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9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9

 

오늘은 정여삼관리위원장이 취한 조치에 따라 금오리 농장원들이 모두 떨쳐나 가랭이틀 포전정리를 도왔다. 정여삼은 농장원들에게 불도젤작업을 할수 있도록 6작업반과 7작업반의 토지경계를 이루는 골 이쪽 둔덕의 바위들을 모두 파내고 언흙을 까주도록 하였다.

한것은 땅이 얼어 며칠째 불도젤들이 능률을 내지 못했기때문이였다.

홍산옥은 일찌기 점심을 먹고 남편과 교대하기 위하여 불도젤이 있는 둔덕으로 올라갔다. 그가 한창 올라가는데 농장원들은 그제서야 점심들을 먹으러 내려오고있었다.

《왜 벌써 나왔소?》

기관실뚜껑을 열어놓고 교대준비를 하던 남편이 코멘 소리로 맞아주었다.

《감기는 좀 나았어요?》

《코물이나 나오는 정도고 열은 나지 않소.》

홍산옥은 다행으로 여기며 작업장을 휘둘러보았다. 오전중에 날라온 흙밥을 타산해보았는데 실적이 시원치 못했다.

《여기는 토질도 그래 암만해도 저 웃쪽에 좀더 붙어야 할것 같소. 한번만 붙어서 자릴 잡으면 한결 일하기 쉽겠는데···그래서 최인국이 그 사람이 아까 시도를 해보다가 종시 단념하고말았소.》

남편은 기관소리를 들어보더니 기관실덮개를 내리였다. 산옥에게는 그러는 남편의 거동이 어쩐지 지친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씌였다.

《제가 운전할테니 들어가 좀 쉬세요. 눈에 피발이 다 섰어요.》

《그럴가? 아닌게아니라 목구멍이 달아오르는게 심상치 않구만. 이거 감기가 성하면 야단인데···》

《식사칸아래목에서 땀을 내세요. 내 배낭에 아스피린이 있는데 찾아 잡숫고요.》

남편을 숙소로 들여보낸 산옥은 곧 운전칸에 올라 일을 시작하였다. 작업조의 불도젤들은 아직 형태가 채 잡히지 않은, 경사도가 높은 조건을 고려하여 농기계에 편리하게끔 포전길을 곧게 뽑고 그 량옆으로 계단을 이루며 층층이 배치된 구간들에서 토량운반을 하고있는데 산옥이네가 맡은 구간은 맨 아래쪽이였다. 그아래는 얼음이 덮인 제법 깊어보이는 굴포가 포전길과 사귀는 어방까지 길게 가로누워있었다.

남편이 말하던대로 토질이 굳어 불도젤이 능률을 내지 못하였다. 그런대로 한시간가량 일했을가. 목적한 곳에 흙을 부리우고 천천히 출발위치로 돌아가는중인데 문득 발동소리를 누르며 밖에서 누군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관소리때문에 뭐라 하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다급한 소리여서 산옥은 삐써 열려있던 문을 와락 열고 내다보았다. 보고는 놀랐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포전길을 얼추 잡아놓은 밋밋한 경사지로 불도젤 한대가 빠른 속도로 뒤걸음쳐 내려오고있었다. 제일 웃쪽에서 흙밥을 밀어오던 불도젤인데 점심참에 운전수가 점화전을 교체하겠다고 하면서 지휘부 부속품창고에 가더니 그사이에 사달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일터로 나오던 농장원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면서 세우라고 고함치는것이 얼핏 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아랑곳없이 불도젤은 그냥 경사지를 미끄러져내려온다. 바람난 기차마냥 점점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산옥은 얼른 정황을 판단해보았다. 운전수가 차에서 내리면서 변속위치를 중립에 놓고는 받침돌을 고였을것이다. 그런데 등성이쪽은 토심이 얕은데다 며칠째 날씨가 푸근하다나니 겉층이 녹으면서 받침돌이 밀린것이 분명했다.

