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제 1 장

3

 

김준선부장을 찾는 전화가 랑림산줄기의 현지지휘부에 왔을 때 그는 거기에 없었다.

한달에 마흔다섯번 내린다는 이 고장특유의 비가 며칠동안 폭우를 들부으며 새로 닦은 철길들을 사태와 탕수로 위협했다. 위험개소를 찾아 지휘부일군들이 다 떨쳐나설 때 준선부장도 줴기밥 몇덩이를 꿍져들고 폭우속에 나섰던것이다. 모다카를 타기도 하고 산발을 질러 걷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가닿은 곳은 속도전청년돌격대 한개 대대가 일하고있는 박두골이였다.

아스라한 산봉우리들이 서로 이마치기하듯 마주섰다고 하여 이름붙였다는 박두골에서는 한창 사태처리작업을 하고있는중이였다.

하늘에는 몇점의 구름만 감돌뿐 해빛이 눈부셨다. 검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산비탈 사태진 골에 허연 뿌리들을 문어발같이 드러낸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대여섯톤 잘될 흙사태를 막아안고 제빠듬히 서있었다. 그 참나무에는 여러개의 버팀목들이 세워져있었는데 꽃수건에 감긴 곡괭이자루까지 참나무밑둥을 버티고있었다.

간밤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에서 자갈다짐을 하고있을 때 산중턱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물사태를 예견하여 위험개소마다 감시원을 파견하고도 신경이 바늘끝처럼 살아있던 대대장이 그 소리를 먼저 듣고 달려올라가는데 벌써 돌섞인 탕수가 쏟아져내리고있었다. 그 탕수가 사태까지로 번져지지 않은것은 커다란 참나무때문이였다.

대대장이 올라가보니 절반나마 탕수속에 휘감기운 처녀가 참나무밑둥을 꽉 그러안은채 《동무들! 동무들.》하고 소리치고있었다. 소리라기보다 흐느낌이였다. 고패치는 탕수속에서 처녀의 몸은 버들가지처럼 휘돌았으나 나무밑둥을 껴안은 팔은 풀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물살에 떠밀려내려가지 않으려는 필사의 행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였다. 사태감시로 파견되였던 그 처녀는 나무에 부딪친 탕수가 고패치며 뿌리채 파서 참나무를 넘어뜨리게 된다는것을 알자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들이댔던것이다. 대대장도 그와 함께 돌섞인 탕수에 몸을 들이댔을 때 대원들이 달려올라와 어깨성을 쌓았다.

《···그 혜련동무만 아니였더면 참나무는 넘어졌을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철길이 다 묻혔을것입니다.》

대대장의 《전투보고》를 들으며 준선은 사태진 곳을 따라 참나무 있는데까지 올라갔다. 찢겨져 너슬거리는 나무뿌리들을 한참동안이나 여겨보다가 곡괭이자루에 감겨있는 꽃수건을 풀어 대대장에게 넘겨주었다. 수건의 임자가 누구고 무엇때문에 곡괭이자루에 꽃수건을 감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찌 알랴. 그 꽃수건이 사품쳐흐르는 탕수와 맞받아 싸울 때 어느 한 처녀의 목수건이 절로 흘러 감겼을수도 있지 않는가.

지혜련이라는 처녀에게 가보자고 하였다.

준선이 처녀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을 때 지혜련이라는 처녀는 손거울을 보고있었다. 문기척소리에 처녀는 손거울을 감추느라고 했지만 조금 늦었다.

오목눈에 약간 쳐들릴사 한 코가 귀여웠으나 빨간약과 반창고가 얼굴을 볼품없이 만들었다. 량쪽손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누워있소.》

준선은 일어서려는 처녀를 눌러앉히였다.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에 처녀와 마주앉은 그는 수집어하며 눈길을 내리까는 혜련에게 사태가 생길 때 무섭지 않던가고 물었다. 혜련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무서웠어요. ···밀려날가봐.》

《밀려날가봐··· 그래 지금 어데가 제일 아프나. 다 쑤셔댈테지···》

《일없습니다. 명령을 받아서 그냥 이러고있습니다.》

혜련은 귀뿌리까지 빨개져 말끝을 얼버무린다.

