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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며칠 굶으면 기면상태 즉 정신없이 잠만 자는 상태에 이른다. 의식이 가물거리고 몸을 전혀 움직일수 없게 되는 순간이 얼마간 지나면 호흡이 멎게 된다.

김동환대좌는 지금 기면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경비함 《101》호가 풍랑속에 표류하다가 간신히 륙지에 상륙한지도 10여일이 지났다.

그들은 처음에 자기들이 상륙한 지점이 적구인줄을 몰랐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투항을 요구하는 적들의 포위속에 들었다. 그들은 해변가 동굴속에 은신하면서 북상할 기회를 기다리였다.

그러나 며칠간 굶고 물 한방울 마실수 없었던 그들은 하나 둘 기면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김동환은 어떻게하나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병들을 고무하다가 제일 나중에 쓰러졌다. 그는 기면상태에서도 한가지만은 똑똑히 기억하고있었으니 그것은 륙지의 훈련지휘부에 보낸 최후의 정황보고였다. 그는 그 보고를 자신이 직접 작성하여 무선수에게 주어 훈련지휘부에 송신하도록 하였다.

그 무선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풍랑이 심함, 파도높이는 3m, 훈련과제와 전투임무를 끝까지 수행하겠음, 우리를 믿으라.》

김동환은 전대미문의 풍랑속에서도 경비함《101》호가 받은 훈련과제를 수행할 결심이였다. 경비함 전체 해병들의 사상의지력을 믿었다.

그는 이번 훈련의 목적과 의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작전일군이였다. 적의 군사적도발에 대처한 자위적조치의 일환으로 벌리게 된 훈련에 앞서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진행된 군정간부회의에 참가하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군정간부회의에서 우리의 유엔인권협약에서의 탈퇴선언과 관련한 적들의 군사적압력에 대응한 이번 훈련에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참가하고있는 군부대들도 참가시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다시말하여 그들없이도 적의 군사적도발에 대처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일치하게 전투구분대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드리였다.

김동환도 같은 립장이였다. 그는 인민군대가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참가하고있는 의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아들 남철이도 사회주의건설장에 있었다. 그는 훈련의 나날 남철이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으며 그의 몫까지 수행한다는 립장에서 훈련강도도 높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는 자기의 보고를 최고사령관동지의 남다른 은총을 입은 그들 부자의 보답으로 여기며 크나큰 기쁨을 느꼈던것이다.

인민군군인들이 최대의 의지력을 발휘하여 진행한 이번 동해전구에서의 각 군종, 병종들의 대련합훈련은 금강산발전소건설이나 평양ㅡ향산관광도로건설, 청류다리와 금릉2동굴건설 등 큰 의의를 가지는 대상건설을 계속 밀고나가면서도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태평양함대의 중요전단들과 남조선해병대의 동해전단들을 모조리 동원한 우리에 대한 군사적압력을 여지없이 짓부셔버렸던것이다. 그뿐이 아니였다. 최고사령관동지의 거듭되는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시찰과 함께 이 훈련은 클린톤행정부로 하여금 로골적인 강경압살을 주장하는 호전세력의 저항을 뿌리치고 유엔인권기구의 결의와는 관계없이 국제식량기구와 자기네 정부 및 민간단체들을 통한 우리에 대한 긴급식량지원을 운운하게 만들었다.

클린톤은 그러한 실천적조치로 자기의 특사를 파견하려는 의향을 공식경로를 통하여 제기해왔다.

그런데 일은 김동환이가 신심에 넘쳐 최종보고를 보낸 직후에 벌어졌다.

경비함 《101》호는 해상분계선 가까이에 있었다. 해병들의 전투기술수준을 최대로 높일데 대한 훈련과제와 함께 그들은 자기들의 기본전투임무인 해상경비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그런데 기관은 꺼지지 않았는데 함은 전진을 멈춘채 제자리에서 끼우뚱거리기만 하였다. 나중에는 기관마저 과열되면서 꺼져버렸다.

알고보니 추진기에 《고기그물》이 칭칭 엉켜있었다. 이것은 치명적인 사태였다.

해군사령부 대표로서 함께 파견되여있던 김동환은 함장을 찾았다.

《함장!》

《여기 있습니다, 대좌동지.》

키가 큰 중좌인 함장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잠수병을 준비시키시오.》

《알았습니다.》

얼마후 잠수병이 물밑으로 들어가 알아낸데 의하면 추진기에 엉켜있는 《고기그물》은 남조선제였다.

그 어떤 어종을 잡는데도 쓸모없는, 고기그물형태만을 갖춘 특수재질로 된것이였다.

김동환은 잠시 지휘성원들과 함께 사태를 분석한 결과 이것은 우리의 훈련을 파탄시키기 위한 적들의 음모라는 판단을 내렸다.

적들은 우리측 지역에 숨어들어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았던것이다.

곧 추진기에 감긴 그물을 풀어던지기 위한 전투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수중에서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물은 특수강으로 된것인데 칼로나 집게로는 도무지 잘라낼수 없었고 게다가 추진기뿐아니라 크지 않은 경비함전체를 휘감고있었다.

