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제 3 장

4

 

구름속에 가려진 도시는 점점 멀리로 사라져갔다. 뾰족한 지붕과 푸르른 강도 이제는 하나의 점과 선으로 되여 가물거린다.

창혁은 비행기창으로 비쳐드는 날카로운 해살에 눈길을 가느스름히 쪼프린채 멀어져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볼 때의 부다뻬슈뜨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의 옆에서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힌 류진영이 푸른색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가늘게 숨을 내불고있었다. 잠든것 같았다. 이따금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옆을 지나가는 안내원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려 뜻모를 미소를 띄우군 했다. 비행기가 리륙할 때 있은 일때문인듯싶었다.

창혁이도 류진영이처럼 잠들어볼가 했으나 허사였다. 근 20여일동안 쌓인 피곤이 온몸을 녹초가 되게 만들었지만 지나간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이 엇갈아돌며 마음을 번거롭게 하였던것이다.

모스크바에서의 나날은 기쁨과 감격의 련속으로 볼수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의 쏘련방문을 놓고 두 나라 관계발전에서만이 아니라 세계혁명발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고 흥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류진영의 친구라고 하는 쎄르게이는 《이젠 <아브로라>가 포문을 열었다. 평양축전지지의 탄도미싸일들이 축포를 날릴것이다.》라고 열띤 소리로 말했다.

그때문인지 축전조직관계자들의 회의에서는 하나같이 평양축전주최를 지지환영했고 그 주최발기에 사의를 표시했다. 12차축전총화도 예상외로 순조롭게 평온히 되였다. 그전날 쏘련측의 막후교섭이 은을 낸데도 있겠지만 쏘련측과 그에 따른 여러 나라 대표들의 연설들에서는 지난날과 달리 《양보》나 《량해》를 구하려는 빛은 조금도 없이 자신만만하고 당당했으며 오래전부터 쏘련측을 답새기기로 준비했다고 하던 서방측대변자들도 그 기세에 움츠러들어 《보다 합목적적인》축전만 가지고 운운했을뿐 이렇다할 론쟁도 없었다.

그러나 부다뻬슈뜨에 들어서면서부터 뭔가 달랐다. 달라졌다기보다 새롭게 알게 된것이였다는것이 정확한것이였다.

첫날 도시를 돌아보며 받게 된 인상때문이기도 하였다.

얼룩거울앞에 너무 오래 서있으면 요지경속에 든듯한 환각이 생기고 좀 있으면 그 환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의 시각이 오히려 환각으로 된다. 때문에 자주 제주머니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이 부다뻬슈뜨에 들어서면서 류진영이 창혁에게 준 첫 조언이였다. 부다뻬슈뜨에는 처음 오는 조창혁이였다. 초청측의 주인격인 왈드는 재미가 어떤가 하는 창혁의 인사말에 조선에 와서 받았던 인상을 말하며 여기서는 모두가 취해있다, 정상이 되려면 정신도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래서인지 이 도시의 젊은이들은 물론 세계민청의 초청을 받았거나 사업차로 온 거의 모든 나라 청년일군들도 빨리 《취하기에》 급급하는것만 같았고 그 《취기의 도수》로써 창혁에게 뽐을 내보이려는것만 같았다. 일정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과 뇌수를 파먹어들어가는 《말세기》적 《새것》이 얼마나 무섭게 바람을 일쿠는가를 알았다.

텔레비죤과 잡지들에서는 찢어진 넝마치마가 류행의 첨단으로 떠들리우는가 하면 살인과 강간을 변호하는것이 인도주의자의 의기로 찬미되였다. 이를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텔레비죤화면을 가득 채우고 노한 사자처럼 갈기머리를 흔들며 울부짖는 《새것》의 옹호자들로부터 《원시파충류》로 규탄을 받았다. 골목마다 《록크》춤의 광란이 파도처럼 휩쓸었다. 뉴욕이나 빠리의 《히피》들을 닮은 무리가 장송곡을 부르는 사람들의 몰골로 공원과 가로를 휩쓸었다. 계속되는 술놀이와 계집질, 도박으로 비여진 돈주머니를 메우기 위해 밤에는 은행과 상점들을 털었다. 정부와 당기관지들에서는 《근면한 로동》과 《범죄방지》를 호소했지만 그런 신문은 매대에 쌓인채 그냥 묵어나고있었다.

하루전에 있은 작별연회는 창혁으로 하여금 지금도 머리를 쿡쿡 쏘게 하였다. 《스트립 쇼》까지 한다는 캬바레의 광실은 별로 넓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특별히 없었다. 둥근 식탁이 여기저기 널린 맞은편 빈 공간이 무대였다. 천정의 뿌잇한 무리등은 현란한 5색전등의 교차광선속에 가려 구름낀 달처럼 보였다. 서서히 밝아졌다가는 다시 어두워지고 어두워졌다가는 밝아지는 붉고 노란 5색전등의 껌벅임은 눈에 심한 피로를 주고 머리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외교적의무》라는데 따라 이 피로연에 이끌려온 조창혁은 축전시 예술행사들에 참작할것이 없겠는가 하고 무대에 주의를 돌렸다.

끊일락말락 이어져가는 녀자의 흐느낌같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까만 옷차림의 남성무용수 넷이 한 녀성무용수를 둘러싸고 립상처럼 굳어져 서있었다.

녀성은 남성들을 향해 남성들은 녀성을 향해 두팔을 뻗치고있다가 선자리에서 맹렬한 몸놀림을 시작했다. 서로가 찾고 부르며 애원하고 갈망하면서도 어떤 힘에 묶이워 마주 가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움과 반항이였다. 음악의 속도가 빨라지자 그 애원과 안타까움은 자기들의 입은 옷을 갈기갈기 찢는데로 넘어갔다. 목언저리까지 가려졌던 옷들이 까마귀날개처럼 헤쳐져가며 가슴과 어깨, 하반신의 여기저기를 드러냈다. 《자유》라는 정치성이 안배된 제목이여서 뭔가 있을줄 알았던 조창혁은 결국 이 무용도 색정의 유희에 불과한것임을 알았다. 그는 조용히 들어앉아 컵에 부어놓은 레몬수를 조금씩 마셨다. 구경에 열중하던 왈드가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미리 말했지요.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대의 예술은 타락에로 번져나가고있습니다.》

왈드가 량해를 구하는 어조로 말했다. 통역이 되풀이하는 그 말을 들은 창혁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원시사회가 그리운것 같은데 저 놀음을 놀 여유가 있을가. 끼니를 장만할래, 맹수들한테 쫓기울래··· 10만년전의 인류는 후대번식을 위한 놀음도 일년에 딱 한번 했다지 않소. 기운이 있어야지.》

그의 말뜻을 전해들은 탁주위의 사람들이 《와.》하고 환성을 올렸다. 이제껏 조창혁의 공식적이면서도 딱딱한 회의발언에만 습관되여있던 그들이였다.

마쟈르공청비서만이 웃지 않았다. 메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불거져나와 몽골사람 비슷한 레할은 정색한 눈길로 창혁을 보다가 원고문을 읽듯이 말했다.

《나도 저것이 고상하지 못하다는것을 압니다.》

그는 무대를 가리켜보이고 (그때는 이미 무용수들이 퇴장하고 손재주교예사가 공굴리기를 하고있었다.)계속했다.

