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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철이네를 묻어버렸던 붕락은 그들이 짐작했던대로 경사갱의 200m구간을 완전히 메꾸어버렸다.

처음에 전호진장령은 붕락이 일어나는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이 전에없이 큰 붕락이라는것을 느끼였으나 얼마간은 안심이 되였다.

갱내 전등이 꺼지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이것은 외부와의 련계가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했다.

전기선과 전화선, 압축공기관이 막장에서 외부로 뻗어있었다. 전기선이 살아있다는것은 전화선이나 압축공기관도 살아있을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아 허물어졌다. 전호진이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귀에 대보았으나 전혀 감도가 없었다. 다음은 압축공기의 투입이 중지됐다는것이 일제히 멎은 착암기소리에 의하여 명백해졌다. 제일 무서운것은 바로 그것이였다. 이것은 군인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을 조성했다. 갱내에서는 압축공기에 의하여 산소를 공급받고있었던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념두에 두면서 전호진은 인원점검을 해보았다. 그 결과 50여명의 인원이 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 인원들은 붕락에 묻혔을수 있는 인원이였다. 물론 붕락구간밖에 말하자면 붕락시에 경사갱의 다른 장소에 있던 군인들도 있을수 있었다. 그들은 외부로 빠져나가 구원되였을것이였다.

전호진은 붕락퇴치에 경험이 있는 군인들로 돌격대를 무어 구조전투에 진입시켰다. 돌격대원들은 맞교대로 붕락된 구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전호진은 구조대가 일에 달라붙자 비상지휘관회의를 소집했다.

전등이 꺼지지 않았다는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전호진은 전등앞에 둘러앉은 지휘관들을 바라보면서 한순간 큰 붕락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알고보니 관리국의 주요지휘력량이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고있는 이 막장에 다 들어와있었다. 후방물자구입을 위해 노상 대외기관에 나가 살고있던 후방부국장조차 흰 취사복을 입은채 회의에 참가했는데 붕락시에 그자신이 더운국을 떠서 군인들에게 공급해주고있던 모양이였다.

전호진은 지휘관들을 바라보면서 붕락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을 잊고있었다. 더우기 옆에 정치위원 리완수가 앉아있다는것이 큰힘을 주었다.

리완수는 전호진이 비상지휘관회의를 소집한데 대해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가 비상정황에서 지휘관의 단독결심을 존중하고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전호진자신은 비상지휘관회의소집을 명령하던 순간은 물론 지휘관들이 다 모여앉은 지금에 와서도 이 회의에서 무슨 문제를 토의할것인가에 대한 결심이 서있지 않았다.

항용 이러한 경우 지휘관들앞에는 붕락퇴치와 관련한 대책적인 문제가 제기되였다. 그러나 그 대책은 이미 취해졌다. 지금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고있는 지휘관들을 바라보는 전호진의 뇌리에는 뜻밖에도 붕락과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갱내에 떠도는 이상한 가스와 관련된 생각이였다.

작업은 지금 지질조사결과에 이상한 가스가 발견된 지점에서 진행되고있었다. 무색무취의 가스를 다른 사람들은 느낄수 없었다.

그러나 지휘관인 전호진은 그 가스가 인체에 미치는 후과에 대하여 외면할수 없었는데 그는 붕락이 있기 바로전에도 린접부대의 화학병들을 불러다가 검측해볼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붕락을 당한 비상정황에서 그 문제를 상정시킨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우스운 일로 될수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붕락과 관련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것인가 하는것이 급선무이다. 붕락의 결과 압축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조건에서 착암기를 동작시킬수 없는것은 물론이거니와 곧 질식이 시작될것이였다. 그러니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이 순간 전호진에게로 시선을 보내고있는 지휘관들은 그가 작업이 중단되게 된 사태와 관련한 말을 꺼내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들은 안변은 물론 고산과 회양, 창도와 김화땅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의 물줄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 동해로 떨구는 연연지하물길굴을 뚫는 최후의 돌격전투를 진행하고있었다.

우리 인민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금강산발전소 건설의 첫삽을 박던 그날 서방의 통신방송들과 그 나라의 《각료》, 형형색색의 《정계인사》들과 《과학계의 선각자》들은 입을 모아 웨쳐댔다. 조선이 혼자힘으로 해낼수 있겠는가? 거액의 발전소건설자금, 자재, 설비지출은 불가능하며 그들은 기술적관례를 무시한 후과를 초래할것이다. 그 건설은 21세기를 가까이한 현대건설력사의 첫 모험으로 될것이다. 남조선괴뢰들은 이러한 훼방군들과 맞장구를 치며 《종이장우의 발전소》라는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입방아까지 찧었다.

