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

 

제 4 장

3

 

정월 며칠째 날씨는 령하 20선에서 풀릴줄 모른다. 한낮에도 땅우의 눈은 차겁게 얼어있고 전차안의 입김은 하얀 성에로 변하여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밤추위에 졸아든 쪼각달이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다시 두툼한 구름장사이로 숨어든다.

우-우- 팔골로부터 안골까지의 황막한 벌로 회오리바람이 휩쓸어간다. 가설건물의 지붕에서 아츠러운 휘파람이 일고 어데선가 철판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얼어붙은 공기를 타고 메아리를 일으킨다.

몇개의 외등이 조으는 수십리 건설장에는 사람의 기척도 기계의 동음도 뚝 끊어졌다. 날씨관계로 야간작업이 금지되였던것이다.

그 시각 청년호텔건설장이 한눈에 안겨드는 나지막한 둔덕에 네사람이 서있었다.

가운데 계시는분은 김정일동지이시였다.

반외투주머니에 한손을 찌르신 그이께서는 팔골로부터 만경대갈림길까지 곧추 뻗은 새로 닦은 도로를 흡족한 눈길로 부감하시였다. 얼마전까지만도 크고작은 야산과 전후에 생겨난 집들이 오롱조롱 널려있던곳이 100m폭의 도로로 변해버린것이다.

《그러니 이 도로는 결국 석달동안에 한셈이지요?》

《그렇습니다!》

불어치는 눈바람을 막아 그이옆에 꼿꼿이 서있던 허우대 큰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림영찬이였다.

릉라경기장에 나간 시공참모장의 방에 있다가 김준선의 전화련락을 받고 이곳에 나와 뜻밖에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만나뵈온 그는 시종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방금까지 이 추운 한지에 그이를 오래 계시게 하면 안된다고 했던 생각도 죄잊고 서둘러 말씀을 올렸다.

《이곳 건설자들은 석달동안에 무려 7개의 산봉우리를 제껴버리고 다리까지 건설하며 이 도로를 뽑았습니다. 도로건설력사에서 또 하나의 신기록입니다. 지금 건설자들은 올해 4. 15까지 도로를 완전 관통시키겠다는 결심입니다.》

《지금도 도로가 지내 넓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이께서 재차 하시는 물으심에 림영찬은 쑥 우무러져들어가 벙어리가 되고말았다. 2년전 김정일동지께서 잡초우거진 이 둔덕에 오르시여 거리의 기본도로를 100m폭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셨을 때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내여 그이의 웃음을 샀던 림영찬이였다.

김준선이 그를 대신하여 말씀드렸다.

《건물들이 다 일떠설 때까지는 그런 생각들이 없어지지 않을것입니다. 다들 도로라기보다 운동장같다고들 합니다. 습관되자면 당분간 시간이 걸려야 할것 같습니다.》

림영찬은 이때라고 생각하였다.

《장군님! 제가 재작년 유럽나라들을 돌아볼 때도 이런 도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교외의 고속도도로를 내놓고는 거의다 20~30m 폭이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좁아보일지 모릅니다. 난 이 거리를 구상하며 적어도 50년후의 사람들에게도 불만이 없게 만들자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땐 우리가 보지 못할수도 있겠지요.》

휘익- 잘디 잔 눈가루를 품은 바람이 불어쳐와 그이의 반외투자락을 날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눈을 쪼프리시며 그 바람을 즐기듯 마주 서계시다가 활기넘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젠 거리의 축이 선 셈입니다. 하니만치 이제부터는 저 도로를 축으로 건물의 형태와 규모, 그 배치를 잘 어울리게 하는데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건물배치에서 이빠진 공간이 없게 해야 합니다. 저기엔 살림집이 아홉동이지요?》

그이께서 길건너편 둔덕을 가리키시였다. 림영찬이 도면말이를 펼칠 때 회오리바람이 일며 하마트면 종이장이 하늘로 날아오를번 하였다. 김준선과 그이의 부관이 각기 한귀씩 잡아 도면을 펼치자 그이께서 전지불로 비쳐보시였다.

