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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김동환을 잠에서 깨운것은 부엌에서 나는 달그락소리였다. 동환은 습관대로 오른쪽팔을 뻗쳐보았다. 옆에서 자던 안해가 없었다.

이제 안해는 아침밥을 다 해놓은 다음 자기의 옆에 와서 다시 누울것이다. 그리고 숨소리를 죽이고 지켜있다가 다섯시 정각에 어김없이 흔들어깨울것이다. 동환은 잠에서 깨면서 안해의 체취를 느끼게 될것이다. 그때까지 동환은 안해를 부대직일관처럼 믿고 푹 자도 된다. 이러한 새벽잠은 얼마나 단것인가!

동환은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여전히 부엌에서는 달그락소리가 다정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잠들수 없었다. 이날따라 안해에 대한 애틋한 정이 전류처럼 온몸에 흘러들며 잠을 날려보내는것이였다. 세월은 퍼그나 흘렀으나 아직도 청초한 안해의 자태, 로인반점 하나없는 맑은 얼굴, 박씨처럼 가쯘하고 희디흰 이발, 입술의 홍조, 아니 그보다도 신혼시절의 순정은 변덕을 모르는 심산속의 샘물처럼 아직도 여전했다. 안해 렴순경은 군관안해의 세파, 말하자면 끊임없는 이사, 가사일을 혼자 떠맡아야 하는 고립과 무시로 집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나타나는 남편을 기다려야 하는 고독속에서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순경은 동환이가 동해의 어느 군항에서 경비정을 타고있던 시절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왔다. 미모의 대학졸업생은 《군관촌》생활에 잘 어울리였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남편을 깔보지도 않았으며 자기보다 지식에서 어방없이 못한 이웃집부인들과 섭쓸려 군인가족생활을 하며 돼지도 기르고 염소도 방목하며 어장에 나가 고기밸을 따는 등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태가 단아하였다. 미모처럼 그의 마음 또한 비단이였다. 그는 남편에 대해 언제나 고분고분하였으며 항변같은것은 생각할수도 없었다. 그가 기분을 드러내보일 때란 두가지 경우였는데 남편의 일이 잘됐을 때와 못됐을 때였다. 앞의 경우에 그는 박씨같은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활짝 웃었고 뒤경우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여 쌕쌕거렸다.

그는 남편의 작식대원이였으며 그의 총의 멜끈이였으며 그가 타는 경비정의 추진기였다. 동환의 군사복무를 순경이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동환은 비상소집이라든가 출장이 있어 무시로 새벽에 나가면서도 언제 한번 선밥을 먹어본적이 없었다. 순경은 언제나 미리 밥을 지어놓고 지켜있다가 그를 깨워서 먹여보내군 하였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애와도 같은것이였다.

동환은 순경이가 언제 들어와 자기옆에 다시 누웠는지 몰랐다. 생각에서 깨여나보니 안해는 자기의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죽이고있었다. 보나마나 마음속의 초침을 세고있을것이였다.

가정과 생활이란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그러나 잔잔하고 향기만을 뿜던 그들 부부생활의 호수에 한점의 파문이 일게 되였다.

집에 왔던 아들 남철이 남편 동환이가 내던진 배낭을 집어 한쪽 어깨에 걸치고 나가면서 쾅 닫아버린 문소리는 부엌에 있던 순경이를 크게 놀래웠다. 황급히 출입문쪽으로 뛰여나왔으나 남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버지가 정말 아들을 쫓아버린것이였다.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 들을수 없었던 순경은 동환이가 실성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남편을 힐끗 보고는 신발장에서 신을 찾아 신고 뒤쫓아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일생 들어보지 못한 남편의 노성이 들린것은 그때였다.

《내버려두오!》순경은 깜짝 놀라 문고리를 쥔채 무춤하며 뒤돌아보았다. 《내버려두라는데!》

남편이 무섭게 쏘아보며 되뇌이였다. 그런 눈길도 순경은 처음 보았다. 그는 대번에 몸이 굳어졌다. 층계를 내려가는 아들의 발자국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순간 순경은 남편의 노한 목소리도 무서운 눈길도 다 잊었다. 그는 문고리를 비틀어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계단을 마구 뛰여내렸다.

굽높은 구두에서 나는 달가닥소리가 들려왔다. 동환은 현관에 선채 열려진 문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고있었다. 아들의 일로 하여 리성을 잃을 정도로 격노했던 그는 자기가 안해를 어떻게 대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급한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어서 돌아오기만을 초조히 기다릴뿐이였다. 만일 안해가 아들의 손목을 끌고 들어온다면 다시 쫓아버릴것이다. 그는 주먹찜질이라도 할 심산으로 은근히 두주먹을 부르쥐였다. 한 겨울의 찬바람이 창문을 울리고있었다.

