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2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12

 

밤이 이슥하여 김화쪽에서 달려온 한대의 군용지휘차가 한탄천을 건너 평강땅에 들어섰다. 군용차는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평강읍을 향하여 달리고있었다. 그 군용차는 39군단장의 야전용승용차로서 강룡상장(그는 근간 상장의 군사칭호를 수여받았다.)이 앞좌석에 앉아있었다. 적들의 광란적인 전쟁준비에 대처하여 관하 부대, 구분대들의 전투준비정형을 료해하느라고 종일 전연에 나가있다가 군단사령부로 들어가는 길인 그는 차가 천암리를 지나서부터 속력을 늦추도록 하였다. 거기서부터 길 좌우로 드문드문 토지정리하는 불도젤들의 모습이 보였기때문이였다. 군용차는 어느덧 천암리와 전승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마루에 올라섰다. 거기서부터 우불구불한 고개를 돌아 내리느라니 저 멀리 아래에 펼쳐진 전승리 포전들에서 토지정리하는 불도젤들의 전조등이 언듯언듯 눈앞을 가리웠다가는 사라지군 하였다. 고개를 다 내려 평지길이 시작되였다. 얼마간쯤 달렸을 때 강룡이 문득 《차를 세우오.》하고 운전사에게 지시하였다.

《무슨 일입니까?》

조수석에 앉았던 부관이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저기 저 불도젤 말이요?》

강룡이 시창 오른쪽에 펼쳐진 토지정리구역을 가리켰다.

어둠속에서 한대의 불도젤이 전조등을 환히 켜고있었다. 얼핏 거리를 타산해보아 300~400m가량 떨어져있었다.

《내 아까 고개에서 내릴 때부터 저 전조등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왜 까딱 움직이지 않을가?》

《고장나지 않았을가요?》

《고장이면 전조등을 끄고 우등불이라도 피웠어야지. 그리구 여긴 이동수리차체계가 어디보다 째인 곳이요. 류광선차수동지가 참관사업까지 조직한 곳이 아니요.》

《제 인차 가보고 오겠습니다.》

부관이 막 문을 열고 내리려는것을 강룡이 제지시켰다.

《두시간동안이나 차안에 있었더니 다리가 다 가드러드는것 같소. 내 운동삼아 가보고 오지.》

《안됩니다, 이 밤중에··· 정 그러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논두렁을 따라 불도젤쪽으로 다가가게 되였는데 강룡은 부관더러 손전지를 달래가지고 손에 들었다.

논두렁은 인차 없어져버리고 사방이 금방 불도젤이 밀어다놓은 흙무지뿐이였다. 그들은 여기저기를 에돌면서 가까스로 불도젤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는데 그때까지도 불도젤은 까딱하지 않고 한자리에 서있었다. 발동이 살아있는걸 봐서는 고장같지 않은데 운전수가 땅우에 내려앉아 밤참이라도 드는걸가? 그러나 주변에도 인적 하나 없었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운전칸의 문을 잡아당기던 부관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강룡이 다급히 달려가보니 운전수가 조종간을 틀어쥐고 그우에 엎드려있었다.

순간 그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움직이였다.

《무슨 급병으로 쓰러진것 같습니다.》

부관이 급히 말하며 운전칸안으로 뛰여들어가 그를 흔들어보았다.

《동무! 동무! 정신차리오.》

그러나 그는 고통스럽게 얼굴만 이그러뜨릴뿐 대답을 못했다.

한손으로 오른쪽옆구리를 꽉 누르고있는것으로 보아 충수염이 분명했다.

부관이 다시 튀여내렸다.

《군단장동지, 충수염인데 의식까지 잃은걸 보니 충수가 터진것 같습니다. 제 인차 가서 사람들을 불러오겠습니다.》

《안되오, 시간이 없소. 그리구 이 전승리엔 수술을 할만 한 병원도 없소. 당장 우리 차로 군병원에 가기요.》

부관은 강룡의 도움을 받아 그 사람을 둘쳐업었다.

환자를 차에 태우고 떠난지 15분이 채 안되여 야전차는 평강군인민병원에 도착하였다.

그때까지도 의식이 없는 환자를 운전사와 부관이 구급실로 날라들여가는것을 거들어주며 강룡은 같이 구급실에 들어섰다. 직일의사는 의학대학을 금방 나왔음직한 예쁘장하고 애리애리한 녀의사였다. 요런 애숭이처녀가 중태에 빠져 의식도 없는 환자를 어찌 감당해내랴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는데 웬걸, 생각과 달랐다. 녀의사는 한밤중에 들이닥친 환자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조금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환자를 침대에 눕혀놓고 침착하고 능숙한 솜씨로 우선 눈까풀을 뒤집어보았다. 이어 맥박을 짚어보고 앞섶을 헤쳐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간호원에게 수술준비를 시키는 한편 주저없이 부관에게 요구했다.

