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제 4 장

2

 

향옥이와 혜련은 청년호텔건설장이 한눈에 보이는 등성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봐요. 향옥동무, 이제 아버님한테 가면 지금보다 더 숨이 찬것처럼 해야 돼요.》

《연극을 하라는건가요.》

《호호. 하긴 그렇군요.》

혜련은 부국장의 명령에 마지못해 따라서는 향옥이를 생각해 동행해온것이다.

《이제 먼 후날에 가면 저 발자국들도 기쁘게 추억될것이고.》

혜련은 눈판우에 새겨진 세줄기 발자국을 보며 아련한 웃음을 머금었다.

《혜련동문 모든 일이 즐겁기만 한가부지요.》

향옥은 아슴푸레 뻗어져나온 발자국을 보며 부지중 서글픔을 느꼈다. 모름지기 오늘일도 후회하게 될것이다.

《향옥동문 정치지도원동지와 가까운 사이였다지요?》

혜련의 뜻밖의 물음에 향옥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상대가 다른 사람같으면 뭔가 모난 말로 내쏘고싶었으나 그저 도리머리를 해보였다. 혜련은 이 돌격대에서 향옥이를 그중 가깝게 대하며 따뜻이 돌봐주는 동무였고 소대장이였다. 하긴 혜련은 그만이 아니라 모든 동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언제 한번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발랄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오목눈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자요.》

눈우에 큼직큼직 찍혀진 부국장의 발자국을 보며 걷는 그의 뇌리에는 불쾌한 일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모든 일은 그날부터 생겨났어.)

재경이가 집에 왔던 일이 생생히 밟혀왔다. 향옥이의 딸라사건으로 집안이 온통 수라장이 된 날이였다. 아버지의 노성이 연방 터져나오고 찢겨져나간 외국제옷가지들이 너저분히 나딩구는 방안에서 향옥이 슬피 울고있을 때 문기척소리와 함께 송재경이 나타났었다. 여느때라면 향옥은 방안의 스산한 광경과 자기의 처참한 몰골로 하여 몸서리를 쳤을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선고를 받고난데서의 체념한 기분때문에서였는지 자기로도 놀라울 정도로 태연히 그를 맞게 되였다. 어떻게는 아버지의 욱박지름과 어머니의 애처로운 정상을 피해갈수 있다는것으로 다행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는 재경을 바래주려 밖에 나섰다가 서로 약속이나 한듯 멀리 련광정뒤에까지 갔다. 밤낚시군들 몇이 보이는 강녘의 돌계단에 앉았을 때 재경은 집안에서 있은 일에 대하여 일언반구 물음이 없었고 향옥이 역시 그런 일은 알바없다는 태도로 대학시험결과가 어떤가 물어보았었다.

그런데 재경은 뚱딴지같이 광복거리건설장에 가게 되였다고 하며 마치 하늘의 별이나 딴듯 한 장한 태도였다.

그때 향옥은 일순간이나마 자기의 난처한 형편과 《고민》을 잊었다. 그는 웃음까지 지어보이며 대학포기를 어려운 일에서의 《도피》라고 했고 과학과 학문탐구를 외면하는것은 수치스러운 처사라고 력설했다.

그 말에는 재경이도 이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건 옳습니다.》

《그럼 동무가 결심한것이 잘못됐음을 인정한것이겠죠?》

《아니요. 우선 난 통신으로라도 공부를 할것이고··· 대학이냐 로동현장이냐 하는데서 내 견해를 말하면 이렇습니다. 어데로 가는것이 더 옳은가 하는 문제는 후차적인것입니다. 문제는 그 선택을 하게 되는데서 출발점이 무어냐 하는것이지요. 자기의 개인적리익, 개인적리해관계로부터 출발한다면 그가 탄광에 가든, 대학에 가든 찬성할수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어데로 가는것이 옳은가를 꼭 밝혀야 한다면 자기가 어디에 보다 필요한 존재로 되겠는가 하는데서부터 출발되여야 옳다고 봅니다.》

향옥은 그가 자기의 감춰진 속심까지 다 들여다보고 말하는것 같아 속이 찔리면서도 한편 약이 올랐다.