《맞구만.》

그이께서는 도면으로부터 맞은편 둔덕에 시선을 옮기시였다가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저기에도 적게 잡아 넉동을 더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방향에서 전반적으로 도로변의 건물배치를 다시 검토하고 록지와 놀이터외의 빈공간은 다 살림집과 봉사건물들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회리바람이 늘 심합니까?》

《네,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가을과 겨울에 바람질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길 좌우에 병풍식건물을 겹으로 세웁시다. 한결 바람막이가 될것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다니게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림영찬은 선뜻 대답을 올리고나서 아차!-하고 혀를 깨물었다. 김준선이 정중한 자세로 대답을 올렸다.

《거리의 조형미형성에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건설도 축전대상건설에 물리시렵니까?》

《근심이 되오?》

《네.》

《정말 그렇습니다. 그것까지 다 하자면··· 지금것도 아름차지 않습니까?》

림영찬이 한수 더 떠 서둘러 말씀드렸다. 김준선부장이 제때에 말씀드렸기에 망정이지 어쩔번 했는가.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두사람의 심정을 읽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2년안에 다 끝내자는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에는 이빠진 공간을 다 채우려면 적어도 천세대분의 살림집을 더 지어야 할것으로 추산되는데··· 2년안에는 못끝난다 해도 골조는 다 세워야 하겠습니다.》

림영찬은 얼이 빠진듯 굳어졌다. 최근 몇달동안의 체험을 통해 수도건설을 전국가적사업으로 내미시는 그이의 통이 큰 작전과 비상한 전개력에 어지간히 신심을 가지게 된 그였으나 천이라는 수자가 덧붙어 늘어나는데는 비록 골조만이라고는 하지만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자신이 없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정통을 찔러 물으시였다.

《장군님께서 결심하신다면··· 하겠습니다.》

《허허, 내 결심이야 동무네들의 결심에 따라 생기는것 아니요.》

그이의 말씀에 김준선이 침착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2년안으로 골조까지 세우자면 다른것은 해결한다쳐도 자재문제가 걸립니다.》 림영찬은 후유 하고 모두숨을 내쉬였다. 그렇다, 자재다.

지금 2년분계획대상에 든 건설도 세멘트와 강재보장이 빳빳하지 않는가. 새로 세워진 8호제강소와 상원세멘트가 돌아가면 강재와 세멘트를 더 생산해내겠지만 온 나라 도처에서 요구하는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기에는 그것으로도 모자랄것이였다. 《자재난》은 광복거리건설이 진척되는 지난해 가을부터 일군들속에 우는 소리의 하나로 되였다. 건설대상기관들마다 자재문제로 건설지휘부로부터 해당 생산기업소들에까지 내려가 저마끔 먼저 많이 가지겠다고 승벽내기를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사람의 굳어진 얼굴을 보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자재는 걱정하지 마시오. 세멘트와 강재는 내가 담보하겠습니다.》

림영찬은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어디에 비장된것이 있는가. 사오려는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사람의 굳어진 얼굴을 보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그에 대해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론이 계셨습니다. 전략물자예비를 풀기로 하였습니다.》

《전략물자?!》

림영찬은 너무나 놀라 저도모르게 탄성을 올렸다. 전략물자예비란 국방준비를 위한것이였다. 국방을 선차로 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고 당사업초기부터 국방에 우선 관심을 돌리시여 갖은 로고를 기울여오신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영찬의 생각을 헤아리신듯 빙그레 웃으시다가 근엄한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수령님께서는 축전도 건설도 국방과 통하는 사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들을 위하고 청년들을 준비시키는 사업이야말로 나라의 부강발전과 국방강화의 필수적고리라고··· 국방은 무장력만이 아니라 그 나라전체의 힘과 위력의 반영입니다. 내 말의 뜻을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림영찬은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속에는 매사에 거창한 세계가 있음을 절감하게 되였다.

《자재문제외에 또 걸리는것이 무엇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반외투주머니에 한손을 찔러넣으시며 물으시였다.

