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4

 

제 6 장

4

 

새년도 계획자재때문에 국가계획위원회에 갔다가 저녁늦게 지휘부에 돌아온 림영찬은 자기 방이 눈에 띄게 달라진데 놀랐다.

책상우의 재털이까지 말끔히 씻겨졌고 방열기우에서는 깨끗이 빨아넌 로동장갑이며 쏘파등씌우개가 뜬김을 피워올리고있었다. 누구의 소행일가고 방안을 두릿거리는데 소리없이 문이 열리며 물소랭이를 든 향옥이가 들어섰다.

《아니, 네가?》

림영찬은 깜짝 놀랐다.

《아버지, 방안이 이게 뭐예요.》

솜신에 솜옷차림인 향옥은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를 까닥이고는 옷걸이뒤에 소랭이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왔냐? 저녁은 먹었고?》

향옥이 이 방에 나타나기는 처음이였다. 향옥은 방열기에 두손을 얹고 돌격대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하며 영찬에게 식사는 어떻게 하고 쉬는 시간은 언제냐고 각근히 물었다.

《내 걱정은 말아라.》

림영찬은 더없이 대견스러운 심정으로 향옥이를 보았다. 향옥이는 예술단에 간뒤에도 매일저녁이다싶이 건설장에 나온다.

《뭘 좀 먹으련?》

《아니.》

향옥이는 애된 미소를 그려보이며 배불뚝이 천가방을 헤쳤다. 종이봉지속에서 생과자가 여라문개 나왔다.

《드세요. 돌격대 간식이예요.》

《음―》

영찬은 먹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딸이 어쩌다 권하는것이라 기쁜 빛을 보였다. 한쪽 귀가 터진 생과자를 집어들었다.

《너도 좀 들렴···》

《전··· 그러지 않아도 몸이 난다고들 해요.》

무용배우들이 제일 두려워하는것이 몸이 나는것이다.

《너도 축전예술행사조에 뽑혔다지?》

《네.》

《잘하거라.》

영찬은 팥보숭이에 목이 걸렸다. 향옥이 어느 틈에 알아차리고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담아들고 왔다.

영찬은 고뿌밑을 받쳐든 향옥의 트고 거친 손에 눈길이 멎었다. 손가락 하나는 반창고로 동여있었다.

《일이 힘들지?》

《안요. 이젠 습관되였으니까요.》

《그게 중요하다. 그런데 손에 크림이랑 바르렴.》

《발라요. 하지만··· 이대로도 좋아요··· 저는 이 손덕을 단단히 보거던요. 이전날 예술단에서 저를 우습게 보던 동무들도 지금은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요.》

향옥은 아버지의 얼굴에 실린 흡족한 웃음을 여겨보다가 어리광섞인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나 부탁 하나 들어주겠어요?》

《엉? 뭔데···》

이 순간 영찬은 향옥이의 부탁이라면 륙자배기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향옥은 영찬이 마시고놓은 유리고뿌를 뱅뱅 돌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골재장 예비가 없는가요?》

《지금은 쓸만한 곳엔 다 붙었다. 오죽하면 청천강에까지 가서 날라오겠니? 봄장마가 지나면 그때 또 탐색하게 될거다. 근데 골재장예비는 어찌된 소리냐?》

《저··· 청년돌격대에서 새로운 골재장을 마련하고있어요. 오늘 저녁 제가 있던 대대동무들은 다 골재장 찾는데 갔어요.》

《이 겨울에 어데서 찾는단 말이냐.》

《찾았다는것 같아요.》

《어데?···》

《가시겠어요?》

향옥의 눈이 빛났다.

《우리 향옥이가 가자면 가야지.》

《가시자요.》

향옥이가 발딱 일어서며 림영찬의 팔을 끄잡았다.

