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0

 

제 3 장. 약속하는 대지

10

 

홍산옥의 령구를 떠나보낸 다음 조만규는 다시 설계책임자를 불렀다.

어째서 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나게 됐는가. 정녕 피할수 없는 사고였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

《난 암만해도 아직 리해되지 않소. 함께 현장을 밟아봅시다.》

이리하여 조만규는 설계책임자와 함께 금장골로 향하였다.

한 40분가량 걸어서 사고가 난 현지에 도착하였다. 조만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설계책임자의 말대로 가랭이틀을 규격포전으로 만들자면 저 웃쪽의 원료기지를 다치지 않고서는 사고현장의 둔덕을 헐어내릴수밖에 없다는것이 자명한 리치였다.

《내가 리해되지 않는건 말이요, 저 땅이 이젠 금오리구역이 아니라 해도 그 동무들과의 합의가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하는거요. 저 동무들도 이 기회에 표고를 낮추면 농사짓는데 여러모로 편리할텐데 말이요. 그 동무들과 의논을 해봤소?》

《하지부터 않았습니다. 금오리 관리위원장이 결사반대했지요.》

《리유는?》

《말하자면 좀 긴데 원래 비경지인 저 땅을 안변에 떼줄 때부터 관리위원장은 맘이 썩 내키지 않는걸 하는수없이 떼준것 같습니다. 당장은 손이 돌아가지 못해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기계화가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얼마든지 농토로 만들수 있다는거지요. 더구나 이번에 토지정리전투가 벌어지자 관리위원장의 후회는 더했습니다. 그러다가 새해에 접어들면서 이 가랭이틀정리문제가 일정에 올랐는데 그때 정여삼관리위원장도 부상동지와 같은 생각을 품고 그 의논을 하러 여기에 왔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 원료기지사람들이 그 땅을 마구 파헤쳐놓았지요.

정여삼관리위원장의 격분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안변군 탁아, 유치원 아이들의 공급용사탕, 과자를 생산하겠다고 하기때문에 땅을 내주었고 작년 첫해농사를 지을 때 이모저모로 관심을 돌려 적잖게 도와도 줬는데 글쎄 그 땅에서 사금잡이를 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관리위원장은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되게 문제를 세우겠다는 잡도리였습니다.》

조만규는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였다.

《뭣이? 사금잡이? 토지를 침범하면서 말이요?》

《첨부터 그런 작정을 한건 아닌것 같습니다. 본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해농사가 끝난 다음 심심풀이삼아 시작해본건데 예상외로 금이 많이 나온듯 합니다. 그런데 그 금맥이 개울쪽을 따라 뻗었으면 좋겠는데 딱 밭쪽으로 향했다는거지요.》

조만규는 더는 설명을 듣고있을수 없었다.

《됐소, 그래 파헤친 면적이 얼마나 되오?》

《눈에 보이는건 한 2~300평가량 되는데 아마 밑으로 뚜지고들어간건 더 될겁니다.》

《가보기요.》

설계책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옥이는 분명 위법행위를, 그것도 판을 제법 크게 벌려놓았음에 틀림없는데 과정은 다 알수 없지만 이제라도 일을 바로잡자면 빨리 사실여부부터 확인하는것이 옳아서 그는 가랭이틀의 오불꼬불한 논두렁들을 가로질러 부지런히 웃쪽으로 올라갔다.

가랭이틀은 7작업반마을을 에돌아흐르는, 한여름에는 물량이 꽤 많겠지만 갈수기라 지금은 띠오리처럼 가늘어진 개울건너에 북서방향으로 길게 펼쳐져있었다.

둔덕을 내려 사금채취장에 이른 그는 가슴에서 돌이 떨어지는 느낌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개울변을 따라 무수히 널려있는 사금구뎅이들, 온통 제멋대로 파서 이리저리 끌고다닌 물도랑, 도랑물에 씻기워 군데군데 패워나간 밭최뚝, 뿌리뽑혀 곳곳에 나딩구는 바위돌들…

밭 한가운데는 자기가 창조한 그런 파괴상을 굽어보며 두대의 사금이는 기계가 거연히 서있었다.

《저 기계는 언제 들여온거요?》

《처음엔 개울가에 뜨락또르동력으로 시작했댔는데 점점 판을 크게 벌리면서 저 기계들을 들여왔는데 이젠 한 대엿새가량 됩니다.》

기계 뒤쪽으로 커다란 웅뎅이만 남기고 뭉청 잘리워 없어진 수백평의 밭… 설계원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작 눈앞에 펼쳐진 실상이 생각보다 썩 더 심각한데 억이 막혀 조만규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였다.

