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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철범은 중키인데 앙바틈한 목과 쩍 벌어진 어깨는 그를 실지보다 더 작아보이게 하였다. 몹시 과묵한 그는 언제봐도 입을 꽉 다물고 다니였다. 그러나 이따금 그 입이 열리면 호랑이와도 같은 무서운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를 심갈범이라고도 했다. 칼날같은 규률과 무조건적인 실천만을 요구해야 하는 참모장으로서는 제격인셈이였다. 그가 직무에 어울리지 않게 외국인의례사업에 동원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사흘동안 야조브를 안내하여 평양시안의 명승고적들과 기념비적창조물들을 돌아본 그는 지방참관을 떠나려고 아침 일찌기 야조브를 찾아갔다.

야조브는 현관앞에 나와서 심철범을 기다리고있다가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몹시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방금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그이께서는 저를 위하여 오늘중으로 시간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계획을 뒤로 미루어야 할것 같습니다!》

현관문이 다급히 열리고 호리호리하고 깨끗하게 생긴 대위령장을 단 군인이 뛰여나왔다. 인민무력부 외사국의 통역이였다. 대위가 류창한 어조로 서둘러 야조브의 말을 우리 말로 옮겨놓기 시작하였다.

그날 오후, 그들을 태운 승용차는 룡성교외도로로 해서 평양중심거리를 향해 달리였다.

김정일동지의 접견은 오후 6시로 예견되여있었다.

승용차의 앞자리 운전사곁에는 대위가 앉고 뒤좌석에 심철범이 야조브와 함께 앉아있었다. 옥천휴양소를 떠나 평양으로 달려오는 동안 심철범의 철색이 도는 얼굴은 눈에 알리게 상기되여있었다. 그는 줄곧 흥분하고있었다.

지금까지 심철범은 최고사령부가 주관하는 장령들의 회의나 국가적인 행사들에서 김정일동지를 여러번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실 때에는 참모장의 자격으로 그이께 부대의 임무수행정형에 대하여 직접 설명을 해드리는 행운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몇명, 몇십명이 참가하는 집체적인 접견이였다. 이러한 접견들은 그이의 집무실이 아닌 다른 장소들에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심철범은 당중앙위원회청사로 가고있었다.

당중앙위원회 기발대에는 일년열두달 하루도 빠짐없이 낫과 마치와 붓을 새긴 당기가 날리고있었다.

시내중심을 통해 출근하게 되는 사람들은 일부러 당중앙위원회 청사쪽을 바라보면서 가군 하였다. 당중앙위원회를 향해 가면서 이제 불과 몇분후 경애하는 그이를 만나뵙게 된다고 생각하는 심철범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령님을 잃은 후 우리 나라에는 엄혹한 정세가 도래하였다.

수도의 거리들은 물론 지방도시들과 공장, 기업소안의 구호들과 선전차들은 《결사옹위》, 《결사관철》을 호소하고있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의 이 호소에 호응하는 준엄한 맹세의 빛이 어리고있었다.

거리들에서 점차 화려한 옷차림들이 사라지고 그대신 보위색으로 지은 작업복과 적위대복차림이 많아졌으며 군용배낭을 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렬을 지어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움직여가고있었다. 거의 집집마다에서 그 누군가가 군대로, 이동작업으로 떠나갔다. 가족중에서 누가 퇴근해오지 않으면 저녁식사를 들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마끔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서로 얼굴을 못보고 뿔뿔이 일터로 흩어져갔다.

신문들과 방송들에는 《봉쇄》, 《고립》, 《질식》이라는 낱말들이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긴장시키였다. 신문과 방송들은 사회주의를 지키자고 호소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고난의 행군이나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와 전후의 어려운 나날들보다 더 엄혹한 정세가 나라앞에 도래하게 될것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러한 정세의 예후는 벌써 수령님의 생존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수령님께서 계시였다. 그런데 그이께서 갑자기 서거하시였다. 근 한세기동안 리권을 다투는 세계대국들의 정치권안에서도 나라를 끄떡없이 자주의 길로 이끌던 기치를 잃은 사회주의조선이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 식 사회주의의 위력과 그 불패성에 대한 조선인민들의 믿음은 김정일동지에 대한 믿음과 끊을수 없이 련결되여있었다. 그렇게 된것은 바로 그이께서 나라의 위대한 변혁의 시기, 사회주의전면적건설의 시기에 당중앙위원회를 선두에서 이끌어오셨기때문이였다. 사람들이 당중앙위원회청사를 그려보며 거기 집무실에서 김정일동지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계실가 하고 상상하는데 습관된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다.

