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5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5

 

딸애를 학교에 보낸 뒤 부엌거두매를 하고 방에 올라온 조옥은 화장을 끝내자 집을 나섰다. 수수한 진회색솜옷차림에 올이 굵은 흰 네모수건을 삼각으로 접어쓰고 얍슬한 삼면쟈크가방을 옆에 낀 그의 자태는 끼끗하였다.

간밤에 눈이 내려 온통 은세계로 변한 읍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그중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 조옥은 부지런히 인사를 나누며 걸어야 했는데 하면서도 머리속으로는 이 하루에 해야 할 사업들을 차근차근 계획해보았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우선 부서장들의 모임부터 해야 할것이다. 모임에서는 급양망들에서 소비할 고구마보관대책을 똑똑히 세우지 않은 급양과장을 비판하면서 겨울철조건이라고 해서 사무실에서만 맴돌며 실적을 내지 못하는 현상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모임이 끝나면 초급당비서와 년간사업총화에 제기할 보고서방향을 토론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책임비서앞에 가서 양력설 명절물자공급계획을 합의해야 하고 돌아오면서는 량정사업소에 들려 이달에 사료용쌀겨를 실지 얼마나 받을수 있겠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오후에는 산업은행지배인을 만나 금오리원료기지에서 채취한 사금처리문제를 토론해야 한다. 다음은···

조옥은 저녁때까지의 일정을 빈틈없이 짜놓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듯 자상히 세운 사업계획이 자신의 개인문제와 맞다들면서 도중에 헝클어지게 되리라는것을 출근길에서는 알수 없었다.

초급당비서와 년간사업총화보고서방향을 토론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조옥이 군인민위원회에 갈 차비를 하는 때였다. 출고지도서를 비준받으러 들어왔던 일반자재창고장 윤춘애가 수표를 받아가지고 나가려다 말고 되돌아서더니 묻는것이였다.

《언닌 별난 말이 돌아가는걸 알고있어요?》

윤춘애의 맏언니 춘월이와 조옥은 중학교동창인데 춘월은 현재 군도서관사서로 있다. 그래서 춘애는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면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한다.

《별난 말이라는건?》옷걸이에서 수건을 벗기며 조옥은 심상하게 되물었다.

《언니의 후임을 고른대요. 언니가 인차 시집을 가기때문에···》

《거 좋은 소리구나. 헌데 그건 누가 그러던?》

《우리 인범이 아버지가요. 설을 쇠곤 인차 무슨 변화가 있을거래요.》

조옥은 웃어넘기려다가 윤춘애의 남편이 군당책임비서의 승용차운전사라는데 생각이 미쳐 웃음을 거두었다.

인차 시집을 간다는것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쳐도 후임을 고른다거나 더우기 설을 쇠고 무슨 움직임이 있으리라는 소리는 아무래도 무심히 들어넘길수 없는 말이였다. 그러니 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지금의 정황에서 나는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당장에는 이렇다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소문이 퍼지는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춘애, 그리 즐거운 소식은 아니지만 제때에 알려주어 고맙다. 네가 한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뭐가 맞고 틀리는가 하는건 시간이 증명해주겠지만 부탁은 너나 너네 인범이 아버지가 이 말을 어디다 더 옮기지 말아달라는거다. 알겠니?》

《원, 언니두··· 내가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겠어요? 언니한테니 하는 소리지.》

《그럼 약속하자.》

춘애를 돌려보낸 조옥은 앞상에 다가가 걸상을 당겨놓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금방 윤춘애가 하고 간 말이 아직도 귀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날가고 이건 분명 근거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출처가 어디겠는가?

여기저기에 자기의 재혼문제를 두고 이상할 정도로 관심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지만 후임문제라는 신빙성까지 붙어있어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믿지 않을수 없게 소문을 돌리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게 순수 뜬소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진실이 섞여있는것이라면···

더우기 군당책임비서의 운전사 입에서 나왔을 때는 그저 웃어넘길수만 없는것이였다.

