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2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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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축전조정서기관이며 국제상설위원회 운영의 주요인물인 프랑스대표가 《평양축전》의 적수들이라고 한 반대파의 모사는 런니였다. 상설위원회 북유럽조직대표로 평양에 온 그는 1월말부터 오늘까지 자기로서 할수 있는 《일》은 다했다.

기자회견장의 맨 앞석에 앉은 그는 자기가 앉은 뒤쪽에서 조금만 부스럭소리가 나든가 의자소리가 울려도 숨을 멈춘채 귀를 강구다가는 가늘게 숨을 내뿜군 하였다. 그런중에도 세사람 건너 옆자리에 앉은 상설위원회 조선대표와 눈길이 마주치면 살풋이 웃어보였다.

런니는 조창혁의 발언에는 크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늘의 이 기자회견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기자신한테 운명적인 시각이기때문이였다.

그가 축전국제상설위원회 기구대표로 평양에 오게 된것은 켐프의 지령과 도움밑에 이루어진것이다. 켐프는 그에게 어떤 방법과 수단을 다해서라도 축전일정과 프로그람작성에서 미국과 서방의 리익에 침해될 정치행사나 그러루한 일정조직이 없게끔 하는것과 동시에 평양이 축전장소로 불합리하다는것을 상설위원회 대표들에게 납득시켜 4차아이피씨에서 그 문제가 다시 론의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런니는 어느 하나도 실현시키지 못했다.

이번 4차아이피씨 참가로 온 로찌는 런니의 이러한 실패에 놀라움과 분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런니의 저락된 사기와 동요하는 마음을 넘보고는 켐프를 빗대며 음울하게 위협하였다. 축전력사상 처음인 《특별재판소》설치에도 런니가 반대하지 못한것을 알자 《배신》이고 《변절》이라고까지 노발대발하였다. 《특별재판소》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침략행위와 전횡을 폭로단죄하는 연단으로 되게 되여있었다.

런니는 로찌에게 어쩔수 없었다고, 당신도 겪어보느라면 자기를 리해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에 가면 당신들 생각이 죄다 달라질것이라고 한 아이레스의 말까지 꺼들었다. 그랬다. 런니는 평양에 와 두달 좀더 되는 사이 자기의 생각에 급전환이 오고있음을 두렵게 느끼고있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중의 하나라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평양을 보게 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나라 사람들과 이 도시의 분위기에 현혹된 상설위원회 대표들의 감심과 흥분, 이 나라 지도자의 로작에 대한 그들의 감탄과 매혹, 상설위원회 조선대표의 해설속에 그 진리성을 부정할수 없게 된 로작의 명제들, 명백한 사실과 론거로 자기를 제압하는 이 조선대표와의 끊임없는 대화는 이때까지 이 나라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허구적인 적의와 증오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하였다.

《런니양은 자기 나라 땅 가운데 저런 헌병들이 버티고 서있다면 기분이 어떨것 같습니까?》

판문점에 갔을 때 조선대표는 미군병사에게 손저어보이는 런니를 날카롭게 비웃었다. 신천땅의 피어린 흔적을 돌아보면서 그는 이 나라 사람들의 반미감정의 근원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였고 반제투쟁의 필연성을 강조한 이 나라 지도자의 로작글구를 깊이 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까지 런니의 머리에 인박힌 미국은 세계 평화와 질서의 조정자였고 제국주의란 20세기초엽까지 있은 력사적현상이였지 미국이나 대영제국의 속국들이 다 제나라 명판을 가지고 유엔에 들어간 오늘에는 사회주의자들이나 급진적민주주의자들이 꾸며내는 비방이라고만 보았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그는 제국주의가 엄연한 력사적실체이고 이들과 맞서 싸우려 하는데 대하여 부정할수 없음을 알았다. 하여 그는 《반제》문제에 거부의 립장을 표시하면서도 끝까지 주장하지는 못했다. 그대신 이 나라와 제도의 모순점을 찾기에 애썼고 회의장과 밖에서도 도전적인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매번 참담한 좌절과 실패로 끝났다. 상설위원회 조선대표에게 여지없이 《꼴》을 먹은 날의 대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거워진다.

