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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렬은 방코크ㅡ평양행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고있었다. 이 항로는 《고난의 행군》기간에 개설된것으로서 미제가 강도적으로 친 봉쇄환에 뚫린 하나의 돌파구라고도 할수 있었다.

조선은 자기의 사회주의보루를 방어만 하고있지 않았다. 끊임없는 역습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하여 사회주의력량, 반제자주력량을 확대함으로써 미제국주의를 역포위해나가고있었다. 1992년 4월 20일 평양선언을 발표할 당시 여기에 서명한 세계 여러 나라 공산당, 로동당들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들의 수가 70여개였던것이 1995년말 현재에는 100을 넘어 200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러한 당들가운데는 집권련립에 속하여 정부의 정책작성에 참가하는 당들도 있었고 국회활동에 참가하여 크나 작으나 정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있는 당들도 있었다.

이 정당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이 조선에 대한 미국의 《고립》, 《압살》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서게 되였다.

쏘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좌절에서 쓴맛을 보았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오늘의 조선을 보고는 새로운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사회주의의 재생운동에 떨쳐나서고있었다.

이 시기 로씨야의 한 사회주의정치운동가가 미국기자와 한 담화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미국의 에이피통신기자로부터 이젠 당신도 사회주의정치운동을 할 의욕을 잃었겠는데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명석한 판단력과 리지력을 21세기 《자유세계번영》을 위해 바치는것이 옳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단호히 머리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다. 사회주의자로서의 나의 인생은 오늘에 와서 진정 보람있는 궤도에 들어선셈이다. 나는 그 보람찬 삶을 조선동지들에게서 찾았다. 이제야 비로소 세계를 쥐고 휘두를 힘있는 사상, 그런 힘있는 무기를 가지게 되였다.

이제는 우리가 두번 다시 좌절되지 않을것이다. 나에게 사회주의자로서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한 김정일동지는 나자신뿐아니라 로씨야사회주의자들, 온 세계가 따라배워야 할 위대한 스승이시다. 나의 리지력을 가장 보람있게 바칠수 있게 된것이 참으로 큰 행운이다.》

이 모든 정당들, 개별적인사들이 미제에 대한 역포위환을 이루고있었다. 이 국제적전선의 최고사령관도 김정일동지이시라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허성렬은 장기간의 해외출장(물론 그사이 여러차례 귀국하여 자기 본신사업도 하였다.)과정에 이것을 깊이 느끼였다.

이제 그는 기쁜 마음으로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앞에 나설것이며 그 기간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보고하게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방코크를 리륙해서부터 장시간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까딱않고 앉아있었다.

귀국에 앞서 마지막으로 들린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그에게서 모든 기쁨과 자랑을 날려보냈다. 피를 끓게 하고 가슴을 뒤번져지게 하는 《사건》이였다. 그날부터 그는 치명상을 당한 사람처럼 가슴이 천만갈래로 찢기는것 같은 진통에 시달리고있었다.

허성렬은 어느날 그 나라 집권당의 권위가 있다고 하는 정치국위원과 마주앉았다.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친선과 협조의 뉴대를 이어오는 나라 집권당의 원로급인물이였다.

그 인물은 허성렬과도 면목이 바이 없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차례 왔었고 환영연회에서도 잔을 찧으며 축배를 나누었다.

그는 선대수령들사이에 맺어진 형제적친선을 귀중히 여긴다는것, 조선의 현 처지에 대하여 깊은 리해를 표시한다는것 등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우리는 조선이》하고 그는 말했다. 《혹심한 식량난을 겪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허성렬은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

《조선동지들은 식량지원을 필요로 하고있을것입니다.》

《귀국의 농사작황이 매우 좋더군요.》 허성렬은 동문서답격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당 지도부는 정부에 조선에 식량지원을 줄것을 제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치국위원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무엇이 두려운지 갑자르기만 하다가 몇번 헛기침을 깇고나서 말을 꺼냈다.

