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2월 14일 오후, 사로청청사의 한 방에는 축전준비사업에 동원된 부장급이상 동맹일군들이 모여앉아있었다. 다들 무거운 얼굴빛들이였다.

《지금까지 축전련대성기금은 어느 정도였소?》

조창혁이 어지간히 답답했는지 진영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축전련대성기금이란 참가단체들에서 보내오는 《부조》였다. 관례적인 이 《부조》는 국가적범위에서 마련되여오는것도 있고 순수 개별단체들의 자원금으로 보내오는것도 있었다. 주최국과의 리해관계에 따라 그 자금액수는 류동적이였다.

《축전때마다 달랐소.》

진영이도 귀속말로 말했으나 모두의 눈길이 그들에게 집중되였다.

《베를린축전과 아바나축전때 기금액수가 많았던것으로 알고있는데 그 액수도 우리가 타산한 자금액의 절반도 되나마나하오.》

《축전대표들을 수송해오는 경우 모스크바까지 공로로 오게 하고 거기서부터 국제렬차로 오게 한다면 어떻게 응할것 같소?》

《자금이 부족한 단체들에서는 응하겠지만 대부분 달가와하지 않을거요. 신혼려행을 하는 부부라 해도 갑갑증을 이겨내지 못할테니까.》

진영의 마지막말에 몇몇 사람은 키득키득 웃었으나 대부분은 굳어진 얼굴이였다.

(돈!···)

진영은 맥이 풀렸다. 쎄르게이며 악쏘노브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웃는듯 하는 얼굴들이다. 그들은 모스크바축전에 온 참가인원수를 말하며 축전사상 최대규모라고 뽐냈다.

(물러서야 하는가.)

조국에 돌아온 다음날로 소집된 축전상무소조회의에서는 참가인원수를 모스크바축전때와 맞먹게 정했다. 《최대규모》에서 《후퇴》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이 《최대규모》의 인원수자는 봉사설비와 물자, 수송수단도 그에 맞게 보장되여야 한다는것으로 흔들릴번 했으나 진영이네의 격앙된 기세에 무사통과되였던것이다. 림영찬이 같은 경우엔 숙소건설상태를 말하며 그보다 더 받을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은 2월 16일을 계기로 전국사로청 조직대표들이 가지고 올라온 《결의계획》을 보고 더욱 신심이 생긴다고 찬성을 표시했다. 그 《결의계획》들에는 축전물자와 자금확보를 위한 도, 시, 군사로청의 방대한 목표와 작전안이 반영되여있었다. 광산도 몇개 개발하며 과외로동도 벌리고 지방의 원천과 유휴자재를 새롭게 탐색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대표자회의에서는 매달 《축전지원의 날》을 정하여 전국적인 범위에서 생산로동을 벌릴것까지 결의하였다.

그러나 축전상무소조의 《최대규모》안은 오늘 아침 열린 당중앙위원회 부서협의회에서 우리 실정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것으로 하여 기각되였다. 현실적으로 수송이 걸렸던것이다. 유라시아대륙의 복판에 위치한 모스크바와 달리 아시아변측의 우리한테는 륙로가 제한되니만치 대부분 항공로를 리용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들의 비행기를 임대하여 쓴다 하여도 그 수송기일이 보름 넘게 되는것이였다. 물론 이 문제는 축전상무소조회의에서도 일정하게 론의되였다. 《최대규모》라는 목표앞에서 《자그마한 난점》은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붕 떴던 생각들을 가라앉히게 되자 수송도 수송이지만 전반적준비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액수가 무거운 중압으로 위압했다.

기척도 없이 문이 열리며 김관이 들어섰다. 김관은 이 며칠동안 축전행사조직과 물자보장준비사업을 맡고 여러 기관들을 찾아 분주스럽게 나돌고있다. 그는 방안의 침울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득의만면한 웃음을 짓고 책상 한복판우에 빨간 보자기로 싼 네모진 함과 종이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들어오다가 받은것입니다.》

김관은 보자기를 풀더니 라크칠이 채 마르지 않은 함의 뚜껑을 열어제꼈다. 함통에는 100원짜리로부터 1원짜리에 이르기까지의 돈 묶음들이 흰 종이띠에 싸인채 차곡차곡 놓여있었다.

