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3

 

제 8 장

3

 

밤 한시, 대성산주작봉으로 한대의 승용차가 살같이 달려올라갔다. 구불구불한 길우에 그려진 나무그림자들이 두줄기 불빛에 씻겨져버린다.

차가 멈춰서고 불빛이 꺼지자 침침한 어둠이 서린 계곡과 야외등의 불그레한 빛발이 흐르는 등마루에는 숙연한 정적이 깃들었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보셨다. 수령님께서는 렬사릉 맨 웃단 김정숙동지의 반신상앞에 서계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뜻 발길을 내짚으실수 없었다. 방금전 수령님께서 혁명렬사릉으로 떠나셨다는 보고를 받으셨을 때의 놀랐던 심정이 가라앉는 대신 무지근한 아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이께서는 오순복의 사망에 대해서는 수령님께서 모르시기를 바라셨다. 며칠전에도 로환으로 사망한 녀성항일혁명투사의 비보를 접하시고 밤잠도 주무시지 못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런데 해당 관계부문 일군들이 그이의 뜻을 미처 알지 못한채 오순복이가 김정숙동지의 혁명활동연고자라는것으로 하여 수령님께 보고드렸던것이다. 그럴만도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알고계시는 일군들과 그 연고자들의 일에 대해 항시적으로 보고드려줄것을 요구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여기로는···

그이께서는 조용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김정일동지를 알아보신 수령님께서 흔연히 물으시였다.

《네. 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흔연한 태도로 대답하시였다.

《내가 방금 잠자리에 들려다가 김정숙동무랑 두루 생각나서 여기로 올라왔소.》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말씀에 짙은 비애가 깔려있음을 느끼셨다. 어떤 말씀을 올려야 할지 인차 떠오르시지 않았다. 수령님께서 다시 말씀을 떼시였다.

《조직비서동무도 오순복일 알지요?》

《네. 알고있습니다.》

《지난밤 돌아갔다는것도 알고있소?》

《네.》

《지금은 산에서 싸우던 동무들만 아니라 해방후에 일을 시작한 요즈음 말로 혁명의 2세라는 동무들까지 떠나가기 시작했소.》

《수령님, 너무 마음 괴롭히지 마십시오.》

《거야 그렇지, 때가 되면 가는것이 인생이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열려진 봄가을외투자락을 옆으로 제끼시며 한손을 허리에 얹으시였다.

《새는 날아가도 그 자취는 남소. 정숙동문 해방전에는 더 말할것 없거니와 해방후에도 숱한 사람들을 찾아내여 일군들로 자라나게 했소··· 순복동무도 그중의 한사람이라고 할수 있소. 그런데 벌써 그가 가다니··· 한데 그 아들은 어떻소?》

《그도 일을 잘하고있습니다. 오늘 그 동무는··· 기자회견에까지 나갔습니다. 외국청년들이 몹시 놀라더랍니다.》

《피란 어쩔수 없는것이요. 저세상에 간 그의 아버지도 그런걸 안다면 무척 기뻐할거요.》

《오순복어머니가 축전까지 보지 못한것이 유감입니다.》

《그도 저세상에 가서 볼테지. 아니, 이미 그야 봤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요. 부모란 자식들이 꿋꿋하게 뒤를 잇는다면 죽어도 사는것이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다가 김정숙동지의 반신상을 다시 돌아보시였다. 두손을 마주쥐고 서계시는 김정일동지를 언뜻 보시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찢어진 면사포같은 갈래구름이 일순간 달빛을 가리웠다. 수령님께서는 멀리 불빛이 점점이 비치는 광복거리쪽을 보시였다.

《여기서 보니 저기 광복거리가 더욱 요란해보이는구만.》

《네, 지금 그곳 건설자들은 수령님을 모실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가봐야지. 축하를 해줍시다. 정말 큰일을 해제꼈습니다. 수도의 면모가 확 달라졌고··· 하긴 온 나라가 이번 축전준비통에 때벗이를 했습니다.》

《수령님, 우리 인민들과 청년들의 사상정신상태에서도 커다란 변화와 전진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광복거리건설과 축전준비과정에서 발휘된 미담과 위훈을 묶으면 이 세상 제일인 우리 인민의 위대성과 영웅성을 다시 알게 되리라고 봅니다.》

《옳소. 우리는 인민복이 큽니다··· 수고가 많았소.》

《수령님!··· 수령님께서 키우셨고 이끄신 인민입니다.》

김일성이자 김정일이지.》

수령님께서는 나직이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셨다.