심철범은 그이께서 나라에 조성된 정세로 하여 더욱 무거워진 사업부담때문에 이 하루도 여념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 중하를 짊어지고계시였다.

심철범은 지난 사흘동안 외국손님을 안내하면서 뜻밖의 체험을 하였다.

드미뜨리 야조브의 우리 나라 방문목적이 참관에 있지 않다는것을 심철범은 알고있었다.

해당부서에서는 사전에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던것이다. 참관이 기본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되였다, 모든것을 책임적으로 해주기 바란다.

그 전화를 받고 심철범은 자기가 이번 일에 동원되면서 가지게 되였던 의혹을 다시 가지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무슨 리유로 대외사업하고는 인연이 없는 작전일군을 이 일에 선발하시였는가?

그러나 다음순간 야조브가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올것을 목적하고있는데 그 리유는 무엇인가, 인사나 나누자고 먼길을 와서 분초가 바쁘신 그이를 뵙자고 할 실없는 손님은 아닐테니 그가 목적하는바는 과연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안내통역은 야조브가 노래도 있고 시도 있고 웃음도 있는, 군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다정다감한 성격이라고 하였다.

실지 야조브는 숙소에서 밤마다 음악을 듣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로씨야고전음악을 수록한 록음테프를 가지고 다니였다. 차안에서도 그 음악을 듣고 식사할 때나 오락장에서 휴식할 때도 들었다.

그는 출생지인 쏘련의 옴스크주 오꼬네슈니꼬브구역 야꼬브촌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17살이였다. 그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전쟁에 뛰여들었다. 만일 전쟁만 아니였더라면 그는 자기가 희망하던 고리끼문학대학으로 갔을것이며 대학을 졸업하고는 작가로 되였을것이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참관할 때 그는 시 한수를 읊었다.

 

청동의 모습으로

영생은 못해도

대돌이 되여 너를 받들리

내 너를 위해

죽을수만 있다면

서슴없이 대돌이 되리

사랑하는 뻬뜨로

뻬뜨로(레닌그라드)여!

 

어느 시인이 지은 시인지 아니면 자작시인지는 몰라도 매우 비조가 짙었다.

심철범은 그를 데리고 주체사상탑 전망대에도 올라갔다. 평양을 한눈으로 부감할수 있는 그리로 올라가면 그의 무거운 마음이 확 트일가 해서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구름이 꽉 낀 그의 얼굴은 좀체로 밝아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전망대의 원형란간을 한바퀴 돌고나더니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1941년 가을에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포연은 없었지.···》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심철범은 통역에게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야조브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대위가 앞자리에서 뒤돌아보며 로어로 몇마디 하자 야조브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심철범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심철범은 그를 마주보며 대위의 통역에 귀를 기울이였다.

《1941년 가을···》

 

1941년 가을 히틀러는 백만이상의 군대, 1, 700여대의 땅크와 공격수단들 그리고 거의 1, 100여대나 되는 비행기로 모스크바를 공격할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고있었다.

히틀러는 모스크바를 점령한 후 그것을 어떻게 할 작정이였는가? 그는 모스크바를 물에 침수시켜 이 도시가 800년동안 서있던 자리를 바다로 만들어버리려고 하였다. 히틀러가 내린 특별명령에는 모스크바를 침수시키기에 앞서 한명의 로씨야병사도, 한명의 주민도 그가 비록 녀자나 지어는 늙은이나 아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빠져나올수 없도록 빽빽이 포위망으로 둘러쌀것이 예견되여있었다.

이 명령을 준비하면서 히틀러는 얼마동안 모스크바에 한발의 포탄이나 폭탄도 떨구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스크바의 하늘에는 포연이 서리지 않았다. 그 맑은 하늘아래 도시는 숨막히는 정적에 묻히였다. 그것은 폭풍전야의 정적이였다.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것은···》하고 야조브는 다음말을 계속하려고 하였다.

심철범은 야조브가 다음말마디를 고르는 동안 한마디 끼였다.

