 인사로 술을 조금 마시고는 고뿌를 내려놓았다. 폴리오가 또다시 고뿌에 술을 부어 마시려는것을 손으로 막았다.

《그만하게. 그동안의 옛말이나 하자구. 동문 안해의 안부도 말해주지 않았지.》

《그는 없소.》

폴리오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두번째로 부은 술도 밑굽까지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류는 그 녀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소?》

《그 녀자는 원래부터 나쁜 녀자는 아니였소. 례절밝았고 상냥했고··· 사랑할 땐 더없이 살뜰했소.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땐 자기 체온으로 내 몸을 덥혀주며 온밤을 꼬바기 새우군 했소. 얼마나 아름답고 정열에 넘친 녀자였던가.》

폴리오는 시를 읊듯 중얼거리고는 문득 너털웃음을 웃었다.

진영은 저으기 이상스러운 감을 느꼈다.

《그가 없다는 소린 무슨 말이요? 내 알기엔 그와 다시 함께 산다고 하던데.》

《류, 내 물음에 대답을 주오. 그 녀자가 어떠했소?》

《나 역시 폴리오와 같은 생각이지. 뺨을 맞고도 다시금 동무를 찾아왔다는것을 알고는 환성을 올렸소. 아무렴 그렇겠지 하고 말이요. 감탕에 어지러워졌다가도 한번 물에 씻기면 여전히 희디흰 새로 있는 백조와 같다고.》

《그는 죽었소.》

《뭐―요?》

진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폴리오는 입가에 비웃는듯 한 웃음을 머금고 랭랭히 말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돈이 모자랐소. 그때 모나코에서 도박장을 경영한다는 한 녀석이 나타나 무용수들과 계약을 맺으며 돌아갔소. 우리 안해도 그녀석과 반년간 계약을 맺었소. 물론 이에 대해서는 나에게 알리지조차 않았소. 그런데 대서양을 건너는 배에 올랐을 때 그 경영업자라는자가 뚜쟁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소. 속혔다는것을 안 그는 술을 마신끝에 바다에 뛰여들었다고 하오.》

진영은 가슴이 뻐근히 저려들었다.

폴리오가 부어놓은 술을 맹물처럼 들이키는 그의 눈앞에는 어느 여름날인가 도마도즙을 만들어주며 조선에 가면 무얼 대접하겠느냐고 생글거리던 녀인의 다정한 눈매가 우렷이 살아올랐다.

불시에 코언저리가 시큰해졌다.

《폴리오, 내가 괜한걸 물었구만.》

《아니, 안해를 나쁘지 않게 추억해주는것만도 고맙소. 다 운명이요.》

폴리오는 침통하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 운명이다. 그 사회가 만들어준···)

그 녀자의 운명은 이미 스트립 쇼무대에 나갔을 때부터 불행에로 기울어진것이 아닌가.

《그런데 동문 어떻게 되여 아랍에 갔댔소?》

진영은 화제를 돌렸다.

《그 말을 다 하자면 끝이 없소.》

《그래도 들어야겠어. 폴리오의 아랍행엔 나의 잘못도 있다고 봐.》

《잘못?!··· 그런데 류의 잘못이라는것은 뭣이요? 아랍에 간것이 나의 잘못된 처사라는것은 옳소. 그걸 놓고 지금 나는 혁명에 대한 나의 마지막광기였다고 생각하오.》

《광기라는건 무슨 뜻에서 하는 말이요.》

《모든데서 허무와 환멸만을 느꼈기때문이요.》

폴리오의 두눈이 타는듯 번쩍이다가 안개에 휩싸인듯 부잇하게 흐려졌다.

사랑하던 안해의 《배신》, 《리혼》, 마쟈르정부의 랭대, 국내동지들의 실패와 희생··· 그 모든것은 폴리오에게 슬픔과 비관만을 안겨주었다.

왈드의 주선으로 아랍땅에 간것은 그 슬픔과 절망감을 뿌리치기 위한데도 있었다.

그는 석달동안 게릴라전강습소에서 교육을 받고 왈드의 부친밑에서 신변호위원직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그 나날에 폴리오는 미중앙정보국과 모싸드의 고용살인업자들의 암살위험을 수시로 당하며 분파지도자들간의 끊임없는 론쟁과 반목을 자주 목격하게 되였다.