《없습니다. 이번주안으로 건설대상을 확정짓고 로력편성도 끝내겠습니다.》

《부부장동문 다른 의견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전 꼭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전 최근에 와서야 우리 건설에선 지난 시기 계산법이 아니라 새로운 계산법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계산법입니까?》

《지금 건설자들은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2시간, 14시간씩 일합니다. 때문에 지난 기간의 100명이 지금은 200명, 300명 맞잡이로 계산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저으시였다.

《틀렸습니다. 그 계산법은 새로운것이 아니라 옛날 쑥대밭에서 하던 방법입니다. 우리가 연장작업을 반대한것이 언제부터인데 부부장동문 아직까지 그 소리를 하고있습니까? 난 그걸 반대합니다.》

림영찬은 자기의 《실언》을 깨달았다.

《그 그건··· 그들 스스로 하니만치··· 어쩔수 없습니다.》

《스스로? 물론 그렇겠지요. 스스로라?···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걸 우리가 풀어야겠는데··· 아직 못풀고있습니다.》

《아무리 못하게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난 동무들이 그 막무가내에 습관될가봐 걱정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길건너편에 서있는 기중기를 바라보시였다.

바로 이때 그이께서는 기중기가 파놓은 흙더미우로 한 소년이 걸어올라오는것을 발견하시였다. 흙더미우의 경사면에 흰눈이 덮인것으로 보아 오래전에 생겨 얼었으리라고 짐작이 가셨다.

그이의 시선을 따라 다른 세사람도 그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무슨 바줄타기를 하듯 두팔을 벌려 균형을 잡는가싶더니 몸이 기우뚱했다.

《아차!》

김정일동지께서 혀를 차시였다. 얼음판에 미끄러졌는지 소년은 순간에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눈깜박할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덩이에 빠진것이 아니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도면을 맞잡고있던 부관이 외투주머니에 질렀던 전지를 꺼내들고 나는듯이 달려갔다. 잠시후 부관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떨군 소년을 데리고 나타났다. 온몸에 흙과 눈에 게발려있었다. 림영찬이 마주 달려가 개털모자를 벗어들고 그의 몸을 마구 두들겨댔다.

《이녀석, 어델 싸다니니?》

림영찬의 말에 소년은 한번 눈을 흘깃 떠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지불빛속에 드러난 소년의 잔등에 무겁게 배낭이 지워져있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는것을 보셨다.

《다치진 않았소?》

그이께서는 먼저 부관에게 물으시였다.

《다친데는 없는것 같습니다.》

《몇살이냐?》

그이의 인자하신 물음에 소년은 얼핏 고개를 쳐들다가 눈물을 보이는것이 부끄러웠던지 더 깊이 고개를 수그렸다.

《열다섯살입니다.》

《허허, 열다섯이면 사내대장부인데 고까짓 아픔에 울면 되느냐.》

《아파서 우는것··· 아닙니다.》

소년은 볼부은 소리를 내며 팔소매로 눈굽을 훔치였다. 우는것이 알려진 이상 더 꺼릴것이 없다는 자세다. 그 서슬에 팔소매에 붙었던 콩알만 한 눈덩이가 눈섭에 매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서 소년의 얼굴을 닦아주시였다. 소년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외로 틀다가 얌전스레 그이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말았다.

이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쿡 찌르는듯 한 향기로운 냄새를 포착하시였다. 뭔가 집혀지는것이 있었다. 만년필형 전지불로 소년의 배낭을 일핏 비쳐보시였다. 퇴색한 군대배낭의 한쪽 귀퉁이가 거멓게 젖어있었고 자름자름한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얘야, 배낭에 있는것이 무어니? 혹시 술이 쏟아진것이 아니냐?》

《네.》

소년의 얼굴은 슬픔으로 이그러졌다. 고개를 푹 떨구며 눈물에 잠긴 소리로 말했다.

《술병은··· 다 깨졌습니다.》

《그때문에 우느냐?》

《···》

《큰 랑패를 봤구나. 그래 술은 어데 가져가는거냐?》

살틀한 물으심에 소년은 짜내듯 입을 열었다.

