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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력사가들은 20세기 마지막년대들에 우리 인민이 진행한 《고난의 행군》을 진두에서 이끄신 김정일동지의 위훈에 대하여 동시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것을 알게 될것이다.

오늘의 신문, 방송들은 그이께서 진행하신 회의와 담화, 현지시찰을 실지보다 적게 보도했기때문이였다.

현재로서는 많은것이 비밀이였다.

지면과 파장에 실린것보다 리면이 더 많았으며 거기에 더 중요한 본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비밀로 되지 않을 때 력사가들은 그토록 간고했던 고난의 년대들에 그이께서 보여주신 무비의 담력과 의지, 천재적인 전략과 전술,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으로 일관된 빛나는 위훈을 사실대로 알게 될것이였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아는것이 전부였다.

그 고난의 년대들에 엮어진 위훈의 리면사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았다.

현재 나돌고있는 《쪽잠》이라든가 《줴기밥》에 대한 혁명일화가 어느 정도 그 진면모를 가늠해볼수 있게 했지만 그것으로써는 부족했다.

그때 당시에 이런 시가 창작되였다.

 

지금은 어데 계실가

그 어느 북변마을의 동구밖

밭이랑의 찬 눈을 헤집고

파아란 밀보리를 보살피지 않는지

천리 먼 전연초소

병사들의 온실을

돌아보고계시지나 않는지

 

자신의 집을 떠나

풍찬로숙하신 우리 어버이

인민을 찾고찾으시여

온 한해 인민의 집에 계신

아, 우리의 김정일동지

 

예로부터 하루라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더라

한걸음 제 집 뜨락을 나서면

봄바람도 차다 했더라

 

허나 하루도 한달도 아닌

긴긴 해와 달

자연에는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건만

가고가시는 전선길우에는

계절이 따로 없었으니

우리 장군님 고생중의 고생을

어이 다 헤아리랴

···

 

시인의 풍부한 환상력이 김정일동지의 위훈의 세계에로 어느 정도 육박했다고 할수 있었다.

그것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의 세계, 사랑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희생의 세계였다.

《쪽잠》과 《줴기밥》, 《불돌》에 대한 일화도 그래서 생겨난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시인의 환상력으로써도 미치지 못한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이께서 생명의 위험이 뒤따르는 사선을 넘나드실 때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해에 있은 최전연고지들에 대한 시찰은 적의 저격무기의 사격권내에서 진행되였다.

이것은 현지에서 그이를 맞이했던 장령들과 전사들이 손에 땀을 쥐였던 일로서 더러 일부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4일에 진행된 판문점시찰은 안개라는 《보호신》에 의해서 무사했다는 신비로운 이야기로만 전해졌을뿐 그 놀랄만 한 리면에 대해서는 알려진것이 거의 없었다.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시찰은 안변땅에서의 위대한 선포에 이어 《고난의 행군》의 최후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한몸을 내대이신 일대 거사였다.

이 시찰은 분계선에서의 충돌이 있은 직후에 있었다.

최중권장령으로부터 된타격을 받은 적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놈들은 안변의 선포가 결코 허장성세이거나 정치적제스츄어가 아니라 조선을 떠받들고있는 제일기둥인 인민군대의 실질적인 의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조선의 《종말》에 대한 시간표까지 짜놓고있던 적들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인민이 진실로 강력한가? 그렇다.

강력하다는것을 검증할수 있는 사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바다에서 좌초된 인민군군인들의 집단적인 자폭만도 그렇다.

그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산다는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어린 철부지들이 아니였다.

그들이 자폭한 위치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그들의 가정과 생활이 있었으나 그들은 그 모든것을 버리였다.

그러니 인민군군인들속에 폭발적으로 일고있는 자폭정신, 육탄정신을 무엇으로 막는단 말인가!

분계선충돌이 있은 직후인 10월 18일 미국에서는 대통령후보들의 텔레비죤공개론쟁이 있었다.

대통령선거가 박두한 때였으므로 서로 분계선충돌에서의 실패의 책임을 전가시킨 이 론쟁에서 클린톤이나 보브 돌이 다같이 인정한것은 조선인민군이 상상밖으로 강했다는 사실이였다.

체육선수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화면에 나타난 클린톤은 자기의 언변과 젊음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보브 돌씨를 비난할 마음이 없다. 그것은 대통령인 나자신이 북조선군을 잘못보았기때문이다.》

련이어 화면에 나타난 보브 돌도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곧 머리를 싸쥐였다.