(그사이 내가 본의아닌 과오라도 저지른게 있지 않을가. 아니면 혹시 내 능력문제가?)

하긴 녀자의 몸으로 한개 군식솔의 입고쓰는 문제를 맡아안고있다는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자기보다 훨씬 더 능력있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조옥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오늘 군당에 들어가 책임비서를 만난 기회에 그한테서 어떤 암시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토막내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군당조직부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책임비서동지가 설명절에 주민세대들에 공급할 상품준비정형을 들어보겠다고 합니다.》

《제 그러지 않아 오늘 가려던 참입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조옥은 필요한 준비를 해가지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방에 들어서는 조옥을 책임비서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옥이가 건네준 공급물자명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이따금 뭔가 질문도 하던 책임비서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상업관리소가 큰일을 했다고 볼수 있소. 순 녀자들의 손만으로 새로 정한 원료기지에서 첫해농사로 서른톤가까운 강냉이를 냈다는게 얼마나 장한 일이요. 특히 토지정리돌격대원들에게 관심을 돌린것은 잘한 일이요. 나는 상업관리소의 그러한 성과속에 소장동무의 수고가 많이 깃들어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소.

그래서 내 한번 나가보자던 참이였소. 그래 뭐 제기할건 없소? 우리가 도와줄거라든가···》

조옥은 군당책임비서의 입에서 종시 다른 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책임비서의 방을 나오며 조옥은 (헛소문이였어.) 하고 단정짓고말았다.

군당정문을 나서려던 조옥은 암만 해도 속이 시원치 않아 책임비서 운전사를 찾아가 만났다.

《인범이 아버지, 달리 생각말구 춘애한테 했다는 그 소리가 어떻게 생긴것인지 좀 설명해주세요.》

조옥의 극히 실무적이고 랭랭한 태도에 책임비서의 운전사는 당장에 꼿꼿해졌다.

《내가 처한테 무슨 소릴 했길래 그럽니까?》

《저··· 내가 재취를 한다는··· 왜 그런 정확치 않은 소릴 돌려요?》

《그럼 그건 없는 소리였습니까?》

오히려 저쪽에서 반문하는 판이였다.

《그건 내가 직접 들은 소린데요.》

《글쎄 그 소릴 어디서 들었는가 그 말이예요.》

《그건 저··· 전번에 란정리에서 궐기모임을 할 때 농업성 조만규부상동지 운전사한테서 들었습니다.》

《우리 오빠쪽에서요?》

조옥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조만규와 강룡이 자기의 문제를 놓고 상론했을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잠시 그 큰 눈을 슴벅이며 상대방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니, 참 이런 일도··· 그래 그 운전사가 뭐라고 했어요?》

《부상동지가 그러더랍니다. 안변군상업관리소장으로 있는 사촌동생이 인민군대 련대장과 혼사말이 났지만 동생쪽이 너무 코대를 세운다고··· 그리구 저, 이건 사실대로 말해야겠는지 모르겠는데···》

《탓하지 않을테니 아무 소리나 다 하세요.》

《부상동지가 직접 그 련대장인가 하는 사람을 찾아가보기까지 했다는것 같습니다. 그리곤 저··· 사촌동생보다 몇배나 얼싸하다면서 이제 마주 세워놓으면 제 동생이 아니, 상업관리소장동지가 꼭 동의를 할거라고···그 운전사가 부상동지가 했다는 말을 그대로 옮기는데 〈그 사람을 마다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걸.〉하더랍니다. 하면서 란정리집중전투나 끝내고는 상업관리소장동지를 어떡해서든 꺾어서 붙여놓고야말겠다고···》

조옥은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이런 창피가 어디 있는가.

