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8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18

 

토지정리중앙지휘부, 4월 2일 아침.

조만규는 현관앞에 서있는 전투지휘용승용차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종합분과장이 간밤의 정리작업정형을 종합한 《조간보》를 가지고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이제 고산군으로 나갈 계획이다. 거기서 일을 보고는 철령을 넘어 회양군에 갔다가 김화와 평강을 거쳐 다시 세포군에 올라와 거기서 해를 지울 생각이다. 그래서 밤사이에 진행한 포전정리실적을 알아보고 떠나자는것이였다.

이윽고 현관안에서 쿵, 쿵 계단밟는 소리가 나더니 손에 종이장을 든 종합분과장이 나타났다.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핀걸 보니 간밤의 실적도 괜찮은 모양이다.

《안변군 풍화리를 비롯해서 오늘 새벽 6시현재로 자기 과제를 완전히 끝낸 단위가 자그만치 열아홉개나 됩니다.》

종합한 실적표를 넘겨주면서 하는 종합분과장의 말이였다.

《뭐요, 열아홉?··· 그럼 이젠 끝낸 단위가 60개가 넘는구만. 그렇지?》

《예, 어제 〈석간보〉에 집계된것이 총 48개였으니 이젠 67개 단위가 됐지요.》

3월에 들어서면서 토지정리중앙지휘부는 일보체계를 없앴다. 대신 12시간을 단위로 낮에 진행한 사업결과는 저녁에 보고받고(석간보) 밤에 진행한 사업보고는 아침에 받는(조간보) 체계를 내왔다. 그럴만큼 낮에 하는 일과 밤에 진행되는 일이 내용적으로 거창해졌거니와 그 과정을 정확히 통제하고 지휘의 신속성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일보는 굼뜨고 부적절한 체계라는것이 명백해졌던것이다.

《누가 날 찾으면 저녁때쯤에 들어올거라고 하오.》

앞좌석에 들어앉은 조만규는 차가 정문을 나서자 종이끼우개로 묶은 세페지짜리 《조간보》에 눈길을 주었다. 원산시로부터 고성군과 평강군 그리고 철원군을 거쳐 판교와 법동군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다 빠른 속도로 나가고있었다. 도적으로 보면 하루밤에 정리한 면적이 4백정보 가깝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자주 하는 생각이 사람이고 기계고 죄다 만가동이 걸린 상태여서 실적변동의 폭이 점차 좁아지리라는 예측이지만 정작 이렇게 진행보고를 받아보면 그렇지 않다. 매일같이 전날의 기록을 깨며 정리면적실적이 상승을 긋고있는가 하면 관개용잠관이나 수문 같은 구조물공사도 빠르게 진행되고있었다. 그 모든것은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혁명적인 조치로 인민군군인들을 보내주시여 토지정리전투장마다에서 혁명적군인정신의 열풍이 나래치게 해주신 덕분이였다.

돌이켜보면 감회도 새롭다.

총참모부의 특별명령에 따라 전연과 후방에서 출동한 보병사단들과 땅크운전병들의 드센 일솜씨와 전투적이고 랑만적인 생활기풍으로 온 강원땅토지정리전투장들이 말그대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지도 벌써 한달가까이 되여온다.

정리면적이 얼마 안되는 법동군과 금강군을 제외한 모든 군, 리들에 구분대단위로 배치된 보병사단의 군인들은 그야말로 무서운 의지와 일솜씨를 발휘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1 100정보의 주저앉은 면적을 수복하는것과 함께 포전정리를 가능한껏 도와주어 불도젤들이 태양절전으로 기본면적을 정리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조건을 지어주는것이였다.

어느 협동농장에 들어간 어느 부대나 다 같았으니 한마디로 군인들에게는 낮과 밤이 따로없었다. 하루 24시간 작업장을 비우지 않는것이 그들의 구호고 원칙이였다. 모두가 줄창 뛰여다녔다. 작업장에서 목고나 질통을 메고 진채 드달려다니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식사나 작업교대를 위해 오고가는것조차 대렬을 지어 뛰여가고 달려나왔다. 휴식시간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든가 아니면 무릎싸움을 했다. 애당초 앉아서 쉬거나 걸어다닌다는 말자체를 잊어버린 사람들 같았다. 매 협동농장 작업반마다에 들어간 수만명 군인들의 열의와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온 강원땅이 들끓고 주저앉았던 면적의 수복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다.