《몇살이요?》

《스물다섯살입니다.》

처녀는 잦아드는 소리로 간신히 말하고 눈길을 어데다 둘지 몰라 허둥이였다. 준선이와 동행해온 속도전청년돌격대 부국장이 그를 대신하여 말했다.

《이 동문 원래 2년전에 제대되게 되였는데 북부철길이 끝날 때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를 하여 지금까지 있습니다. 지금 제대수속을 하고있습니다. 후보당원입니다.》

《그렇소?!》

준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베개옆에 놓인 손거울에 시선이 닿자 마음 한구석에 련민비슷한 아픔이 스쳐지나갔다. 이 나이때 처녀들은 얼굴에 반점 하나가 생겨나도 이마살을 찌프리며 신경을 쓰지 않는가.

준선은 처녀에게 더욱 호감을 느꼈다.

《애인은 있소?》

《있습니다.》

대답은 처녀가 아니라 돌격대부국장이 했다.

《여기 대대에서 중대장을 하던 동무입니다. 펄펄나는 중대장으로 연공일엔 귀신이였는데 그만 실수로 크게 부상을 입은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혜련동무가 제 피를 수혈해주면서 피와 함께 사랑까지 심어준것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중대장동무가 제대될 때 대대에 혜련동문 미래의 자기 안해라고 선포하는 통에 알았습니다.》

《혜련동문 그래서 얼굴맵시를 더 보겠구만.》

준선이 손거울에 시선을 주며 웃자 혜련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혜련이, 나한테 뭐 부탁할것 없나?》

《없습니다.》

《없다?! 그러면 내가 하나 부탁하자구. 상처가 나은 다음 나한테 편지를 써보내오. 흠집이 남았으면 전보를 치고···》

처녀의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들며 맑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자, 그럼 그만 헤여지자.》

준선은 처녀가 또 일어날가봐 어깨를 꽉 눌러주며 일어섰다.

문가로 걸어갈 때 《부장동지!》하는 젖어든 음성이 그를 멈춰세웠다. 혜련이가 맨발로 방바닥에 내려서있었다.

《저런!··· 부상병이 일어나다니.》

《부장동지,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혜련은 두손을 옆에 꼭 붙인채 비상한 결심을 다진 눈길로 준선을 응시했다.

《뭔데. 말해보라구.》

준선은 입가에 피여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대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부장동지, 저를 제대되지 않게끔 해주십시오.》

《그건 왜서?》

《저는 축전거리건설에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축전거리?!···》

《네··· 13차축전을 우리 나라에서 하게 된다는것을 저희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합니다.》

너무나도 뜻밖의 소리에 준선은 저으기 놀랐다. 축전을 하려 한다는것까지는 사로청원(당시)들에게 비밀이 될수 없겠지만 축전거리건설까지 생각하고있다는것이 자못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그러니 여기 동무들은 다 축전거리건설에 간다고 생각하오?》

《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힘차게 전투를 벌리고있습니다.》

대대장이 대신 대답했다.

《그렇다! 그런데 동무넨 왜 꼭 축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세계에 우리 나라를 떨쳐보이고싶어 그럽니다.》

《혜련이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우리 인민과 청년들의 힘과 기개를 시위하자는것입니다.》

《음.》

준선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혜련의 두눈에 생글 웃음이 피여올랐다.

《부장동지, 저는 제 청을 받아준것으로 알겠습니다.》

《허허, 그것만은 안돼.》

준선은 처녀의 머리맡 창턱에 고산지대의 들꽃들이 오미자단물상표가 붙은 꽃병에 꽂혀있는것을 보았다.

《아주 예쁜 꽃들이구만.》

준선은 처녀에게 하고싶은 말을 그 꽃을 두고 하였다. 그때 문기척소리와 함께 바지아래가 온통 흙범벅이 된 려단정치부장이라는 청년이 뛰여들었다. 그는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준선을 급히 찾는다는 전화련락을 가지고 왔다. 현지지휘부로 전화가 온것은 9시, 현지지휘부와 려단간의 전화선이 이번 비에 끊겨져나간통에 차가 뛰고 사람이 뛰여 산을 넘고 강을 건느느라니 중낮도 훨씬 지난 지금에야 기별이 이른것이였다.