실언을 했던것이다.

그는 대조선정책에서 강경고압,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정치리념, 선거공약의 기초를 스스로 허물어버린것이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렬세에 빠져있는 선거전에서 실패를 가져올수 있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하나 클린톤을 누르고 대통령이 됨으로써 미국을 힘의 강국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기의 결심과 의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얼마전에는 상원의원직을 버리였다.

자기앞에는 두길, 백악관이냐 고향이냐 하는 길밖에 없다는것이였다.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시 정치무대에 나서지 않겠다는것이였다.

그는 이러한 비장한 결심으로 미국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경쟁자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들이대였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잃어버린 지도력회복》이란 45분간의 연설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클린톤에 대한 공격에 바쳤다.

《클린톤정부의 과오는》하고 그는 말했다.

북조선에 굴복하고 양보하는 정책을 펴온것이다, 클린톤행정부가 자랑스럽게 발표한 제네바기본합의문을 통해 미국은 1. 핵협정의 정상적인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북조선을 어루만져주었다, 2. 북조선의 현존 핵무기계획과 핵물질보유량을 과대평가하였다, 3. 북남대화를 정지시켰다, 4. 북조선의 장래발전을 위한 수십억딸라의 자금과 기술을 제공할것을 약속하였다, 5. 핵무기 및 핵물질을 생산할수 있는 수십억딸라의 자금과 기술을 제공할것을 약속하였다, 6. 북조선군의 전진배치로 조성된 위험을 무시하였다, 7. 북조선에 계속적이며 직접적인 관대정책을 확인해주었다.

보브 돌은 열도를 높여 계속했다.

클린톤은 미국과 중국, 북남조선이 참가하는 《4자평화회담》제안을 발표했는데 그의 제안에 북조선은 응대도 하지 않고있다, 이처럼 클린톤의 대북조선정책은 아무런 전략적안목이나 작전계획 전술적인 조정도 없이 단순히 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화를 추구하고있는것이다, 행정부는 북조선이 현존무기통제조약들을 뻔뻔스럽게 ―나는 뻔뻔스럽다는 말을 강조하는바이다.― 위반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지도자들과 《미싸일전파방지》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공격과 동시에 클린톤의 도덕성문제를 들면서 인신공격까지 가해나섰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렬세는 만회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치명적인 실언까지 하였으니 머리를 싸쥘만도 하였다.

그날 밤 미중앙정보국의 《Z》자가 붙은 밀실에는 돌과 그의 모사진이 모이였다.

이것은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최후의 모의였다.

이 도발적인 모의에서 그들은 분계선충돌을 기본으로 조선인민군의 전쟁의지, 보복의지를 다시금 따져보고 마지막도발을 해볼 심산이였다.

보브 돌과 함께 《마운트웨저》에 가있던 호케르는 충돌지역상공에 떠있는 군사위성이 보내온 화면을 다시금 눈앞에 그려보면서 말했다.

《보십시오. 다섯명의 북조선군인들은 자기 땅이라고 인정된 곳으로 주저없이 걸어갔습니다. 거의 본능적이지요.》

《동물들에게는 본능밖에 없소! 호케르선생.》

보브 돌이 성난 어조로 부르짖었다.

호케르가 그에 개의치 않고 조용히 물었다.

《무식하다는건가요?》

《그렇소.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전면전쟁으로 번져질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모르고있었소. 그러니 주저하지 않는단 말이요. 물론 나도 그들의 군인정신에 대해서는 알고있소.》

《그렇다면 한가지 묻겠습니다.》하고 호케르가 침착하게 응수했다.

《이 전선군을 지휘한 조선의 최중권장성의 명령도 무식하다고 해야겠는지요?》

《그렇소.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단 말이요. 그러니 무분별할수밖에 없었소.》

《무분별했다구요?》

호케르가 반문하고나서 역시 조용히 자기의 의견을 전개했다.

《우리가 포착한것처럼 그는 자기의 최고사령관의 결론이 없이 행동하였습니다. 그건 그가 용감할뿐아니라 리성적인 사고력과 가장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있다는걸 말해줍니다. 그랬기때문에 우리가 패한거구요.》

《아니요. 아니란 말이요!》 돌이 목에 피대를 세워 부정하며 말했다.

