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장

 

서    장

 

밤, 검은 하늘가에는 떼구름이 낮추 떠 배회하고 숲을 에워싼 어둠은 더욱더 음침하게 죄여든다. 공기의 흐름마저 멎어버린듯싶다.

번쩍! 눈부신 백광에 숲이 통채로 드러났다. 소형뜨락또르바퀴자국이 선명한 길우에 무수한 나무그림자들이 현상필림의 투영처럼 새겨졌다가 사라지자 천지를 박산낼듯 한 천둥소리가 꽈르릉! 하고 터져울렸다.

이제라도 당장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릴듯 한 형세다.

(아아, 이 무슨 날씨람)

저녁까지만도 해말끔하던 하늘이 무슨 심술인지 괴망스럽기 그지없다. 차라리 비를 보내려면 점잖게 쏟아부을것이지 괜히 속빈 우뢰질로 허세를 부릴것은 뭔가. 밤비 내리는 소리는 음악이고 자장가라고들 하는데 이제라고 가락맞게, 정답게 차지붕을 다독여준다면 좋은 길동무라는 치사라도 받을것이 아닌가.

주성익은 승용차계기판의 파르스름한 불빛에 비쳐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모습을 우러르며 큰 숨을 나직이 내쉬였다.

련사흘 그이께서는 멀리 전연지대로부터 이 지대의 군부대들까지 돌아보시며 거의 매일밤을 쉬지 않으시였다. 이제 수도에 가시게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일감들이 그이를 기다리고있겠는가.

시퍼런 번개불이 또한번 백광을 휘뿌리자 쉬시는듯싶던 김정일동지께서 주성익을 돌아보시였다.

《하늘이 무척 갑자르는것 같지 않습니까.》

《원 무슨 날씬지 비라는녀석은 올듯말듯··· 꼭 변덕많은 새각시꼴입니다.》

《그래서 이상기후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하튼 우뢰질만은 만점입니다.》

주성익은 불시에 마음이 너누룩해졌다.

이 한심한 날씨때문에 안절부절하는 자기를 생각해 하시는 말씀이시였지만 들쑹날쑹하던 속이 퍼그나 가라앉았다.

하지만 전조등빛에 드러난 우둘투둘한 길과 들썽이는 차의 진동을 감촉하게 되자 또다시 가슴이 죄여들었다.

그이께서 멀리 최전연지대까지 나가시게 된것도 그렇지만 험하디험한 이 숲속길을 택하시게 한것이야말로 자기탓이 아닌가. 빨찌산시절의 봇나무숲길이 어떻고 야밤의 산속길이 어떻고 하며 옛날일을 떠올린것이 구경에는 이 길을 택하시게 한것으로 되였다.

《잠간!》

김정일동지의 안광이 번쩍하셨다. 주성익은 그이의 손길이 등받이뒤의 총에 닿으시고 운전수의 잽싼 변속으로 자기 몸이 앞으로 쏠려나가는 순간 5∼6m앞의 신갈나무우에서 얼른거리는 두점을 포착하였다.

서로 술래잡기를 하듯 나무줄기들을 타고 잽싸게 오르던 두 짐승이 땅우로 날아내렸다. 《캑!》하는 비명은 두 짐승이 하나로 맞붙은 순간에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한방의 총성이 일었다. 빨간불의 점선이 그 엉켜돌아가는 짐승들우로 날아가자 한놈이 벌떡 일어섰다. 허나 도망칠념은 하지 않았다. 유리알같은 눈에서 린광같은 빛이 뿜겼다.

(삵인가, 메고양인가?)

주성익이 안경을 밀어올릴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총구에서 떠오르는 연기를 보실뿐 재차 쏘실념을 하지 않으시였다. 애당초 짐승들의 싸움을 중지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으신듯싶었다.

주성익은 숨이 가빠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짐승잡이에 왜놈사냥만치나 열을 올렸던 그였다. 그런데 삵인지 메고양인지 하는 놈은 이편에서 더 다른 반응이 없자 부지불식간에 껑충 뛰여오르며 다시 자기 포획물에 덤벼들었다. 그 순간 총성이 일었다. 두길잡이로 튕겨올랐던 그놈은 활처럼 몸을 꼬부리며 떨어져내렸다.

《정통입니다!》

주성익은 소시적의 기분으로 돌아가 환성을 올렸다.