《그러나 저렇게 하지 않고서는 청년들에게 먹일수 없습니다. 마쟈르는 서방과 너무 가깝습니다. 그 문화가 너무 깊이 박혀들어서 이젠 타협하며 바로잡는 길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공청이 청년들을 쥐려면 부득불 청년들이 좋아하는 서방예술을 빌려다가 우리가 주자는 사상에 옷을 입혀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방금전의 그 무용에서 주자고 한 사상은 무엇이였습니까?》

조창혁은 될수록 말투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썼다. 긴장한 눈길로 통역의 말에 귀기울이던 레할은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뜨직뜨직 말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낡고 진부한 관료화적구습에 대한 항거와 해방의 기쁨입니다. 새 조류에 대한 환호라고도 할수 있고···》

《새 조류란 무엇을 념두에 둔것입니까?》

창혁은 주변사람들의 이목이 자기쪽에 쏠린것을 느끼며 대화를 중도에서 끝마칠수 없음을 알았다. 심각한 문제였던것이다.

레할은 저으기 난처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특별히 새롭다고 할것은 못됩니다. 자유, 평등, 개성존중, 온갖 정신물질적구속에서의 해방··· 물론 루네쌍스의 산물인 이 문제는 자본주의어깨에 지워진 십자가이긴 하지만 최근 쏘련당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주의하에도 있음을 밝혔고 그 해결을 위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로부터 우리 당과 공청에서도 청년들의 개성과 인권, 자유보장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돌리고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있습니다.》

창혁은 아연하였다. 물론 치솟는 반발을 지그시 누르며 정중하게 말하였다.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혹시 간부들과 아래사람들간의 직급상 차이를 고용주와 고용자의 모순관계로 보는것이 아닙니까. 하나의 목적과 지향을 가진 집단속에서 누가 누구와 평등을 이룩하고 누구에게서 해방을 이룩한다는것입니까.

동지들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것을 사회적도덕의 기초로 삼는다고 보는데요.》

《창혁동지, 그 말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나 역시 10년전 모스크바고급당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 창혁동지와 같은 견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레할은 무대쪽을 돌아보고나서 창혁의 찌프러지는 얼굴에 시선을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때로는 저런것이 듣기 좋습니다.》

《고민을 잊기 위해서 말인가요?》

레할은 그 말에 얼굴을 붉히였다.

《창혁동지의 견해를 들어봅시다.》

창혁은 웃었다.

《글쎄요. 나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말이 났으니 합시다. 옛날 야만인들의 북이나 조개껍질 두드리기는 말그대로 진화시대의 인간이 즐거움을 얻기 위한 어린애같은 본능에 맞춘 유희였습니다. 그러나 그 야만인들의 타악기를 본딴 현대의 서방음악은 발전된 두뇌들의 정밀한 타산과 착상밑에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예술>로 둔갑되였습니다. 여러가지 양념으로 조미를 했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나친 재부로 동물화되고, 남들의 고혈을 짜내는데서 지쳤거나 고민을 겪는 사람들에게 마취제로, 반면에 굶주림과 인간천대의 멸시속에 타락한 사람들이 현실을 잊게끔 하는 환각제로 지향된것이 아니겠습니까.》

레할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인차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의다 저것을 좋아합니다. 인간의 본능과 취미는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지요.》

《그건 어떤 본능인가 하는데 있겠지요.》

창혁의 대답에 레할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창혁동지, 우리의 론쟁은 결론을 이룰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때 건너편 탁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 포도주병을 쥔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약간 다리를 꼬는것이 술에 취한것이 알렸다. 아까부터 줄곧 창혁이쪽을 바라보며 그의 옆 두 남녀청년과 시시덕거리던 청년이였다. 매부리코에 구식 네모배기 검은테안경을 끼고 머리를 거의 정수리부근까지 쳐올려 깎아 매우 과격적인 인상을 주었다.

《실례합니다. 로찌라고 합니다.》

조창혁앞에 이른 그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머리를 까딱하고는 둘러앉은 매 사람들과의 친교를 시위나 하는듯 《오, 요한네스! 안녕.》《부불! 안녕.》하며 차례로 판에 박은 인사를 하였다. 왈드는 언짢은 낯빛으로 류진영의 귀에 대고 뭐라 말하였다.

《<유럽민족청년위원회리사회의 망종>이라고 합니다. 왈드는 대상하지 말것을 권고합니다.》

로찌는 진영의 입을 지켜보다가 《왈드》라는 소리가 나오자 《꼼무나 만세! 왈드!》하고 거수경레를 붙였다.

《주정이 부끄럽지 않소.》

왈드가 내쏘았다. 로찌는 비양기어린 눈찌로 왈드를 보다가 창혁에게 돌아서며 영어로 말했다. 진영이가 통역을 하였다.

《저는 조선청년대표단 단장을 알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한잔 붓겠습니다.》

로찌는 샴팡잔에 한가득 술을 부어 조창혁에게 주었다. 창혁은 제풀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금치 못하고 《고맙소. 같이 합시다.》하고 다른 잔에 부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더는 보지 않고 단번에 다 마셔버렸다.

《오! 대단합니다!》

로찌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연극을 놀자는건가?)

이런 의문속에서 마른 안주를 집는데 연거퍼 두개의 술잔이 앞으로 뻗쳐왔다. 로찌와 수작질하던 두 남녀청년이 창혁이앞에 와 선것이다. 로찌가 이젠 창혁이와 구면이나 된듯 허물없는 태도로 두사람을 소개했다.

《런니양입니다. 북유럽중심청년조직성원으로 작년도 프랑스미인대회에서 당선된 녀자.》

녀자가 교태어린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사뿐히 굽혔다가 폈다. 이 도시의 영화광고판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산발한 머리를 허리까지 드리우고 눈가에 광택이 나는 화장품을 발라 어딘가 사납게 보이긴 하지만 로찌의 말대로 미인은 미인이였다. 녀자는 류진영에게도 같은 식으로 인사를 하는데 얼굴이 발깃해지며 눈길이 허둥거렸다. 진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그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식으로 로찌의 말을 기계적으로 받아넘겼다.

《이 미남자는 아이레스, 조선처녀의 사랑을 받는것, 이것이 이 친구의 인생목표입니다. 소속은 나와 같습니다.》

금발머리, 상아조각같은 단아한 얼굴, 랭랭하게 돌아가는 파르스름한 눈··· 이들이였구나!

창혁이가 두사람의 잔을 의례적으로 받아놓자 진영이가 기다렸던듯싶게 처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웃음을 짓고 하는 진영의 몇마디 말에 처녀는 얼굴이 익은 새우처럼 되였다가 순진스런 미소로 막을 치며 빠른 말씨로 뭔가 설명했다.

진영은 또한번 밝고 시원스런 미소를 보이고는 아이레스에게는 손을 내밀어 악수까지 하였다.

《알겠소? 이들이 내가 말하던 사기군녀자고 향옥이를 어째보려던 그 돈부자요.》

창혁은 새삼스럽게 진영을 보았다. 대외사업을 오래 하더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영은 《인터뷰》사건을 조작한 런니에게도 향옥의 《딸라건》이 생기게 한 아이레스에게도 분노가 클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사로청대표단일군이니 그 모든 감정을 눌러 참고있을것이였다.