《중학교의 한 사로청원이 축전준비에 써달라고 가져온것입니다. 학교사로청지도원과 함께 왔더군요.》

김관은 모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파고철수집과 토끼기르기로 모은 돈이라고 합니다. 받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 학생이라고 하는데 집안에서도 토론이 있었답니다. 그 학생은 지난해에 제대되여 청년돌격대에 탄원한 송재경이라는 제대군인동무의 동생이였습니다. 모름지기 저 돈에는 그의 장가밑천까지 다 들어간것 같습니다.》

《그 집에 가봤소?》

진영이가 다급히 묻자 김관은 아쉬운 기색이였다.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소. 우거지상을 하고있을 동무들때문에···》

《진영동무!》

창혁의 눈길이 번쩍하며 진영에게 멎었다.

《지금 그 집에 가볼수 없겠소. 동무야 재경동무를 잘 알지 않소. 가서 알아도 보고···》

진영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일어섰다.

먼저 재경이부터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리는 완전히 명절분위기였다.

《2. 16경축》등과 거리로 오가는 사람들의 밝게 핀 웃음들, 저자구럭을 량손에 들고가는 녀인들의 모습이 이채로왔다.

학생소년궁전건설장의 거대한 콩크리트기초물우에서 청년돌격대원들이 방비로 뭔가 쓸어내고있었다. 명절만 지나면 벽체올리기 작업으로 어지러워질 구조물이건만 집안바닥처럼 쓸고있는것이였다. 겨울의 혹한속에서 처낸 콩크리트구조물이 그들에게는 자기의 살과 피처럼 여겨질것이다.

진영은 가슴이 훗훗해졌다. 비질을 하던 처녀들 몇이 차를 향해 손을 저어보였다. 운전사가 비탈길에 흘러내린 얼음버캐때문에 속력을 늦추자 차가 멈춰서는것으로 안 처녀들이 자라목이 되여 한 처녀의 뒤잔등에 파고들다가 차가 그대로 내달리는것을 보고는 《방패》의 잔등을 밀치며 깔깔 웃어들댔다. 진영이도 슴새나오는 웃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뒤창으로 그들을 돌아보던 진영은 방패로 된 처녀가 향옥이임을 알아보았다.

《잠간만 세워주오.》

차에서 뛰여내린 그는 서둘러 그들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향옥이를 만나면 피할듯싶었던 그였다. 림영찬이며 조창혁이한테서 향옥이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은 뒤부터 향옥이에 대한 죄스럽던 감정이 더 커졌던것이다.

향옥은 다른 동무들이 있어서인지 한달넘어 만나는데도 별로 반겨하는 빛이 없이 《안녕하세요. ···》하고 깍듯이 인사만 했다.

진영은 반년 채 안되는 돌격대생활기간에 향옥이가 퍼그나 변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얼굴은 약간 타고 거칠어진듯싶었으나 그때문인지 더욱 생신하고 약동하는 아름다움이 넘쳐흘러보였다.

《남동무들은 다 어데로 가고 동무네만 일하오?》

향옥이가 동무들을 보다말고 입을 열었다.

《청년호텔건설장에 지원을 갔어요.》

《지원이라니?!···》

《저흰 지난밤까지 기초치기를 다 끝냈거던요. 그때문에 저희 대대는 래일 순회우승기를 받게 되였어요.》

그의 말은 긍지높게 울렸다.

《정치지도원도 거기 갔소?》

《모르겠어요. 점심때에 특간호를 만들고있던데―》

《나하고 병실로 가보기요.》

진영의 말에 향옥은 머밋거리다가 따라섰다.

《힘들지?》

《안요.》

둘만이 걷는데도 향옥은 얌전을 빼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병실에 이르니 보초병만 있고 정치지도원도 방금 청년호텔건설장에 갔다고 했다. 진영은 대형특간호앞에 잠시 서있었다. 백두산고향집아래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무한히 충직한 근위대, 결사대가 되자!》라는 붉은 글발이 힘있었다.

