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5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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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간으로 2월 9일 새벽 한시, 모스크바시간으로는 2월 8일 저녁 일곱시.《우크라이나호텔》문지기와 접대원들은 평소와는 달리 무뚝뚝하다고 할 정도의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조선사로청대표단성원들의 이상스런 모습들을 보게 되였다. 개중에는 벙글벙글 웃으며 손을 쳐드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개바람이 든 사람처럼 뻣뻣해서 그들앞을 지나쳤다.

층관리원도 놀랐다. 한방으로 우 몰려들어가는가싶더니 문이 쾅 닫기였다. 그때의 방안광경을 보았더라면 층관리원은 더욱 놀랐을것이다. 방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서로들 와락 끌어안기도 하고 침대에 나딩구는 사람도 있었다.

《만세―!》,《승리다!―》

그 떠들썩한 소음속에서 한 지도원이 주먹쥔 손을 불끈 쳐들었다.

《동무들! 리준렬사가 기억됩니까. 참된 령도자를 그리며 배를 가르던 리준렬사 말입니다. 오늘의 승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그의 말은 눈물에 막혀 더 이어지지 못했다.

2월 6일부터 진행된 3일간의 회의에서 107명의 대표들이 지지연설을 하였다. 반대는 7명, 그러나 최종문건가결시에는 놀라웁게도 이 반대자들마저 《보류》라는 피신처에 숨어버렸다.

이날저녁 모스크바무역쎈터 연회장에서는 조선대표단을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

《창혁동지, 난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입니다. 어떻게 되여 이 모스크바가 갑자기 방향전환을 했는지 결국 당신들한테 손을 든것이 아닙니까.》

마로넨꼬가 춤판에 끌려나가자 왈드가 그의 귀전에 대고 수군거렸다. 우리측 통역이 그 말을 속삭일 때 창혁은 입가에 흘러나오는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난 그에 대해선 달리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에 대한 승리라기보다 정당하고 원칙적인 립장에 대한 공감이라고 보는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역시 공격으로 얻은것이겠지요. 그러니 수수께끼라는것입니다. 진리는 강자에게 있다는것이 서방에만 아니라 여기도 통하는것이거던요. 난 당신네가 강자라는것을,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것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건 무슨 뜻에서 하는 말입니까?》

《당신네를 축으로 새로운 코민테른을 형성할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낡은 개념입니다. 지금은 자주성의 시대가 아닙니까?》

《아니, 내가 알기에 그 자주성은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사상이지요. 힘과 힘의 대결속에 단결된 력량이 없으면 그러한 자주도 실현될수 없지 않습니까?》

《하쎈선생의 말과 비슷하군요.》

《나는 그와 화해를 했습니다. 놀라웁게도 그는 자기를 불러 〈주체신봉자〉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 맑스주의를 접했을 때의 환희를 갖고 주체사상을 헤쳐보는중이라고 했습니다. 후에 어떻게 삐뚤어진 소리가 나올지는 아직 하느님밖에 모르지요. 그는 지금 주체문제를 싸르트르의 실존철학과 결부시켜보기도 하고 크리스토즘과도 대비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통한것은 주체사상이 승리하자면 그 조국인 조선을 성지화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크리스토즘의 번창은 크리스토와 더불어 에루살렘을 신성시한데 있은것입니다. 나는 당신네들이 쏘련과의 사업을 잘하면 조선을 주체의 성지로 하여 세계의 3분의 2를 끄당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땐 왈드동지는 지미뜨로브가 된다는것인가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로부터 6년후 조창혁은 왈드와의 이 대화를 상기하게 된다.

세계 여러 나라 정당들의 《평양선언》발표는 왈드의 말에 일리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왈드는 음악이 《흑룡강의 물결》로 넘어가자 야릇한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저 노래는 참 좋지요. 그런데는 이곳 주인들이 두뇌가 부족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로씨야거지요.》

《그야 좋게 봐야지요.》

《내가 창혁동지한테서 걱정되는것이 바로 그점입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네가 주장하는 자주를 독선적인것으로 리해하고 이번 회의에서도 제기되였지만 축전이 순수 당신네들 판으로 될것같아 우려하는것입니다.》