향옥이의 일이 불쑥 뇌리를 스치며 아이레스를 더 찬찬히 뜯어보게 되였다. 로찌라는 청년은 창혁의 눈길이 아이레스에게 가있는것을 제나름으로 해석하고 말을 이었다.

《이 아이레스는 조선에 관심이 큽니다. 런니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 식탁의 존경하는 제씨들과는 립장이 다르지만···》

로찌는 탁을 휘둘러 가리키다가 런니의 찌프린 눈길을 포착하자 그에게 약간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뚱딴지같은 질문을 들이댔다.

《실례지만 단장씨, 지금 이 좌석에서는 다음기 축전이 기본화제겠지요. 그런데 단장씨는 다음기 축전을 조선의 평양에서 하는것이 실현되리라고 보십니까?》

《그래요. 우리는 그에 대해 몹시 관심이 크답니다.》

런니라는 녀자까지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로찌의 말에 발을 달았다. 류진영이 엄한 어조로 뭔가 말하고 터무니없어하는 얼굴로 창혁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내 말보다 창혁동무한테서 물어야겠다고 하오. 이번엔 또 어떤 놀음일지 조심해야겠소.》

창혁은 류진영의 말보다 같은 각본을 되풀이하는 그들의 처사가 어처구니없었다.

《우리는 믿고있소. 우리의 축전주최희망은 세계청년학생들의 성실한 지향과 량심을 담고있기때문이요.》

《허허, 단장선생, 나는 호의적으로 충고하렵니다. 축전은 광명한 미래를 지향하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축전을 조선에서 할수 있습니까? 조선은 중세기의 암흑속에 있지 않습니까.

원시인들의 오두막같은 집에서 살며 관원과 경찰들의 감시속에 사랑도 자유도 못누리며 강제로동과 고역속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곳이 아닙니까. 우리는 제마음대로 놀고 향락할것을 바라는 청춘들입니다. 청춘!》

창혁은 나프낀으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의 침묵과 어둑하게 타는 눈길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였다.

《당신은 우리 나라에 와봤소?》

창혁은 나직이 되물었다. 로찌는 순간적으로 당황해하면서도 반발하듯 약간 건방진 웃음을 띠웠다.

《나는 그런 나라에 가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못와봤단말이지.》

《그렇지요.》

《그럼 당신은 지금 누구의 머리로, 누구의 입으로 말하고있소?》

《몇푼을 얻어먹고 지껄이는가 이거야.》

왈드가 창혁의 말을 따라 따지듯 물었다. 로찌의 얼굴이 사납게 이지러지였다.

《그건 온 서방이 다 알고있는것이요.》

《당신은 머저리야.》

창혁의 눈에 섬광이 일며 그 불찌가 그대로 칼날같이 로찌의 얼굴을 찔렀다.

《로찌, 들으라구, 당신같은 바보들을 위해서라도 우린 축전을 꼭 하겠어.》

《단장선생, 항의합니다. 선생은 이 좌석에서 벌써 두번씩이나 나를 바보라고 모욕하였습니다.》

로찌는 동정을 구하듯 장내를 둘러보았다. 창혁은 씨무룩 웃었다.

《여보, 정확한 평가는 역시 당신네가 말하는 자유에 속하지 않는가? 우린 당신같이 걸고드는것을 가리켜 도적이 도적이야 한다고 하오.》

류진영이 이 말을 어떻게 통역했는지 장내에 와 하는 웃음이 터져올랐다.

로찌는 발에 채인 개구리상이 되여 씨근거리기만 할뿐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아이레스라는 청년은 방관자의 자세로 로찌의 거동을 재미나게 지켜보고있었다. 런니가 분위기를 바꿀 사람은 자기라는듯 애교있는 웃음을 찰찰 담고 창혁에게 물었다.

《단장선생, 로찌씨는 취했습니다. 량해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알고있는 한에서 북조선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제한되여있는 나라로 알려져있는데요. 단장선생께서는 그 제한이 축전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담보를 줄수 있겠는가요?》

창혁은 도발의 목적이 바로 이 대답을 얻기 위함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이 탁에 쏠린것을 느끼였고 런니라는 녀자의 파란 눈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얼굴뒤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가?)

창혁은 상대가 무안을 타지 않게 정중히 말했다.

《그것을 론하자면 민주주의나 자유의 개념에 대한 견해일치를 봐야 합니다. 아가씨는 살인의 자유를 자유로 보진 않겠지요? 또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웃사람이나 녀성에 대한 무례한 행위를 민주주의로 보진 않을것이고···》

《그건 그래요.》

런니는 불안스럽게 눈을 깜박이며 나직이 대답했다.

창혁은 웃몸을 쭉 폈다.

《아가씨, 당신 역시 우리를 너무 모르고있습니다. 당신네가 말하는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제한이란 바로 그런 살인, 그런 무례한 행위같은것에 대한 제한일 따름입니다.》

런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그는 이미 패배를 느꼈던것이다. 보통 녀자들같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물러설 이 자리에서 런니는 마지막발악인듯 지어낸 미소로 생글거리며 다시 물었다.

《단장선생, 우리가 가서 당신네 나라의 정부나 청년단체를 반대하여 항의시위를 벌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창혁은 정색하였다.

《당신네 나라에선 무근거한 시비질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합니까?》

《탄압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허허, 우리에게는 곤봉이 없습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누구의 각본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다니는것을 우리는··· 흥미있게 보겠지요. 그리고 당신들 발치에 침을 뱉을것입니다.》

《지나치신데요?》

《정의와 진리가 우롱당하는것에 참지 못하는 우리들이니까요. 이 역시 당신네 말대로 하면 자유가 아닙니까?》

그 말에 몇사람이 박수를 쳤다. 그러자 이때까지의 대화를 열심히 지켜듣던 로찌가 한팔을 쳐들어 흔들며 열띤 소리로 말했다.

《난 반대요. 난 축전이 더는 사회주의자들의 선전무대로 되는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 해서 내가 당신들이 욕하는 미제국주의편이여서 그런게 아니요.

난 워싱톤, 크레믈리, 사회주의, 제국주의 다 반대합니다.》

《로찌, 물러가!》

그의 옆에서 여태껏 무대쪽만을 지켜보는듯싶던 꾸바대표인 안드로가 노기를 감추지 못하며 로찌의 손을 비틀어 돌려세웠다.

《친구! 춤이나 추세.》

안드로는 지어낸 웃음을 웃으며 그를 붙안고 일어섰다. 거절했다가는 꾸바식완력권투의 벼락이라도 맞을가봐서인지 로찌 역시 웃으며 발동작을 몇번 하고는 모두를 향해 《안녕.》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합니다.》

아이레스가 창혁에게 사죄하듯 말하고 무엇인가 더 말할듯 하다가 런니가 어깨를 그러안자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러갔다.

창혁은 여기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악취나는 세계의 한 뒤골목을 보게 된다는데서는 불쾌했으나 바로 이때문에 축전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여 가슴속에 박혀드는것이였다.

왈드가 미안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너무 신경쓸것은 못됩니다. 다들 저런 판이니까요. 나는 이젠 습관되고말았습니다.》

《아니 나는 습관되지 못할것입니다.》

창혁은 싱그레 웃어보이고 객석을 굽어보았다. 이 좌석에서 벌어진 일은 아랑곳않고 저마끔 소란을 피우며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고 떠들썩했다. 구석구석에 쌍쌍이 끼고도는 춤패들이 있었다.

