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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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앞에 마주선 류진영은 자기의 초췌한 몰골에 놀랐다. 얼굴색은 창백하게 질리고 눈마저 움푹 기여들어갔다. 모스크바-평양행 려객기에서 내려 사로청청사로 돌아온지 한겻도 못되는 사이에 생겨난 《변화》이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옷걸이에 걸어놓았던 양복저고리를 벗겨입으려다말고 되걸어놓았다. 그동안 별로 느끼지 못했던 이국산 향수내와 땀내가 역스럽게 미쳐왔던것이다.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돌아선 그는 책상우에 널린 구겨졌거나 찢어진 종이장들을 휴지통에 쓸어놓고 종이끼우개에 끼운 보고서철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선뜻 방을 나설념을 못했다.

런니의 마녀웃음이 떠올랐던것이다. 뾰족한 입술, 뾰족한 눈, 뾰족한 말···

《조선청년들은 당과 일심동체가 되여 당의 결심과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지요. 그러니 평양축전에 대한 희망 역시 당의 의사라고 해도 틀린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래, 함정은 여기서부터 파있었어. 한데 그때는 왜 몰랐던가.

모스크바와 부다뻬슈뜨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일종의 악몽처럼 되밟혀왔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일이 없다.

지난해 7월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12차세계청년학생축전총화는 잘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말싸움으로 끝났고 다음기 축전장소문제는 때와 기회를 봐서 결정해야 한다는 알쏭달쏭한 의견들로 제동을 당하였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이 알쏭달쏭한 의견의 주창자가 지난해부터 《평양축전》을 적극 권고해오던 쏘련공청일군들이라는데 있었고 쏘련측의 눈치를 봐가며 살아가는 나라의 청년단체일군들도 그에 보조를 맞춘다는데 난점이 있었다.

물론 리해되는 점도 있었다.

서방계의 청년단체들은 모스크바축전을 쏘련과 사회주의권의 《시위무대》라고 비난하며 사회주의나라들에서의 축전을 반대한다고 떠들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것은 그러한 도발적인 소동과 비난에 응당 반격을 가하거나 코웃음을 쳐야 할 쏘련측 일군들이 《리해》와 《량해》를 구하는데만 급급해하는것이였다. 지어는 쏘련측 일군들이 서방계청년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모스크바축전에서의 《불쾌한 일들》을 잊어줄것과 앞으로의 축전에서는 두번다시 서방청년들의 리해관계와 요구에 저촉되는 일이 없게끔 영향력을 행사하겠노라고까지 하였다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적지 않은 청년단체일군들은 쏘련의 《후퇴》라고까지 개탄하며 현조건에서의 《평양축전》제안은 파국적인 반대에 부딪치거나 설사 하게 되는 경우엔 서방계의 요구를 다 들어줘야만 될것 같다는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우려한다는데서는 《평양축전》주창자의 한사람이였던 쏘련 청년단체부위원장 쎄르게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는 전자들보다는 락관적이였다.

한때 진영이와 세계민청(부다뻬슈뜨에 상주해있는 국제청년기구)에서 함께 일하면서 친구지간으로 지냈던 쎄르게이는 집에까지 진영을 초청해놓고 그 《락관》을 털어놓았다.

《류, 너무 걱정말라구. 지금 우리의 양보를 놓고 의문들이 많은데 그건 다 일시적인 외교이고 전술적인 퇴각이라고 봐야 하네. 40년대의 몰로또브와 립벤트로쁘의 악수처럼 말일세. 볼쉐위즘이야 변할리 있는가. 우리 당 총비서는 세계를 열전에서 구하고 사회주의전체의 위상을 높여 미국을 손탁에 넣자는 외교적전략으로부터 악수를 할따름이야. 그러니 당분간은 미국과 미소외교를 하고 반제반미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것이지.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구. 이제 12차축전으로 생긴 〈반쏘깜빠니야〉가 끝나면 우리가 탄도미싸일을 쏴주겠네. 〈평양축전 만세!〉의 대형미싸일 말일세.》

진영은 쎄르게이가 솔직한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가 고르바쵸브가 아닌이상 정치전략의 래일까지 다 알수 있겠는가. 더 따져묻는다는것이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물었다.

