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

 

제 3 장

3

 

김정일동지께서는 커다란 지구의앞에 서계셨다. 준선부장이 오기전에 허담비서와 함께 장시간에 걸쳐 국제정세문제를 론하셨던 그이이시였다.

조창혁까지 쏘련당문제를 놓고 격분을 표시했다는 사실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생각이 많으시였다.

요즈음은 온 세계가 쏘련공산당의 개혁로선과 사회주의를 놓고 떠들썩하고있다.

사회주의붕괴설까지 나돌고있다.

다양한 색갈로 곱게 채색된 지구의는 어느 한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내려다보며 한 말을 상기시켰다. 우주권에서 지구만치 아름다운 행성은 없다고. 쏘련당지도자도 이 지구라는 행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것일가.

전쟁도 없고 착취도 없고 억압이 없는 화목과 웃음만이 넘치는 세계, 인류의 참된 지향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오늘까지도 세계는 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공상》처럼 그려보고있다. 분명 쏘련당 총비서도 그 세계를 꿈꾸고있을것이고 그 역시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두고 수많은 명인, 재사들이 수천여년전부터 읊조린, 모든 인간이 리기심과 사욕을 버리고 리성적인간으로 될 때 세계의 공정한 질서와 항구한 평화가 이룩될것이다! 라는 시각에서 세계를 보았을것이다.

그러나 《리성적인간》들의 세계가 그렇듯 쉽게 이루어질수 있는가.

정치에서의 성공의 비결은 공상속의 《표대》를 잡고 하는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 튼튼히 발을 붙이고 구체적인 시점에서 판단하고 그 시대의 본질과 요구에 맞게 키를 잡고 운전하는데 있다.

지금은 20세기말이다. 한세기전 이때도 공산주의운동선상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맑스와 엥겔스의 사후에 대두하였던 2국제당기회주의자들의 일이며 흐루쑈브의 일시적 《성공》과 실패의 과정도 생각되시였다.

그런데 과연 쏘련당 총비서가 그 교훈의 력사를 외면하고 기회주의의 비탈길을 끝끝내 걷자는것인가. 오늘의 세계는 힘과 힘의 대결속에서 력학적균형을 찾고있다. 먹고 먹히우는 현상이 부단히 반복되기때문이다. 지금 미국이 세계의 절반을 쥐고흔드는것 역시 그 땅덩어리의 크기와 딸라, 핵탄두와 미싸일의 힘때문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부조리이며 력사의 불공정성이다. 이로 하여 인류는 20세기말이라는 오늘에 와서도 천년전이나 다름없이 약육강식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그런데 쏘련당지도자는 이 모순점해결을 위해 《무장해제》와 《선의》의 기발을 휘두르고있다.

(과연 그는 이러한 《후퇴》로 대결과 경쟁을 없앨수 있다고 믿는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을 향해 천천히 걸으시다가 준선부장에게 시선을 멈추시였다.

《동문 로씨야사람들이 사랑하는 <뜨로이까>에 대한 노래를 들은적이 있소?》

《네. 그에 대한 무슨 민요를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뜨로이까>는 로씨야의 풍경을 말할 때 빼여놓을수 없는것이요. 그 나라의 어떤 시인은 뜨로이까를 놓고 로씨야의 상징이라고 했소. 눈덮인 광야로 힘차게 내닫는 마차! 장쾌하지 않소? 한데 오늘 그 뜨로이까의 마부는 신통치 않소.》

그이의 눈가에는 쓸쓸한 미소가 비꼈다.

《진펄인지 눈구덩인지도 모르고 마구 내몰거던, 그렇지 않소?》

《네.》

준선은 긴장감을 느끼며 말씀드렸다.

《사실 저도 오늘 조창혁동무의 말을 들으며 생각이 많았습니다. 한 나라 지도자에 대해서 청년들까지 이러쿵저러쿵한다는것이 안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저의 견해로 봐도 쏘련당지도자는 그릇된 길로 나가고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흐루쑈브와 같다고 봐집니다. 그런데 흐르쑈브는 파격적인 발언과 허세로 멋을 부렸다면 이 사람은 알심있게, 그럴듯하게 연기를 한다는데 한수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로 하여 그는 공산주의권안에 새롭게 나타난 〈신축성있고 지혜로운 지도자〉로, 랭전의 장벽을 깨뜨리는 〈평화의 사도〉로, 세계적화재거리의 인물로 되였습니다.