《저··· 정부에서는 음··· 한 천t의 식량을 내놓겠다더군요.》

《그래요?》 허성렬은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쌀을 나는 저 거리들에서 헤매고있는 귀국의 방랑자들을 구제하는데 써달라는것을 권고하고싶습니다.》

허성렬은 이 순간 사회주의원칙을 저버리면 매 인간뿐아니라 당도 국가도 얼마나 도덕적으로 저렬해지는가를 뼈아프게 절감했다.

그가 머물고있는 이 나라는 제국주의자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하여 원칙을 줴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에 들어섰다. 서방의 자본과 사상문화가 쓸어들면서 서방식실용주의가 온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나라에서 계급적련대성을 바란다는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

(모욕하지 말라, 누굴 거러지로 아는가!)

허성렬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남은 일정을 취소해버리고 그 나라를 떠나버렸다. 짓밟힌것은 자기 한 개인의 자존심만이 아니였다. 우리 민족, 우리 조국의 존엄이였다.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그는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였다. 더우기 우리 나라가 식량지원을 미끼로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데 반발하여 국제인권협약에서 탈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자기 행동의 타당성을 추호도 의심할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하루이틀 시일이 흐르면서 그는 자기 행동의 다른 측면 다시말해서 자기가 분별을 잃을 정도로 격노했으며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훌 떠나버린 행동의 결과가 두 나라 당과 국가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확실히 자기가 감정을 앞세웠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외유내강은 대외일군들의 기본품성이다. 달리는 행동할수 없었을가?···

그는 자기를 비판적으로 돌이켜보며 불안을 느끼였다.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것은 조국이 자기의 처신을 두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조국에서는 빨리 돌아오라는 독촉뿐이였다.

거기에는 다른 하나의 리유도 있었다.

그는 조국을 떠나기에 앞서 해당부문 일군으로부터 국방공업발전에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제기를 받았다. 국방공업을 중시하고 국방공업발전에 큰 힘을 넣는것은 시종일관한 당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제기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수 없었으니 그것은 나라의 긴장한 자금사정을 그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바로 그때문에 허성렬의 마음은 이중으로 무거운것이였다.

비행기는 조국의 령공에 들어섰다.

허성렬은 비로소 숙이고있던 고개를 쳐들고 기창을 통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것은 이해따라 더욱 우심하게 들이닥친 장마로 하여 죽탕이 된 농사작황이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량미간을 찌프렸다.

잇따라 활주로처럼 뻗어나간 평양ㅡ향산관광도로건설장이 눈에 밟혔다. 거기에서는 지금 인민경비대 군인들이 특별한 기계수단도 없이 와글거리며 로반완성을 위해 말그대로 혈전분투하고있을것이다. 그 공사역시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께서 직접 지휘하고계시는 대상이 아닌가.

시야를 넓혀 조국땅 전부를 훑어보자 허성렬의 눈에는 전국의 각지로 실오리처럼 뻗어나간 수십수백갈래의 선들이 들어왔다. 그것은 빛섬유까벨을 묻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있다는것을 의미했다. 그순간 허성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20세기가 다 가는 지금 21세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 조금만 주춤거려도 후대들앞에 죄를 짓는것으로 되며 조국의 만년대계를 그르칠수 있다, 21세기는 정보산업시대, 콤퓨터시대인것만큼 그 기초준비로서 온 나라의 빛섬유통신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해오시였다.

지금 그것이 현실로 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것을 과학자출신의 허성렬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것이다.

허성렬은 점점 난감해지는 자신을 의식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다음부터는 순안비행장에 내릴 때까지 눈을 감고 단 한번도 뜨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하늘에서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비는 늙은이 턱수염밑에서 긋는다고 했지만 평양시내로 들어오는 사이에 비는 폭우로 변했다.

허성렬은 이마살을 찡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부서일군이 아래 단위에서 올라온 문건을 들고왔다가 두고나갔다. 그것을 보는 허성렬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갔다. 국방공업과 관련한 내용이였는데 거액의 자금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오른손으로 턱을 싸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외국방문기간에 만났던 그 정치국위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개혁, 개방》을 한다고 말없는 속에 비난하지만 결국 당신들도 그길로 갈수밖에 없지 않느냐는듯 미묘한 표정을 짓던 그 얼굴···

사회주의를 고수하자면 국방공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아름찬 일이다.