《됐어요. 그만하세요. 그리고 이 말을 다른데 옮기지 말아주세요.》

《예, 생각해보니 제가 좀 경솔했던것 같습니다. 다만 상업관리소장동지가 남같지 않다나니 그저 좋은 일만 같아서···》

조옥은 상업관리소에 돌아와서도 자기 모멸의 감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였다. 생각할수록 어이없었다. 그는 자신을 이런 궁지에 몰아넣은 사촌오빠 조만규가 원망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지난해 섣달 그믐께 찾아가 만났을 때 이런 일이 없도록 자신의 립장을 명백히 밝혀두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때 간단한 안부나 묻고 돌아서려는데 자기도 인차 평강엘 다녀와야 한다며 조만규가 붙들었다.

《그래 넌 장차 어쩔셈이냐? 그냥 그렇게 홀몸으로 지낼테냐?》

《오빤 만나면 그 소리··· 난 지금 도대체 그런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요.》

《너도 참 답답하구나. 그럼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다 한가한 사람들이란 말이냐?》

《···》

《그건 잘못하는 생각이다. 사람이 절반짜리 생활에 재미를 붙이면 성정이 이지러지기 쉽다. 무슨 추문이 나도 그래···》

조만규는 진심으로 사촌동생을 위해서 하는 말이였다. 아버지벌이 거의 되는 조만규의 진정앞에 조옥이도 그냥 뻗칠내기만 할수 없었다.

《글쎄 나도 아직은 다 모르겠어요. 하지 말아야 할것 같기두 하구 하는게 옳을것 같기두 하구···》

《영 목석인줄 알았더니 그렇진 않구나. 그렇다면 그 일은 내게 맡겨라. 후회없게 해줄테니. 실은 내 그래서 더더구나 이번에 평강엘 다녀오자는거다.》

당시는 그 말이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그때 사촌오빠는 분명 언젠가 군당책임비서방에서 한번 마주친적이 있는 그 인민군련대장을 찾아가 만나본것이 틀림없었다.

그 련대장이 오빠를 어떻게 감복시켰는지 모르나 오빠가 그에게 반해서 돌아온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모를 일이다. 초면인 자기에게 마치도 저 혼자 고생을 겪어본듯이 돼지를 길러봤는가고 설익은 질문을 들이대던 그 사람의 무엇에 맘이 동했을가. 그러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변에서 원산은 40리가웃, 감정같아서는 당장 아무 차나 잡아타고 원산에 올라가 사촌오빠에게 울분을 터치고싶었지만 개인문제는 개인문제고 사업은 사업이여서 지금은 참는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두번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우정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원산행은 꼭 한번 그것도 시급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이틀후 저절로 기회가 마련되였다. 도인민위원회에서 명년도 급양부문 원자재확보계획안을 가지고 올라오라는 통지가 왔던것이다.

반짐차편에 원산에 도착한 조옥은 먼저 도인민위원회에서 일을 보고 곧장 토지정리중앙지휘부에 들렸다. 오후 4시경이였다. 아침에 안변에서 떠날 때 꼭 만나 하고싶은 말이 있으므로 오후 3시 이후에 자리를 뜨지 말아달라고 미리 전화를 걸어둔터여서 조만규는 사무실에 있었다. 그런데 담배연기가 뿌옇게 서린 사무실에서 그를 맞아준것은 사촌오빠만이 아니였다. 언젠가 군당책임비서의 방에서 만난적이 있는 39군단 후방부군단장도 있었다. 그가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는 몰라 조옥은 뜻밖의 공교로운 상봉에 일순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순간 사촌오빠 조만규가 그를 우정 만났을수 있다는 짐작에 오히려 숨길것도 꺼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인차 마음을 다잡고 그와는 될수록 거리를 멀리 두면서 사촌오빠쪽으로 치우쳐 앞상에 마주섰다. 무슨 말부터 할것인가. 할말은 많았지만 장령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면서 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조옥이 그렇게 즘자르는것을 보고 조만규가 말꼭지를 떼주었다.

