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2

 

저녁 5시가 되여 아이들을 집에 보내자 몽금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에 달라붙었다. 방방을 쓸어내고 털고 정돈하고 닦고 버리고··· 여느날같으면 코노래를 부르며 한시간나마 걸렸을 그 모든 일을 오늘은 입을 딱 앙다문채 이마에 땀발이 서게 다그쳐 불과 30분동안에 끝내버렸다. 이러기를 벌써 열흘 가까이 한다. 까닭은 퇴근이후에 청년동맹조직으로부터 받은 분공을 수행해야 하기때문이다.

장군님께서 란정리를 현지지도하신 이후 리청년동맹초급위원회는 지난 기간 토지정리사업을 옳게 돕지 못한 점을 비판총화하고 산하 각 초급단체들로 하여금 토지정리지원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릴데 대해 결정하였다.

더우기 눈내리는 그날 란정리에 직접 가서 군인건설자들을 비롯한 토지정리전투참가자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온 그날부터 금오리청년동맹에서는 예술소조원들이 출연하는 실효모임을 가지고 리청년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앙양시켰다.

그래서 실질적인 대책들이 토의되였는데 불도젤들의 만가동을 보장하기 위한 방도중의 하나로서 매 초급단체에서 두석대의 불도젤을 담당하여 불도젤의 정비상태를 매일 알아보고 조직에 보고하여 대책을 세우도록 하며 특히는 운전수들의 생활조건, 작업조건을 물심량면으로 도와줄데 대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이에 따라 몽금이 속한 소재지작업반 봉사초급단체에서는 세명 혹은 두명의 청년동맹원이 불도젤을 한대씩 맡게 되였는데 몽금이는 송희와 한조가 되였다. 그들은 기쁘게도 27호, 즉 땅크병출신운전수 최인국의 불도젤을 담당하였다.

몽금이네 조가 처음부터 27호불도젤을 맡은것은 아니였다. 그런걸 옆에서 송희가 초급단체비서에게 졸라서 담당을 바꾸어놓았다. 그러자니 송희는 별수없이 몽금이가 최인국이를 알게 된 범상치 않은 경위까지 말하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초급단체비서가 입이 좀 가벼운데다 담당을 바꾸는 문제는 모두에게 관계되는 일이라 사실이 인차 알려졌다. 알려지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는 격으로 사실에 짐작까지 덧붙어서 무슨 류다른 관계라도 있는듯이 넘겨짚고 말을 옮기는 축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거나말거나 몽금은 짝패인 송희와 함께 부지런히 조직의 분공을 수행했는데 한가지 문제라면 구급환자가 들어왔거나 해산방조가 제기되는 등 여러가지 리유로 송희가 자주 빠지기때문에 분공을 혼자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였다.

몽금은 혼자일 때가 오히려 좋았다. 한것은 몽금이가 최인국에게서 불도젤운전기술을 배우고있었기때문이였다. 사실 그것은 배우자고 해서 시작한것이 아니라 운전칸에 앉아 최인국의 작업모습을 지켜보며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군 한것이 그 동기가 되였다.

《확실히 동무는 눈썰미가 있구만. 제꺽 리해하는걸 보니···》

최인국이 추어주는 바람에 몽금이는 으쓱했다.

그런데 최인국이 《그렇다고 동무가 뭐 불도젤운전수가 되겠소?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일인데···》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자 몽금이는 발끈했다.

《하면 하는거지 못할게 뭐예요?》

《하하, 웃기지 마오. 이 불도젤이 유치원아이들인가 하오? 이놈도 녀자를 얕잡는단 말이요.》

《흥, 꽤나 센체 하시누만요. 쩍하면 홍산옥아주머니한테 가서 물어보면서두···》

워낙 승벽이 강한 몽금이는 자기를 얕잡는 최인국이를 보란듯이 눌러놓기 위해서 불도젤운전을 배우리라 결심했다. 전쟁때 녀성보잡이에 녀성비행사도 나왔는데 불도젤쯤이야 별로 놀라울것도 없지 않는가. 몽금이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3일전에 란정리에 갔던 불도젤들이 돌아왔다. 다른 단위들에서는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락랑구역돌격대만은 남들을 까마득히 떨구고 제일먼저 끝냈다는것이다.

