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제 7 장

4

 

마침내 붕대를 풀게 된 날이 왔다. 향옥은 전날밤부터 거의 잠들지 못했고 아침에는 심한 흥분에 오한을 만난 사람처럼 몸을 떨군했다. 기술부원장까지 온데서 붕대를 풀었다.

상처부위를 꾹꾹 눌러보던 담당과장이 흡족한 얼굴로 《됐소.》하며 허리를 펼 때야 향옥은 비로소 자기 다리에 눈길을 주게 되였다.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았다. 전혀 처음 보는 이상스러운 다리였다. 주글주글한 피부에는 불기우리한 반점들이 큼직큼직 두드러졌다. 향옥은 공포와 전률속에 그 얼룩점들을 그냥 내려다보았다.

《일없소. 좀 지내느라면 제대로 될거요.》

과장은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보라고 했다. 향옥은 공손히 일어섰다. 기술부원장이 그를 부축했다. 상한 다리의 발끝으로부터 어깨까지 찢어지는듯 한 아픔이 왔다.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전신에 힘을 다 써 끝내 일어섰다.

《됐소, 됐소!》

과장은 만족한 얼굴로 담배곽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입원실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담배곽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향옥은 벽에 걸린 거울쪽으로 돌아섰다. 땀과 눈물이 발린 해쓱한 얼굴이 안겨왔다. 왼쪽어깨가 내려앉았다. 다리가 짧아진것이다.

《동문 걸을수 있소!》

과장은 손을 썩썩 비비며 기술부원장과 몇마디 나누고 래일부터는 걷는 훈련에 들어가야겠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향옥은 그들이 문밖을 나설 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저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류진영과 함께 왔다. 향옥은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참고참았던 눈물을 쏟뜨렸다. 어머니도 그의 다리를 쓸어만지며 울었다.

《일없다, 일없어.》

아버지는 언젠가처럼 이 소리를 연신 되풀이하며 그만해도 다행이라고, 옛날같으면 앉은뱅이가 되고말았을것이라고 했다. 류진영이도 이 비슷한 말을 하며 실망하지 말라고 위안을 해주었다.

이날밤 향옥은 예술단동무들이 가져왔던 무용표기본을 꼬깃꼬깃 접어 먹고난 과자통에 넣었다. 간병원이 청소바구니에 날라가게 될것이였다.

밤에 수직간호원이 그를 깨워 진정제주사를 놓아주었다. 헛소리를 치며 흐느껴울었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이때야 향옥은 자기의 일신상에 그리고 자기의 앞길에 어떤 음영이 드리웠는가를 곰곰히 생각하게 되였다. 이젠 무대에 두번다시 설수 없으며 설사 걷는다 해도 대낮의 거리로는 나설수 없을것이였다. 지팽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걷는 자기의 모습이 시종 눈앞에 얼른거렸다. 다음날부터 향옥은 말없는 사람이 되고말았다. 별로 웃지도 고민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텔레비죤을 보러 갈 때도 그냥 침대에 누워있군 했다. 걷는 훈련도 의사들이 지켜볼 때면 마지못해 하였다.

동무들이 면회하러 올 때에야 예전의 자기로 돌아가군 하였다. 웃기도 하고 자기에게 피부이식을 해준 녀동무들의 무르팍상처를 꼬집어보며 롱담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가면 더욱더 침울해졌다.

지혜련이 송재경의 소식을 가져온 날은 지난날의 추억으로 울고싶기까지 하였다.

화강석광산에 가 한달 넘게 있던 송재경이 오늘래일안으로 온다고 했다. 그에 대해 새로운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이젠 체념해버린 사람이였고 재경 역시 그랬다. 광산에 가기 전 한두번 병원에 찾아왔던 재경은 동무들뒤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말없이 있다가는 돌아가군 하였다. 그로 하여 향옥은 그에 대해서 거의 잊다싶이 하였다. 그런데 지혜련의 말은 아픈 상처를 다쳤을 때처럼 가슴을 쓰리게 했고 송재경과의 있었던 일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그의 마음속에서의 유일한 위안은 먹고난 약통들과 보약곽들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에게 보내주신것이였다. 조용한 밤이면 소꿉시절의 어린애처럼 그 통과 곽들을 매만지며 아늑한 행복감에 젖어들며 자기의 래일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무엇을 할가? 이즈음 신문들에 드문히 소개되는 영웅들의 일화를 더듬어보며 인민들의 참된 봉사자로 치하를 받은 구두수리공처녀도 생각해보았다. 예술단 간부들은 무용표기원직업도 있으니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느 예술출판사에 가서 음악도서편성원도 할수 있을것이다.