《자, 꼭 하고싶다던 말이 뭔지 어서 하려무나. 후방부군단장동무도 때맞게 왔겠다, 정말 마침인것 같구나!》

말속에 말이 있다고 보아하니 사촌오빠는 조옥이가 하려는 말인즉 이미 거론되여오던 련대장과의 혼담일것이라고 넘겨짚은것 같았다. 그때문에 더욱 감정을 상했달가, 조옥은 갑자기 가슴밑굽을 걷어차며 울컥 치받는 설음을 이기지 못하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울었다. 사촌오빠 혼자라면 한바탕 분기라도 터치련만 외간남자앞에서 그럴수도 없어 아프도록 입술을 감쳐물고 어깨만 떨었다. 조만규의 놀란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야! 울긴 왜 우는거냐, 으―응? 좋은 일때문에 와가지군··· 뭐, 처녀애들이냐? 괜한 앙탈을 말구 어서 의향이나 내놓아라. 물론 의향같은건 들어볼것두 없긴 하지만.》

조옥은 이 마당에서조차 자기의 의사 같은건 애당초 무시해버리고 남의 일대사를 제멋대로 재단하려드는 사촌오빠의 소행에 기가 막혀 또 한바탕 오열하였다. 얼마후 눈물을 거두자 서리돋친 얼굴로 마디마디를 돌에 쪼아새기듯 말했다.

《오빠, 난 오빠가 나를 위해 여러모로 애써주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요. 물론 고맙게도 생각하구요. 하지만 오빤 내 인격을 너무 무시하고 내 개인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해요. 오빠의 그런 지나친 념려때문에 제가 무슨 망신을 하고 다니는지 알기나 해요? 이제는 안변바닥에 이 조옥이가 상업관리소장자리를 내놓기 아쉬워서 재혼을 안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됐어요. 오빤 이게 어디서 시작된 소문이라고 생각해요? 》

《옳다, 그건 내가 낸 말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 중요한건 그까짓 소문이 아니라 네가 하루라도 빨리 그 홍철령련대장과 재혼하는거다. 나는 정말 네 일이 답답하다. 대상이 없다면 몰라 서로 지위도 기울지 않고 해를 넘기면서까지 기다리며 욕심내는 사람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마다하느냐 말이다, 무엇때문에··· 난 그걸 알고싶다.》

《오빤 그걸 꼭 알아야겠어요?》

《알아야겠다.》

《그렇다면 말해주겠어요. 그건···》

조옥은 할 소리가 많았다. 물론 일개 녀성으로서 군상업관리소 소장자리가 아기자기하고 또 기름기도는 한 가정의 주부로서의 정상생활을 물리칠만큼 매혹적인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럴수 있는가. 지금 상업관리소는 군적으로도 일을 제끼는 기관으로, 힘있는 단위로 손꼽히고있다. 이것은 소장으로서 조옥이의 역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이제 자기네 상업관리소도 잘하면 전천군상업관리소처럼 전국에 소문을 낼수 있다. 바야흐로 온 나라에 대고 안변군상업관리소가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는 결정적인 시각에 소장인 자기가 훌쩍 자리를 내놓고 일개 가정주부로 돌아앉는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 종업원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생각을 정리해보던 조옥은 후방부군단장도 들으란듯이 또박또박 자기의 속생각을 알렸다.

《그건 그 사람이 싫어서예요. 남자면 응당 녀자를 눈아래로 보며 아무말이나 망탕 해도 일없는것처럼 여기는 사람··· 나는 그런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 싫어요.》

《조옥아, 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있다. 그 사람은 성실하고 근면하며 또 남자야. 넌 아직도 그 돼지소리를 념두에 두고 내려가지 않아서 그러는것 같은데···》