《전··· 사실 요즈음 괴로웠어요. 대대동무들이 〈우에서 주지 않으면 우리끼리 한다〉고 할 때마다 막··· 아버지가 오늘 가시면 그 동무들도 기뻐할거구, 저도 그들 대하기가 한결 좋을거예요.》

《음, 그래 그렇지.》

림영찬은 새삼스럽게 향옥을 돌아보았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이전날의 대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값비싼것으로 안겨들었다. 하긴 지금 향옥은 돌격대의 명예대원으로 등록되여 있다. 밖에 나와 차에 오른 향옥은 돌격대병실에 가서 길을 물어가자고 했다. 그도 새로 찾은 골재장이 어덴지 똑똑히 모르고있었다.

대대병실보초는 향옥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대로 무사통과시켰다. 향옥이 한 방에 다가가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자 미리 대기하고있은듯 털모자에 솜옷을 입은 작달막한 청년이 뛰여나왔다. 박선익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 청년은 차가 달리자 흥에 떠 자랑을 늘어놓았다. 강우의 얼음을 깨며 골재장을 찾던중에 노다지판을 만났다는것이였다.

남포쪽 길로 얼마간 가다가 왼쪽으로 뻗은 소로길옆에 골재장이 있었다. 얼음 깔린 강복판에 섬처럼 도드라진곳이 골재장이였다. 골재장과 강기슭에는 두개의 모닥불이 지펴져있고 얼음깬 강물속에서 수십명의 청년들이 떠들썩 고아대며 법석을 피우고있었다.

림영찬은 강녘에 선 두대의 화물차와 한차분 남짓이 쌓여져있는 괴석들을 보며 골재장과 이음다리를 놓고있음을 알았다. 소로길 길목에 차를 세운 림영찬은 《저깁니다.》 하는 박선익의 말을 들었으나 선뜻 내릴념을 못했다. 향옥이도 마찬가지였다. 불무지를 둘러싸고있는 청년들속에 아래도리까지 맨내의바람으로 있는 청년들도 있었다.

박선익이 그리로 뛰여갈 때 긴 호각소리가 울렸다. 불무지에 앉았던 청년들이 우―하고 일어나 괴석들을 그러안고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강반은 껄껄 웃는 소리, 《나오라!》, 《교대다!》 하는 소리로 소연했다. 그러나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재차 호각소리가 울리고 《작업교대!―》 하는 구령이 울렸으나 매한가지였다. 웃고 떠드는 소리만이 드높았다.

림영찬은 불시에 피가 끓어올랐다. 전쟁때 강원도 고성천에서 잠수교를 만들던 일이 생각났다. 차거운 물이 종다리를 에이는 환각속에 한번 보란듯이 강물에 뛰여들어 함께 떠들며 기세를 돋구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몇몇 청년들이 불무지쪽으로 밀려나오는것을 보며 차문을 열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밤공기에 코언저리가 쨍해졌다. 그가 불무지에 채 이르기 전에 한사람이 마주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류진영이였다. 검스레하게 젖은 그의 바지자락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림영찬은 속이 저려들었다.

《이거 너무하지 않아.》

그는 불무지에 이른 청년들이 껑충껑충 뜀박질을 하는것을 보며 언짢게 말했다.

《임자는 그렇다 해도··· 저 어린 사람들 생각을 해야지. 죄다 환자로 만들셈인가?》

《저로서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오늘 일도··· 몰랐댔습니다.》

《몰랐어도 예 와서 봤으면 중지시켜야지. 정 하겠으면 래일 기중기와 원목 한차를 줄테니 저렇겐 하지 말라구. 원목을 질러 다리를 놓으면 돼.》

《그렇게는 안됩니다. 저 동무들은 초급단체결정으로 모든것을 자체로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건 임자때문이겠지. 부위원장이 〈이신작칙〉을 하니 따라나설수 밖에 없지 않나.》

불무지쪽에서 인민군사관고유의 힘찬 구령이 울렸다.