쏘련국내에서도 그에 대하여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가적권위를 높일수 있는 지도자로 믿고있는것 같습니다.

그가 표방하는 주장과 지향, 그자체는 별로 나무랄데가 없는것 같아보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다는 아름다운 말과 <개혁>이라는 생신한 표제밑에 나오는 시책들에서는 흐루쑈브때부터 시작된 부패변질의 냄새가 더욱 강하게 풍겨나오고있습니다. 최근에 와서 미국의 고자세에 눌려있는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쏘련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국가를 제물로 바치려 한다고는 생각하고싶지 않습니다.

보다 깊은 의도가 있지 않겠는가, 결정적인 경우 반격으로 나올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1918년 레닌의 브레스트강화조약 비슷한 일시적인 퇴각이 아닐가하고···

그런데 과연 그에게 그런 포재와 의지가 있겠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법은 왕이 만들지만 그 법에 왕의 목이 잘리우기도 한다는 말처럼 쏘련당 총비서도 자기가 그어놓은 강물의 곬에 빠져 지푸라기처럼 떠 흘러가지 않을가 우려됩니다.》

《그가 우리와 대화를 한다면 어떻게 나올것 같소?》

김준선은 그이의 말씀어조에서 자기의 견해에 대한 공감을 느꼈다. 그러나 선뜻 대답을 올릴수 없었다. 물으심에 담긴 뜻이 너무 심각하였기때문이였다. 혹시 김정일동지께서 쏘련방문을··· 그이께서 두해전 중국에 가셨던 일을 상기한 준선은 어지간히 흥분되였다.

웅변의 명수, 론쟁의 명수로 알려진 쏘련의 국가수반을 그이께서 심오한 철학과 강철의 론리로 공감시키는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듯싶었다. 지난해 쏘련당 국제부 일군이 왔을 때도, 올해초 외무상이 왔을 때도 그이의 쏘련방문초청이 있은것을 잘 알고있는 김준선이였다.

《지도자동지, 그는 우리와의 대화에서는 최대한 성의를 보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지구의를 바라보시다가 박력있는 음성으로 말씀을 떼시였다.

《그들도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의 대외적권위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소. 모스크바나 동유럽은 언제나 우리 당, 우리 수령님을 중시하였소. 우리 수령님은 사회주의기치로 되였기때문이요. 내가 축전을 성공적으로 할수 있다고 생각한것도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와 영향력을 믿고있었기때문이였소.

지금 쏘련은 미국과 서방의 눈치를 보느라 어정쩡하게 놀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에 대해 다르게 나올수 없소. 그 나라의 오랜 사회주의전통과 레닌적정신도 다 죽은것이 아니요. 만약 그들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쏘련당내의 견실한 볼쉐비크들과 세계의 진보적공산주의정당들과 공산주의자들한테서 저버림을 당하게 될것이요.

이제 사로청대표단이 모스크바에 가서 우리의 축전결심을 말하면 그들은 싫든좋든 따라설수밖에 없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경건한 어조로 다시 이으시였다.

《이제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쏘련방문을 하시게 되오.》

《수령님께서요?!》

준선은 저으기 놀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사회주의당수뇌자들이 참가하는 쏘련공산당 27차대회에도 가지 않으시였다. 올해만도 여러차례의 방문초청을 마다하신 수령님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준선의 상기된 얼굴을 보시고 생각깊은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수령님께서의 쏘련방문은 그 어떤 단순한 리해관계에서 출발된것은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얼마전부터 쏘련당지도자들과 만날 필요성을 말씀하시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쏘련당만이 아니라 전세계공산주의자들앞에 사회주의와 현정세에 대한 우리 당의 견해와 립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혀야 하겠다고 하셨소.

이건 그전 쏘련당과 국가의 수반이였던 쓰딸린이나 안드로뽀브의 부탁을 참작한것이기도 하오. 그들이 수령님께 어떤 기대를 걸었댔는가는 더 말하지 않겠소.··· 수령님께서는 남의 집일에 감놓아라, 배놓아라 할수 없지만 강건너 불보듯 하는것은 공산주의자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하셨소.

시기적으로도 더 미룰수 없다고 보오. 요즈음 국제부에서 올라오는 보고나 통신자료들이 그것을 강조하고있소.》

준선은 저으기 심중해졌다. 그러나 조창혁이네 앞에 드리운 장막이 활짝 걷힐것이라는 기쁨만은 억제할수 없었다.