《그 우둔한 장성보다 김정일최고사령관은 퍽 현명하단 말이요. 만일 그가 알았더라면 그 장성을 제지시켰을거요. 그는 우리 미국의 국력을 알고있을거요. 미국과의 전쟁이 무분별하다는것을 알고있을거란 말이요. 〈아는자, 이는 약자이여라.〉 성서의 가르침이요. 이번에 그를 알아보자던것이 유감스럽게도 실패하고말았소. 그에게 보고되기 전에 모든 일이 끝나고말았거든. 그에게 진정 전쟁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미국을 무서워하는가 안하는가, 만일 미국을 무서워한다면 우리의 강경고압로선은 승리하는거요. 미리 손을 들면 좋고 손을 안들어도 치면 되는거니까.···》

아전인수격의 어리석은 망발이였다.

두뇌진들이라고 하는 모의참가자들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돌의 말을 반박하거나 막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다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통령이 되려는 돌의 열망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으며 그것을 리해했다.

리해했다기보다 그에 동조했다.

왜냐하면 그들모두가 힘에 의한 강력한 미국을 건설하고싶었기때문이다.

후에 세상에 로출되여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를 격분시킨 《5027작전계획》은 그때 당시 그들에 의하여 극비밀리에 작성되고있었다.

지난 조선전쟁시기 참패당한것을 《복수》한다는 이른바 제2의 조선침략계획인 《5027작전계획》은 조선전쟁을 모두 5개의 단계로 나누어 진행할것을 예견하고있었다.

1단계는 《억제》단계로서 그 누구의 행동을 억제한다는 구실밑에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미제침략군무력을 집결시켜놓고 공화국북반부의 공중과 해상 국경을 봉쇄하는 등 본격적인 제재를 가하는 단계였다.

2단계는 《무력화타격》단계로서 방대한 야전군무력과 비행대, 순항유도무기들로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공중타격전으로 공화국북반부를 《무력화》시킬것을 노린 작전단계였다.

3단계는 《지상공격작전》단계로서 공화국북반부의 동서 량해안에 대한 대규모적인 상륙작전과 항공륙전작전, 직승기륙전작전, 특공대작전을 배합한 전면적인 지상공격작전으로 우리 혁명의 심장인 평양에 대한 작전포위를 실현하고 청천강계선까지 《점령》하는 작전단계였다.

4단계는 《전쟁성과확대》단계로서 청천강이북의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을 《점령하며》 5단계는 《종결》단계로서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실현하는것으로 되여있었다.

보브 돌과 그의 강경보수세력은 이 작전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제침략군 54만 5천명과 남조선군 63만여명, 항공모함전단 5~7개, 스텔스전투폭격기 《F-117》, 《F-111》, 핵무기를 적게 한 전략폭격기 《B-1》, 《B-2》, 《B-3》를 비롯한 현대적인 첨단장비들과 대형타격수단들을 투입하는것으로 계획하고있었다.

이 계획에는 전쟁의 불집을 일으키는 방법이 3가지로 규정되여있는바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구실로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다가 그 연장선우에서 타격을 가하는 방법, 우리의 《핵의혹시설》들에 대한 《외과수술식》타격을 가하는 방법 그리고 정세를 지속적으로 긴장시키다가 정세악화를 구실로 우리에 대한 선제타격을 단행하는 방법 등으로 전면전쟁을 유발시키게 되여있었다.

놈들은 이 작전계획을 이미 성문화하였으며 합참의장을 비롯한 펜타곤의 우두머리들과 미태평양군사령관, 륙해공군 구성군사령관들, 1, 3군단장과 미 7함대 사령관, 1, 3해병원정부대 사령관들을 비롯하여 조선전선에 투입하게 되여있는 군사령관들과 합의하고있었다.

대통령이 되려는 보브 돌의 열망은 바로 이 작전과 관련되여있었다.

강력한 미국건설의 제창자인 그에게 있어서 《5027작전계획》은 얼마나 현란한것인가.

피를 물고 싸워서라도 대통령이 되자.

그리하여 《5027작전》을 실천에 옮기자.

죠지 워싱톤이나 아브라함 링컨처럼 보브 돌의 이름은 백악관과 함께 영원히 빛날것이다.

측근들은 그의 이 결심을 지지했고 추동했으며 부추겼다.

그리하여 이날 밤 또 하나의 최후발악적인 도발계획이 작성되였다.

