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4

 

멀리 하늘과 잇닿은 평강벌 한끝에서 해가 떨어지고있었다.

량손에 조종간을 나누어쥔채 삽날 가득히 흙을 밀어나가던 임성춘은 지평선에 먹히워 밑굽이 이지러지기 시작한 해를 바라보며 은연중 시뭇이 웃었다. 불도젤이 흙밥을 밀어다 부리우는 논귀가 해지는 방향과 일치되는 까닭에 마치도 자신이 흙을 날라다 해를 파묻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목적한 논귀에 흙밥을 부리우고 후진하면서 보니 그새 또 내려앉은 해가 실지로 흙에 묻혀 허리까지 잠긴것 같았다. 불도젤이 그렇게 몇번 오가며 흙을 날라다 《파묻는》사이에 마침내 해가 지고 대신 광활한 서쪽하늘에 노을이 비꼈다. 조금만 더하면 교대시간전에 이 필지를 끝낼수 있을것 같았다.

보조운전수 상규가 현장에 나온것이 그때였다. 상규는 금년에 뜨락또르양성소를 졸업하고 풋총각으로 이제 며칠 있어 설을 쇠야 겨우 스무살에 접어든다. 양성소를 졸업하는 길로 오다나니 토지정리에 나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기능이 제일 어려 임성춘의 교대운전수로 배치하였는데 성격이 활달하고 책임운전수에 대한 존경도 있어 그들은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지금도 교대시간을 앞당겨 나온것이다.

《왜 이리 일찍 나왔나? 뜨뜻한데서 좀더 등을 지지다 나올게지···》

출발위치에 돌아와 불도젤을 세워놓고 운전칸에서 나오며 성춘이 말했다. 상규는 요새 감기를 만나 코물을 흘리며 그냥 기침을 하고있었다. 지금도 컹컹 하늘소기침소리를 하더니 힝― 하고 코를 풀어내치고야 입을 열었다.

《빨리 숙소에나 가보라요. 연안에 쌀 실러 갔던 후방차가 에취, 왔는데 광야 어머니가 뭘 보내온것 같애요.》

《어, 그래?》

기쁜 소식이였다. 그러나 성춘은 들어가는것을 서두르지 않고 상규를 데리고 인계삼아 불도젤부터 점검했다. 우선 귀를 기울여 기관소리가 고르로운지를 가늠해보고 후교부에 이상이 없는가도 확인했다. 전조등도 정상이였다. 마감으로 련결못이 삐져나온걸 박으려고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는데 상규가 자못 심각한 인상으로 말하는것이였다.

《광야 아버지, 소식 들었어요?》

《후방차가 무슨 소식을 가져왔나?》

《아니, 그 소리가 아니고 여기 에취, 우리 돌격대에서 돌아가는 소리 말이예요.》

《상규가 또 무슨 소릴 듣고 와서 그럴가?》

성춘은 상규의 말을 무심중에 흘리며 쇠망치를 휘둘러 리대판고정핀을 힘껏 박았다.

《종활동지가 입당한대요.》

순간 임성춘은 흠칫하고 굳어졌다. 그러나 다음순간 인차 자신을 다잡고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땅땅땅···》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한참만에야 망치질을 마친 임성춘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거 좋은 일이구만.》

임성춘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심리에 변화가 왔다는것을 눈치 빠른 상규가 못 알아차릴리 없었다.

《내가 괜한걸 말했지요? 광야 아버지 맘이나 편치 않을걸···》

《상규, 거 무슨 소린가. 종활이가 입당하는데 내가 왜 편치 않단 말인가.》

《이번 토지정리에서 제일 앞장선게 누구예요? 종활동지도 물론 일을 잘했지만 그래두 광야 아버지보다는 퍽 떨어지지 않았어요.》

《됐어, 그 이야긴 그만 하자구.》

임성춘은 나어린 상규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낸것이 스스로도 못마땅스러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허리를 꺾었다.

성춘은 토지정리전투장에 나온 첫날부터 자신의 불찰로 상처입힌 땅을 다문 한치라도 더 복구하는 심정으로 일해오고있었다.