《좀 쉬였다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한발 내려앞섰던 부관이 두마리의 짐승을 들고 기세넘쳐 달려왔다.

주성익이 짐작한대로 총에 맞은 놈은 삵이였고 다른 짐승은 숲속의 교예사라고 하는 청서였다. 삵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으나 노릿한 두눈은 여전히 부릅떠진채였고 청서의 까뭇한 털이 틈틈이 끼운 송곳같은 이발은 표독스럽게 내뻗쳐서 살기를 풍겼다. 웬간한 짐승들은 단숨에 물어제끼는 독스러운 짐승이다.

《죽지 않았소?》

《살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청서를 받아드시였다. 뒤덜미의 털가죽이 뭉청 뜯기운 청서는 그이의 손에 나른히 몸을 맡긴채 반쯤 감긴 물기어린 눈길로 애처롭게 하늘을 쳐다보고있었다.

《되겐 혼났군.》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털가죽을 통해 미쳐오는 따뜻한 체온과 할딱이는 숨결을 가늠하시다가 부관에게 다시 넘겨주시였다.

《좀 있으면 피여날거요.》

《예, 그런데 이놈이 제구실을 꽤···》

부관은 채 말을 맺지 못하였다. 까풀을 떨며 몇번 눈을 감았다떴다하던 청서가 허양 날아났던것이다.

《아!》

부관이 놀란 소리를 치며 청서의 뒤를 다쫓아달리려 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치며 손을 저으시였다.

《그만두오, 그만둬. 제 집을 찾아가는데.》

그이께서는 더없이 기쁘신 기색으로 주성익이며 수행일군들을 둘러보시였다.

《고놈이 꾀쟁입니다. 이제 가서 굉장히 떠들테지요. 두발가진 사람들을 깜쪽같이 골려먹었다고···》

《구원받은 얘기도 빼진 않을것입니다.》

주성익이 그이의 동심적인 희열에 끌려 말씀드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저으셨다.

《그렇다면 저렇게 도망을 치겠습니까. 한번쯤은 뒤돌아보며 인사라도 할텐데. 참, 맹랑한 놈입니다.》

그이께서는 량손을 허리에 얹으신채 청서가 사라져간 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헐떡이며 달려가는 청서를, 굴간에 뛰여들어가 방금 당한 변고를 제 족속들에게 알리며 떠들썩할 모양을 그려보시는듯싶었다. 주성익이도 청서의 일에 은근히 왼심이 써졌다.

《그놈이 또 화를 당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삵이란놈은 먹이를 찾아서는 혼자 다니지만 짝패는 꼭 있으니까요.》

《〈고슴도치부대〉를 편성하면 되지 않을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롱말로 받으시며 숲을 휘 둘러보시였다.

생명의 호흡이 끊긴듯 한 숲, 소경처럼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 청서의 비명소리에 그렇지 않아도 겁많은 작은 짐승들은 굴간 깊숙이 숨어 해뜰녘을 기다릴것이다.

《사회안전부동무들에게 말하여 이곳 맹수들을 죄다 없애게 해야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원들을 향해 말씀하시고 차에 오르셨다.

그이께서는 주성익과 시선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놈은 잡히지 않을겁니다. 쓰라린 경험을 얻지 않았습니까.》

이 순간 그이의 사색과 감정속에는 청서의 운명 하나만이 자리잡고있는것 같았다. 주성익은 왜서인지 가슴이 아릿해졌다. 조선인민혁명군 6사 경위중대출신인 그는 지금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그 원인은 한마디로 《어수선해가는》정세때문이였다. 엊그제까지 미국의 《랭전》이요 《열전》이요 하는 호통에 맞서 《해볼테면 해보자.》고 으르렁거리던 크레믈리의 주인들이 이즈음에 와서는 《평화의 시대》요, 《화합》이요 하며 백악관의 정객들과 악수를 한다 입을 맞춘다 광대놀음을 벌리고 청와대의 괴뢰들은 《올림픽》이요, 《북방친화정책》이요 하는 나발을 불어대며 안으로는 전쟁놀음에 미쳐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끌어가고있었다. 더구나 얼마전에 있은 리비아의 수도 타라불스에 대한 미국항공대의 습격행위는 그로 하여금 평소의 자제력을 지켜낼수 없게 하였다.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시기에 한 나라 국가수반을 목표로 폭탄을 떨어뜨린다는것이야말로 작은 나라들에 대한 강도적테로행위가 극단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하여 그는 고심하던끝에 김정일동지 앞으로 편지를 썼다. 먼 유격대시절이야기로부터 국제정세에 대한 견해까지 밝혀쓰다나니 무려 10페지가 넘어갔다. 가급적으로 군무력을 더 늘이며 모든것을 국방에 집중시켰으면 하는것이 편지내용의 기본골자였다.

