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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이제 저 종이 열두점을 다 치고나면 새해 1995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국상을 치른 서글픔속에서도 희망을 가진다. 나라에 조성된 엄중한 정세를 그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이래 장구한 기간 별로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인민이였다. 광복직후와 전쟁시기, 전후의 년대들을 거쳐온 로세대들을 내놓고는 아이들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의 대다수 사람들이 《압살》, 《질식》을 아직도 먼 지경밖의 일로 여기고있었다. 그들은 상점에 상품이 적고 식량공급소에서 자주 쌀이 떨어지는것을 보고도 미처 실어오지 못해 그렇겠거니, 려객렬차가 자주 연착되는것을 보고도 어디서 사고가 나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하였다. 농민시장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거기에 《생활전선》이 펼쳐지고있는데 대해서 자기들과는 거리가 먼 일로, 일부 리기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는것으로 여기였을뿐 그것이 《봉쇄》의 어쩔수 없는 후과이고 사회주의에 치명적인 위협을 조성한다는데 대해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으며 또 느낄수도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행복에 취해있었고 전진과 승리만을 알았다. 우리 혁명의 《장기성》과 《간고성》은 아직도 교과서나 학습장에 써놓은대로 있을뿐이였다.

그리하여 《이해에는》 하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당에서 그 어떤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기만 한다면 모든것은 정상화될것이다.》… 그들에게서 당이란 다름아닌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렇다. 그들은 전대미문의 이 어려운 나날들에 그이를 《운명의 신》으로 믿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 집무실의 문발을 걷어올린 창문앞에 서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계시였다.

종소리는 서탁우에 놓여있는 라지오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종소리가 멎자 그이께서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해에는…》하고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그다음 라지오를 끄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집무탁을 두손바닥으로 짚으며 마음속의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정세가 더욱 엄혹해질것이다!》

그이의 집무탁우에는 최근 미중앙정보국 강경보수파들이 각이한 장소들에서 떠들어댄 발언들과 선거유세장을 비롯한 여러 장소들에서 한 연설의 원문들도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위기》요, 《종말》이요 하는 과장된 표현들이 있지만 진실이 있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청맹과니는 아닌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경제적난관이 사회주의의 영상을 흐리우고 정치와 군사에 영향을 주고있는데 대하여 알고있었다. 그러나 실지는 그들의 평가보다 나라의 정세가 더욱 엄혹하였다.

미국의 정세분석가들이 작성한 콤퓨터의 프로그람에는 본질적의미를 가지는 일련의 사실들이 빠져있었다. 례컨대 그들은 《조미기본합의문》의 리행을 념두에 두고 저들이 취하고있는 우리 나라에 대한 《경제제재》는 프로그람에 입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미기본합의문》이 리행되여 《경제제재》가 취소된다고 해도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해부터 시행하기로 되여있는 미국무성의 《대북조선제재완화》조치의 대략적인 내용만 보아도 그렇다. 그것은 1. 미국에서 시작되거나 종결되지 않은것을 조건부로 하는 우리 겨레들에 대한 미딸라결재, 미국은행체계의 리용, 2. 마그네샤크링카를 비롯한 내화물의 미국에로의 수출, 3. 정기통신망의 직접적련결 및 그와 관련한 설비구입, 4. 미국인들의 우리 나라에 대한 려행, 5. 려행과 관련한 거래, 6. 경수로 관련 에네르기부문거래, 7. 련락사무소개설과 관련한 사업, 8. 간접적인 방법으로 동결된 자산의 건당해제 등이였다. 이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할수 있는 상품은 마그네샤크링카를 비롯한 내화물 한개 지표로 국한되여있는데 이는 미국의 리해관계만을 반영하고있었다. 최근 우리 나라와의 거래를 희망하는 제네랄 모터스회사, 칼텍스원유회사, 광물기술회사, 코메랄회사, 베이커내화물회사, 스텐톤그룹, 미국은행을 비롯한 제단들과 자문회사들의 활동은 허용되지 않고있었다. 결국 《경제제재》의 완화도 해제도 아니였다. 뿐아니라 미국무성의 《대북조선경제제재》완화조치는 서방경제시장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 취하고있는 간접적인 제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있었다. 콤퓨터의 프로그람에는 이런것들이 전혀 기입되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만일 프로그람에 이 모든것이 입력되였더라면…》하고 생각하시였다. 콤퓨터는 우리의 《질식》을 2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당겨질것으로 계산하였을것이다.