《난 동무의 말을 부정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다 자기 발전을 생각하기마련이예요.》

《그 발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재경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향옥은 시험관앞에 선듯싶은 긴장감을 느꼈다.

《거야 물론 사상정신적성장의 과정이겠지요. 하지만 생활적으로 보면··· 저··· 신인배우가 표창급수로 한등급 뛰여오르는것도··· 또 지도원을 하다가 과장으로, 처장으로 되는것도 발전이 아닌가요?》

《나도 앞으로 직장장쯤은 될겁니다.》

(건설직장장?!···)

향옥은 재경의 해군군복우에 세멘트물이 얼룩얼룩한 작업복을 입혀보고 머리를 저었다.

그때까지 자기의 《추문》이 알려지면 어쩌랴 하고 생각던 두려움마저 잊어버렸다.

(이 동무가 내 사건을 알면 어쩔가?)

얄궂은 호기심까지 생겼다. 이제는 그가 알아도 별반 꺼릴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기대선에서 벗어져나가는 사람앞에서 자기 약점을 보이는것은 분명 장한 일이 못되지만 그렇다고 크게 수치로도 되지 않을것이였다.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매듭짓기 위해서도 알려주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괜히 자기에 대한 미련을 품고 찾아다니다가 어느 입가벼운 사람한테서 과장된 이야기를 듣고 놀라게 하기보다 자기 입으로 사실을 말하여 명백한 견해를 가지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천연스런 표정으로 아이레스를 만나던 때부터의 모든 과정을 말했다. 그러나 막상 《잘못》된 사실을 말해가느라니 자기가 더없이 철면피하다는 생각이 들며 사려먹은 강심과는 달리 목소리가 떨리였다. 처음엔 무슨 꾸며낸 소리냐 하는 태도이던 재경은 묵묵히 강물만 바라보았다.

향옥은 그의 눈빛에서 짙어가는 괴로움과 서글픔을 읽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중에도 책대로 사는 그리고 이제껏 자기에게 관심을 돌리던 이 해군사관의 평가가 몹시 듣고싶어졌다.

마음속에 한번 비껴든 사람을 단번에 지워버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향옥은 그때 자기의 잘못된 사실을 다 말할수 있는것도 그를 여느 남자들보다는 달리 생각하고있기때문임을 몰랐다. 아니, 자기 스스로 모르는척할따름이였다.

그러나 물을 용기까지는 없었다. 이제 헤여지면 외간남자에게 자기의 알몸뚱이를 보인듯싶은 모멸감과 후회속에 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때 재경이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함의 한 지휘관동지는 <푸에블로>호 나포때 맨 선참 적함에 뛰여든 사람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함을 수색할 때 침실마다 딩구는것이 딸라였답니다. 그러나 그때 거기에 오른 우리 모든 해병들은 그 딸라를 구두발로 짓뭉개며 바다에 처넣어버렸답니다.》

향옥은 자기의 처사에 대한 혹독한 비판임을 알았다.

《제가 말하지 않았는가요. 외삼촌때문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건 잘못되였어요. 보고했어야 되는데···》

《물론입니다. 근데 그 돈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이건 뭐 심문인가요?》

《아니요. 동문 내 생각을 들어보자고 말한것이니 그것까지는 밝혀야지 않습니까?》

향옥은 또다시 언젠가처럼 이 재경이라는 청년의 예리한 직감과 판단에 당혹과 경의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전··· 그 돈으로 한가지라도 사면 좋은것이지 나쁜것은 없다고 봤지요.》

《그런 타산이 한걸음 더 나가면 어데로 떨어질수 있다는걸 생각해봤습니까? 욕심이 욕심을 낳는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돈과 물건에··· 빠져들면 어떻게··· 된다는거야 동무도··· 알겠지요. 동무나 나나 우린 새 세대인데···》

《그건 무슨 소린가요. 나많은 어른들은 써도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요?》

《난··· 어린애들에게 돈을 막 쥐여주지 않는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전 어린애가 아니예요.》

향옥은 그와 자기와의 사이에는 서로 리해할수 없는 장벽이 가로놓였음을 알았다. 하여 그는 로동현장에 나가련다는 말까지 비치려다말고 오똑 일어섰다.

