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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조회를 마치고 김동환이 사업수첩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옆에 있던 키큰 중좌가 송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였다가 집에서 오는거라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동환은 중좌를 뻔히 쳐다보며 의아해하였다. 좀해서 사무실에다 전화를 걸지 않는 안해 렴순경이였다. 더구나 아침에 집에서 나왔는데 무슨 급한 일이 생겼기에 전화를 하는가?

동환은 다소 불안한 심정으로 송수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나요···》

《남철이 아버지, 그 애··· 그 애가 왔어요!》

안해의 반가움에 떨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 애라니?》

《남철이 말이예요. 당신이 집에서 나가자마자 들어섰군요.》

《그 애가 어떻게?》

《휴가래요, 표창휴가!》

《그렇소?》

《오늘 점심을 집에 들어와 하세요.》

동환은 송수화기를 놓고나서 두손을 깍지끼고 팔굽을 책상에 댄채 한동안 앉아있었다. 그 순간 그는 아들이 표창휴가를 왔다는데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입대한지 반년이 되는 아들이였다. 뜻밖에도 그를 만나게 되였다는 반가움이 앞섰던것이다.

남철은 외아들이였다. 손우로 누이 셋이 있고 그는 막내였다. 동환은 그를 무척 사랑했다. 대를 이을 아들이기도 하거니와 어릴 때부터 품행이 바르고 공부를 잘하고 정직하였다. 그가 대학을 마다하고 군대로 나가게 되였을 때에는 얼마나 대견하였던가.

금강산발전소건설에 참가한 후 아들에게서는 드문히 반가운 소식이 왔다. 신입병사훈련을 끝마치고 기본부대에 배치됐으며 창의고안을 하여 반년만에 군공메달까지 받았다는 소식이였다.

오전일과를 내내 흥분속에 보낸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서둘러 일손을 놓고 집으로 향하였다. 마침 광복거리쪽으로 가는 승용차편이 있어서 몇분동안에 축전동의 아빠트밑까지 왔다.

《안녕하세요?》

《응?》

동환은 마주 오는 처녀를 지나쳤다가 몸을 앞으로 향한채 고개만 돌리고 어정쩡해서 바라보았다.

《옆집에서 산답니다.》

처녀가 자기 소개를 하였다.

《알지, 알아··· 어째서?》

《축전소학교 교원입니다.》

처녀가 자기 소개를 더하며 몇걸음 걸어 동환의 쪽으로 마주 다가왔다.

동환이도 몸을 돌리고 그와 마주섰다. 그는 한부대 다른 부서 대좌의 딸인 그 처녀와 말을 건넨 일도 없지만 알만치는 다 알고있었다.

동환은 이 처녀가 이름이 혜숙이며 자기 아들과는 중학교 3년 선배이고 교원대학을 졸업한 후 몇달전부터 축전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째서?》

동환은 처음 말해보는 처녀에게 스스럼없는 어조로 다시 물었다.

《남철동무가 휴가로 왔다지요?》

《그래, 그렇소.》

《반가우시겠어요.》

처녀도 스스럼없이 말하며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느냐고 하였다. 동환이가 처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동그스름한 얼굴에 새물새물 웃음을 담으며 처녀는 오후에 금강산발전소건설에 참가한 군인과의 상봉모임을 조직하려는데 남철이를 보내주겠는가고 하였다.

《그것 참 좋은 일이구만! 보내구말구, 보내주지!》

동환은 기쁜김에 선뜻 약속하였다. 처녀가 어린애처럼 깡충 뛰며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아이, 고맙습니다. 그럼 오후 다섯시로 약속해도 좋습니까?》

《휴가온 군인인데 아무 시간이면 뭐라오? 선생이 좋을대로 하시오.》

《그럼 오후 다섯십니다. 학생들을 모여놓고 기다리겠습니다. 5층 4학년 2반이라는 패쪽이 붙은 교실입니다. 그리고 다섯시에 보내주세요.》

《알았습니다!》

동환은 거수경례를 해보이고나서 처녀의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념려말라고 하였다.

처녀와 갈라진 그는 승강기를 타지 않고 12층까지 단숨에 걸어올라가 자기 집 초인종단추를 힘있게 눌렀다.