바로 이런 공사가 마지막관통을 앞두고 중단되게 되였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그들의 뒤에는 지난 10년간 피와 땀으로 열어놓은 물길굴이 있었으며 앞에는 얼마되지 않는 구간이 남아있었다. 이제 와서 주춤거린다는것은 오늘을 위하여 청춘과 생명을 다 바친 전우들에 대한 배신인것이였다.

전호진은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문제를 회의에서 론의하려고 결심하였으나 곧 자기의 그 결심이 무의미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때 막장으로부터 병사들이 부르는 《막장주제가》가 들려왔다. 지난 10년간 병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애로와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적기가》를 부르며 그 엄혹한 시련을 맞받아나아갔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일로 전우들이 희생되였을 때에도 전우의 령전에 붉은기를 세우고 《적기가》를 부르며 새로운 결의와 투지를 가다듬군 했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피를 끓게 하는 이 《적기가》는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안고 공사를 다그치던 굴진막장안의 전투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심장의 맹세를 다지며 부르던 유일한 《주제가》였다. 그리하여 《적기가》를 일명 《막장주제가》라고 불렀다.

그 《막장주제가》는 전호진으로 하여금 작업을 계속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한다는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병사들은 자기가 결심한 문제를 이미 실천에 옮길 의지를 피력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지휘관동무들!》하고 전호진은 자기의 결심을 돌리며 말하였다.

《지금 작업은 지하가스가 배출되는 지점에서 진행되고있습니다. 이 문제를 토의합시다.》

전호진의 그 말은 지휘관들로 하여금 굴진막장에 아무러한 정황도 생기지 않은듯 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상시와도 같은 활기띤 분위기속에서 전호진이 제기한 문제를 토의하였으며 갱내에서 나오는 이상한 가스가 유독성으로 검측되는 경우에 취할 대책을 강구하였다. 다음은 마치 부차적인 문제처럼 작업을 계속하는데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토의했다.

그 일련의 문제란 착암기도 쓸수 없고 폭파도 할수 없는 조건에서 매 병사들이 정대로 다문 한치라도 굴을 뚫고나가야 한다는것, 밀페된 갱내에서 사활적인 문제로 제기되는 산소의 부족은 용접용산소병을 터뜨려 보충한다는것, 식사공급이 두절된 문제는 허리띠를 조이는것으로 해결한다는것 등이였다.

회의는 이러한 방법으로 적어도 사흘간은 작업을 계속할수 있을것이며 그 사흘어간에 붕락구간이 열리리라는것을 예견하였다.

회의가 끝나자 지휘관들은 병사들이 있는 막장을 향해 밀려나갔다.

리완수는 전호진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것을 발견하고 되돌아섰다.

《어디 불편합니까?》

리완수는 전호진의 이그러진 얼굴을 보며 놀라와하였다.

《손칼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리완수는 호주머니에서 손칼을 꺼내주며 그의 시선이 가고있는 장화를 신은 두다리를 바라보았다.

《물독이 오른게로군요!》

《예, 좀 앉아있었더니 피가 몰렸는지 장화가 조여서 일어설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장화를 째야 벗어던질수 있을것 같습니다.》

《칼을 인주십시오.》

하고 리완수는 그에게 주었던 칼을 도로 달래가지고 쭈그리고 앉아서 장화목에 칼을 박고 쭉 내리째기 시작했다.

장화에서 벗어져나온 전호진의 발은 어떻게 그안에 들어가있었던가싶게 놀라울 정도로 퉁퉁 부어있었다.

리완수는 혀를 찼다.

《쩌쩌! 며칠째 물속에 있었으니···》

《어! 이제야 살것 같군!》

전호진은 오히려 환성을 올리며 일어섰다.

《맨발로 걷겠습니까?》

《뭐랍니까? 편안하니 좋습니다!》

《좀 앉으십시오.》

리완수가 그의 팔을 잡아 앉히고 자신도 그와 나란히 앉았다.

《한대 태우십시오.》

리완수가 《백승》갑에서 담배를 한대 꺼내 권하였다.

《아니 산소를 아껴야지요.》

전호진이 웃으며 거절했다.

《정말 그렇군요.》

두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정치위원동무.》

이윽고 전호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만이 앉아있기도 힘든 밀페상태에서 병사들에게 일을 시킨다는것이 지나친 모험이 아닐가요?》

《우리가 시킨것이 아니라 그들스스로가 일을 하고있지 않습니까.》

리완수가 대답했다.

《그들을 제지시키는것이 지휘관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하는겁니다!》

전호진이 화를 내듯 어성을 높였다.

