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한낮의 해볕도 열기가 떨어졌다. 석양녘이면 서늘한 바람이 솔숲을 훑으며 선기를 몰아온다. 그래도 이런 때가 일손에는 흥이 날 때다.

야산중턱에 아담하게 일떠서는 청년돌격대 병실작업장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떠들썩 웃고 웨치고.

지붕우에는 박처럼 사람들이 널려앉아있고 기와장들이 팔매돌처럼 날아오른다.

《받아라!》

《받는다!》

《좋지!》

《좋다!》

길닦이패들도 그들에 질세라 법석을 놓는다.

《당겨라!》

《당긴다.》

《한삼태기다!》

《두삼태기도 좋-고!》

둔덕우에 오른 준선은 한참동안이나 그들의 모습에 눈을 팔다가 다시금 걸음을 재우쳤다. 청춘거리건설장으로부터 여기까지 돌아보는데 거의 한겻이 걸렸다. 그동안의 건설정형을 알아보기 위해 나온 걸음이였다. 한주간 사업총화를 위한 준비사업이라고 할수 있었다. 오늘저녁 그는 김정일동지를 만나뵙게 되는것이다.

청년들의 인사를 받으며 병실가까이에 이르렀던 그는 가래줄을 당기는 한 처녀의 모습에 주의가 갔다. 돌격대제모를 쓴것만도 어지간히 답답하겠는데 그 처녀는 모자를 쓴우에 함박꽃문양의 머리수건을 칭칭 감아두르고있었다. 그 처녀와 마주 가래줄을 당기던 처녀가 준선이쪽을 보자《아이!》하고 놀란 소리를 치더니 토끼뜀하듯 달려왔다. 처녀의 모자 한끝에는 들국화 한송이가 꽂혀 한들거렸다. 그와 함께 동행한 북부철길건설때의 돌격대 부국장이 지혜련이라고 소개하는 말에 준선이도 알아보았다.

《부장동지, 안녕하셨습니까.》

고추빛으로 익은 혜련의 얼굴엔 진한 반가움이 풍겼다. 준선이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복대했다는 사실에는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였다. 그의 얼굴에 생겼던 상처자국들이 깨끗이 사라진것도 기쁨으로 되였다.

어떻게 왔는가, 집에서들도 쉬이 승낙하던가 하는 준선의 물음에 혜련은 더욱더 얼굴이 붉어지며 얼버무리는 대답을 하다가 문득 눈빛이 빛나더니 다기찬 소리로 물었다.

《부장동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저희들의 꽃을 보셨다지요.》

《그래, 장군님께선 그 꽃을 보시고 몹시 기뻐하셨어.》

준선은 항일혁명투사들과 군인들속에서부터 나온 《경애하는 장군님》이라는 경칭을 그가 쓰는것이 더욱 대견스러워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혜련은 너무 기뻐선지 오목눈에 물기까지 고였다.

《저희 동무들은 그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불렀답니다. 그리고··· 저흰 이번 건설에서 위훈을 세워 경애하는 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리자고 맹세를 다졌답니다.》

《음, 나도 들었어.》

준선은 이 사랑스러운 처녀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으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 수도건설지휘부에 들려 몇몇 일군들과도 만나고 지금 거기 와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조창혁과 진영이도 만나봐야 했다. 조창혁과 류진영은 이 며칠후부터 모스크바에서 있게 되는 세계청년학생축전관계자들의 회의에 참가하고 뒤이어 열리는 세계민청집행위원회 회의참가차로 부다뻬슈뜨에 가게 되여있었다.

지혜련이와 헤여져 몇걸음 옮기던 그는 머리수건을 두른 처녀의 고개가 푹 숙어져있는것에 시선이 갔다. 돌격대 부국장이 뭔가 눈치를 차렸던지 그 처녀가 림영찬의 딸임을 알려주었다.

준선은 놀랐다.

《여긴 어떻게 왔소?》

이렇게 묻는 순간 펑끗하고 뇌리를 때리는것이 있었다. 언젠가 림영찬을 만났던 일이 생생한 화면처럼 떠올랐다. 그날도 수도건설지휘부에 나가 여러 일군들과 만나는 과정에 당지도소조로 주재해있는 일군으로부터 림영찬이 《해임》문제를 제기해왔음을 알게 되였다. 처음에는 놀랐고 다음에는 심중해졌다. 하여 림영찬을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림영찬은 첫마디부터 딸에 대한 원망을 쏟아놓으며 자기의 해임문제는 응당하다고 우겨댔다.