그렇다, 할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며 해도 참답게, 성실히 할것이다.

그러나 무대와는 영원히 작별해야 한다.

그날 저녁 향옥은 창밖의 가을풍경을 쓸쓸히 내다보았다. 얼마전까지 푸른잎을 띠고있던 화단의 가을국화마저 시들어가고 찔레나무는 잎들이 말끔히 떨어져 앙상한 줄기들만이 서로 얽혀 닥쳐올 추위에 겁난듯 옹크리고있었다. 어두울녘에는 가는 비발이 내렸다.

(비를 맞겠구나.)

화강석광산에 가있을 동무들을 그려보며 가늘게 한숨을 뽑을 때 창문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면회일이 아니거나 면회시간이 지났을 때 가끔 이런 식으로 동무들이 찾아왔다는것으로 하여 유심히 보는데 창문이 활짝 열리며 비맞아 번들거리는 얼굴이 나타났다. 송재경이였다.

향옥이또래의 처녀가 《아이.》 소리를 치고는 《침입자》의 얼굴과 대위별를 보고 숫지게 웃으며 머리를 비다듬어올렸다.

《안됐습니다.》

재경은 처녀에게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듯이 창문을 뛰여넘어 들어왔다. 바지엔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구두에는 풀잎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그의 얼굴은 약간 달아있었고 엄엄한 빛을 띤 눈길에서는 여느때 볼수 없었던 흥분이 비껴있었다. 향옥은 그의 출현이 너무나 뜻밖인것만큼 어지간히 반갑기도 했으나 왜서인지 쌀쌀한 눈길로 보게 되였다.

《오늘 도착하는 길입니다.》

재경은 깍듯한 례입을 썼다. 향옥은 말없는 눈인사로 대답하며 모포깃을 가슴언저리까지 올렸다. 재경은 묵묵히 그를 보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다 들었습니다.》

재경의 눈길은 향옥의 침대옆에 놓인 두바퀴 자행밀차에 가닿아 있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향옥의 말에 재경은 눈섭을 이지러뜨렸다.

《좀 나갑시다.》

《어데로요?》

향옥은 웃었다.

《아니, 제가 나가겠어요. 말씀들 하세요.》

향옥의 맞은켠 침대에 있던 처녀가 삽삽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럴 필욘 없습니다.》

재경은 위엄찬 손동작으로 그 처녀를 눌러앉히고 향옥이의 눈을 쏴보았다. 향옥은 어리벙벙해 앉는 처녀와 밀차를 엇갈아보다가 《그러지요.》 하고 선선히 응했다.

밝은 미소를 보이려 애쓰며 밀차를 앞에 끄당겨놓고 보란듯이 거기에 올라 손잡이를 돌렸다. 호실의 처녀가 《아이.》 소리를 다시 내며 일어서려 하자 재경은 그에게 《실례했습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문지방을 넘다가 그 모양을 돌아본 향옥은 쓴웃음을 삼켰다.

복도구석쪽으로 방향을 꺾는데 불시에 온몸이 건둥 들렸다. 밀차채로 들린것이다. 재경이의 뜨거운 입김이 목덜미에 닿았다.

《놓으세요.》

《잠자코 있소.》

향옥은 눈깜짝할새에 바깥의자가 있는 오동나무밑에 놓였다. 차거운 비방울이 화끈 단 볼우에 떨어져내렸다.

《이건 도대체 뭐예요?》

향옥이 분한 소리로 내쏘자 재경은 《그저 그런거요.》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우산을 가지고 나타났다. 향옥의 머리우에서 우산에 떨어지는 비방울소리가 가락맞게 울렸다. 재경은 비소리에 귀기울이듯 조용히 서있었다.

《뭘 말하자는거예요.》

향옥은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다는 굴욕감속에 나직이 물었다. 재경은 향옥의 머리우에 우산을 뻗쳐든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준비된 대사를 외우듯 말했다.

