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1

 

제 8 장

1

 

길거리에는 벗꽃과 살구꽃이 망울을 터치고 모란봉과 야산들에는 진달래가 봄을 수놓고있었다. 청년학생들과 예술인들로 된 7만명의 《예술인》부대가 《축전의 노래》의 황홀한 화폭을 펼쳤고 광복거리건물들은 준공의 날을 기다려 마지막치장을 다그치고있었다. 뻐스와 전차의 차창들이며 건물들의 담벽에는 꽃다발을 든 소녀와 선녀들의 모습이 그려진 축전선전화들이 붙어있었다.

이 시각 한 녀인의 머리맡에도 축전선전화들이 놓여있었다. 녀인의 생명은 서서히 꺼져가고있었다.

현대의학의 어떤 성과로도 막을수 없는 불치의 질병이 그의 생명세포를 좀먹어가고있었던것이다. 이제 한두달도 견뎌낼수 없으리라는것이 의사들의 결론이였다.

이런속에서 녀인은 자주 꿈을 꾸었고 이따금 헛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대부분 꿈은 먼 옛날의 일을 되그려보는 반수면상태에서의 추억이였다.

북부조선의 한 바다가마을, 그 마을뒤의 높고높은 산과 골짜기에 들어서보기도 하였다. 거기서 그는 조국해방작전준비로 국내로 나오신 김정숙동지를 만나뵈왔고 군항정찰의 길안내도 하여드렸다.···

창혁은 이러한 어머니의 꺼져가는 생명을 놓고 하루하루를 공포와 전률속에 보냈다. 그가 어머니의 곁에 있는 시간이란 하루 두세시간도 못되였다. 이즈음 축전행사의 마지막준비로 밤과 낮이 따로 없는 창혁이였다. 어머니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제일 어렵다··· 내 걱정은 말고 가보거라.···》

그날은 어머니의 병에 놀라운 호전이 일어난 날이였다. 산소마스크도 떼였다.

새벽일찍 깨여난 어머니는 여느때없이 머리를 빗겨달라고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새벽에 찾아든 창혁에게는 이즈음 진행되는 4차 국제준비위원회 회의정형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여물었다.

《잘된다니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꿈얘기를 하였다. 언제 앓던 사람인가싶게 시종 웃음을 띠웠다. 꿈에 창혁의 아버지를 보았다는것이였다. 손녀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네》나 《애아버지》하는 식으로 부르지 않고 《너》라고 부르며 말했다.

《령감이 말이다, 너에 대해서 까근히 묻더구나. 그래서 내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너를 청년일군으로 내세워주셨다구 자랑했다.··· 한데 령감이 하는 말이 자기를 채 닮지 않은것이 탈이란게다. 날 더 닮았다는게 아니니. 그래 싸움을 했구나. 날 닮았기에 령감보다 더 착실하다구··· 호호.···》

어머니의 눈에 가랑가랑 눈물이 맺혔다. 의사들은 어머니의 급격한 병호전을 불안스럽게 대했다. 창혁이 역시 그랬다. 심한 비정상을 느꼈던것이다. 창혁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언제 한번 《너》라고 부르지 않던 어머니가 자기를 어린애처럼 대하는것도 그랬다.

어머니의 침대곁에서 선뜻 일어날수 없었다. 어머니는 라지오에서 7시를 알리는 소리를 듣고 채머리를 저었다.

《내가 좀 수다를 피웠구나.》

떠나라고 하였다. 창혁은 어머니의 약손가락끝에 흘러덩 밀려나온 반지를 안쪽까지 끼워주고 일어섰다. 마른 나무가지처럼 느껴지는 손가락에서 반지는 헐겁게 놀았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어머니에게 주신 반지였다. 창혁이가 문가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가 다시 불렀다.

《창혁아.》

《네?!―》

창혁은 근심스럽게 어머니를 보았다. 순복은 하려던 말을 까먹은 사람처럼 물끄러미 보다가 쑥스럽게 웃으며 나직이 물었다.

《오늘저녁도 게서··· 밝히겠지?》

《네. 그렇게 될것 같습니다.》

《끼니는 번지지 말아.》

《네, 봐서 집에 와 먹겠습니다.》

《그럼 네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허나 창혁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었다. 4차아이피씨가 끝나는 마지막날이였다. 이 회의는 지난 두달동안 진행된 축전국제상설위원회에서 내놓은 축전프로그람과 일정, 대표초청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제에 대해 최종결론을 내리게 되여있었다.

회의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왔다. 론쟁점으로 되는 문제들은 이미 국제상설위원회에서 다 처리되였던것이다. 력대적으로 국제상설위원회는 수십개 나라 단체와 기구대표들로 구성되는 회의로서 매 대표들이 자기 지역, 자기 단체의 리해관계와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치렬한 론쟁의 마당으로 되군 하였다. 이번 회의도 말그대로 언어의 포탄을 날리는 싸움이였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온화했고 순탄하게 매듭을 지었다. 이에 대하여 축전조정서기관이며 상설위원회 운영의 주요인물인 프랑스대표 띠예르는 네가지 필연성을 들어 설명하였다.

《첫째, 김정일각하의 로작 〈현시대와 청년들의 임무〉의 진리성과 감화력에서입니다.

둘째, 축전준비에 기울인 조선청년들의 성의와 성실성때문입니다.

셋째, 조선의 실상에서 받은 충격입니다.