(그래 너무나 병들었다.)

창혁은 로찌같은자들이 평양에 와보면 어떻게 나올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무대우에서는 여러 폭으로 갈라지는 치마를 입은 반라체의 녀인이 몸을 비틀어대며 뽈차는 시늉을 하였다. 치마가 너펄거릴 때마다 히끗히끗 드러나는 흰 다리를 보는데 태반의 정신이 팔려있었다.

녀무용수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무대로부터 객석으로 돌진해들어왔다. 환호하듯 술잔이며 손을 내미는 사나이들에게 교태어린 미소를 그리던 녀인은 맨 앞식탁에서 절을 하고는 젖가슴띠의 레스장식을 살짝 쳐들어보였다. 짐승의 울부짖음 비슷한 환성과 박수가 울리는 가운데 여럿의 사나이들이 차례로 그 쳐들어진 가슴팍짬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녀인은 그 손들을 뿌리치는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사내들한테 추파를 던지는것이 아닌가.

《저건 뭐요?》

《팁을 받는 놀음이지.》

류진영의 얼굴이 해쓱해지고 입술이 떨렸다.

《팁?!》

그러고보니 사나이들의 손에는 지페장같은것이 숨겨있었다. 창혁은 언짢은 눈길로 이 행사조직자라고 할수있는 레할을 바라보았다. 음울한 눈길로 왈드와 무슨 얘기인가 주고받던 레할은 창혁의 찌르는듯한 눈길에 부딪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나 《내가 저렇게 하라고 한것은 아니지요. 배우의 자유니까요.》라고 량해를 구하는 눈빛이였다.

그때 객석 중복판에서 《아!》하는 새된 비명이 짧게 일었다.

이제껏 청년들의 돈을 빨아들이던 녀인이 장대처럼 굳어져 서있었다. 허줄한 풀색 쟘바차림의 청년이 그 녀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헝클어진 반고수의 감스레한 얼굴에서 두눈이 불꽃을 튕겼다. 누가 걷잡을새도 말릴새도 없었다. 사나이는 주머니에 찌르고있던 손을 빼들고 천천히, 그러나 매섭게 녀인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약간 비칠하며 되돌아섰다.

《우!》하는 웨침이 일어났다. 그때야 정신을 차린듯 여러명의 손들이 그 《가해자》의 옷깃을 틀어잡았다. 방금전까지 방전하듯 눈에서 불꽃을 날리던 《가해자》는 모든것을 체념한 공허한 눈길로 자기를 붙잡은 손들을 둘러보다가 한번 몸을 흔들어 뿌리치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어데선가 나타난 경찰이 그 청년의 어깨를 틀어잡았다.

《폴리오?!》

류진영이 신음하듯 소리치며 일어섰다. 앞으로 내달을듯 하던 그는 레할에게 고개를 들렸다.

《왜 가만있소. 저 사람은 폴리오가 옳지요?》

레할은 망설이는 기색으로 머뭇거리다가 옆의 탁의 한 청년에게 폴리오를 가리켜보였다. 그 청년이 성급히 일어나 그리로 달려갔다. 경찰은 황급히 증명서를 보이며 하는 그 청년의 말에는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 맵시있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그대로 폴리오를 앞세운채 문밖으로 사라졌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돌아온 그 청년이 레할에게 몇마디 수군거리자 레할은 면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변명조로 말했다.

《인권침해이니 어쩔수 없군요. 조서만 작성하고 보내겠답니다.》

《부부지간이였다는것을 알겠지요. 사랑에서 오는 저러루한 행위야 묵인되는것이 이 나라 법이 아닙니까?》

진영이 격분한 어조로 말하자 레할은 어깨를 으쓱했을뿐 아무 말없이 포도술잔에 리까르도를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심장부담때문에 금주령을 받았노라고 부어놓은 축배잔도 여직껏 들지 않고있던 그였다. 갑자기 부어넣은통에 몇번 딸국질을 하고난 그는 약간 충혈진 눈으로 진영을 보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경찰은 우릴 망신주려는거요. 길거리에서의 무리싸움도 인권존중으로 구경만 하던것들이··· 두고보게만 래일이면 어느 신문에 우리 공청을 때리는 글이 실릴거구. 아마 그 경찰녀석은 뉴스제공값으로 사례금을 받을거네.》

레할이 또 술을 마시려는것을 왈드가 제지시켰다. 그리고 조창혁이와 류진영에게 량해를 바라는 어투로 뜨직뜨직 말했다.

《사실 나는 이번 류진영동무가 폴리오를 만나러 몇번 갔다가 되돌아와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물을 때도 말해주질 못했습니다. 나역시 그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므로 책임이 있다는것때문이였습니다. 그는 요 얼마전에 안해한테 리혼을 강요당하고··· 나에게 팔레스티나의 항쟁조직이나 그 비슷한 단체에 소개해줄걸 부탁했습니다. 그 뒤부터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나타난것을 봐서는 그 희망이 성취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만하지 않겠습니까.》

류진영의 상심한 얼굴을 미안스럽게 보며 하는 왈드의 말에 창혁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왈드는 회의석에서 페회연설을 할 때와 같은 정중한 자세로 일어나 말했다.

《오늘저녁 조선사로청 조창혁동지와 류진영동지는 별도의 사업계획이 있으니만치 이제 떠나려고 합니다. 제가 동행합니다. 래일 출발시간에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노》《노》하는 소리가 있었으나 왈드는 그 소리가 마치 찬의의 표시런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뻗치여 창혁에게 일어설것을 권했다.

창혁은 왈드가 《자기 집으로의 초청》계획을 끝내 관철하려는것임을 알았다. 창혁을 만난 첫날부터 이번 일정에 자기 집 방문을 계획해달라고 했다. 창혁은 그의 초청에 응하는 경우 다른 《림시거주자들 <청년기구산하 각국 주재대표들>》의 초청이 련발될것이고 어디는 가고 어디는 안가는가 하는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수 있다는데서부터 사양하였으나 이 순간에는 결심을 달리하였다.

창혁이가 일어서자 주변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이번길에 알게 된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친절한 미소가 비껴있었다. 창혁은 매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평양에서 만납시다.》

개중에는 이런 반가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류진영이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왈드의 집에 이를 때까지 거의나 말이 없었다. 폴리오로 하여 받은 충격때문일것이였다. 차는 골목길을 접어들어 쇠울타리를 두른 2층집앞에서 멎었다.

웃층은 마쟈르외교관이 살고 아래층이 왈드의 집이라고 했다. 안해와 딸만이 있다던 집에서 네사람이 현관문간에 나와 그들을 마중하였다.

창혁의 옆을 따르던 왈드가 맨앞의 로인을 가리키며 아버지라고 소개를 하였다.

창혁은 로인의 어마어마한 차림새에 저으기 놀랐다.

무슨 의식을 치를 때와 같이 전통적인 아랍민족의상을 하고 배허벅에는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단검을 찌른 거쿨진 체격의 로인은 두손을 맞잡고 서툰 조선말로 인사를 하였다.

《환영합니다.》

왈드가 싱글싱글 웃으며 귀뜀했다.