그들이 빨리 돌아오자 제일 기뻐한것은 정여삼이였다.

《자, 이젠 우리 금오리도 란정리처럼 네귀번듯한 규격포전을 만들어 천지개벽을 해봅세나.》

정여삼은 불도젤들이 돌아온 그날 마치도 처음 맞이하는 사람들이기나 한듯 마중까지 나갔었다.

《이건 다 동무네 그 예술소조의 공로라고 볼수 있소.》

이것은 돌아온 첫날 최인국이 몽금이에게 한 말이였다.

누구의 공로로 왔건 상관없이 몽금은 최인국이 돌아오고 그래서 불도젤운전기술을 계속 배우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몽금은 그날부터 짝패인 간호원 송희와 함께 조직의 분공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때때로 송희가 자주 빠지는것인데 송희에게는 그것이 미안한 일이지만 몽금은 오히려 그때가 좋았다. 혼자면 불도젤운전도 마음대로 배울수 있고 최인국이와 교감하기도 자연스러웠던것이다.

오늘도 그런 편리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오후 3시쯤 되였을 때 송희로부터 련락이 왔다. 군병원에 환자후송을 가기때문에 혼자 수고해달라는것이다. 흥, 수고는 무슨 수고. 차라리 좋기만 하다.

청소를 하느라 땀이 났던 얼굴을 씻고 화장까지 가볍게 한 몽금은 목수건을 휘감아쓰며 유치원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채 안되였는데 섣달치고도 동지밑이라 날이 벌써 어슬며 코끝에 느껴지는 공기가 사뭇 차거웠다.

집에서는 언제 들어왔는지 어머니가 저녁차비를 하고있었는데 밥을 안쳐놓고 가루반죽을 하는중이였다.

《아버진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오다가 정미소앞에서 7반장과 함께 가는걸 만났는데 설계원들한테 갔다가 좀 늦어지겠다더라.》

《그런데 이건 뭘하자구요?》

《응, 오래간만에 시래기만두를 좀 빚어볼란다.》

《만두요? 아이, 좋아.》

몽금은 손벽까지 딱 쳤다. 그가 좋아하는것은 최인국에게 빨아 다듬이한 작업복과 함께 만두를 가져다줄수 있게 되였기때문이였다.

《빚는건 내가 맡을게요.》

몽금이는 팔을 걷어붙이고 어머니와 마주앉아 잽싸게 손을 놀려나갔다.

《건 뭐 품평회에라두 나갈거냐. 만두송이에 맵시는 무슨···》

어머니가 새알만큼씩 곱게 빚어놓은 만두를 보더니 한마디했다.

《어때요? 보기만 해도 깜찍한게 맛있게 생겼지요?》

《맛이 뭐 눈끝에 있니? 혀끝에 있지.》

《그래두 우리끼리 먹는다면 몰라도···》

몽금이는 아차 혀를 깨물었다. 속생각에만 옴해있다가 저도 모르게 비밀을 로출시킨것이다. 어머니는 단박에 눈치를 챘다.

《오, 네 생각이 딴데 가있었구나. 내 어쩐지 별로 열성을 피운다 했더니··· 너 또 최뭐라는 불도젤운전수한테 가져다주자고 그러지?》

몽금이는 귀뿌리가 빨갛게 되였다.

《안예요. 송희한테 맛 좀 보이려구···》

급한 마당인지라 생각없이 막 주어섬기는데 그것도 들장이 났다.

《송희는 무슨 송희, 갼 아까 형래네 집 둘째를 입원시키러 읍에 나가는 길이라던데···》

이럴줄 알았으면 사실대로 이야기하는건데 하고 몽금은 후회가 막급하였다. 청년동맹에서 받은 과업을 수행하는중이라고 하면 구태여 숨박곡질을 할것도 없고 자연스러운건데 거짓말을 하다나니 공연히 립장이 난처해졌다.

(내가 왜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될가?)

어제도 늦은 저녁에 불도젤운전수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나가야 한다고 하니까 군말없던 어머니가 아니였던가. 게다가 아버지는 더 극성이였다.

《청년동맹에서 거 좋은 일을 찾아냈구나.》하면서 사업용담배까지 꺼내주었다.