분파간의 의견상이는 아랍해방을 위한 싸움을 도우러왔던 쏘련군사고문들의 철수와 그들의 의향에 따른 모스크바 루뭄바명칭 제 인민친선대학출신 지도자들의 《화해》공작으로 하여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한 어느날 폴리오는 《크레믈리의 기침소리를 되받는 등신》들을 저주하며 비밀회의장에서 돌아오는 왈드의 부친과 함께 차에 올라있다가 수류탄저격을 받았던것이다.

《내가 그런 상태에서도 한가닥 희망이라고 할가 삶에 대한 애착이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목숨을 부지하게 된것은 안해때문이였소. 하지만 그 돈, 그 치료비때문에···》

폴리오는 끅―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싸쥐였다.

(그렇댔구나.)

진영은 그를 보기가 괴로왔다.

《폴리오, 그러지 말라구. 그런데 우리 대사관에서 동무의 치료비를 물지 않았나.》

《그··· 그건 안해가 떠난 다음이였소.》

폴리오는 울음을 참으려 하얀 웃이로 입술을 깨문채 한동안 갑자르다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류, 나는 아랍땅에 가서야 류가 말하던 〈주체〉가 무엇인가를 깊이 절감했소. 왈드의 부친도〈주체〉에 대하여 자주 말했소. 하지만 몇몇 사람만이 깨닫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모스크바가 돌아앉고 레간과 고르바쵸브의 새로운 움직임에 따라 무서운 반동기가 닥쳐오지 않았소, 반동기가!》

폴리오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입술을 푸들푸들 떨었다.

《류!》

그는 진영의 손을 꽉 틀어잡았다.

《나는 정말 당신네가 부럽소. 여기 와서 시내를 돌아보며··· 이 땅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했소. 하지만 조상들과 희생된 동료들앞에서 인간된 의무와 도리가 있지 않겠소. 지금 내가 그냥 살아있는것도 그들앞에선 배신이요. 아, 망명객의 고달픔···》

폴리오는 문득 일어나며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렀다.

아메리카주의 토착민들이 부르던 옛노래였다.

창문가에 다가간 그는 창가림을 올리고 묵묵히 서있었다.

그의 어깨가 가볍게 들먹였다.

(우는구나.)

진영은 그를 어떤 말로 위안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지금의 폴리오는 불행의 화신처럼 느껴졌다.

그를 껴안고 울고싶은 마음이였다.

《폴리오,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구.》

《괴롭힌다구?!···》

폴리오는 슬픈 눈매로 진영을 보았다.

진영은 뭔가 속에서 욱―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을수 없었다. 이발이 떡떡 마주쳤다.

《폴리오, 동문 지금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를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알기나 하나. 동무의 일을 늘 외우시며··· 동무를 여기로 오게 하고 그전의 병치료에 대해서까지 관심하신분은 바로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야.》

《알고있소.》

폴리오의 눈에 물기가 그렁해졌다. 그는 창문쪽에 눈길을 주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온건 바로 그분께 인사를 올리자는것이요. 류동지랑 만나 작별인사도 하고··· 난 내 평생의 소원이였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를 만나뵈우면 이 세상살이의 목적은 끝이요.》

《그게 무슨 소리요?》

《결심이지.》

《당신 절망한것이 아니야.》

폴리오는 싱그레 웃었다.

《류, 그 말은 옳소. 나의 앞길엔 아무것도 없기때문이요. 지금 부다뻬슈뜨엔 반혁명으로 추방되였던자들이 개선장군처럼 돌아다니고 우리 조국엔 백색테로의 전횡속에 모두가 노예로 되고말았소. 그래 짐승처럼 그날그날 먹고사는것으로 만족하라는것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것인가.》

진영의 말에 폴리오의 눈빛이 컴컴해지였다.

그는 약간 갈린 소리로 침착히 말했다.

《나는 이번 돌아가는 길로 조국에 가자고 하오. 나의 아버지와 동료들을 무참히 학살한 살인마들을 다문 몇놈이라도 제껴버리고··· 아버지와 동료들의 곁에 눕자는것이요. 얼마나 편하고 좋은 길이요.》

폴리오는 이를 악물며 거칠게 숨을 내쉬였다.

진영은 가슴이 써늘해졌다.

《폴리오, 그건 자살적인 행위야.》

《자살?! 버러지처럼 사는것보다 나에겐 그것이 더없는 행복이요.》

진영은 초조해졌다.

폴리오를 납득시킬만 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번민에 타는 폴리오의 눈을 똑바로 보며 성급히 말했다.