《형님한테··· 형님 생일날이 되여서.》

《형님?! 형님은 어데 있느냐?》

《저기 학생소년궁전을 짓습니다. 군대에서 제대되여··· 처음 맞는 생일인데 형님이 오지 않아서 제가···》

《음. 그랬댔구나. 그런데 부모님들은 뭘 하시느냐?》

《아버지와 엄만··· 다 영예군인입니다.》

《영예군인?!》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탁 막히시는듯 했다. 부모가 오지 못하고 어린 아들을 보낸 리유가 짐작이 되셨다. 그이께서는 무릎을 세워앉으시며 벙어리장갑을 낀 소년의 두손을 꼭 잡으시였다.

《네가 정말 용타. 형님이 건설자라고 했지?》

《네,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 정치지도원을 합니다.》

《응, 아주 중한 일을 하는구나.》

소년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형님은 군대때 우리측 령해에 침입한 괴뢰군함선과 싸워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래, 그거 대단하구나. 그런데 너도 형님 못지 않는 용사가 되겠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의 볼을 가볍게 다독여주시고 일어서시였다. 소년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싶으셨으나 밤추위속에 소년을 그냥 세워두는것이 걱정되셨던것이다. 그때 김준선이 소년을 향해 물었다.

《얘, 너의 형님 이름이 송재경이 아니냐?》

《그래요. 그걸 어떻게 다 아십니까?》

소년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어려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김준선을 보시였다.

《아는 사이요?》

《모스크바축전에 가서 알게 된 동무입니다. 올해 군대에서 대학추천을 받고왔다가 광복거리건설장에 뛰여들었습니다.》

《그건 장려할 일은 못되는데···》

《네, 한데 그 동문 대학공부는 건설을 하면서 통신으로 마치겠다는것입니다.》

《간단치 않구만···》

그이께서는 기쁘신 얼굴로 소년을 돌아보시였다.

《너의 형님이 정말 훌륭하구나.》

소년은 이 자리에서 제일 높은 《간부》의 칭찬에 붕- 떴다.

《우리 형님은 진짜 훌륭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광복거리건설이 서해갑문건설보다 더 큰 건설입니까?》

《그래 더 크다고 할수 있다.》

《그럼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듭니까? 서해갑문에 40억딸라를 투자했다고 하는데 이 광복거리건설에 우리 돈으로는 얼마나 투자해야 됩니까?》

《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답지 않은 그의 말투에 놀라움과 흥미가 동하셨다.

《글쎄 돈으로 하면 너무나 많아서 계산하기가 힘들다.》

소년은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우리반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건설은 일반 계렬생산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에서 유의 창조와 비슷한 일이기때문에 예산작성이 어렵다고, 그래서 저흰 광복거리건설을 지원하는 자금준비사업을 하고있습니다.》

《그건 어떤건데···》

《비밀입니다.》

《비밀?··· 그렇다면 알아서야 안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뜨거워오르시였다. 《자금》준비란 이즈음 학교들에서 토끼기르기나 파고철수집사업같은것으로 마련하는 자금확보일것이라고 판단하셨다.

《얘야, 앞으로 그런 문제가 나오면 이렇게 말하거라. 우리한테 제일 큰 돈은 너희들의 마음, 너의 형님같은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그 마음은 어떤 수자로도 계산할수 없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셨다.

《차에 뭐 좀 없소?··· 다문 몇병이라도···》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부관은 난처한 기색이였다.

《제가 미처··· 예견을 못했습니다.》

《예견할 일이야 못되지.》

《저··· 저한테 몇병 있습니다.》

림영찬이 한발자국 그이앞에 다가섰다.

《어데?··· 차에 있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몹시 반겨하시였다.

《저의 방에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차져 요긴할 때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해서 비장해두었습니다.》

림영찬이 현장사무실에 술을 두는것이 마음에 걸려 변명조로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뭐 자기전에 한잔쯤 하기도 하겠지.》

《네, 건설판에서 붙은 악습이 돼놔서···》

《악습까지야. 이러나저러나 잘됐소. 저애의 형까지 만나보고 오시오.》

《알겠습니다.》

림영찬은 옛 공병중대장의 패기로 발뒤꿈치를 딱 모아붙이였다.