《저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저 노래를 멈출 힘은 없습니다. 그 어떠한 명령으로도!》

리완수도 《적기가》가 울려나오는 막장쪽을 가리키며 흥분이 깔린 어조로 대답했다.

두사람은 다시 말이 없었다.

잠시후에 전호진이 또 먼저 입을 열었다.

《정치위원동무, 이 붕락에 대해서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알고계실가요?》

《밖에 심철범중장이 있으니 보고드렸을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실가요?》

《작업을 계속하기로 한 문제말입니까?》

리완수는 반문하고나서 참모장이 말이 없는것을 보자 말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선시찰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되지 않을가요?》

리완수는 자기 말이 지나치게 비약된듯 한감을 느끼며 그 말에 주를 달았다.

《그 전선시찰은 낮에 밤을 이어 계속되고있습니다. 그게 어디 간단한 일입니까?

그이께서는 차안에서 쪽잠에 드시고 길가에서 줴기밥으로 때식을 굼때시면서 몸소 조향륜을 잡으십니다. 적들과의 의지의 대결인 오늘의 〈고난의 행군〉에서 그이께서야말로 최대의 의지력을 발휘하고계십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이의 의지가 우리의 의지로 되자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을 하다가 뜻밖의 희생을 낼수 있지요. 그러나 그게 두려운것이 아니라 그이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는것이 두려운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모장동무!》

《정치위원동무, 고맙습니다! 저의 결심을 지지해주어서. 그럼 일어서볼가요?》

전호진이 먼저 일어섰다. 그는 맨발로 뾰족한 바위부스레기우를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걸어갔다.

리완수가 그 모양을 선자리에서 한참 바라보다가 다급히 달려가서 그의 팔을 끼였다.

정치위원과 참모장은 서로 어깨를 겯고 《적기가》를 부르며 병사들속에 합류하였다.

그들을 보자 병사들은 더 한층 기세를 돋구었다. 병사들은 두 지휘관처럼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비장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

 

《동무들, 난관앞에 주춤거린다면 그게 무슨 병사이겠습니까? 최후의 관통전투에서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합시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를 지켜보고계십니다. 날 따라 앞으로!》

전호진의 이 불같은 웨침소리에 누군가가 구호를 웨쳤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한목숨 바쳐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

《결사옹위! 결사옹위!》

군인들은 착암기의 정대를 뽑아 손에 들고 두명씩 한개조를 무어 굴진단면에 달라붙어 함마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그러한 수굴조는 무려 50개를 헤아렸다. 굴진조들은 거의 90도에 가까운 아찔한 단면에 달라붙어 교예사와도 같이 날파람있게 함마를 휘둘러댔다.

힘있는 노래선률과 박자에 맞추어 일제히 정머리를 내리치는 50여명의 함마질소리가 금시 천길지하막장을 들부셔놓을듯 찌렁찌렁 울렸다.

박력있는 음악선률의 강약박자에 따라 막장안을 뒤흔들며 메아리치는 그 굉음소리는 마치 무적의 슬기와 용맹이 약동하는 그 어떤 여러개의 악곡들이 하나의 통일된 주체사상으로 묶어져 울리는 큰 규모의 관현악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은 공사속도를 두배, 세배로 높이도록 병사들을 고무해주는 하나의 《함마교향곡》이였다.

그들이 뜯어낸 버럭을 《정치일군돌격대》와 《가족지원대》가 조구통이 있는데까지 날라갔다.

《가족지원대》속에는 희생된 김철종의 안해 복순이도 있었다. 그가 머리에 큰 바위를 이고 작은 버럭을 치마폭에 싸안고 허리치는 석수를 헤치며 달려가는것을 본 전호진이 한마디 인사를 건네였다.

《아주머니, 주의하십시오.》

《일없습니다. 이젠 습관돼서···》

《참모장동지, 우리 아주머니들이 〈남강의 녀성들〉같지 않습니까?》하고 한 병사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렇게는 못돼두 금강의 녀성들은 돼요!》하고 복순이가 대답했다.

금강산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은 지금까지 석수가 허리치는 굴진막장속에서 두팔, 두다리가 잘리우고도 피를 뿌리며 버럭을 담고 광차를 밀었으며 동지를 위해 무너지는 암반밑에 자기 한몸을 그대로 《동발목》으로 세워놓군 했다.

제0026호명령을 기어이 관철할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던 그들은 필요하다면 한몸그대로 《뢰관》이 되고 《폭약》이 되여 영웅적으로 최후를 마치군 했다.

사람들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전투장의 이 불사신같은 병사들, 그 모든 자랑스럽고 용맹스러운 군인들의 자기 희생성, 높은 정치사상적풍모를 함축하여 《금강사자》라고 불렀다.