《아버지!》

문이 안으로 벌컥 제쳐지더니 바위처럼 묵직한 아들이 한가슴에 와 안기였다. 몇순간 동환은 숨이 꺽 막힌듯 아들을 안은채 서있었다.

《남철이로구나! 남철아!》

남철은 안개속에서처럼 아버지의 얼굴이며 대좌의 견장, 군복의 단추를 보았다. 그러자 불시에 그는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는 어린애의 심정이 되였다. 남철은 흑 하고 흐느끼였다. 세차게 흐느끼는 석수에 트고 꺼칠꺼칠해진 그의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철은 그사이 자기가 겪은 일들과 동창생들의 소식이며 자신의 결심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싶은 누를길 없는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가슴을 흔들어놓고 그로 하여금 자기를 다른 부대로 조동시키는데 발벗고 나서도록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기분좋아할 때까지 서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식사가 끝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려과봉이 달린 《백승》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먼저 물었다.

《그래 표창휴가를 받았다지?》

그 질문을 받은 남철은 속이 뜨끔하였다. 그는 한동안 대답을 망설이였다. 아무 생각없이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에 거짓말을 하였던것이다.

어머니에게 한 자기의 말이 썩 잘되지 못하였다는 의식이 불안을 자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표창휴가로 왔다고 한 말을 지금에 와서 아버지앞에서 무슨 딴 소리로 꾸며댈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머니 순경은 아들이 집으로 왔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에 넉넉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복잡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게 되였다는것만으로는 벌어진 사태를 용서하지 않을것이였다.

남철은 그것을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대바르고 원칙적이였다. 아들이라고 해서 부정을 눈감아주는 법은 없었다.

남철은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예.》

남철은 혀아래소리로 우물우물 대답하며 아버지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았다. 외출승인을 받아가지고 왔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는걸 그러지 않았을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휴가이면 어떻고 외출이면 어떻단 말인가. 괜히 아버지의 기분을 흐리게 할 필요가 있는가.

《일을 잘한게로구나! 용타!》

아버지는 과묵한 얼굴에 전에없이 웃음을 담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혹시 표창휴가가 일시 중단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럴수도 있다. 출장이 많은 아버지이니 출장기간에 포치된 일을 알지 못했을수도 있는것이다. 아니다. 출장기간에 있은 일을 모르고 지낼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에 빈틈이 없다는것을 어릴 때부터 남철은 잘 알고있었다. 아니면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너그러운 아량인가?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다.

남철은 기뻐서 이제는 집으로 오게 된 목적을 꺼낼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주저되였다. 군대내에 소문이 자자한 아버지를 속이고있다는 의식이 그를 사로잡았던것이다.

그는 반년전보다 퍽 돋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심한 량심의 가책을 느끼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마주 보면서 말했다.

《남철아, 내가 옆집처녀선생과 한가지 약속을 했다. 그 선생이 너를 초청하더구나. 학생들앞에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라. 오후 다섯시에 학생들이 모여서 기다릴게다. 축전소학교 5층 4학년 2반 교실이라더라.》

《아버진 뭘 그런 약속을 다 하십니까?》

대답하는 아들의 목소리에는 짜증기가 섞여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삼 말했다.

《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해라.》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서둘러 집에서 나갔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것이다.

남철은 이중삼중으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오후 다섯시면 그도 집을 떠나야 하는것이다. 일일외출승인을 받은 그가 상원세멘트공장까지 가려면 몇시간전에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했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그처럼 절박하게 목적했던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채 맨 걸음으로 돌아가야 하는것이였다.

남철은 막 울음이 터질 지경이였다. 그의 심정을 알길없는 어머니가 설겆이를 끝내고 들어와서 아들의 곁에 붙어앉으며 다심하게 물었다.

《네가 탔다는 그 메달이 어데 있느냐? 그걸 척 달구 학생들앞에 나서거라. 좀 좋겠느냐?》

아들이 응대를 안하자 순경은 그의 배낭에서 군공메달을 꺼내들었다.