《먼저 내가 말하자는것은 동무가 이만큼 된것이 다행이란것입니다.》

《다들 그러더군요.》

향옥은 긴장을 늦추었다.

《시원하군.》

재경은 우산살에서 떨어지는 비방울을 손으로 받아서 얼굴을 닦았다.

《세면은 어떻게 합니까?》

재차 하는 소리에 향옥은 발끈했다.

《건 무슨 소리예요?》

《향옥동무!》

불시에 재경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향옥은 이상한 예감에 놀란 새마냥 몸을 옴츠러뜨렸다.

《내가 말하자는것은···》

재경은 입술을 깨물고있다가 밀차가름대를 꽉 틀어잡았다.

《우리··· 이렇게 함께 살수 없겠소?》

그의 눈동자가 불덩이처럼 보였다.

향옥은 고개를 돌렸다. 입원실 복도창문으로 얼씬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새로 나온 예술영화 방영시간이 된것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저와 함께···)

심장이 멈춰지는듯 한 놀라움속에 일종의 서글픔이 왔다.

《재경동무, 난 지금 동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재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건 말이요. 이렇게 내가··· 우산을 들고 동무가 밀차에 앉은채 산다는··· 그것이요.》

《제가 불쌍한가요.》

《이게 내 말이요.》

재경은 와들와들 손을 떨며 흰 종이봉투를 꺼내서 내밀었다. 편지같았다.

《넣어두세요.》

《싫다는거요?》

《싫어요.》

향옥은 입술을 터져라 하고 깨물었다.

《아니, 안될걸.》

재경은 피익― 웃으며 고개를 떨구고있다가 일어섰다.

《받소.》

《싫다는데요.》

향옥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편지봉투가 날아올랐다가 오동나무밑에 떨어졌다.

(내가 무슨 일을―)

향옥은 섬찍해서 재경을 쳐다보았다. 재경은 우산을 소리나게 접어 의자에 놓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종전처럼 밀차를 우쩍 들더니 무거운 걸음으로 계단에 올라 무릎으로 문을 열고 조심히 내려놓았다.

《잘 있소.》

밀차가 드르륵 복도 한가운데에 와 멈춰졌다. 향옥은 탕― 하는 문소리가 들린 다음에도 한참이나 까딱 않고있다가 돌아보았다. 재경은 보이지 않고 발걸음소리만이 멀어져갔다.

취침시간이 되였을 때 그는 예술단동무들이 만들어온 쌍엽장을 짚고 오동나무밑에 나갔다. 편지를 찾아봤으나 없었다. 10시반이 넘어 방에 들어선 옆침대의 처녀는 좀전에 왔던 남자가 애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향옥은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으나 그 처녀는 믿지 않았다.

《나는 척 보기만 해도 알아맞혀요. 배우동무와 그 사람은 천상배필이예요. 인물로 봐도 딱 어울리잖아요.》

처녀의 눈길이 얼핏 향옥의 다리를 스쳤다.

《배우동문 정말 행복하겠어요. 책에서랑 보면 사랑은 생김에서 서로 끌리기 시작하고 그다음 마음으로 맺어진다고 하는데 난 그 동무가 정열가고 마음도 진실하다는것을 대뜸 알아볼수 있었어요. 나한테도 그런 남동무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 동문 허풍쟁이야.》

향옥은 이 말을 하고 깔깔 웃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런데 다음날, 밤도 깊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입원실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희색이 만면한 얼굴이였다.

《오늘 점심에 송재경이가 나를 찾아왔다.》

눈치빠른 옆침대의 처녀가 방에서 나가자 아버지는 저으기 심중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그 사람이 너한테 청혼을 해온것이다. 이렇게 밤중에 온건 너의 엄마가··· 그 사람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해서 왔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진영의 말엔 그 사람 래년도쯤에 금성정치대학에 간다더라.》

어머니가 하는 소리에 림영찬은 눈살을 찌프렸다.

《새빠진 소릴! ··· 나는 찬성이다.··· 늬 엄마도 같다.》

《나는 그집 부모들까지 만나고 오는 길이란다.》

려분은 초조한 눈길로 입을 꼭 다물고있는 향옥의 파릿한 얼굴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 너를 만났더구나.》

《네.》

《싫다고 했다며?》

《전 그한텐··· 안 가요.》

《들었다.》

림영찬은 너그럽게 웃으며 목단추를 헤치였다.