(그까짓 자식, 내버려두지 않구!) 동환은 화가 나서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실내옷바람으로 뛰여나간 안해를 생각하여 옷장에서 그의 솜저고리를 벗겨들었다.

문을 나선 그는 처음에 그들이 계단의 어느 층에서 만나 싱갱이질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있으리라고 생각하며 한층한층 내려갔다. 그러나 아래층까지 다 훑어봤으나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환은 아빠트현관을 나섰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의 행방을 도무지 가늠할수 없었던것이다. 비로소 아들에게 너무 독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복거리는 궤도전차시간이 끝나면 교통이 막히고 만다. 지금은 자정도 지난 한밤중이다. 아들이 갈 길이 과연 어디인가. 상원, 그들의 작업조가 있는 곳까지는 100리길이다. 남철은 부득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가 그 길을 걸어서 떠났단 말인가?

그렇다.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그래야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편안한줄 아는가. 그런데 순경은 어디로 갔는가. 아들과 함께 떠났을리는 만무하다. 그것도 실내옷바람으로 굽높은 구두를 신고말이다.

실내옷바람인 그자신도 금시 몸이 떨리였다. 그렇다고 안해의 행방을 알지 못한채 집으로 올라갈수는 없었다. 그는 아들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았다. 오직 안해 순경이만을 걱정했다. 그는 자기가 안해에게 무섭게 소리쳤던 사실을 상기하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아빠트현관을 떠나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을 따라 궤도전차정류소에 이르렀다. 심야에도 다니는 시간뻐스가 있을수 있는것이다.

《철야운행》이라고 쓴 2번정류소에 사람들이 줄지어있는것이 보였다.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서 안해와 아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차 실망하였다.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덜덜 떨면서 아빠트로 되돌아왔다. 두다리가 꽛꽛해서 걸음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줄곧 안해생각때문에 자기가 손에 그의 솜외투를 들고있었으며 그것으로 언몸을 가릴수 있다는것도 잊고있었다.

그때 순경은 아빠트바깥현관계단밑 외등이 미치지 않는 후미진곳에 서서 다가오는 남편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도 남편처럼 아들이 아빠트의 어느 계단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으리라고 믿고 그 높은 12층을 두어번 오르내리였다. 그리고 실내옷바람으로 궤도전차정류소까지 갔으며 거기서 아들을 찾아보다가 언 몸을 덜덜 떨며 아빠트로 되돌아왔다. 그는 오는 길에 덤비면서 지나가는 남편을 보았다. 그의 손에 자기의 솜외투가 들려있는것도 알아보았다.

콱 얼어죽고 말테다! 솜외투는 동태귀신한테나 입히라지! 지금 그는 다가오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 말을 곱씹고있었다. 매정한이! 지독한이! 100리나 되는 밤길을 걸어갈 아들을 생각하니 정말 콱 죽어버리고싶었다.

남편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현관으로 들어가더니 얼마쯤 지나서 다시 뛰여나왔다. 여전히 실내옷바람으로 손에는 자기의 솜외투만을 들고있었다. 순경은 인기척을 냈다.

남편의 머리에는 성에가 하얗게 불려있었다. 이제 남편이 손목을 쥐여당기면 와락 안기여 그의 언 몸을 녹여주리라, 뜨거운 입김으로, 온몸의 체온으로! 그러나 정작 남편의 손에 손목이 잡히였을 때 순경은 팩 돌아섰다. 남편은 손목을 놓고 량어깨를 잡더니 자기쪽으로 돌려세웠다. 순경은 용수철을 넣은 인형처럼 도로 튕겨났다. 바로 그때 순경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남편의 솥뚜껑같은 큰 손이 자기의 뺨을 후려치는것을 느꼈다. 눈앞에서 번개가 일었다.···

동환은 그 일을 몹시 후회하였다. 무슨 정신에 안해의 연약한 몸에 손을 대였던지 몰랐다. 사랑하기때문이였다고? 허지만 그는 안해의 반박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남철이도 그렇게 쫓아냈지요? 사랑하기때문에? 사랑하기때문에?)

(그렇소, 사랑하기때문이였소!)

동환은 자신을 속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확고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안해앞에 사죄하고싶지는 않았다. 워낙 무틀지고 과묵한 그는 그런것을 낯간지러운 일로 여기였다. 한마디의 사죄도 없었지만 남편을 대하는 순경의 태도는 여전하였다. 무슨 사람이 그런지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 두세번 비상소집훈련이 있었는데 순경은 이전보다 더 극성스럽게 준비를 해주었고 아침 일찌기 밥을 지었으며 여전히 자기의 옆에 와서 누웠다가 깨워주었다. 동환의 후회는 더욱 커졌다.