《어머닌 뭐가 좋아서 그래요?》

남철은 소리지르며 눈을 흘겼다. 아버지앞에서 터치지 못한 심정을 문문한 어머니앞에서 터친것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경은 그의 가슴에 군공메달을 달아주었다.

《어머니!》

남철이의 표정에는 애원의 빛이 어렸다.

《왜?!》

어머니가 다정히 대답했다.

《먹을걸 좀 꾸려주세요. 좀 많이···》

《너 어딜 갔다오려고 그러니?》

어머니는 그저 대견해서 사탕이며 과자를 한꾸레미 들려주며 아들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김동환은 퇴근시간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소년단원들과의 상봉모임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줄 알면서도 서둘러 집으로 왔다. 그는 아들과 더 오래 마주앉아있고 싶었고 그의 생활담도 듣고싶었다. 그는 지금 금강산발전소건설장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있으며 그것이 온 나라가 진행하고있는 《고난의 행군》에서 어떠한 의의를 가진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바로 거기에서 아들이 일하고있는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동환은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입대해서 불과 반년만에 군공메달을 탔다니 오늘은 밤새껏 그의 이야기도 듣고 성장한 그의 모습을 보고 또 보리라. 한잔 술을 같이 나누는것도 나쁘지 않지.···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자기 손으로 안해의 《창고》에서 술 한병을 꺼내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일곱시가 되였다. 동환은 안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섯시가 좀 못되여서 나갔는데 왜 이리 오랠가?

순경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들이 자기가 극성스럽게 달아준 군공메달을 책상우에 떼놓고 나간것이 가슴에 걸리였다.

어머니의 불안은 아버지의 불안으로 되였다. 동환은 그 불안을 애써 누르며 아들이 아마 자기 동무들을 만나 상봉모임이 끝나고도 인차 돌아오지 않는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안은 더욱 커졌다. 그것은 아직 어렴풋한 막연한 불안이였다.

아들에게 그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동환이였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동환은 안해보다 먼저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안해로서도 놀라운 일이였다. 그는 그 어떤 초인종소리에도 제 먼저 문을 여는 경우가 없었다. 좀 덤비면서 곽쇠를 벗기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멍청한 눈으로 두명의 소년단원들을 쳐다보고만 섰다가 놀라서 큰 소리로 물었다.

《너희들은 웬 애들이냐?》

두명의 소년단원들이 동시에 손을 머리우로 쳐들어 인사를 하고나서 되물었다.

《영웅아저씨 있나요?》

《영웅아저씨라니?···》

동환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태로 되여서 한동안 말을 못했다. 막연했던 불안이 명백해졌고 현실로 되였다. 아들은 자기의 당부를 외면한것이다.

동환은 다리가 후두둑 떨리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한두마디로 말해 보낼수가 없어서 그들을 데리고 학교로 갔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교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수십명 소년단원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을 면바로 바라볼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인채 루루이 사죄하였다.

옆집 처녀선생은 제가 미안해서 얼굴이 새빨갛게 되였다.

동환은 처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승강기가 뛰지 않는 시간이여서 그들은 걸어서 12층까지 올라왔다. 동환은 다리가 후들거려 겨우 걸었다.

그는 노상 늦게 퇴근하다보니 계단을 걸어 올라오기가 일쑤였는데 이처럼 힘들어보기는 처음이였다. 문앞에 이르러 처녀가 언제 또 약속할수 있겠는가고 묻는것을 다시 약속할수 없을것 같다고 말해주고나서 괴로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들은 세면장에 있었다. 열려진 세면장문틈새로 상의를 벗고 얼굴을 씻는 아들의 실팍한 어깨와 넙적한 잔등이 보였다.

동환은 얼른 외면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저녁도 들지 않은채 자리에 누웠다.

그는 마음이 무척 괴로와졌다. 아들이 자기의 당부를 어긴외에 자기를 속이고있다는데서 오는 괴로움이였다. 그는 당분간 현역군인들의 표창휴가를 중지한다는 총참모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상기한것이였다.

한밤중이 되여서 안해가 조용히 들어오더니 침대에 걸터앉아서 동환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나직이 말했다.

《너무 속을 썩이지 마세요. 남철은 승인을 받고 집에 왔어요.》

순경은 동환이 자기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운 다음 아들을 앉혀놓고 따져물었던것이다.