《전 이제 직장에 나가기로 되였어요.》

매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그자리에 서있었다. 그 어떤 따뜻한 말이던가 좀더 있을것을 바라는 말이 나올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기다렸다. 허나 재경은 그를 막지도 않았고 어떤 위안의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의 등뒤로 갈린 목소리가 울려왔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향옥은 자기가 집쪽으로 난 포석으로가 아니라 관상용새들이 있는쪽으로 걷는다는것을 알았다.

향옥은 이것으로 그와 영원히 헤예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골라골라 배치를 받았다는것이 송재경이 정치지도원으로 있는 대대일줄이야.

향옥은 부국장에게 다른 대대로 돌려줄것을 청원했다. 그런데 부국장은 한수 더 떠 송재경과 함께 있는것이 얼마나 좋은가! 12차축전때부터 동무를 잘 도와준 그가 아닌가, 그 동무의 대대에 보내는것도 다 그런 고려가 있었기때문이다, 송재경동무도 동무가 오는데 찬성이다 하는 식으로 설복을 했다. 그리고 돌격대는 그 어느 사회조직보다 규률이 강하니만치 아래, 웃방 오르내리듯 마음대로 옮길수 없다고 오금을 박았다.

향옥은 그 어떤 떼질도 무의미함을 알았다. 부국장의 말처럼 재경은 친절한 태도로 향옥이를 맞았다. 그러나 향옥은 그에게서 이전날 자기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눈빛이 사라졌음을 보았다. 웃음뒤에는 굳어진 멸시가 따르는듯싶었고 상냥한 말밑에는 환멸이 깔려있는듯싶었다. 이따금 만나서도 사업밖의 이야기는 피했고 학습이요, 작업에서 주의할 점과 같은 조언에 애로되는것이 무엇인가 제기되는것이 없는가 하는 자질구레한 질문뿐이였다.

향옥에게는 이것이 질색이였다. 하여 어느날인가는 이 감정을 폭발시켰다. 노래학습이 끝나고 향옥이만 남으라고 하였을 때였다.

일이 힘들지 않는가, 지난 기간 배운 무용동작들을 잊어먹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그만 자제력을 잃었다.

무엇때문에 동문 나를 이처럼 못살게 구는가, 동무와 나하고 무슨 관계인가, 나에 대해서는 전혀 남남처럼 대해주기를 바란다.

총알같이 내쏘는 그 말에 재경은 얼굴빛을 흐렸다.

《나는 대대정치지도원이라는 직무상책임에서 그리고 알고지내던 동무라는 도덕적책임감에서 동무가 좋은 평정을 받고 돌아갈 때까지 지켜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시오.》

또박또박 끊어하는 말과 어둑하게 질린 그의 눈빛에서 향옥은 《나는 동무라는 녀성에 대해서는 잊은지 오랩니다.》라는 뜻을 읽었다. 향옥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북받치는 설음과 분노에 온몸이 그대로 타서 재가 될것만 같은 속에 향옥은 통쾌한 복수를 그려보는것으로 마음속고통을 껐다.

어느땐가는 다시 무대에 서서 만사람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배우》로 자기를 떨칠것이다. 화려한 조명과 박수갈채 속에 든 자기를 극장에서나 텔레비죤화면앞에서 볼 그때도 재경은 지금과 같을것인가! 그렇지 않을것이다. 그때면 재경이도 생활이란것이 책대로만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될것이고 어느날 우연히 길거리나 극장의 홀에서 부딪치면 향옥은 쌀쌀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될수록 말은 부드럽게 상냥하게 할것이다.