《건포마찰준비! 바지는 벗고··· 초속 10번 시―작!》

겨울철 강행도하훈련시 동상방지법이다. 으흐흐― 소름 돋치는 소리들과 함께 웃음이 터져나온다. 불빛속에 희끗희끗한 다리들이, 맹렬히 휘젓는 팔들이 보인다. 한창 비비고나면 퍼렇게 언 근육살들이 뻘겋게 달아오를것이다.

《난 그만 가겠네. 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다시 말하네만 저렇겐 하지 마오. 급한건 골재가 아니요.》

《알고있습니다.》

진영은 말하다말고 재채기를 했다.

《잠자기전에 아스피린을 먹으라구.》

림영찬은 가슴이 알알해 돌아섰다.

차에 오르니 달팽이처럼 몸을 옹송그린 향옥은 넋빠진 사람처럼 《건포마찰》을 지켜보고있었다.

(체네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한마디 타박하려던 그는 속이 흠칫해 입을 다물었다. 향옥의 눈에 눈물같은것이 어렸던것이다.

《아버지, 아버진 왜 그렇게 인정이 없으세요.》

향옥은 목이 잠긴 소리로 말했다.

《진영오빤 밤마다 돌격대에 와서 살아요. 저희대대 동무들도 그렇고.》

《그때문에 욕을 했다. 고생을 사서 하는노릇이 아니냐.》

《아니, 아버진 잘못 생각하고계셔요. 우리 동무들은 외국청년들이 우릴 얕잡아봤다는 소리에 이만저만 격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도 말했지요. 젊었을 때 고생은 금을 주고도 사지 못한다고.》

《옳다.》

림영찬은 새삼스럽게 향옥이를 보았다.

차가 떠날 때 그는 다시금 불무지쪽을 돌아보았다. 불무지에 다가간 진영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두가 턱을 쳐들고 요란스럽게 웃어댔다. 방금전까지 측은하게 생각되던 진영이가 억세게 돋보인다.

그는 엄엄한 얼굴로 굳어져 이 며칠동안 갑자르며 튕겨보던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식 계획에 밀어넣게끔 제기해보자. 하느라면 변통이 생기겠지.)

그는 진영이한테서 《내기》를 들은 날부터 《예비탐색》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새해에 들어선 오늘까지도 《예비》를 찾을수 없었다. 좋기는 어느 한 대상을 죽이고 그대신 밀어넣으면 간단하지만 죽일 대상은 없었다.

(그래, 《예비》가 생길걸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어. 저들의 기세로··· 《예비》가 나오게 해야 돼.)

《아버지, 청춘의 대명사가 뭔줄 아세요?》

향옥이가 운전수까지 들으라는듯이 큰소리로 물었다.

《건 무슨 소리냐?》

림영찬이 눈을 뜨부럭거리며 보자 향옥은 뻐기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건 말이예요.》

향옥은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불길, 둘째 파도, 셋째―》

《바위겠구나.》

《것도 맞아요. 근데 우리 동무들은 셋째는 〈철갑탄〉이라고 했어요. 그걸 다 풀이하면 이래요. 정열과 투지, 위훈에 대한 갈망과 무쇠담벽도 뚫고나가는 기백과 의지인거예요.》

《흠, 그동안 시공부도 많이 했구나.》

《하잖구요.》

향옥은 멀어져가는 불무지쪽을 바라보며 가늘게 한숨을 지었다.

(그때도 밤이였지.)