편지를 올리고난 첫 며칠간은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 한 홀가분한 기분과 일종의 흥분속에 도취되여있었다. 그러나 그 며칠이 지나가자 조바심이 생기고 자신의 처사가 지나친 로파심에서 나온것이 아니였는가 하는 반성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제밤 갑자기 그이께서 찾아주셨다.

《편지를 기쁘게 받아보았습니다. 역시 아바이다운 분석이고 주장이더군요.》

주성익은 기뻤다. 더구나 김정일동지께서 한 며칠 바람쐬러 함께 가자고 하시였을 때는 더욱 그랬다. 전연방어진지들과 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였다.

주성익은 그이를 수행하는 길에서 자기가 현역으로부터 물러나(그는 유격대시절에 얻은 타박상후유증으로 2년 가까이 휴식하고있었다.) 있는 사이에 거대한 변화와 전진이 있었음을 알아보았다. 적들이 덤벼들면 단매에 짓부셔버린다고 하던 옛 전우들과 부하들의 장담이 결코 지어낸 소리가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정황》을 예상해보며 빈틈을 찾으려 애썼다. 김정일동지께서 현재의 군배치와 작전안을 두고 지난 전쟁과 대비하여 물으실 때도 그런 방향에서 대답을 올렸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편지에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주성익에게는 그것이 제일 궁금하고 알고싶은 일이였으나 차마 물어볼 용기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기회는 우연히 생겼다. 반항공군부대의 한 지휘처에 찾아갔을 때였다.

주성익은 국방위원회 위원의 자격으로 그 지휘관에게 가상적인 전투정황을 주었다. 우리측의 몇개 도시와 기지에 지향된 적 미싸일과 항공습격에 대한 요격방어상태검열이였다. 그는 적의 탄두와 비행기수자를 1 000, 2 000으로 올려불렀다. 연거퍼 증강되는 방향별 수자를 따라 외우며 정황처리를 하던 지휘관은 3 000이라는 수자에 이르자 마이크만 만질뿐 더 응하지 못하였다. 주성익은 자기로도 지나치다는것을 알았지만 양보할수 없었다.

《왜? 적들이 현재 날릴수 있는것은 그렇게 못된다 그것이요? 천만에, 이제 싸움이 일면 그보다 더 날아올수 있소.》

주성익은 마지막말에 력점을 찍으며 김정일동지의 낯빛을 얼핏 돌아보았다.

그이께서는 생각 깊으신 표정이였다.

(내가 너무 떠서 주책머리없는 지시를 하지 않았는가.)

얼굴이 뜨뜻이 달아오르는중에 지휘처에서 나와 비좁은 교통호에 들어섰을 때 그는 소년중대원시절에 위대한 수령님께 늘 그러했던것처럼 김정일동지께 바싹 다가서며 넌지시 물었다.

《저··· 제가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심중을 환히 꿰뚫어보고계신듯 빙긋이 웃으시였다.

《아니. 필요한것이였지요. 필요하고말고요. 우리는 그보다 더한것도 예견해야지요. 5천, 만, 이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것입니다. 강도란 상대가 약하면 덤벼드는것이고 강하면 도망치는 법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놈에겐 죽음밖에 없을것이고. 아바이가 나에게 편지를 쓴것도 또 우리가 이렇게 전선길을 다니는것도 그 힘을 키우기 위한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차에 올라앉은 순간 주성익의 뇌리에는 그때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리치란 간단한것이다. 하지만···)

숲은 끝나가고있었다. 저 멀리 마을뒤산에서 희끄무레한 서리가 피여올랐다. 새벽이 오는것이다.