《아버지는 동지들을 만나겠다고 오늘낮 비행기편으로 지중해를 건너왔습니다.》

꽃다발을 들고선 일여덟살의 딸과 안해를 소개하고난 왈드는 작달막한 키에 신통히 맑스를 련상시키는 구레나룻과 풍만하게 부푼머리칼이 귀바퀴를 덮은 륙십대의 로인앞에 이르자 그를 향해 눈인사를 할뿐 인사시킬념을 하지않았다. 그러나 구레나룻은 그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창혁에게 매우 유쾌한 미소를 뿌리며 영어로 제소개를 하였다.

《하쎈이라고 합니다. 여기 왈드동지의 표현대로 하면 맑스주의대들보를 써는 큰 벌레입니다.》

왈드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가 쏘는 상으로 얼굴을 찌프렸다.

전실 겸 응접실로 쓴다는 가운데 방에 안내되여 자리를 잡을 때 왈드와 그의 아버지가 하쎈을 눈짓하며 아랍말로 뭔가 주고받았다. 창혁은 왈드의 언짢은 기색을 봐서 《하쎈》이라고 하는 인물이 그에게도 예상치 않은 불청객임을 알았다. 그런데 커피잔과 다과가 놓인 탁앞의 쏘파에 앉은 하쎈은 왈드와 그의 안해가 부엌쪽으로 사라지자 마치 이 탁의 주인인양 꺼리낌없는 태도로 말을 걸었다.

《나는 이번에 뉴욕에 가서 차기 대통령후보로 될 부쉬를 만났습니다. 니까라과,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여기 나의 벗인 아브라함을 비행장에서 만나 예까지 왔습니다. 얼마전에는 미하일 고르바쵸브와도 인터뷰를 했고··· 그런 면에서 조창혁동지들과의 상봉은 조선공산주의자들과의 첫 상면으로 될수 있습니다.

먼저 나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맑스주의연구를 전문하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표창으로 쏘르본느대학, 워싱톤국립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칭호를 받았고 <뉴욕타임스>, <워싱톤 월드>를 비롯한 영, 프의 세계적인 일류급신문들에 기고란을 가지고있으며 세계민청, 국제학동을 비롯한 세계청년기구의 출판물에도, 참 <쁘라우다>도 포함됩니다. 글을 내고있는 기자이기도 합니다.》

진영이 요점만을 추려 짤막짤막 전해주는 말을 들으며 창혁은 자기앞의 구레나룻이 간단치 않은 대상임을 알았다. 이 와디디한 소개뒤끝에 어떤 질문이 따르겠는가 하고 점칠 때 하쎈은 그의 심정을 알겠다는듯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 계속했다.

《그런데 미리 주의를 환기시키려는것은 내가 어떤 정객들의 약점이나 붙잡아 시비거리로 삼는 돈벌이글쟁이가 아니라는것입니다. 특히 조선에 대한 립장에서 내가 우호적이라는것입니다. 나는 그전<유마니떼>기자로 있던 50년대, 련합군의 조선출병을 단호히 규탄한바 있습니다. 나의 이런 품행과 신조에 대해서는 한때 나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여기 왈드동지도 인정할것입니다.》

하쎈은 이미 자리에 와앉아 적의어린 눈길로 자기를 쏴보는 왈드를 천연스럽게 돌아보며 말했다. 왈드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도전하듯 말했다.

《실례지만 하쎈선생, 이 동지들은 래일오전 여기를 떠납니다.》

《나도 그래서 왔소.》

하쎈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왈드는 손등을 내려다보며 침착한 어조로 계속했다.

《단장동지는 이제 저와 심중한 문제를 의논하게 되여있습니다.》

《아하, 그런데 당신 아버님은 유격전술에 대한 강의를 받자고 온다던데··· 그렇지만 추방령을 받았으니 내 쉬이 떠나겠소. 단 몇가지만.》

하쎈은 두번째 손가락을 곧추 세워 위협하듯 왈드에게 흔들어보이고 창혁에게 눈길을 돌렸다.

《내가 알건대 지금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거의 모든곳에 <주체>라는 묘한 주의가 <공산당선언>에 밝힌 표현대로 <유령처럼 배회>하고있습니다. 나는 이 주의가 아시아에서 나왔고 그것이 급속히 전파되여 지어 나의 오랜 벗인 이 아랍민족부흥당원의 귀까지 솔깃하게 했다는데 주목을 돌렸습니다. 력대로 보면 새것은 항상 새로운 땅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내가 알고싶은것은 주체사상도 리념상에서 공산주의라고 하는데 실제상 맑스주의와의 대비속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전혀 다른것인가 아닌가 하는것입니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쎈은 얼굴에 차넘치던 진지한 호기심이 실망의 빛으로 바뀌였다. 그는 창혁이가 말하기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맑스주의개조론이겠습니다. 그러나 력사로 볼 때 시간은 그걸 묻어버리지요. 카우츠키도 베른슈타인도··· 다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쎈선생, 선생은 주체사상을 너무나도 모릅니다. 소경의 코끼리더듬기라고 하겠는지.》

코끼리더듬기라는 말뜻을 체득하느라 머리를 기웃거리던 하쎈은 창혁의 억이 막혀하는 기색을 보고는 재치있는 말을 골라 대답했다.

《나는 아직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철학을 많이 공부하셨으니 아시겠지만 립각점이 다르고 주장과 리론, 방법이 다를 때 그것을 개조나 변종의 사상으로 봅니까?

전일적인 체계로 된 하나의 사상과 주의를 단시간내에 선생에게 리해시킨다는것은 나로써 힘든 일입니다. 선생이 뭔가 세계를 위해, 청년들을 위해 사상과 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시겠다면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정식화하여 집필하신 로작들을 보십시오.》

김정일!··· 그분은 세계적군사명장인 위대한 김일성각하의 사상과 인품을 그대로 물려받으신 천재라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주체사상은 우리 수령님께서 창시하시였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발전풍부화시키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김정일각하에 대하여, 그분이 정식화하신 주체사상에 대하여 매우 흥미를 가지고있습니다.

조선에 대하여 아는 우리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그분을 나폴레옹보다 더 뛰여난 분이라고 하더군요. ··· 이건 우리 프랑스사람들에게서 최대의 존경과 찬사이기도 합니다.》

하쎈은 창혁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검붉어지는것을 보며 마지막말을 부언하듯 했다. 창혁은 격분한 심정을 애써 누르고 외교적인 자세로 정중히 말했다.

《선생의 그 표현은 우리에게 모욕입니다. 물론 선생은 남들의 말을 받아외웠다는데서 리해는 갑니다만, 제가 우리 지도자동지의 인민관을 하나 실례삼아 인용하겠습니다. 나뽈레옹은 자기 병사- 인민에 대해 <그대들이 나를 믿으면 나도 그대들을 믿을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우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인민들을 믿으니 인민들은 자신을 믿을것이라고 하셨고 나뽈레옹은 인민우에 군림해있었지만 우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인민을 위하시고 이끄시는 복무자라고 하십니다.》

《아, 알겠습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하쎈은 수첩을 찾는지 주머니를 뒤지다 말고 창혁이와 진영의 눈빛이 매우 차겁게 번쩍이는것을 보자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길 모르는자를 탓하지 말고 길을 대주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의 먼저 말이 거슬렸다면 량해를 해주시오. 그럼 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하쎈의 회갈색눈이 가늘에 쪼프려지면서 창혁의 진속을 꿰뚫려는듯 빛났다.