처음 그는 매일아침 9시부터 밤 1시까지 진행되는 이 회의에서 상설위원회 조선대표가 언제 한번 자리를 뜨지 않는것을 놓고 시비거리를 잡았다. 회의대표들 대부분이 자기가 꼭 참가해야 할 의제때만 잠간 앉았다가는 산보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휴식하는데 그만은 쉴줄을 모르는것이였다. 강요에서인가, 스스로의 필요에서인가? 그의 비꼬아진 물음에 대하여 조선대표는 당신같은 《다심한 할머니》의 질문이 회의진전에 방해를 놀가봐 떠날수 없다는것으로 런니를 만장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런니는 모욕당한 기분속에 내쏘았다.

《당신은 녀성앞에서의 례절도 모르지 않는가?》

《례절은 선의에 해당되는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서 친절한 대답을 하겠다. 조선사람은 담벽을 문이라고 하면 문으로 만들고만다. 광복거리를 보고 서해갑문을 보라. 미군과 맞서있는 나라에서 이 일이 간단한줄 아는가? 이 건물을 보라. 우리 청년들이 밤잠도 잊고 지은것이다. 휴식도 명절도 잊었다. 그래 조선청년들이라 해서 춤추고 놀줄 몰라서 그런줄 아는가. 축전을 위해, 세계청년들의 친선과 단결을 위해, 바로 여기 모인 사람들의 명절을 위해 자기를 바친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13차축전이 세계청년들의 친선과 단결에 이바지될 성공적인 축전, 기쁨의 축전으로 될것을 위해 휴식을 잊게 되는것이다.》

《당신네는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제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곳 상점들을 돌아보니 우리 나라것보다 못한것이 많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당신은 40여년전만도 이곳이 재더미와 파벽돌만 널린 페허였다는것을 모르는가?! 미국군인들이 떨군 수백만발의 폭탄에 온전한 공장 하나 남지 않은 조선이다. 그래 당신네 나라의 수백년 력사에 폭탄 한발 떨어진적이 있는가!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빈터에서 오늘을 일떠세웠다. 이로부터 아직까지 우리의 상품이 빠리나 런던, 도꾜의 호화상품보다 뒤떨어진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상품들이 다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졌다는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당신네가 수백년동안 이룩해놓은것을 우리가 단 몇십년동안 건설했듯이 미구하여 당신들을 놀래울 때가 올것이다.》

《리해된다. 그런데 오늘 오후 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비난을 할수 없다고 여러 대표들이 토론하였는데 나는 반대다. 방금 말한 상품의 질 문제도 그렇다. 훌륭하지 못한것을 훌륭하다고 할수 없지 않는가.》

《그것은 자유다. 그런데 당신은 상품의 질 운운이 강도의 칼에 상한 얼굴을 비웃는 행위로 된다는것도 모르는 녀성인가. 당신이 가령 지각과 량심과 도덕이 있다면 먼저 강도를 규탄해야 하지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를 비난하겠으면 하라. 그러나 그것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량심에 바탕을 둬야 한다. 축전을 왜 하는가? 축전은 친선을 위해 하는것이 아닌가! 당신은 초청받은 집에 갈 때 시비거리를 찾는것이 주업인가! 실례지만 당신은 시집가기 어려울것 같다.》

런니는 그날 저녁부터 이 대표에게 교태를 가지고 접근했다. 매일 토론되는 의제에 대한 조선측 립장을 알려고 했고 그에 대한 《의견》과 《조언》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의견》과 《조언》은 반대의 해설과 설복에 퇴를 맞군 하였다. 런니는 그 어떤 문제토의에서도 켐프의 지령을 관철시킬수 없다는것으로 초조해졌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와 견해를 같이하던 대표들도 하나, 둘 《변절》해갔다. 그 변절을 막으려 런니는 아이레스가 알면 영원한 절교를 당할 성의 외교에 자기를 맡겼다. 허나 밤이면 게걸스럽게 자기 육체를 탐닉하며 여사여사하겠다는 맹약을 다지던 사람들도 회의장에서는 아무러한 맥도 못췄다. 런니는 심각한 고민과 회의에 빠졌다.

처음으로 자기가 택한 길, 자기의 사상과 신앙을 두고 동요를 느꼈다. 정의와 진리가 자기편에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기도 하였다. 잠깨인 리성과 량심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도시를 인정해야 했고 깽도 없고 거지도 없고 맑고 명랑한 웃음만이 감도는 사람들의 얼굴과 조선대표의 대답과 발언에서 이제껏 자기가 기만과 편견의 세계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런니는 자기의 이런 심리와 기분을 로찌가 엿보았다는것이 몹시 두려웠다. 로찌의 뒤에는 켐프가 있기때문이였다.