《동무의 교양자적관심에 감사를 드려요.》

아! 얼마나 달콤하고 가슴후련한 복수로 될것인가! 향옥은 몇번이고 입술을 꼭꼭 깨물었다.

그러나 그 래일은 막연하였고 다음날부터 향옥은 새롭게 깨달은 《교양자》와 《피교양자》의 처지를 감수하며 괴로움에 괴로움이 덮씌워지는 시간과 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더구나 돌격대의 거의 모든 동무들이 자기와 간격을 두고 지내는것이 이겨낼수 없는 고통이였다. 자기의 《추문》이 알려진때문인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기를 모욕하거나 멸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점잖게 대했다. 허나 향옥은 언제나 그들이 자기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단봉을 지르고 대하고있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개중에는 자기가 마치 전염병환자인양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릴적부터 무대우에서의 박수와 친절, 선망과 사랑어린 눈길, 이웃들과 동무들의 칭찬에 습관된 그에게서 이런 랭대와 외면은 죽음만치나 가혹하고 이겨내기 어려웠다. 하여 그는 때때로 자기가 예술단에서 이리로 온것이 잘못이 아니였는가고 생각했다. 동료배우들과 단일군들의 질시와 분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씻겨질것이며 자기의 노력과 열성으로 다시 집단의 신임과 사랑을 회복할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간과 날이 흘러갈수록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는것이 더욱 어리석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다행인것은 이 일이 있은뒤부터 재경은 말과는 달리 개별적으로 만나는것을 피했으며 부득불 만나게 되는 경우엔 매우 딱딱하다고 할 정도의 실무적태도로만 말하였었다.

작업장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런데 사람들만 오갈뿐 기중기는 멎어있었고 혼합기의 동음도 들리지 않았다. 향옥은 부국장이 마주가는 기중기밑에 선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 보았다기보다 나팔형마이크를 입에 대고 고래고래 웨치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틀라! 틀라! 죄우라 손가락을 조심해 손가락을!···》

그리고보니 허공중에는 벽체틀을 든 기중기팔이 쭉 뻗쳐져있었고 그우에 두 청년이 움짓거리고있었다.

《고장났는가요?》

부국장이 가까이 다가가며 묻자 아버지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여나왔다.

《고장이면 좋게, 사고요. 넨장 한다더라 하니··· 운전공이 잠간 자리를 뜬새 동무네 대원이 올라갔다가··· 하마트면 몇만원이 날아날번 했소···》

《향옥동무! 아버님이예요.》

혜련이가 생긋이 웃어보이며 향옥의 잔등을 떠밀쳤다. 그러나 향옥은 서너발자국도 못떼고 오똑하니 굳어져섰다.

아버지의 성난 눈길이 비수같이 그의 얼굴을 찔렀다.

《저건 뭣때메 데려왔소.》

《따님한테 좀 관심을 돌리시라는겁니다.》

부국장이 엇서는투로 하는 말을 들은둥만둥 서있던 아버지는 기중기팔이 움직이자 무릎을 철썩 치고는 혼합기쪽으로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향옥은 팩 돌아섰다. 헤련이가 그의 손목을 꼭 잡았다.

《향옥이, 왜 그래요. 아버지야 부국장동지가 있으니 한번 그래보는거지. 가서 만나요.》

《제가 뭐 놀림거린가요.》

향옥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지혜련은 안타까운 눈길로 아버지쪽을 일별하며 잰말로 속삭였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일도 일이지만 아버님의 노염도 풀어드려야 하잖겠어요.》

《소대장동무가 만나요.》

《내-가?》

지혜련은 놀란듯 그를 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동무가 정 소원이라면 가자요.》

혜련은 한숨까지 짓고 모자를 쓰더니 혼합기쪽으로 걸어갔다.

향옥은 부끄러났다.