미군측은 희생된 경비함성원들의 시체를 무조건 돌려보낼데 대한 인민군측의 요구에 《사죄》라는 전제조건을 내걸면서 응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측 바다에서 좌초된 우리 경비함이 《불법침입선》이므로 남조선군과 미군, 국제공동체앞에 《사죄》하기 전에는 단 한구의 시체도 돌려보낼수 없다는것이였다.

전선동부에서의 대규모적인 충돌이 있기 이틀전에 조선인민군 참모부의 위임에 의하여 조선중앙통신사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두번째로 되는 통신사성명이였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조선중앙통신사는 성명을 발표하여 남조선지역바다에서 좌초되여 가까운 륙지에 올랐던 우리 군인들과 희생자들과 함정을 무조건 즉시 돌려보낼데 대한 립장을 밝힌바있다는것,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의 선의와 국제사회의 기대를 외면하고 2개월 가까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고있다는것, 남조선당국자들은 지난 50여일동안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륙해공군병력과 현대적인 군사장비를 투입하여 우리측 생존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륙작전을 벌리였는바 이것은 몇명의 우리측 인원들을 상대로 벌린 하나의 큰 전쟁과 같은것이라는것, 자신을 지킬 소총조차 휴대하지 않은 20여명의 우리측 비무장인원들을 상대로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대병력과 군사장비들을 동원하고있다는것은 남조선당국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취약한가 하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는것, 그러면서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보복을 한다면 하고 피값을 받아낸다면 받아내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기질이다, 평화적방법으로 해결되여야 할 이번 사건이 다르게 번져지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없다, 남조선당국자들과 미국은 분별있게 처신해야 하며 우리의 요구에 즉시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것 등등이였다.

이에 대하여 적들은 전선동부에서의 도발로 대답하였다.

우리의 보복의지, 우리의 사회주의에 대한 군대와 인민의 신념과 의지에 대한 시험이라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때문에 놈들에게 된타격을 안긴 최중권장령의 단호한 결심은 전적으로 정당한것이였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이 도발이 있은 후 적들이 도적이 매를 드는격으로 우리를 걸고들면서 새로운 도발을 해온것이다.

《경비함사건》에 대한 사죄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한 사죄를 하라는것이였다.

판문점접촉에 참가한 미군대표 에쥐톤 에이취 옴스미륙군대령은 인민군측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여 다음과 같이 협박하였다.

《당신측은 대한민국 지상지역을 비무장지대 남쪽 5m 가까이 침범함으로 해서 한국정전협정 제 12항, 14및 15항을 위반했습니다. 이 위반행위들이 악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 침투가 고의적이였다는 사실을 검증할수 있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측은 전 전선에서 보복함으로써 정전협정 12항의 또 다른 위반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국제련합군은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책임은 물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침략을 격퇴하는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만전을 기할것입니다.

국제련합군은 당신측의 보복을 정전협정상의 합의된 정전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련합군의 노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합니다.》

이무렵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의 공장, 기업소들과 농촌, 성진제강소를 련이어 찾아가시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의 불씨를 심어주어 사회주의건설에서도 새로운 봉화가 타오르게 하시려는것이였다.

하지만 선차적인 관심은 언제나 군사력을 강화하는데 돌리시였다.

그리하여 자강도와 함경북도의 성진제강소를 찾아 수천리를 달리신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이번엔 서해의 이름없는 섬초소를 찾아 또 시찰길에 오르시였다.

인민군대는 나라의 군사력에서 기본력량이였다.

그이께서는 인민군대를 명실공히 필승강군으로 만들려고 하시였다.

그러자면 전군에 혁명적인 령군체계와 군중을 더욱 튼튼히 세워야 하며 전군을 오늘의 《오중흡7련대》가 되도록 하여야 했다.

군부대뿐아니라 대대, 중대, 이름없는 섬초소까지 찾으시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이께서는 서해의 섬초소에서 적들과 항시적으로 대치한 조건에서 모든 군인들이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높은 혁명적경각성을 가지고 조국의 방선을 철벽으로 지키며 만일 적들이 우리 조국의 령토와 령공, 령해를 0. 001mm라도 침범한다면 추호의 용서도 없이 단호히 징벌하며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는자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이건 지구상의 그 어디에 있건 무자비한 보복타격을 안겨야 한다는 멸적의 신념을 안겨주시였다.

돌아오시는 길은 풍랑사나운 새벽이였다.

그이께서는 수행원들이 손에 땀을 쥐고있건만 갑판우에 끄떡없이 서계시였다.