《향옥아, 나도 너의 심정을 전혀 리해 못하는것이 아니다. 하여 그 사람한테 두루 물었다. 진실이더구나. 나로선 놀랄 정도였다. 만약 네가 끝내 그 사람의 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한테도 그한테도 불행할것이다. 사람의 일생문제란 순간의 결심에 따라 바로되기도 그릇되기도 하기가 일쑤이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그래 아버지같으면 저같은 불구자한테 장가들겠어요?》

《옳다. 나도 그걸 생각했다. 이런 때 뭘 숨기겠니. 사실 내가 너희 엄마한테 찾아다니고 장가까지 들게 된건 너희 엄마 인물에 반해서였다. 모름지기 그때 너희 엄마가 지금의 너같은 상태라면 나는 물러섰을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그의 청혼에 놀랐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옛날의 나에 비하면 까마득히 높이 있는 청년이였다. 그 역시 처음엔 너의 인물에 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생활을 통하여 너라는 인간의 마음속 아름다움을 알고 매혹되였고 이번 일로 하여 더욱 끌렸다는것이다. 이건 그가 훌륭할뿐만아니라 너역시 훌륭한 처녀로 보였다는것에 나는 더없이 기뻤다. 사실 내가 이밤중에 너한테 온것은 너를 시집보내지 못할것 같아서가 아니라 이 기쁨때문이였다. 그 사람은 너를 더없이 높이 보고있다.》

향옥은 가슴이 뭉클했다. 전날밤 송재경이 주려던 편지내용이 어렴풋이 짐작되였다. 림영찬은 향옥의 눈에 물기가 어린것을 보고 려분에게 《보오. 돌아서지 않소.》 하는 눈짓을 던지고는 송재경의 말에서 가장 가슴 울리던 소리를 했다.

《그 사람은 성미도 이만저만 대틀이 아니더라. 글쎄 너의 부상이 안되긴 했지만 자기한텐 화가 복이 된셈이라고까지 하지 않겠니.》

림영찬이 목까지 붉어져 웃을 때 향옥은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아버지, 그때문에 안되는것이예요. 그 동무는 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길따름이예요. 불쌍히··· 전 혼자 살테예요.》

《얘, 넌 무슨 생각이 그렇게 까다롭니?》

려분이가 올찬 소리로 꾸짖었다. 림영찬은 덤덤히 향옥을 지켜보다가 엄하게 말했다.

《네가 소갈머리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그가 너를 불쌍해한다는것도 사실일거다. 허지만 그것은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냐. 애당초 네가 미운 사람이라면 너를 불쌍하게 보지도 않을것이다.》

《안돼요, 안돼요.》

향옥은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림영찬과 려분은 설복하다못해 쓴입을 다시고 돌아갔다.

며칠후 류진영이까지 찾아와 향옥의 옹고집을 나무랐다. 림영찬을 통해 모든 사실을 안 류진영은 향옥의 그런 고집은 잠시 그래보는것이고 반드시 결합될것이라고 장담했다. 진영이에게도 송재경의 청혼이 마음속의 짐 하나를 던것마치나 기쁘고 장한 일로 여겨졌다.

그는 향옥의 다리부상을 놓고 《돌격대 입직》을 승낙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가 하는 정도로까지 신경을 쓰며 후회막급해있었다.

이런 때 송재경의 처사는 향옥의 일신상 불행을 던다는데서도 반가운 일이였고 이 시대 청년들의 또하나의 미풍으로 여겨져 기뻤다. 동맹안에서도 이 사실을 말하였다. 조창혁은 영예군인들에게 시집가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남자가 그런 처녀에게 장가들것을 결심한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하며 송재경과 향옥의 결합이 성사되게 해야 한다고 적극 열을 올렸다.

허나 진영은 향옥이를 만나는 과정에 그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것을 알았다. 이 일이야말로 조직적으로 풀수 없는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다가 그는 요즘와서 이런 일에 계속 머리를 쓸 경황이 없었다.

