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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도 지나고 세밑추위가 들이닥칠무렵 옥천휴양소가 자리잡고있는 골짜기에는 이상하게도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가 멎으며 뭉게구름이 들리더니 서산에 진 해가 갑자기 피빛노을을 화염처럼 뿜어올렸다.

잠시후 노을은 사라지고 사위는 다시 어두워졌다. 컴컴한 먼 공간에서 우뢰소리가 둔중하게 들려왔다. 온 나라 인민이 피눈물을 뿌렸던 7월이후로 자주 보게 되는 자연의 이상현상이였다.

국상을 치른지도 100일이 넘었건만 자연은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호곡하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서거는 수백수천만사람들의 마음에는 물론 이 나라의 하늘과 땅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듯싶었다.

군부대 참모장인 심철범장령은 야전용승용차의 앞자리에 앉아서 차창에 이마를 바투 대고 때아닌 폭우에 후줄근해진 수림을 내다보고있었다. 골짜기 량옆을 덮고있던 흰눈이 폭우에 녹아내려서 거밋거밋한 땅이 험상한 상처처럼 드러나보였다.

옥천휴양소의 푸릿한 정원등을 바라보는 장령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였다.

인민무력부장의 호출을 받고 평양에서 출발한 그 순간부터 장령의 머리를 꽉 채운것은 오직 한가지 생각ㅡ 치료휴양을 하고있는 무력부장이 왜 찾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도 무력부장이 중병을 앓고있으며 일체 집무를 금지당하고있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그러나 정원등을 바라보는 지금 장령의 눈앞에는 지난 4월의 봄밤이 떠올랐다. 그때 저 외등밑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군장령들을 만나주시였다. 이순간 심철범에게는 그날 긴박한 국제정세를 분석하시며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를 잘 받들라는 간곡한 당부를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음성이 생생히 되살아나고 뿌잇한 망막에는 그밤 정원을 꽉 채웠던 해빛같은 미소가 어른거리는것이였다.

휴양소마당에서 오진우원수가 심철범을 기다리고있었다.

《내 방에 들어가 기다리시오.》

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심철범을 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인사를 받으며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심철범은 우뚝 선채로 굳어져버렸다. 수백리길을 가슴을 조이며 달려온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도 간단하고 딱딱했다.

오진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꼿꼿이 앞만 바라보면서 정원을 거닐고있었다. 온몸을 두툼한 군용털외투로 감쌌지만 강마른 체구와 목우로 앙상하게 솟아오른 두어깨가 알렸다. 늙은 원수는 무섭게 수척했다. 심철범은 그의 몸을 못쓰게 만든것이 병마가 아니라 정신적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진우가 거처하는 방으로 먼저 들어온 심철범은 그가 몹시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그 봄밤만 해도 오진우는 얼마나 원기가 왕성했던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신 자리에서 그는 젊은이처럼 챙챙한 목소리로 대답올렸고 수령님의 교시를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정자로 또박또박 수첩에 적어넣군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기가 전혀 없어보였다.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수 있는가. 수령님의 서거는 항일의 로투사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7월이후 몇달사이에 정정하던 항일투사들이 여러명 세상을 떠났다.

심철범은 무력부장에 대하여 별반 아는것이 없었다. 오진우가 자신에 대한 말을 잘하지 않기때문이였다. 그는 표정으로조차 자기를 나타낸적이 별로 없었다. 오진우는 강대처럼 메마른 인상을 주었다. 세상은 그를 눈물도 웃음도 노래도 없는 인간으로 알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직후 오진우는 련사흘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어디에 그런 눈물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정경앞에서 가족들조차 놀랐었다.

오진우는 식음을 전페했다. 물 한모금, 밥 한숟가락 들지 않고 입을 앙다물고있는 그를 부인과 막내인 외동딸이 겨우 돌려세웠다. 그러고보면 그는 눈물이 많아도 아주 많은 사람이였다.

알려지지 않은 한가지 일화가 있다. 아들 4형제를 연거퍼 둔 그는 딸을 무척 그리워했는데 늘그막에 딸 하나를 보았다. 그 딸이 너무도 귀해서 젖 떨어지자부터 데리고다니면서 애지중지하였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어떤 때에는 자기 사무실 책상우에까지 앉혀두고 보았다는것이다.

심철범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중년의 녀성이 차를 들고 들어와 권하고 나갔는데 그가 바로 그 딸이였다. 치료휴양기간에도 오진우는 전문간호원들을 다 물리치고 딸의 간호를 받고있었다.

원수의 딸은 손님에게 웃음을 지으며 례절을 차렸지만 수심만은 숨기지 못하고있었다.

딸인들 아버지의 건강때문에 얼마나 상심하고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누구해도 오진우의 건강을 두고 제일 마음을 쓰시는분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서거후 많은 사람들이 그이의 곁에 오진우와 같은 항일의 원로들이 있어 마음을 놓고있었다.