《환자의 겉옷을 벗겨야겠는데 좀 도와주십시오.》

부관은 물론 운전사까지 접어들어 겉옷을 벗겨주자 녀의사는 몸부위의 여기저기를 눌러가며 얼굴에 나타나는 변화를 주의깊이 관찰하던 끝에 드디여 간호원에게 우선 해당한 주사부터 지시했다. 녀의사자신은 구석에 놓여있는 책상앞에 가서 종이를 꺼내놓고 원주필을 쥐더니 환자의 이름과 년령, 직장, 직위를 알려줄것을 요구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안단 말이요? 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실어왔는데···》

다소 신경질도 섞인 부관의 푸접없는 대꾸에 녀의사의 고운 눈이 실망으로 어두워진다.

《어마! 그럼 병력서를 어떻게 작성합니까? 암것두 모르면··· 》

《동무! 병력서 같은거야 환자가 정신을 차린 다음 써도 되지 않겠소?》

부관과 의사가 이런 소리를 주고받는 사이에 강룡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벗겨놓은 환자의 옷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증명서는 없고 솜옷주머니에서 허리를 접은 편지가 나왔다.

《간호원동무, 여기 이 사람의 주소성명이 있소. 적소. 수신인의 주소가 황해남도 연안읍이라고 했으니 이 사람은 분명 연안토지건설대 불도젤운전술거요. 이름은 임성춘. 뭐, 나이? 거야 쉰살쯤 되였겠지. 이젠 됐소?》

《됐습니다.》

처녀의사는 환자를 밀차에 실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강룡은 부관에게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우리 군단 관하가 맞지?》

부관이 봉투의 우편대호를 읽어보더니 《우리 군단 109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 편지를 좀 보기요.》

봉투안에는 아들이 아버지한테 보낸 편지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쓰다만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보매 아버지가 아들의 편지를 받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회답을 쓰다가 미처 다 쓰지 못한것 같았다.

아들의 편지를 먼저 읽고 아버지의 편지를 보니 반페지도 되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심중이 대략 짐작되였다.

《사랑하는 내 아들 광일이 보아라.

네 편지를 받고 온밤 잠을 자지 못했다. 고맙구 대견하구 그리구 후련하구···

어쩌면 네가 내 마음을 그리도 꼭 알아맞추었냐.

네 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내가 남보다 일을 뛰여나게 잘해서 입당을 했으면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을 가질수 없구나.

너도 이젠 조국의 촌토를 지키는 병사가 되였으니 나라의 토지를 류실시킨 이 아버지의 죄가 얼마나 큰것인지 알테지. 이 죄는 내 대에 다 못 갚으면 너와 광복이, 광야까지 대를 두고 갚아야 할 우리 가정의 빚이다.

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이 너에게 긍지로 된다고 한 네 글이 이 가슴속에서 막 살아 꿈틀거리는것 같구나.

광일아, 내 어제날에는 비록 떳떳치 못하게 살았지만 네 말대로 이번 토지정리전투기간···》

편지는 여기서 끊어졌다.

강룡은 두개의 편지를 정히 접어서 봉투에 넣은 다음 무슨 생각에선지 자기의 주머니에 건사했다. 그는 군단사령부에 도착하는 즉시로 군단병원 원장을 전화로 찾았다.

《지금 곧 내과계통을 전문한 군의들로 치료조를 무어 평강군병원에 보내오. 거기 구급실에 충수염으로 갑자기 수술한 불도젤운전수가 있을거요. 아니, 그건 나도 아오. 그러나 그 동무는 좀 늦게 발견되였소. 그러니 충수가 터져나갔으면 내장이 오염되지 않았겠소. 큰 수술을 해야 할거란 말이요. 그래서 하는 부탁이요. 필요하면 동무도 함께 가서 그 동무를 소생시키는데 협력해야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어느 부댑니까?》

《사민이요.》

《사민이요?》

병원원장이 놀라운 어조로 되물었다.

《그렇소. 그러나 그 동무는 불도젤운전수로서 지금 국방위원회명령을 수행하는 전투원이고 또 우리 군단에서 복무하는 한 병사의 아버지요. 그러니 최선을 다 해야겠소.》

강룡은 송수화기를 놓으려다말고 제창 전화를 돌려 작전부장에게 적정자료가 종합되였으면 가져다달라고 했다. 담배를 태우며 작전부장을 기다리고있는데 작전부장보다 먼저 정치위원이 류광선차수를 앞세우고 들어섰다.

《차수동지, 안녕하십니까?》

강룡은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였다.