(조옥이! 이제 보니 네가 머리에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년이였구나. 그래, 네가 홍철령이라는 련대장을 마다한것도 어떤 순간의 오해때문이 아니였다. 네가 지금 땅을 팔아 제 낯을 내보자는거냐. 것두 강원도땅에 발붙이고 산다는것이!)

두주먹으로 허리를 눌러짚은채 조만규는 끓어오르는 격분을 가까스로 삭이며 무거운 마음으로 사금기계앞을 오가면서 처리방도를 찾아보았다.

그러니 이젠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라도 도농촌경리위원회나 농업성 토지감독국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날에는 조옥이는 법적추궁을 면할수 없다. 그러나 조만규가 걱정하는것은 조옥이한테 떨어질 처벌보다도 조옥이가 못쓰게 만든 땅이였다.

그는 설계책임자를 데리고 다시 둔덕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도면을 펴놓고 지형과 대조하며 거듭 타산해본 끝에 드디여 결론을 내렸다.

《동무,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듣소. 이 둔덕은 전반적으로 밀어 낮출걸로 보고 저기 개울버덩까지 다 논구획에 잡아넣소. 아래쪽 사금기계가 파먹은 구뎅이어방은 이렇게 쭉 사선으로 잘라버리면서… 귀잡이논이 좀 병신스러워지긴 하겠지만 별수 없을것 같소.》

토량이 있어 사금구뎅이를 메우고 귀잡이포전도 온전하게 만들면 좋으련만 둔덕을 밀면서 나오는 흙량은 밭에 깔아 전반적인 수평을 보장하기도 빠듯할것 같았다.

《그래두 800평은 어방없을것 같습니다.》

《그럼 평수를 좀 낮추도록 하오. 원래 여기는 밭으로 전환해야 할 땅이지만 홍산옥동무의 피가 스민 곳인데 그가 생전에 바라던대로 논을 만들어줍시다.》

《알겠습니다.》책임자의 대답이였다.

《그런데 안변군상업관리소와는 미리 합의보지 않아도 일없을가요? 거기 소장이라는 녀자가 여간내기가 아닌데다 배경도 든든하다는가분데…》

《그런 걱정은 안해두 돼.》

조만규는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그가 말하는 배경에 자기도 속해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역증이 났던것이다.

《도면이 되면 제창 돌격대에 넘겨 시공에 들어가도록 하오. 다시 비준에 제기할 필요가 없소.》

그로부터 40분이 채 못되여 조만규는 벌써 안변군상업관리소에 가있었다.

조만규가 방에 들어섰을 때 조옥은 책상우에 서류를 한가득 펴놓고 앉아 전자수산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손님쪽이 문기척을 안 내기도 했지만 주인쪽도 들어올만 한 사람이니 들어왔겠지 하는 생각인지 그냥 제일만 하다가 뒤늦게야 조만규를 알아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만규는 시퍼런 인상으로 앞상에 다가가 걸상을 꺼내 앉기바쁘게 따져물었다.

《금오리에 있는 너네 원료기지 말이다. 그게, 여덟정본가 된다던 그게 개간지논대신에 받은거냐?》

또 혼사문제를 들고왔는가 해서 벌써부터 얼굴이 달아오르던 조옥은 뜻밖의 물음에 《예… 근데…》하고 어정쩡한 대답을 하였다.

《그 원료기지에서 하는 사금채취, 그건 누가 승낙해서 하는거냐?》

조옥은 오빠가 왜 갑자기 사금에 흥미를 가지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기웃거렸다.

《사금채취를 무슨 승낙을 받고말고 해요?》

《그러니 아무 승낙도 받지 않았단 말이구나?》

《글쎄 밭근처의 개울가에서 나는 사금인데 그걸 어디 가서 승낙받는다고 따지고들면서 그래요?》

조옥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그러니 넌 나가보지도 않았단 말이냐?》

《하루이틀내로 시간을 내서 나가보자던 참이였어요.》

《너 지금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 너희때문에 생때같은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조옥은 벼락이라도 치는듯싶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사람이 죽다니요? 우리 사람이요? 사금을 잡다가요? 어떻게요?》

조만규는 한참동안 걸려서야 금오리에서 왜 가까운 원료기지를 버리고 위험한 개건너의 둔덕을 헐어내리지 않으면 안되였고 그 과정에 불도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녀성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 사실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조옥은 눈앞이 새까매졌다.