향옥이가 방금 한 말은 한해전 늦가을 화강석광산에 갔을 때 바로 저런 모닥불앞에서 재경이며 젊은 동무들이 저마끔 한 말들이였다. 그때는 련사흘째 쏟아진 폭우로 산골길의 여기저기가 끊어져나가고 전주대가 넘어지며 변압기가 불타 온 광산지구가 정전이 되였다. 궁전벽에 붙일 화강석채취작업에 갔던 향옥이네는 변압기를 가지고 평양에서 떠났다는 려단장을 기다렸다. 몇시간이면 도착할 자동차가 저녁켠에도 오지 않자 산길이 끊어져나간때문이라는것을 안 남자대원들이 길마중을 떠났다. 밤이 깊었을 때 향옥이도 지혜련과 함께 밖을 나섰다. 산턱길을 내려 구름다리가 있는 실개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며칠전까지도 산촌의 애틋한 정서를 안겨주던 실개천이 무섭게 범람하여 격랑을 일으켰고 구름다리중간이 뭉텅 내려앉아 건드적거리고있었다. 맞은편 강반에서 비치는 두개의 전지불이 사품쳐흐르는 강물과 그 물속에서 악악 웨치며 물에 잠겼다떴다 하는 여러 동무들의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향옥은 처음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길이 끊어져 차가 올수 없게 되자 운전수와 려단장은 목고로 변압기를 운반해왔다. 마침 마중간 동무들을 만나 서로 번갈아 메여오던 그들은 큰길을 에돌면 세시간 넘게 걸린다는것으로 하여 물에 잠긴 구름다리로 들어섰다. 다음날 낮까지 계획한 돌채취를 다하고 돌아가려는 그들이였다. 그런데 구름다리에 들어서 몇걸음 못가 기둥과 널판들이 삐걱거리다가 무너져내렸다.

변압기도 사람들도 다 물에 빠졌다. 이렇게 되여 물에서의 《전투》가 벌어진것이다. 바줄과 허리띠로 몸을 휘감고 변압기를 끌어내왔을 때 향옥에게는 그들모두가 친혈육처럼 느껴졌다.

《난 오늘 같은 일때문에 돌격대를, 저 동무들곁을 떠날수 없는것이예요.》

그날밤 지혜련은 향옥이와 함께 그들의 옷을 빨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향옥은 그때 송재경의 웃주머니에서 물에 함빡 젖어 알아볼수 없게 된 신문쪽지를 발견하였다. 재경의 동생 송재옥이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내용이 실린 신문이였다. 동생의 일이 얼마나 긍지스러웠으면 이처럼 몸에 품고있었을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야말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데서 생의 목적을 찾고있다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울렸다. 그가 예술단소환에 선뜻 응하지 않게 된데는 그날에 받은 충격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단 돌격대를 떠나게 된다고 생각하자 어느 시에 있는것처럼 지나간 생활의 괴롭고 어려웠던것마저 크나큰 감회와 랑만의 자욱으로 되밟혀졌고 내남없이 자기를 바쳐 생활하던 동무들과 헤여지게 되는것이 가슴아릿하게 하였다. 돌격대를 떠날 때 대대는 그를 위해 송별회 비슷한것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재경이만은 려단정치부회의에 간다는것으로 빠졌다. 향옥에게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떠나려 마당에 나섰을 때 재경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달려왔다.

《다행히 늦지 않았구만.》

재경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들었다.

《잘 가오. 우린 동무를 놓고 자랑스럽게 생각할것이요.》

그가 한 이말 역시 향옥이로 하여금 오늘까지 돌격대로 나오게 한 인력으로 되고있다.···

다음날 아침 상설위원회청사건설문제 토론때문에 사로청중앙위원회로 찾아갔던 림영찬은 청사부지에서 동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죄다 떨쳐나 기초파기작업을 하는것을 보았다. 림영찬은 저으기 거북스러운 태도로 아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중에 조창혁이와 만났다.

조창혁은 그의 관심에 사의를 표하면서도 계획에 넣는것을 거절했다. 지금의 대상도 어려운 형편에 비록 한채의 건물이라고 하지만 부담을 끼칠수 없다고 했다. 동맹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건설기계며 륜전기재까지도 다 자체로 마련한다는것이였다. 림영찬은 한시간가량 조창혁과 마주 함마질을 하다가 일터를 떠났다.

며칠후 수도건설지휘부 마당에는 조창혁이 장담한 기중기차며 굴착기, 자동차들이 여러대 들이닥쳤다. 북중과 락원의 청년들이 과외생산로동으로 마련한 건설기계와 륜전기재들이였다.

림영찬은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