《저··· 인차 떠나시겠습니까?》

《이제 학생소년궁전작업장에 가려고 합니다. 거기서 만납시다.》

《알았습니다.》

림영찬은 소년의 어깨에서 배낭을 벗겨들었다.

《가자.》

소년은 무슨 일인가싶어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았다.

《이 아저씨를 따라가거라. 너희 형님 생일술을 내겠단다.》

소년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이를 우러러보다가 토끼털모자를 벗고 굽석 절을 올렸다.

《고맙습니다.》

울먹진 소리다.

《참, 네 이름은 못물어봤구나.》

《송재옥이라고 합니다.》

《송재옥?··· 이름도 곱구나. 잘 가거라.》

《안녕히 계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이 차에 이를 때까지 전지불로 길을 비쳐주시였다. 그런데 차가 막 떠나려는 순간 차문이 열리며 소년이 밤알처럼 튕겨내렸다. 뒤이어 림영찬이 뛰여내리며 뭐라 소리쳤으나 소년은 활줄에서 튕겨난 화살처럼 김정일동지께로 달려왔다.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

울먹진 웨침이 야음을 깨뜨렸다. 림영찬을 통해 자기와 말씀하신 분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이심을 안 재옥이였다. 김정일동지앞에 이르러 굽석하고 한번 절을 올리며 고개를 쳐드는 그의 얼굴은 별빛도 무색할 정도로 밝게 빛난다.

《허허, 어찌된 일이냐?》

소년은 그이의 부드러운 말씀에 숨만 가삐 쉬다가 두손을 바지혼설에 딱 붙이며 짜랑짜랑 울리는 고음으로 인사말씀을 올렸다.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 안녕을 축원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고맙다.》

그이께서는 소년의 한손에 들려있는 토끼털모자를 잡아당기시여 그의 머리에 씌워주시였다.

《이젠 추운데 그만 가보거라.···》

김정일동지께서는 학생소년궁전작업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길목에서 차를 세우게 하시였다.

몇개의 홰불과 야외등이 엇가로 빛을 뿌리는 속에서 수백명의 청년돌격대원들이 질통을 지고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만경대쪽으로 새로 뽑은 길가에는 그들이 날라다 부려놓은 토량이 10여차분 잘되게 쌓여있었다.

《저 동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준선을 돌아보시였다.

《토량처리를 하는것 같습니다.》

《등짐으로?!···》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시며 차문을 여시고 밖으로 나서시였다.

부관이 튕기듯 달려나가 전지불을 켜드렸다.

그이께서는 타다만 나무가지가 무드기 쌓여진 모닥불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등짐대렬을 묵묵히 지켜보시였다.

《저 토량을 이제 어떻게 한다는것이요?》

《오가는 자동차들과 사업을 하여 실어나르려는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모닥불앞에서 펄럭이는 청년돌격대기폭을 보시자 날카로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를 여기 보낸것은 저런 페단을 막자는데도 있소. 행정대행감투를 무서워 마시오. 사람들을 위한 일에서는 어떤 당권도 행정대행이 될수 없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토량운반작업장 반대쪽에 있는 콩크리트기초장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넓은 평면을 차지하고 우뚝 솟은 기초물은 방수포와 가마니로 꽁꽁 덮씌워져있었다. 하루전에 친 콩크리트기초물우에는 두텁게 톱밥이 거멓게 타들며 연기를 피워올리고있었다. 준선은 김정일동지께 동결방지를 위한 보온양생대책을 말씀올리면서 현재 청년돌격대원들이 2월 16일까지를 목표로 2만 4천㎥의 방대한 기초물굴설을 끝내려 한다는것을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묵진 구뎅이로 내려가 기초물을 감싼 방수포를 주먹으로 꾹꾹 눌러보시였다. 그때 새된 바람이 일며 방수포 한귀퉁이가 열리였다. 부관이 비쳐드리는 전지불빛속에 새것이나 다름없는 솜옷이 드러났다. 그이께서는 방수포자락을 더 넓게 벌리시였다. 또 다른 솜옷과 여러가지 색갈의 모포들이 드러났다.