그러나 동환은 안해의 위안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왜 남철은 거짓말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지꿎게 줄곧 갈마들었다. 이제보니 남철은 자기가 녀선생과 약속했다는것을 말했을 때 짜증을 냈다. 그 약속을 지켜주지 못할 무슨 불가피한 사정이라도 있었던것인가? 외출승인을 받고 표창휴가를 받았다고 한것은 리해할수 있는 일이였다. 집으로 오면서 표창휴가를 받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떳떳한 일일것인가. 남철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였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 못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그가 자기가 신신당부한 문제를 한마디 량해도 없이 외면해버릴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리해하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에게 있을수 있지 않는가. 평양으로 오면서 그가 받은 군사적임무가 있을수도 있다. 그가 참다운 군인이라면 그 임무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할것이다. 오늘 남철은 그 임무를 수행했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문제될것이 있겠는가.

동환은 이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그가 속으로 아들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불안스러운 예감은 더욱더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남철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으며 정세가 긴장할 때에 그가 집으로 온것이 상서롭지 못하다는 짐작이 어렴풋이 들었다.

당장 자는 아들을 깨워서 모든것을 석연히 밝히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튿날에도 또 그다음날에도.

그에게서 남철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였다. 아무때나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쳐도 일없는 철부지가 아니였다. 그는 성장하였고 사회의 성원이 되였으며 더구나 인민군군인이였다.

인민군 고급군관인 그에게 있어서 남철은 자기가 거느리고있는 수많은 대원들중의 한사람이나 다름없었다. 한 전호에서 함께 싸우고있는 대원에게서 제기된 문제를 기분에 사로잡혀 망탕 처리할 지휘관이 어디에 있겠는가? 동환은 하루이틀 미루며 심중히 생각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있은 일이다.

동환의 서재에서 전화종이 울렸다. 누군지 모를 남자가 혹시 김동환대좌동지가 아니냐고 묻더니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

《방정국소좌입니다. 아마 저를 모르실겁니다. 상원세멘트공장에 이동작업조를 책임지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요?》

동환은 의아해하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남철동무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는데 우리가 뭘 도와줄것이 없겠습니까?》

《괜··· 괜찮습니다.》

동환은 이렇게 대답하였으나 자기가 지금 허튼 대답을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 당황하여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우리 남철이가 거기에 이동작업을 나와있다는거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집에 더 다녀올수 있도록 승인해주었습니다. 뭘 좀 더 도와드려야겠는데 저의 힘으로는 그게 답니다.》

소좌가 이렇게 말하는데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마치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남철이 어머니가 보내준 음식을 우리 전사들이 잘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 예.···》

동환은 송수화기를 잡은 손이 화끈거리는것을 느끼면서 황급히 말했다.

《우리 애를 부탁합니다. 잘 도와주십시오.》

《념려마십시오. 부대가 떠받드는 모범군인인데요. 아버님에 대해서는 온 부대가 다 압니다.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데 대하여 저희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소좌가 말했으나 동환은 그의 목소리를 가려들을수 없었다.

《찾아가 뵙지 못하고 이렇게 전화로 문안을 드려서 안됐습니다.》

동환은 송수화기를 그대로 움켜쥔채 한동안 꼼짝않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마치도 그 흰색물건이 새로운 재앙이라도 가져오지 않을가 두렵기라도 한듯이 얼른 받치개에 집어던졌다.

기계적으로 손수건을 꺼내 흥건히 젖은 이마를 닦았다. 병이라도 만난듯이 심장이 아파나기 시작했으나 곧 그것도 잊혀져 아픈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나의 지긋지긋한 생각이 지금 그를 온통 사로잡고있었다.

《문제가 있구나, 틀림없이 문제가 있어!》라는 피할수 없는 결론이 그의 가슴을 지꿎게 파고들었다.

동환은 전화기가 놓여있는 소탁자곁에 앉은채로 아들이 돌아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있었다. 지금 남철이가 자기의 모든 의문을 능히 풀어주고 자기의 어깨우에 이처럼 불시에 덮씌워진 무거운 짐을 벗겨주리라고 은근히 기대하고있었다.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을 때 동환은 그것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원의 종소리로 받아들였다.