아이레스네의 출발후 새로 평양에 도착한 김정일명칭 제3차 뽈스까청년단의 한 일군은 류진영과의 비공식면담에서 놀라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뽈스까의 공산주의는 위기에 부딪쳤다. 왈레싸도당은 수백만 로동계급을 변질타락시키며 부르죠아체제복귀에 날뛰고있다. 야루젤스끼장령의 드센 주먹도 이제는 무력해졌다. 모스크바의 크레믈리에서 왈레싸를 지지하고있기때문이다. 지금 야루젤스끼장령에게 남은것은 명칭상 당, 국가기구와 일부의 군대뿐이다. 유감스럽게 이 기구의 대표자들까지 미국의 대유럽방송을 청취하고 성경책을 사들이며 비밀리에 교회입직을 신청하고 왈레싸의 연설문을 외우고있다. 쏘련당의 《뻬레스뜨로이까》(개편정책을 칭한 표현)와 친미정책은 미국과 서방에 대한 환상을 더욱 커가게 하고있다. 서방문화와 서방식생활양식이 밀물처럼 범람해오는 속에 수많은 청년들이 동물화되여가고있다. 정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리념은 누데기처럼 경멸되고있다.

이런 변태적인 환경속에서 현시대를 어떻게 보며 사회주의와 청년운동은 어느 길로 나가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우리 청년들의 앞길은 무엇으로 밝혀져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일군과의 면담을 마치고 온 날 류진영은 왈드가 보내온 한통의 편지를 보게 되였다. 조창혁의 손에서 그 편지를 받아읽던 진영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왈드의 아버지가 어느 괴한의 손에 폭살되고 그와 함께 승용차에 타고있던 폴리오도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실려있었던것이였다. 진영은 왈드의 아버지의 죽음도 놀라왔지만 폴리오의 불행은 마치 자기의 책임이런듯 가슴아파들었다. 언젠가 폴리오한테 써보낸 편지에 꾸바혁명의 지도자 체 게바라처럼 살라고 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폴리오가 아랍땅에 건너가 부상까지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왈드는 편지마지막에 아버지가 살해당한 원인을 밝히면서 쏘련당의 새로운 정책이 아랍혁명에도 혼돈과 방황을 가져왔다고 개탄하며 이 《어두워져가는 세계》에 등불이 될 레닌의 《4월테제》같은 글이 필요하다고 썼다.

《이 모든것을 다 당에 보고드렸으면 좋겠소.》

진영의 말에 창혁은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옳소. 〈혼돈과 방황〉은 뽈스까나 왈드의 소리만이 아니요. 대답을 줘야 되오, 대답을!》

창혁은 며칠전에도 이 비슷한 말을 하였다. 최근에 들어와 세계 여러 나라 청년조직들에서 쏘련당의 《뻬레스뜨로이까》와 친미우경화정책에 대한 조선측의 립장을 타진해오며 축전시 반제성격과 시대평가를 달리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까지 해왔다. 각이한 형식과 방법으로 제기해오는 질문들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준다는것이 간단치 않았다. 《변화》된 《정세》요, 《시대》요 하는 반론앞에서는 복잡한 리론풀이까지 해야 했다. 이로부터 일군들속에서는 당리론선전부문 일군들에게 부탁하여 사론설형식의 깊이있는 글을 써 대답을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였다.
《그런데 폴리오의 일에 대해선 어떻게 하면 좋겠소?》

진영은 언젠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와서 하던 창혁의 말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때 창혁은 폴리오의 일을 걱정하시는 그이께 아픔을 드릴가봐 안해와의 리혼건은 말씀드릴수 없었다고 했다. 창혁은 그때처럼 얼굴빛을 흐리며 머리를 저었다.
《그 일이야 어떻게 보고드린단 말이요. 좀 더 알아보고··· 그 다음 생각해보는것이 좋지 않겠소―》

이날저녁에 열린 축전준비사업을 토론하는 책임일군들의 모임에서 진영이와 창혁이가 함께 제기한 이 문제는 신중한 토론끝에 당에 꼭 보고드려야 한다는것으로 견해일치를 보았다. 보고내용에는 최근 사로청사업에서와 축천준비에서 이룩된 성과들과 청년들속에서 나타난 미거자료들을 첨부시켰다. 거기에는 송재경과 향옥의 일도 석줄로 밝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