《그만둬요. 제가 만나겠어요.》

림영찬은 혼합기쪽으로 가면서도 향옥의 거동을 놓치지 않고있었다.

부국장이 려단장과 함께 벽체틀쪽으로 가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향옥이가 자기쪽을 향해 맥없는 걸음을 옮기는것을 보자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저건 무엇때문에?)

오늘 저녁 협의회때 학생소년궁전건설은 자기네 돌격대가 끝까지 맡겠다고 고집쓰던 부국장의 말이 떠오르자 화가 벌컥 치밀었다. 그전날 향옥에게 터뜨렸던 원망과 노염이 다시 살아올랐다.

《너는 내 딸이 아니다.》

그날 림영찬이 한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애지중지 고이 키우고 그만큼 교양도 받은 애가 어떻게 죄지은것 없다는 말 한마디에 조국을 등지며 달아난 사람을 피줄로 대한단말인가.

머리가 팽팽 도는 신우가 그래 조카딸앞에서 죄지은 《자랑》을 하겠는가. 설사 죄지은것이 없다 해도 돈자랑, 집자랑한다면 돌아서는것이 새 세대로서의 응당한 처신이 아니겠는가.

분명 변질된 딸이였다. 그 돈이 저를 우롱하고 이 아버지를 망신시킨다는것쯤이야 철부지 중학생이라 해도 잘 알것이 아닌가.

(허욕에 빠지고 사치에 눈이 어두워졌지.)

림영찬은 그때처럼 꺼지게 한숨을 쉬고 대여섯발자국 뒤에 와선 향옥이를 엄하게 돌아보았다.

《여긴 무엇때문에 나타난?》

림영찬은 혼합기의 소음에 그가 듣지 못할것을 알고 향옥에게 마주갔다.

《누가 보내던?》

《네.》

향옥은 새파랗게 질린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외면한채 말했다.

《저희 대대동무들도 그렇고··· 돌격대에서는 아버지가 학생소년궁전을···》

《알겠다. 그런말은 두번다시 들고 다니지 말고··· 내 찾기전엔 얼씬도 말아라.》

림영찬은 손을 홱 저으며 돌아섰다. 달음박질하듯 뛰여가는 발자국소리와 함께 《흑》하는 흐느낌이 귀전을 쳤다. 얼김에 다시 돌아다본 림영찬은 벌써 향옥이가 어둠속으로 가는것을 보았다.

림영찬은 그 순간 가슴이 뻐개지는것 같았다. 다시 불러세우려다 말고 《에익》하고 입을 강다물고 벽체틀쪽으로 다그쳐 걸었다.

그는 벽체틀에 차오르는 몰탈만 지켜보다가 보온대책(가마니로 싸고 옆에 불통을 놓아두는것이였다.)을 잘할데 대하여 강조한후 살림집건설터로 발길을 옮겼다.

살림집건설장에서도 콩크리트기초치기가 한창이였다. 웃동까지 벗어붙이고 삽질을 해대는 모습들을 보게 되자 울컥했던 기분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지금은 비록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장애로 콩크리트작업같은것은 날씨를 봐가며 하게 되는 제한성이 있긴 했지만 건설자들의 충천한 열의와 기세는 례년에 없는 건설속도를 창조하고있었다.

지난날 벽돌 한장 쥐여보지 못했던 각 도, 위원회와 부의 당, 행정일군들과 공장과 농촌의 로동자, 사무원, 농장원들이 이제는 미끄럼식이요, 아치보요하는 건설용어들에까지 익숙되여 타입이면 타입, 미장이면 미장에 서슴없이 뛰여들어 한몫 톡톡이 해제끼군 하였다.

그러나 걱정거리는 의연히 있었다.

기계와 자재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였고 《건설전문가》로 둔갑한 사람들의 기술기능에 대한 걱정도 덜어버릴수 없는 짐이였다.

요즈음 강추위가 계속되는 날씨여서 세멘트와 골재를 별반 쓰지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더 달라는 소리뿐이였다.