그는 틀림없이 남철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안해 먼저 현관으로 달려나가 부리나케 문을 열었다.

그의 짐작이 틀림없었다. 남철은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그냥 지나쳐가면서 동무들을 만나 극장에 갔댔노라고 또 동무네 집에 가야 하노라고 한마디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리였다.

동환은 다짜고짜 아들을 뒤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너하고 좀 이야기할게 있다.》

《지금 해야 하나요?》

남철은 군복을 벗으며 대꾸했다. 《이웃 현관인데 사복을 갈아입으려고 들렸는데요.》

그는 어머니가 다려서 침대머리에 놓은 와이샤쯔를 입으려고 병사용속내의까지 훌렁 벗었다.

동환은 아들의 건강이 넘치는 몸, 근육이 울근불근한 그의 넙적한 잔등과 푸들거리는 두팔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보았다.

《게 좀 앉아라. 남철아, 이야기 좀 하자.》

동환은 남철이가 어린 시절에 들은 거역을 허용치 않는 위엄있는 어조로 말했다.

일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눈치챈 남철은 천천히 와이샤쯔를 입었다.

《글쎄 정 그렇게 급하다면 할수 없지요.》하고 그는 어물어물 대꾸하였다. 《자, 말씀하세요.》

《내 물어볼게 있어 그런다.》

동환은 아들이 앉은 침대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넌 도대체 어떻게 집으로 오게 되였느냐?》

동환은 이 물음을 제기하면서 아들의 눈빛이 약간 달라지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즉시에 웃음을 지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이미 제가···》

《지금 표창휴가란 없단 말이다.》

《없다니요?》

남철은 짐짓 놀라는체 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웃음을 띄고 덧붙였다. 《그러나 저러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규정대로 절차를 밟아서 집에 왔는데요.》

《어떤 절차 말이냐?》

동환은 한사코 따지고들었다.

남철은 방안의 천정이라도 낮아진듯 한 느낌이였다. 그는 오늘 하루사이에 무슨 일인가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것일가? 아버지가 부대에 전화라도 걸었단 말인가?

남철은 자기에게 이처럼 마른 벼락을 안긴 아버지와 똑똑한 대답을 못하고있는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화를 내면서 노여운듯 물었다.

《아버진 저를 어떻게 보는거예요?》

《너는 군인이다. 아들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너는 상관앞에서 솔직히 말해야 한다.》 동환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래, 어떻게 집으로 오게 되였느냐?》

《그게 그렇게 알고싶다면 좋아요.》

그러나 남철은 주저하였다. 자기를 다 털어놓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아버지는 대번에 노여움을 터뜨리고 자기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해버릴것이다. 아니 자기자신은 그 부탁을 입에서 꺼낼 기회마저 가지지 못하게 될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나 이 자리를 모면해야 했다.

《저는 상원세멘트공장에 이동작업 나왔어요. 평양가까이에 왔거든요. 이동작업조를 책임진 지휘관이 외출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문제로 될줄은 몰랐군요.》

《남철아, 비꼬지 말아. 이건 매우 심중한 문제다.》동환은 엄하게 타일렀다. 《그러니까 너희 지휘관이 너를 생각해서 며칠씩이나 외출을 시켰구나. 그러냐?》

남철은 사태가 이렇게 급전되리라고는 예상 못했었다. 분명 아버지는 모든것을 알고있다.

어머니가 꾸려준것을 가지고가서 외출기일을 연장한것도···

남철은 제발로 함정에 기여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여기서 황급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를 이동작업조에 넣어준건 우리 중대장동지예요. 그가 저를 집에 보내주려고 이동작업조를 책임진 소좌동지에게 적당한 구실을 만들었을겁니다.》

《집에 일이 있다는것 말이냐?》

《그래요.》

남철이가 대꾸했다. 그리고 또다시 웃으며 짐짓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중대장은 인정이 있는 사람이예요. 게다가 저는 모범군인이거든요. 그는 저에게 표창휴가라도 주고싶었을겁니다.》

《그래···》

동환은 잠시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남철은 아버지가 자기 말을 믿는것으로 여기였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제가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압니까? 아버지 소식이 신문에 실리고 아버지가 지은 노래를 모두가 부를 때 저는 아버지가 더욱 보고싶었어요.》

동환은 끝내 아들에게 더 따지지 못하였다.