복순이가 자기를 《금강사자》에 대비하여 《금강녀성》이라고 말한것은 그가 희생된 남편의 뒤를 이어 군인들과 한막장에서 일하고있는데 대한 긍지를 표현한것이였다.

전호진은 가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따뜻이 한마디 더하였다.

《애는 잘 자랍니까? 영남이말입니다.》

《네, 잘 자라요.》

대답하는 복순이의 말이였다.

《애가 밖에서 기다리겠는데요?》

《기다리겠지요. 그러나 걱정할건 없어요. 중대병실에 가서 아저씨들과 같이 잘테니까요.》

《하하하!》

전호진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뒤끝에 가슴이 답답해옴을 금할수 없었다. 만일 막힌 굴이 제때에 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이렇게 3주야가 흘러갔다.···

막장안에는 전투원들의 생명선으로 되고있던 산소통이 다 떨어졌고 그보다 앞서 식량(간식으로 보관하고있던 얼마간의 사탕과 과자)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전투장에는 기아와 질식이 현실적위험으로 닥쳐왔다.

하나 둘 들리워나가는 군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을 들어 낸들 어데로 가져간단 말인가? 전쟁판이라면 은페호도 있고 처치장도 있고 야전병원도 있지만 여기에는 그런것이 없었다. 그 어디에도 산소와 밥이 있는 곳이 없었다. 쓰러진 그들에게 차례진것은 마지막산소병이였다. 군의는 현장에서 들려나온 그들을 휴계실에 주런이 눕혀놓고 방수포와 세멘트포대로 입구를 밀페한 다음 산소병을 열어 산소를 공급해주고있었다.

전호진은 전투장에 휴식을 선포하고나서 접전뒤끝의 전장과도 같은 작업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후방부국장이 허리를 구부리고 내려다보고있는 한 병사앞으로 다가갔다.

그 병사는 휴식이 선포되였는데도 함마를 놓지 않고있었다. 후방부국장이 소나무동발목에서 벗겨낸 송피를 짓찧은 비상식량을 쥐여주려고 하자 함마자루에서 그 병사의 손 떨어지는 소리가 《쩍!ㅡ》하고 들렸다. 손을 떼고도 그는 손가락을 펴지 못해 주먹우에다 송피를 받았다.

하지만 팔굽이 굽혀지지 않아 그것을 끝내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후방부국장이 송피를 뭉그려 입에 넣어주자 그는 몇번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키고는 히죽이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 광경을 보고있던 전호진이 근육의 초긴장으로 굳어졌던 병사의 손을 가까스로 펴보니 손가락은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아프지?》

전호진이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장령동지, 아픔중의 진짜 아픔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 못하게 될 때의 아픔일것입니다.》

병사는 또 한번 히죽이 웃었다.

전호진은 그의 손을 꽉 쥐여주고나서 아찔한 굴진단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함마를 든 병사가 선자리에서 잠을 자고있는것이 보였다. 3주야동안 작업장을 떠나본적이 없는 병사들은 휴식이 선포되면 그러한 말뚝잠을 자는것이였다.

전호진은 못볼것을 본것처럼 얼른 시선을 떼고 《가족지원대》가 휴식하고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연약한 녀성들이 군인들과 꼭같이 일을 하다나니 지칠대로 지쳐서 그가 다가갔는데도 일어나 앉지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된데는 자기 몫으로 차례진 과자와 사탕을 군인들에게 먹이고 자신들은 입에 넣어보지 못한 사정과도 관련되여있었다.

복순이가 일어나 앉으며 전호진을 반기였다.

《참모장동지도 좀 쉬세요.》

《고맙소.》

전호진이 선채로 대답했다.

《참모장동지의 발이 말이 아니군요!》

복순은 짓찢겨진 피부가 물에 떠서 걸레쪼각처럼 너풀거리는 그의 발을 보고 혀를 찼다.

《아주머니도 매한가지입니다.》

참모장은 꿰진 작업신발사이로 삐죽이 나온 피터진 복순의 발가락을 바라보며 측은히 응답했다.

《그래도 우린 녀자가 아니나요.》

《녀자라구요?》

전호진은 눈물겹게 반문하고나서 되뇌이였다.

《녀자라, 녀자란 말이지요?》

《그래요, 참모장동지.》

복순은 일어서서 참모장의 팔을 잡아끌고 우측으로 가더니 귀속말을 하듯 말했다.

《우리들가운데는 애기엄마들이 있어요. 애기를 떼두고 온 그들의 젖이 불었답니다. 쓰러진 아저씨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가요?》

《뭐라구요?!》

전호진은 놀란 소리를 냈다.