《보지 마세요.》

진영이가 몇줄 읽어내려가자 향옥이가 그의 손을 끄잡아당겼다. 진영은 《저의 희망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것이예요.》라고 쓴 글밑에 향옥의 이름이 있는것을 보고 웃었다.

《괜찮아.》

진영의 말에 향옥은 얼굴이 빨개졌다.

《난 오늘저녁 오빠한테 갈려고 했어요.》

《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고마왔다.

《저희 병실에 들어가자요.》

《그럴 시간이 없구나. 이제 재경동무네 집에 가야겠다.》

《그-래요. 하지만 잠간 들렸다 가요. 부탁할것도 있고 용서받을것도 있어요.》

《허허, 용서라니―》

진영은 가슴이 뜨끔했다. 어저께 열린 사로청위원회결정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향옥이의 예술단소환문제가 결정되였던것이다. 돌격대에서 올라온 향옥이에 대한 평정서에는 《···로동에 근면성실하고 조직과 집단을 위해 모든것을 바칠줄 아는···》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모름지기 향옥은 그 소환결정과 관련된 자기의 새로운 결의와 기쁨을 말하려 할것이다.

진영이가 방금전에 향옥이를 만날 생각을 한것도 이때문이였다.

그는 처음으로 녀성병실에 들어가보게 되였다.

눈부시게 흰 백포가 깔린 침대머리마다에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지함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진영의 눈길이 그에 가닿는것을 본 향옥은 얼굴을 붉히며 나직이 속삭였다.

《저도 받았어요.》

《그걸 자랑하자고 했니? 너희 돌격대가 다 받았지.》

《네. 전번엔 솜옷까지 선물받았어요.》

향옥은 애되게 웃어보이고 벽에 걸린 배낭에서 뭔가 꺼내 옷섶안에 감춘채 진영이옆에 앉았다. 무엇때문인지 근심어린 얼굴이 되여 속눈섭이 가늘게 떨렸다.

《오빠, 나 욕하지 말아요.》

향옥은 옷섶에 감추었던 물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빨간 비로도로 싼것이 무슨 책같았다.

《나 말이예요, 오빠가 준걸 없앴어요.》

《뭘 말이냐?》

《저··· 3년전에 저한테 주었던 기념품 말이예요.》

《어―엉》

진영은 눈이 덩둘해졌다. 세계민청에서 소환되여올 때 진영은 향옥에게 목걸이를 사다주었던것이다.

《그러니 이젠 그런 치레거리와는 결별한다는거니?》

《뭐 그런건 아니지만.》

향옥은 남자들 손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빨간 비로도를 풀었다. 진영은 저으기 놀랐다. 방금 조창혁의 방에서 본것과 같은 돈묶음이 차곡히 쌓여있었다. 향옥은 점직해하며 말했다.

《그 목걸일 수매한 돈과 제가 저금했던거예요.》

《그런데?―》

진영은 목이 꺽 막혔다.

《축전준비에 보탬해달라는거예요. 오빤 나무래지 않겠지요.》

《집에선 아니?》

《엄만 알아요.》

《음.》

진영은 가슴이 뭉클해 더 말을 못했다.

《오빠, 이걸 꼭 받아줘요.》

향옥은 간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맡기니. 정식 대대에 바치면 더 좋지 않니.》

《아니, 그건 안돼요. 제가 바치는걸 알면 안되니까요. 제가 오빠한테 알리는건 오빠의 기념품을 없앴기때문이예요.》

향옥은 볼록한 입술을 깨물며 웃어보였다. 진영은 가슴이 떡 막혔다.

《근데 왜 네가 바치는걸 모르게 한다는거니.》

향옥은 진영의 눈길을 피하며 잦아드는 소리로 말했다.

《저야··· 떳떳치 못하지 않아요. 제발 부탁이예요. 누구도 모르게 해주세요.》

진영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 어릴 때 같으면 그를 껴안고 흔들어주고싶었다.

