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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우는 군복을 착용하고 치료용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점점이 홍조가 물들고 관자노리에 드러난 파란 피줄이 전에 없이 높이 뛰고있었다. 이따금 탁자우에 놓여있는 시계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기대와 초조감이 어리였다.

그는 아침 투약시간에 먹고난 몇장의 약을 쌌던 종이를 무릎우에 놓고 손바닥으로 쓸어서 주름을 펴고있었다.

며칠전 회진을 들어온 원장에게 오진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원장선생, 솔직히 말해주시오! 내 병이 불치의 병이지요?》

불의의 질문에 원장은 굳어졌다. 사실 오진우는 불치의 병이였다. 지난 설을 전후하여 악화되였다가 요즘 좀 호전된듯 했으나 그것은 꺼지기전 초불의 반짝임과 같은것이였다.

원장의 짐작에는 며칠 남지 않은것 같았다.

허나 사실을 말해줄수는 없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나를 더 괴롭히지 마시오!》

오진우의 얼굴이 이그러들고 입에서는 말이 아니라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원장은 동통이 올 때에도(그는 동통형페암이였다.) 그가 이처럼 괴로와하는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제 회진때 환자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투약이 끝난 다음 원장은 귀속말로 낮 12시경에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나오신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오진우는 달았던 점적을 떼던지고 간호원이 발을 동동 구르건 말건 환자복까지 벗어던졌다.

그는 그러느라고 최후의 기력을 다 냈으며 그 기력으로 앉아있는것이였다.

멀리 시내 어디선가 12시 고동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원장의 안내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오진우는 뒤에 따라선 최광은 보지 못했다.

문안인사가 오가고 김정일동지께서 환자앞에 가져다놓은 걸상에 앉으시는것을 보자 원장은 자리를 피해 나갔다.

최광은 환자의 옆에 서있었다. 그는 오진우가 그이를 맞이하느라고 탁자우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흩어진 약종이를 차근차근 겹쳐놓고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때 오진우는 원장으로부터 불치의 병이라는 말을 듣던 순간을 되새기였다. 그의 머리에 피뜩 스쳐지나간 생각은 이젠 최고사령관동지를 다시 뵙지 못하겠구나 하는것이였다. 항일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던 때와 비슷했는데 그때에는 이젠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를 다 봤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었다.

지금 그이께서 오진우앞에 마주 앉아계시였다.

응당 기뻐야 할 이 순간에 오진우는 그이를 혼자 남겨두고 가게 되였구나 하는 아픈 생각이 전류처럼 온몸에 뻗치는것을 느끼였다. 어머님을 일찌기 여의신 그이를 모신 때로부터 장장 반세기 그이보다 스무살이나 우인 오진우의 가슴속에 《령감님》이라고 친근하게 불러주실 때마다 무시로 갈마드는것은 혈육의 감정이였다. 이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졌고 수령님을 잃은 후에는 참을수없이 절절해졌다. 수령님은 안계시는데 이젠 그이 혼자서···

오진우의 눈굽에는 눈물이 고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눈물을 리해하신듯 한손으로 가늘어진 환자의 팔을, 다른 한손으로 환자의 얼음처럼 찬 손을 꽉 잡고계시였다. 오진우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병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화제에 올리지 않으시였다.

그렇다고 오진우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이께서 이미전에 알고계시였을것이고 원장이 그이의 승인을 받고 어제 말해주었을것이다. 바로 그래서 분망하신 그이께서 짬을 내시여 이렇게 걸음하시지 않았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째서 점적을 떼고 환자복을 벗어놓았느냐고 묻지도 않으시였고 오진우는 군복을 입고 장군님앞에 나서고싶었다고 대답을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이야기가 맞잡은 손을 통해 오가는것이였다.

오랜 침묵끝에 김정일동지께서 최광이 만지작거리고있는 종이장들을 바라보며 《그건 뭘 하는겁니까?》하고 물으시였다.

《저 령감이.》하고 최광이 직함대신에 이렇게 부르며 말하려 하자 오진우가 가로챘다.