《직승기는 산계리에 내려 대기하게 되여있답니다.》

준선은 시계를 내려다보며 돌아갈 려정을 그려보았다.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직승기가 있는곳까지 가자면 대여섯시간 실히 걸릴것이였다.

《부장동지! 혹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부르시지 않았을가요?》

문밖에 나섰을 때 돌격대부국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선은 십분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문 이곳 지름길을 알고있소?》

《네.》

《그럼 동무의 신세를 져야겠소. 이자 온 려단정치부장동무한테 필요한 지시를 주고 오오. 빨리 움직이오.》

돌격대부국장이 준선의 곁에 다시 나타났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병실뒤로부터 비닐바께쯔에 들꽃을 가득 담아든 대대장이 달려왔다. 그는 준선에게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흥분으로 온몸을 떨며 말했다.

《부장동지, 당중앙위원회에 가시면 이 꽃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드려주십시오. 우리 동무들이 한송이씩 꺾어온것입니다.》

김준선은 퇴를 맞을가봐 겁먹은듯 한 그의 눈길을 보다 말고 비닐바께쯔에 눈길을 떨구었다. 보르르한 잎사귀들, 빨갛고 노란 이름모를 꽃들엔 이 산촌의 청신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담겨있다. 먼발치서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젊은 대원들의 모습을 일별하자 준선은 코언저리가 시큰해졌다.

《가지고 가기요, 가져가야지··· 고맙소.》

준선이 꽃바께쯔를 든 돌격대부국장과 함께 산협길로 오르는데 《부국장동지!》하는 또랑또랑한 처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쪽을 돌아본 준선은 깜짝 놀랐다. 산비탈숲쪽에서 들꽃을 한아름 안은 혜련이가 뛰여오고있었다. 돌격대부국장이 마주 달려가자 처녀는 숨찬소리로 속삭였다.

《난 혼났어요. 뒤늦게야 알고··· 이건 각시꽃, 요건 애기달래꽃···》

어렴풋이 울리는 속삭임은 음악소리처럼 정답게 들렸다.

돌격대부국장과 함께 30리 산발을 주름잡아 직승기가 대기하고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먹물을 푼듯 캄캄한 밤이였고 평양에 도착하여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밤 열두시가 넘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총참모장과 차탁을 사이두고 앉으시여 텔레비죤의 화면을 보고계셨다.

화면에는 《푸른베레모》들의 락하훈련장면이 펼쳐져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준선에게 향하신 그이의 얼굴엔 반가운 미소가 환히 피여올랐다.

《산중처사가 왔구만. 그래 앓지는 않았소?》

《앓지 않았습니다.》

《오늘 마라손을 했겠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화면정지단추를 누르시며 준선을 찬찬히 뜯어보시였다.

(무척 기다리셨구나.)

준선은 미안스러운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현장에 나갔다가··· 그만 늦었습니다.》

《다 들었소. 오늘은 가서 푹 쉬오. 래일 만납시다.》

《저··· 한가지 올릴것이 있습니다.》

《뭔데?》

《북부철길건설장의 청년들이 보내온것입니다.》

준선은 허락을 기다릴새 없이 대기실에서 꽃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확 피여올랐다.

《허, 산의 정기를 가지고왔구만.》

《네, 여느 들판엔 없는것들입니다.》

《반갑소.》

김정일동지의 눈가에 짙은 감회의 빛이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애리애리한 풀대들우에 맺힌 노랗고 하얀 꽃망울들을 손끝으로 쓸어만지시다가 총참모장을 돌아보시였다.

