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6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6

 

떠난지 넉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도 몇년 잘 걸린것처럼 생각되였다.

새해를 앞둔 수도의 거리는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여있었다. 먼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수도의 시민들이 다 그러하듯이 궤도전차의 귀맛좋은 음향이며 꼬리를 물고 달리는 승용차행렬,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의 물결,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아빠트창문들과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거기에 새로 불장식까지 한 거리의 모습은 홍산옥에게 류다른 정회를 불러왔다. 얼마나 다정하고 친근하게 안겨오는 수도의 아름다운 저녁풍경인가.

《여보, 좀 빨리 걷소. 이거야 어디 같이 가내겠소? 답답해서···》

배낭을 멘채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저만치 앞서간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하는 독촉이였다.

홍산옥은 걸음을 빨리하여 남편에게 다가가며 지청구를 했다.

《좀 천천히 가자요. 뭐가 바빠서 그래요? 집에 다 왔는데···》

《집에 다 왔으니 빨리 가자는거지. 아버지랑 영순이랑 눈이 까매서 기다릴거요.》

그들부부는 양력설을 쇠러 오는 시안의 여러 구역, 군돌격대원들과 함께 세시간전에 평양역에 내렸다. 그런데 이제야 집으로 가는것은 시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시적인 환영모임이 있었고 구역에 와서는 또 구역당에서 조직한 축하모임에 참가했기때문이였다.

《어마, 눈꽃이 떨어지네.》

산옥은 비여있는 왼손바닥을 펴 눈꽃을 받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기에 빨리 가자지 않소. 헤―해서 두리번거리지만 말고···》

《막 그리웠어요, 이 거리가··· 저 15층짜리 아빠트 옥상우에 걸린 전광판이랑 저 꽃매대랑 식료상점··· 어마나, 저긴 그새 새 구호가 붙었군요. 당신은 안그래요? 난 그새 몇년은 흐른것 같아요.》

《그렇게 그리운걸 넉달이나 어떻게 참았는지, 원···》

하면서도 남편 역시 걸음을 멈추고 산옥의 눈길을 따라 거리를 한바퀴 휘둘러보았다.

부부가 그런 말을 나누며 정백동에 있는 자기네 집에 당도하니 뜻밖에도 문이 걸려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금시까지 싱글벙글하던 남편이 실망해서 홍산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열쇠를 건사하지 않았던 그들부부는 복도에 서성거리며 난감해하고있었다.

래일 하루가 지나면 새해인데 집을 비워두고 아버지는 어딜 가셨을가. 영순이는? 그 애는 이젠 원예전습을 마치고 돌아왔을텐데··· 아버지와 같이 동생네 집에 가있을가?

홍산옥이 속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는데 상돈이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이거 떠나올 때 전보를 칠걸 그러지 않았소?》

《아이참, 토지정리돌격대원들이 명절휴가를 받았다는거야 온 나라가 다 알텐데 전본 무슨 전보예요?》

《그렇긴 한데 이상하지 않소? 아무도 없으니··· 옆집에라도 좀 물어볼가?》

산옥은 내심 불안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혹시 옆집에서 《그 집은 비워둔지 오랬어요.》하는 소리라도 나올가봐서였다.

나간 집··· 참으로 쓸쓸한 생각을 자아내는 말이 아닌가.

이때 계단을 내리던 인민반장이 그들을 띄워보고 반색하였다.

《아니, 영순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오셨군요.》

하면서 인민반장은 영순이는 기능공학교에 가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는것과 영순이 할아버지는 아침에 작은딸네 집에 간다며 자기에게 열쇠를 맡겼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반장에게서 열쇠를 받아들고 집에 들어선 그들부부는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서둘러 전등을 켜고 집안팎을 둘러보았다.

역시 비워둔 집이란 아무리 정돈이 잘되여있어도 썰렁해보이는 법이다. 집이라면 부엌에서는 음식냄새가 나고 방안에는 온기가 있어야 한다.

홍산옥은 서먹한 감정으로 옷을 갈아입자마자 부엌일에 달라붙었고 남편은 그사이 남자손이 미치지 못한 집안 여기저기를 살피며 제할일을 찾아하기 시작하였다.

저녁밥이 다 될 때까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그들의 불안은 점점 짙어졌다.

《먼저 식사를 하지 않겠어요?》

밥상을 차려놓고 그냥 앉아있기가 뭣하여 홍산옥이 남편에게 권했으나 《무슨 맛에 식사를 하겠소.》하면서 도리머리를 했다.

이윽고 남편은 《내 동서네 집에 좀 다녀오겠소. 이거야 궁금해서 어디 앉아있겠소.》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같이 가자요.》

산옥이도 따라섰다.

《뭘 당신까지 가겠소?》

《동생두 보고싶구 그리구 성심이 아버지한테두 인살 해야지 않아요.》

《설날에 다 모일텐데 뭐.》

《그래두요.》

초인종이 울린것은 바로 그무렵이였다.

홍산옥이 바삐 문께로 달려갔다.

《아버지예요?》

하면서 문을 열자 영순이가 《엄마!》하면서 와락 목에 매달렸다.