그 모습은 그대로 무비의 담력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륙지에 상륙하시자 판문점으로 가자고 하시였다.

이젠 평양으로 들어가시려니만 했던 수행원들은 깜짝 놀랐다.

판문점은 가랑잎 흩날리는 소리에도 자동소총의 격발기를 풀어놓는 곳이고 적측 헌병들이 총총히 늘어서서 눈을 밝히고있는 삼엄한 곳이였다.

수행원들이 앞을 막아서서 만류했으나 그이께서는 결심은 바꾸지 않으시였다.

갑자기 후날 세상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보낸 《보호신》이라고 말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연막과도 같은 안개는 판문점회의장구역에 들어서자 더욱 짙어졌다. 모든것을 가리웠다.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통일각도, 적의 《자유의 집》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신통히도 중앙분리선을 지경으로 차일치듯 했는데 그것은 우리쪽을 바라보는 적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해버렸다.

마가을로서는 처음 보는 자연현상이였다.

아침 9시경 판문점 인민군대표부 성원들은 통일각에 김정일동지를 모시였다.

그들은 안개의 보호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으나 불안을 감추지 못한채 서둘러 판문점공동경비구역정황과 조미군부접촉정형을 보고드리면서 현재 접촉이 결렬된 상태에서 차후의 활동방향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후 통일각의 로대로 나가시였다.

안개가 꽉 껴서 거기서도 적측은 보이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로대에 설치해놓은 포대경을 만져보며 서운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란간을 두손으로 짚고 안개속을 응시하시였다.

수행원들은 안개가 낀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으나 정작 그이께서 아무것도 보실수 없게 되자 모두들 안타까와하였다.

그렇게 된바에는 그이께서 해당한 가르치심을 주고 빨리 자리를 뜨실것을 간절히 바랐다.

판문점대표부 오창식장령이 모두의 심정을 대표하여 말씀을 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 가르치심을 주시면 저희들이 다시한번 대결해보겠습니다.》

《허허··· 덤빌건 없습니다.》

그이의 판문점시찰은 길지 않았다.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돌아보신 다음 판문점대표부성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그들에게 금시계를 선물로 채워주고는 곧 떠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창식에게 《나도 동무들이 올려보낸 조미군부접촉정형을 분석해보았습니다.》라고 한마디 남기시였다.

그때로부터 사흘후.

우리 나라의 통신, 방송이 아침보도시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에 대한 시찰소식을 일제히 발표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무슨 리유로 그 보도를 사흘이나 늦추어 발표하게 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오전 10시.

판문점군사대표부 우리측 당직군관은 미군측 당직장교의 긴급전화를 받았다.

보도가 나간지 3시간뒤였다.

미군당직장교는 조미군부접촉을 속개할데 대한 자기측 통고내용을 전하였다.

뒤미처 미군측 비서장 옴스대령이 헐레벌떡 회의장에 등장하였다.

뜻밖에도 그는 싱글벙글하는 표정이였다.

《박대좌, 축하합니다!》

옴스는 우리측 비서장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저으기 흥분하여 우리측 비서장이 미처 답례할 사이도 없이 계속 떠들어댔다.

《당신네 최고사령관이 1선참호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김정일장군은 정말 배짱이 대단하십니다. 나는 처한테서 당신측 최고사령관이 판문점을 찾으셨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믿지 않았습니다. 나의 처는 한국녀자이니까 제꺽 포착하였는데 나는 아직 조선말을 잘 듣지 못하기때문에 혹시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판문점이 어디라고 여기까지 나오시겠는가, 조선인민군에 사령관이 많은데 정말 최고사령관이라고 하던가고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처가 옳게 들었소. 그건 사실입니다.》

우리측 비서장이 한마디 하였다.

그러자 옴스는 자기측 성원들이 듣지 않게 우리측 비서장의 귀에 대고 말하는것이였다.

《당신네 최고사령관이 전선부대를 시찰할 때마다 은근히 긴장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당장 발밑에 북조선의 원자탄이 떨어지는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령관(미8군사령관)이 나를 불러 당신이 그날 판문점에 나가있었는데 왜 그런 사실을 모르고있었는가고 추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안개가 꼈다고 말했더니 더 추궁하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사령관이 도술을 쓴것 같습니다.》

우리측 비서장은 미군측이 무슨 리유로 긴급접촉을 요구했는지 그것부터 알고싶었으나 싫지 않은 대화여서 좀 더 끌려고 팔소매를 걷어보였다.