토지정리는 대체로 평지에서만 하다나니 경사도가 높다는 지형적특성을 고려 못한데다가 변덕이 심한 이 고장의 날씨에 대한 파악을 따라세우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을것이다. 다른 리유란 있을수 없다. 분명 그래서 저렇게 미친듯이 마구 내려오는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기는 어떻게 할것도 없다. 아무렇게든 빨리 멈춰세워야 한다. 멈춰세우지 못하면 다달을 곳은 저아래 굴포밖에 없다. 굴포에 굴러떨어지는 날엔 차가 다 결단날 판이였다. 어물거리다가는 돌이킬수 없는 사고를 낼수 있다!

산옥은 지체없이 조종간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차가 전진을 시작하자 거듭 변속기단수를 올려 최고단수인 9단으로 내달렸다.

불도젤이 굼뜬것 같아도 9단에 놓으면 땅크처럼 빨라진다. 문제의 바람난 불도젤도 그냥 경사지를 달려내려와 이제는 차번호를 알아볼만 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산옥은 충돌이 박두한 다급한 정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기관에 손상이 가지 않게 부딪치겠는가 하는 생각만을 했다.

(그래, 그렇다. 기관이 상해서는 안된다. 하니 될수록 운전칸쪽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 가늠으로 거리와 속도를 조절하던 산옥은 드디여 조종간을 힘껏 당겨 차를 세우며 눈을 감았다. 경사지를 달려내려오던 불도젤이 운전칸 뒤등에 붙어있는 기름탕크 왼쪽에서 산옥의 불도젤운전칸을 힘껏 들이받은것이 그 순간이였다. 쾅! 하는 둔한 굉음과 함께 운전칸이 쭈그러져들어오면서 옆창과 앞창문 유리를 박산내여 뿌려던졌다.

한순간 산옥은 왼쪽관자노리어방이 선뜩한감을 느꼈다. 뒤따라 전류마냥 온몸을 달리는 예리한 아픔··· 아! 손이 저절로 움직여 관자노리에 올라갔다. 후덥고 끈적끈적한것이 손바닥에 감득되였다. 산옥은 그것이 피라는것을 깨닫지 못한채 조향간우에 머리를 떨구며 혼미해지는 의식속에 중얼거렸다.

《영순아, 이 엄마를··· 》

그것은 그가, 홍산옥이 살아 생전에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조만규는 지휘부에서 현장설계합의를 해주러 나갔던 설계분과장 김흥복으로부터 사업보고를 받고있었다. 김흥복은 이번 길에 문천쪽으로부터 시작해서 천내, 법동, 세포쪽을 한바퀴 돌아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지에 나가보니 농장원들도 그래, 관리일군들도 그래 밭으로 전환될 면적들을 될수록 논으로 정리해달라는 의견이 많이 제기됩니다. 좀 작게라도 말입니다.》

《한뉘 뙈기농사를 하던 사람들이니 미련이야 있겠지. 그건 무시해야 하오. 거기에 귀기울이고 말려들었다간 헤여나지 못하오. 그 요구들을 들어주기 시작했다간 경사도가 3도이상인 곳들의 뙈기논 2 000정보가 또 정리면적에 포함되게 되오.》

말이 났던김에 도농촌경리위원장에게 그 문제와 관련하여 단단히 신칙하려고 조만규는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 순간 제먼저 전화종이 울려서 받으니 종합분과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뭐라구?!》

락랑구역돌격대의 녀성불도젤운전수가 포전정리작업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는것이였다.