(만약 켐프가 이 모든것을 안다면?···)

아이레스로 하여 더욱 그러했다. 로찌는 아이레스가 아버지의 사망으로 엄청난 유산과 기업을 상속받게 된것으로 이번 4차아이피씨에 오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 런니는 아이레스가 오지 않은것은 그가 반했던 림향옥이라는 처녀가 병신이 된때문이라는것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그런중에도 나라의 으뜸가는 재벌이 된 아이레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런데 아이레스가 자기의 유혹에 끌려든다 해도 켐프의 말 몇마디면 영영 갈라지게 될것이였다. 뿐만아니라 켐프의 지령수행과 성적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겨든것이 아이레스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그 희망은 영원히 버려야 하는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로찌였다. 하여 런니는 로찌에게 자기의 《고군분투》를 력설했고 그기간 발견한 《조선》측의 약점을 말했다. 런니가 잡아쥔 가장 큰 약점은 상설위원회 조선대표로부터 청사관리원에 이르기까지의 이 나라 사람들이 서방청년들에게는 뜨겁지 못하다는것이였다. 로찌는 쾌재를 올렸다···.

런니는 지금 로찌가 일어서기를 기다리면서도 그 역시 패배를 면치 못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잘못된 길이였어.)

런니는 자기자신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대학시절 초기만도 그의 꿈은 단순했다. 파산당한 출판업자의 딸로 태여났던 런니는 오직 유명한 기자가 되여 가세를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그러한 노력과 런니의 타고난 총명은 대학안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게 했고 그의 미모와 함께 대학안팎의 써클과 사회정치활동에서 모모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인협회나 청년단체들에서 조직하는 집회나 모임들에 나가 연설을 하였고 인터뷰에도 자주 출연하였다. 그때만도 특별한 정견과 사상을 가진것은 없었다. 그시그시 군중심리와 주최측의 요구에 따라 발언했을따름이다. 그런데 그에게 무서운 사건이 생겨났다. 갓 사귄 애인의 별장에 가서 놀고있을 때 그와 관계가 깊었던 남자가 찾아왔다. 평소에 가끔 마약을 쓰군하던 그 남자는 벌거벗은채로 딩구는 두사람을 보자 미친듯이 뛰여들어 《깽》의 솜씨를 발휘하였다. 두 남자사이엔 주먹질로부터 술병까지 휘두르는 치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런니는 화장실에 숨어버리고말았다.

싸움이 멎고 조용해지자 다시 방에 들어선 런니는 경악실색하였다. 한 남자의 목에는 나이프가 손잡이까지 박혀들어갔고 다른 남자는 골통이 깨여져있었다.

런니는 정신없이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그는 고쳐 생각하였다. 방안에 남겨진 흔적들이 자기를 법정에 끌어갈것이며 그때면 모든 화려한 생활에 종말이 올것이라는 두려움때문이였다. 렵기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방에 되들어간 그는 위스키 한병을 쏘파와 벽장에 다 뿌리고 불을 달았다.

멀리 숲속에 뛰쳐나가 그 집 창문으로 검붉은 화염이 솟구쳐나오는것을 지켜보다가 그자리를 떴다. 조마조마한 속에 며칠이 흘러갔다. 대학에 나타난 사복경찰이 그를 불러 약간의 심문을 했으나 별다른 일없이 넘겼다.

그런데 이로부터 몇달후 야간구락부에서 나오는 그를 멈춰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살해된 남자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던 런니의 사진과 불붙는 집에서 도망쳐나오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이면 살인죄건 살인공모죄건 영낙없이 걸려들판이였다. 그 남자의 요구조건은 간단하였다.

처음에는 육체를, 다음에는 대학과 교제하는 정객이나 이름난 인사들의 생활자료를 요구했고 얼마후에는 그들에 대한 기사를 써줄것을 요구했다. 그 기사들에는 후한 보수가 따랐다. 런니의 희망을 알고는 그 실현에 적극 힘써줄것까지 약속했다. 그 사나이는 이 약속도 지켰다. 대학을 졸업할무렵 런니는 대학생동맹부위원장이 되였고 졸업한 뒤끝에는 경쟁률이 심한 일간신문기자가 되였다. 런니에게는 그가 《하느님》이면서 신비스러운 인물이였다. 그러나 좋았다.

빠리 미인대회참가를 권고하고 그에 필요한 수속과 자금을 마련해준 사람도 그 사나이였다. 그는 빠리에까지 날아와 그가 순위권에 들어 단상에 오르는것을 기쁘게 봐주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가 더없이 두렵기도 하였다.