《동문 지금 리성을 잃었어. 절망끝에 하는 행위는 표면상 그 어떤 영웅적행위도 쓸개빠진짓이야. 꼭 하나 명심해둘 말이 있어.

우리 수령님께서 어떻게 혁명을 하셨나. 어리신 나이에 조국해방의 첫걸음을 떼실 때 옆에 동지들은 불과 몇명뿐이였고 전도는 막막했어. 그러나 온 강토를 잠깨우며 혁명의 불길을 일으켜 승리를 이룩하셨어. 동무도 그걸 모르지 않지. 동문 혁명을 잘못 알고있어. 혁명을 몇명 원쑤를 쏴제끼고 정부청사에 화염병을 던지는것 같은것으로 알아선 안돼. 물론 력사로 볼 때 한두 선각자의 희생과 몇방의 총소리로 대중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어. 하지만 그건 례외적인 경우야. 〈지원〉의 뜻을 품고 한사람두사람 대중을 깨우쳐 각성시키고 단결을 이룩하는데 승리의 비결이 있는것이야.》

《류, 나는 한개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해. 구름을 몰아오고 폭풍을 일으키는건 드라곤(룡)만이야.》

폴리오는 다정한 눈길로 진영을 보다가 돌아섰다.

벽장에 이른 그는 빨간 비로도로 싼 타원형의 길죽한 물건을 가지고왔다.

비로도를 푸는 그의 손이 후들거렸다.

진영이에게 낯익은 상어가죽을 씌운 함이 드러났다.

진영은 놀랐다.

《장검이 아닌가.》

《그렇소.》

폴리오는 애처로울 정도의 구슬픈 미소를 보이며 함의 뚜껑을 열고 칼집과 손잡이에 진주와 보석장식이 붙은 장검을 두손으로 정히 꺼내들었다.

그의 얼굴빛이 엄숙해졌다.

《류, 나는 진영동지를 친구로 알고 부탁하오. 이걸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나와 우리 조상들의 선물로 올려달라구.》

그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

재차 잇는 말소리가 떨리였다.

《이 장검을 그분께 올리려는것은 우리 빠라과이땅에도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이 계심으로써 사회주의미래를 굳게 믿는다는것을 아뢰이자는것이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올리면 당신들의 사회주의와 함께 이 장검은 영원할것이 아니겠소.··· 이 사실을 알면 지하에서 잠든··· 나의 아버지도··· 기뻐할것이요. 나는 이번 평양에 와서 사회주의가 영생하리라는것을 다시금 확신했소. 나는 죽어도 류의 조선이 있기에 절대 슬프지 않을것이요.》

폴리오는 밝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의 볼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줄지어 흘러내렸다.

한시간후 봉화산려관에 들어선 진영은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되였다.

빠리발 비행기가 모스크바비행장에서 반나절가량 머물러있을 때 쏘련내무원들이 비행기에 타고있는 세명의 국제테로범을 체포했다는것이다. 평양행 려권을 가지고있는 그들의 몸에서는 려과담배형태의 소이폭탄과 고체형의 최루탄이 나왔다고 하였다. 왈드가 오면서 목격했다는 창혁의 말에 진영은 온몸에 식은땀이 내배였다. 지난 축전들에서도 그런자들의 암해행위로 인명피해까지 났던 일이 상기되였다.

더구나 우리에 대하여 앙심을 품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적으로 직업적인 살인범들과 테로업자들의 수는 4만이라고도 하고 10만이 훨씬 더 된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니 우리한테도 벌써 숨어들어온자들이 있겠구만.》

김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어졌다. 김관은 장검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서 사연을 묻고는 외국인 3호숙소에 뿌려진 삐라라고 하며 꾸겨진 종이장들을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에스빠냐어로 된 삐라였다. 푸른 마지크로 큼직큼직하게 쓴 글발밑에는 우리 글 번역이 연필로 씌여있었다. 《세계청년들의 반제련대성 만세!》, 《우리 청년조직은 국제적사변으로 될 평양축전이 전세계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의 승리로 되리라는것을 확신한다!》, 《미국정부의 조선간섭을 규탄한다!》

이러한 내용의 삐라나 구호는 요지음 외국인숙소나 그 근방에 자주 나돌군하는것이였다. 다른 때라면 이런 삐라가 재미난 화제거리로 되였겠으나 창혁이도 진영이도 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불순계층의 동향에 경각성을 높일데 대한 문제에만 집념하게 되였다. 이틀만 지나면 축전의 막이 열리게 된다는것으로 들썽해있던 기분도 저으기 침하되였다. 축전준비위원회의 한 방에서 당에 보고드릴 문제를 토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관이만은 불순계층따위가 뭐냐 하는 태도였다.