(모든것이 그놈의 자식때문이다.)

그는 아들을 욕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다는것을 인차 느꼈다.

남철이가 유치원때였다. 부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수 없는 철없는 아들로부터 동환은 뜻밖의 권고를 받았다.

어느날 아침 동환은 출장을 떠나기에 앞서 자체학습과제를 해놓으려고 책상에 마주 앉아있었는데 남철이가 조용히 들어와 등뒤에 서는것이였다. 꼬마는 뒤짐을 지고 어른스레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아버지.》하고 불렀다.

《오, 너냐?》

동환은 뒤돌아보지 않은채 대답했다. 그는 애가 점적해서 자기를 부른줄로 여겼던것이다.

《아버지.》

남철이가 다시 불렀다.

《왜?》하며 동환은 왼손을 뒤로 가져가 남철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하던 발취를 계속하였다. 그때 남철이 등뒤에서 빽 돌아 책상옆으로 오더니 아버지가 펼쳐놓은 책을 탁 덮어버리는것이였다.

그제야 동환은 아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린 남철은 자못 심중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무슨 일이지?》

동환은 정색해서 물었다.

《아버지, 나하고 약속하자요.》

《응? 무슨 약속?》

《글쎄 약속하자요!》

어린것은 새끼손가락을 꼿꼿이 편 손을 동환의 앞에 내들었다.

《빨리!》

동환은 빙긋이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펴서 아들의 손가락에 걸었다. 아들은 이번엔 새끼손가락을 건채 엄지손가락을 펴서 도장을 누르자고 하였다. 동환은 아들애의 요구대로 응해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다른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동환의 책상우에 놓고는 돌아서 나갔다. 가족휴양권이였다.

전날 밤 장기간의 항해훈련에서 돌아온 그앞에 안해가 부대에서 보내왔더라고 하면서 가족휴양권을 내놓았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10여년이 되여오지만 언제 한번 남들처럼 부부가 함께 휴양을 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동환은 안해의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두말 못하게 딱 잘라버렸다. 래일 아침에 또 출장을 간다고··· 그는 인차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에 안해의 흐느낌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그리고 침대밑방바닥에 남철을 끼고 누운 안해의 어깨가 떨리고있음을 보았다.

아들애가 가져다놓은 가족휴양권은 안해를 울린 그 휴양권이였다. 남철은 엄마편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이런 일은 그들부부의 생활에서 드문히 있었다.

그 시절에 동환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론쟁에 자주 말려들었다. 사랑은 주는것이다. 아니 받는것이다. 그것도 아니다. 주고 받는것이 사랑이다. 론쟁의 결론은 대체로 이러루하였다. 동환은 언제나 사랑은 주는것이라는 편이였다. 다시말하여 희생이며 무한한 헌신이 사랑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주장하였다. 사랑을 위하여서는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 망망대해에서의 항해, 태여난 날은 각각이여도 유사시에 이 세상을 떠나는 날만은 같게 될 함전체성원들과의 집단적인 희생을 각오해야만 하는 해상경비대로서의 그의 직무가 그러한 사랑관을 가지게 하였는지도 몰랐다.

지금 동환은 자기옆에 누운 순경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아들 남철을 생각하고있었다. 순경이와의 사이에 파문을 던지고 떠나간 그 아들이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뵙게 될줄을 어찌 알았으랴!

최고사령관동지로부터 서한을 받던 날 그들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비로소 그들사이에 일어났던 파문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부부의 정은 본래의 궤도에 다시 들어섰다.

단 한가닥의 그늘이 있었다면 남철에게서 편지가 없는것이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쓰신것처럼 아들은 훌륭한 군인이 될것이였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아도 훌륭한 군인만 된다면!)

동환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가 아들의 편지를 기다리는것은 망울진 꽃을 들여다보면서 어서 피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였다.

생활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이때 가슴에 얹혀있던 순경의 손에 힘이 가며 지그시 누르는것이 알렸다. 《기상》하는 다정한 음성이 나직이 귀전을 울렸다. 새벽 5시가 된것이다.

동환은 비상소집때와도 같은 빠른 동작으로 세수를 하고 군복을 입은 다음 순경이 차려놓은 밥상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별로 씹지도 않고 어린애처럼 국에 만 밥을 꿀꺽꿀꺽 넘겼다.

《아이참, 천천히 드세요.》

순경은 두무릎을 모두고 앉아서 지켜보고있었다.

《이번엔 갔다와서 가족휴양을 꼭 갑시다.》동환이가 문득 말했다.