아들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칠 동환이가 아니였다. 그는 모든것을 석연히 하고싶었고 그래서 자기의 오해를 풀고 잠시나마 아들을 의심했던 사실을 아들앞에서 사죄하고싶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뜻밖에도 허물어지고말았다. 이튿날 금강산발전소건설장에 전화를 걸어 남철의 중대장을 바꾸어달라고 했을 때 교환수로부터 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답을 들었다. 중대장이 전날 밤에 붕락에 묻혀서 희생됐다는것이였다.

동환이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본능적으로 느낀 감정은 불안이였다. 그 무슨 만회할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남철이와 관련되여있지 않겠는가 하는데서 오는 심리였다. 그래서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동환은 중대장의 상급에게 희생된 중대장이 남철이를 이동작업조에 넣으면서 무엇이라고 했는가를 알아보았다. 그의 전화를 받은 상급지휘관은 중대장이 남철이를 제기하면서 그의 집안에서 무슨 긴급한 가정사가 있는것 같은데 평양가까이에 보낸 기회에 집에 들려오게 하자고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동환은 그런 말을 들은 다음에도 불안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중요한것은 중대장이 희생된 자리에 그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이였다.

그날 밤 남철이와 다시 마주 앉았을 때 동환은 아들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었다. 그는 아들을 포기한듯 했다.

그는 아무런 감정이나 표정도 없이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나에게 할 말이 없느냐?》

남철에게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 아버지에게서 가뭇없이 사라진 그 모든 감정과 표정이 그 목소리에 담겨진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날 낮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순간 그의 모든 기대도 허물어졌다. 그는 부르짖었다.

《좋아요! 다 말하자요. 나는 전투부대로 조동시켜달래려고 아버지를 찾아왔어요. 나는 싸움판에 서고싶어요. 나도 아버지처럼 불에 탄다면 빨간 연기로 피여오르고 빨간 재로 남고 장군님을 위해 육탄병사가 되고싶어요!》

남철은 집으로 오면서 이 말을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조리있게 하고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되는대로 부르짖었다. 동환은 처음과는 달리 아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기 시작했다.

《저는 선서를 한 군인이예요. 그래서 군인의 의무에 충실했어요. 저의 군공메달을 아버진 못봤습니까? 우리 건설장에 입대해서 반년만에 군공메달을 탄 군인이 몇십명이 되는줄 아십니까? 그러나 전 어디까지나 전투영웅이 되고싶단말입니다.》

남철은 부르짖으며 마구 눈물을 뿌렸다. 동환은 아들의 그 모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끝내 아들에게서 돌아섰다. 남철은 그의 일거일동을 살피면서 꼼짝않고 서있었다.

《거짓말이다!》하고 동환이가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예요!》 남철은 새파랗게 낯색이 질려 말했다.

《나는 전투구분대에서 복무하고싶어서···》

《거짓말이다!》

동환은 소리쳤다.

《이건 너무해요!》

남철이는 갑자기 새된 소리로 웨쳤다. 《나도 아버지처럼 해병이라도 되면···》

《아니 거짓말이다. 너는 공사장이 힘들어서 도망쳐왔다.》

동환은 세번째로 소리쳤다.

동환이 아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할수 있었으랴? 그를 사랑하기때문이라고? 그래서 아픈 매를 드는것이라고? 그래서 자기를 뉘우치고 공사장으로 들어가서 반드시 영웅이 되라고?

동환은 최고사령관동지를, 그이와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그이께서 무대로 올라와 한사람한사람 군인들의 손을 잡으며 뭐라고 말씀하시였던가.

《나는 우리의 모든 병사들을 믿습니다!》

그 병사가 자기앞에 서있다. 엊그저께 입대했다고는 하지만 군복을 입은 한 병사가··· 동환은 차거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진 자기 아들을 뭘로 아십니까?》

아버지를 마주보는 남철의 눈빛에도 애원인지 절망인지 모를 불꽃이 튕기였다. 그는 부르짖었다.