《지도자동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이제 그들이 수령님의 견해를 접하고나면 진심이건 일시적이건 우리의 립장에 전적으로 보조를 같이하리라고 봅니다.》

《그건 사실이요. 하지만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거나 그것이 영구할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마오. 수령님께서는 쏘련방문을 놓고 생명이 꺼져가는 환자에게도 마지막까지 주사를 놓게 되는 의사의 심정과 대비해 말씀하셨소. 사회주의의 원로수령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시려는것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추연한 안색으로 생각에 잠기셨다가 손을 내리그으시였다.

《조창혁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쏘련측의 태도에 지나치게 포로되여있는것 같소. 물론 지금까지 쏘련이 축전운동의 중심에 서있었고 또 그들의 영향력이 큰만치 중시해야 하는것만은 사실이요. 하지만 그 중시가 쏘련에 의해 모든것이 결정되는것처럼 생각하는데로 뻗는다면 잘못이요. 문제는 큰 나라건 작은 나라건 개별적나라들의 동향과 눈치를 보며 대응해나갈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칙적립장을 정정당당하게 밝히는데 있소. 지금 시대변화요, 개혁이요 하며 이런저런 소리들이 나온다지만 반제, 자주, 친선의 리념에 대해서는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있소. 물론 뒤구석에서는 이러쿵저러쿵할수도 있고 앞으로 그런 소리들이 더 커질수도 있겠지만 제국주의반동들을 내놓고는 로골적인 반대는 못할것이요. 때문에 이번 대표단사업에서는 이 리념을 주장하고 지켜내는것이 기본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몇걸음 거니시다가 빙그레 웃으시였다.

《쏘련측에 역공격을 들이대자는것은 창혁동무요?》

《그렇습니다.》

《외교적방안은 누가 내놓았소?》

《류진영동무라고 부위원장을 하는···》

《당의 권위를 훼손시켰다고 고민했다는 동무 말이지요.》

《네. 그런데 그 동문 이번 출장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고있습니다. 지난 기간의 자기판단이 오유였다는 교훈으로부터 무작정 믿고보자는 심리가 작용한것 같습니다.》

《억지로 믿어본다는것이 아니요? 여하튼 믿고보자는것자체는 나쁘지 않소. 모름지기 그는 잘될것이다 하는 그 믿음으로 자기의 동요와 불안을 감추고있을것이요.

나는 오늘 그전날 덜레스가 한 말을 생각했소. 그자는 쏘련과 사회주의를 놓고 4세, 5세때에 뒤집어질것이라고 장담했소. 그렇게 보면 지금 쏘련과 동유럽은 그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과히 틀린 소리는 아닐것이요.

인간이란 누구라없이 이런저런 환경에서 정신적동요나 방황을 체험할수 있지. 여기서 굳건한 신념의 기둥, 옳은 길로 인도할 기치가 없으면 끝장이요.

나는 학창시절에 로씨야작가의 한 작품을 읽으면서 천리길을 걷는 사람에 대하여 쓴 대목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였소. 처음에는 훌륭한 목표를 세워놓고 굳센 결심을 가지고 떠나게 되지만 가는 길에 험산준령이 있고 먹고 놀 욕망과 유혹에 부딪치면 동요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원래의 결심과 포부를 저버리고 주저앉고마는 인간에 대한 분석이였소. 쏘련력사가 그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지 않소? 나는 그 대목을 읽을 때 우리 수령님을 생각했소. 수령님께서 주체의 봉화를 높이 드시고 혁명의 수만리길을 인도해오심으로써 항일의 로투사들로부터 우리의 새 세대들에 이르기까지 조그마한 흔들림없이 오늘에로 진군해왔소. 이번 축전에서 볼 때 수령님의 쏘련방문은 수령님의 확고부동한 의지와 신념을 그들과 세계 앞에 다시금 명백히 밝히는것이고, 우리가 축전을 꼭 성사시키려는것은 전세계청년들에게 바로 수령님께서 추켜드신 주체의 불빛을 보게 하려는것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의미심장하게 말씀을 맺으면서 밝게 웃으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사실로 되였다. 사로청대표단의 모스크바출발과 함께 쏘련공청은 평양축전발기에 대하여 전적인 지지와 찬동을 보낸다는 공식립장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