《오, 금시계!》

옴스가 자기측 성원들이 듣건말건 큰소리로 웨쳤다.

그는 우리측 비서장이 팔목을 잡고 들여다보면서 자기측 성원들도 들으라는듯이 내놓고 말하였다.

《이런 금시계는 보통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백만장자들도 몇번 재보고 살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금시계를 당신들에게 주신것을 보면 당신들이 최고사령관의 안중에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나는 판문점에서 당신들과 두번째로 일하고있지만 대통령표창은커녕 사령관의 선물도 받지 못했습니다.》

옴스가 부러움을 금치 못하며 떠들어대자 그의 수원들도 우리 수원들의 손목을 잡고 저마끔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미군중령 베이커 (미군측 정책장교):

《최고사령관이 최전선에 나오신것만도 그런데 기념사진을 찍고 금시계까지 주시였으니 처음 목격하는 일입니다. 김영삼은 판문점에 나올 생각도 못하고 클린톤대통령이 1993년에 나왔지만 겁이 나서 운동샤쯔바람에 잠간 들렸다가 갔습니다.》

미군소령 흘리쯔(미군측 공동직일관):

《당신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내가 간수하게 해줄수 없습니까? 서울의 친구들과 미국방성의 동료들에게 김정일사령관의 직하부하들과 같이 일했다는것을 자랑하고싶어 그럽니다.》

프랑스군 대령 그루너:

《최고사령관이 나오신것을 보면 당신네는 전쟁준비가 완성된것같은데 여기에 있다가 돌아가지 못할가봐 겁이 납니다. 우리 련합군위원들속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고사령관이 판문점을 찾으신 덕에 당신들에게는 행운의 보검이 차례지고 나에게는 지옥의 열쇠가 쥐여진셈입니다.》

회의장은 흥성거리였다.

이 회의장이 생긴 이래, 조미군부접촉이 진행된이래 처음 있은 일이였다.

우리측 비서장이 옴스에게 물었다.

《미군측의 용건은 무엇인가요?》

《용건이 무언가구요?》

옴스는 이렇게 반문하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비로소 자기들이 회담장에 나와있으며 적군앞에 있다는것을 의식한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는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빨리 접촉을 속개하라는 지시를 받았을뿐입니다. 그는 지금 워싱톤과 련계를 취하고있는중입니다. 미안합니다.···》

사흘전부터 보브 돌은 미국회상하원 합동청문회에 불리워나와 진땀을 흘리고있었다.

청문회에서는 우리 나라 전선동부에서 있은 충돌사건과 관련한 질의가 진행되였다.

당신은 북조선군에 대해 어떠한 응징을 념두에 두고있는가? 전면전인가? 국부전인가? 그러한것이 전국선거 이전에 있게 되는가? 이후에 있게 되는가? 그것이 미국민에 어떠한 리익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충돌소식에 접한 많은 국회의원들이 벼락을 맞은것만치나 놀라서 질문소나기를 퍼부었다.

그들은 이 충돌에서 미국이 실제적인 타격을 받고 손실을 본것만큼 보브 돌에게 인정사정없이 따지고들었다.

보브 돌은 자기가 선거에서의 렬세를 만회하려는 열망에 들떠서 서뿔리 일을 저질렀다는것을 뼈저리게 뉘우쳤다.

사실 그는 현 행정부의 공식동의없이 강경보수파로서 그의 측근인 합동참모본부 부의장과 군부의 일부 호전세력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과 남조선군 장성들을 부추겨 음모적인 방법으로 이런 도발을 감행하였던것이다.

도발이라고 해야 그때로서는 군사분계선표식물 하나를 옮겨놓고 북조선군의 전쟁의지를 시험하자는것이였다.

물론 《5027작전계획》을 짜고있던 그로서는 그 연장선우에서 전쟁도 불사할 결심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있을 일이였고 당장은 북조선군이 대응하는 경우 그것을 들고 자기의 선거공약의 기초이기도 한 강경보수적주장의 명분을 세우려 했던것이다.

그런데 사태가 급전직하로 번져지고보니 쩔쩔매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최종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날이다.

청문회는 례외로 저녁 7시까지 계속되였다.

이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시찰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청문회장은 갑자기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했다.

미국회의원들은 조선이 선전포고를 해온것만치나 놀라서 소동을 일으켰다.