《왈드동지 역시 그것을 바란것이 아닙니까?》

《물론 바란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해야지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식 축전이 어떤가는 와보면 알게 될것입니다. 우린 왈드동지가 난처한 처지에 빠지지 않게 할테니까요.》

《두고봅시다. 나는 평양축전이 세계청년들로 하여금 진정한 사회주의에 대한 좋은 표상을 얻는 기회로 되길 애써 빌겠습니다. 그런데 제일 걱정되는것은 창혁동지가 오늘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훌륭한 숙소와 최상의 물질적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입니다. 쏘련은 12차축전때 20억루블을 썼습니다.》

악쏘노브가 나타남으로써 대화는 중단되였다. 악쏘노브는 원래 이 탁의 성원이였으나 첫 축배를 든 다음부터는 줄곧 이좌석 저좌석 옮겨가며 이야기판을 만들군 하였다. 창혁은 그의 이러한 행동이 우리를 대하기 어색한데서 나오는것이라고 보았다.

악쏘노브는 술을 많이 마셨으나 조금도 취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술이 그전의 우울하면서도 뭔가 계략을 꾸미는듯 하던 의뭉스런 눈빛을 씻어버리고 밝고 씩씩한 기상을 가져다준것 같았다. 소리나게 의자를 끄당겨놓고 앉은 그는 우리측 통역에게 영어인가 로어인가 묻고는 창혁의 두눈을 정색하여 보며 영어로 말을 떼였다.

《13차축전에 내가 명예손님으로 될수 없겠지요?》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악쏘노브동지야 대표로 와야지요.》

《아니, 나는 대표로는 못됩니다. 래일부터 쏘련청년단체위원장 악쏘노브는 없습니다. 직맹으로 옮기겠는지 어느 꼴호즈에 가겠는지 나로서는 아직 행방이 없습니다.》

《년령〈제대〉인가요?》

《전상자〈제대〉이지요.》

악쏘노브의 눈에는 다시 취기가 살아오르며 비웃음 비슷한것이 떠올랐다. 쏘련은 이번 회의 첫날까지 불성실했던 책임을 악쏘노브에게 떠밀어 해임시킴으로써 우리앞에서 영상개선을 하려 한것이였다.

(희생자로구나.)

창혁은 이름할수 없는 분격과 그에 대한 동정과 측은함에 사로잡혔다.

《우리로써 도울것이 없겠습니까?》

《있지요. 첫째, 나를 반조선파로 보지 말며 둘째, 평양축전때 나를 초청하는것입니다.》

악쏘노브는 《대로씨야인》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있었다. 창혁은 웃었다.

《명예손님으로 되는가 마는가는 축전국제상설위원회에서 결정할 문제니 가부를 서두르지 맙시다. 그런데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추천하는 명단에는 악쏘노브동지까지 포함시키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로청의 이름으로 개별초청을 하게끔 제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악쏘노브는 쓸쓸한 기색으로 잔에 술을 붓고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훌쩍 일어서며 창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혁동지, 평양축전으로 모스크바를 깜짝 놀래울것을 바랍니다.》

그 다음날 조창혁, 류진영, 김관을 비롯한 조선사로청대표들과 마로넨꼬, 쎄르게이를 비롯한 쏘련청년대표단과 회담이 있었다. 축전준비진행과 기타 실무적내용들이 토론되였다. 조선측에서는 주로 질문을 하였고 쏘련측에서는 지난 축전때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조선에선 우리처럼 하기 어려울것입니다.》

이것이 쏘련측의 일치한 견해였다.

3만 4천명의 손님을 치르고 20억루블리의 돈을 들였다는것을 자랑삼아 말하며 안정보장사업에만도 두개 사단의 군대를 풀었음을 강조하는 그들의 말은 분명 호의적이였지만 조선측일군들에게는 거슬리는 소리였다.

(우리를 얕보는 소리가 아닌가.)

회담이 끝나 돌아왔을 때 기어코 쏘련을 눌러야 한다고 모두가 윽윽했다.

이때부터 모두의 생각과 감정속에는 아시아배타주의와 유럽문명제일주의, 대산업독점체의 편견속에 굳어진 사람들을 깜짝 놀래울 꿈과 계획이 하나하나 수자로 대비되여 계산되는 승벽어린 수판튀기가 벌어졌다. 호텔에서, 비행기안에서, 집에 돌아와 동무들앞에서도 이 화제로 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