이제 더 둘러대다가는 점점 더 옹색해질것 같아 몽금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냅다 나갔다.

《맞아요. 최인국동무한테 좀 가져다주려고 그래요. 엄만 괜히 심술을 부리면서···》

《이년 봐라, 이젠 막 곧추 달려드는 판이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는 웃고있었다.

마당에서 대문여닫기는 소리가 나고 기침소리를 앞세우며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선것이 그때쯤이였다. 몽금은 만두를 빚다말고 웃는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마나, 시래기만두냄새가 벌써 관리위원회 사무실까지 올라간 모양이지. 아버지가 이리 일찍 들어오셨을젠···》

딸이 그러거나말거나 대꾸없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랭수를 달라고 해서 마시고는 말없이 방으로 올라갔다. 몽금은 아버지의 기분이 왜 저리 무거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았는데 어머니도 영문을 모르겠는 모양 고개를 저었다.

《혹시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게 아닌지 모르겠구나.》

몽금은 어머니의 짐작이 옳다고 보아 마지막만두를 빚어놓고 손을 씻자 방에 올라가 그새 털모자와 솜옷을 벗어 걸고 아래목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에게 살뜰히 물었다.

《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침통한 낯빛으로 묵묵히 담배만 태우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한숨끝에 입을 열었는데 하는 말이 또한 뜻밖이였다.

《가서 술을 가져오너라.》

몽금은 혀를 깨물었다. 아버지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손님이나 와야 두석잔 마시는 정도다. 그런 아버지가 술을 찾을 때는 심중이 불편해도 이만저만 불편하지 않다는 소린데 그러고보면 이 저녁 아버지가 여느때없이 일찍 들어오신거나 부엌에 바로 들어와 랭수를 찾은거랑 다 흔히 볼수 없던 정상을 벗어난 일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수?》

아버지의 눈치를 가만가만 살피며 어머니가 묻자 아버지는 입을 쩝쩝 다시다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한치앞도 못 내다봤단 말이야. 안변에서 땅을 달라고 왔을 때 안된다고 딱 잡아뗐어야 하는걸···》

몽금이는 아버지의 심사가 뒤틀린게 그 금장골밭때문이란걸 알자 의아함을 금할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땐 한숨을 쉬면서도 못난 딸 시집보내게 되는셈으로 치자고 하시더니···》

《토지정리를 할줄이야 알았어야지. 어떻게 해서라도 그 밭을 떼주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내가 왜 그 망녕된짓을 했을고···》

지금 정여삼은 7작업반장까지 데리고가서 설계원들과 그 문제를 토의하다 오는 길이였다.

이번에 장군님의 란정리현지지도가 있은 다음 정여삼은 온 농장이 때벗이를 쭉 하고 벌방부럽지 않는 드넓은 포전을 가지게 되였다고 기쁨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리안에 여기저기 뙈기논들이 널려있는데 그것들이 다 800평, 1 000평짜리들로 된다니 그야말로 진짜 천지개벽을 맞게 된것이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설계책임자가 하는 말이 7작업반포전만은 암만 해도 타산이 안 선다는것이였다.

《금장골아래논만은 뙈기논을 면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건 무슨 말씀이시오?》

《자, 보십시오.》

하고 설계책임자가 포전략도를 책상우에 쭉 펴놓았다.

《여기···》그는 손가락으로 금장골 아래논을 짚었다.

《이걸 밀어서 800평을 하자면 부득불 흙밥을 그 웃쪽에서 날라와야 되는데 거기 밭은 금오리땅이 아니라지요?》

《맞수다. 거긴 안변군상업관리소 원료기지지요.》

《그렇기때문에 안된다는거지요. 암만 설계를 해봐두 결국은 그 밭을 줄이면서 논을 늘여야 하는건데 남의 땅을 침범할수 없지 않습니까? 그 주인들이 좋아할리 없지요.》

《그럼 7반 뙈기논은 그냥 올망졸망한대루 남아있어야 한단 말이우?》

《아무래도 거기는 포전규모를 작게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7작업반장까지 불러왔는데 그도 신통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정여삼은 후회가 막급하였다.