보브 돌, 대답하라. 당신은 북조선군과 전쟁을 할 의지가 있는가? 대답하라. 대답하라!···

고함소리, 휘파람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에 넋이 나간듯 서있던 호전광이며 반공광신자인 늙은 대통령후보는 그만 비칠하였다.

그의 뇌졸증증상을 알고 따라와있던 담당의사가 얼른 연탁으로 달려나와 그를 데리고 나갔다.

국회의원들은 긴급건의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현 대통령 클린톤에게 넘기였다.

《미합중국대통령 빌 클린톤은 미군 총사령관의 권한을 행사하여 즉시 조선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여 대통령전국선거가 있기전까지 국내국외적으로 어떠한 분쟁도 없게 할것이다.···》

그로부터 몇시간후 워싱톤과의 통신을 련결해놓고있던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은 다음과 같은 긴급전보를 받았다.

《북조선군인들의 시체를 즉시 돌려주며 북측에 휴전선충돌과 관련한 책임을 일체 묻지 말것이다. 미군 총사령관 빌 클린톤의 위임에 의하여 합동참모본부 타전. 워싱톤 1996년 11월 27일 23시 05분.》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적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판문점시찰을 《결판을 내기 위해 나온》것으로 판단하고 공포에 질려 황급히 타전한 항복문건이였다.

후에 전해진데 의하면 김정일동지께서는 경비함성원들의 시신을 찾아오지 않으면 설(1997)을 쇠지 않겠다고 하시였다고 한다.

우리 군인들의 시신은 그 설을 하루 앞둔 1996년 12월 그믐날에 판문점을 통하여 우리측에 인도되였다.

총검을 들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나갔던 준엄한 력사의 리면에는 수많은 사랑의 일화도 있었으니 이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때의 판문점시찰은 단순한 사랑의 일화로만 볼수는 없었다.

그것은 적들의 태도여하에 따라 그들을 단호히 징벌하며 조선인민이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쟁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진행한 시찰이였기때문이였다.

적들에게 과연 전쟁의지가 있는가.

현재로서는 없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판단하시였다.

적들도 바보는 아닌 이상 조선전쟁이 스스로 자멸을 청하는 길임을 알것이다.

그이께서는 이 판단을 적의 시점에서, 다시말하여 미국방성과 합동참모본부가 종합하고있는 객관적자료들을 분석한데 기초하여 내리시였다.

그에 의하여 첫째로, 미원정군이 조선에서 살아서는 돌아 못간다는것이다.

둘째로, 제국주의의 생존의 기초인 경제가 파탄되므로 미국은 운명적인 치명상을 입을것이라는것이다.

셋째로, 미국의 심장부에 불벼락이 떨어지게 될것이라는것이다.

만일 미국의 호전분자들이 이것도 불사하고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결사의 각오로 맞받아나가 침략자들을 끝까지 소멸할것이다.

이날 적의 코앞인 판문점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께서 내리신 최종결심은 이러하였다.

이것은 혁명의 기둥인 인민군대의 무한한 정신력, 정예의 무장장비와 빈틈없는 싸움준비, 한마디로 그이자신이 《고난의 행군》기간 매일과 같이 전선길을 걸으시면서 마련하신 불패의 군력에 의거하여 내리신 결심이시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보브 돌은 주저앉았다.

그는 얼마후에 진행된 미국대통령선거에서 락선되고말았다.

이로써 조선의 《종말》을 운운하던 미국의 강경보수세력은 좌절을 당하였다.

《고난의 행군》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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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드디여 우리 인민이 그처럼 기다리던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진행되고 제10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가 열리였다.

이 력사적인 회의에서 새롭게 수정보충한 헌법이 전체 대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찬동속에 채택되였다.

새로운 헌법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리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고 국가기구에서 국방위원회의 권능과 역할이 훨씬 높아지게 되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국방위원회 수위에 다시 추대하였다.

이것은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온 세상에 선포한것으로 되였다.

몇해후에 발표된 로작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위력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다》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쓰시였다.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되고있는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이라고 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였습니다. 전당과 온 사회에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기풍이 높이 발양되고 인민군대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을 때 우리의 령도는 선군령도이고 우리의 정치는 선군정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그 어떤 엄혹한 정세와 시련속에서도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이룩해나갈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였다.

이것은 사회주의정치, 군사가로서의 그이의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령도적수완이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