《좀 조용하세요.》

복순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고나서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요. 젖말입니다. 애기엄마들은 부끄러워 말을 못하고있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거예요.》

《···》

전호진은 온몸에 짜릿한 아픔을 느끼며 아무 말도 못하고 못 박힌듯이 서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언젠가 굴진막장에 찾아왔던 이전 쏘련원수 야조브는 《조선에 리인모가 하나인줄 알았더니 여기에 와보니 숱한 리인모로구나!》하고 감탄하였다.

이것이야말로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대와 인민이 혼연일체가 되여 자기 운명의 《신》이신 최고사령관동지를 떠받들고있는 참모습이 아닌가.···

 

격동된 전호진은 복순의 앞을 떠나 비칠거리듯 걸어갔다. 어데선가 나팔소리가 《붕붕ㅡ》하고 들려왔다.

쓰러지지 않은 예술선전대원 하나가 혼자서 주저앉은 전투장을 들어일으키려고 애쓰듯 석수에 허리를 잠그고 서서 나팔을 불고서있었는데 나팔의 본체는 물에 잠기고 주둥이만이 나팔꽃모양으로 물우에 떠있었다. 전호진은 그리로 다가가서 선전대원의 손에서 나팔을 나꿔채가지고 입에 대였다.

그리고 배에 힘을 주고나서 힘껏 불었다.

《삐익ㅡ》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였다.

이때 그의 등뒤에서 웅성웅성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전호진은 그 소리를 기다리고있던 사람처럼 온 정신을 도사려 듣고있다가 홱 몸을 돌려 소리가 난쪽을 바라보았다.

리완수를 선두로 몇명의 구조대원들이 세명의 군인을 등에 업고 사갱쪽에서 다가오고있었다.

그것을 보자 전호진은 나팔을 선전대원에게 돌려주고 석수에 첨벙거리며 마주 달려갔다.

그는 리완수가 업고 온 군인을 후방부국장에게 넘겨주자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세명의 군인중 한명만이···》

리완수가 숨을 돌려쉬고나서 말했다.

《살아남은 군인은 김남철입니다. 소대장과 분대장은 이미··· 붕락구간을 50m쯤 파들어가다가 광차밑에 몸을 피한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전호진은 그 말을 다 듣지 않고 몇걸음 걸어가서 평평한 돌무지우에 나란히 눕혀놓은 희생된 두 군인을 내려다보았다.

김남철은 누군가가 현장《입원실》로 날라갔다. 희생자들의 얼굴은 상한데가 없었다. 으깨여진 손과 발이 피범벅이였다.

전호진의 등뒤에서 리완수가 말했다.

《우리가 이들을 발견했을 때 셋은 서로 손을 맞잡고있었습니다. 그 손을 겨우 펼수 있었지요.》 전호진이 고개를 돌려 묻는듯 한 시선으로 리완수를 바라보았다.

리완수가 그를 마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이들은 현장에 그대로 둡시다. 밖으로 내갈수도 없습니다. 이들의 넋은 죽어서도 최후의 돌격전이 벌어지고있는 전투장을 뜨고싶지 않아 할것입니다. 이들은 두사람 다 이 공사를 시작하던 1986년도 입대생들이였지요. 10년간 손톱끝 하나 다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리완수는 말끝을 흐리였다.

그러자 일시에 흐느낌소리가 터졌다.

그의 등뒤에 담벽처럼 둘러서있던 군인들이 작업모를 벗어들고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쓰러져있던 예술선전대의 나팔수들이 《적기가》를 울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동발목으로 빽빽이 붙여놓아 단을 만들고 그우에 방수포를 깐 광차를 밀고왔다.

《정치일군돌격대》가운데서 상좌의 령장을 단 군관 몇명이 리광호분대장과 김학철소대장의 시신을 쳐들어 광차의 단우에 나란히 눕히였다.

누군가가 작업장에 휘날리던 붉은기를 가져다가 그들의 시신우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광차를 밀고 천천히 막장가까이로 다가갔다. 예술선전대원들이 붉은 수기를 들고 취주악에 맞추어 《적기가》를 부르며 광차를 뒤따랐다.

그러자 갑자기 막장안은 붉은 조명등이 켜진것 같았다. 시신을 덮은 두폭의 붉은기와 수십개의 붉은 수기가 눈부시게 빛났다. 붉은 반사광이 막장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고있었다.

그 붉은 색갈속에서 지쳐 쓰러졌던 전투원들은 다시 일어섰다. 그들은 속으로 《적기가》를 부르고있었다. 작업장은 마치 피흐르는 혈전장을 방불케 했다.

이때 갑자기 조명등이 꺼졌다. 하지만 어둠속에서도 전투원들의 함마질소리, 질통을 지고 달리는 어기영소리, 취주악과 노래소리는 멎지 않았다.