《나는 그 공사장에서 죽기내기로 일했어요. 붕락, 폭파가스와 돌먼지, 오염된 석수, 그 석수에 발과 다리가 퉁퉁 부어요. 그렇지만 난 겁내지 않고 일했어요. 지금 또 새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 명령이 어떤 명령인지 아버진 아마 모를거예요. 하지만 전 그것도 겁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진 절 뭘로 아는가 말이예요? 뭘로!···》

이 순간 동환의 가슴속에는 다 말라버린듯 했던 애정이, 아들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다는 희망이 되살아났다. 동환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돌아가거라! 사실 지금 거기선 전쟁을 하고있는셈이다. 총포성없는 전쟁을···》

《그렇게 하겠어요. 래일 아침에···》

남철은 순순히 응했다.

《아니, 지금 당장 돌아가거라!》 동환은 여전히 조용히 말했다.

《지금 당장에요?》 남철은 아연해졌다.

《그래, 지금 당장!》

남철은 어쩐지 좀 거북스럽게 선 자리에서 서성거리더니 군복을 주어입기 시작했다. 팔소매에 팔을 끼지 못해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드디여 옷을 입고는 문가로 걸어갔다.

《배낭을 가져가라. 이것도, 상우에 있는 메달도.》

남철은 픽 돌아섰다.

《그건 건사해둬요.》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건 집에 필요없다. 가지고 가거라!》

그는 여전히 문가에 서있었다.

동환은 아들의 배낭을 들고 일어나 탁자우에 있는 메달을 집어넣은 다음 문쪽으로 걸어갔다.

《군인의 량심으로 빛나게 될 때 도로 가지고 오너라!》

남철은 배낭과 동환을 번갈아보고나서 배낭끈을 받아쥐고 쳐들어올렸다.

《어서 가거라!》

동환은 마지막으로 말하고 돌아섰다.

뒤에서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후 며칠이 지나갔다. 동환은 자기가 그때 아들을 두고 격노했던 사실을 가지고 두고두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밤 그토록 격분했던 리유가 무엇이였던가를 거듭거듭 생각해보았다. 표창휴가요, 뭐요 한 그 유치한 거짓말이였던가? 그것일수 있었다. 아들은 단 한번의 거짓말도 모르고 자랐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였다. 아들은 보다 큰 거짓말을 했다. 아들은 완강하게 항변했지만 전투부대요, 뭐요 한것은 거짓말이였다. 그것은 힘든 공사장을 뜨려고 꾸며낸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전률을 느끼였다.

공사가 힘들다는데 대해서 그자신인들 어찌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까마득한 병사시절 굴착기요, 스키프요 하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때 그자신이 방어공사에 한두번만 참가했던가? 그때 그 공사를 순전히 정과 마치로 뚫으면서 피와 땀을 바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이제는 아들의 세대다. 이 세대를 가지고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께서 수령님의 위업을 계승해나가셔야 한다. 그런데 그 세대가 구실을 못한다면?

동환은 인민군대오에 남철이와 같은 군인이 하나이기를 바랐고 또 그러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하나라도 문제였다. 아, 피줄은 유전되여도 사상은 유전되지 않는단 말인가. 진정 사상은 상속해줄수 없단 말인가? 동환은 그것이 괴로왔다.

그는 자기 몸이 불에 타서 붉은 연기로 되고 붉은 재로 될 결심을 다지면서 결코 자기 혼자만을 념두에 두지 않았다. 아들은 두말할것도 없고 대학에 다니는 세 딸과 안해 순경이까지를 념두에 두었다. 온 가족이 육탄이 될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그것이 공담이 되였다. 그것이 어떤 맹세였던가? 우리의 존엄높은 무장대오앞에서, 최고사령관동지앞에서 한 맹세가 공담으로 되다니···

그는 사죄하고싶었다. 무릎을 꿇고 백배 사죄하고싶었다.

동환은 어느날 당생활총화를 하면서 자기의 이러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 일로 해서 당할 자신의 수치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다. 다만 당조직이 우리의 성스러운 무장대오안에 자기 아들과 같은 락오자가 있다는 사실에 류의해주기를 바랄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