땅크운전병들과 관련해서는 그저 놀라움에 혀를 내두르는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만규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땅크운전병들에 대해 불도젤운전은 할줄 안다 쳐도 토지정리를 해본 경험이 없기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것이 일반의 견해였다. 그러나 매일같이 중앙지휘부에 들어오는 소식도 그렇고 어느 군, 어느 협동농장의 정리작업장에 나가보아도 한입모아 하는 말이 땅크운전병들에 대한 찬사고 감탄이였다. 땅크운전병들이 정말 놀랍다고, 이틀동안에 토지정리를 익히고 닷새만에는 수평고르기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아무 차나 고장나면 달려들어 같이 수리하고 차에서 내리면 제창 농장원들과 섭쓸려 논뚝짓기나 수로파기를 한다고, 아무 일이건 땅크처럼 무섭게 해치우는 사람들이라고, 노래는 또 얼마나 잘하고 춤은 또 얼마나 잘 추는지 다들 배우같다고, 같이 일하면 도무지 힘든줄을 모르겠다고··· 말만이 아니였다. 군중의 그런 반영이자 곧 실적이였다. 종합분과장은 묘한 사람이라 땅크병들이 작업에 진입한 날부터 일보 비고란에 따로 계산해넣은데 의하면 3월 중순경부터는 매일 평균 100정보가량을 더 정리한셈이고 이후 매일같이 기록이 갱신되는 추이를 보이고있었다.

인민군군인들의 그런 투지와 헌신에 떠받들려 강원도토지정리는 비상히 빠른 속도로 진척되여 3월 26일경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벌써 자기 맡은 과제를 끝내는 단위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중앙지휘부는 그렇게 먼저 끝난 단위들을 지체없이 뒤떨어진 농장들에 조절투입하는 한편 세포등판개간전투를 위한 력량편성에 들어갔다. 이 력량편성에는 불도젤의 이동상 편리를 고려하여 고산군이나 평강군처럼 세포군에 린접한 다섯개 군의 먼저 끝난 단위들만 인입하였다.

그렇게 선발된 단위들이 오늘 각기 세포군을 향해 출발한다. 이 아침 조만규가 조회도 미루고 여느때없이 일찍 중앙지휘부를 떠난것은 그 출동식들도 보는 겸사 그들이 세포군의 해당 지역들에 도착해서 자리잡는것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안변군을 지나 고산땅에 들어선 승용차는 벌써 란정리소재지를 가까이하고있었다.

란정리···

창도군 대백리가 김정일장군님께서 강원도토지정리를 결심하시게 한 추억깊은 곳이라면 여기는 탈선했던 강원도토지정리를 제 궤도에 올려세워 오늘에 이르게 하신 의의깊은 고장이다.

승용차가 란정리소재지로 들어가는 갈림길목에 이르렀을 때쯤 조만규는 차를 세우고 내렸다. 처음 와보는 고장이 아니고 이래저래 수십번을 다녀간 농장이지만 주먹으로 량허리를 눌러짚은채 그는 이 아침 새삼스러운 눈으로 벌판을 둘러보았다. 아침해빛을 받아 김을 문문 피워올리는 검누런 대지, 어디에 눈길을 주나 보이느니 일매지게 널직널직한 800평, 1 000평짜리 포전들과 가로세로 쭉쭉 곧게 뻗은 논뚝들뿐이다. 곡선이란 찾을수 없다. 간선수로는 물론 용배수로며 포전길에 이르기까지 죄다 직선이고 직각이다. 토지정리란 바로 이렇게 하는것인데 뙈기논소리나 면한 300평짜리 포전을 만들어 그것도 아주 자신만만해서 장군님께 보여드린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장군님의 뜻을 옳게 받들지 못한 죄책감을 금할수 없다. 아니, 자신이 나라의 토지관리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장군님의 토지건설구상과 의도를 그리도 모르고 멀리 탈선해있었다는것이 스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것이다. 올망졸망한 뙈기논천지던 이 란정벌이 저렇게 몇백년후에 가서도 손색없을 사회주의적토지로 전변되는 기간 나의 머리도 많이 정리되였다. 단지 아쉬운것은 그 보람차고 소중한 나날도 바야흐로 끝나가고있는것이라고 할지···

조만규의 그런 생각을 싣고 승용차는 고산읍을 향해 달리였다.

세포등판개간에 동원되는 단위들속에는 평양시돌격대적으로 정리과제를 선참으로 끝낸 락랑구역돌격대도 있었다. 락랑구역돌격대의 임무는 세포군 삼방리와 백산리에 이동전개하여 200여정보의 황무지를 개간하는것이였다. 임무에 따라 돌격대는 두개 조로 가르게 되였는데 백산리에 들어갈 1조는 대장이 책임지고 2조는 박민석이 책임지기로 하고 불도젤도 절반씩 나누었다.

아침 8시, 드디여 출동의 시각이 왔다.

명절인양 떨쳐나와 길좌우에 늘어선 농장원들과 금오리소학교와 중학교 학생들 그리고 중발머리의 새 교양원이 인솔한 유치원꼬마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먼저 1조가 떠난데 이어 2조가 출발했다. 몽금이는 아버지의 승낙에 군경영위원회의 승인도 받아 림시 락랑구역돌격대에 배속된 운전수로서 지금 최인국의 불도젤운전칸에 앉아있었다.