《어떻습니까? 매력이 있지요. 연약한것 같으면서도 생활력이 강한 꽃들입니다. 예쁘고 향기가 독특하고··· 난 이 꽃들을 보면 유년시절의 일이 생각납니다. 아마 내가 세상을 처음으로 감각하며 친숙해진것이 이런 꽃들일것입니다. 기억속에 표상이 똑똑치는 않지만 유년시절 봄의 소백수 내가에도 이 비슷한 꽃들이 피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솜털이 보르르한 꽃망울을 손끝으로 다시 한번 건드리고나서 준선에게 시선을 멈추셨다.

《동무가 부럽소. 난 언제부터 그리로 한번 간다간다 하면서도 끝내 못 갔소. 이 꽃은 그 동무들이 나더러 한번 와달라는 소리야. 그렇지 않소?》

《그 동무들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평양에서 뵈올걸로 생각하고있습니다.》

《평양에서?》

《녜, 축전대상건물들은 다 자기들이 맡는다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거야 동무의 생각이 아니요? 그러나저러나 그 동무들이 기특하오. 래일 그 문제도 토론합시다. 후날 그 동무들을 만나면 내 인사를 꼭 전해주오··· 이 꽃에서 그 동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알겠습니다.》

준선은 마음이 거뿐해졌다. 그가 방을 나설 때 텔레비죤화면에서는 뻘건 불덩이ㅡ 미싸일탄두들이 날아갔다.

다음날 아침 지정철을 만나 그동안의 사업정형을 료해하고 김정일동지께 올린 문건사본들을 보고난 준선은 한마디로 종잡기 어려운 복잡한 심리속에 있었다.

김정일동지께 올린 축전동향자료들과 사로청대표단의 보고서내용은 축전주최가 불가능함을 시사하고있었다. 이것은 곧 지정철의 견해이기도 하였다.

제8차 세계청년학생축전으로부터 12차축전까지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 지정철은 우리 나라에서의 축전주최를 가장 적극적으로 희망한 일군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오랜 당일군으로서 정치적안목에서나 정세판단능력에서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하니만치 그의 견해를 허수이 부정할수 없었다.

(과연 할수 없는 정황이란 말인가.)

준선은 이렇다할 반론을 내놓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지난해초 김정일동지께서 축전의향을 말씀하실 때 우리 나라의 대외적지위의 상승과 함께 시기적으로도 성숙된 문제라는데서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그런데는?··· 얼마전 김정일동지께서 당 국제사업책임일군들앞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쏘련당의 새 지도자가 흐루쑈브의 전철을 밟는것 같다고 하시며 흐루쑈브정책은 견실한 로볼쉐비크들의 력량이 강하여 우경화가 중도에서 저지되였지만 세대교체가 심하게 생긴 현상태에서는 그 전도를 락관할수 없다, 만약 쏘련당지도자의 정책이 우경화로 나가면 쏘련당만이 아니라 쏘련당의 지시밑에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들 전체를 변질시킬수 있고 그때면 서방제국주의자들의 공격예봉이 우리 나라에 쏠려질수 있다라고 하신 말씀이였다.

그 말씀을 기점으로 지금의 정세를 분석하면 어떤 답이 떨어지는가?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서 본 총참모장의 엄숙한 얼굴이며 텔레비죤화면에 비껴든 화염과 폭음이 그의 생각을 어두운 곬으로 몰아갔다.

세계가 열점지대로 보고있는 조선!··· 그동안 내외의 정세흐름에 너무나 무관심하지 않았는가가 돌이켜졌다. 이렇게 되자 《산중처사가 왔구만.》라고 하시던 그이의 말씀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무거워지는 마음속에 류진영의 일도 크나큰 시름으로 비껴들었다. 진영은 분명 경애하는 장군님께 걱정을 드렸다는것으로 괴로와하고있을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그 인터뷰건을 그처럼 요란스럽게 분석했을가.

지정철은 자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사건분석에 이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어떤 일도 그이앞에서 감추면 안된다는 원칙때문에서만이였을가, 아니 그는 축전불가능이라는데서부터 그 사건을 더욱 엄중시했을것이다.

지정철은 투명한 일군이다.

준선이가 최근 정세통신자료들을 훑어볼 때 김정일동지께서 찾으신다는 전화가 왔다. 지정철과 함께 오라는 부르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