《네가 왜 떳떳치 못하다는거냐. 너희 돌격대에선 네가 훌륭한 사로청원이고 깨끗한 량심과 지향을 가진 처녀라고 평정을 했더라. 예술단에도 그래서 다시 보내게 된것이다.》

《예술단에요?》

향옥은 가는 눈섭이 휘우듬해져 그게 사실인가 하는 눈길로 진영을 보았다. 진영은 그제야 아직 향옥에게 소환결정을 알려주지 못했으리라는것을 알았다. 진영은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난 너의 소환도 소환이지만 너의 이 처사가 정말 기쁘다.》

향옥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창문쪽에 시선을 주고있었다. 창문은 어느새 어스름이 내려 컴컴했다. 그래서인지 발깃하게 타던 향옥의 얼굴에 그늘이 비껴있었다. 진영은 문득 짚이는것이 있어 마음이 흐려졌다.

《왜 반갑지 않다는거니. 혹시 넌 아직도 예술단동무들이 비판해준걸 고깝게 생각하는것이 아니냐?》

진영은 자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가 하고 말하려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돌아서던 그는 흠칫하며 굳어졌다. 향옥이가 얼굴을 싸쥔채 어깨를 떨고있었던것이다.

《정말 모를 일이구나. 너도 알지 않느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너의 일을 두고 걱정하셨다는걸.》

《오빠.》

향옥의 목메인 말소리가 진영의 가슴을 쳤다.

《전 그때문에 그래요. 전 아직도 저지른 과오를 다 못씻었는데···》

진영은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아픔이 뼈속까지 훑었다. 언젠가 지금처럼 어깨를 떨며 설음과 원망에 찼던 향옥의 모습이 엇갈마들었다.

(못난 《오빠》?!···)

바깥취사장쪽에서 처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들과 그릇들이 맞부딪치는 달그락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향옥은 여전히 어깨를 떨고있었다. 진영이도 눈굽이 젖어들었다.

향옥이 방울방울 흘리는 눈물은 고뇌의 마지막응결물을 가셔내는 환희의 샘줄기이리라. 여린 가슴에 상처를 입고 청순한 넋에 끼인 끄스름을 씻기 위해 가슴태운 력사도 저 눈물에 비껴있지 않을가.

(아아, 어찌하여 나는···)

누구보다 향옥이를 잘 알고 그를 아끼고 믿었어야 할 자기가 믿음을 버렸었다는 자책이 창끝처럼 찔러왔다.

(인정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의 결함만 확대해보려 하지 않았던가. 그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죄다 외면했고··· 결국 나는 자기 량심마저 속인셈이였다. 그건 나의 심장이 뜨겁지도 크지도 못한때문이야. 겁을 먹었지. 큰 사고를 쳤다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먼저 향옥이부터 만나 구체적내용을 파고들었을것이며 초급단체위원장의 보고서를 고쳐쓰게 했을것이고 실질적인 내막을 알게 된 사로청원들은 옳은 리해밑에 착실한 방조를 줬을것이다. 그에 따라 림영찬의 과격한 생각도 바로잡아주었을것이며 향옥이의 반발적인 《조동결심》도 생기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반지를 《팔고》 딸라를 《감췄다》는 사실에 기가 질려 향옥이와 《함께》 비판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철가면》을 쓰고있었다.

(나를 욕하라. 이 못난 나를―)

가슴 울컥한 속에 김정일동지의 초상화를 뜨겁게 우러러보았다.

언제나 믿음과 사랑부터 앞세우시는분!···

그는 향옥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만하렴.》

《안됐어요.》

향옥은 약간 부풀어오르는듯 한 입술을 깨물며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사실 말해서 여기 일은 몹시 힘들어요. 정말이지 뻐근해요. 그러니 떠나라고 해도 그냥 훌쩍 떠나질 못할것 같애요. 힘든 일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처럼 되잖겠어요.》

《됐다.》

진영은 속이 저릿해 화제를 돌렸다.