전호진은 작업장이 어둠에 잠기자 무슨 구령인가를 내려야 한다는것을 느끼고 《작업중지!》하고 소리치려고 하였다. 그때 뜻밖에도 전등이 켜졌다. 그가 전등이 다시 켜진 기회에 본능적으로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알아두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전등이 또 꺼졌다. 그리고는 몇번 연거퍼 껌벅껌벅 하였다.

처음에 전호진은 전기사고이거니 하고 마음을 조이며 전등알을 쳐다보고있다가 길게 짧게, 짧고 길게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껌벅거림을 보고는 그것이 밖에서 보내는 그 어떤 신호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전투시의 각종 정황판단에 정통하고있던 전호진은 얼마후 《모르스기호》로 보내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해득할수 있었다.

《전기선에 전화기를 련결할것! 심철범.》

 

지상에서.

19갱에서 전대미문의 붕락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물길공사에 참가하고있는 수만명의 인민군장병들속에서는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다.

그들은 19갱의 관통여하에 따라 전반적인 공사의 완공이 결정된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이미 할당된 구간을 완공하고 19갱만을 바라보고있던 동원부대인 각 군종, 병종군부대 지휘관들은 물론 가까운 작업장들에서 일하고있던 병사들이 19갱입구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지금 3주야동안 외부와 완전히 련계가 두절되였던 막장과 통화를 할수 있게 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야전전화기앞에 서있는 심철범을 둘러싸고있었다.

심철범중장은 붕락이 있은 직후 순간적인 정황판단으로 붕락이 사갱의 근 200m구간을 막아버렸으며 그것을 밖과 안에서 동시에 파헤친다고 해도 4~5주야는 걸릴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러니)

그는 잔등이 서늘해지는것을 느끼며 생각하였다.

(밀페된 갱안에 기아와 질식이 닥쳐올수 있다. 적어도 3주야전에 공기와 음식을 공급해주지 않는다면 수백명의 장병들이 생명을 잃을수 있다.)

심철범은 어지간히 당황하였다.

그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직접 전화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즘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던 관례를 깨뜨리고 최고사령부의 통신결속소를 찾아서 최고사령관동지와 련결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최고사령부와의 전화는 그가 밖으로부터 붕락을 파헤치기 위한 돌격전투를 조직하고 붕락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을 판단한 다음에 련결되였다.

심철범은 19갱에서 큰 붕락이 있은데 대해서와 첫순간에 판단한 정황을 보고드린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문제는 우리가 기대를 걸었던 압축공기관이 막히고 통신선이 절단된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가급적으로 필요한 공기를 공급해줄수 없으며 밀페된 갱안과 련계를 취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의 보고를 받으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무엇보다 통신을 빨리 회복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신 다음 평양에 올라가서 다시 련계를 가지자고 하시였다.

심철범은 그이께서 어느 전선지역에서 자기의 전화를 받고계시는지는 알수 없어도 평양으로 올라가시겠다는것으로 봐서 19갱의 붕락에 대하여 몹시 심려하신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얼마후 그이와의 두번째 전화가 련결되였다.

평양으로 올라가신 그이께서 먼저 전화를 걸어오신것이였다.

그때까지 갱안과 통신을 회복하지 못하고있던 심철범은 깊은 죄책감속에 그이의 전화를 받았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그동안의 형편을 문의하신 다음 구조전투진행정형에 대하여 시간별로 보고하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전화기앞에서 지키고 있겠다고 하시였다.

붕락이 있은 때로부터 3주야가 되던 날 깊은 밤중에 또 먼저 전화를 걸어오시였다.

구조전투현장에 있던 심철범은 거기까지 걸어놓은 통신선끝에 련결된 그이와의 직통전화를 받았다.

복잡한 작업소음가운데서도 그이의 목소리는 매우 똑똑하게 들리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하고 심철범은 죄책감속에 침울하게 말씀올렸다.

《저희들때문에 장군님께서···》

《나는 일 없습니다.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전화를 합니다. 갱안으로 통한 전기선은 살아있지 않습니까?》

《전기선말입니까?》하고 반문하고나서 심철범은 힘있는 어조로 대답을 올렸다.

《전기선은 살아있습니다, 장군님.》

《거기에 전화를 련결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

심철범이 미처 생각할 사이가 없이 수화기에서는 그이의 확신성있는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될수 있을것입니다. 그렇게 해보시오!》

···

드디여 밀페된 갱과의 통신이 회복되였다.

심철범은 첫 통화에서 전호진에게 최고사령관동지의 은정을 전달한 다음 힘을 잃지 말고 대기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목숨만은 부지하라고 지시하였다.