《딸자식 하나 똑바로 교양 못한 제가 이제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 제가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면 딸이란것도 정신을 차리겠지요. 생각같아서는 어디 두메산골에 훌 쫓아버리고싶습니다만 제자식이니 제가 책임지고 바로 돌아서게 해야지요.》

림영찬은 딸의 잘못을 놓고 어마어마한 딱지를 붙였다. 조국배반자에게 반지를 주고 딸라를 받은데 대해서는 《반역자》취급을 했고 그 딸라로 몇가지 상품을 산데 대해서는 돈과 물건에 현혹되여 썩어가는것으로, 그 모든 사실을 감추려 한데 대해서는 도적놈의 본색이라고 설분을 토했다. 준선은 가슴이 아팠다. 오래전부터 림영찬과 상면이 있는 그는 성미가 드세차기로 소문난 이 사람이 건설장에 나가 살 때면 밤마다 딸에게 전화까지 걸군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만큼 동정이 갔고 측은해졌다. 하여 준선은 그가 더 락심하지 않도록 고무도 해주고 위안도 해주었다. 그런데··· 산길을 내려서는 동안에 돌격대 부국장으로부터 제반사연을 다 듣게 된 준선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들었다.

향옥이가 예술단에서 나오고 돌격대에 들어오자고 한것이 본인당자의 결심인데다가 아버지인 림영찬이까지 적극 나서는통에 받지 않을수 없었다는것이였다.

(스스로?···)

지혜련이와 대조되게 그늘져보이던 향옥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고보면 수치감과 죄의식에 모대김하는 얼굴이였다.

준선은 건설지휘부에 들어설 때까지 그들에 대한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가 자기를 《처벌》하려는것은 막았으나 딸이 자기를 《처벌》하려는것은 막지 못했구나.)

일종의 후회가 가슴을 허볐다.

조창혁과 진영은 준선이가 여기 올 때마다 리용하는 침실겸용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두사람 다 팽팽하게 긴장된 얼굴이였다. 그동안 대표단활동준비때문에 신경들을 써서인지 헐끔하게 축간 모상에 창혁의 입술엔 퉁기까지 생겼고 진영은 낯색마저 하얀것이 앓고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되였다.

이번에 가게 되는 모스크바와 부다뻬슈뜨에서는 래년초에 있게 되는 1차아이피씨(국제축전준비위원회)회의에 제출할 기본안건과 내용들을 합의보게 되여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축전을 어데서 하는가를 합의보는것이였다. 몇달전 류진영이 갔을 때와 같은 내용의 토론이라고 하지만 이번 회의는 공식결정을 채택하게 된다는것으로 하여 자못 중요하였다. 그런데 전반적인 정세흐름과 분위기는 지난번 류진영이 갔을 때보다 더 좋지 않다고 볼수 있었다. 최근 평양축전발기선포를 계기로 수많은 나라 지역 청년단체들에서 앞으로의 축전방향과 성격에 대한 조선측 립장과 견해를 타진해왔는데 거기에는 일련의 요구가 포함되여있었다.

서방쪽에 치우친 일부 청년기구와 단체들에서는 12차축전과 관련된 쏘련의 《대국주의》와 《사회주의일변도》를 혹평하며 그에 대한 비평에 응할것을 요구했다. 만약 그에 응하지 않으면 평양축전을 찬동할수 없다는것이 그에 따른 하나의 조건부였다.

한편 쏘련은 쏘련대로 조선측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비판의 예봉이 자기들에게 쏠려지지 않게 하여줄것을 요구해나섰다. 여기에도 또하나의 조건부가 붙었는데 자기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 평양축전에 대한 견해를 재검토하겠다는 식의 암시였다.

그런데 더욱 심상치 않은것은 쏘련측은 몇달전이나 다름없이 평양축전주최를 적극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공식지지발표를 피하고있으며 평양축전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불신하는 대상들앞에서는 자기들 역시 같은 립장이라는 태도를 보이고있는것이였다. 쏘련측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들에게 맹종맹동하는 일련의 기구와 단체들에도 동일한 립장을 취하게 만들고있었다.

간단치 않은 정황이였다.

쏘련측을 때리는 세력에 동조하든가 아니면 쏘련측 립장에 서서 그를 옹호하는 두 길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기때문이였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중간립장에서 무언의 태도로 나간다면 두개의 세력에 다같이 외면당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하여 어느 한쪽편에 서서 다른쪽을 공격하는것은 하나는 얻되 다른 하나는 잃고마는 결과를 빚어낼것이였다. 이에 대한 정황처리안을 놓고 의견들이 분분했다.