찬기운이 씽 하고 덮쳐들고 영순이의 솜옷에 묻었던 눈가루가 목덜미로 새여들었지만 홍산옥은 조금도 그것을 감득하지 못하고 딸에게 몸을 맡긴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엄마, 이젠 아주 왔지요?》

영순이가 어머니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속삭였다.

남편은 전실문가에 서서 모녀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만 보고있었다.

《얘, 그만 이걸 풀구 이젠 아버지한테 인살 해야지.》

《대답부터 해요. 나랑 할아버지랑 같이 있겠다구···》

산옥은 점점 여리여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넌 그새 더 어린애가 된것 같구나.》하고 나무랐다. 하면서도 영순이를 더욱 꼭 껴안았다.

한참만에야 영순이가 팔을 풀고 산옥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있었다.

《그새 고생이 많았겠구나.》

상돈이 딸애의 어깨에서 가방을 벗겨주었다.

《나야 뭐, 그저 할아버지때문에 속상할뿐이지요 뭐. 근데 할아버진 왜 보이지 않나요?》

《글쎄 우리가 도착하니 없더구나. 인민반장 말이 열쇠를 자기한테 맡기고 이모네 집에 가셨다누나.》

영순이의 얼굴에 다시 시름이 깃들었다.

《것 보라요. 할아버지가 빈집에 무슨 재미에 있겠다고 하겠어요. 어머니, 우리가 할아버지를 잘 모시자고 데려왔나요, 두 집을 돌봐달라고 데려왔나요? 나마저 한달동안이나 집을 떠났댔으니···》

《네가 있을 때도 할아버지가 종종 이모네 집에 가군 했니?》

《할아버진 이모네 성심이가 낮에 혼자 집에 있다면서 이모네 집일을 돌봐주러 가군 했어요. 늙은이가 오히려 두 집을 돌봐야 하는 판이니 그게 됐어요?》

두 내외는 딸의 책망에 할 소리가 없었다.

《어찌나, 밖에선 눈이 세게 내리는데···》

영순이는 창밖을 근심스레 내다보았다.

《그럼 이모네 집에서 주무시고 래일 오시겠지.》

상돈이 혼자말처럼 뇌이는데 영순이가 《안예요, 할아버진 암만 늦어도 잠만은 꼭 우리 집에 와서 자군 했어요.》하였다.

《낮에는 성심이 숙제도 도와주고 집안살림을 봐주다가는 이모와 이모부가 돌아오면 자기가 부담이 된다고 하면서 꼭 돌아오군 했는데 오늘은 왜 늦는걸가?》

영순이 외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선것은 그로부터도 30분가량 더 지나서였다.

《내 너희들이 돌아왔을줄 알았다. 오늘 성심이 애비, 에미가 구역에서 진행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오는 통에 나도 좀 늦게 돌아섰구나. 자꾸 붙잡는걸 너희들이 왔을것 같아 늦었지만 걸어서 떠났다. 이거 빈집에 들어서게 해서 안됐구나.》

《원 아버지두, 별말씀을 다 하세요. 오히려 저희들이 아버지한테 죄송해요, 고생을 시켜서···》

《그런 소리 말아. 너희들이야 강원도토지정리라는 큰 전투를 치르는 전장에 가있지 않냐. 자고로 전장에 나가있는 사람한테는 그가 비록 년소하다 해도 년장자가 먼저 절을 하는것이 법도였다.》

이윽고 저녁상이 차려지고 식구들이 상에 둘러앉기를 기다려 상돈이 짐속에서 술병을 꺼내오자 영순이가 손벽을 쳤다.

《아니, 그래도 할아버지 생각을 다 했네.》

홍산옥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모들의 무관심을 표현하지 못해하는 영순이의 토라진 속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그저 곱게 눈을 흘기고말았다.

상돈이 술병을 들고 설명했다.

《아버지, 이 술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술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집에 가서 부모처자들과 함께 새해를 맞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며 늙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고있는 돌격대원들에게는 꼭 잊지 말고 술을 넣어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래? 거 사연깊은 술이구나. 어디 좀···》

그는 술병을 받아들고 한참동안이나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럼 이 술은 새해날 아침 성심이네까지 온 다음에 함께 들도록 하자꾸나.》하며 수저를 드는것이였다.

밥상을 물리였을 때는 자정이 훨씬 넘었지만 온 가족은 잠들지 못하고 토지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희들이 맡은데가 고산이라구 했지?》

아버지의 물음에 상돈이 대답했다.

《예, 고산군 금오리라는뎁니다.》

《고산군이면 철령을 넘어가기 전이겠구나. 나도 전쟁때 군대에 입대해서 김화쪽에서 싸웠구 전쟁이 끝난 담에는 회양에서 있어봐서 강원도를 좀 안다. 거기 논밭이라는게 정말 한심했다. 온통 뙈기논에, 뙈기밭에··· 뜨락또르는 고사하고 소가 가대기를 끌고 돌아서기도 힘든 땅들이였지.》

《이젠 그것이 다 옛말로 되게 됐습니다. 이번에 장군님께서는 고산군 란정리에 오시여 모든 논밭들을 다 1 000평, 800평규모에서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거 정말 대단하구나. 1 000평, 800평이면 어떻게 되냐? 강원도사람들이 이젠 벌방부럽지 않게 됐구나.》

하면서 로인은 60년대 백만정보 관개면적확장공사를 하던 때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젊었을 때에는 상원군 농기계작업소에서 불도젤을 다루었고 년로보장을 들어오기 전까지 그곳 지배인을 한 로인이였다.