《그러니 쎄르게이생각엔 그 일시적기간이 언제까지일것 같은가. 평양축전문제는 조만간 정식의안으로 국제회의들에 상정되겠는데 서방계가 반대해나선다면 임자네는 어떻게 나오겠나? 지금의 자세로 봐선 어름어름 눈치만을 볼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영어로 하는 대화여서 뜻이 명백히 전달되지는 않았으나 진영의 말에서 불신을 읽은 쎄르게이는 서둘러 설명하였다.

《그에 대해선 우리 당 정치국위원이라 해도 딱히 대답할순 없겠지만 여하튼 우리 당 수뇌부의 목표가 랭전체계를 깨뜨리고 세계적평화질서를 굳게 하자는것이니만치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 전반적군비축소, 별세계전쟁계획종식 등등의 엄청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당분간은 많은 면에서 양보도 있을것이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 명백히 말해둘것은 나 쎄르게이는 평양축전주최를 적극 지지한다는걸세.》

《쎄르게이, 난 어느 한두사람의 감상적견해나 립장이 아니라 당신네의 공식적립장과 움직임이 걱정돼 묻는것이네.》

진영의 말에 쎄르게이는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가 무슨 심중한 비밀이야기나 하듯 말했다.

《자네한테만 말하네만 지금 우리 당에서는 레닌주의적민주주의에 기초한 정치적다원제의 필요성이 론의되고있네. 이것은 뭘 의미하는가 하면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매개 조직과 단체 등의 독자성이 증대된다는것이네.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미국과 서방에 대하여 미소외교로 나가도 우리 레닌공청이나 청년단체는 자기로서의 독자적인 로선과 행동방침을 정할수 있는것이지. 조선사로청에 대한 우리 공청과 청년단체의 우호적인 립장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을거네.》

이 말에 진영은 속이 불끈해졌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가. 정녕 그렇다면 지금 12차축전에 대한 비난에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에 대하여 당신네는 당의 대외방침에 따라 부득불 양보자세로 나오는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진영의 반박에 쎄르게이는 론쟁은 그만하자고 하며 술잔만 기울였다. 결국 쎄르게이와의 담화는 불안을 덜려다가 더 받아안은셈으로 되였다.

이러한 불안은 부다뻬슈뜨에 가서 더욱 확정적인것으로 굳어졌다. 12차축전에 대한 공격과 비난으로 그렇지 않아도 구부정했던 몸매가 더욱 휜듯싶은 세계민청책임일군인 왈드는 진영에게 세계 여러 나라 청년단체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온 편지들을 보여주면서 평양축전만이 아니라 세계청년운동에 동요와 혼란의 시대가 온것 같다고 우울해하였다.

그가 보이는 편지들의 거개가 12차축전을 비난하는것과 함께 앞으로의 축전과 청년운동은 사상과 리념을 떠난것으로 되여야 한다는 주장들로 일관되여있었다. 세계민청의 다른 동료들도 《새로운 흐름》에 대하여 어떻게 리해하고 따라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상태였다.

평양축전에 대하여 지지는 보이면서도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의혹을 품거나 막연한 장래의 일로 여기는것이 지배적이였다. 이로하여 진영은 적잖게 당황했고 혼란속에 빠져들었다.

원래 몇해전까지만 해도 진영은 우리 나라에서의 축전주최에 대하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민청에서 부위원장사업을 맡고있던 그는 여러 나라 친구들의 《평양축전》건의에 대하여 《평양구경값이 그렇게 눅은줄 아는가》고 롱담절반, 진담절반으로 밀막아치우군 했다.

이에 대해서는 《평양축전》의 금새를 올리려 한다거니 깍쟁이라거니 하는 여러가지 롱담이 따랐지만 개중에는 의혹을 품고 심각히 질문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당신네는 무엇때문에 축전주최를 기피하는가. 다른 나라들에서는 장소불비나 정치적불안정으로 기권하거나 퇴짜를 맞지만 당신네야 그렇지 않지 않는가. 혹시 서방사람들의 말대로 나라의 문을 꼭 닫아매려는데서인가.-

그때 진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강도배들때문이다. 그 강도배들의 총구에서 언제 불이 터져나올지 모르는 속에서 어떻게 그런 축전같은 큰 잔치판을 벌릴수 있겠는가.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축전을 하게 될것이다.-

진영의 말은 진심에서 나온것이였다.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방과 경제건설을 하는 형편에서 축전같은 대행사를 치른다는것이 간단치 않은 부담으로 되기때문이였다. 비록 축전참가자들과 단체들에서 《련대성기금》과 여러가지 형태의 지원을 보낸다지만 제아무리 부조가 커도 잔치집주인이 땀을 뽑기마련인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조국의 소환을 받게 되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평양축전》을 결심하셨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의 감격은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세계청년운동에 대한 그이의 관심과 보살피심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으며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되였다. 이러한 느낌은 모스크바축전에 갔을 때 더욱 부풀어올랐다.