줄 때부터 맞갖지 않아서 가까스로 내놓은 땅이기는 하지만 안변사람들이 첫해농사를 지으면서 겨우 밭이랍시고 만들어놓은것을 다시 내라는것이 옳은 처사같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정여삼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이제 저 사람들이 휴가를 갔다와서는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질텐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거 안변상업관리소장에게 민한체 하구 땅을 다시 내라구 해보시지요.》

안해의 말에 정여삼은 눈을 사납게 흘겼다.

《그 내인이 여름내 붙어살다싶이하면서 밭을 일쿠어 그만하게라도 만들어놓은 땅을 어떻게 다시 달라구 해. 차라리 금장골땅이 그 사람들손에 들어가서 괄세라도 받았다면 그 구실이라도 대겠는데···》

정여삼은 설레설레 도리머리를 저었다.

몽금은 만두가 다 익자 아버지의 락심한 모습을 뒤에 남기고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앞내벌 토지정리장에서는 불도젤들이 전조등을 번뜩이며 한창 작업중인데 최인국의 불도젤은 전날 작업하던 포전을 마무리하고 그옆의 다른 포전을 정리하고있었다. 몽금이 흙을 부리우고 뒤걸음치는 불도젤에 접근하여 삽날지지팔우에 막 올라서려는 순간 차가 멎어서며 최인국이 뛰여내리는것이였다.

《고장입니까?》

몽금은 최인국의 발부리에 전지불을 비치며 걱정스레 물었다. 작업실적을 높이자고 아무리 애써야 차가 고장나면 허사인것은 몽금이도 모르지 않는다.

《이 쇠뚝쟁이 어른이 구두끈이 풀린다누만.》

몽금은 안심되였다. 이젠 그도 그 정도의 곁말은 알아듣는다. 리대판을 련결하는 핀이 빠져나온다는 소리였다. 최인국이 전지를 비쳐달라고 해서 같이 살펴보니 왼쪽무한궤도의 핀 두개가 손가락 한마디만큼이나 빠져나와있었다. 그걸 쇠망치를 휘둘러 제자리에 밀어넣고 운전칸에 오르자 몽금은 보자기를 풀어 최인국에게 만두부터 권했다.

《아니, 이거 만두가 아니라 정교한 예술작품같구만.》

《어서 드세요.》

최인국은 사양하지 않았으나 같이 먹자고 우겨서 몽금은 별수없이 한개 쥐고 먹는 시늉을 했다.

한편 작업복을 받아쥔 최인국은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정말 내 옷이 옳긴 옳소?》

《왜, 아닌것 같애요?》

《옳은것 같기는 한데 작업복이 완전히 외출복이 됐구만. 젠장, 이걸 입고 외국에 출장이라도 가겠소.》

《어마나! 작업복바람에 외국에까지··· 호호호··· 》

최인국의 롱담에 몽금은 입을 싸쥐고 웃었다.

일이 시작되였다. 최인국은 이미 하던 골파기를 마저하고 토량을 운반할 때 조종간을 넘겨주겠노라 하더니 불도젤을 전진시켰다. 몽금에게는 일이자 곧 실습이였다. 그는 최인국의 운전솜씨를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조종간을 잡은듯이 손놀림도 해보았다. 그도 이제는 흙밥을 밀어다 필요한 곳에 부리고 돌아와 다시 출발한다거나 차가 부하를 받으면 기관이 어떻게 숨가쁜 소리를 지르며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쯤은 아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골파기를 거의 끝내갈무렵인데 갑자기 불도젤전조등이 꺼졌다.

《아하, 이거 야단났군!》

《왜요? 전구가 끊어졌어요?》

《그런것 같소.》

최인국은 불도젤을 세우고 내려가더니 전조등 전구를 뽑아가지고 들어왔다.

혹시 해서 전지불을 비치며 확인해보았지만 끊어진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예비가 없는것이였다.