수도의 거리와 특히 광복거리, 서해갑문은 조선이 얼마나 위력하고 발전된 나라인가를 보여주었고 판문점의 분렬장벽은 우리에게 〈반제〉의 필연성을 납득시켰습니다.

넷째, 조선사로청일군들과 상설위원회 조선대표의 훌륭한 발언들과 고급한 인격은 적수들까지 감복시켰습니다. 조선에 오면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다 녹을것입니다.···》

연회에서 한 말이다. 이렇게 되자 4차아이피씨에 참가한 서방계의 우익과 그들쪽에 치우친 대표들은 상설위원회에 파견한 자기네 특사들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해 도발적인 공격을 일삼았다.

그 과녁은 상설위원회 결정에 대한 시비로 되였지만 어디까지나 조선사로청에 쏠려진것이였다.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가, 반조선시위를 벌릴수 있는가 하는 정치적문제로부터 왜 이 나라에는 록크춤이 없는가, 녀성들과의 자유로운 교제를 허용하는가 하는 추한 질문들도 있었다. 상설위원회에서 여지없이 규탄을 받고 거둬들였던 낡아빠진 록음카세트의 되풀이였다. 허지만 이 엉터리없는 질문에도 인내성을 가지고 하나하나 일깨워주고 진실을 밝혀줘야 했다. 밤늦게까지 진행된 이날 회의는 상설위원회가 제출한 안을 그대로 4차아이피씨결정으로 통과시키는것으로 끝났다.

허나 여기에는 조건부가 따랐다. 우리 청년대표들의 론리정연한 대답과 절대다수나라 대표들의 공박과 규탄에 패한 반대파들은 회의장에서 제기한 질문들에 대한 보다 신빙성있고 구체적인 대답과 조선측이 약속한 담보조건들에 대한 실무적해석을 요구한다는 조건부밑에 《동의》한것이였다.

그 해석과 대답은 다음날 기자회견형식으로 조창혁이 하게 되였다. 하여 조창혁은 봉화산려관에 돌아온 즉시 기자회견준비에 달라붙었다. 제기된 질문도 질문이거니와 불시에 제기될 문제들까지 예견하는 준비사업이였다.

며칠동안의 회의로 목이 콱 쉬여버린 류진영과 마주앉아 사이다로 목을 추기며 한창 토론을 벌리고있을 때 지정철부부장이 들어섰다.

《창혁동무!》

그는 창혁의 눈길을 피하며 마른기침을 하였다.

《집에 가보오.··· 어머니가··· 잘못되셨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창문밖 어데인가를 보고계셨다. 바깥의 물기어린 정원수들엔 금빛 아침해살이 감겨돌았다.

무슨 소리요?··· 정말이라?!··· 왜 이제야? 왜 이제야 알리는가?!

조창혁의 집에 다녀온 당중앙위원회 일군은 불안스러운 눈길로 그이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5분··· 10분··· 그이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움직임도 없으셨다.

순복은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저녁까지는 기분이 매우 좋았었다. 미음만 몇숟가락 들군하던 그가 저녁에는 바다나물무침을 찾았다. 그리고는 손녀를 앉혀놓고 바다물속에 들어가 조개를 잡던 옛말도 들려주었다. 잠도 쉽게 들었다. 한밤중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소리를 하였다. 침대를 맞붙여놓고 잠자리를 같이하던 창혁의 처가 그 소리에 깨여나 그런 증상때의 처방에 따라 주사를 놓았다. 한식경이 지나자 순복은 이젠 괜찮다고 하였다. 그러나 방에 불은 끄지 말라고 하였다. 베개를 높이고 돌아누운 그는 책상우에 있는 사진들을 달라고 하였다.

32절규격으로 복사한 사진밑에는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고》, 《백두산녀장군과 백두광명성을 모시고···》라는 제명이 써있었다.

이즈음 순복은 아픔이 없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이 사진들을 즐겨보았다. 그 사진에는 남편의 얼굴도 있었다. 창혁의 처도 그 사진들을 다시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뭔가 옆구리를 툭 치는듯 한통에 눈을 떴다. 순복은 반듯이 누워있었다. 사진들은 가슴에 꼭 품기여있었다. 창혁의 처는 미심결에 순복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얼음같이 차고 꽛꽛한 감촉에 소스라쳐 일어났다.

《어머니!》

대답이 없었다. 와락 그러안고 흔들었다. 메마른 육체는 가볍게 흔들렸으나 눈은 떠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을 품어안은 손만은 풀려지지 않았다.

당중앙위원회 일군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창혁은 어머니의 시신을 붙안은채 새벽까지 떨어질줄 몰랐다. 어린애처럼 《어머니!》를 불러 몸부림치며 통곡을 했다.

시신을 옮기고 이부자리를 거둘 때 침대머리맡에서 나온 굵은 실로 꿰매다 만 장갑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찢었다. 광복거리건설장에 보내려던 장갑이였기때문이였다.···

《나는 또 한분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며칠전에는 오랜 녀성항일혁명투사가 사망된것으로 하여 밤을 밝히셨던 그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쓸쓸한 미소를 띠우시였다.

《창혁동무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찾아내여 녀성일군으로 자라도록 이끌어준 녀성입니다.··· 자연이란 참으로 야속합니다. 계절은 바꿨다가도 다시 오는데 사람의 생명은 그렇게 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집무탁에 가 서시였을 때 그이께서는 굳세고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서시였다.

《오늘 오후 창혁동무가 기자회견에 그냥 나가겠다고 한다면 그의 결심대로 하게 하시오. 순복어머니의 장례준비는 내가 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