《그러나저러나 아버님을 이렇게 모셔다놓고 저희들은 훌쩍 떠나고 말았으니 아버님이 많이 노여우셨으리라 봅니다. 우리 집도 그래 게다가 성심이네 집도 아버님에게 얹히우다싶이 되였으니···》

상돈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데 기회를 놓칠세라 영순이가 끼여들었다.

《아버진 응당 나가야 하지만 어머니는 왜 안 들어오세요? 전번에 집에 찾아온 구역당 간부동지도 집에 와보군 나하고 어머닐 꼭 들여보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엄마, 나도 원예전습을 가있으면서 할아버지 생각으로 근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어머닌 안그래요? 난 정말 엄마마음을 모르겠어요.》

영순이는 처음 만날 때의 그 반가움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를 돌려세우려고 아픈 곳을 골라가며 허벼댄다.

산옥이도 차차 마음이 흔들리는바가 없지 않았다.

오늘 구역당에서 헤여질 때도 박민석부부장이 자기를 따로 만나 이번에 집형편을 보고 떨어져야 한다면 다른 생각 말고 떨어지라고 했다. 이제는 락랑구역돌격대의 실적이 확고하게 앞선 자리를 차지했고 자리가 잡혔으니 돌격대걱정은 하지 말라는것이였다.

(부부장동지 말대로 이번에 떨어지고말가?)

어머니의 표정에서 동요하는 기색을 눈치챈 영순이는 계속 바람을 불어넣었다.

《어머니, 나 말이예요. 원예림의 원예사들이 그러는데 원예사로 될수 있는 특출한 자질이 있대요. 관찰력이 예민하고 식물학에도 밝다나요. 하면서도 계속 날더러 어디 아픈가, 집에 무슨 근심거리가 있는가 하고 묻지요 뭐. 남의 속은 모르고···》

마지막말은 보탠 말이였다. 영순이가 할아버지와 집안일때문에 첫 자욱을 내디딘 사회생활에서 발목을 잡혀있다는것을 은근히 암시하자는것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산옥은 그 말이 가슴에 맺혀왔다.

그는 딸에게 《됐다, 걱정말고 어서 사회생활이나 잘해라. 엄마가 강원도에 다시 안 가겠으니.》하고 말해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런 말만 하면 영순이는 당장 일어나 돌아가며 춤이라도 출것이였다. 그렇게도 고운 꿈을 가지고있는 딸인데 집안일에 구애됨이 없이 훨훨 나다니며 마음껏 일하고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겠는가.

홍산옥이 마음을 질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속을 썩이는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영순이 에미야, 네가 강원도에 나가서도 이 애비때문에 맘이 편치 않을줄 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마지막까지 토지정리전투장에서 네 할바를 다해주었으면 한다. 강원도토지정리가 잘돼야 나라일이 펴이고 또 우리 집일도 잘된다는걸 알아야 한다.》

《어마, 할아버진 무슨 말씀이예요? 엄마가 없다고 강원도토지정리가 안되겠나요? 하지만 우리 집은 엄마가 없으면 안된단 말이예요. 씨― 할아버진 엄마가 거의거의 맘을 돌리고있었는데···》

영순이는 자기와 보조를 맞춰야 할 할아버지가 반대방향으로 나가자 덴겁을 하며 울상을 지었다.

《영순아!》

로인이 손녀를 불렀다.

《물론 네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봐라, 지금 온 나라가 강원도토지정리를 놓고 얼마나 들끓고있냐. 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이모부를 좀 봐라. 오늘도 구역당에 가서 강원도토지정리전투장에 가서 할 예술공연작품시연회를 받았다고 하더라. 새해 첫 전투때는 그 영예군인들이 강원도에 나간다더라. 그리구 구역에서랑 기업소에서랑 우리 집에 얼마나 관심을 돌려주니? 이건 그만큼 네 아버지, 어머니가 중요하고도 큰일을 하고있기때문이 아니겠니. 그걸 봐서라도 우리가 어떻게 제집생각부터 앞세울수 있겠니. 물론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영순이의 곁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가지고 도와도 주고 이끌어주면 더 좋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영순이가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정신을 키우는데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어렵게 떼는데는 반대가 없다. 난 영순이 어머니가 강원도에서 돌아오는걸 바라지 않는다.》

노상 인자하고 사랑만 베풀던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엄할줄 몰랐댔는지 영순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소리를 못했다.

산옥도 아버지의 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는가. 딸앞에서 무슨 나약한 모습을 보일번 했는가.)

그날 밤 홍산옥과 김상돈은 자리에 누워서도 늦도록 강원도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