땅은 나라의 살점과 같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살점에 한번 생긴 상처는 꼭 흠집을 남기기마련이다. 성춘은 그 흠집을 흐르는 땀으로라도 가리우고싶었다.

그 흠집을 지우는 일이라면 한생을 다 바쳐도 아까울것이 없을것 같았다. 이러한 자기가 감히 입당을 넘보다니···

변하기 쉬운 인간의 새망스러운 감정을 쓰겁게 비웃어 털어버리며 성춘은 망치를 상규에게 넘겨주었다.

《광야 아버지, 너무 많이 생각지 말고 이번에 끝까지 일을 잘해보자요.》

기특한 녀석이였다.

《자식, 네가 뭘 안다구···》

《오늘은 교대시간까지 푹 쉬세요.》

《내 이따 저녁이나 먹고는 한번 나와보지. 그런데 이번 후방차편에 상규 소식은 없었나?》

《우리 집엔 특별한 사정두 없구 해서 련락을 하지 않았대요. 너무 먼데 있기두 하구···》

《그래두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건데 거 참 안됐구만. 상규의 집이 어디라고 했던가?》

《심평리예요.》

《심평리?》

순간 임성춘은 굳어졌다. 심평리··· 그곳이 바로 자기의 과오로 하여 논 수십정보가 피해를 입은 고장이다. 아직까지 임성춘이 이 땅우에서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사는 리유가 심평리 사람들에게 아니, 심평리 땅에 죄를 끼친것때문이다.

《심평리에서 살았으면 잘 알겠구만. 거기 〈중간틀〉이라고 있지?》

《예, 알아요. 화양천가에 있는 논 말이지요. 바로 내가 거기서 1년 농사를 짓고 양성소에 갔는걸요.》

《거기 논이 어때, 소출이?》

《소출은 괜찮아요. 그런데 돌이 많아서 애를 먹어요. 지금은 한결 나아졌지만 그전엔 모내기때면 모내는기계 운전공들이 막 신경질을 냈대요. 이앙손을 자꾸 꺾어먹어서··· 듣자니 한 10년전에 제방뚝이 터지면서 논으로 사석언제를 쌓았던 돌과 자갈들이 쓸어들어서 그렇다는데 해마다 들춰내두 아직 남아있어요. 농장원들도 그 논에 김매기하러 들어가기 싫어해요.》

상규의 입에서 무슨 말이 더 나오려는것을 성춘은 황황히 돌아서버렸다. 한순간의 실수로 빚어진 피해가 어쩌면 이렇게도 지독하게 남아있단 말인가. 자기의 저주로운 행적이 아직도 그 땅에 남아있단 말이지···

예로부터 땅을 잃은자는 노예요, 땅을 파는자는 역적이라고 했다. 그러니 땅을 욕되게 한 자기는 무엇이라고 해야겠는가.

성춘은 숙소에 도착해서도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배는 고프면서도 먹고싶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숙소에서 서성거리고있는데 후방참모가 찾아와 집에서 보내온 꾸레미를 전달해주었다. 갈아입을 겨울내의들과 몇가지 필수품들이 나오고 뜻밖에도 군대에 입대한 맏이 광일이가 집으로 보내온 편지가 있는것이였다. 봉투는 이미 개봉되여있었는데 속지를 뽑으니 군복을 입고 찍은 광일이의 사진까지 따라나왔다.

성춘은 맏아들의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국방위원회명령을 받들고 강원땅 어디선가 토지정리전투를 벌리고계실 아버지를 그리며 조국보위초소에 선 맏이가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저는 입대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몇번이나 당부한대로 지휘관들의 명령에 충실하고 전투정치훈련에서 남보다 앞장서기 위하여 애쓰고있습니다. 중대지휘관동지들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소대장동지는 나를 소대의 막냉이라고 하면서 힘들세라, 추울세라, 배고플세라 노상 걱정을 해가지고있는데 어떤 때는 막 창피해서 낯이 뜨끈뜨끈할 지경입니다.