《오늘 우리 나라가 그때의 모스크바와 같은 형편에 처해있다는 말씀이겠지요?》

《물론입니다!》하고 야조브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하고나서 무거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나 제가 말하자는 본질적이야기는 거기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자신의 운명과 관련된 보다 깊은 의미의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물론 중장동지가 허락하신다면 말입니다.》

《좋습니다. 저는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로부터 원수동지의 편의를 봐줄데 대한 임무를 받은것만큼 기꺼이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그날밤 심철범은 야조브의 방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그의 일생이 함축된 이야기였다.

드미뜨리 찌모페예비치 야조브는 1924년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열한형제의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레닌이 서거한 후였다.

하지만 한번도 본적 없는 레닌의 이름은 사회주의의 견인력이 비할바없이 높았던 당시 어린 소년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레닌에 대한 믿음은 가난한 자기 가정에 행복한 생활을 약속해주는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과 함께 절대적인것으로 되였다.

이러한데로부터 야조브는 레닌의 위업을 계승한 쓰딸린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쓰딸린에 대한 믿음은 그자신이 병사로 지휘관으로 참가한 파쑈도이췰란드를 격멸하고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서 최절정에 달하였다. 강철의 령장인 쓰딸린이 있어 쏘련인민은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야조브에게 있어서 쓰딸린은 그대로 승리였고 승리는 곧 쓰딸린이였다. 쓰딸린은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의 위력이였다.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이 믿음은 쓰딸린이후의 쏘베트공화국의 지도자들이였던 흐루쑈브와 브레쥬네브, 고르바쵸브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마치 두갈래의 철길우에 올라선 기관차와도 같이 그들이 이끄는 길을 따라 끊임없이 줄달음쳐왔다. 그러다가 도태,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에로의 복귀라는 엄혹한 현실에 부닥치고서야 정신을 차리였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자신이 적지 않게 변질되였던것이다. 이 변질이 1991년 8월사변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다른 성원들과 함께 우유부단성을 나타냄으로써 사회주의의 좌절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자신은 국가반역죄로 감옥에 끌려가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이것은 야조브에게 있어서 인생의 파멸이였다.

그는 감옥에서 두번에 걸쳐 자결을 기도하였다. 한번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성원이였던 자기 참모장이 사무실에서 문가림천의 나이론끈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 다른 한번은 크레믈리에서 사회주의의 상징인 붉은 기발이 끝내 내리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그러나 자살도구가 변변치 않았던 관계로 두번 다 실패하고말았다. 1년반후 출옥하여 자기 집에서 세번째 자살을 기도하였다. 국방상이였던 그에게는 세자루의 호신용권총이 있었다. 그중 두자루는 당국에 회수당하고 한자루가 남아있었다.

그 한자루는 자루에 빨간빛으로 된 세 글자가 새겨져있는 권총이였다. 자결을 결심하고 권총을 틀어쥔 순간 그 세개의 글자가 야조브의 눈을 찔렀다.

김일성》이라는 세 글자였다.

야조브는 원동군관구 사령관으로 있을 때 쏘련국방성의 대표단 성원으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조국광복 40돐기념행사에 참가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김일성동지로부터 이 선물을 받았다.

세상을 하직하려고 결심한 그 비장한 시각에 야조브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김일성동지의 존함이 새겨진 그 권총을 직접 수여하신분은 김정일동지이시였다.

그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총은 배반할줄 모릅니다. 우리 이 총을 틀어쥐고 사회주의리념의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함께 싸워나갑시다!》

배반, 그렇다, 이것은 배반이였다. 그는 자기의 자결기도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그 순간 야조브의 힘을 주었던 팔에서 맥이 쑥 빠져나가고 권총을 틀어쥔 손은 아래로 축 늘어졌다.

그는 죽어도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한번 꼭 만나뵙고싶었다. 그는 사회주의리념을 믿고싶었고 그 승리를 보고싶었다.

그는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이 김일성동지의 급서라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또다시 좌절, 희망의 상실, 늙은 원수는 비탄에 잠겼다.

한동안 조문파동이 지나가고 세계는 조선의 《변화》와 《붕괴》를 고아대기 시작했다.

야조브는 이것을 다는 믿지 않았지만 수령이 서거한 후 혁명운동이 겪는 시련에 대하여서는 알고있었다. 맑스의 서거후 시련을 겪은 제1국제당, 엥겔스의 서거후 제2국제당, 쓰딸린 서거후의 자기 나라가 겪은 시련과 그 시련뒤끝에 도래한 사회주의좌절이라는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외면할수 없었다. 야조브는 고민하였다. 이 고민의 나날 그는 자기 운명이 조선과 그 사회주의와 끊을래야 끊을수없이 련결되여있다는것을 알았다. 조선이야말로 희망이고 미래였으며 그의 여생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 조선이 어떠한 시련을 겪을것인가. 제국주의자들은 《고립》, 《압살》을 운운하고있었다. 그들은 조선에서의 수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 정책을 더욱 집요하게 추구할것이며 몇십배로 강화할것이였다.