주체적립장에서 어느 한 일방에도 치우치지 않고 옳은것은 옳고 그른것을 긇다는 식으로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는것과 대상에 따라 신축성있고 림기응변하게 사업해야 한다는 외교적방안을 놓고 론의가 거듭되였다. 여러날의 토론끝에 이 두가지 안은 하나로 합쳐져 주체적립장에 철저히 서면서도 외교적방법을 활용한다는것으로 락착되였다. 외교적방법의 활용에는 쏘련을 비롯한 친선적인 사회주의나라 청년단체들이 원칙적립장을 지키도록 설득시키는것과 기타 나라, 지역 기구와 단체들과는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우리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지도록 하면서 회의분위기를 론쟁의 열파에 말려들지 않게끔 노력한다는것이 포함되여있었다.

일단 합의는 보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락관하지 못하고있었다.

오늘 아침 지정철로부터 토론과정을 알아본 준선이 역시 그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창혁의 가방에서 나온 대표단활동대책안을 보고난 준선은 한동안 창밖만 묵연히 내다보았다. 이들에게 신통한 방안을 튕겨줄수 없는것이 괴로왔다. 교외에서만 볼수 있는 검정수닭 한마리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락엽을 뒤쫓는것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이번 회의들에서 제일 문제거리로 되는것이 쏘련측 태도라는것이요?》

《네.》

창혁이가 먼저 대답하였다. 이번 대표단 단장으로는 그가 임명되였던것이다.

창혁은 진영이와 얼핏 눈길을 맞추고 계속했다.

《제일 난처한것은 구차스런 외교를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왜? 필요한, 원칙적인 외교를 해야지.》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외교로써 어느정도 성과가 있겠는지는··· 막연합니다. 그리고 저로서 볼 때는 외교에 문외한이 아닙니까.》

《동문 외교란 무엇인가 하는걸 진영동무한테서 좀 배워야 되겠소. 외교란것이 무슨 비라리나 배우의 연기같은것인줄 아오?》

준선은 이 말을 하고 웃었다. 창혁의 말에도 일리는 있는것이였다. 몇년전까지 군대에서 사로청사업을 하다가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되여온 창혁은 그 기간 대외사업에는 별로 나가보지 못했다.

준선은 그것을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창혁동문 대외사업을 무슨 특별한걸로 생각하는것 같은데 그런것이 아니요. 하긴 나도 광산에서 일하다가 재외대표부에 나가 일하라고 할 때 동무처럼 떨었댔소.》

준선은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고싶었다. 창혁은 무슨 소리인가 하는 눈길로 보다가 웃었다.

《전 떠는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충돌때문인데··· 그 경우 물러설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들과의 관계뿐만아니라 국가적인 관계에 금이 생기게 하는것으로 되기에 좀···》

준선은 심각해졌다.

(그럴수도 있다. 창혁의 성미에 반발이 오면 참지 못할것이다. 원칙면에서는 칼날같은 사람이 아닌가.)

장군님께서 창혁을 대표단책임자로 하고 류진영을 부단장으로 하도록 하신것은 바로 이 두사람의 장단점을 다 헤아려보신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창혁은 벽도 문이라고 하면 끝까지 내밀고 어떤 복잡한 환경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갈라보며 주견을 잃지 않는다. 반면에 진영은 대외사업경험이 있는데다가 유순한 성미에 림기응변하며 세부적문제에서 예민하다.

준선은 창혁의 얼굴빛이 시르죽은것을 보고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창혁동문 그들을 완전히 변질된것으로 보는것이 아니요?》

《네.》

준선은 저으기 놀랐으나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건 어떤 면을 두고 하는 말이요?》

《그건··· 최근까지의 쏘련당의 움직임과 그 나라 청년단체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쏘련당?!》

준선은 저도모르게 혀를 찼다. 지금까지 쏘련당의 변질문제는 극소수의 국제관계일군들속에서만 론의되고있는 문제였다. 창혁이도 자기가 너무 어마어마한 소리를 했다고 느꼈던지 입을 꾹 다문채 책상만 내려다보고있었다.

《계속하오. 론증한다는 각도에서 말이요.》

준선은 창혁이가 생각하고있는것을 죄다 알고싶었다.

창혁은 소리없이 일어섰다.