《됐어요.》

《아니, 왜?》

《애들도 다 자라서 집을 나갔는데···》

《인생이 다 흘러갔단 말이지.》

동환은 미안쩍어하며 말했다.

《통일된 다음에 저 남해바다가로 갑시다. 거기 해당화가 동해의 해당화만 못하지 않을거요.》

《글쎄 그때라면 몰라도.》순경은 남편의 턱에 묻은 밥알을 떼주며 물었다. 《동해쪽으로 가세요?》

《아니, 서해로.》

동환은 거짓말을 했다.

《오래 있게 돼요?》

《아니 며칠간.》

동환은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이번 훈련은 적들의 새로운 도전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실동훈련이였다. 작전일군인 그는 적어도 한두달은 해병들과 함께 동해에서 생활해야 할것이다. 순경은 본능적으로 남편의 말을 거꾸로 해석했다. 그는 남편을 아빠트밑까지 바래워주려고 일어서서 솜저고리를 입었다.

《아니, 나오지 마오.》

동환은 안해의 두어깨를 잡아세우고 저으기 엄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정말 잠간 다녀오려는 사람처럼 훌쩍 집을 나섰다.

순경은 그저 현관에 선채 계단을 뛰여내려가는 (아직 승강기가 뛸 시간이 아니므로 남편은 계단을 리용하였다.) 남편의 발자국소리를 듣고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사라졌던 발자국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와지더니 문앞에 와서 멎었다.

문이 벌컥 열리였다. 남편이 다시 들어섰다.

순경은 다급히 물었다.

《뭘 잊었어요?》 그는 초조해하며 남편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동환은 천천히 머리를 저으며 안해를 뚫어지듯이 들여다보고있었다.

《왜 그러세요?》

순경은 그의 눈이 불타고있음을 느끼고 게면쩍어하였다.

《남철이한테서 말이요. 편지가 오면 잘 건사해두오.》

어처구니없는 부탁이였다. 그것을 아무렇게나 건사할가? 순경은 이 순간 남편이 매우 이상스러웠고 어째선지 측은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날 아침 10시 순경은 우편통신원으로부터 남철이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그리운 아버지!》하고 남철은 서두에 편지가 늦어진데 대해서와 이제는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수 있으리라는데 대하여 쓰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그날 밤 상원까지 100리, 밤길을 걸어가는 이 아들의 몰골을 아버지가 보았더라면 련민이 아니라 환멸을 느꼈을것입니다. 군화는 끈이 풀어지고 단추를 벗겨놓은 군복앞자락은 속내의가 들여다보이게 너풀거렸으며 군모는 삐딱하게 머리우에 놓여있었습니다. 몇번 화물자동차를 잡아타려다가 휘뿌려난 저의 온몸은 눈과 흙범벅이였습니다. 저는 손에 훌쭉한 빈 배낭을 보자기처럼 들고있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다 내던졌던것입니다. 저녁밥을 먹지 못했던 저는 너무 배가 고파서 수확한 무우밭에 들어가 언 무우 몇개를 뽑아 씹어먹었습니다. 체모를 잃은 병사의 모습을 그밤 아버지가 아니라 길가던 뭇사람들이 보았더라도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남철은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이 한가슴에 가득찼던 자기가 그때에는 그 추한 모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격을 버리지 말라, 군인의 체모를 잃지 말라, 이것이 제가 찾은 군인생활의 교훈이고 병사의 진리입니다.

아버지, 저는 사람들앞에서 모든 군인들이 김정일장군님을 닮자고 말했습니다. 그이처럼 완성된 인격을 갖추자는것입니다.》

가슴이 후더워난 순경은 편지에서 눈을 떼고 옷소매로 두눈을 누르고있었다.

그는 동환이가 빨리 돌아와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아들의 편지를 보게 될 그 행복한 순간을 눈앞에 그리며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아버지, 저에 대해서는 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힘들지 않습니다. 질통도 그 질통이고 광차도 그 광차이고 착암기도 그 착암기이고 먹고 자는것도 그전과 같지만 전혀 부담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군복을 단정히 입고있으며 저의 군모의 오각별은 언제나 반짝이며 어깨우의 총창은 언제나 서리발처럼 번뜩이고있습니다.

아버지, 저의 몸에 흐르는 새형의 피와 넋과 의지를 주신분은 우리의 장군님이시라고 생각하니 그 고마움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기회가 있으면 저의 이 마음을 장군님께 전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의 편지를 다 읽은 순경은 그것을 봉투에 도로 넣어 풀로 봉한 다음 동환의 서재에 들어가 아무때나 인차 볼수 있도록 탁상등밑에다 놓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