몇시간후 밖으로부터 붕락을 헤쳐 들어가던 돌격대원들이 쇠돌같은 바위에 짓눌려 납작해진 압축공기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원상대로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질식상태에 처한 갱의 숨통을 열어놓을수 있게 하였다.

붕락이 있은 첫 순간부터 낮에 밤을 이어 갱입구를 떠나지 않던 군인들은 송풍기가 퉁퉁거리며 압축공기를 갱안에 쏘아넣는것을 보고 금시 거기에 갇힌 전우들이 살아나오기라도 하듯 서로 얼싸안고 돌아갔다.

이때 누군가가 한가지 기발한 생각을 하였다.

경사지에 놓여있는 압축공기관으로 갱안에 주먹밥을 굴려넣을수 있으리라는것이였다.

이때 또다시 김정일동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심철범은 압축공기관이 열렸다는 보고를 올렸다.

수화기에서 김정일동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 공기관이라는게 직경이 얼마입니까?》

《15cm입니다.》

《그것이 설치된 경사각은 몇도입니까?》

《30도이상 경사로 놓여있습니다.》

《음···》

잠시 그이의 목소리가 끊기였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렇다면 철범동무, 그 관으로 밥을 들여보낼수 있지 않소? 주먹밥을 말이요!》

심철범은 인차 응답하지 못했다. 그이께서 이곳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환히 꿰뚫고계시며 더우기 이곳 전사들과 꼭같은 생각을 하신다는 사실에 놀라 잠시 굳어졌다.

최고사령관과 전사들사이의 혼연일체를 새삼스레 느끼며 심철범은 한없이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여기 병사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좋소!》

갱안으로 주먹밥이 굴러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올리였다.

그러나 심철범과 총참모부, 총정치국대표 등 책임적인 장령들의 불안은 가시여지지 않았다.

압축공기관을 통해 들여보내는 주먹밥을 가지고는 갱안에 갇힌 수백명 군인들의 기아를 극복할수 없을뿐아니라 그들앞에는 아직도 붕락으로 막힌 100m구간이 남아있었던것이다.

그것을 돌파하자면 앞으로도 3주야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 기간에 갱에 묻힌 군인들이 질식은 면할수 있다 해도 기아를 면할수는 없는것이였다. 거기에다가 갱에 갇힌 군인들은 심리적압박감을 받고있었다. 그것은 기아에 못지 않게 그들을 쓰러뜨릴것이다.

전호진은 이미 전화로 일부 군인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여 주먹밥도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또한 갱안에 있는 부상자들도 문제였다.

이때 심철범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였다.

그것은 전호진이 밥대신 압축공기를 들여보내달라고 제기해온 사실이였다.

전호진의 전화는 심철범이 총참모부와 총정치국대표들과 19갱밖의 야전용지휘탁에 둘러서서 붕락된 나머지 100메터구간을 최대한으로 빠른 시간안에 돌파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있을 때 걸려왔다.

《뭐라구?!》

잠을 못자서 두눈에 피발이 선 심철범은 전화에 대고 대바람에 어성을 높였다.

《그렇습니다.》하는 전호진의 침착한 목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을 울렸다.

《압축공기관으로 주먹밥을 넣는 시간이면 압축공기를 더 보내달라는겁니다.》

《그것이 무엇에 필요한가 말이요?》

심철범은 여전히 성난듯 어성을 높였다.

《착암기를 돌리자는겁니다. 우린 벌써 3주야째 전진을 멈추었단말입니다!》

《됐소!》

심철범은 송수화기를 전화통이 아니라 야전용지휘탁우에 내던지듯 탕 놓았다.

탁자우의 송수화기에서는 한동안 무어라는지 알아들을수 없는 전호진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오다가 멎었다. 그러자 총정치국대표 차인중이 송수화기를 들어 전화통의 제자리에 놓았다.

그 순간 전화종이 다시 울렸다.

전화종소리는 몇번 다급하게 반복하여 울리였는데 아마도 상대방이 흥분하여 신호기를 마구 눌러대는것 같았다.

《내버려두시오!》

심철범은 펴놓은 사갱도면을 들여다보면서 자르듯 말했다. 총정치국대표가 송수화기를 들고 귀에 가져다대고 잠자코 있다가 그것을 심철범앞으로 말없이 내밀었다.

심철범은 할수없이 도면을 보느라고 탁자우에 구부렸던 긴 허리를 펴고 송수화기를 받아 귀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총정치국대표가 그랬던것처럼 한동안 잠자코 듣고있었다.