주성익은 그이와 헤여질 시각이 가까와온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장군님! 제가 한가지 인사를 올리지 못한것이 있습니다.》

《아니, 갑자기 인사는 무슨 인사입니까.》

《제가 지난해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12차세계청년학생축전엘 가지 않았댔습니까? 전 그때까지만도 장군님께서 축전참가명단에 저의 이름을 써넣으신것을 몰랐습니다.》

《아바인 1차축전에도 가셨댔지요.》

《예,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셔서··· 그때도 굉장했습니다. 제가 간다고 하니 어머님께서는-》

주성익은 자리까지 고쳐잡으며 말문을 터쳤으나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다.

빨찌산대표가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가는데 남들보다 축잡혀서야 되겠느냐고 하시며 국영백화점으로부터 경상골시장까지 에돌며 양복천으로부터 세면도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골라 사들이시던김정숙동지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해졌던것이다.

그의 양복재단도 재봉도 김정숙동지께서 하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눈언저리가 붉어진것을 보시고 차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시였다. 흘러가는 야산들과 가로수들이 부엿한 안개속에 잠겨있었다.

《그래 12차축전에 가본 감상은 어떠했습니까.》

그이께서 화제를 돌려 물으시자 주성익은 다행인듯싶었다.

《네,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이제 하게 되는 13차축전을 우리 나라에서 꼭 하실 결심이십니까?》

《아바인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쩍 흥미가 동하시여 되물으시였다. 축전참가에 대한 그의 인사말은 이 질문을 하기 위한것때문이라고 판단하셨다.

주성익은 량눈섭이 미간에 모아붙어졌다.

《전 지난해까지는··· 수령님께서나 장군님께서 그 축전을 하는데 찬동이셨겠지만 지금은 반대이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주성익이 같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의뭉스러운 대답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아바인 무엇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까. 분명 아바이는 찬동은 아니고··· 어디 들어봅시다.》

《네, 이건 사실 제가 지난해 축전에 갔을 때도 생각해본것인데··· 전반정세로 볼 때 그런 큰 잔치를 치를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주성익은 그이의 표정이 심중해지시는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더구나 지금의 축전이라는것은 옛날 제가 가봤던 1차축전때와는 판다르게 타락했습니다. 말은 반제를 한다고 모여와서는 전탕 노라리판에 쿵챠챠였습니다. 저는 그 풍이 우리 청년들한테 옮을가봐 겁이 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우리 젊은이들속에도 간혹이긴 하지만 제 부모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다 잊어먹고 그저 더 좋은것, 멋있는것, 외국제요. 뭐요 하고 눈이 외로 돌아가 떠있는 현상이 있는데 그 물에 젖어들지 않는다고 장담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제가 전번 모스크바축전에 가서 사회주의나라 여러 장령들과 만나 얘기도 해봤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소리가 청년들이 길을 잘못들어 망해간다는 소리였습니다.

대일전쟁때 알게 된 한 장령은 나를 붙잡고 당신네는 혁명전통교양을 잘해서 굳건하지만 자기는 집안 손주들한테서까지 천대를 받는다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집 자식들을 만나 아버지의 투쟁력사를 물었더니 제아버지가 워드까 3병을 마시고도 작전지휘를 했다는 한두가지 사실이나 알뿐 전혀 력사에 백지더란 말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낡았다거니 보수파라거니 하고 비웃고··· 그래도 그 정도 애들이야 일없지만 서방에서 잔뜩 삐뚤어진 녀석들이 오면 우리를 헐뜯기나 하고 간첩질이나 하다 갈게 아닙니까?》

주성익이 잠시 말을 끊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주성익은 사기가 올랐다.

《저··· 림영찬 건설부 부부장을 아시지요?》

《아바이부대의 옛 공병중대장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가 광복거리건설사업에 동원되였다고 하는데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것은 그의 딸에 대해서입니다. 그 애 실례가 저한테 참으로 큰 교훈으로 됐기때문입니다. 그 애두 전번축전때 예술단에 뽑혀 모스크바에 갔더랬습니다. 그때 이즈마일로브호텔마당은 우리 젊은이들의 운동장으로 됐더랬는데 춤판도 벌리구 연설두 하고 굉장했습니다. 외국젊은이들도 죄다 그리로 쏠려들고··· 춤판을 벌릴 때 보면 림영찬의 딸이 대인기였습니다.