《들어가 타와야겠군요. 제가 갔다올테니 인국동진 그새 좀 쉬세요.》

최인국은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봐야 지휘부창고에도 전조등 전구는 절품이라는것이였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창고에도 없으면···》

《···》

최인국은 먹종이를 붙인것 같은 시창을 내다보며 한숨만 내불었다. 당장에는 무슨 대책이 없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하면 안될가요?》가슴을 덮은 목수건의 술을 손가락에 감았다풀었다 하던 몽금은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물었다. 《기름걸레같은걸로 홰불방망이를 만들어 앞에서 비쳐주면서 작업하면··· 불을 비치는건 제가 할수 있어요.》

몽금의 의견이 실천적으로 가능하겠는지를 타산해보는듯 최인국은 두손으로 조종간을 꾹 쥔채 그냥 시창만 내다보다말고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방법은 방법인데···》

《안될것 같습니까?》

《아니, 충분히 가능하오. 주행방향이 알리고 삽날만 보이면 되니까. 한데 방망이를 만들만 한 기름걸레가 없는게 문제구만.》

몽금은 접어서 왼손에 쥐고있는, 최인국의 작업복을 싸가지고 온 보자기에 생각이 미쳤다.

《기름방망인 이걸로 만들자요.》

《그게 뭔데?》

《보자기··· 이젠 낡을대로 낡아서 구멍이랑 여러개 뚫어진거예요.》

보자기가 새것은 아니였으나 낡을대로 낡아서 구멍이 뚫어졌다는것은 거짓말이였다.

《그래두 쓸수 있는거라면 어떻게···》

《무슨 남자가 좁쌀스레 그래요. 이까짓 보자기 하나가 뭐이 그리 아까운거라고 된다, 안된다 하면서··· 아무렴 이까짓 보자기가 정리작업을 못하고 흘려보내는 시간보다 더 아깝겠나요?》

최인국은 어둠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이제 보니 동무 이만저만 아니구만, 고집이··· 》

《그건 맞아요. 난 옹고집쟁이여서 한번 마음먹은건 기어코 끝을 보고야말아요.》

그리하여 기름방망이를 만든다, 초롱에 디젤유를 뽑는다 하며 한참 역사질이 있은 끝에 드디여 기름방망이에 불을 달고 정리작업을 시작하였다.

몽금은 활활 불타는 기름방망이를 높이 든채 불도젤이 흙밥을 안고 전진할 때는 삽날앞에서 가고 뒤걸음칠 때는 뒤에서 걸으며 최인국이 주행방향을 가늠할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기쁨에 넘쳐 노래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전조등이 꺼져 못하는줄 알았던 정리작업을 계속할수 있게 된것이 우선 기쁘고 이 시각 최인국의 눈앞에 있는것도 기쁘고 그에게 작업복을 빨아다주고 제손으로 빚은 군만두를 먹인것도 그렇고 이 저녁에는 뭐나 다 기쁜 일뿐이였다. 한가지 걱정은 기름방망이가 점점 작아지는것이였다. 방망이를 기름초롱에 더 자주 담그었지만 시시각각으로 타서 줄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몽금이 목에 둘러감아 가슴앞에 드리운 수건에 생각이 미친것이 그때쯤이였다. 그 목수건으로 기름방망이를 감으면 장밤을 패워도 모자라지 않을것이였다. 생각은 그랬지만 선뜻 풀어내지 못했다. 재작년 평양에서 작은 고모가 사보내주어 고작 한해 겨울밖에 쓰지 않은, 질도 좋지만 색갈까지 화려해서 또래동무들이 내놓고 부러워하는 목수건이다. 척 쓰고 나서면 여기 금오리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고산읍내에 가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 좋은 목수건을 태워 없애면 다시 마련하기도 힘들고 후회 또한 막심할것이다.

그것은 잠간동안의 생각이였을뿐 몽금은 종시 수건을 풀고야말았다. 최인국이 눈치차릴가봐 방망이를 기름초롱에 담그느라고 어두워진 기회를 리용하여 풀자마자 한쪽끝을 밟고 불로 지져 수건허리를 끊었다. 불이 한껏 어두운데다 운전간을 등지고 돌아서서 한 일이라 몽금은 최인국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몽금의 생각과는 달리 최인국은 모르지 않았다. 알았을뿐더러 처녀의 헌신적인 소행에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감동만이 아니였다. 세포군에서부터의 인연도 있거니와 그러지 않아 끌리던 처녀인데 지금 그 간격이 훨씬 가까와졌음을 그는 마음속으로 느끼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