《수령님, 이번 4차 국제축전준비위원회 회의에서는 13차축전 주석단에 위대한 수령님을 꼭 모시고싶다는 희망이 제기되였습니다.》

《나가야지. 만나야지요. 할말도 많소, 축하도 하고···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승리와 영광이 온다는 말을 꼭 하고싶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시가를 바라보시였다. 근엄한 안색이시였다.

시내에는 오가는 불빛도 없었다. 푸르스름한 가로등불이 명멸하는 부드러운 어둠속에 빨간 붓으로 찍어놓은듯 한 주체사상탑의 봉화가 선명하게 빛났다.

은은히 흐르던 추도가의 선률이 끊어지자 어데선가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령님, 그만 떠나셔야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람이 차진것이 념려되시였다.

《그래, 가야지. 한데 어쩐지 떠나기가 싫소. 여긴 자리가 좋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며 투사들의 반신상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시였다. 이름도 꼽으시고 단편적인 추억도 하시였다. 차에 이르시여서도 오르실념을 하지 않으시였다. 그날의 모습으로 마주서있는 옛전사들의 얼굴들을 묵묵히 보시는 수령님의 안광에는 깊은 감회가 어려있었다.

《다들 너무나 젊은 나이에··· 떠나갔소. 꿈도 많고 희망도 컸는데―》

(오늘밤은 전혀 주무시지 못하겠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뻐근한 진통을 느끼며 자신을 다잡으시였다.

《수령님, 몇가지 제기된 문제가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이를 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떠오르신 생각인듯 말씀드리시였다.

《외교부를 통해 알려온것인데 지금 여러 나라 당, 국가 수반급인사들이 우리 축전에 오려고 하는데 서방측의 영향밑에 있는 나라들인 경우 정부와 국회내 우익반동들의 반대에 부딪쳐 애를 먹고있다고 합니다.》

《그 반대리유란 무엇이라고 합니까? 분명 우리에 대해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겠는데―》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리유란 무엇때문에 한 나라의 수반이 청년들의 축전에까지 가겠는가 하는것입니다.》

《허, 수반급인물들이 축전에 참가하는것이야 례상사가 아니였소?》

《그렇습니다.》

《그러니 반대리유란 결국 우리 축전의 금새를 떨궈버리자는것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제나 문제의 본질을 대번에 밝혀내시는 수령님의 통찰력에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봄가을외투주머니에 손을 찌르시며 말씀하시였다.

《대책은 간단합니다. 우리의 명의로 초청합시다.》

《네, 그렇게 되면 국가적관계에서의 초청으로 되니만치 반대할 명분은 없을것입니다. 그들도 이런 의사를 표명해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남조선대표들의 참가문제는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망설이시였다.

남조선청년학생대표단 초청문제는 지난해 12월 조선학생위원회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보낸 초청편지로부터 발단이 되여 내외여론의 관심사로 되고있었다. 그 편지를 받은 《전대협》은 그 즉시 남조선전역의 대학생대표들로 출정식을 가지고 통일대장정을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서부지역 총학생회련합(서총련)도 축전참가결의대회를 가지고 시위를 벌렸으며 서강대학에서는 학교의 곳곳을 평양시처럼 꾸려놓고 축전참가의 의지를 표시했다. 동시에 남조선의 정계와 야당인사들속에서도 축전참가를 위한 지도위원단을 꾸려 로태우도당의 방해책동을 단죄규탄했으며 남조선 기독교청년협의회는 《전대협》과 보조를 맞춰 공동투쟁을 벌릴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수십년동안 격페상태에 있던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하나의 거세찬 운동으로 번져졌다. 이렇게 되자 로태우도당은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라는 어용기구성원들을 받아들이는 조건에서만 《전대협》과 기타 청년학생들을 평양축전에 보내겠다는 제안을 해왔다.《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라는것은 말이 단체기구이지 축전을 파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협작기구에 불과한것이였다. 이로부터 관계부문 일군들은 이 기구대표들을 받는것은 적들의 협잡을 긍정하는것으로 되기때문에 받을수 없다는 의견들이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견해를 달리하시였다.