《너 재경동무의 집을 알겠지.》

《건 뭣때메요?》

《오늘 그 동무네 동생도 너처럼 큰돈을 바쳐왔다.》

진영이가 그 사연을 말하려 하자 향옥은 점직한 웃음을 띠우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알고있어요.》

《그럼 혹시 너희들끼리 의논한게 아니니?》

《아니, 아니예요. 그제저녁 우연히 알게 되였어요. 재경동무의 동생이 왔댔는데 그가 재경동무한테 하는 말을 엿듣고··· 전 그전까지 재경동무의 동생이 우리 건설장에 자주 와서 철근쪼박들을 줏고 재경동무까지 그 수집사업을 돕는걸 보고 무슨 일인가 했더랬는데 그게 축전지원금 마련이더군요. 저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이걸 생각한것이예요. 그러니 난 재옥이보다도 한참 못하지요.》

향옥은 언제 울었더냐싶게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여하튼 괜찮은 생각을 했다. 가자!》

《가다니요?》

《너야 그 집을 알것 아니냐. 재경동무하구야 4년동안이나 지끈한 사이로 있었는데.》

《그런 소린 말아요.》

《허허, 네가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알아도 우습게 아는구나.》

《정말 모른다니까요. 4년전에 한번 집위치를 얼핏 들었을뿐인데―》

《그럼 찾을수 있겠구나.》

진영은 향옥이가 몹시 거북해하는것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는 둘사이가 풀렸을것이라는 생각과 또 그렇게 되였으면 하는데서 더욱 그와 함께 가고싶었다.

《정 그렇다면 가요.》

향옥은 토라진 소리로 말하며 목에 두른 감청색수건을 풀고 눈같이 흰 머리수건을 둘러감았다.

재경이네 집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반시간되나마나한 사이에 가닿은 소층주택지구에서 골목을 누비며 여러번 물어서야 집을 찾을수 있었다.

기타소리가 건드러지게 울려나오는 집문앞에 이르렀을 때 향옥은 현관복도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계단굽인돌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진영이의 문기척에 행주치마를 두른 50대 녀인과 함께 송재옥이 얼굴을 내밀었다. 향옥이를 본 그의 눈이 초롱불처럼 밝아졌다.

《배우아지미 아니예요?》

재옥은 진영이에 대해서는 아랑곳않고 향옥이를 반기며 뛰쳐나왔다. 향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고 그의 어머니에게 나붓이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향옥이가 진영이를 소개하자 재옥의 어머니는 반색을 하며 어서 들어오라고 하였고 재옥은 어리둥절한 눈길로 진영을 향해 꾸벅 절을 하고는 향옥에게 묻는 눈길을 주며 문을 활짝 열었다.

진영의 눈에 비친 재옥은 신통히 형을 먹고 게웠다고 할 정도로 모상이 같았다.

방안에는 텔레비죤외에 이렇다할 기물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밑에 놓인 생화화분 두개에서 그윽한 향기가 피여올랐다. 방바닥에는 깁다만 장갑들이 널려있었다.

재옥의 어머니는 방을 거두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며 그들을 웃방에 안내하였다.

첫눈에 띄우는것이 략장이 달린 해군군복과 비닐로 싼 솜옷이 벽에 나란히 걸려있는것이였다. 향옥이가 말하던 선물솜옷같았다. 침대우에는 재옥이가 타다 놓은듯싶은 기타가 있고 책상우에는 두단짜리 책꽂이가 있었다. 그 책꽂이의 한귀퉁이에는 깜찍스럽게도 작은 군함모형이 있고···

진영은 책꽂이뒤벽에 공책 절반만 한 크기의 사진 한틀이 걸려있는것에 시선이 끌렸다.

군모를 쓰고 흰 위생복을 입은 처녀와 허리굽은 로송을 의지하고 선 기름한 얼굴의 중사가 히죽이 웃고있는 사진이였다.

《전쟁때 찍은것이 아닙니까?》

진영이 재옥이 어머니에게 묻자 녀인은 추연한 웃음을 머금었다.

《강원도 회양에서 찍은것이랍니다.》

《추억이 많겠습니다.》

《내 나이때 추억이 없을 사람이 있나요. 어서 앉으세요.》

재옥의 어머니는 방석들을 권하였다. 향옥이를 볼 땐 홀린듯 한 눈길이 되였다.

《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가 먼저 물었다.

《재옥학생이 바쳐온 돈때문입니다. 많은 돈이더군요.》

《아니 그때문에 예까지··· 벌써 학교선생들도 몇분 다녀갔었는데···》

《좀 구체적인 사연을 알고싶어서입니다.》

진영이가 대답하자 그때까지 무슨 일인가 하여 지켜서있던 재옥이가 입이 잔뜩 부르터 문을 열고 나갔다.