《귀국을 방문할수 있는가 이것입니다.》

《환영합니다.》

하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는 귀국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는 경우 조창혁동지가 편의보장에 관심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백색테로대상도 적색테로대상도 아닙니다만.》

《선생, 조선에는 예로부터 손님을 친절히 환영하는 풍속이 있고 특히 현재의 우리 나라에서는 <테로범>이라는 말조차 잘 모르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좋고···》

하쎈은 다음 용건이 중요한듯 더 가타부타하지 않고 화재를 이었다.

《두번째로는 김정일각하의 저작들을 구해줄수 없겠는지, 값은 요구대로 지불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건 제 개인명의로 구해드리겠습니다. 이곳 책방들에도 있긴 하지만 제가 기념으로 보내드리지요.》

《고맙습니다. 제 명함입니다.》

하쎈은 자기로 하여 침범되는 시간을 앞당기려는듯 명함장을 꺼내 내밀며 선뜻 일어섰다.

《좀 들고가지 않겠습니까?》

왈드가 반가움을 금치 못하며 일어섰다. 하쎈은 소리를 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따라 일어선 창혁에게 진지한 눈길을 주며 지금까지와는 판다른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젠 과거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래일을 몹시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이 왈드는 나를 공산주의의 적으로 보지만 실제상 나는 맑스나 레닌이 그려본 공산주의 상상봉을 리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까지의 과정이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것으로 나는 그 길에서 물러나 관망할따름입니다. 맑스주의나 현 공산운동권에 대한 나의 비판도 뭔가 새로운 구세주의 탄생을 바라서 그런것이기도 하지요. 그럼 안녕히.》

하쎈이 떠나가자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의 마지막 말의 여운이 하도 쓸쓸하게 안겨든때문이였다.

왈드가 그에 대한 자기의 푸대접이 뉘우쳐졌던지 지어낸 웃음을 띠우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쎈은 나의 대학시절에 철학지도교사였습니다. 내가 보건데 그사람처럼 맑스주의를 깊이있게 알고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처럼 맑스주의에 대해 치명적인 험구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력대의 맑스주의적수들과 우경기회주의자들의 리론을 다 집대성해 자기로서 체계화한 사람입니다. 그는 맑스주의가 실제상 자본주의발전에만 리를 줬다는것입니다. 자본가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제 모순을 깨닫고 부분개조와 개량의 암시를 받게 했다나요.

그로 하여 나는 그와 사상적으로 결별하였고 특히 최근에 와서 공산청년운동을 어떻게나 헐뜯는지···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스크바 12차 축전때 명예손님으로 초청까지 받았는데 갔다와서 하는 소리란 죄다 비방뿐입니다. 지어 모스크바축전은 <반제축전>이 아니라 내용상 <친제축전>이였다거니 소경아이들이 제마끔 보물찾기로 내닫는 경주놀음이였다거니··· 하며 헐뜯는판이지요.》

《그래도 그는 너희 청년들의 앞길에 대하여 제일 근심하는 사람이다. 보고 느낀걸 그대로 말하는거야 죄루 될수야 없지 않느냐?》

이제껏 자는듯마는듯한 자세로 까딱않던 왈드의 아버지가 약간 불만어린 어조로 아들을 나무랐다. 창혁은 이 로인이 프랑스어와 영어까지 다 알고있음에 저으기 놀랐다. 왈드는 그제서야 자기 아버지를 지내 잊다싶이한데 대하여 깨달은듯 창혁을 향해 서둘러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당의 한 좌파를 이끄는 지도성원입니다. 사상상립장은 하쎈과 비슷하고··· 말하자면 공산주의최종목표를 인정하나 그 실현방법은 부정하지요. 하쎈과는 수에즈운하사건때부터 알고있습니다. 아버지가 오늘 모처럼 단장동지를 만나려 한것은···》

《그건 내 말하마. 우선 손님한테 좀 대접이나 하고 이야기를 하자꾸나.》

로인은 그동안 왈드의 안해가 날라온 음식그릇들을 창혁이쪽에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포크를 창혁이와 진영에게 쥐여주며 인자하게 말했다.

《드시오. 우리 땅의 특산물들이요.》

창혁은 사의를 표하고 조그마한 과일 하나를 들었다. 로인은 창혁이가 주인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음인지 먼저 스프를 소리나게 몇술 뜨고는 썰지 않은 빵을 그대로 든채 든든한 이발로 씹었다.

《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우리 대원들앞에선 이렇게 먹소. 전투적이거든, 어서 드시오.》

《우린 초벌식사는 했습니다.》

왈드가 아버지를 향해 민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제야 로인은 창혁이 의례적으로 포크를 들었을뿐이라는것을 안듯 약간 아수해하며 말했다.

《그럼 내 먹을 때까지 손님한테 하고픈 얘기를 다 하렴. 여기선 떠나지 말고.》

창혁은 뚱딴지같은판에 끼웠다는데서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진영이만은 아랍산 포도주가 별맛인지 벌써 세번째 잔을 기울였다.

왈드는 창혁과 진영을 엇갈아보다가 나직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제 래일오후쯤이면 축전주최를 희망하는 조선사로청의 립장에 대한 우리 견해를 알려고 찾아들것입니다. 그때면 나는 이번 세계민청집행위원회 결정서문건에 밝힌 평양축전주최를 적극 지지찬동한다는 내용뿐만아니라 평양축전이 성공적으로 훌륭히 되리라는데 대해 나의 명예를 걸고 담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왈드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코밑에 기른 까뭇한 수염이 쫑긋거렸다.

《그런데 나는 류진영동지도 알지만 얼마전까지는···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동지들의 축전주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놓고, 쏘련을 놓고 의혹과 동요를 품게 되였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의 화합은 결국 물과 불의 결합처럼 증기만 뿜어낼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랍의 모래폭풍에 타 그슬려서인지 늘 검스럽게 보이던 얼굴이 벽돌색으로 달아올랐다. 창혁은 긴장과 호기심에 넘쳐 그를 보며 이사람에 대한 료해자료를 상기했다.

아랍사회민족부흥당 활동가의 아들, 10대 나이에는 《블랑키주의자》(테로방법으로 자본사회타도를 호소한 급진적좌경공산주의자)로, 20대에는 《쓰딸린주의자》, 30대에는 《모택동주의자》로 자신을 묘사한 왈드는 40대에 이르러 사상과 주의의 모순속에 빠져들었다.

흐루쑈브의 수정주의를 때리면서 좌도 우도 아닌 정확한 길을 밟는다고 나선 쏘련공산당 브레쥬네브의 정책이 고르바쵸브에 의하여 또다시 부정당하고 과거의 모든것에 비판이 가해지면서 생겨난 정신적혼란과 모순이였다.

류진영은 왈드에 대해 우점과 함께 아랍인의 단순성과 프랑스인의 경박성을 함께 가지고있다고 했으며 경향성에 있어서는 《친쏘파》라고 했다.

《그러나》

왈드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쏘련이 사회주의원칙과 리념을 계속 지켜내고있음을 이번에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쏘련당 총비서와의 상봉과 두 나라 당의 공동콤뮤니케에서 밝혀진 사회주의원칙과 리념에 대한 확인은 나로 하여금 기쁨을 금할수 없게 하였습니다. 나는 쏘련당의 그러한 립장천명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막강한 권위와 영향력때문이라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사회주의원로수령으로서 가장 견실한 공산주의전위투사가 아니십니까. 문제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막강한 영향력에 탄복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번 쏘련공청과 청년단체의 태도변화도 다 그 영향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쏘련이 그렇게 태도를 바꾸니 그들한테 추종하던 측들도 아예 움츠러들고말지 않았습니까.》

왈드는 못내 만족스럽고 통쾌한 기색이였다.