문제는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미국의 정보원들과 경제분석가들은 우리가 겪고있는 난관의 정신적측면에 대해서도 도외시하고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중요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대오안에서 나타나고있는 패배주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고 적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속에서 숨은 형태로, 지어는 공개적인 형태로 나타나고있는 난관에 겁을 먹고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런 사람들은 근로대중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혁명의 지휘성원들, 간부들속에 있었다. 이것이 무서운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여기에서 문제의 엄중성을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야조브와 심철범을 접견한 직후에 있었던 홍경봉부총리와의 담화를 잊지 않고계시였다. 그 담화에서는 지금까지 인민군대가 맡아서 진행해온 금강산지구의 대수력발전소건설문제가 토의되였는데 홍경봉은 급진적으로 악화된 경제형편에서 정무원은 어떤 대책을 취하려는가 하는 그이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어 그는 당분간 중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없는 의사까지 표시하였다. 정무원 책임일군의 한사람인 그의 의사는 경제부문 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패배주의를 표현하고있었다. 그 일이 지금도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금전에 야조브를 데리고 금강산발전소건설장을 돌아보고있는 심철범이 현지에서 보낸 서면보고를 읽으시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하고 심철범은 썼다. 《오늘 야조브 이전 쏘련원수는 물길굴공사장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수만명의 우리 인민군장병들이 근 10년간 지하에서 전대미문의 거창한 공사를 진행해온데 대하여 경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조선의 진짜 위력은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있다, 그것은 인민군대의 위력이다, 나는 김정일동지께서 믿으시는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였다, 나는 당신들이 소문없이 해온 이 공사가 완공되여 세상에 공개된다면 조선이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무기를 시험한것으로 되리라고 본다, 나는 이 공사가 완공되기를 사회주의와 나의 운명을 걸고 바라마지 않는다.…》

힘과 신심을 주는 보고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것을 읽고도 마음이 가볍지 않으시였다. 정세는 너무도 엄혹하였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서면보고를 되새겨보며 집무탁주위를 마저 돌아 걸상에 와앉으시였다. 그리고 깊은 상념에 잠기시였다. 그이의 뇌리에는 심철범이 써보낸 서면보고의 《완공》,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무기》 등 표현들이 불꽃을 튕기며 맹렬히 타오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걸상의 팔걸이를 잡은 두손에 꽉 힘을 주시였다. 그렇다! 인민군대의 위력으로 오늘의 난국을 헤치자! 적들과 충포성없는 전쟁을 하자! 그이의 이 결심은 그 어떤 감정적인 폭발이 결코 아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국상을 당하신 후 견딜수 없는 슬픔속에서도 수령님의 70성상의 혁명력사를 갈피갈피 들추면서 하나하나 총화해보시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종일관 총대중시, 군사중시로선을 견지해오시였다는 사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무장한 적을 때려부시고 조국을 광복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있다는 사상을 내놓으시고 먼저 항일유격대부터 창건하시였으며 조국을 광복한 다음에야 비로소 당도 국가도 창건하시였다.

로동계급의 정권은 총대에서 나오고 총대에 의하여 유지되고있었다. 오늘 사회주의운명도 나라의 안전과 평화도 다 총대우에 있었다. 군대가 강하면 설사 당이 무너진다 해도 다시 조직할수 있지만 군대가 약하면 사회주의전취물을 고수할수 없는것은 물론 당도 유지할수 없으며 국가와 인민의 운명도 지켜낼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였다. 세기와 더불어 흘러온 수령님의 혁명력사는 《총대를 틀어쥐라!》고 가르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력사의 이 총화를 수령님의 유훈으로 받아들이시였다. 지금 다지시는 그이의 결심은 감성이기 전에 리성이며 의지이며 선대수령의 유훈을 무조건 받들려는 충성이며 도덕의리였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의 단순한 계승만을 생각하신것은 아니였다.

그이는 어디까지나 사회주의정치가이시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더욱 엄혹해지는 정세속에서 사회주의정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열쇠가 필요했으며 사회주의정치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 필요했다. 그이의 뇌리에는 《새로운 정치방식》이라는 말마디가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것은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만들어 조국을 보위하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본보기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하여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정치방식으로 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벌써 국상을 당하신 첫날에 이 생각을 하시였다. 그때 비상정치국회의뒤에 오진우를 비롯한 몇명 일군들에게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생각해보라고 이르시였다, 물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내오는 문제는 류의장이나 허성렬이 재촉하고있는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진행된 다음에 결정될것이였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혁명의 기둥으로서 인민군대가 정신령역에서 새로운 봉화를 들어야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상념에서 깨여나시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신 다음 책임서기 곽무선을 불러 빠른 어조로 분부하시였다.