새해 전투와 해토무렵을 예견하여 《비상창고》를 꾸리려는것이였다.

이러한 현상은 일군들간에 《본위주의》라고 쳐야 했으나 일을 더 잘하자는 《욕심》이니만치 무작정 때릴수 없는것이고 림영찬이나 지휘일군들로서는 현장에 내려가 부족되는 단위들에는 재분배를 하고 과잉물자를 끼고있는 단위들에는 설복하는 방법으로 자재조절을 하였다.

밤 11시 조금 넘어 광복백화점터까지 돌아보고 차에 올랐던 림영찬은 립체다리건설장부근에서 모닥불이 타오른것을 보았다.

수백명 실히 될 사람들이 그 불을 둘러싸고 불쪼임을 하고있었다.

(저럴바치고는 침실에 가 푹 쉬게 하는것이 낫지 않은가?)

림영찬은 제김에 화가 동해 차를 세우게 했다.

책임자가 누구인지 단단히 추궁을 해야겠다고 윽벼르며 불가까이에 이르렀던 림영찬은 움찔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삽자루며 질통따위를 깔고 앉은 청년들속에는 인민군장령 서너명이 끼여있었고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로인들도 몇몇 있었다. 낯익듯 한 얼굴들이 있어 유심히 살펴보던 림영찬은 손세를 쓰며 뭔가 열심히 말하는 사람이 자기의 옛사단장인 주성익임을 알아보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림영찬은 무작정 반가운중에 잔등사이를 누비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 이게 누구요.》

주성익이 먼저 반색하며 소리쳤다.

《어떻게 여길 다 나오셨습니까?》

림영찬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성익의 손을 맞잡으며 곁의 《로인》들을 휘살피였다. 김정화며 강태중, 황정희··· 거의가 풋면목이 있는 항일투사들이였다.

《여기 와 앉소.》

주성익은 《로인》들을 향해 모두걸이로 인사를 하는 림영찬의 손을 끄당겨 자기옆에 앉혔다. 림영찬은 꽁무니에 늘 차고다니던 벙어리장갑을 깔고앉으며 그를 마주보았다.

《정말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어떻게라니, 이 길이야 만경대로 가는 길이 아니요.》

주성익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 눈길로 청년들을 돌아보고는 웃었다.

《한번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도 오늘에야 나왔소.》

림영찬은 그동안 퍼그나 못봤던 주성익인지라 하고싶은 말도 꽤 있었으나 청년들의 눈길이 자못 불만스럽게 자기를 겨눠보는것을 알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요즘 무척 바쁘겠구만.》

주성익은 청년들에게 할 말은 다했는지 림영찬에게 말을 걸었다.

《뭐, 별로··· 여전합니다.》

《그래 여전해야지.》

주성익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우리가 나오게 된건 며칠후이면 김정숙동지의 탄생일을 맞게 되기 때문이였소. 김정숙동지께서 생존해계셨다면 늘 이 건설장에 와계셨을것이요.》

주성익은 무겁게 말을 끊고 불깃하게 달아오른 청년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림영찬은 가슴이 쩡해들었다.

해방직후 처음 만난 날부터 주성익은 늘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 백두광명성에 대한 경애의 감정을 터놓군 하였다.

(이 아바이는 지금 나에게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말을 하는것이다.)

주성익은 모닥불에 시선을 주었다가 역시 림영찬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도 장군님께서 자주 나오시지?》

《네. 이 겨울철에 들어서서도 세차례나 나오시였습니다.》

주성익의 얼굴빛이 추연해지였다.

《우리도 그래서 다들 마음은 쓰지만 여기 동무들을 믿을뿐이지.》

《투사동지! 우리는 투사동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어떻게 받들어모셔야 하는가를 배웠고··· 힘을 얻었습니다.》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다기차게 말했다. 주성익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고맙소.》

그는 흥분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큰소리로 물었다.