그러나 창혁은 그의 말로 하여 기분이 어지간히 좋아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잊혀졌던 생각이 되살아나 신경을 쓰게 되였다.

아직 쾌재를 올리기는 이를것이다. 앞으로 쏘련측이 어떤 변덕을 부릴지는 누구도 단언할수 없는것이 아닌가. 왈드가 얼마전의 자기처럼 쏘련을 너무 중시하여 보는 태도에는 웃음이 나왔다.

《그럼 왈드동지는 쏘련측에서 계속 종래의 립장이였다면 평양축전이 가능하지 못하다는것입니까.》

《그렇지요. 암 그렇구말구요. 그러나 저러나 쏘련은 대국이고 사회주의 중심이 아닙니까. 창혁동지가 여기 온 첫날에 내가 말한것이 있지요. 우리 세계민청청사의 창문이나 이 나라 정부 주요건물들의 창문을 죄다 칸살식콩크리트로 만든것은 수류탄이나 총탄을 막기 위한것이라고··· 그런데 그 모든걸 지키는것은 칸살식콩크리트가 아니라 쏘련이지요. <주체>를 확립한 당신들은 례외이지만 여기로서 볼 때야 사실이 아닙니까.》

《그건 사실이지. 그런데-》

이제껏 식사에 열중하던 로인이 포크를 소리나게 놓으며 말했다.

《우리 아랍세계는 크오. 내 거기 크고작은 항쟁조직지도자들과 수반급인사들과도 상면이 있는데 조선에 갔다온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이 새 세계의 창조가 바로 조선에 있다는것이요. 그래서 난 아직까지도 맑스요 크레믈리요 하며 방황하는, 아니 이젠 거기서 물러나 우리 당에 전당할지 그대로 공산당에 있을지 갈팡질팡하는 왈드에게 말했지. 야 왈드야, 기억하느냐, <세계는 혼란의 시대다. 옛것을 부둥켜안고서는 안된다. 새로운 기류가 동방조선에서 터지고있다.>고 한 말을. 청년운동이란 새 기류를 남먼저 타고 움직이는데 그 특성이 있는것이요 그걸 제대로 타지 못하는가 타는가에 따라 흥망이 있다. 그런데 새 기류란것이 말그대로 바람의 흐름이 되면 안되는것이거든. 조선에서는 20년대부터의 투쟁전통을 뿌리로 그 기류가 강산에 차넘친다고 했어. 내 서방의 명관들과만 상대한다던 아리야족의 루이저 린저녀사가 쓴 글을 보고 더욱 느꼈지. 그래서 게 가봐라, 한사람이 깨치면 그가 열사람을 깨우쳐줄수 있고 그 열사람이 백사람을 깨우치는것이야. 그런데 왈드가 평양엘 다녀오더니 새로운 리상세계를 찾았다고 하며 주체사상의 신봉자가 된다고 선언했소. 그리고는 온 세계가 조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했소. ··· 그건 장한거고 내 오늘 조선청년일군을 만나자는것은 첫째루 유격전술에 대한 이야기고 둘째로는 어떻게 청년들을 휘동해 일본이라는 강국과 맞서 싸웠는가 하는 옛말을 듣자는거요. 우리 나라에선 이 왈드와 같이 멋없이 공산주의입방아만 놀리는가 하면 적들의 궁뎅이밑에 깔려 저주를 하면서도 도대체 뭉쳐싸울 생각은 못하고 서로들 제 주장, 제 리론만 떠들며 승벽내기만 하거든. ··· 좀 얘기를 해줄수 있겠소.》

창혁은 기가 막혔다. 자기들을 무슨 유격전의 전문가로 생각하는것도 그렇지만 밤도 깊어가는 이때에 장 열흘을 불쿼두고 얘기해도 모자랄 항일혁명전쟁사의 갈피들을 뒤지라니 딱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괴벽한 로인의 심사를 덧드릴수는 없었다. 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전쟁시기 반일민족통일전선과 반제련합전선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독립군들과 구국군두령들까지 만나시여 그들을 뭉쳐세운 일화 몇개를 들려주었다. 로인은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신중히 들었다.

창혁이와 진영이가 호텔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새벽 두시였다. 온 하루 여러가지 말씨름과 신경전에 곤죽이 된 몸을 푹신한 침상에 파묻으려 할 때 옆호실에 들었던 진영이가 창혁의 방에 들어섰다.

《자려고 하오?》

진영의 얼굴은 푸른 전등빛에 핼쑥하게 보였다.

《앉소. 못자게 하려 들어온건 뻔한것 같은데···》

창혁이 침대머리에 걸터앉자 진영은 그러기를 기다렸던듯 벽가에 놓인 개인용쏘파를 상두대앞에 바싹 끌어다놓고 마주앉았다.

《내가 금방 생각한건데 그 인권이요 자유요가 문제거리요.》

《또 나무이파리요?》

창혁은 언젠가 김관이 했던 말로 퉁을 먹였다. 진영은 열적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소린 그만하고··· 내가 생각한것은 앞으로 축전에 대한 우리의 립장을 표명할 때 그런것을 들고나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걸 공식적으로 명백히 밝히자는것이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축전주최는 선언으로만 끝날것이요.》

《아니, 그렇지 않소.》

진영은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반박했다.

《물론 우리가 그러한 립장을 발표하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 있겠지. 그러나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과반수인 조건에서 그 소리는 우세를 차지하지 못할것 아니요.》

《가결할 땐 그들도 한표씩 가지고있는데도? 그들이 반대하는 경우 어떻게 축전이 성립되겠소?》

《우리는 축전에서는 종래의 그런 틀까지 마사버리자는것이요. 반대하는 나라는 오지 말라 이런 배심을 보이자는것이요.》

《그들이 다 빠지면 우리의 축전은 세계의 절반을 놓고 하는 절름발이 축전으로 될것이 아니요?》

《반대파들이라 해서 다 빠지겠소? 호기심에 끌려서라도 또 축에 빠지는것이 싫어서라도 참가하려 할테니까. 무원칙하게 그들을 다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축전이 무엇이 되겠소? 난 오늘 로찌며 런니며 하는것들의 수작질을 듣고 강경한 립장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소.》

창혁은 입안이 타드는것을 느꼈다. 물을 한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창혁이 송수화기를 들자 교태어린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영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받소. 영어요.》

진영은 이마살을 찡그린채 듣다가 몇마디 날카롭게 쏴붙이고 소리나게 송수화기를 놓았다.

《뭐요?》

《하루밤 애인이 되여줄것을 부탁하누만. 백딸라면 된다고 하오.》

《백딸라?!》

《그들은 이런 매춘부까지 달라고 요구할거요.》

진영은 쓰겁게 말을 받았다.