조만규가 차근차근 설명을 하려는데 흥분한 조옥이 사촌오빠고 후방부군단장이고 체면을 보지 않고 사정없이 말허리를 잘랐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다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어요? 오빠도 전번에 평양에 갔을 때 내 손을 보고 뭐라고 했어요? 농사군처럼 손이 거칠어졌다고 하지 않았어요. 돼지도 남만큼 길러봤고 땅도 남만큼 뚜져봤어요. 이런 내가 그런 모욕을 당해야 한단 말이예요?》

《얘, 조옥아. 너무 격해서 그러지 말고 좀 앉으려무나.》

그러나 조옥은 앉을수 없었다. 앉으면 할 소리도 다 못할것만 같았다. 그가 선채로 숨을 톺아쉬는데 갑자기 조옥의 맞은켠에 앉아있던 후방부군단장이 의자를 밀어놓으며 일어섰다.

《상업관리소장동무!》

날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무시무시한 저력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여직껏 말 한마디없이 묵묵히 듣기만 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하면서 자기를 강조하자 조만규도 입을 다물었다.

《모욕이란 말이지? 으음!》하고 무엇을 묵새기는듯 울대뼈를 움씰이고난 부군단장이 입을 열었다.

《소장동무, 그새 우리가 헛욕심을 부리며 이래저래 소장동무를 괴롭힌것 같은데··· 안됐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소장동무에 대해 실망을 느꼈다는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전번에도 그래 소장동무는 우리 철령동무가 한 그 한마디말에 오해를 가지고 그것으로 사람전체를 평가하고있는것 같은데 동무는 그 련대장이 왜 돼지소리를 했는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 소리는 동무가 고생을 얼마큼 해봤겠는가 하는 타진이 아니였습니다. 물론 동무도 상업관리소장으로서 오늘의 어려움을 타개하느라 고생을 했겠지요. 하지만 소장동무, 그 사람은 안해의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사람이요. 어려움을 이기고 일어서는 길에서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었단 말이요. 그가 어떻게 안해를 잃었는지 알기나 하오? 뭐, 자기도 그만큼 고생해봤다구요? 그래, 소장동무가 피를 바쳐봤소?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해봤소?》

《···》

《명심하시오, 소장동무! 그 동무의 안해는 복진산등판에서 남편의 대대병사들에게 먹일 돼지방목을 하다가 목숨을 바쳤소. 칼벼랑밑에 떨어진 새끼돼지를 구원하자다가 그만··· 그래, 그 사람의 입에서 돼지소리가 나온게 뭐가 그리 못마땅하오? 그게 그다지나 동무를 욕되게 했단 말이요? 소장동무, 동무는 그 사람의 심정을 좀더 리해해야 했소. 그러나 동무한테는 그것을 리해할 귀도 눈도 심장도 없었소. 동무에게는 자기와 남사이에 지경이 놓여있단 말이요. 그 지경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군관의 안해로 와도 자기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부상동무, 실은 우리 군단장동지로부터 홍철령련대장의 재혼문제를 성사시킬데 대한 명령을 받구 이래저래 부상동무까지 번거롭게 해놨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내스스로 이 문제를 포기한다는것을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는 더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시끄럽게 굴지 않겠다는걸 약속합니다.》

겉보기와 달리 후방부군단장은 결단성이 있는 사람이였다. 말을 마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뚜벅뚜벅 나가버리고말았다.

문닫기는 소리가 나자마자 조만규가 책상을 쳤다.

《네가 뭐 그리 잘났다고 재세냐? 저런 사람들곁에 네가 감히 서보기나 할것 같냐? 내가 홍철령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뭘하고있은줄 아니? 평강벌에 토지정리를 나와있는 그속에서도 〈병사들을 위한 날〉이라고 네살잡이 아들과 함께 만두를 빚고있더라. 그런 사람을 마다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네 맘에 든단 말이냐. 네가 감히 누굴 설었다고 훈시질을 해.》

조만규의 재차타격에 조옥의 귀에서는 징― 하고 전류흐르는 소리가 나고 피가 통하지 않을 때처럼 팔다리가 저려들어왔다. 그는 종시 자기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