《차를 준비시키시오. 수령님께 가겠소.》

곽무선이 나갔다가 손에 진회색의 닫긴깃양복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그이께서는 곽무선이 거들어드리려는것을 마다하고 손수 잠바옷을 벗고 그것을 갈아입으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는 금성거리를 달리였다. 새해에 들어와 수도의 거리를 달리는 첫차였다. 승용차는 금수산기념궁전의 정문을 소리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령안실이 있는 계단을 오르시였다. 호위병들이 령안실앞에 그린듯이 서있다가 첫 새벽에 찾아오신 그이를 보고 다급히 영접들어총을 하였다. 생전에 수령님을 호위하던 병사들이였다.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해 이 시각 설인사를 드리려고 어버이수령님을 찾아오던 일이 상기되시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께서 령안실이 아니라 수령님께서 반갑게 마주 걸어나오실듯 한 집무실로 들어간다는 착각이 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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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교외도로로 해서 시내로 달려오고있었다. 세척기가 동작하고있는 앞차창을 내놓고 좌우차창에는 진흙이 뒤섞인 얼음버캐가 묻어있었다. 차는 고속으로 달리고있었다.

식전에 금수산기념궁전을 떠난 즉시로 그이께서는 다박솔초소를 돌아보시였다. 이 시찰소식은 이튿날 중앙의 신문과 방송으로 크게 보도되였다. 한것은 그것이 새해에 나라가 나아갈 방향, 온 세계가 주목하고있는 그이의 결심과 의지를 시사해주기때문이였다.

그 구분대에 대한 시찰을 끝마치신 그이께서는 돌아오는 길에 해군사령부소속 한 부대에 들리시였다. 신문과 방송에는 보도되지 않은 방문이였다. 거기에서 설명절을 맞으며 준비한 군인들의 예술소품공연을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들이 부르는 자작노래에 매우 크게 감동하시였다. 그리하여 지금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노래에 대하여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가사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었다.

 

내 그대 위해 불에 탄다면

붉은 연기로 피여오르리

내 그대 위해 불에 탄다면

붉은 재로 남으리

장군님이시여 내 그대 위해

아 육탄병사가 되리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노래를 듣고 병사들에게 노래를 누가 지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들은 김동환대좌라고 대답하였다.

대좌를 만나시였다. 무대에 불리여나온 대좌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무뚝뚝해보이는 50대의 장년이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군인형이였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 그의 어디에 그런 강렬한 감정이 있었을가 싶으시였다. 그래서 말을 시켜보시였다. 그는 노래를 자기가 지은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합창이라도 하듯이 《아닙니다! 대좌동지가 지었습니다!》하고 웨치였다. 그 웨침소리에는 대좌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과 신뢰가 울리고있었다.

알고보니 가사의 구절들은 대좌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이였는데 병사시인이 그것을 가사화한것이였다. 그것이 더욱 귀중하시였다. 결국 가사는 머리를 짜내고 손끝으로 지은것이 아니라 심장의 토로이며 분출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좌가 대견하시였다. 김동환은 우연히 만난 인민군대의 수많은 지휘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가 지었다고 하는 노래, 아니 노래라기보다 심장의 웨침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시대의 표징을 보시였다. 김동환과 같은 지휘관들이 지휘하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시였다.

이날 아침 병사들에게서 들은 그 노래는 어려운 새해의 전투를 시작하시는 그이를 힘있게 고무해드리였으며 그이로 하여금 인민군대에 의거하기로 한 자신의 결심이 백번 정당하다는 확신을 가지시게 하였다.

하여 그이의 귀전에는 이날 첫 새벽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나누시였던 마음속의 대화가 되살아나는것이였다.

《최고사령관이 이 어려운 때 군대를 틀어쥐기로 한것은 매우 정당한 결심이요. 나는 절대 찬성이요! 최고사령관이 나의 뜻을 잊지 않고있으니 나는 마음을 놓겠소!》

눈굽이 뜨거워지시였다.

돌이켜보면 수령님께서는 군대를 넘겨주는 사업을 계획적으로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련이어 맡겨주시고 전군에 최고사령관의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으며 1994년 건군절에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권총을 수여하시면서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가슴속에는 수령님에 대한 걷잡을수 없는 감사의 정이 끓어번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운전사옆에 앉아있는 부관에게 오늘 아침에 내보낸 수령님의 신년사를 듣자고 하시였다.

