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4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14

 

오후 2시반경 문기척과 함께 초급당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책임비서동지가 찾는구만.》

철함앞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조옥은 뽑아쥐였던 문건철을 제자리에 도로 꽂고 문을 닫았다.

《다른 소리는 없었습니까?》

《그저 조옥동무를 보내라고 하더군. 혹시 그 문제를 취급하자는게 아닌지···》

조옥이보다 10년이상이나 우인 당비서는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소장동무, 나도 함께 갑시다.》

사촌오빠 조만규에 의해 자신의 위법행위가 군당위원회에 반영되고 직무집행을 정지당한 때부터 벌써 열흘이 넘었다. 군당에 들어가 여러날 자기비판을 한데 이어 군인민위원회와 도토지감독처 해당 부서의 조사도 받으며 보낸 그 십여일간은 조옥이로 하여금 이제껏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지는 모르고있었던, 땅의 귀중함과 정치적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법무생활의 참다운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해준 괴로우면서도 필요했던 나날이였다. 물론 쉽게 얻어진 깨달음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사촌오빠 조만규를 야속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안변군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해주자는 그 주관적인 의도야 리해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야속함이였다.

그러던 때가 지나가고 위법의 확인과 함께 그 행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가해지자 조옥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자신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였다.

이제는 어떤 처분이라도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십여일간에 조옥은 인간적으로 성장하였다고 할수 있다. 지금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각이 왔다는 사실앞에서도 태연할수 있는것은 바로 그때문이였다.

《당비서동지까지 마음을 쓰게 해서 정말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전 혼자 가겠습니다.···》

《그래두 내가 곁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지 않을가?》

당비서는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기라도 한듯 조옥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걱정마십시오. 전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습니다. 그리고···》

조옥은 마지막말을 갑잘랐다.

자기 문제가 취급되는 경우 처벌이 어느 정도로 내려지겠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다행 가벼워서 직무해임정도로 그친다면 자기는 다시 이 상업관리소에서 생활하며 과오를 씻겠다는 말을 하고싶었지만 아직 결과를 알수 없는 조건에서 서뿌른 말 같아서였다.

《그리고··· 당비서동지가 할수만 있다면 원료기지를 꼭 제손으로 회복할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초급당비서가 나간 뒤 적당히 차림새를 하고 문간으로 나가던 조옥은 무심결에 몸을 돌려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 한가운데를 차지한 량수책상과 앞상, 안쪽 벽을 한절반 가리우며 그것들과 평행되게 나란히 서있는 두개의 회색빛문건철함과 책장, 원탁, 원탁우의 보온병과 사기고뿌, 벽밑으로 주런이 놓인 모임용걸상들과 나들문옆에 걸려있는 몸거울···

조옥은 사무실을 치장하는걸 좋아하지 않으며 생활공간이 단순하고 거칠매 없기를 바랐다. 까닭에 꼭 있어야 할 비품이외의 다른 물건은 아무것도 없는 사무실이지만 6년간 소장사업을 하면서 얼마나 정이 든 사무실인가. 그 정을 끊고 헤여질 때가 되였다. 이제 나갔다가 다시 이 사무실에 들어설 때 자신은 이미 소장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옥은 저도 모르게 눈굽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일군의 과오에는 이처럼 괴로운 보상과 회한이 따르기마련인가!

조옥이 군당위원회정문에 들어섰을 때 책임비서는 한팔을 허리뒤에 꺾어붙인채 담배를 피우며 한가롭게 현관앞마당을 거닐고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하고있었소?》

《자기반성도 하고 인계준비도···》

《반성이야 수양과정이니 많이 해서 나쁠게 없지. 원망스러운게 많을테지?···》

《제가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그래두 동무의 사촌오빠는 군당에 찾아와서 동무가 자기를 무척 원망할거라고 하던데···》

《첨엔 그런 감정도 없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동무는 솔직한게 좋더라니까. 사촌오빠를 리해해야 하오. 부모된 심정으로 여러모로 왼심을 쓰며 애쓰던 부상동무가 왜 동무의 위법행위를 두고 그런 용단을 내렸겠소. 그건 그렇게 하는것이 일군으로서의 자세고 또 그렇게 해야만 늦은대로 동생을 구원할수 있었기때문이요. 동문 다 몰라. 나한테 왔을 때 동무 사촌오빠는 울었소. 나라의 토지관리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제집안에 땅이 귀한줄 모르면서 밥을 먹고 사는 인간이 있는줄을 몰랐다면서··· 당앞에 죄를 졌다고··· 그런 오빠를 원망해서야 안되지.》

조옥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야말았다.