실지 그런 조짐들이 나타났다.

야조브는 정치, 경제, 군사적측면에서 그것을 고찰하여보았다. 세계의 제일가는 군사대국의 무력을 총괄하고있던 그는 다른것은 몰라도 군사면에서는 상당한 예리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제국주의무력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로씨야군부에는 그의 이전 부하들이 많았다. 그는 그들의 도움으로 많은 자료를 입수할수 있었다. 그 자료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여보면 볼수록 위구심과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그의 시점으로 볼 때 조선은 중과부적이였다.···

 

야조브는 응접실의 쏘파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며 흥분으로 하여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물론 2차세계대전시기 쏘련도 중과부적이였습니다. 쏘련의 운명이 결정되고있던 모스크바에서 붉은군대가 가지고있던 무력은 적의 수중에 있는 무력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780대의 쏘련땅크들이 1, 700대의 히틀러땅크들을 상대로 하여 맞서고있었으며 545대의 쏘련비행기들이 거의 1, 000여대에 달하는 도이췰란드전투폭격기, 추격기, 습격기들과 대항할수 있었을뿐이였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현재 제국주의련합세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대비에 비하면 량호한편이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쏘련은 동상이몽하는 벗이긴 해도 미국과 영국을 자기편에 가지고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귀국의 편에는 누가 있습니까. 쏘련이 건재했던 때조차 당신들은 충분한 방조를 받지 못했습니다만 지금은 그것마저 기대할수 없지 않습니까?》

《···》

야조브는 말을 끊고 잠시 심철범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것 같지는 않았다. 체념에 잠겨 모든것을 포기한듯 싶었다.

심철범은 야조브의 팔을 끌어다가 자리에 앉히고나서 입을 열었다.

《너무 락심하실건 없습니다. 원수동지가 말한것처럼 당신들의 비극은 쓰딸린동지의 서거후 쏘련에 참다운 수령이 없었던데 그 원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십니다.》

《물론입니다.》야조브는 벌떡 일어나 늙은이답지 않게 다시 흥분하며 웨치듯 계속하였다.

《그래서 저는 그이께 기대를 걸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이께 저의 운명, 사회주의운명을 걸고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이미 모스크바에서 개별적으로 그이께 편지를 보내였습니다. 그러나 그이와의 상봉은 고통스러운것으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당신들의 처지는 다시 말하지만 너무나도 중과부적이니까요. 저의 말이 리해됩니까?》

《예, 리해됩니다. 그러나···》

《잠간.》

야조브는 서둘러 응접실에서 나갔다가 타자친 종이 몇장을 접철로 접은 무슨 문건 같은것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이건 미중앙정보국이 국방성과 국무성 등 행정부의 대조선기관들에 비밀리에 내려보낸 〈최근 북조선정세와 대북조선정책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된 극비자료입니다. 출처에 대하여서는 묻지 말아주십시오. 신빙성은 제가 담보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것을 보는것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야조브는 그 문건을 마치 당장 터지려는 시한탄이라도 되는듯이 두손에 받쳐들고 조심조심 심철범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그의 표정은 몹시 무거웠고 침울하였으며 불안에 차있었다. 그러고보면 노상 그의 얼굴을 덮고있는 그림자가 그것때문에 오는가싶었다.

반면에 그 문건을 받아든 심철범의 얼굴표정은 그저 덤덤하였다.

그러나 자기 방으로 돌아와 탁상등밑에서 한장한장 문건을 번져가는 그의 표정은 편안치 않았다.

미중앙정보국의 비밀문건은 《1. 최근 북조선정세, 2. 대북조선정책방향》으로 되여있었다. 《1》에서 문건은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와 특히는 수령님의 서거후 우리 나라의 이른바 《정세》를 분석하고있었다.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그들이 가소롭게도 우리 나라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고있는것이였다. 문건은 그 요인을 렬거하면서 우리의 정치, 경제, 군사적《위기》를 들고있었다. 특히 식량난 등 우리 나라의 경제적난관을 상세히 분석하고는 우리 식 표현대로 《배하고는 타협할수 없다.》고 하면서 《북조선주민들은 이제 더는 사회주의와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문건은 《2》에서 이러한 조건에서 미행정부의 대북조선정책방향을 규정하고 전력을 다하여 우리 나라의 《붕괴》를 가속화할것을 지령하고있었다.