처음에 심철범은 필사적으로 진행하던 굴진이 정지된데로부터 안달아난 전호진이 그저 해보는 소리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호진은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말하고있었다.

전화에서는 그의 마디마디 피가 떨어지는듯 한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저는 이 결심을 정치위원동무와 토의했습니다. 우리 두사람은 지금 그렇게밖에는 달리 결심할수 없습니다. 중장동지, 잠간 들어보십시오.···》

심철범은 전호진의 목소리가 멎은 수화구에서 노래소리, 함마소리, 고동구호소리 등이 한데 합쳐진 지진때의 땅울림과도 같은 신비로운 메아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윽고 전호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지금 여기서는 희생된 두 군인의 시신우에 덮은 붉은기가 홰불처럼 타오르고있습니다.

희생된 전우의 혈조는 병사들의 심장속에서 활화산으로 타번지고있단 말입니다.

〈하루계획을 수행하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지난 10여년 끊임없이 들어온 그 구호가 지금처럼 저의 가슴을 칠 때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중장동지, 현재 우리는 여기 인원에 해당하는 365개의 주먹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시간전에 받은 생명수와도 같은 그 밥이 아직 165개나 그냥 남아있습니다.

그 수량은 정대를 놓지 않고있는 군인들의 몫입니다. 그들은 밥이 아니라 압축공기를 요구하고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들에게 작업중지명령을 내릴수 있단 말입니까?》

심철범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혈전이 벌어지고있는 막장을 눈앞에 그려볼수 있었다.

피와 땀과 함성을···

《됐소.···》

심철범은 풀죽은 어조로 말하고나서 송수화기를 든 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였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 자기가 무엇을 됐다고 했는지 알지 못하였다.

잠시 고막이 잉ㅡ 울리고 온몸이 거세찬 선풍에 휩싸인듯 한 상태에 있던 심철범은 송수화기를 들고 단호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렇게 하시오! 이건 명령이요. 명령이란 말입니다! 이건···》

그는 마치 전호진에게 하는 말이 아닌듯이 말을 하는것이였다.

갑자르던 심철범은 동정하는 어조로 물었다.

《알겠소? 전호진동무, 우리야 수백명의 생명을 가지고 모험할수는 없지 않소?》

할 말을 다 했으나 그는 상대방에서 전화를 끊지 않은듯 하여 송수화기를 그대로 들고있었다. 이윽고 수화기에서는 전호진의 목소리가 아닌 젊고 챙챙한 귀익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장동지!》

《동문 누구요?》

심철범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리고 전사 김남철이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동무에 대한 보고를 들었소. 그래 살아났다지? 장하오! 그런데 무슨 일이요? 전사동무.》

이렇게 물으면서도 심철범은 자기가 부질없는 질문을 한다는것을 느꼈다.

지금 전호진의 곁에는 숱한 병사들이 둘러서있을것이며 김남철이도 그들중의 한사람일것이였다.

그는 지휘관이 말문이 막히자 자기가 나섰을것이였다.

《용서하십시오! 중장동지.》

흥분했으나 례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시오. 전사동무, 말하라니까···》

심철범은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아픔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픔은 다만 거기에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바로 몇시간전 그는 최고사령부작전직일관으로부터 《경비함사건》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

통보는 경비함선원들에 대해서도 밝히였는데 그는 김남철의 아버지 김동환대좌가 그 함을 지휘하고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지금 심철범은 남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하에 갇힌 아들과 적구에서 피를 흘리고있을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로 어울려 시련을 겪고있는 조국의 모습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수화기에서는 남철이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심철범은 그 노래가 그의 아버지 김동환이가 지은 노래라는것을 알았다.

그는 김남철이가 노래를 시작하면서 리광호분대장이 숨을 거두기전에 부른 노래를 하겠다고 하던 말과 그 노래가 바로 병사들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하던 말은 거의나 기억에 남지 않고 《붉은 연기로 피여오르리》, 《붉은 재로 남으리》라는 구절만이 뇌리에 새겨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송수화기를 총정치국의 장령에게 넘겨주면서 고통스럽게 중얼거리였다.

《그들은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진하라는 명령만을 안다고 합니다! 공사지도에 새겨진 붉은 화살표식만을!》

송수화기를 귀에다 대고 저쪽의 말을 듣고있던 총정치국의 장령은 심철범을 바라보면서 격동된 어조로 말했다.

《이 사실을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려야 하지 않을가요?》

공사장에서 최고사령부에 울리는 각종 문건들을 깐깐히 검토하고 그이의 문건부담을 덜어드리려는데로부터 그중 많은것을 부결하는데 습관된 이 장령이 이러한 제기를 한다는것은 처음 있은 일이였다.

그러나 심철범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듯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을 풀지 못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