국제전화로 본에 있는 그의 저택에 전화를 걸 때마다 매양 다른 사람이 받았으며 출장중이라던가 어데 나갔다던가 했으나 그 몇분후면 어김없이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런니는 어느날 밤 그와 함께 누웠던 침상에서 깨여나 그가 전화를 걸 때 가끔 번호를 찾군하는 손목시계의 기억장치를 눌렀다. 처음 나오는 번호를 기억하고 그가 떠난 날 국제전화로 그 수자를 찾으니 미중앙정보국교환이 나왔다. 런니는 숨소리 한번 크게 못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얼마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중앙정보국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따지고 들었다. 그 사나이는 런니가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여 전화한것을 알고 꺼리낌없는 태도로 자기는 미국시민으로서 미중앙정보국만 아니라 서방계의 모든 정보기관과 련계를 가지고있다고 털어놓았다. 첩보일군인가 하는 물음에는 아니라고 하였다.

다만 자기는 국가의 안전과 서방세계의 리익을 옹호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자진 협조할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첩보계의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도 들려주었고 정치가들이란 례외없이 첩보사업에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관계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루루이 설명하며 현대의 손꼽히는 녀성정치가들 태반이 첩보사업과 인연맺은 상태에서 그 영광의 자리에 올랐음을 말해주었다.

그때부터 런니는 그가 가리키는데 따라 움직여 유럽민족청년위원회 리사회안에서 인기있는 녀성활동가로 되였다.

그러던중 어느날, 세계청년인권옹호회의에 참가하였던 런니는 그 사나이로부터 래빈석에 앉아있던 켐프라는 늙은이를 소개받았다. 런니에게는 하느님같기도 하고 지옥사자같기도 했던 그 사나이는 켐프앞에서는 가긍할 정도로 굽신거렸다. 재작년 봄에 있은 일이였다.

켐프는 자기를 가리켜 모르간재벌의 리사라고 했지만 실지로는 청년들을 위한 선전매스콤(보도수단)에 보다 관심이 깊다고, 런니와 런니가 소속된 청년조직에 방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하였다. 켐프역시 약속에는 성실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런니에게 여러 신문, 잡지사들과 방송국들에 기고자가 되게 하였고 런니가 속한 조직에 여러가지 형태의 후원금을 아끼지 않았다. 청년들의 친목야회도 마련해주었고 미국에로의 집단관광도 알선해주었다. 먼저번 사나이와는 달리 켐프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늙은이와 새세대의 교감이라고 하면서 세계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혔고 런니의 어정쩡한 견해도 정중히 들어주군했다. 그 과정에 런니는 사회주의란 인간의 온갖 자유를 말살하고 세계를 《병영화》하려는 무서운 제도라고 굳게 믿게 되였다. 켐프는 쏘련의 변화도 그러한 모순으로 인한 몰락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평양은 드놀지 않는 암벽이지만 런니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청년들이 힘을 합치면 그 암벽도 깨뜨려질것이라고 했다. 런니는 켐프의 말을 진실그대로인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런니는 재작년 봄, 류진영과의 인터뷰를 마련하여 독살스러운 기사를 써냈고 켐프는 이에 대하여 과분한 칭찬을 해주며 후한 사례금을 주었다.

국제상설위원회 대표로 평양으로 떠나올 때 켐프는 런니의 은행구좌까지 약속했다. 그에 감동된 런니는 사람이 한번 보면 죽는다는 메듀샤(그리스신화의 괴물)의 동굴로 쳐들어가던 헤라클레스가 되여 평양에 왔던것이다···.

런니는 더 다른 질문이 없는가 하는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조창혁은 탁의 물고뿌를 들고있었다. 이때 런니의 등뒤에서 황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로찌였다.

《부위원장선생!》

그는 이말을 떼고는 통역에게 준비시간을 주려함인지 아니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기를 바라서인지 근감한 기색으로 서있다가 거센 소리로 말했다.

《선생은 언젠가 조선은 폭탄만 가지고 오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을 반갑게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혹독한 편견속에 사람들을 대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되여 평양사람들은 우리 서방의 청년들에 대해서 그처럼 모멸적이고 랭담할수 있습니까? 이야말로 〈평양축전〉이 공산권나라들간의 무도장으로 됨을 시사하는것이 아닙니까?》

런니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너무나 조폭하고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그러나 이때도 조창혁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눈에 피곤한 기색만 보였다. 그는 동시통역의 말에 귀기울이다가 눈섭을 치뜨며 로찌를 보았다.