조만규는 가슴이 덜컥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소리요? 포전정리작업장에서 어떻게 인명사고가 난단 말이요? 심장마빈가?》

《아닙니다, 금오리는 좀 특수한 작업을 하던것 같습니다. 저도 말로만 들어서 정확한 표상은 가지지 못하겠는데 정리토량이 모자라 그 근방의 어느 둔덕을 헐어내리던것 같습니다. 그 웃쪽에서 작업하던 불도젤운전수가 변속기가 0단인걸 모르구 그냥 내린 모양입니다. 불도젤이 경사지로 막 내리쏠리는걸 아래쪽에서 일하던 그 녀성불도젤운전수가 가로질러나가 막았다는데, 아마 운전칸시창유리가 부서지면서 관자노리에 깊이 박히며 대동맥을 다쳐놓은것 같습니다.》

《알겠소. 내 나가보겠소. 군당이나 도당엔 알렸소?》

《평양시돌격대에서 통보를 한것 같습니다.》

《락랑구역돌격대가 일을 잘한다 했더니··· 그 금오리가 첫시작을 할 때부터 계속 두드러지더니 끝내 일을 치고말았구만.》

그는 만사를 뒤전에 밀어놓고 고산으로 떠나 한시간후 금오리에 도착하였다.

관리위원회에 들려 물어가지고 돌격대지휘부가 있는 기계화작업반으로 건너가니 평양시돌격대장을 비롯하여 구역돌격대책임자들과 농장일군들이 목공실앞에서 무슨 론의를 하다가 맞아주었다.

락랑구역돌격대 정치책임자 박민석이 침통한 얼굴로 조만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사고가 그 가랭이틀이라는데서 났소?》

조만규의 그 물음에 구역돌격대책임자가 대답했다.

《예, 가랭이틀을 정리하기 시작한지 오늘이 열흘쨉니다.》

《난 오면서 암만 생각해봐도 도대체 표상을 가질수 없었소. 토지정리를 하다가 불도젤이 변속이 풀려 굴렀다는 소리를 어떻게 믿겠소? 무슨 다른 일을 벌려놓았다가 사고가 난게 아니요?》

《아마 믿어지지 않을겁니다.》

금오리담당 설계책임자가 포전략도를 펼쳐들었다.

《바로 여기가 가랭이틀인데 우리는 관리위원장동무의 요구대로 이 논을 살리기로 설계하였습니다.···》

조만규가 그의 말을 도중에서 자르고 사납게 되물었다.

《경사도가 3도이상인 구역에는 모두 밭으로 전환하라고 하지 않았소? 이 가랭이틀은 경사도가 몇이요?》

《3. 2돕니다.》

《그런데도 논으로 정리하댔다? 좋소, 그 문젠 후에 다시 론의하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3. 2도인 경사도에서 불도젤이 구르는가 말이요?》

《예, 그런데 문제는 그 3. 2도에 있는게 아니라 그 논을 규격포전을 만들자고 하니 토량이 어방없이 모자랐습니다.》

조만규는 설명을 듣기가 답답하여 포전략도를 와락 앗아들었다.

《이 가랭이틀 웃쪽의 밭에서 헐어내리면 되지 않소?》

《그러면야 이런 일이 없었지요. 헌데 그 밭은 금오리땅이 아니라는겁니다. 그 밭은 안변군상업관리소 원료기지랍니다.》

조만규는 뜻밖에 여기서 자기의 사촌동생 조옥이가 끼여드는데 당황하였다.

《그래서 이 물곬을 건너 등성이흙을 내리우댔구만.》

《예.》

조만규는 포전략도를 다시 설계책임자에게 넘겨주고 관리위원장을 찾았다.

《저기 령구가 안치된 방에 있는데 이젠 들어간지 4시간도 넘었습니다.》

조만규는 박민석과 함께 령구가 안치된 방에 들어갔다.

시신의 머리맡에 체소한 늙은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박민석이 그의 귀전에 대고 뭐라고 알려주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머리를 푹 숙이고 반응이 없었다.