그 너절한 엉뎅이춤을 가지고 기여들던 외국젊은이들도 그애한테 부닥치면 몽땅 우리 춤가락으로 넘어가더군요. 그러는중에 기름독에 들어갔다 나온것처럼 반지르르한 노랑머리 하나가 향옥이와 대작을 하는데 그녀석이 춤에는 여간내기가 아니였습니다. 처음에는 향옥의 움직임에 따라 추는것 같더니 점점 엉뎅이춤으로 넘어가는데 좀 있어보니 향옥이까지 제 정신이 아니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젊은이 둘이 거기 들어서 어찌어찌해서야 다시 우리 식 춤판으로 되였습니다.》

《그러니 다 잘 됐군요.》

김정일동지께서 웃음을 머금으셨다.

주성익은 자기의 《우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것 같아 초조해졌다.

《예, 그건 그렇지만 그때 향옥이 혼자 있었다면 버려진 애였습니다. 전 그게 두렵습니다. 뚝이 무너지는것도 바늘귀만 한 틈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글어져가는 나무숲에 한동안 시선을 주고계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울창한 밀림도 결국은 개개의 나무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면에서 아바이네 삶은 부러울만 한것이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사람들이 젊은 시절부터 아바이네처럼 굳건히, 정확히 한길을 걸어나간다면 혁명은 또 이 세계는 얼마나 높은 마루에 올라서겠습니까?》

값높은 평가처럼 울리는 그이의 말씀에 주성익은 속이 흔들레판이 되였다.

《저야 일찍부터 수령님을 모시게 된 덕분이니··· 외람된 말씀입니다. 하기사 지금 젊은이들도 같은 연분이라고 봅니다.

옛날로 보면 못살던것은 더 말할것두 없구 어쩌다 몇푼 생기면 술집에, 기생집에 들이밀구 도박판을 벌리구 아편쟁이가 되구 처자권속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 나돌구··· 그렇게 막바지인생으로 허덕거렸는데 지금이야 당에서 다 바로잡아 이끌어주니 그런 페풍은 볼래야 볼수 없지 않습니까.》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하많은 생각속에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지만 난 아바이네들이 우리 혁명의 래일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이룰 때가 많다는걸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노래에도 있듯이 아바이네들이 이룩한 백두의 전통이 있고 당이 있는 한 우리 청년들은 그 어떤 바람에도 넘어가지 않을것입니다.》

《네, 그야··· 암 그렇지요.》

주성익은 목이 꽉 메여올랐다.

그이의 말씀에 주성익은 눈길을 쳐들었다.

멀리 밤하늘의 한복판이 붉게 타고있었다.

《비행사들이 말하는데 밤에는 저 주체사상탑의 불빛이 명문고개너머에서도 보인답니다.》

《마음속으로 보는것이겠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뜨거운 눈길로 그를 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바인 오늘 푹 쉬고 래일 아침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야 하겠습니다.》

《수령님을?!》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젠 아바이가 건강을 회복하였으니만치 일을 하셔야겠다고, 저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인민무력부에 들어가 오부장의 사업을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혁명의 원로로서, 이젠 우리 나라 첫 공청원들이였던 조선인민혁명군 투사들이 몇분 안남았습니다. 힘써 일해주십시오.》

《장군님!》

이로부터 한시간후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서탁을 마주하고계셨다. 주성익과 헤여져 곧추 오신 길이였다.

책상우에는 그사이 밀린 문건더미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왜서인지 선뜻 일감에 손이 가지 않으시였다. 며칠밤을 패시더라도 일단 일감에 부딪치면 머리가 맑아지고 왕성한 정력이 솟구치던 여느때의 습관이 사라져버린듯싶으셨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담배를 꺼내드시며 가볍게 고개를 저으시였다.

(주성익아바이때문일가?)

그이의 이번 려정은 군무력의 전투준비상태에 대한 료해지도이면서 동시에 이미전부터 무르익혀오신 세계청년학생축전주최를 위한 준비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어떤 일에서든 국방을 앞세워 생각하는 그이께서는 주성익의 편지를 심중히 대하셨다. 주성익은 고르바쵸브와 레간의 상봉에서 울려나오는 《동서랭전》의 종식이요, 《평화시대의 도래》요의 미사려구뒤에 따라올 엄혹한 상황을 예리하게 투시하고있었다. 사회주의의 분쇄를 최종목표로 삼는 미국은 쏘련(당시)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주의나라들과의 관계를 완화시킨 다음 공격의 예봉을 기필코 조선에 돌릴것이다. 그것은 이미 선전이나 경제봉쇄의 책동으로만 아니라 군사적위협증대로 나타나고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것을 국방에 집중하여야 한다···

이것이 주성익의 주장이였다.