축전주최의 의향을 알게 된 친구들은 너도나도 그를 축복하며 《평양축전》에 대해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말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처럼 열광적인 기대를 표시하던 친구들마저 《평양축전》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의기소침해하는것이였다.

(과연 되겠는가?)

그의 이런 불안에 대해 모스크바의 항공역에서 만나 비행기로 함께 돌아온 김관 부위원장은 황이 든 이파리 몇개때문에 숲전체를 잘못 본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따위 우는소리들에 신경을 쓸것은 뭐요. 나도 모스크바에 와서 지난해와 다르다는걸 느꼈지만 붉은 콩이 흰 콩으로야 될수 없지 않소. 그들도 우리와 관계를 잘못하면 서방것들 열개를 얻으려다 결국엔 백을 잃는다는걸 모르지 않을테니까. 사실 12차축전도 우리가 도왔으니망정이지 저희 혼자힘으로 주최국이 될수 없잖았소.》

김관은 몇해전 12차축전주최국을 결정하는 축전국제준비위원회 조선대표로 나가 쏘련측에 빚을 지운 사람이였다. 그때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쏘련이 주최국으로 되는데 대하여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립장에 있었다. 쏘련측은 동유럽사회주의나라대표들을 내세워 막후교섭을 벌리게 하였으나 별반 효력이 없었다.

와르샤와조약과 쎄브에 속한 쏘련의 위성국이라는것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발전도상나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들이였기때문이다. 김관이 그들을 돌려세우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 쏘련과의 관계에서 원칙적립장과 독자성을 잃지 않고있는 조선대표의 발언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들은 물론 중립적인 나라 청년단체들에도 막강한 영향을 주었던것이다.

이 반연으로 이번 축전준비와 진행에 필요한 실무자료들을 얻으려 모스크바에 갔던 김관은 쉽사리 자기 과업을 수행한것이였다.

김관은 축전전망을 비관시하는 예측과 잡음들은 다 무시해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영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물론 그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나온 《좋은 소리》들만 보고할수 있었다. 그러면 그의 사업은 잘된것으로 평가될것이며 듣는 사람들도 기뻐할것이다. 그러나 량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것은 자기자신만 아니라 당을 기만하는 행위로 되기때문이였다. 다년간의 해외생활경험을 가진 진영은 공식좌석에서의 발언 못지 않게 막뒤의 소리들을 중시해야 함을 잘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부다뻬슈뜨를 떠나던 날 밤에 작성한 보고에서 그런 소리들을 거의다 써넣었다. 이에 대하여 오늘 그가 도착하기 바쁘게 보고서를 받아 읽어본 조창혁부위원장은 김관보다 더한 불만을 드러냈다. 창혁은 《무슨 우는소리가 이렇게 많소.》라고 하며 그러루한 소리들을 죄다 뺐으면 하였다.

진영으로서는 더 뻗칠수 없었다. 창혁은 같은 부위원장이긴 하지만 동맹안에서는 축전준비사업을 책임지고있기때문이였다.

이로부터 진영은 지금까지 한시간 넘게 보고서와 씨름질을 했으나 그 어느 한 대목도 빼지 못했다.

《어쩔수 없지.》

진영은 나직이 한숨을 짓고 문을 열었다.

누구든 그의 한숨소리를 들으면 자포자기를 느꼈을것이다. 보고서나 그에 대한 조창혁의 불만때문에만이 아니였다.

그는 오늘 도착보고 겸 인사차로 당중앙위원회에 들렸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부다뻬슈뜨를 떠나기 앞서 있은 《인터뷰》가 외곡된 기사로 보도되여 문제거리고 된것이였다. 당중앙위원회 지정철부부장은 당의 권위를 손상시킨 내용이라고 하며 락심천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