문득 평양을 떠나기전에 만났던 체신부 부부장이 생각났다. 그때 그도 자금때문에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있지 않았는가.

자리에서 급히 일어선 허성렬은 곧장 체신부로 갔다.

젊은 부부장은 서둘러 자리를 권하고나서 의문스레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기네 부하고는 련계도 없는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일군이 찾아온것이다.

부부장으로 말하면 허성렬에게는 아들벌이 되는 젊은 사람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허성렬이와 가까운 친구지간으로서 만경대혁명학원을 같이 나왔고 몇해전에 급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장군님을 같이 모시고 다니였다. 부부장의 할아버지와 허성렬의 아버지역시 항일무장대오에서 함께 싸운 동지이고 전우였다.

젊은 부부장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자기를 친아들처럼 여기는 허성렬이 외국출장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찾아온것이 무척 의아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선채로 허성렬을 바라보고있었다.

《허허··· 왜 매보고 놀란 수닭처럼 껑충해서서 있나? 앉으라구.》

허성렬이 정말 아들처럼 여기고 해라를 하며 허물없이 굴자 부부장은 수줍게 웃으며 그가 앉은 쏘파에 나란히 앉았다.

허성렬이 곧 정색해서 물었다.

《얼마를 받았나?》

젊은 부부장은 촉기가 빨라서 그가 무엇을 묻는다는것을 제꺽 알아차리고 그 액수를 알려주었다. 그 막대한 액수에 놀란 허성렬이 추궁하듯 말했다.

《그래 그걸 받으면서 손이 떨리지 않던가?》

《제 말을 들어보고 욕하든지 때리든지 하십시오.》

젊은 부부장은 배심있게 항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부장이 장군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것은 허성렬이 출장을 떠난 직후인 어느날 밤중이였다.

《그새 잘 있었소?》하고 장군님께서 퍽 다정한 어조로 그의 안부부터 물으시였다.

부부장이 황송하여 《옛, 잘 있습니다. 장군님, 건강하십니까?》하고 정중히 맞인사를 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하고는 곧 기본화제를 꺼내시였다.

《빛섬유까벨공사를 언제까지 끝낼수 있겠소?》

《굴착공사는 금년안으로 끝낼수 있습니다.

장군님, 그런데 까벨이 걸립니다.》

《까벨은 체신부에서 생산할 계획이요?》

《옛,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장설비가 해결되지 않고있습니다.》

《공장설비가 해결되면 언제부터 생산을 시작할수 있소?》

《반년후이면 될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래년 상반년안으로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 빛섬유통신이 들어갈수 있습니다.》

《인민군 군부대들도 예견해야 하오.》

《물론입니다. 그 경우에도 래년 상반년이면 됩니다, 장군님.》

《그럼 내가 필요한 액수를 떼줄테니 당장 공장설비를 들여오도록 하시오. 설비구입에 필요한 자금액수를 계산해둔것이 있소?》

《···》

장군님의 물으심에 시종 거침없이 대답을 올리던 부부장은 여기서 우물쭈물하였다.

《왜, 계산해두지 못했소?》

《아, 아닙니다.》

《그런데?》

《···》

역시 대답을 망설였다.

《왜 그러오?》

부부장은 한참 더 갑자르고나서 송구스러운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씀올렸다.

《저희들이··· 자체로 생산해보겠습니다. 장군님··· 돈 액수가 너무 많아서···》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부부장의 이름 석자를 한자한자 찍어 부르고나서 날카롭게 《동무, 큰 일을 못하겠구만!》라고 하시였다.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내가 여러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결심한것인데 동무는 무슨 딴소리를 하는거요? 래일중으로 자금을 받아다가 일을 전개하시오. 아니, 오늘로 당장!》

부부장의 이야기를 듣고난 허성렬은 《됐소!》라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부부장과 서둘러 인사하고나서 방에서 나갔다.

계단을 뛰여내려가는 그의 다급한 구두발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