한참만에야 고개를 쳐드는데 시뻘개진 그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부상동지,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글쎄 내가, 이 미련한 놈이 푼수없이 욕심을 부리다가 생때같은 목숨을 잃게 했으니··· 내가 고집을 썼지요, 고집을··· 전번에 새해명절을 쇠러 갔다온 그날 이 녀인의 내외간을 데리고 내가 금장골에 가지만 않았어두··· 그보다두 그 둔덕의 흙을 내리우는게 위험하단 소리를 내가 새겨들었어두···》

《관리위원장동지, 진정하십시오. 가슴은 아프지만 그것이 어떻게 관리위원장동지의 잘못이겠습니까? 이건 우리 돌격대원들을 책임지고있는 제 잘못입니다. 내가 사전에 우리 동무들에게 안전교양사업을 소홀히 한 결과지요.》

《아니요, 아니요. 내가, 내가 우리 금오리를 욕되게 한때문이웨다. 내가 무슨 정신에 금장골 밭을 남 주었겠소? 땅을 귀애하지 않고 아까와하지 않은 이 정여삼에게 벌이 내린거요. 내한테 들씌워지는 벼락은 몇번이라도 기꺼이 맞겠는데 글쎄, 글쎄 이 훌륭한 녀인이 생때같은 목숨을 바쳤으니··· 내 이제 무슨 낯으로 이 내인의 피가 스민 땅에 머리를 들고 살겠소.》

정여삼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조만규는 고인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부부운전수라고 하던데 이 동무 남편은 어디 갔소?》

《저기 집안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흔들며 그냥 눈을 뜨라구 야단하는걸 겨우 떼말렸습니다.》

조만규는 가슴이 미여지는것을 느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예로부터 중년 상처는 대들보가 휜다고 생때같은 처를 그것도 객지에 나와 잃은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는가.

《아마··· 지금은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거요. 나부터두 이게 그저 사나운 악몽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조만규의 말에 박민석이 《어떻게 믿어지겠습니까. 금방 조종간을 넘겨주고 온 안해가 한시간도 안되여 숨을 거두었으니···》하고 볼편을 씰룩댔다.

《정말 일 잘하고 마음씨 곱던 동무였는데···》

《얼마나 훌륭한 정신을 지녔소. 정말 쉽지 않은 녀성이요. 자녀들이 몇이나 되는지 장례도 그렇고 여러모로 잘 도와주어야겠소. 사고는 사고고···》

《부상동지!》

박민석이 심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상동지, 사망한 사람앞에서 이런 론의를 하는것이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홍산옥동무를 단순한 사고의 피해자로만 보아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부상동지도 말씀했듯이 홍산옥동무는 정말 쉽지 않은 녀성입니다. 그는 친정아버지까지 모시게 된 가정부인이여서 강원도토지정리에 나오지 않게 되여있었지만 스스로 결심하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일은 또 얼마나 성실하게 잘했겠습니까. 산옥동무가 제 한몸을 바쳐 구원한것이 한대의 불도젤이지만 발휘한 소행이야 얼마나 훌륭합니까? 전 그 동무를 우발적인 사고의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재산이 위험에 처한 비상한 순간에 제 한몸을 던져 사고를 막은 애국희생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린 그의 이름을 돌격대원명단에서 지우지 않으렵니다. 토지정리가 끝나는 날까지 그를 명예돌격대원으로 삼고 그의 몫까지 일하기 위해 분발하겠습니다.》

조만규는 정치부장의 말에 깊이 감동되였다.

《동무가 옳은 소리를 했소. 나는 동무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이요. 옳소, 우리 홍산옥동무를 그냥 전투원으로 등록해두고 앞으로 총화랑 있게 되면 수훈도 제기하기요.》

필요한 준비가 끝나자 돌격대정치부장 박민석이 그때까지도 정신이 없는 홍산옥의 남편 김상돈을 데려내다 운전칸에 밀어올리고 같이 평양을 향해 떠났다.

조만규는 시돌격대장이며 농장일군들과 함께 정문밖에 나가 동구밖으로 사라지는 자동차를 바래우며 비감속에 생각했다.

오, 너 천지개벽하는 강원땅아, 해마다 봄이 오거든 그가 남기고 간 고결한 넋이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 부디 한송이 들꽃으로 피여나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