우리 정치지도원동지는 또 어떤줄 아십니까.

힘들어두 견뎌내야 해, 졸음을 이기는것도 훈련이야, 모든 일이 다 기초훈련을 설치면 도무지 발전 못하는것처럼 병사도 기초훈련을 잘못하면 훌륭한 병사는 고사하고 보통병사로도 되기 힘들어 하면서 언제나 요구성을 높인답니다. 그래두 난 정치지도원동지가 막 좋아요.

아버지, 제가 군사복무를 하는 이곳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가렬한 진지방어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 부대는 전쟁시기를 비롯하여 지난 시기 수십명의 영웅을 배출한 이름높은 부대이구요.

정치지도원동지는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군 합니다.

우리의 선렬들은 한치의 땅을 위해 목숨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딛고선 이 땅에는 영웅들의 고귀한 피가 스며있다, 땅에 스민 그 고귀한 피를 의식하지 못하는 병사는 절대로 그 땅을 사랑할수 없으며 땅을 사랑하지 못하는 병사는 영웅이 될수 없다, 화구를 막을수 있다고 자부하지 말고 땅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라, 이렇게 말입니다.

땅을 사랑하지 못하는 병사는 화구를 막지 못한다는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꼭 저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같았습니다. 나자신이 언제든지 화구를 막을 각오가 되여있다고 자부해왔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정치지도원동지의 그 말에 내가 이 땅을 얼마나 사랑하고있는가 하고 자신에게 묻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무심결에 딛고 다니던 땅도 함부로 밟기가 서슴어지고요.

아버지, 오늘도 정치지도원동지는 훈련 쉴참에 우리 소대동무들에게 지금 장군님의 구상을 받들고 강원도에서 력사적인 토지정리전투가 벌어지는데 저 광일동무의 아버지도 그 전투에 참가하고있을것이라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외우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다가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라구, 일을 잘해서 이번에 영웅이 되라고 고무하는 편지를 말이야, 아마 광일이의 그런 편지까지 받으면 아버지가 전보다 백배까지는 몰라도 오십배의 힘은 더 낼수 있을거야 이러시질 않겠어요.

나는 그때 정치지도원동지에게 이렇게 말하고싶었습니다. 우리 아버진 영웅이 되는것보다 더 바라는것이 있다고 말이예요.

저는 아버지가 순간의 실수로 하여 상처입힌 땅을 한치라도 더 되살리는 심정으로 일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삶의 목표라는것도 알고요.

나도 총잡고 조국보위초소에 서서야 조국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피로써 지켜싸운 조국의 대지를 넓혀나가는 일처럼 그렇듯 보람찬 일이 또 어데 있겠습니까.

그 보람이면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남다른 경력을 두고 눈치를 살피던 내 마음속 그늘을 가시고도 남음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장차 우리 집안에도 로동당원이 태여날것입니다. 그 첫 당원은 나고 광복이와 광야는 둘째, 셋째 당원이 될겁니다. 그런 날은 꼭 옵니다.

아버지, 쓰고싶은 말은 많지만 이제는 보초근무에 나갈 시간이 되여서 펜을 놓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건강관리에 특별히 마음써주십시오.

초병이 된 아들의 인사를 보냅니다.

맏아들 광일 올림

 

성춘은 편지를 세번이나 거퍼 읽고도 접지 못하고 다시 또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군대에 나간다고 좋아서 싱글벙글거리던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이렇게 성장하다니···

성춘은 이 편지가 제가 낳아키운 자식이 썼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교양실에 앉아 이 글을 썼을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우리 집안에도 당원이 생겨날것이며 그 첫 당원은 바로 자기가 되리라는 그 결심은 또 얼마나 장하고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것인가.

(고맙다, 광일아! 이 아버진 어쩔수 없다만 부디 너희들이라도 당원이 되여다오. 그래서 내가 나라에 끼친 죄를, 이 못난 아버지가 이 땅에 끼친 그 죄를 조금이라도 갚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