그른데가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주장속에 결사전을 각오한 비장함과 불안이 깃들어있음을 보시였다. 하여 그이께서는 이 로병의 가슴에 밝은 락관과 기쁨을 주고싶으셨다. 하지만 뜻하신것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하셨다.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셨다. 우리의 위업이 세계적승리를 이룩하기 전에는 그들의 불안과 우려는 사라지지 않을것이였다. 혁명이야말로 그들의 목숨이요, 희망이요, 인생전체가 아닌가.

긴급비준을 요하는 문건들을 처리하시던 그이께서는 한 문건앞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사로청(당시)대표단의 대외활동정형에 대한 보고였다.

《···사로청대표단은 오늘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쁘라하를 거쳐 부다뻬슈뜨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치렬한 론의점으로 되고있는것은 앞으로 있게 될 축전의 성격과 장소에 대한 문제라고 합니다. 이미 진행된 모스크바 12차축전에 대해서 서방계와 그들쪽에 치우친 청년조직은 물론 사회주의나라 청년조직에서도 비난이 심하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축전은 공산권이 아닌 나라에서 해야 한다는것이 서방계와 서방측에 기울어진 청년조직들의 일치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주목되는것은 우리 나라에서의 축전주최를 적극 권고해오던 쏘련과 일부 사회주의나라 청년일군들속에서도 <조선에서의 축전 불가능>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다는것입니다···

이 주요한 원인은 쏘련공산당의 새로운 정치로선과 미국의 <신세계전략>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때문이라고 분석되고있습니다···

앞으로 사로청대표단은 부다뻬슈뜨에 머물러있는 기간 여러 청년조직들과 다양한 방식의 접촉을 통해 축전립장을 타진하고 혁명적영향을 주려고 합니다···》

나흘전 보고였다.

(《신세계전략》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단 몇줄의 글에서 소란스러운 80년대를 생각하게 되신 그이이시였다.

지금 세계의 예민한 관측들은 동서랭전의 량극체계를 깨뜨리고 행성의 《영원한 평화》를 가져온다는 고르바쵸브와 레간의 2중창에 신경을 도사리면서 마치도 지구공전의 자리길에 변화가 오는것만치 떠들고있다. 지어는 량극체계가 얼마 안있어 깨뜨려지리라는 소리까지 나돌고있다. 그렇다면 어느 극이 승세하는가. 사회주의인가, 제국주의인가, 아니면 서로 대립되는 그 두 리념의 세계가 치환반응속에 이도저도 아닌 변태를 만들어내는가.

그런 일이란 있을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더 자기 계급, 자기 사상에 충실하고 힘이 있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될것이다.

레간은 산업왕들과 금융계거두들의 대변자로서 투철하고 견결하다. 그는 올해 3월 14일 본국국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자기들의 의도를 명백히 밝혔다. 일명《레간주의》로 불리우는 그의 《신세계전략》은 력대통치자들이 들고나온 세계제패와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정책을 보다 로골적으로 드러낸것에 불과할따름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음흉한 기만과 협잡이 따르고있었다. 《평화》에 대한 고창과 대쏘협상으로 《화해》를 도모한다는 미끼가 그것이였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크레믈리의 새 지도자도 그 미끼를 받아물었뿐아니라 레간 못지 않게 타협과 《화해》를 떠들며 무장해제의 길에까지 나서는것이였다. 국내적으로는 《보다 훌륭한 래일에로의 진군》이라는 환상곡을 연주하며 이른바 《침체》와 《답보》를 제껴버리는 도끼질에 나섰다. 그 도끼질이 과연 《침체》와 《답보》만을 겨냥하겠는가.

그 바람은 벌써 청년운동과 세계청년학생축전에까지 미쳐오고있다.

《타협?!》

그이께서는 흐릿하게 들린 바깥하늘을 내다보시였다. 무거워지는 사색속에 인간들의 동요와 방황의 력사가 비껴들었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한 자연의 잘못이였던가.