《그 문제는 저만 아니라 우리 사로청안의 적잖은 동무들도 론의하는것입니다. 저는 지난 7월 28일 울라지워쓰또크에 날아든 쏘련당 총비서가 적들과의 모든 대결지점에서 손을 떼라는 연설을 했다는것을 알았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명백히 하게 되였습니다.

지금 적수는 칼을 갈며 온 세계를 제 손아귀에 넣겠다고 윽벼르는데 그들은 군축이요, 미싸일철페요 하며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레간은 어떻게 나옵니까? 잘한다 잘해, 더 양보하라 하는 자세가 아닙니까. 결국 여기서 레간은 계급성을 견지하고있으나 고르바쵸브는 계급성을 잃어버렸다고 봅니다. 자기가 무기를 놓으면 적수도 무기를 놓으리라는 기사도풍의 환상에 빠져있다는 글들도 있는데 그것이 옳은것 같습니다. 그런데 쏘련당 총비서는 그런 양보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환호성에 적지 않게 뜬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미국의 의도에 따라 춤추는 사람같기도 하고··· 이런 상태이니 쏘련공청과 청년단체도 그에 장단을 맞출것은 뻔한 일일것이고 결국 이렇게 놓고보면 그 어떤 방안과 원칙으로도 그들의 태도를 바로잡게 할수 없을것이라는것입니다.》

《그래서 충돌이라는것이요?》

《네. 때리는 길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쏘련이건 서방이건··· 미국의 기도에 장단맞추는데 대해서야 사정볼것 없잖습니까. 물론 이렇게 되면 그들을 따르는 일부 나라들의 불만을 살수 있으나 쁠럭불가담국가들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 청년단체들의 지지를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계속 강경하게 나오는 경우 쏘련 역시 사회주의국가의 체면도 있고 또 우리의 립장을 반대하는것은 사회주의리념과 원칙자체를 부정하는것으로 되니만치 공개적으로는 반대해나올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럴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 공개적인 반대는 안한다 해도 뒤에서 이러저러하게 제동을 걸거나 물러서지 않을가.》

《네. 그것도 생각했습니다. 반대토론까지는 하지 않는다 해도 침묵을 지킨다든가 하는식으로 나올테니까요. 사실 서방계가 침묵을 지킨다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쏘련이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모든 단체 대표들에게 반대를 암시하는것과 같은것으로 될것입니다.》

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의 착잡한 생각이 이로부터 출발된것이고 또 여기서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속단하거나 결론지을수 없음을 알았다.

《너무 암담하게만 생각하지 말기요. 동무넨 자기자신이 할 일과 대표단사업으로만 한정시켜 생각하는데··· 동무네 뒤엔 당이 있지않소. 이번 회의에는 동무들만 가지만 동무네 사업 역시 우리 당의 사업으로 되는것이 아니요? 너무 속들을 쓰지 마오.》

준선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일동지께 보고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있는 진영에게 눈길을 옮겼다. 여전히 긴장된 얼굴이다.

《진영동무 생각은 어떻소?》

《저의 생각도 창혁동무와 같습니다. 한데 창혁동문 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전혀 비관적인것은 아닙니다. 우선 부장동지도 방금 말씀한것처럼 저희들의 사업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봐주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째고 다음은 축전발기식 이후에 보여진 각국 청년단체들과 국제기구들에서의 열렬한 지지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 동무의 말을 듣고보니 진짜 승산이 보이는것 같소.》

준선은 싱그레 웃었다. 진영의 말대로 우리의 축전주최발기가 선포되자 적극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단 며칠사이에 백여개 넘는 단체와 기구들에서 텔렉스와 편지, 공개성명으로 평양축전지지를 표명했던것이다.

그러나··· 축전주최는 단 몇개 나라 단체나 기구들에서 반대해도 실현가능성을 잃어버리는것이다. 이로 하여 준선은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창혁이와 진영이도 오늘 만나 처음되는 밝은 웃음을 보였다.

준선은 뭔가 잊은것이 있지 않는가를 더듬다가 물었다.

《그런데 동무들은 예술단무용수였던 림향옥동무가 돌격대에 온걸 알고있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창혁이와 진영의 얼굴색이 일변했다.

《네.》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하는 진영은 얼굴이 하얘졌다. 어릴적에 그가 림영찬의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준선은 불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 예술단의 공연총화사업때 진영동무가 나갔다는데 그때도 무슨 로동현장소리가 있었소?》

《그때에는··· 없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줄수 없소?》

진영은 입술을 꼭 깨물고있다가 일어섰다.