김동환은 구조신호를 보내라고 함장에게 명령하였다. 순간 워낙 사납던 바다에 해일이 일기 시작하였다.

북풍이 불고있었다.

무서운것은 그것이였다. 함은 북풍을 타고 남쪽으로 떠내려갈것이였다. 불행하게도 해류까지 그쪽으로 흐르고있었다. 해상분계선은 바로 몇마일 지점에 있었다.

김동환은 비상대책을 취했다.

함에 가지고있던 풍막을 다 들춰내여 《돛》을 기웠다. 그리고 마스트에 달았다. 다문 한치라도 배를 우리측 지역으로 움직여가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칠칠야밤인데다 사나운 풍랑은 그들의 온갖 시도를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이때 여러척의 적의 잠수함이 《101》호를 포위하고 《투항》신호를 보내왔다. 《101》호는 적의 도발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우리측 지역(그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알고있었다.)에서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적은 사격으로 대답하였다. 《101》호는 대응사격을 가하였다.

접전은 번개불처럼 짧고 강하게 진행되였다. 《101》호는 순식간에 가지고있던 기관포탄과 자동보총의 탄알을 다 날려보냈다. 그다음 중요기관들을 파괴해버리고 김동환의 명령에 따라 해병들은 풍랑속에 뛰여들었다.···

혼미한 의식속에서 김동환의 뇌리에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은 자기들이 헤염을 쳐 상륙한 지점이 적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왜 인차 자폭하지 않았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간신히 자기 손을 가슴에 얹고 꼭 눌렀다.

지금 그의 해병복밑 가슴우에는 비닐박막으로 싸고 또 싼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가 있었다.

그는 적함과 조우한 첫 순간에 선실에 있던 그 초상화들을 내리워 자신이 직접 가슴우에 모시였던것이다. 김동환은 자기의 생명이며 조선의 운명이신 가장 존귀하신분, 그분들을 위해서라면 붉은 연기로 피여오르고 붉은 재로 남으리라 맹세 다진 조선인민군의 대좌였다.

그는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분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셔야 했다. 하여 기면상태에서도 그 생각만 하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서려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잠시후 그는 만신의 힘을 모아 기여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김동환과 그의 대원들의 최후의 투쟁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들중 아무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경비함 《101》호의 구조신호를 받은후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있던 동해훈련지휘부와 최고사령부조차도 적측의 통신보도를 통해서만 단편적인 사실을 알수 있었을뿐이다.

그중 《미국의 소리방송》이 서울특파원과 주고받은 문답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 : 《먼저 입수한 소식을 부탁한다.》

답 : 《한국 국방부는 동해안지역에서 북한의 경비함이 좌초되여있는것을 발견하였으며 경비함에 타고있던 북한군인들은 륙지에 상륙하였다. 이에 대하여 국방부는 전군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그들의 행방을 추적하고있다.》

문 : 《북조선군인들이 처음 알려진것은 언제였는가?》

답 : 《시간별로 보면 3시 40분경 북한군인들의것으로 추상되는 발자국이 발견되였다. 그리고 오전 7시 25분경부터 북한경비함에 대한 내부수색이 시작되였고 오후 4시 30분경 산속에서 북한군인들을 완전포위하고 3명을 사살하였다.》

문 : 《경비함수색에서 나타난것은 무엇인가?》

답 : 《북조선군인들이 탈출직전에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에게 올린 맹세문이 발견된것이 특이하다.》

문 : 《어떤 내용이였는가?》

답 : 《맹세문에는 〈우리들은 장군님의 명령을 피끓는 가슴에 새기고···〉, 〈승리의 보고〉, 〈통일 그날···〉, 〈장군님께서 편히 쉬시는 날이 올것입니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비록 물에 젖고 찢기여 단어와 문구가 잘 맞지 않지만 이 일단을 통해 한번 받은 명령은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사명감,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절절히 풍겨나오고있다. 이 편지를 보고 전률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것이다.》

문 : 《북한군인 10여명이 자결한것으로 추측된다던데?》

답 : 《그렇다. 이들의 시신이 당일 오후 5시경 산속에서 발견되였다.》

문 : 《한국정부의 반응은?》

답 : 《당일 오후 긴급통일안보정책회의를 열고 이와 관련한 대책을 토의했다고 한다.》

 

남조선당국이 처음부터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불법침입》으로 몰아붙이는 속에서도 통신보도들은 진실을 외면할수 없었다. 그 진실이란 경비함 《101》호가 적측지역을 불법침입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 군인들의 놀라운 정신세계였다.

김동환이와 그의 대원들은 적함에 마지막탄환을 날리며 최후의 결사전을 벌리던 그때에 최고사령관동지께 편지를 썼다. 추측컨대 우리의 군인들은 그 편지를 쓰고 륙지에 올랐을것이며 승냥이무리처럼 달려드는 수십만 적병들의 포위에 들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