《···저는 남조선대표들을 받기 위해 〈남북대학생교류추진위원회〉도 받아들이자는 생각입니다.》

《옳소. 잔것을 가지고 옴니암니하겠소. 로태우야 그런 기구를 들이미는것으로 우리와 남조선사회의 진짜배기대표들과 만나는것을 막자는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어용〉들을 가지고 우리와 맞서려는 속심일거요. 이건 분명 달가운 일은 못되지만 세계 5대륙에서 다 오는 축전에 한피줄을 가진 청년들을 받지 못하고서야 무슨 명절이라고 하겠소. 속는셈치고 받는다는건데··· 받아야 되오. 통일을 위한 사업이라는데서도 그렇고···》

수령님께서는 반신상쪽에 시선을 주셨다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우리 대에 모든 일들이 다 잘되는데 통일문제에서만은 크게 진전이 없소. 저기 저 사람들도 통일된 조선을 그리며 잠들고있겠는데··· 이번에 해외교포들도 많이 오겠구만.》

《네. 이번에 해외교포들은 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때문에 외국대표단인원수에는 제한을 뒀지만 해외교포들에 한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잘했소, 그렇게 되면 이번 축전은 겨레들의 상봉연으로도 되겠구만.》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밝으신 기색이였다.

《수령님, 이번 축전에 참가할 우리 청년학생들을 번듯이 차려입혀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의복으로부터 세면도구에 이르기까지 선물을 주려고 합니다.》

《고맙소. 정말 좋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난 1차축전때 우리 대표들을 보내며 손에 쥐여줄 돈마저 변변치 못해 속을 썼댔소.》

《주성익아바이는 그때 수령님께서 주신 세면도구를 놓고 지금도 말하고있습니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소.》

이로부터 나흘후 광복거리건설장을 돌아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5월 1일과 2일 량일간에 걸쳐 위대한수령님을 모시고 5월 1일경기장(릉라경기장), 광복거리대도로, 교예극장, 량강호텔, 서산호텔, 청년호텔, 만경대학생소년궁전, 5 000세대 살림집, 봉사망들의 준공식에 참석하시고 건설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폭풍치는 만세의 환호성과 감격의 열파속에서 수령님께서는 건설자들에게 최대의 만족과 사의를 표시하시며 오늘은 내 소원 하나가 크게 풀린 날이라고 기뻐하시였다.

5월 2일은 날씨마저 보기드물 정도로 밝고 화창했다. 살수차가 지나간 드넓은 대통로로 걸음을 옮기시던 수령님께서는 《상전벽해》라는 말씀도 하시며 어린 시절의 일도 추억하시였다. 헐벗은 야산들에서 땔감과 끼니보탬을 찾아헤매던 사람들의 눈물겨운 정상도 회고하셨고 건설자들의 수고를 놓고 영웅적건설자들이라고 높이 치하하시였다.

시종 환한 미소를 머금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영접나온 일군들속에서 조창혁의 인사를 받으실 때 안색을 흐리시였다. 련련한 애정이 굽이치는 수령님의 시선은 창혁의 마음속상처를 꿰뚫어보시는듯싶었다. 허나 순간뿐이였다. 창혁의 얼굴에서 한점의 그늘도 찾아볼수 없으셨던것이다. 끝없는 흠모와 기쁨에 취한 창혁이로부터 다른 청년일군들의 얼굴을 따뜻이 둘러보시던 수령님께서는 활짝 트인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넨 이 거리를 어떻게 생각해? 이 거리는 말이요. 우리 당과 인민이 청년들과 후대들에게 주는 선물이요!》

《수령님, 우리 청년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새겨안고있습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이르렀을 때 청년돌격대원들과 건설자들의 환호성에 손저어 답례를 보내시던 수령님의 안광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 꽃다발을 올리는 청년지휘관을 뜨겁게 껴안으신 수령님께서는 격한 음성으로 《수고했소, 수고했소!》라고 하시며 그의 잔등을 두드려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눈굽이 젖어드시였다.