《나는 축전을 앞둔 마지막보고이니만치 시시부렁한건 없었으면 해. 꼭 보고드린다면 이미 축전은 완전무결한 성공작으로 되였고 세계청년운동을 우리가 다 틀어쥐였다는것이요. 그렇지 않소? 평양에 오기 전까지만도 이렇소 저렇소 웨치던치들이 지금은 뻐꾹소리 한마디없이 혀만 차고 눈이 뒤로 돌아갈 지경이거던. 이렇듯 성대한 준비를, 이렇듯 깨끗하고 아담한 도시를 처음으로 보았다고 하며 벌써부터 행성의 꽃이고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별의별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잖소. 우리가 제일 우려했던 서방계청년들이 더욱 그렇소. 그저 깜짝깜짝 놀라는 판이거던.》

《너무 뜨지 마오. 그럼 불순계층에 대해서는 잊어도 된다는거요.》

《허허, 그러나 그들도 움쩍을 못할거요. 아니, 벌써부터 개심해나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소. 오늘도 선전분과에 가보니 그런치들이 가지고온 반동선전유인물들이 가득 들어왔습디다. 임무를 받아 마지못해 가져왔거나 우리를 몰랐던데서 실수로 가져왔다고 해도 그런치들은 지금 간이 콩알만 해서 괜히 임무를 받았구나 하고 벌벌 떨고있을거요.》

《그것도 그럴듯하지만.》

창혁은 김관의 열기오른 눈을 보다가 물었다.

《동무 말대로 불순계층의 동향을 무시한다고 해도 만에 하나의 경우로 개페막행사같은데서 폭탄소리가 난다면 어떻게 하겠소.》

김관은 저으기 당황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숨을 지었다.

《불순계층의 동향도 반영하긴 해야겠소.》

《이제야 바로 나오는군.》

김관을 흘기듯 본 진영은 모두를 향해 심각한 태도로 말했다.

《김관동무도 말했지만 지금 외국청년들의 동향이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나로서는 상상밖이였다는것도 인정하게 되고··· 그러나 불순계층의 동향과 관련해서는 단단히 잡도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축전들의 전례도 그렇고··· 국제상설위원회 동무들과 토론하여 불순한자들로 지목되는치들을 공식행사에서 제외시키자는것입니다.》

《그거 그럴듯하오.》

김관이 맞장구를 치는가싶더니 인차 도리머리를 했다.

《한데 그렇게 하자면 상설위원회에 있는 그 ···진영동무의 친구되는 런니부터 외딴데 실어가야 되는데 그게 쉽게 되겠소.》

《롱담을 할 때가 아니요.》

창혁은 눈살을 찌프렸다.

《그 문제는 보고드리는가 안 드리는가가 아니라 우리로선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것밖에 없소.》

《옳소. 한데 폴리오의 선물건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 비슷한 개인적선물은 내가 받은것만도 여섯점이요.》

《그거야 우선 보고드려야지.》

김관이 더 론할것이 없다는식으로 말했다.

최근 축전에 오는 거의 모든 대표단들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릴 선물을 가지고왔다. 그 수자는 외교부나 당 국제부를 통해 직접 올리는 여러 나라 당, 국가수반들을 비롯한 명예손님들의 선물을 제외하고도 매일 평균 20점이상 되고있다.

협의회가 끝나 모두가 주섬주섬 일어설 때 지정철부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들 있구만. 〈전대협〉이 출발했소.》

《전대협이?》

모두가 껑충 뛸듯 한 자세로 그를 보았다.

《몇명이 옵니까?》

김관이 다급히 물었다.

《한명이요.》

지정철의 대답에 3백명을 기다렸던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그늘이 서렸다.

《어떻게 되여 한명뿐입니까. 〈전대협〉의장은 어떻게 해서든 대표단을 구성해보내겠다고 했는데.》

《전대협》초청문제로 3국에 나갔던 일군이 물었다.

다음날 아침 국제상설위원회에서는 축전주석단 제일 가운데 모실 위대한 수령님과 여러 나라 대통령들의 명단을 보내왔다. 그 명단에는 김정일동지를 꼭 축전주석단에 높이 모셔야 한다는 여러 나라 대표들의 반영이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