《이걸 알고있었소?》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니 저 동무들이 내의바람에 뛰는건 이때문인가.》

그이의 음성은 갈리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가 서있는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다가 털모자를 움켜쥔채 뿌리박힌 고목처럼 서있는 림영찬을 보시였다.

《만나봤습니까.》

《저··· 못만났습니다. 작업장에 나가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어깨가 처져내린듯싶은 림영찬을 유심히 보시다가 물으시였다.

《여기 륜전기재나 건설기계들은 다 부부장동무가 쥐고있지요?》

《네.》

《그런데 저 청년들한테 차 몇대 뽑아주기가 어렵습니까?》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엄하게 들리시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실 부장동지한테서도 여러번 말을 들었지만··· 청년들로서 저쯤한 일은··· 전쟁때나 전후복구건설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허허, 그렇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식으로 생각한다면야 무엇때문에 이런 집을 짓느라 고생을 하겠습니까. 초가집에서 살면 그만일텐데. 우리가 간고한 그 시절을 돌이켜보는것은 그때의 정신을 놓고 말한것이지 그때로 되돌아가려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 상태에서 등짐을 완전히 없앤다 하면 어페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계를 쉬우며 등짐을 지게 한다는것이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청년들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그토록 말은 하면서도 저런걸 보고 장하게만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부모된 도리를 지키는것으로 될수 있겠습니까. 부부장동무의 자식이 저기에 있다 하고 한번 생각을 바꿔해보시오···》

림영찬은 목이 꺽 메이는속에 머리를 떨구었다. 숨가쁜 침묵이 바쁜듯 김준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부장동무의 딸도 저기 어디에 있을것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

김정일동지께서 놀랍게 반문하시였다.

준선은 림영찬이 굳게 입을 다물고있는것을 보고 향옥이가 입대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기막힌 가정비극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억이 막힌 눈길로 림영찬을 보시다가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난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삼촌을 만난것부터가 잘못이라고 하는데··· 그 외삼촌의 이마에 원쑤라고 찍혀있지 않는 이상 피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외삼촌이 아니라도 그렇지요. 우리 사람을 만나겠다고 찾아온 이상 같은 겨레로서 피한다는것이 몰인정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불쌍하여 반지를 줬다는것도 칭찬못할망정 나쁘게 볼 근거는 조금도 없는 일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돈이 문젠데··· 동무들을 속이며 감추고 뭘 좀 샀다는것은 물론 아름다운 일이 못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야 리해하고 잘 타이르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 얘기를 듣고보니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 남의것을 부러워하지 않게끔 해주지 못하는것이 가슴아픕니다.》

림영찬은 그이의 흐려지는 음성에 놀라 황급히 말씀드렸다.

《제 딸은 병이 좀 든 애입니다. 그전에는 무심히 대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옛날 저희가 어렵게 살던것은 들을려고도 하지 않고 사치한것만 바라며 외국물건만을 넘겨보는 병집이 생겼습니다.》

《허허, 아버지가 그처럼 생각하는데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고 병이 들어야 얼마나 깊이 들었겠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동무처럼 제 자식을 때리는 아버지는 처음 봅니다.

그렇다 해서 내가 부부장동무가 걱정하는것을 전혀 모르는것은 아닙니다. 옛날부터 황금흑사심이라고 돈에 혹하면 사람이 변질될수 있습니다. 딸에 대해서도 그때문에 신경을 쓰는것 같은데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한창 꿈을 키우며 나래를 펴던 딸을 자기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곳에 뚝 잡아떼여 옮겨놓으면 그 병집이 고쳐집니까?