처음에 심철범은 《붕괴》요 《위기》요 하는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성스러운 우리 공화국의 이름을 그런 상상할수 없는 표현들과 결부시키는데 대하여 격분하였다. 그에게서 사회주의위업은 절대적이였으며 그 불패성에 대하여서는 꿈에도 의심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이 점차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는것은 적들이 우리를 오판하고있는 조건에서 분별을 잃고 달려들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적들은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수 있었다. 그 몽둥이란 잘 준비되고 정예화된 무력이며 최신무기들이였다.

미중앙정보국의 문건은 우리의 《붕괴》를 3년내의 일로 확고히 단언하고있었다. 3년, 이 3년이라는 수자는 미국방성의 강경보수세력들에게는 리성을 잃을만큼 현란한 수자일것이다. 그들은 기뻐서 고함을 치며 미친듯이 달려들수 있었다. 3년, 3년만 견디여보자!라고 하면서 저들의 정치, 군사, 경제적잠재력을 최대한 동원할수도 있었다. 미중앙정보국의 문건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하여 지금 당기발이 사시장철 펄럭이고 김정일동지께서 집무를 보시는 사무실이 있는 청사의 계단을 오르는 심철범의 눈앞에는 3년이라는 수자가 자꾸만 밟혀오는것이였다.

두말할것도 없이 3년은 우리 당과 인민, 군대에게 있어서 엄혹한 시련의 시기로 될것이다. 하다면 그 수위에 서계시는 김정일동지의 심려는 얼마나 클것인가.

심철범은 이러한 생각에 파묻혀서 청사현관에서부터 안내하는 한 젊은 군관을 따라 책임서기의 방에 어떻게 들어섰는지 알지 못하였다.

 

×

 

오후 6시 2분전이였다.

《들어가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 기다리고계십니다.》

젊은 군관에게서 손님들을 인계받은 책임서기 곽무선이 나직이 말하였다.

그는 손님들의 앞에서 어쩐지 좀 조심스럽게 살며시 문의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곧 세사람의 손님을 돌아보면서 들어가라고 눈짓하였다.

야조브가 앞서고 심철범과 통역인 대위가 거의 동시에 문턱을 넘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에서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계시였는데 먼저 들어온 야조브가 자신에게로 다가서자 침착한 어조로 몇마디 말씀하시고나서 손을 내미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신을 환영하십니다.》 그들의 등뒤에서 누군가가 로어로 말하였다. 《그이께서는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여 반갑다고 말씀하십니다.》

뒤를 돌아본 야조브와 심철범은 몸이 호리호리하고 기름한 얼굴에 금테안경을 낀 중년의 사나이를 보게 되였다. 그이의 통역을 맡고있는 사람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앞탁 한쪽 가운데 평걸상에 앉으며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야조브는 그이와 마주한 책상 한쪽에 앉고 심철범은 그와 나란히 앉았다. 두 통역은 김정일동지와 그들 두사람뒤에 얼마간 거리를 두고 각각 서있었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야조브가 말씀드리였다.

《무엇보다먼저 저는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저 합니다.》

야조브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반쯤 몸을 일으켜 그의 조문을 받으시였다.

《감사합니다.》

그이께서는 심철범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물으시였다.

《손님이 불편해하는 점은 없습니까?》

《예, 숙소조건도 그렇고 오진우무력부장동지와 함께 있게 해주신데 대하여 만족해합니다.》

야조브는 자기와 관련한 그 이야기에는 끼여들지 않고 줄곧 김정일동지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그이의 모습이 10여년전 권총을 선물받던 때보다 많이 변모되였다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당하고있는 고통, 이 나라가 겪고있을 그 위험의 그림자가 그이의 얼굴에 비끼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이의 얼굴에 번민의 흔적이나 불안한 기색이라도 있다면?···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안광도 변치 않았고 얼굴표정도 태연자약하였으며 억양 역시 침착하시였다. 게다가 평양체류기간의 생활을 물어주시면서 웃음까지 보여주시였다.

야조브는 조용히 납작한 서류가방을 자기앞으로 끄당겼다.