《그래 동무들은 아까 말한대로 계획을 앞당길수 있소?》

《넷, 해낼수 있습니다.》

여러명의 청년들이 일시에 대답할 때 방금 말한 청년이 일어섰다. 소성 네알의 경표를 단것으로 보아 청년돌격대 지휘관같았다.

《투사동지, 저흰 도끼 하나로 벼락같이 귀틀집을 세웠던 투사동지들의 일솜씨를 따라배우고있습니다.》

《허허, 이것과야 그 귀틀집이 대비가 되나.》

주성익은 말과는 달리 흡족한 기색이였다. 그는 림영찬의 무르팍을 건드리였다.

《림동문 귀틀집 하나에 통나무가 몇개나 드는줄 알아?》

림영찬은 청년들앞에서 자기의 전직을 펼쳐보일 기회라고 생각되며 속이 흔들먹거렸다.

《엄페부 곱쯤 되겠지요?》

《그렇지.》

《백두밀영귀틀집을 참작하면 60~70대 있어야 되리라고 봅니다.》

《그쯤 돼. 큰 병실은 120여개 넘게 드는것도 있고, 근데 그런 귀틀집을 장백현의 도끼목수와 박포리는 사흘동안에 두채씩 지었거든. 통나무 하나를 찍고 아지를 다듬고 마르고 재고 해서 한감 마련하는데 몇시간 걸렸는가 하면 대체로 20분안팎이였소. 생각해보라구. 무슨 기운에 그렇게 했겠는가. 더구나 겨울날 꽝꽝 언 나무는 빠개기는 쉽지만 짜르기는 여간만 베차지 않지. 하지만 해냈거든. 그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기운때문이지. 동무들도 마찬가지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동무네한테 장수힘을 주시지 않았나.》

그가 청년들에게 웃음어린 눈길을 주자 《그렇습니다.》하는 우렁찬 대답과 함께 요란스레 박수를 치는 청년들도 있었다.

(역시 아바이다운 정치사업이구나.)

림영찬은 가슴 흐뭇한중에 모든 일군들이 이런 식으로 건설자들의 마음을 불붙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성익은 좀전부터 뒤전에 와 머밋거리는 중성별 경표의 려단장을 돌아보고는 《그만 하자는것이겠지?》하며 웃어보였다.

《네, 휴식시간이 좀 초과됐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그만 동무네 규정을 어겼구만.》

《저··· 그런것보다 이제 돌아들 가시면 12시가 퍽 넘습니다.》

《우리 걱정은 말라구.》

주성익은 려단장의 꾀바른 《관심》에 입가에 웃음을 그리며 림영찬에게 물었다.

《집에선 다 잘있소?》

《네.》

《향옥이도 이젠 퍼그나 변했겠구만. 그 애가 몇살이드라.》

《설쇠면 스물여섯입니다.》

《어, 좀 있으면 시집갈 때가 되겠군.》

주성익은 호기심에 차서 보는 청년들의 눈길을 일별하며 재차 물었다.

《짝이 있나?》

《뭐··· 아직 없습니다.》

《거 잘됐군. 앞으로 내가 중매를 설가. 그쯘한 총각군관들이 줄을 서있는데··· 아니 여기 청년들중에서도 골라잡을수 있겠구만.》

또 정치사업이구나.

림영찬은 향옥이 모습이 다시 살아올라 밝던 기분이 흐려졌다.

주성익은 림영찬의 생각대로 《정치사업》을 했다.

《난 사실 청년들한테는 군대생활이 참된 교양과 단련의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여기 와보니 이 건설장도 진짜배기 학교야. 동무들! 그렇지 않소.》

주성익의 물음에 역시 아까처럼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주성익은 림영찬과 헤여질 때 안해와 향옥에게 문안을 전하라는 부탁을 각근하게 했다. 차에 올라 수도건설지휘부로 가는 도중 림영찬은 주성익이 《학교》라고 한 말을 몇번씩 뇌이며 향옥이에 대한 자기의 처사가 옳았다고 다시금 위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