《이제 제 문제가 일단락 지어지면 오빠를 찾아가겠습니다.···》

《그래야지, 동무가 일 잘한다고 용타고만 했지 잘 도와주지 못했거던.》

《아닙니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제가 허욕을 부리며 토지리용규정을 안중에 두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책임비서동지, 이런 이야기 이젠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일이 다 꿰진 마당에서 자책이나 자꾸 해서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전 각오하고있습니다. 어서 책벌해주십시오. 기다리는 지금이 오히려 더 고통스럽습니다.》

마침 그때 어디 갔던 책임비서의 승용차가 정문으로 들어오더니 빙 돌아 차머리를 다시 정문쪽으로 향하며 그들곁에 와 서는것이였다. 운전사가 내리기를 기다려 책임비서가 물었다.

《몇키로짜리들이요?》

《하난 70키로고 하난 80키로랍니다.》

《150키로면··· 중대인원이라니까 면무식은 되겠소.》

운전사와 그런 대화를 나눈 책임비서는 승용차뒤문을 열어주며 조옥이더러 타라고 하고는 자신은 앞좌석에 들어가앉았다.

승용차가 발동을 걸고 정문을 나갈 때까지만도 조옥은 인민위원회에 가는줄로 알았다. 이런 문제는 인민위원회에서 취급하는것이 상례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큰길에 이른 승용차는 인민위원회쪽이 아니라 일용품공장쪽으로 꺾어지더니 일명 안변대교로 불리우는 남대천다리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조옥은 어리둥절할수밖에 없었다. 뒤늦게야 도당으로 가는가부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였다. 대교를 건너선 승용차는 원산과 반대방향인 남계리쪽으로 차머리를 돌리더니 미구에 안변군지경을 벗어나 고산땅에 들어섰다. 조옥은 그제서야 차가 금오리로 갈것이라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하였다.

무엇때문일가? 혹시 현장에서 내 문제를 취급하자는것이 아닐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조옥은 금시 심장이 비틀리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조만규가 왔다간 그길로 조옥은 한달음에 금오리에 갔었다. 가보고 너무도 험악한 상태에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땅을 이렇게 파먹은 대가로 자기가 실적을 내는 일군으로, 상업관리소에 두기엔 아깝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람들속에 둥둥 떠받들리웠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다.

옳다, 처벌을 받아도 그 땅에 가서 받자. 땅의 원망과 타매를 받자.

겨울해는 짧았다. 평강으로 가는 도로에 올라선 승용차가 예상한대로 금오리소재지에 도착하였을 때는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운전사가 차를 멈출듯 책임비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부턴 소장동무가 길안내를 하오. 금장골로··· 거기까지 차가 들어갈수 있소?》

《예, 원료기지에서 한 300메터앞까지 차가 갈수 있습니다.》

조옥은 지난해 봄, 여름 원료기지농사를 지으러 다니던 길을 새삼스레 다시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슬을 맞으며 올라갔다 해가 져 지친 몸으로 내려오던 그때가 참으로 행복하였다. 보람과 긍지를 안고 걷던 이 길로 이처럼 수치를 걸메고 가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했던가. 생각할수록 후회가 되였다.

《소장동무, 지금 동무네가 못쓰게 만들어놓은 땅을 말이요 인민군대동무들이 원상복구하고있소.》

《예에?》

조옥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셨다오.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자고 말이요. 그래서 그 과업을 군대에 주셨소. 꼭 그 땅을 원상복구하라고···》

책임비서도 부지중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조옥은 꼭 꿈을 꾸는것 같았다.

승용차는 금장골어귀에 못미처 처녀처럼 해말쑥하게 생긴 인민군전사가 신호기발을 들어 길을 막는 바람에 멈춰섰다.

책임비서가 옆창유리를 내리우고 물었다.

《동무네가 39군단 공병련대요?》

《그렇습니다.》

《련대장동무가 지금 어디 있소?》

《토지복구장에 있습니다.》

전사는 안변군당 책임비서라는 소리를 듣더니 차를 인차 통과시켰다.

운전사가 다시 발동을 살리는데 조옥이 다급히 부르짖으며 차에서 내렸다.

《책임비서동지, 전, 전 더이상 차를 타고 못 가겠습니다.》

조옥은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갔다. 돌부리에 걸채이기도 하고 두어번 무릎을 땅에 끌리우기도 했으나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가랭이틀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 우에서 사람들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이 한겨울에 흰내의바람인 군인들의 모습이 희끗희끗하게 보이였다.

조옥은 개울가를 따라 그 언덕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마침내 커다란 사금구뎅이가 있던 자리에 도착한 조옥은 다시한번 놀랐다. 그 구뎅이가 흔적도 없이 말끔히 메워져있는것이 아닌가.

이 한겨울에 흙밥은 어디서?···

사방을 다시 살펴보니 군인들이 질통을 메고 수백메터의 거리를 달리고있었다.

자기는 이 땅을 꼭 회복하겠다는 결심을 다지면서도 이제 땅이 녹은 다음에 할 일로 여기고있었는데 이 군인동무들은···

《아!―》

조옥은 자기의 앞뒤로 군인들이 뛰여다니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행히 짙어가는 어둠이 회오의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감추어주었다.