이때 《야조브동지.》하고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말꼭지를 떼시였다. 그이께서는 야조브가 열기 시작한 서류가방에 눈길을 주시면서 계속하시였다.

《동지는 편지에서 우리에게 긴요한 문건을 가지고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겠습니까?》

《예, 바로 이것을···》 야조브는 동작을 좀 빨리하여 가방에서 미중앙정보국의 문건을 꺼내 그이께 넘겨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문건을 받아들고 한장한장 넘기시였다.

순식간에 마지막장을 넘기신 그이께서는 그것을 탁 소리가 나게 책상우에 놓더니 심철범을 건너다보시였다.

《심철범동무!》

《예?!》

심철범이 벌떡 일어섰다.

《이것을 동무도 보시오. 구체적으로 자세히 볼수록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심철범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심철범이 그것을 받아들고 《알았습니다.》하고 대답올렸다. 이 모든것은 순식간에 진행되였다.

야조브에게는 김정일동지께서 자기가 모스크바로부터 가슴을 조이고 가져온 그 문건, 그를 줄곧 괴롭히고있던 그 문건을 전혀 보시지 않은채 심철범에게 넘겨주신것처럼 생각되였다. 외형상으로 볼 때 야조브가 가져온 문건을 김정일동지께서 읽지 않고 심철범에게 넘겨주시였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이 접견이 심철범에게 미중앙정보국의 문건을 넘겨주기 위해 필요했단 말인가.

심철범의 머리에는 오진우로부터 장군님의 지시를 집행하게 된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떠오른 의혹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오래 하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반쯤 일어서서 집무탁우에 무드기 쌓인 문건들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들고 말씀하시였기때문이다.

《이것을 보십시오.》

야조브와 심철범은 그 말씀을 듣고 동시에 그이를 바라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 문건을 야조브앞으로 쑥 내미시였다. 그것을 받아든 야조브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원수동지, 제가 드린 그 자료를 먼저 보십시오. 우리의 이야기는 그다음에 나누기로 합시다.》

야조브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풀지 못하자 그이께서 가볍게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시였다. 한쪽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야조브동지가 우려하는 문제에 대하여 저도 깊은 주의를 돌리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모스크바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동지를 초청하도록 해당 부문에 지시를 주었던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제가 방금 드린 그 자료를 보신 다음에 나누기로 합시다. 저는 동지가 필요하다면 아무때나 시간을 내겠습니다. 래일도 좋고 모레도 좋습니다.》

야조브는 그이로부터 받은 문건을 서류가방에 넣으면서 동의를 표시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심철범에게 한마디 하시였다.

《심철범동무도 함께 보는것이 좋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야조브의 건강을 묻고 나이많은 사람들은 동맥경화에 주의를 해야 한다시면서 그 치료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모습을 보아서는 그들중 어느 한사람도 최근 이틀동안에 그이께서 다 해서 네시간이나 다섯시간도 눈을 붙여보지 못하시였으며 그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는 총참모장 최광이 적들이 군사분계선일대에 무력을 집중하고있다는것과 다량의 삐라와 교란물자를 떨구고있다는 보고자료를 드리였다는것을 상상할수 없었다.

야조브는 물론 심철범도 그이께서 주신 문건에 미국의 차기 대통령후보인 미상원 공화당원내총무인 보브 돌과 미중앙정보국장이 우리 나라의 《붕괴》를 3년이 아니라 2년으로 앞당길데 대한 모의를 한 사실이 적혀있다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지금 응접실에 금강산발전소건설문제와 최근에 더욱 긴장해진 나라의 식량문제에 대한 결론을 받으려고 온 부총리들이 김정일동지를 초조히 기다리고있다는것은 더욱 몰랐다. 그이께서는 매우 온화한 자세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야조브와 헤여지시면서 심철범에게 손님과 관련한 전화는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에게 직접 걸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그날 밤 12시가 다 되여서 심철범은 전화로 김정일동지께 야조브의 반영자료를 보고드리였다.

야조브는 돌아오자 즉시 김정일동지께서 주신 문건을 보았으며 심철범자신도 보았다는것, 그것이 천만사람을 놀래우는 번개라면 야조브 자기가 가지고갔던 문건은 밤길손이나 놀래울 반디불이였다는것,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였는데 그렇다면 그이께서는 무엇을 믿으시는가 한다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미리 준비하고있던 말마디를 쏟아놓듯이 한마디로 간단히 말씀하시였다.

《그 대답은 동무가 주게 될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