그러자 부관이 카세트를 골라 록음기에 끼웠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를 가다듬는 귀에 익은 소음이 들리였다. 뒤이어 라지오에서는 수령님의 잊을수 없는 육성이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날 아침 라지오와 텔레비죤앞에 앉아있던 조선인민들모두는 수령님을 우러렀을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신년사를 하실것으로 믿고있던 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손벽이 아프게 박수를 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것이였다. 실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당정치국에 건의하시였으며 당정치국은 그대로 실행하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육성은 승용차가 당중앙위원회 정원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목소리를 끝까지 다 들으신 다음에야 차에서 내려 청사로 들어가시였다. 집무탁에 앉으신 그이께서는 종이 한장을 꺼내놓고 마찌크를 드시였다. 잠시 생각하고나서 활달한 필체로 이렇게 쓰시였다.

《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아갑시다.

 

1995. 1. 1

김정일

 

이 친필서한은 곧 서기실에 전달되였으며 전국의 각이한 단위의 책임일군들에게 모사전송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어 곽무선에게 단호하고도 의미심장한 어조로 《심철범장령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오.》하고 지시를 주시였다.

장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그이께서는 어은병원에 전화를 걸어 오진우의 병상태를 문의하시였다. 이 병원의 원장인 군의근무장령은 일흔이 지났는데도 젊은이와도 같이 챙챙한 목소리로 환자의 림상상태를 보고해왔다.

원장은 환자가 옥천휴양소에서 옮겨온 후 병이 더욱 악화되여 현재 침상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며 숨이 몹시 차서 말도 변변히 할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자에게 야조브를 붙여놓았던 일이 후회되시였다. 고독해할것 같아서 말동무라도 하라고 한 일이였는데… 그래서 원장에게 그 말을 했더니 원장은 그런것이 아니라 환자의 병상태가 워낙 중하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지금 일체 면회를 금지시켜 특별히 승인했던 사람들이 찾아오는것도 엄금하고있다고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알겠소. 사실은 전화로나마 설인사를 나누자고 찾았는데 그만두겠소.》하고 전화를 놓으려 하시자 원장이 다급히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전화를 해주신다면 환자에게는 백가지 약보다 더 큰 효험이 있을거라고 제사 기뻐서 웨치듯 큰소리로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 그리로 가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기쁨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원장이 그렇게 되면 환자가 지나치게 충격을 받을수 있으므로 전화정도가 좋을것이라고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자더러 누운채로 전화를 받게 하라고 원장에게 당부하며 환자와 련결하라고 이르시였다. 오진우가 이 사실을 알면 필시 군복을 착용하고 일어서서 전화를 받을것이라고 여겨져서 하시는 당부였다.

잠시후 환자와 전화가 련결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극히 짧게 말마디를 아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설날 아침에 오진우가 최고사령관동지와 주고받은 전화내용은 그후 력사에 두페지도 되지 않게 기록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1995년 1월 1일 오전 10시 30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에게 하신 전화

최고사령관동지 :

《무력부장동지, 새해를 축하합니다.》

오진우 :

《…》

최고사령관동지 :

《일어서느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그럼 전화를 놓고 말겠습니다.》

오진우 :

《죄송합니다. 먼저 새해의 인사를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

최고사령관동지 :

《새해에는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최소한 내옆에 앉아만 있어도 나는 좋겠습니다. 수령님께서 가신 지금 무력부장동지마저 없으면 이 김정일이 견디지 못합니다.》

오진우 :

《그렇게 말씀을 주시니 제 기어이…》

최고사령관동지 :

《그래야지요. 나는 방금 새해를 맞으며 동지들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무력부장동지에게는 보내지 않았는데 병중이라는 고려도 있지만 따로 할 말이 있었습니다.》

오진우 :

《고맙습니다. 어서 그 말씀을 주십시오. 제 아직은…》

최고사령관동지 :

《나는 수령님을 잃은 다음 그이의 혁명력사를 총화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총대로 시작하고 총대로 개척해온 력사였습니다. 나의 결심은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선렬들의 위업을 끝까지 이룩하자는겁니다.》

오진우 :

《저는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아니, 진정… 감사… 감사합니다.》

최고사령관동지 :

《그러므로 부장동지는 하루빨리 완치되여 나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내가 부탁하자는건 바로 그겁니다.》

오진우 :

《옛, 최고사령관동지, 제 반드시 일어나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

《그래야 합니다. 그럼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으시는 김정일동지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였고 안광에는 알리지 않게 눈물이 고이였다. 자신의 결심을 전적으로 지지하던 로투사의 목소리가 귀전을 계속 맴돌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오진우가 끝없이 미덥고 고마우시였다.그때 마침 곽무선이 들어와 심철범장령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