《이 문제는 간단히 넘어가지 않을거다. 더구나 강원도의 땅을 국방위원회의 명령으로 정리하고있는 때에 토지를 침범하여 그 무슨 실리를 추구했다는 그 성격자체가 매우 위험한것이다. 이제라도 원료기지에 나가봐라. 그리고 그 땅을 어떻게 복구시켜놓겠는지 연구도 해보고…》

조옥은 잠자코 생각을 굴려보더니 《오빠, 인명피해를 우리와 련결시키는건 아무래도 너무한것 같구만요. 물론 제가 단위책임자로서 토지를 침범하는 그 행위자체를 모르고있었다는자체가 응당한 처벌을 받을짓이긴 하지만 어떻게 산자드락의 밭을 얼마간 뚜지고 들어간것이 인명피해를 조장시킨것으로까지 분석되나요? 이건 제가 책임을 회피하자고 해서가 아니라…》하다가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갑자기 조만규가 책상을 내리쳤던것이다.

《뭐라구? 네가 머리속에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나.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 뭐이, 산자드락의 밭을 얼마간이라구? 네가 강원도사람이 맞냐?!》

조옥은 오빠가 뭘 그리 격해하는지, 그리고 그 사고를 굳이 자기네 쪽으로 몰아붙이려고 하는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이 강원도에는 그 어느 산, 그 어느 골짜기에도 전쟁시기 우리 군인들의 피가 스며있지 않는 곳이 없다. 그야말로 한치한치를 목숨과 바꾼 땅이야. 그렇게 소중한 이 땅을 네가 감히 산자드락의 밭이라고, 개울가의 밭이라고 손톱만큼이라도 침범할수 있단 말이냐?》

조옥은 그제서야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손톱여물만 썰었다.

조만규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준절하게 꾸짖었다.

《그래, 네 말대로 그 잘난 밭이라 치자. 하지만 아무리 못났어도 그 밭은 나라의 땅이다. 후손만대에 물려줄 민족의 재부란 말이다. 그런 나라의 귀중한 재부에 손을 대고도 잘못을 느낄줄 모르니 네가 무슨 일군이냐? 일군은 고사하고 너에게는 이 땅을 밟으며 땅이 주는 낟알을 먹고 사는 공민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다.》

《…》

《너는 눈도 귀도 다 막고 굴우물안에서 사는 아이냐? 지금 여기 강원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니? 장군님께서 이 어려운 때에 부침땅지경을 넓히느라고 마음쓰고계시는데 너는 뒤에서 무슨짓을 했니? 무슨 어처구니없는짓을 했냐 말이다.》

《…》

《너희들이 금오리에서 저질러놓은 일이 아직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사건화되는건 시간문제다. 내 생각은 이렇다. 너는 우선 자신의 과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정되면 당조직에 찾아가 잘못을 반성하고 스스로 처벌해줄것을 요청하는것이 옳다.

네가 다소나마 리해나 용서를 받을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단 그 길밖에 없다는걸 알아야 한다.》

말끝에 조만규는 그렇게 할수 있겠느냐고 찍어물었다. 조옥은 입술을 감쳐문채 고개를 돌려 창문을 내다보며 이윽토록 말이 없더니 드디여 무슨 결심이 선듯 입을 열었다.

《오빠 말씀대로 그 돌밭이 그렇게 귀하다면 사금채취는 그만두겠어요. 하지만 난… 누가 뭐라지도 않는걸 가지고 찾아다니며 스스로 벌을 청하는 놀음은 못하겠어요. 긁어 헌데를 만들 필요가 뭐 있어요? 난 그 문젠 오빠만 눈감아주면 별일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만규는 마지막기대가 허물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조만규는 두손으로 앞상모서리를 눌러짚으며 무겁게 일어나 문간으로 나가다말고 돌아서며 말했다.

《내가 너를 다 몰랐구나! 금오리의 그 원료기지, 그게 이젠 너네 땅이 아니다. 나는 나라의 토지관리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관리권을 박탈한다. 이제 그 땅은 토지정리면적에 들어갈것이다. 너의 미련이 필지의 한쪽귀를 병신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당에 나와 승용차에 오른 조만규는 운전사더러 군당으로 가자고 했다. 나라의 토지관리를 책임진 일군으로서뿐만이 아니라 당원된 량심으로도 조옥의 문제를 덮어둘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군당정문앞에서 그는 쉽사리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오빠만 눈감아주면 별일없을것이라고 하던 조옥의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귀전을 울리면서 발목을 붙잡는것이였다. 그는 줄담배를 석대나 태웠다.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차에서 내려 접수실로 들어갈수 있었다.