《모든 잘못은 저의 불찰로 하여 생긴것입니다.》

진영은 예술단에 나갈 때부터 이만저만 심리가 복잡하지 않았다. 전날 저녁 림영찬으로부터 《썩어빠진 딸년》에 대한 한탄과 원망을 한가득 들었기때문이였다. 더구나 예술단의 청년들속에까지 향옥이를 놓고 《예술단의 망신》, 《조선청년의 수치》라고 하며 열을 올리는것을 알게 되자 그 역시 림영찬이와 같은 《분노》를 체험하게 되였다.

하여 《딸라에 유혹》되였다거나 《부르죠아사상독소에 물젖었다》는 여론들에 대해서는 응당하다고 했고 《계급성》을 잃어버렸다던가 《조선청년의 량심을 팔아먹었다》는것과 같은 지나친 말들에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문제는 향옥이를 만나 구체적인 내막을 알아보지 못한것이 잘못이였다. 만나면 호된 욕설이 튀여나올수 있다는것과 반대로 인정에 빠져 원칙을 잃을수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림영찬으로부터 향옥이를 돌격대에 보낸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뭔가 잘못되였는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었다. 예술단에서의 향옥의 《떼질》과 림영찬의 《뒤공작》으로 돌격대입대수속이 다 끝난 뒤였던것이다.

그날 밤 향옥이로부터 전후사연을 다 알게 되자 후회는 통탄어린 아픔으로 변하였다. 이로 하여 그는 사로청책임일군들앞에서 자기 비판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중에도 돌격대로 가는것이 향옥에게는 어느 정도 약이 될것이라는것과 동무들속에서의 신뢰도 어느 정도 회복될수 있으리라는 위안도 찾았으나 현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어제 밤에 찾아온 려분은 향옥이가 한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를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며 울었다.

《진영동무로서는 그때 어쩔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진영의 말이 끝나자 창혁이가 침울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못한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였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여진 현상자체는 새 세대 청년들로서 볼 때 격분할만 한 일이였습니다. 조국을 배반해간 사람한테 반지를 주고 돈을 받고 그 돈을 쓴데다가 또 감추었다, 이 사실만 놓고보면 그 모든 비판들이 응당한것이였고 문제를 그렇게 분석비판하는 사로청원들에 대해서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향옥동무에겐 비록 아직은 싹에 불과하지만 커가면 좋지 않게 번져져나갈수있는 요소가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향옥동무는 동무들의 비판을 자기를 고쳐주기 위한것으로보다 자기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인것 같습니다. 하여 예술단에서 나갈것을 결심했고 림영찬부부장도 그에 맞장구를 치면서 예술단과 돌격대와 두루 사업하였다고 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일처리는 잘못되였지만 이제와서 다르게 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위원회에서는 향옥동무가 가있는 대대에서 좋은 반영이 제기되면 그 즉시 다시 소환하게 하자고 토론되였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들에게 심각한 교훈으로 되였습니다. 축전에 대비해서 청년들을 잘 준비시키며 동맹이 초급단체를 실속있게 도와줄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잘 집행하지 못하고있다는것입니다.》

《옳은 말이요. 그런데 진영동문 향옥이의 결함을 무엇으로 보고있소?》

진영은 준선의 눈길이 날카로와진것을 보며 자신을 다잡았다. 향옥이의 일로 가슴쓰릴 때마다 자기를 위안해보던 생각을 말했다.

《그의 심정은 어떻든간에··· 외삼촌이라는 말 한마디에 반지까지 준것은··· 조국을 배반해간 사람이라는것을 알면서도···》

《그러니 응당 규탄을 받을 대상이라는거구만.》

《그··· 그렇지만··· 향옥이는 깨끗한 처녀입니다.》

《그렇다면 왜 구경군노릇만 했소?》

준선은 입밖에까지 터져나오려던 이 말을 간신히 참았다. 진영의 눈에 물기같은것이 내배이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인정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결국 원칙을 잃었구나.)

대중의 여론을 생각했을것이다. 《남매같은 사이여서 두둔한다》고 하는 말들이 나올가봐?!··· 하지만 사로청책임일군으로서 그럴수 있는가.

준선은 김정일동지의 집무실로 가는 길에서도 향옥이며 류진영의 생각으로 하여 심란한 마음을 누를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였다. 창혁이네의 고충이 무겁게 안겨들며 또다시 그이께 짐을 안겨드린다는 자책감에 시름이 커졌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