《재옥아.》

어머니가 다급히 불렀으나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애가 철이 없어서.》

재옥의 어머니는 면구스러운 기색으로 변명하듯 말했다.

《철이 없다니요. 철이 있기에 나간것이지요. 이번 일은 집에서 적잖게 도운것 같은데 재옥이의 억지다짐에서였는가요?》

《무슨 억지다짐까지야···》

재옥의 어머니는 가볍게 웃고 치마주름을 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방안을 더듬어살피는 향옥에게 가끔 눈을 주면서―

《애가 너무 극성을 보이기에 저희들도 가만있을수 없었습니다. 또 사실대로 말한다면 저희들로도 응당 해야 할 일이였습니다. 저애 아버지나 제가 다 오륙이 성성치 못한 영예군인이다보니 남들은 수도건설장에 나가 질통도 지고 삽질도 한다는데··· 저흰 구경군노릇만 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속 성의나마 보인다고 집안저금을 좀 찾아 보탰답니다.》

《그랬군요. 실례지만 저금통장을 볼수 없을가요?》

진영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녀인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이 부위원장동지가 실성을 하셨나봐.》

(전부 찾았을것이다.)

진영은 다시금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자기 집이나 향옥이네 집에 비해볼 때 너무나 어설피다. 자그마한 양복장과 아래방의 텔레비죤 하나가 이 집 재산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집에 있는 록음기라도 하나 갖다드려야겠다.)

진영은 침대우에 놓인 기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희들이 뭔가 도와야 할 일이 없을가요?》

《아니, 원 무슨 말씀을 부위원장동진 우리 영예군인들에게 돌려주시는 배려를 다 모르시는것 같군요. 생활보조금에 보약이며··· 저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마세요.》

《어머니를 알게 되여 기쁩니다.》

진영은 깊은 감동을 안고 일어섰다.

《벌써 떠나시렵니까. 변변친 못하지만 저녁식사라도―》

《아니, 감사합니다. 급히 가야 될 일이 있어서―》

진영은 마음같아서는 그냥 눌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전쟁때의 일이며 사진에 깃든 사연까지 죄다 알고싶었다. 그러나 자기를 기다리고있을것이라는것으로 하여 더 지체할수 없었다.

《아버님은 늘 늦게 퇴근하는가요?》

《네. 요즘은 명절준비로 더 늦는답니다. 직장 부문당비서이니까요.》

녀인의 말에서는 긍지가 풍겼다.

밖을 나설 때 녀인이 한쪽다리를 조금씩 저는것이 알렸다.

(영예군인이라고 했지.)

새삼스럽게 재옥이가 어른스런 표정을 짓고있다가 한걸음 길을 틔워주며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게면쩍게 인사를 했다.

진영은 그의 어깨를 눌러잡았다.

《재옥아, 앞으로 이 아지미한테랑 나한테랑 자주 다녀라.》

진영이가 사로청청사에 돌아오니 생각했던바대로 축전관계 성원들이 그냥 한자리에 눌러앉아있었다. 방금전에 축전상무소조에 망라된 정무원위원회, 부의 일군들까지 와서 축전규모안을 다시 토론한 끝에 참가자수를 조금 줄여 락착지었음을 알게 되였다. 《최대규모》라는 선에서 별반 떨어지지 않는 어금지금한 수자였다. 진영이가 향옥이와 재경이네 집 사람들을 만났던 일을 말하자 방안이 떠들썩하게 끓었다. 김관의 고언대성이 모두의 말을 눌렀다.

《동무들, 참가수자를 도로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자원적인 지원자금은 생각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때라면 푼수없는 말이라고 타박을 주었을 조창혁이도 그에 맞장구를 쳤다.

《그 말이 옳소. 그렇게 보면 4만명도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수자도··· 엥이, 이런 소린 그만합시다―》

《오늘은 발편잠을 자게 됐소.》

문밖을 나설 때 김관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진영은 림영찬이한테 향옥의 칭찬을 해줄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