박민석은 정여삼을 비롯한 농장일군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장군님께서 다 헤아려주시는걸 내가 괜히 설레발을 쳐서 임자들이 1등을 못하게 만들었지. 잘 돌봐주지 못한 점이 많았을텐데 가서 욕일랑 많이 하게.》

마감으로 민석의 손을 꼭 잡아쥔채 하는 정여삼의 진심어린 말이였다. 락랑구역돌격대는 1등을 못했다. 평양시돌격대적으로는 제일먼저 끝냈지만 전국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열두번째 순위였다. 정여삼은 지금 그걸 아쉬워하는것이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위원장동지의 그 고집이 오히려 우리를 더 분발케 했고 오늘의 성과를 달성케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사실 위원장동지를 고맙게 생각하는바가 없지 않습니다.》

《허허, 내가 부부장을 말로 이길순 없지. 아무튼 고마우이. 임자네들이 이번에 포전을 넓히면서 내 머리속의 궁냥까지 넓혀주었네. 시원히 넓어진 포전처럼 내 이 머리도 넓어진것 같다니까. 꼭···》

《저도 이번에 강원도에 나와 토지정리를 하면서 깨달은바가 많습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우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되여있는 애국심에 불길만 지펴준다면 세상천하 못해낼 일이 없고 멀지 않아 강성대국의 대문도 능히 열어제낄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암, 반년동안에 강원땅을 천지개벽했으니 강성대국의 대문이라고 인차 열리지 않을가. 나도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정여삼은 박민석의 손을 잡고 석별의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관리위원장동지, 잔치 말입니다. 언제로 할가요?》

몽금이와 최인국은 아직 약혼식만 했고 결혼식은 하지 않았다.

《허허허, 거야 돌격대에서 정해야지. 딸, 사위가 다 돌격대에 있으니···》

《그럼 제 안을 내놓으랍니까?》

《여부있소.》

《군민의 단합된 힘으로 세포등판개간이 끝나는 날로 정하는게 어떻습니까? 결국은 그날이 강원도토지정리를 완전히 끝내는 날이겠으니 말입니다.》

정여삼은 잠간 생각을 굴리는 기색이였다.

《거 비슷한 생각이요. 그런데 거 그날의 의미가 너무 커서 결혼식은 오히려 묻히지 않을가?》

《그럴가요?》

《박동무, 내 해보는 소리요. 그날만큼 의의있는 날이 어디 있겠소. 결국은 내 딸도 토지정리덕분에 훌륭한 신랑을 만나게 됐으니 토지정리의 완수와 함께 례식을 올리는게 참 의미깊지.》

《거 말 한마디 잘하셨습니다. 강원도의 토지정리와 더불어 탄생한 새가정이라···》

박민석은 정여삼의 손을 다시한번 꽉 쥐였다놓고 벌써 저만치 멀어진 마감차에 달려가 삽날지지팔우에 올라섰다. 그는 석별의 정을 이길수 없어 눈물이 그렁하여 그냥 뒤를 돌아보며 손을 저었다. 그러다가 환송군중이 아스라게 멀어져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여서야 손을 내리고 벌판에 눈길을 주었다.

지난해 가을 그가 여기 금오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온통 뙈기논천지에 굵고 우불구불한 최뚝투성이던 벌, 그 좀스럽고 볼성사납던 벌이 지금은 장기판이나 바둑판처럼 번듯하고 규모가 잡혔다. 천지개벽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수 없는 이 놀라운 전변을 자신들이 이루어냈다는것이 민석은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믿지 않자니 너무도 눈에 익고 친근하다. 줄줄이 이어진 저 곧고 름름한 논뚝들과 금방 벤 두부모인듯 네귀방정하고 아름답기도 한 저 포전들···

그렇다, 이것은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다름아닌 우리자신들이 이룩한 천지개벽이다. 그것도 얼마나 짧은 기간에 남먼저 이룩하고 오늘 또 새 전투구역으로 진출하는것인가!

그때쯤 선두차는 벌써 고산군소재지어귀에 들어서고있었다. 그런데 예견 못했던 일로 불도젤행렬은 거기 읍거리에서 읍내 주민들과 소, 중학교 학생들의 환송을 받았다. 환송군중들속에는 시돌격대지휘부성원들과 함께 중앙지휘부의 조만규부상 그리고 군당책임비서와 군인민위원장을 비롯한 군의 여러 책임일군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때가 오전 10시경이였다.

불도젤행렬은 그로부터 다섯시간이 지난 오후 3시경에 세포군 삼방리 약수골(일명 되돌이골)에 도착했는데 언제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는지 불도젤로 밀면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역시 눈포라는 소리를 들을만 한 세포군이였다.

그것은 자연이, 세포등판이 자기의 정복자들에게 보내는 도전장이였으며 장차 돌격대원들이 겪어야 할 난관에 대한 예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민석은 선두차 운전칸에 앉아 눈덮인 골짜기와 무연한 등판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웃음속에 이제 벌어지게 될 개간전투며 장군님의 은덕으로 천년잠을 깬 세포등판에 무우바다가 펼쳐질 그날을 눈앞에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