사진촬영대앞으로 걸음을 옮기시던 그이께서는 두번째단에 선 한 처녀의 희디흰 얼굴에 시선이 멎으시였다. 향옥이였다. 그옆에서 앞으로 꼬구라질듯 상체를 숙이고 박수를 치는 청년은 송재경··· 그리고 송재경의 곁에서는 지혜련이가 선자리뜀을 하며 두팔을 휘젓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넘치는 반가움을 금치 못하며 한손을 더 높이 들어 인사를 보내셨다. 향옥은 자주 손등으로 눈굽을 훔쳤다. 울고있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찌르르해지시였다. 정형수술까지 겸한 향옥의 두번째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셨던 그이께서는 향옥이가 촬영장에까지 나타난것으로 하여 더욱 기쁘시였다.

집무실로 돌아오신 뒤에도 넘치는 감회와 흥분을 진정시킬수 없으셨다.

(미진된 일은 없는가.)

몇몇 당중앙위원회일군들과 함께 광복거리 2단계건설문제를 의논하신 그이께서는 조창혁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교환수는 10여분 지나서야 조창혁을 찾아내였다. 창혁은 광복거리의 청년돌격대원들속에 있었던것이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여기서···》

《〈명절〉을 즐긴다 그거겠지. 좋은 일이요. 오늘 내몫까지 해서 그 동무들과 기쁘게 지내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고 물으시였다.

《그런데 청년돌격대원들에 대한 표창내신준비는 다 되였소?》

《네, 다 되였다고 합니다.》

《그 지혜련이라고 알지, 그 동무한테 무얼 주기로 했는지 모르겠소?》

《그에 대해선 알고있습니다. 국기훈장 1급으로 내신되였습니다. 북부철길때부터의 로력혁신자니만치···》

《옳소. 그런데 그것보다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주는것이 어떻겠소?》

《저··· 표창규정상 그 동무는 당원인데다가 가정부인이기때문에···》

《나도 그건 알고있소. 하지만 그 동무는 〈처녀〉로 복대해서 〈처녀〉로 졸업하게 되는셈 아니요.》

《알겠습니다. 표창내신문건에 그 동무가 복대할 때 밝힌대로 가정부인이 아닌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가 처음부터 처녀라고 했으니··· 우린 그렇게만 알고있는것으로 하면 되지 않을가. 그렇게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혜련의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처녀시절은 일생에 두번다시 반복되는것이 아니요. 때문에 나는 그의 값높은 처녀시절에 대한 우리 당의 감사로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주자는것이요.》

《장군님! 고맙습니다.》

《동무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기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시며 재차 물으시였다.

《오늘 촬영장에 향옥동무를 오게 한건 누구요?》

《류진영동무가 생각했습니다.》

《그럴테지. 난 오늘 촬영장에서 향옥일 보게 되니 더 기뻤소. 병원에서는 나한테 5월 중순에나 퇴원시킬 소릴 했거든··· 아직 걷기가 불편할테지.》

《일없다고 합니다. 향옥동무는 축전무대에 나설 결심으로 밤마다 걷기련습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림영찬동지는 향옥동무의 다리를 보고 예전보다 더 고와졌다고 하며 울기까지 했습니다.》

《울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헤퍼지는 법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그들먹해지시였다.

《장군님! 그런데 오늘 림영찬부부장동지가 한가지 제기해온것이 있습니다.》

《무언데?》

《그는 이번 축전때 로스안젤스에서 산다는 향옥의 외삼촌을 조국에 오게 했으면 좋겠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토론해보지 못했습니다. 그 교포의 의향도 알수 없는것이고··· 또 그의 동향도―》

《아니 거기에 동향같은것이 무슨 관계가 있소. 조선에서 하는 축전인데 같은 피줄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오면 좋은것이지 나쁠것이 없소. 더구나 향옥이를 봐서라도 꼭 오게 해야겠소.》

전화를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향옥이네 집안에 남은 유일한 《걱정》이 정신우라는 사람에 대한 문제일것이라는것을 생각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