《골치거리는 골치거리요. 사실 나도 마음같아서는 그런자들을 다 제껴놓고 했으면 좋겠소.》

《그렇소. 그건 우리 청년들을 위해서도 고려해봐야 할 일이요. 그런자들이 와서 분위기를 흐린다는것도 문제지만 우리 청년들한테 나쁜 물이 먹어들지 않는다고 장담할순 없지 않소. 난 향옥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소. 림영찬부부장동지도 말하다싶이 향옥이도 외국에 갔다왔다하면서 오염이 된셈이요. 이런 측면에서는 폴리오의 처 실례가 전형적이요. 그 녀자도 원래부터 타락한 녀자는 아니였소. 마쟈르에 색정영화들이 밀려들 때 그걸 반대하는 시위에까지 나간 녀자였댔으니까···》

《허허, 그만하오. 그래 동문 며칠동안의 축전이 평양을 부다뻬슈뜨로 되게 할것 같소. 자, 이젠 그만하고 쉬기요.》

《폴리오의 일이 걱정되누만.》

《나도 마찬가지요.》

아침일찍 호텔에 나타난 왈드와 지난밤 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로찌네 패거리》문제가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왈드는 로찌같은자들의 떠벌임은 서방이 사회주의를 공격하는데서 늘 써먹는것이니 크게 신경을 쓸것은 못된다고 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날려버리면 되지요. 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죄다 일축해선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반대파를 더 만들게 되니까요. 그저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대로 하면 되는것이지요. 축전만 성공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완전무결한 축전을 바랍니다.》

《너무 욕심이 큽니다. 잔치판에 주정뱅이가 생기는거야 례상사가 아닙니까.》

창혁이네가 왈드를 비롯한 세계민청대표들과 이 나라 공청일군들의 전송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을 때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세관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한 청년이 비행기쪽으로 달려왔다.

《폴리오가!》

진영이 놀라 소리쳤다.

창혁이도 알아보았다. 두손을 마구 저으며 달려오던 청년은 바닥에 널린 과일껍데기를 밟고 넘어졌다. 왈드랑 뛰여가 그를 부축하여 일쿨 때 비행기는 앞바퀴를 땅에서 떼였다.···

《어데 아픕니까?》

귀선 억양의 말소리에 창혁은 고개를 돌렸다.

루즈를 짙게 발라 입술이 몹시 두터워보이는 금발머리 안내원이 파랑눈에 미소를 짓고 내려다보고있었다.

창혁은 얼결에 《아니요.》하고는 마쟈르녀자가 조선말을 하는것이 하도 놀라와 유심히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녀인의 손에 조영프회화집이 들려있었던것을 상기한 창혁은 부지중 미소를 머금었다.

《레할?!》

창혁은 회화집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며 입을 떼였다. 처녀는 상글상글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고 스스럼없이 창혁의 가슴에 모셔진 초상휘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기념선물··· 주세요.》

창혁은 난처했다. 고요한 미소가 흐르는 처녀의 맑은 눈동자에서 어린애와 같은 호기심과 친근감을 찾아보며 창혁은 먼저 두팔으르 벌려보이고 친절하게 말했다.

《동무한테 꼭 주겠소. 지금은 없소. 앞으로 동무, 조선에 오오. 조선에 오면 꼭 주겠소.》

처녀는 회화집을 뒤지다가 얼굴이 빨개지며 머리를 저었다. 말뜻을 모르겠다는것이다. 창혁은 조선이라는 말과 《웰캄》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손짓시늉으로 오면 주겠다는것을 설명했다.

처녀는 손잔등으로 입술을 가리며 웃다가 《브라보 브라보 조선 가겠습니다.》하고 또 한번 머리를 수그리는것이였다.

처녀가 큰일을 치르고난 사람처럼 의기양양히 물러가자 창혁은 웃음을 머금은채 손수건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마음이 꽤 후한데. 안내원한테까지 방문초청을 하고···》

이제까지 자는줄 알았던 진영이가 싱그레 웃었다. 두눈이 새록새록 맑은것이 이제껏 무슨 긴장된 생각을 굴린 사람의 상이였다.

《왜 더 자지 않고?···》

《단장이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는데 부단장이 잠만 자서야 되겠소》

《그-래 ?!··· 그런데 보고서에는 저 처녀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소. 축전가능성의 한 실례로 말이요.》

《허, 그렇다면 보고선 수백페지 넘게 되겠군. 우리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보며 인사말을 붙이던 사람들이 어디 한두명뿐이였소?》

《그런 사람들만 오게 하는 축전은 없을가.》

창혁은 또다시 우울한 얼굴이 되여 기창을 내다보았다. 층계구름이 회백색 담벽이 되여 기창을 가리고있었다.

(과연 로찌며 런니 같은 청년들까지 다 축전에 받아들여야 한단말인가.)

비행기가 허궁 떨어져내리는듯 동체를 떨었다.

기압변화때문일것이였다.

그들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이해의 첫눈이 내리고있었다. 구내와 길바닥에 하얀 솜처럼 덮인 눈이 마음을 상쾌하게 하였다. 비행장에 마중나온 지정철부부장은 이번 길의 사업성과를 축하해서 첫눈이 내린다고 했다. 롱담을 즐기지 않는 그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걸 보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것 같았다. 대사관에서 매일 날아오는 전문을 통해 대표단의 사업성과를 낱낱이 알고있는 그였다. 그의 밝은 표정과 그 기간 축전준비소식은 창혁이로 하여금 로찌네 일같은것은 한순간의 악몽처럼 잊게 하였다. 이날 오후 대표단사업총화보고서 작성과 관련한 토론에서 로찌네의 도발을 언급하긴 했으나 그것은 여담삼아의 화제거리로 되고말았다. 모두가 그까짓것이 무슨 대수냐 하는 태도들이였다. 지금까지의 축전들에 늘 그런 도발이 따랐고 그때마다 조소와 외면속에 움츠러들고말았다는것이였다.

《정 그들이 날치겠다면 우린테 와서 한번 절구질을 당하라지.》

김관의 말에 여러 사람들이 웃을 때 창혁은 아직까지는 밝히려 하지 않았던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절구질은 할수도 없거니와 절구질 몇번에 정신을 차릴자들도 못된다는데 문제가 있소. 진영동무하고는 얘기된것이지만··· 지금 절반 력량이 다 우리를 지지하고있는 상태에서 그런자들을 완전히 제껴놓자는것이요. 방해군들을 구태여 끌어들일게 있겠소···》

이 말에 제일 놀라고 의혹을 품기는 김관이였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축전을 사회주의나라들의 일변도적잔치놀이라고 하는 서방의 시비질에 키질을 하는셈으로 되지 않을가.》

《그렇소. 하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우리의 반제립장을 더욱 철저히 보이자는것이요. 아예 선을 빡 긋는다는것이라고 할가. 어떻소.》

창혁의 제의는 두달반후에 있게 될 국제축전준비위원회에 앞서 다시 토론하기로 일단 락착을 지었다.

이날저녁 광복거리의 청년돌격대 건설장을 돌아본 창혁과 진영은 다음날부터 거의 매일저녁 사로청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함께 야간지원작업에 나갔다.

류진영은 향옥이 속한 초급단체를 지원사업대상으로 자진하여 맡고 틈이 날 때마다 학생소년궁전건설장의 감탕판에 뛰여들었다. 며칠뒤 작업장에서 조창혁을 만난 류진영은 사람과의 사업이 대외사업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는 향옥이가 동무들한테 섭쓸리지 못하고있다고 하면서 몹시 상심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