《약을 쌌던 종이입니다. 휴지통에 던지려는것을 한장한장 모아둡니다. 우리 집 애들이 와보고 궁상스럽다고 하지요. 고생을 해보지 않은 애들이 뭘 압니까. 지금 구두쇠니 뭐니 하고 내 뒤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날더러 장군님앞에 손을 내밀라는건데··· 내사 그럴수 없지요. 허허···》

《허허···》

김정일동지께서 그의 말에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해주시였다.

《지금 애들이 호강스럽게만 자라다보니 속이 궁글었습니다.》하고 최광이 비분강개한 어조로 끼여들었다.

《내가 전후에 애를 하나 데려왔는데 다 길러놓으니 돌아도 안봅니다.》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최광이 일점혈육이 없이 늘 고독하게 지내고있다는것을 잘 알고계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위안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마디 하시였다.

《그래도 그 애들이 우리 혁명의 대를 이어가고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교양을 해야지요.》

최광이 여전히 비분강개해져서 계속했다.

《요새 군대에 영양실조증 환자가 더러 생기는데 나라형편이 어려우니 잘 먹지 못하는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사상병입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땐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영양실조증이란 말도 몰랐습니다.》

오진우가 동감인듯 턱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이 어려운 때 장군님만 남겨두고 가자니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하다는 말이 맴돌고있었다. 그래서 그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입을 여시였다.

《이야기들을 하십시오. 항일투사동지들은 그때 고난의 행군을 어떻게 견디여냈습니까?》

그이께서는 이 질문을 일부러 최광을 바라보며 하시였다. 환자의 부담을 덜고싶으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어려웠던건 아닙니다.》하고 최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면팔방에서 왜놈들이 진드기처럼 달려들고 눈보라가 사나웠습니다. 풀뿌리를 캐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생눈을 움켜먹으면서 100여일을 싸우다나니 지쳐 쓰러진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머리를 쳐들고 보면 언제나 앞장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붉은기를 들고계시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장군님.》하고 오진우가 그이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말씀올렸다.

그는 앉아있기가 힘들었지만 될수록 그것을 감추면서 많은 말을 하려고 애썼다.

《지금의 〈고난의 행군〉은 그때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때는 수년간의 싸움에서 단련된 혁명군대원들이 했지만 지금은 이 나라 남녀로소가 다 참가하는 전인민적인 행군입니다. 게다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새세대가 주력군이 아닙니까!》

오진우는 그럴수록 김정일동지를 더 받들어드리지 못하고 가게 되였다는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로투사동지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무력부장동지, 어서 병을 털고 일어나십시오. 설날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견디여내야 합니다.》

이때 원장이 기척이 없이 들어와 누구에게라 없이 《10분이 되였습니다.》하고 알리였다.

오진우가 원장을 쏘아보았다.

원장은 그의 시선을 외면한채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았다. 오진우는 그 10분이 그이께서 정하신 시간임을 알아차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어서시였다.

그리고 자신이 낚은 산천어를 가져왔다고 하시자 오진우는 언젠가 그이께서 산천어탕을 끓여놓고 비행기로 부르시던 사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였다.

(그이께서 이 엄동설한에 낚시질을 다 하시다니···)

잠시후 점적을 달고 다시 병상에 누운 오진우는 그이와 나눈 10분간의 대화를 상기하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새세대가 어쩌고 저쩌고 주책없는 말만 한것 같았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였다.

오진우를 남겨두고 돌아서신 김정일동지의 발걸음은 무거우시였다. 환자를 더 도울수 없고 완쾌시킬수 없는것이 가슴이 저리고 안타까우시였다.

어쩌면 그를 다시는 못볼것만 같으시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시였다. 우리 혁명의 로세대들의 근심을 덜어주고싶으시였다. 그것을 자신의 의무로 감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세대를 더 잘 키우고 단련시켜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시였다.

특출한 령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 있어서는 결심이자 곧 실천이였다. 그이께서는 병원문을 나서시자 곧 병사들을 찾아 전선길에 오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