《잘있었소? 그새 세포등판개간준비는 어떻게 돼가오?》

《군단에서 제일 전투력있는 공병련대를 붙였습니다. 불도젤들만 도착하면 당장이라도 착수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토지정리력량을 약화시키진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토지정리가 끝나야 세포등판도 개간할텐데 이거야말로 네일내일이 따로 없는게 아닙니까.》

《옳소, 그 말 한마디 잘했소. 군대일이자 사회일이고 사회일이자 군대일이지. 지금 토지정리전투장에선 이번 기회에 모든 울타리들과 지경들이 다 허물어져간다고들 하오. 토지정리불도젤들이 온갖 잡사상의 경계선들을 뙈기논 논두렁 허물듯 몽땅 밀어버린다는거지.》

류광선은 책상우에 모자를 벗어놓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잘돼가오?》

강룡은 전번에 장군님을 군단에 모셨을 때 자기네 군단을 꼴등주라고 하던 류광선의 모습이 생각나 인츰 이마살을 찡그리는데 곁에서 군단정치위원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이번엔 문제없을겁니다. 벌써부터 성수들이 났는데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거 뭐랄가, 이를테면 생활에 발을 붙인 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강원도토지정리와 관련한 작품들의 내용이 좋습니다.》

《바로 그거란 말이요. 이자 군단장동무가 한 그 말을 가지고도 훌륭한 작품을 쓸수 있지. 날더러 작품을 쓰라면 〈마음의 지경을 합쳐놓은 강원도의 토지정리〉 이런 제목으로도 훌륭한 선동시를 쓰겠는데 말이요.》

강룡은 류광선이 무엇때문에 이런 소리를 꺼내는지 몰라 한번 든장질을 해보았다.

《차수동진 예술에 조예가 상당히 있는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전번에 평강벌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걸 보니까 영 아니던데요.》

《이 사람이, 그때야 내가 목이 아파서 그랬지. 하지만 장군님께서 내가 군인들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까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아오?》

《그래 우리 군단 가족써클이 궁금해서 오셨습니까?》

《아니, 건 아니요.》

류광선은 느긋한 미소를 짓고 앞에 마주앉은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동무들에게 과업을 줄게 있어서 왔소.》

《무슨 과업인데 이렇게 분위기까지 마련하면서 그러십니까? 부위원장동지답지 않게···》

정치위원이 선선하게 나오자 류광선은 《아니, 이건 과업이라도 보통이 아니라 영예로운, 말하자면 값을 받으며 수행해야 할 과업이야.》하고 더욱 부채질을 했다.

《말씀하십시오.》

《고산군 금오리에 말이요. 못쓰게 된 땅이 한 4~500평가량 있는데 그걸 복구해야 할 과업이 나섰소.》

류광선은 이것이 강원도당을 통해 장군님께까지 알려지게 된 사연이며 조만규부상의 고민이라는것 그리고 강룡군단에 과업을 주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장군님께서는 조만규동무가 달리 처신할수는 없다, 일군은 응당 부정앞에서 그렇게 타협을 몰라야 한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촌녀동생을 법에 고소했으니 지금 얼마나 속을 썩이겠는가, 우리가 힘을 합쳐 조만규동무를 도와주자, 방법은 한가지 있다, 안변군상업관리소에서 못쓰게 만든 부침땅이 얼마나 되는지 그 땅을 원상복구하면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릴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소.》

류광선의 이야기가 끝나자 강룡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머리속에는 순간에 멋들어진 계획이 섰던것이다. 그는 다급히 물었다.

《안변군상업관리소에서 못쓰게 만든 땅이 얼마고 어느 정도로 못쓰게 되였습니까?》

《위치는 고산군 금오리고 면적은 다해 4~500평가량 된다오. 기본은 사금잡이를 한 두개의 큰 구뎅이이고 금을 인다고 하면서 흙을 다 씻어내깔려 돌서덜이 되고만 땅인데 문제는 가까운 주변에 원상복구할만 한 토량이 없다는거요.》

지도를 펼쳐들고 한동안 무슨 계산을 해보던 강룡은 다시 류광선쪽으로 돌아섰다.

《이거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여갑니다. 우리 공병련대장이 홀애비신세를 면하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류광선은 웬 소린가싶어 눈에 의문을 담고 정치위원과 강룡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강룡이 공병련대장 홍철령이 홀아비가 된 경위며 문제의 안변군상업관리소장녀인과 혼사말이 났다가 실패한 과정을 자상히 이야기해주었다.

《허어, 그러니 군단장동문 그 련대장에게 원상복구를 맡길 작정이요?》

《그렇지 않구요. 마침 그 사람이 고산가까운 세포등판에 나가있는데 아니, 어떻게 돼서 일이 이렇게 착착 맞아돌아가는가? 이제 홍철령이가 가서 그 땅을···그렇게만 되면야···》

강룡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싱글벙글했다.

《거참 소설같은 이야기군. 우리 장군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시고 꼭 39군단에 원상복구를 과업주셨는가 말이요.》

류광선도 일이 멋있게 번져지자 젊은이들처럼 머리를 쓱쓱 빗어올리며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군단장동무, 사람을 살리자면 서둘러야 할거요.》

《념려마십시오. 오늘중으로 명령을 떨구면 아마 이틀도 안 걸릴겁니다. 홍철령이가 녀자문세는 좀 어둡지만 일을 제끼는데선 불도젤 한가지니까요.》

강룡의 말에 정치위원이 《정말 이번 토지정리가 큰 지경, 작은 지경 다 무너뜨립니다. 이번엔 한 인민군련대장과 군상업관리소장사이에 막혔던 지경이 무너진다?》하고 큰소리로 웃자 방안은 한동안 사나이들의 걸걸한 웃음소리로 꽉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