태고적부터 인간은 자연의 혜택을 입으면서도 자연자체가 빚어낸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무서운 홍수와 폭설, 역병과 맹수들의 위협속에서 인간은 자기 생존과 후대보존을 위하여 끊임없는 싸움을 치렀다.

이 과정에 인간은 사랑과 증오, 슬픔과 기쁨, 공포와 불안을 느낄줄 아는 존재로 되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인간만이 지니게 된 이 감정과 사유라는 산물은 인간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하였을뿐아니라 반대로 추악하고 비굴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며 동요하고 번민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존재로 되게끔 하였다. 이로하여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라고도 하였고 《공포와 불안의 존재》라고도 하였다. 한세기전 차디찬 푸른빛덩어리(할렘혜성)가 이 행성에 접근해올 때 지구의 종말이라고 여긴 사람들의 미쳐난 자살극과 광란적인 발작은 그 랑설을 진실처럼 증명하는듯 싶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벌어진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수천만의 무덤을 만들고 만하탄주인들의 손에서 제작된 원자폭탄이 버섯구름과 폭음을 날릴 때 또다시 《종말》의 위구로 전률하며 수천수만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속에 허덕인것 역시 인간은 겁많고 연약하며 동요하고 불안해하는 존재라는것을 확증하는듯싶었다.

악의 지혜는 이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호통을 뽑는다.

힘앞에서 무서워하라. 강자앞에서 머리숙이라. 공포에 떨라!···

(그래. 쏘련당지도자의 후퇴도 거기서 시작되는것이 아닐가. 쏘련?!···)

그이께서는 가슴이 아파드시였다.

사회주의국가의 첫 시조도 쏘련이였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처음부터 주도한 나라도 쏘련이였다.

1942년 쓰딸린그라드격전을 전후하여 보여진 쏘련인민들과 청년들의 불굴의 투쟁은 히틀러파시즘에 대한 공포에 떨던 수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고 첫 사회주의국가에 대하여 선망과 동경의 눈길로 보게 하였다. 이 흐름을 타고 런던에서는 세계 수십개나라 청년대표들이 모여 반파쑈청년리사회(후에 세계청년리사회)를 결성하였고 그때로부터 3년후에는 이 리사회의 주최로 세계청년대회를 소집하였다. 런던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는 세계민주청년련맹의 창립을 선포함과 함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반대하고 평화와 민주주의, 민족적독립을 위한 세계청년들의 친선과 단결을 위해 세계청년축전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1947년 쁘라하에서 열린 제1차축전으로부터 열두차례의 돌기를 새긴 세계청년학생축전은 제국주의를 단죄하고 세계의 평화와 제 인민들과 진보적청년학생들과의 친선과 단결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축전은 해를 따라 퇴색과 풍화를 보였다. 《평양축전》에 대한 여러 나라 당, 국가 활동가들과 세계의 수많은 나라 청년단체들에서의 적극적인 권고도 그 퇴색과 풍화에 대한 불안때문일것이였다.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며 도이췰란드의 에리히 호네케르는 《사회주의모델》의 필요성을 말했고 세계민청의 책임일군인 왈드는 《건전한 생활양식》의 선양을 조선청년들을 통해 하게 될것이라고 했다.

하여 그이께서는 지난해 년초에 축전주최의 의향을 표명하시고 그 내적준비에 착수하게끔 지시를 주시였다. 그이의 결심에 대하여 가장 기뻐하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지난해 7월에 열린 모스크바축전장에서 평양축전주최의향이 암시되자 모든 사회주의나라들과 쁠럭불가담국가 청년단체들에서 환성이 일었다. 그 앞장에는 쏘련이 서있었다. 그런데 한해도 안되는 사이에 그들이 먼저 주춤하는것이다. 결국 축전주최는 출범의 고동이 울리기도전에 풍랑에 부닥친셈이였다.

《해볼만 한것이다!》

창가를 떠나신 그이께서는 서기를 불러 오늘 할 몇가지 사업에 대하여 알려주시며 이제 도착하게 되는 사로청대표단의 사업정형을 알아볼것과 북부철길건설장에 나가있는 당중앙위원회 김준선부장을 돌아오게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축전준비와 그에 따른 사업지도에 준선부장을 인입시키려 하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