《무슨 실례라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 서방계 청년들의 공통된 느낌입니다.》

《느낌이라?!··· 거야 우리 사람들에게 죄된짓을 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아닐가?》

불의의 역습에 로찌는 어리둥절해졌다. 그 순간 조창혁의 얼굴은 엄하게 굳어졌다.

《내가 알건대 우리 청년들은 미국사람이건, 이딸리아사람이건 서방이라 하여 모멸적으로 대한것은 없습니다. 랭담하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당신이 우리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조선전쟁때 조선사람을 죽이는 싸움에 참가한 사람의 아들이올시다.〉라고 했다면 몰라도··· 당신이 모멸이요, 랭담이요 하고 느꼈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죄가 있어 지레짐작으로 느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똑똑하다고 봅니다. 터놓고 말합시다. 사실 우리 사람들은 미국이나 서방이라 하면 머리를 젓습니다. 우리에겐 피맺힌 상처가 있기때문입니다. 조선전쟁때 이 나라를 페허로 만들고 이 나라 수십만인구를 무차별 살륙한것이 누구입니까. 미국과 그 추종국가들입니다. 당신네 나라 군대도 왔지요. 오늘도 당신네 정부의 일부 정치가들은 우리 공화국을 시종 적대시하고있습니다. 도덕과 례절을 따진다면 당신네야말로 응당 지난날을 반성하고 사과하며 재더미속에서 일떠선 우리를 도와주려 하는것이 인사일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민, 우리 청년들은 너그럽고 리해성이 큽니다.

과거나 오늘이나 우리를 적대시하며 반공화국책동을 벌리는것은 당신네 인민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불과 얼마 안되는 사람들, 군수산업복합체와 극우익정치가들만이라는것을 압니다. 때문에 미국이나 서방이라 하여 덮어놓고 배척하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호의와 친선의 감정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날조된 비방을 일삼고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것입니다.》

로찌의 낯색이 쏘세지처럼 변했다. 주먹을 쥐고 우들우들 떨던 그는 카메라를 겨누는 사람들에게 두팔을 쳐들어 흔들었다.

《봤지요? 이 땅에서는 자유로운 발언이 어떻게 무질러지는가를.》

《허허, 로찌. 당신만이 발언의 자유가 있는가. 나 역시 그 발언의 자유를 리용한것이야.》

조창혁은 몸자세를 바꾸며 웃었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로찌는 머리를 싸쥐고 앉았다. 런니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보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이 시각 조선사로청일군이 더없이 친근하게 보였다.

로찌의 《추태》가 빚어낸 분위기를 완화시키려는듯 몇사람이 련이어 일어나 조선의 무상치료제와 무료교육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창혁은 다시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로 돌아갔다. 더 다른 질문이 없는가고 사회자가 묻고 몇초의 침묵이 흐를 때 왈드가 나타나 조창혁의 탁마이크를 들고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 대표들과 기자선생들! 지난밤 조선의 한 어머니가 병환으로 서거하셨습니다. 바로 이 조선사로청부위원장동지의 어머니입니다. 그분의 명복을 빌어 묵도를 제기합니다.》

장내는 폭풍뒤의 정적같은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소리를 낼세라 조용히 일어섰다. 죄스러운 얼굴, 미안스러운 얼굴, 격동된 얼굴들이였다.

《감사합니다.》

조창혁은 나직이 인사말을 하고 재빨리 걸어나갔다. 그때 런니는 이 칼날같은 청년일군의 눈에서 눈물같은것을 보았다. 런니도 눈굽이 찡― 하고 저려들어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저 자식은 제국주의 주구다!》

영어로 하는 격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런니는 비수같은 눈길들이 로찌의 뒤덜미를 찔러보는것을 가슴이 서늘해 보았다. 문밖으로 사람들이 밀려나갈 때 런니는 상설위원회 조선대표에게 조창혁의 어머니사망이 사실인가고 물었다. 조선대표는 못마땅하게 그를 보았다.

《사실이요.》

《그래요?!―》

런니는 그의 얼굴이 시종 뚝해있는것이 이때문이였다는것을 알았다.

《정말 강철의 심장이군요. 영원히 떠나가는 어머니를 바래··· 할일도 많겠는데―》

《그 일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다··· 맡으셨소.》

조선대표는 엄숙하게 말하고 사람들속을 총총히 뚫고나갔다.

아! 이래서였구나.

언젠가 류진영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와 조선청년들은 한피줄로 이어졌다고 하던 말이 구체적인 의미로 가슴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