심철범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런데 오진우가 저 상태이니 그이께서 얼마나 상심하시겠는가. 심철범은 한숨을 쉬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큰 방 한가운데 널다란 침대가 놓여있었다. 미색 비단벽지를 바른 방안은 촉수높은 백색등에 조명되여 푸른 하늘밑에 있는듯 한 감을 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좋아하시던 채광이였다. 묻지 않아도 이 방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쓰시던 방임을 알수 있었다.

오진우가 이 방에 든것은 김정일동지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니 장군님께서 오진우의 건강을 두고 얼마나 깊이 마음쓰시는것인가.

심철범은 무거워지는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오진우가 불치의 병에 걸렸으며 거기에 대해서는 가족들은 물론 그의 서기나 부관도 모르며 이 세상에서 오직 의료일군들과 그이께서만이 알고계신다는데 대하여서는 짐작도 할수 없었다.

밖에서 가벼운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나더니 이어 발동소리가 가까와왔다. 심철범은 그 소리를 들으며 오진우에게 자기 말고 다른 손님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는 쏘파에서 움쭉 일어섰다. 그때에야 비로소 평양을 떠나면서 머리를 지배했던 의문이 새삼스러워지며 더 커졌다. 무력부장이 왜 호출했을가?

《응접실로 오시랍니다.》

오진우의 딸이 들어와 심철범에게 알리였다. 그는 방안의 벽지와 같은 색갈의 미색주단을 깐 복도를 거쳐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문앞으로 심철범을 안내하였다.

《중장동지, 들어가십시오.》

그 방에는 외투를 벗어놓아서 수척한 몸이 그대로 드러난 오진우와 령장에 커다란 원수별을 단 우람한 체구의 외국군인이 앉아있었다.

심철범은 오진우에게 관자노리에 손을 붙여 인사를 한 다음 그 사람에게도 같은 동작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는 인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사람이 바로 이전 쏘련국방상이였던 드미뜨리 야조브원수임을 알아본것은 다음순간이였다. 심철범은 무력부장이 자기를 부른 용건과 이 외국손님의 출현이 무슨 련관이 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인차 머리를 저었다. 자기는 야조브원수와 그 어떤 사업상련관도 없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을가? 중병을 앓고있는 오진우를 방문하는 손님은 극히 제한되였다.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뒤에는 더욱 제한하였다. 간혹 총참모장이라든가 최고사령부성원들의 방문이 허용되였는데 이런 경우에도 최고사령관동지의 사전승인이 있어야 하였다.

심철범은 저으기 긴장한 심정으로 오진우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야조브쪽으로 시선을 돌리군 하였다.

쏘련이 해체된 후 이전 쏘련의 정계, 군계, 사회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우리 나라를 자주 방문하고있었다.

야조브와 관련하여 오진우에게 사전통보된 내용은 쏘련의 해체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한 나라 국방상의 자격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부장의 병문안을 열렬히 희망한다는것, 이 희망이 김정일동지께 보고되여 실현되였다는것이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오진우는 못내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10년전 뜻밖의 사고로 중태에 빠진 오진우는 쏘련국방성의 원수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때 야조브는 여러차례 문병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 두사람은 매우 친밀해졌다.

오진우가 흥분된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고있을 때 김정일동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조브가 옥천휴양소에 머물게 되였으니 그와 말동무를 하면서 지내라는것, 그가 우리 나라에 체류하는 동안 심철범중장을 동행시키기로 하였는데 무력부장이 그를 불러 직접 과업을 주라는것이였다.

이러한 경위를 알길 없는 심철범은 여전히 긴장한 마음으로 오진우를 지켜보고있었다. 그를 한참 마주보던 오진우가 천천히 시선을 야조브에게로 돌리고 호흡기질환환자들에게서 흔히 듣게 되는 쌕쌕하는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원수동지, 중장을 소개합니다.》

심철범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군인의 례법대로 힘차게 보고했다.

《조선인민군 중장 심철범.》

심철범은 자기를 소개한 후에도 그냥 자리에 서있었다. 자기가 외국손님에게 왜 소개됐는지 또 어떤 과업을 받게 되겠는지 알아야 했던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그를 더는 쳐다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서로 안부를 물었으며 간단간단히 회포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에야 오진우는 심철범을 바라보며 여전히 쌕쌕하는 숨소리가 섞였으나 매우 명료한 어조로 말했다.

《심철범동무, 원수동지가 우리 나라에 체류하는 동안 그와 동행하시오.》

《알았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오진우는 그의 대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홱 내저으며 말했다.

《동무는 나의 명령이 아니라 최고사령관동지의 지시를 집행한단말이요!》

심철범은 선자리에서 몸을 꼿꼿이 펴며 바지혼솔에 손을 대고 차렷자세로 오진우를 바라보았다.

자기에게 이 뜻밖의 과업을 주신 김정일동지의 의도를 알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오진우도 그것을 알수 없었다.

방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