좀 있어 책임비서가 올라오더니 지나가는 한 군인을 붙들고 련대장을 찾았다.

군인들이 사방에서 웨쳐댔다.

《련대장동지!》

《련대장동지, 어디 계십니까?》

이윽고 질통을 진 거쿨진 사내가 어둠속에서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땀에 번들거리는 얼굴에서 김이 문문 오르고있었다.

책임비서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련대장동무, 우린 이미 구면이지요.》

《안녕하십니까? 책임비서동지.》

《이거 죄는 막동이가 짓고 벼락은 샌님이 맞는다고 우리 잘못으로 군인동무들에게 아니할 수고를 시켜서 정말 미안합니다.》

조옥은 그를 마주 바라볼수 없었다.

《그런 말씀을 마십시오. 저희들은 그저 명령을 수행할뿐입니다.》

보니 그는 아직 이 뜻깊은 토지복구의 사연을 다 알지 못하고있는듯싶었다. 조옥이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였다. 군단장이 사연을 다 말해줬더라면 이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가.

《내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런 녀자가 갈길이야 뻔하지요.》하고 쓰거운 미소를 짓는 련대장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조옥은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미칠것만 같았다.

《아무튼 수고많았습니다. 군대동무들이 이렇게 부침땅을 원상복구해준 덕분에 우리는 결국 사람 하나를 살리게 됐습니다. 군단장동무에게도 그렇게 전해주십시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건 반가운 소식이구만요. 우리 군단장동지도 기뻐하실겁니다.》

《소장동무!》

책임비서가 불렀다.

《동문 왜 고맙다는 인사를 할줄 모르오?》

조옥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홍철령을 바라보았다.

《련대장동지, 욕많이 하십시오. 이 땅을 욕되게 한게 바로 저랍니다. 군인동무들에게까지 이렇게 부담을 끼치게 한···》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부담이겠습니까? 이건 저희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지키는 병사가 아닙니까? 땅이자 곧 조국이지요.》

이런 훌륭한 사람을···

《아니, 련대장동무. 이거 몰라보는게 아니요? 우리 상업관리소장동무요.》

홍철령의 지극히 실무적이고 딱딱한 어조에 책임비서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느라고 설명을 달아주었다.

《알고있습니다.》

《원 사람두, 알아보고서도 이렇게 초면인 사람들처럼 내우를 한단 말이요?》

책임비서가 어떻게 하나 이 자리를 부드럽게 하느라고 애썼으나 홍철령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책임비서동지, 저는 군단장동지로부터 이 땅을 오늘까지 원상복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럼 전···》

《련대장동무, 동무가 그렇게 나오면 내가 얼마나 사정이 딱해지오?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나눕시다. 보다싶이 이젠 복구하고도 남지 않았소. 원상복구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하게 된것 같은데···》

《책임비서동지, 미안합니다. 아직은 여섯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에 흙 한짐이라도 더 가져다 메꿉시다. 저리 밭두둑도 만들어주고요.》

그는 종시 떠나갔다.

조옥은 그가 자기와 마주서기 싫어 굳이 이 자리를 피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붙잡지 마십시오.》

조옥은 책임비서에게 자신이 당하고있는 모욕을 굳이 숨기고싶지 않았다.

이런 모욕을 받아 응당하다. 아니, 이것은 모욕이 아니라 땅과 그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욕한 인간에게 차례진 응당한 처벌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서 끓는것은 무시당한 녀자로서의 자존심이 아니라 훌륭한 사나이의 곁에 나란히 설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환멸이였다.

금장골을 떠나오며 그는 생각했다.

왜 그처럼 랭대를 받으면서도 그앞에서 자기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는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정지되였던 직무를 다시 시작한 어느날 오후 조옥은 군도서관으로 갔다.

《어마! 오늘 해가 딴데서 떴나? 상업관리소 미인소장님이 우리 도서관에 다 왔을젠···》

읍바닥에서 같이 살며 이래저래 자주 만나지만 도서관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라 동창생 춘월은 과장도 섞어 사뭇 놀라와했다.

《그건 날더러 정신수양에 힘쓰지 않는다는 충고같은데··· 접수한다.》

벗의 충고를 그렇게 선선히 받아들인 조옥은 장기대출로 《돼지기르기》와 《수의방역학》을 달라고 했다.

《〈돼지기르기〉와 〈수의방역학〉? 갑자기 그런 책은 왜?》

《왜는 왜겠니? 공부를 하자고 그러지. 우린 이제부터 축산방향으로 나가자는거야.》

그것은 솔직한 대답이 못되였다. 공부를 하려는것은 사실이지만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그 다른 목적이 무엇임을 상기하자 조옥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까지 울렁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마치도 처녀시절의 숫저움을 다시 체험하는 느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