사상의식이란 강제로 고쳐지는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창 자라는 젊은 나이에는 더욱 그렇지요. 다 자란 경우엔 삐여진 가지가 있다면 부득불 잘라버리지만 애어린 나무는 교정하는데 따라 아지를 펼칩니다. 그래 부부장동문 딸자식 하나 바로잡을수 없단 말입니까? 부탁인데 이제라도 딸을 믿고 따뜻한 사랑을 기울여주기를 바랍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준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청년돌격대동무들은 어떻습니까. 향옥이가 온걸 다 <로동계급화>하러 온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네, 대체로 그렇게 알고있다고 합니다.》

《일은 잘못되였습니다. 아버지가 배척한 자식인데 그들이라고 따뜻이 품자고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본데 의하면 잘 섞여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럴겝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아버지보다는 관대할테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등짐대렬쪽에 시선을 주셨다. 《영차, 영차.》하는 구령소리는 더욱 기세차게 울렸다.

《오늘 저 동무들을 만날가 했는데 지금은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 수도건설에 자동차를 더 풀어주려고 하는데 그 차들중에서 10대는 청년돌격대에 배속시켜줘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청년들한테 부부장동무의 체면도 더 설것이고 따님도 기뻐할것입니다.》

림연찬은 뜨거운것에 목이 막혀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 그만 떠나겠다고 하시며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실 때 림영찬은 하마트면 눈물을 쏟을번했다.

《나는 아버지와 딸이 화해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차에 오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준선부장으로부터 향옥의 문제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막을 더 알게 되시였다. 준선의 입에서 자주 튀여나오는 류진영이라는 청년일군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시였다. 《인터뷰사건》으로부터 폴리오라는 외국청년에게 잡비를 줬다는 일화까지 줄달아 떠오르며 그에 대한 표상을 완성시켜보게 되시였다. 혈혈단신의 고아였다는데서 애잔하게 그려지시는 모습이였다. 마음이 무척 착하고 예민한 판단력을 가진 대신 어딘가 원칙과 신념의 기준이 명확치 못해 우유부단하는 청년으로 생각되시였다. 향옥의 문제처리에서도 그것이 엿보였다. 모름지기 그의 착한 마음과 인정으로 볼 때 향옥의 일은 가슴을 에여내는 상처로 되였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정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데 급급한 나머지 원칙마저 저버린셈이 되고말았다. 사람문제처리에서 심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로 하여 결국 그는 원칙도 인정도 없는 인간처럼 되였다.

(그래 원칙과 신념의 기준문제다.)

우리 일군들이라 할 때 원칙과 신념 문제는 더 론할 여지가 없는 규정처럼 인식되였다. 하지만 명확히 알고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속에서도 구체적인 실천에서는 탈선이 있다. 복잡다단한 정치사와 인간생활의 다양성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당에서는 학습을 시종일관 첫자리에 내세우고있다. 하지만 말과 글을 통해 얻어지는 원칙과 신념을 구체적인 생활속에서 옳게 구현하고 지켜내는것은 간단치 않다. 거기에는 경험과 수양이 안받침되여야 하며 작게는 그 일군의 성격적기질과도 관계되여있다. 류진영에게는 경험도 그렇지만 성격적측면에서는 연약한 점이 느껴지셨다.

경험이 쌓여지고 원칙과 신념의 기준이 확고해지면 성격적약점은 일소된다. 그렇다면 림영찬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일군에게서 경험을 론한다는것은 무리였다.

(과격한 성미?···)

아니다. 그의 잘못은 원칙과 인정을 갈라본데 있다. 결국 그 역시 원칙에서 떠난 셈이다. 딸을 혈친의 관계속에서만 보았고 그로 하여 이른바 《원칙》의 칼날로 부녀관계의 정을 베여버린것이다. 그야말로 원칙속에 인정이 안받침되여야 하고 인정속에 원칙을 살려야 한다는것을 잊었다.

과연 그가 극단한 흥분으로 하여 이 모든것을 망각하였을가. 그이께서는 자신의 마지막말에 한결 얼굴색이 밝아지던 림영찬의 거뭇한 얼굴을 그려보시며 오늘의 밤길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였다. 묵중한 어둠속에서 사로청청사의 몇몇 창문에 여전히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생각을 돌려 물으시였다.

《그런데 1차아이피씨참가준비사업은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3∼4일후에 문건으로 보고드리겠다고 합니다.》

준선의 대답은 시원하지 못했다.

1차아이피씨는 축전장소를 정식 가결하는 국제회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